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역대하 16, 요한계시록 5, 스가랴 1, 요한복음 4
묵상구절
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2: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2:3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2: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2: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2: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됨(사무엘하 2:1-7)
👉 앞선 제1장은 B.C. 1050년경에 왕이 되어 40여 년 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울 왕이 B.C. 1010년경 길보아산 전투에서 전사하였음과 이에 대하여 다윗이 진정으로 애도하였음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본장은 다윗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헤브론으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여기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 사울 왕가의 전통을 이은 이스보셋의 정부와 갈등을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도한다.
그 가운데서 먼저 1-7절은 다윗의 유다 왕 즉위와 사울을 장사한 길르앗 야베스 거민을 향하여 다윗이 치하한 내용을 다룬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은 자기가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될 것과 자신의 진로를 명확하게 알았지만 그는 그 즉시 전령을 전국에 보내서 백성들을 집결시켜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지 않고 서서히 진행시켰다. 확실한 것을 믿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린다. 다윗이 시글락에 머무는 동안 여러 지파에서 그를 돕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대상 12:1-22). 다윗은 그 세력으로 사울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겸손으로 통치하는 사람은 폭력으로 임하지 않는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다윗이 추구한 길을 하나님께서 이 위기 속에서 열어 주셨다(1절).
다윗은 이 행운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하나님의 뜻으로나 정당한 방법을 사용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은 매우 늦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실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받았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 면류관은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택하고 지도하고 인도하시는 분의 뜻을 따르면 면류관을 얻게 된다.
1.다윗은 하나님의 교훈을 따랐고 그의 길에서 하나님을 인정했다.
다윗은 아비아달이 그에게 가지고 온 흉패(우림과 둠밈)로 하나님께 문의했다. 우리는 절망에 처했을 때만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웃음을 던져 주고 일이 순조롭게 될 때에도 하나님께 문의해야 한다. 다윗은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하고 하나님께 문의했다.
👉본서 저자는 사울의 죽음으로 한 시대가 끝난 이 시점에 다윗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이 여호와께 묻는 신앙적인 행동이었다.
시글락은 폐허의 땅이 되었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가 있기까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다윗은 "내가 이곳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하고 하나님께 제한을 두지 않고 문의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기만 하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어느 도성에라도 가겠다는 뜻이다.
이같이 신중을 기하는 것은 유다의 어느 도성에서도 많은 추종자를 만날 수 있고 겸손을 나타내는 뜻이다. 다윗은 이 시점에서 자기의 족속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움직임에도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것을 깨닫는다면 기쁘고 복된 일이다. 우리도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게 할 수 있다.
👉 사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매사를 여호와께 묻기는커녕 오히려 자기의 욕심을 따라 여호와의 명령을 고의적으로 어김으로써 폐위를 선언받고 마침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역대기 기자도 사울의 죽음을 우연한 것으로 보지 않고 사울의 범죄에 대한 여호와의 징계의 결과로 보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여호와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대상 10:13.14). 이러한 측면에서 다윗이 여호와께 묻고 있는 행위는 여호와께 대한 사울의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즉 이는 현재의 상황에서 여호와께 의지하는 다윗의 신앙적인 모습을 드러낼 뿐 아니라, 왕이 된 어후에도 그러한 기본적인 태도틀 유지할 것을 암시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심중에’ 있는 것을 물어 보았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다윗이 자신의 미래를 ‘여호와 안에서’ 펼쳐나갈 것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본문에는 구체적인 언급어 없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제비를 뽑거나(삼상 14:37-42; 23:9-11; 30:7,8) 선지자에게 물어 보았을 것이다(7:2,3).
그렇다면 다윗이 이처럼 여호와의 뜻을 물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언가?
그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땅에 사울의 잔존 세력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다윗이 유다 땅으로 움직이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 동안 다윗을 신뢰하고 있던 블레셋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윗의 행보를 순순히 허락할리가 만무했기 때문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이 여호와께 물은 것은 그저 일상적인 절차였다기보다 매우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했던 실례 중에 하나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이 물은 내용은?
