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 읽기
창세기 14장, 마태복음 13장, 느헤미야 3장, 사도행전 13장
묵상 구절
17:10 이스라엘 집에 속한 사람이나 그들 가운데 거주하는 거류민 중에 어떤 사람이 무슨 피든지 먹으면 내가 그 피를 먹은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을 것이니,
17:11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주어 제단 위에서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으니, 이는 생명을 속죄하는 것이 피이기 때문이다.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가운데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가운데 거주하는 거류민이라도 피를 먹지 마라.' 하였다.
17:13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사람이나 너희 가운데 거주하는 거류민 중에 어떤 사람이 먹어도 좋은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으면 그는 그 피를 쏟아 버리고 그것을 흙으로 덮어야 한다.
17:14 이는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이며, 그 피에 그의 생명이 있으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마라.' 하였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의 피이므로, 누구든지 그 피를 먹는 사람은 끊어질 것이다.
17:15 저절로 죽은 것이거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사람은 누구나, 본토인이든지 거류민이든지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목욕해야 하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야 정결하게 될 것이나
17:16 만일 그가 옷을 빨지 않거나 자기 몸을 씻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죄를 짊어져야 한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피를 금함 (레위기 17:10-16)
Ⅰ.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금령을 노아의 계율이 나타났던 곳(창 9:4) 외에서도 이미 레위 율법에서 두 번이나 보았다(3:17; 7:26).
- 그러므로 이 금령이 여기에 반복되어 있지만, 이미 앞에서도 말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지지해 주고 있다. "내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12절), 또다시 "내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14절)고 하셨다. 이 율법은 강조되어 있다. 우리는 얼핏 보기보다는 이 율법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그것은 "이스라엘의 집" 뿐 아니라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10절)에게도 적용된다. 이것은 아마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피를 금하기 위해서 그 당시 그렇게 강력히 충언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행 15:29).
- 이 법에 딸린 형벌은 매우 가혹했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면, *"내가 그 피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끊으리라" (10절). 또 "그는 끊쳐지리라" (14절)*고 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들이 자초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진노의 얼굴을 보이시는 자는 멸망하거니와, 영원히 멸망하리라는 것을 새겨 두자. 이 세상 어느 피조물이 조물주와 대결할 수 있으리요?
👀 내가 내 얼굴을 그 사람에게 두리라(I will seet my face againt that person). —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겠다는 사실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것은 그의 백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다(신34:10; 시67: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물을 요구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예물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다(:3). 하지만 행악하는 자가 대하는 하나님의 얼굴은 두려운 심판자의 모습이다(시34:16; 겔20:35). 하나님께서 피를 먹는 자에게 심판자로 나타나시는 것은 모든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3:17). 즉 피를 먹는 것은 곧 살인과도 같은 죄악으로서 모든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행위였다.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는 4절 설명을 참조하라.
- 이 율법에는 한 이유가 주어져 있다. 곧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 때문*이다. 또 "그러므로 *"피로써 속죄하라고 지시되었으니, "육체의 생명은 피" 이기 때문*이다.
👀 본문이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임을 명확히 보여 준다.
- ‘생명’ (네페쉬 합바사르) : ‘이 땅 위에서 생명을 가지고 사는 동안 가지는 한 인격체의 전인적인 모습’.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바로 이 땅 위에서의 전인격체의 모습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피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 우리는 창9:4에서 그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산 고기를 식물로 주셨지만 피째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에는 반드시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그 생명의 피를 먹은 그에게서 찾을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셨다. 이는 피가 단순히 육신에 종속되어 있거나 육신과의 연관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생물학적 요소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 피가 짐승 혹은 인격체 자체임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피를 먹는 자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것은 피를 먹는 것이 곧 그 피의 대상을 죽이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인이 신 하나님까지도 경멸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은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실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피를 주신 목적이 결코 먹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주셨기 때문.
- 속하다:
위를 덮어 주다’ 또는 ‘
을 대신하여 속죄하다’란 뜻으로, 사람의 죄를 덮어 주거나 대속하여 준다는 의미.
- 속죄의 대상: ‘너희의 생명(나프쇼테켐)’. 생명은 전인격체를 상징하는 말. ‘피’ 또한 그 피를 담고 있는 피조물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피를 그 피를 지닌 짐승 전체를 희생시킴으로 사람의 전인격체를 속죄하시고 새로운 창조물로 회복케 하신다는 의미이다.
