맥체인성경읽기
열왕기하 22, 히브리서 4, 요엘 1, 시편 140, 141
묵상구절
11: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1:13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11: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던 암몬 족속을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된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하고 독려하여 기습 공격을 감행함으로 크게 무찔렀음을 기록한 6-11절에 이어 12-15절은 암몬과의 전쟁을 통해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공식 즉위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12,13절은 과거 자신이 왕으로 선출될 때 이를 인정치 않았던 비류들을(10:27) 관용의 정신으로 용서하였음을 보여줌으로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적합한 인물임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
●승전 기념 화목제(사무엘상 11:12-15)
여기에서는 사울이 획득한 위대한 승리의 결과가 열매 맺은 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밖에서 맺은 것이 아니었다. 간신히 오른 눈을 보호 받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이제는 흉악한 원수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찾는 것은 타당한 일이라고 보기는 하나, 그들이 당할 뻔하였던 그런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괴롭히는 방법은 허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본다. 두 눈을 빼앗긴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았듯이(삿 16:28), 길 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이번에는 암몬 사람들의 오른 눈을 빼앗는 복수를 치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 얻은 승리의 결과는 밖에서 보다는 안 에서 열매 맺었다.
Ⅰ. 이번에 백성들은 사울의 명예에 대한 열의를 보였으며, 그에게 가해졌던 냉대에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그때 사무엘은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승리하고 돌아오자 그들을 만나기 위해 왔던 것으로 보인 다. 그런 사무엘에게 백성들은 사울의 통치를 받지 못하겠다고 하였던 비류들을 끌어다가 죽이게 하여 달라고 고소하였다(12절). 운좋게(흔히 어리 석은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는데)사울은 왕으로 제비 뽑히고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것 이상으로, 이번 기회로 왕으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사울 자신이 겸손함을 나타내었을 때는 사람들이 감히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단하자고 말할 용기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승리를 거두고, 따라서 그의 위대함을 나타내자 감히 그들을 죽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사울은 스스로 고백한 대로 ‘가장 작은 지파인 베냐민' 출신이었으며(9:21), 갑작스런 등장으로 왕으로서의 능력을 평가받을 만한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자질을 의심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따라서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었을 당시에 비류들이 사울에 대하여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것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적,인 면모로만 본다면 사울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다스릴 자질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점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암몬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므로써 왕으로서의 자질을 확연히 드러낸 본장의 맥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사울을 선택하셨다는 사실과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암몬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있는 비류들의 무지함을 질타하는 의미로 이 질문이 사용되었다.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아마도 그들은 구약의 사형 방법에 따라 사울의 반대자들을 돌로 쳐죽이려 했을 것이다(민 15:35).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의 지도하에 암몬 전속과의 전쟁에서 이기자 과거 사울의 능력을 무시한 비류(10:27)들을 죽이려고 했다. 한편 본문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번 전쟁의 승리로 인해 사울이 백성들의 든득한 신임을 얻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왕으로 선출된 사울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자 백성들은 모두 만족하고 이와 같은 제안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면 사울에게 아부하는 무리들이 생겨났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Ⅱ. 사울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너그러움을 더욱 증거하는 기회로 삼았다. 사무엘의 대답을 기다릴것 없이, 사울 자신이 그러한 요청을 거절 하였다(13절).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고 사울은 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였다.
1.그 날은 기쁨과 승리의 날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셨으니, 우리도 서로 해하지 말자."
오늘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마음들을 기쁘게 하셨으니, 어떤 몇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슬프게 하지 말자.
2.사울은 오늘의 이 행동으로 그 사람들이 보다 좋은 성품들을 가지게 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이 사람을 그들이 한 때는 멸시하였지만 이제는 존경하여야 하며, 이 사람이 능히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만 놓으면 다시는 그들로부터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성공하였다. 만일 원수를 친구로 만든다면 죽여 없애 버리는 것보다 훨씬 이로운 일이다. 그리고 모든 훌륭한 왕들은 그들의 진정한 힘이 반대 세력을 말살시키는 데 있지 않고 감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울은 암몬과의 견쟁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주체가 사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근거하여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 비류에게도 관용을 베푼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는 후일 다윗이 압살룸의 반역과 관련하여 자신을 비방하던 시므이를 죽이지 않았던 사건을 들 수 있다(삼하 19:23). 시므이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 역시 본문과 유사하게 다윗이 그날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다시 왕적에 복귀한 날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울은 이번 전쟁이 자신의 능력어나 전락에 의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승리임을 인정하였기에 과거 자신을 대적했던 비류들에게(10:27) 은혜를 베풀 수 있었다. 이러한 사울의 관용은 백성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아 별다른 어려움 없어 공식적인 왕으로서의 즉위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14.15절).