다윗은 이미 유다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이를 강행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즉 다윗은 이제 자신이 블레셋 땅을 떠나 유다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기업으로 인도하실는지 여호와의 뜻을 물었고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 때가 되었음을 ‘올라가라'는 답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다. 한편 다윗은 ‘유다의 한 성'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매우 구체적인 지역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곳에서외 정착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길을 지시하셨고 제사장의 도성이고, 다윗에게 피난의 도성이 되며 하나님 자신이 다윗에게 작은 피난처가 될 헤브론으로 가라고 하셨다.
조상들과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헤브론은 다윗에게 소망을 준 하나님의 옛 약속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보내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베들레헴은 유다 성중의 작은 곳이기 때문이다(마 2:6). 그러나 그 당시 동족의 고향이고 무시 못할 헤브론으로 보내셨다.
👉유다 성읍으로 올라가라는 응답을 받은 다윗은 다시 한번 구체적인 성읍을 여호와께 물어 ‘헤브론’ 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다. 다윗의 이러한 구체적 질문은 그가 유다 땅으로 잠시 이동하려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수하에 있는 600명 가량의 군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주해서 정착할 수 있는 안정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지시받은 땅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30km 지점, 해발 약 900m에 위처한 성읍으로서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헤브론'의 원래 이름은 ‘기럇 아르바' 로서 겹의 성읍'이란 뜻이다.
이와 같이 *헤브론' 은 지형 적으로도 높은 곳에 위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원래 이롭이 뜻하는 바와 같이 그 성읍 자체도 견고하여 왕도(또||5)로서도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과거 아브라함(창13:18; 창 23:2-20)과 이삭과 야곱(창 35:27)이 머문 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결국 다윗은 이 지역에서 유다 사람들로부터 다시 기름부음을 받고 유다외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4절).
그리고 헤브론은 이스라엘이 다윗의 왕국과 사울의 왕국으로 분리되었던 상황에서 약 7년 간 다윗 왕국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감당한다(5:5).
본문은 여호와를 철저하게 의지하는 다윗의 신앙적인 모습과 당신을 의뢰하는 자에게 갈 길을 밝히 보이시고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Ⅱ. 다윗은 가족과 그의 추종자들도 헤브론으로 데리고 갔다.
- 다윗은 시련 속에서 함께 있었고 그가 통치할 왕국에서도 함께 있게 될 두 아내를 데리고 갔다. 그의 자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언급도 없는데 그의 첫 아기는 헤브론에서 낳았다(3:2).
👉 두 아내의 이름과 출신 정보가 함께 언급되는 특별한 의미
-문맥상 다윗의 두 아내의 출신 지역들이 유다 땅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서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하나님께서 뿌리신 것' 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아히노암의 출신지 ‘이스르엘’은 유다의 구릉 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갈멜과 웃다와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수 15:55.56). 또한 ‘정원의 땅'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비가일의 출신지 ‘갈멜’ 역시 헤브론의 남동쪽 유다의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다윗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들도 유다 출신인 것을 밝히면서 그들이 유다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들의 지역적인 연고로 인하여 헤브론 입성이 한결 수월할 것임을 암시한다. 다윗과 그의 일행들이 헤브론 사람들과 별다른 충돌 없이 입성하게 되었고 오히려 유다 사람들어 자발적으로 다윗에게 와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다는 언급은 이러한 사실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윗의 갈 길을 무작정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유리한 조건도 이용하셔서서 섭리하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2.다윗은 그의 추종자들도 데리고 갔다(3절).
이들은 다윗이 방랑할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므로 새로운 정착지에도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참으면 함께 왕노릇할 것" 이다(딤후 2:12).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선한 군사들에게 다윗이 자기 추종자들에게 한 것 이상의 대우를 하신다. 다윗은 추종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했다. 그들은 헤브론과 헤브론에 인접한 각 성에 거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든 시험에 함께 한 자들에게는 나라를 맡기고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실 것이다(눅 22:29, 30).