-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때에 피를 홀리셨다는 사실도 자신의 전 생애와 자신의 전인격을 다 바쳐 드려서 우리의 전인격체적 구원을 이루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전인격체의 그리스도의 고귀한 구속을 드러내는 증거가 돼 어야 한다(롬 8:29,30 ; 12:1).
- ‘이 피를 주어’ : 피의 예식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 자신. 이는 외적인 속죄 예식은 제사장이 주관하지만 진정한 속죄의 능력은 피를 주 관하시는 분, 곧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많은 예식을 행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견디지 못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사 1:13),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속죄를 행하시는 분이신지를 망각하고 동물의 피를 끊임없이 홀려서 오히려 그 동물의 생명의 피를 흘리는 헛된 도살을 행해 왔기 때문이다.
- 단에 뿌려: ‘단’을 언급하는 것은 - 피가 단이란 장소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동물의 피 자체가 속죄의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단 위에 드려진 피만이 속죄를 행할 효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 하나님이 명령하신 식 양대로 지어진 단은 짐승의 피를 보시고 그 짐승을 드린 예배자의 죄를 속하시는 하나님께만 속죄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단에’라는 장소가 특별히 강조되는 것이다.
- 왜 속죄의 수단으로 피를 주셨는가?*
- 피 자체가 속죄의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피’와 ‘생명’의 상호 관계 속에서 속죄의 효력이 나온다.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피는 속죄와 무관하게 되는 것을 앞선 문장에서도 이미 살펴보았다.
- 하나님께서는 동물의 생명의 피로써 죄인의 죄를 사하신 것이기도 하고, 죄인을 취하는 것을 대신하여 짐승의 생명의 피를 흘려서 구속하신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피를 결코 자신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의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언제나 생명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피로 인해 생명을 넘치도록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만 할 것이다.
- 사람의 궁극적인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 영생하는 삶에 있다. 따라서 그의 백성이 ㅗ디기를 원하는 자는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시고자 속죄의 수단으로 주신 피를 궁극적인 생명을 위해서만 사용해야만 한다.
---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 주시고 그 피를 홀리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마 24:46 ; 요 3:16 ;19:34). 그리고 하나님께서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 그 피를 홀리시기로 작정하신 장소가 십 자가였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한 사실을 깨닫고(롬 5:10),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전인격체를 맡기며 살아가는 자 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죄인은 죽어 마땅하다. 그래서(죄인 대신) 희생 제물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피가 생명일 진대는, 일반적으로 짐승을 사람대신 죽이어 그 짐승의 피가 완전히 흘러나오도록 하며, 사람의 생명의 속전이요 대불금으로서 짐승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상징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든가 바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이는 죄 속함이 없느니라" (히 9:22).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피를 먹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1) 그것이 당시에는 매우 아름다운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그가 명하신 속죄의 방식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지속하시고자 하셨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제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하셨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계약의 피가 가시적인 대상이었으므로, 어떤 피든지 먹거나 일상전인 물질처럼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만들라고 명령하신 그러한 향유와 관유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2)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가 시효 상실당했다. 그러한 것은 그 율법 자체가 의식적이었으므로, 이제는 효력을 지니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미 오셨던 그리스도(우리는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의 피는 사람의 죄를 속하는 유일한 것이 되었고, 당시의 희생 제물의 피는 이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불완전한 상징에 불과했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물러나게 된다. 짐승의 피는 이제 대속의 능력을 상실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대속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당시에 있었던, 피에 대한 금령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율법이 아직도 그러한 금령의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금령이 신체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면야, 피는 이제 우리의 몸을 위한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제는 우리의 피를 위한 대속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유용한 의의를 함축하고 있다.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한다. 피는 동물의 혼이 들어 있는 매개체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짐승의 피까지라도 존중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짐승의 피에 대해 잔인하거나 냉정히 굴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러한 피를 야만스럽게 또 경솔히 취급하는 짓을 금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피에 굶주린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당시에는 짐승의 피가 상징적으로 죄를 대속했으나, 지금은 그리스도의 피가 실제적이요, 효험 있게 죄를 대속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율법을 존중하여, 피를 "속된 것" 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그가 생명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히 10:29).
Ⅱ. 어떤 다른 계율이 이 율법에 부가되어 있어서, 이 율법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 "사냥하여 잡은" 짐승의 피는 (흙으로) 덮어두라고 했다(13절).