그러나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의 공로로 인정하는 사울의 이러한 신앙적 태도는 곧 이어서 나오는 13장과 15장에 가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제사를 드렸으며(13:9),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는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욕심을 따라 좋은 것을 남기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15:9). 그리고 사울은 결국 이러한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한편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스라엘 왕권의 특정과 관계된다. 즉 이스라엘의 왕은 열방의 왕과 달리 백성들에 대해 생살여탈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왕권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서 어루어전 왕권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여호와이시며 다만 인간 왕은 여호와의 대리 통치자일 뿐이었다. 따라서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를 인정한다면 백성들의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이고 합법적인 절차 없이 단순히 자신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처단할 수는 없었다.
Ⅲ. 사무엘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백성들을 모두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모으는 데 이용하였다(14,15절).
👉곤경에 처한 동족을 구하고 자신을 대적하던 자들에게까지 관용을 베푸는 후덕함을 보여줌으로 왕으로서 충분한 자질이 있음을 인정받은 사울은 이제 14,15절에서 선민 이스라엘의 왕으로 공식 즉위하게 된다.
이러한 공식 즉위식은 이스라엘의 최후 사사이며 영적 지도자로서 실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무엘의 제의로 이루어진다. 사무엘은 길갈에서 공식 즉위식을 갖자고 제의하였다. ‘길갈'은 이스라엘에게 큰 의미를 지닌 장소였다. ‘길갈' 은 어원상 ‘굴림(rolling)' 이나 ‘돌들의 바퀴’ 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그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출애굽 이후 40년간을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내내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다(수 5:5). 그러다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자 요단강에서 가지고 온 12개의 돌을 세워 요단 도하를 기념한 곳인(수 4:20) ‘길갈’ 에 이르러서야 언약 백성의 정표인 할례를 행하였다. 이때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 굴러가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신 바 이것이 ‘길갈' 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이처럼 ‘길갈’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첫발을 디딘 곳일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을 확인하는 할례를 시행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리매김하였던 유서 깊은 장소였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사무엘 시대까지 이어져 ‘길갈’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제의적 중심지로 자리잡았다(7:16). 이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정립에 있어서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길갈’ 은 사울의 운명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사울이 처음으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인정을 받아서 여호와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던 장소이며(10:8), 본문에서처럼 사울이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등극함으로써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부족 동맹체로서의 정치 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새롭게 출발하게 된 장소이다.
그러나 ‘길갈’ 은 사울에게 있어서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왕이 된 지 2년 즈음 블레셋과의 전투에 앞서 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제사를 드렸다가 왕위 폐위를 예언받은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13:8-14). 저자는 ‘길갈' 이란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여 미천한 자가 왕으로 등극하여, 다시 왕이 더 천한 자로 전락하는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 그것은 하나님께서 최근에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승리를 공적으로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크게 기뻐하였으며", 그들을 성공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로 하나님께 "화목제" 를 드렸다.
👉 화목제: 하나님과 경배자간의 화목 및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의미를 지닌 제사.
길갈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면서 드린 화목제는 이스라엘 백성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할 때 드렸던 제사와(출 24:5) 동일한 종류의 제사이다. 이는 사울의 왕직이 언약의 직무임을 밝혀준다. 즉 이때 드린 화목제는 사울을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로운 통치 방식에 걸맞는 언약을 새롭게 체결하는 것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2. 그것은 사울의 왕위를 전에 없이 공고히 하여 주며, 다시는 그가 향리로 은퇴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 사무엘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어떻게 새롭게 하려고 했으며 사울의 왕권을 갱신시키려 하였는가?
이것은 이스라엘 왕권의 언약적 특정을 이해할 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인간 왕은 선민 이스라엘의 견정한 왕이신 여호와를 대신하여 통치하는 자일 뿐이다. 따라서 사무엘이 새롭게 하려는 왕국은 사울의 왕국이 아니라 여호와의 왕국이다. 즉 사무엘은 사울의 왕권이 여호와의 왕권에서 나온 것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울 왕권에 언약의 정신을 새롭게 불어넣음으로써, 여호와의 왕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걸코 잊을 수 없는 유서 깊은 장소인(수 5:2-8) ‘길갈’ 은 이러한 언약적 성격이 있는 여호와의 왕권을 선포하기에 매우 적절한 장소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길갈’ 로 불러모은 것이다. 선민 의식을 고취시키며 선민의 증표로서 할례를 베풀었던 ‘길갈’ 에서 그 옛날 선민 언약을 맺었던 시내산 언약을 다시 상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시키려 했던 것이다.
사무엘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사무엘은 그의 뜻을 다시금 새로이 밝혔고 백성들도 다시금 새롭게 그의 지명을 지지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지명을 전원 출석, 전원 일치하는 가운데 사울을 왕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그들 자신들의 행위로 이루어졌으므로 그에게 복종을 맹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