👉 그들은 헤브록 각 성에 거하게 됨
다윗과 동고동락하여 온 6백여 명의 추종자들은(삼상27:2) 블레셋 땅 시글락을 떠나 이제 고국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 또한 다윗과 그에 속한 사람들이 헤브론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헤브론을 중앙 도시로 하여 그 근처에 있는 지방 구역에까지 퍼져 거주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본문은 사울의 시기로 인하여 광야로 또 이방 땅 블레셋으로 외로운 도피 생활을 떠났던 다윗이 이제 그 도피 생활을 마감하고 많은 추종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입성해 정착하게 된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Ⅲ. 다윗은 유다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다" (4절).
👉유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다윗에게 기름부어 유다의 왕으로 삼는 감격적 사건이 이어진다. 유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찾아온 것은 — ‘와우 계속법’으로 — 다윗과 그 수하 사람들이 헤브론과 주위의 성에 정착하자마자 곧바로 찾아왔음을 나타낸다. 이는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기다리고 있다가 다윗이 헤브론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그를 방문했다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유다 족속은 다른 족속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족속이다. 사울 시대에는 주로 다른 족속과 구별되었고(삼상 15:4), 다른 족속과 구별된 행동을 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 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유다 족속만 위한 것이었다. 다른 족속들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지배하기를 바랐다.
👉과거 다윗의 형들이 사울의 군사로 소집되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삼상 17:12-18), 다윗이 정착한 유다는 당시 사울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유다의 대표들이 다윗을 유다의 공식적인 왕으로 세우고자 방문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울 왕과 요나단어 죽은 이후에(삼상 31장) 유다에 대한 사울 왕가의 지배권이 상실되었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유다에 대한 그 지배권이 이제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자연스럽게 이양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윗이 점차적으로 변하는 것을 주목하자. 처음에는 "계승" 의 뜻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한 족속의 점유로, 마지막에는 "모든 족속" 을 위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 다윗과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의 차이
원문은 ‘거기서(솸)’를 강조 → 여기서 ‘거기’는 ‘헤브론’을 가리킴. 저자가 이와 같이 헤브론을 강조하는 이유는 ⇒ 사울이 이스라엘의 공식적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길갈’(삼상11:14,15)과 대조하기 위함이다.
사울: 길갈
길갈은 사울이 암몬 족속을 무찌르고 백성들에게 왕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추대된 역사적 장소.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점의 전환 : 길갈→헤브론, 북부 이스라엘→남부 유다, 사울→다윗.
다윗: 헤브론
다윗이 스스로 선택하여 정착한 장소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권적으로 지명하신 장소였다. 원문의 단어 사용은 다윗의 왕권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인간적 관단이나 방법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가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주의 나라와 "다윗의 자손" 되신 예수님도 다윗과 같이 독특한 신분으로 세우심을 받았다. 주님은 "만유의 주" 가 되셨다. 그러나 "우리는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음을 깨닫지 못한다" (히 2:8). 다윗이 처음에 유다 족속만을 다스린 것은 얼마 가지 않아서 축소된 것이라고 하나님의 섭리로 암시되었다. 이것이 다윗의 손자 대에 가서 열 지파의 반항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암시는 경건한 유다의 왕 다윗으로 하여금 처음에 유다 족속만 통치하는 데 큰 격려가 되었다.
Ⅳ.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울에게 베푼 친절에 대해서 감사를 표한다.
다윗은 자기의 전임자 사울을 존경할 수 있는 길을 계속 모색하고 자신은 왕관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사울에게 어떠한 야망이나 적개심을 품지 않았고 다만 하나님께서 왕으로 불러 주셨음을 나타내려고 한다. 다윗이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을 장사지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은 사실과 다르다.