피를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피가 흘려졌을 때에는 정중히 묻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이러한 율법의 배후에는 어떤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 믿었다는 증거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매우 엄중한 계율로 여겼고, 피를 묻을 때에는 이러한 말을 하면서 묻으라고 한다. 즉 "그의 계율에 의하여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로 그 피를 덮으라 명하신 분을 찬양하리로다" 하는 말이다.
👀 **여기서 피를 흘리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동물이 상처 난 부위로 흘리는 소량의 피가 아니라 동물의 몸속에 들어 있는 모든 피. 이렇게 동물의 내부에 있는 모든 피를 완전히 쏟아 내야 하는 것은 혹시라도 남은 피를 이방의 풍습을 따라먹는 범죄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것을 흙으로 덮어야 했는데, 이는 본래 생명이 나왔던 곳으로 그것을 되돌려 주고(창1:24) 지나는 사람에 의해서 피가 상징하는 바 그 생명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 **14절, 13절의 명령에 대한 이유를 제시함**. — ***‘왜냐하면 육체를 가진 모든 피조물에 관하여서는 그 피가 그 피조물의 본질 자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1) 피를 먹는 것은 그 피를 지녔던 피조물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를 경멸하는 것이 되고, 동시에 짐승에 대해선 짐승 자체를 무자비하게 도살하는 것과 같았다. / 2) 사람에 대해선 살인 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같은 것. 야생 동물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피의 규정이 확대되어 있는 것은 모든 생명의 세계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리시는 것이다(시50:12).
- 그들에게 "스스로 죽은 것" 이나 "찢겨 죽은" 짐승은 먹지 말라고 했다(15절).
그런 짐승에서는 피가 전혀 나지 않으며, 적어도 정상적으로는 피가 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자기들의 음식에 주의 깊은 신경을 쓰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육적인 육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호기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조심하고 삼가는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자기들 욕심대로 마구 먹도록 하시지 않으시고,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부지런히 분별하여,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는지 연구해 보도록 하신 것이다.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는" 자들은 죄를 짓는 것이다(삼상 14:32, 33). 만일 모르고, 또는 부주의하여 정당하게 죽여지지 아니한 짐승의 고기를 먹은 사람은, "자기 몸과 옷을 씻어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그는 "죄를 당한다" (15, 16절). 그 더러움은 의식법 상의 부정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정결케 하는 것도 의식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지정된 정결 처방을 경솔히 여기거나 거기에 복종하려 하지 않을 때는, 그는 그 불복종 때문에 도덕적 죄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구제(치료)하는 율법의 성질을 깨달으라. 거기에 복종한 자는 그 율법의 혜택을 입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은, 그가 지은 의식법상의 죄책이 그대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총으로써 위안을 베푸시려는 처방을 모욕한 죄를 가중하게 되어, 그 구제책에 거스르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 레 11장에 따르면, 어떻게 죽었든지 이미 죽은 동물의 고기를 먹은 자는 그 동물이 비록 정한 부류에 속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부정하여졌다. 하물며 부정한 것으로 분류 가 되어진' 동물은 부지중에 그 사체를 만지기만 해도 속죄제를 드릴 정도로 멀리해야 했다 (5:2, 6). 부정해지는 이유에 대해서 카일(Keil )은 정해진 방법으로 쏟아 버리지 않은 동물의 피 가 그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피를 먹는 자는 예외 없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받아야 했던 반면 본절에는 옷을 빨고 몸을 씻는 규정만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에 시체 안에 남은 피를 먹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죽은 시체를 먹음으로 인해서 부정해졌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11:39.40). 즉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은 자가 온전한 방법으로 피를 제거했을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그렇지 않다면 피를 먹은 자와 동일한 형벌에 처해져야만 했다
👀 **15절, 본토인이나 타국인이나 물론하고, :** 신14:21의 규정과 본절의 규정이 상충되는가? 이러한 차이는 신명기의 규례가 가나안 땅에 거할 백성에게 주어진 것과 달리 레위기는 현재 애굽을 나와 광야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규례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본절과 신14:21의 차이는, 출애굽을 같이한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이방인을 다루는 것과 가나안의 문화 속에서 접할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을 다루는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방인을 우습게 여기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기들도 애굽에서 종 되었던 노예였음을 기억하고 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인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으므로 절대 죽은 것을 먹 어서는 안되었다. / 16절: 만일 죄를 지으면 그 책임의 대가는 반드시 죄인 자신이 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