👉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을 메장한 사건에 관해서 유다 사람들이 갑자기 다윗에게 고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사울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떠볼 생각에서였으며,
둘째는 사울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부각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는 자기들이 사울과 가져왔던 친분 관계를 다윗 앞에서 희석시켜 보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세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도 목숨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다는 것을 다윗에게 간접적으로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한마디로 유다 사람들의 이러한 보고는 다윗이 사울과 적대 관계에 있다고 전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유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이전부터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해서 취해 왔던 “존중의 태도”를 시종 일관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즉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취했던 행동을 지극히 당연한 행동으로 간주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이를 위협적인 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모든 기름부음 받은 자에 대해 행하여야 할 충성의 모범으로 삼아 그들에게 보상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7절을 보던 이는 다윗이 그들의 이와 같은 층성심을 자기에게로 돌릴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즉 다윗은 자기가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 위에 기름부음 받은 왕임을 그들에게 주지시킨 것이다.
1.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행한 일을 칭찬한다(5절).
우리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던지 그 사람이 죽었을 때 그가 남기고 간 것(유해, 명성, 유족)에 대해서 경의를 표해야 한다.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너희의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었으니 잘하였도다" 라고 말한다.
2.다윗은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보답하시기를 룻기 1장 8절과 같이 기도한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선대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와 명성과 유족에 대한 경외심은 보상을 잃지 않을 자선 행위이다. 이에 대해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고 말했다(6절). 하나님은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진리로 선대하신다.
3.다윗은 자신이 그에 대해서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하고 보상할 것을 약속한다(6절).
다윗은 자신이 표시할 감사를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바라지 않는다. 호의를 베풀고 그 실증으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일 때에는 값싼 감사가 될 수밖에 없다.
👉 여기에는 ‘내가’ 보상하겠다는 교만한 태도가 아니라, 여호와가 모든 것을 갚아주실 것이지만 ‘나도׳ 그러한 보상 행위에 동참하겠다는 겸손함이 드러난다. 또한 다윗이 앞에서 하나님의 보상을 언급한 후에 본문에서 자신을 앞세워 ‘나도’ 라고 말한 것은 사울이 행해야 할 보상의 책임이 이제는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자신이 사울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다윗은 사울에 대한 선대와 여호와의 보상, 여호와의 보상과 다윗 자신의 보상을 연결시키면서, 결국 사울의 왕권이 다윗 자신에게 위임되었음을 은연중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선한 일’
이는 언약의 동반자적 관계를 암시한다.
다윗이 선한 일을 그들과 함께 행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단지 그들에게 물질적 보상만을 내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 안에서 말씀하신 언약 백성의 모든 축복을 그들과 함께 어루어 나가겠다는 확장적 의미의 보상을 드러내고 있다. 즉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언약 백성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확약한 것이다.
4.다윗은 이 기회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한다(7절).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에게 최종적인 경의를 표시하였으니 그들이 자기와 함께 있기를 바라면서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저희의 왕을 삼았으니 그들과 일치해서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고귀한 사람이 죽었을지라도 죽은 사람에게 도취되어 하나님께서 일으켜서 살아남은 사람을 통해서 임할 축복을 소홀히 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된다.
👉 4절 하반절 이하는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어서 처음으로 행했던 치적을 짧은 일화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다윗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만을 다루고 있지만, 문맥상 이 부분은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다윗의 메시지로 이헤될 수 있다.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 동편에 거주했던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이다.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서 이들을 선대했다는 것은 비록 자신은 유다의 왕이지만 앞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대해서 선정을 베풀 것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한편 이러한 다윗의 정치적 행보 속에는 여전히 여호와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그의 신본주의적 태도가 스며 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사울에게 동조했던 백성들에게 정치적 보복을 감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해와 자비를 베품으로써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따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유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와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듯이 전 이스라엘이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기를 기다리는 다윗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