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역대하 27, 28, 요한계시록 14, 스가랴 10, 요한복음 13
묵상구절
5: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5: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5: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5: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5: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5: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대상11:4-9
11:4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땅의 주민들이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11:5 여부스 원주민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11:6 다윗이 이르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
11:7 다윗이 그 산성에 살았으므로 무리가 다윗 성이라 불렀으며
11:8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성의 나머지는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11: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대상14:1-2
14:1 <예루살렘에서 다윗이 활동하다(삼하 5:11-16)>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신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 그의 궁전을 건축하게 하였더라
14: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가 높이 들림을 받았음을 앎이었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다윗성 시온(사무엘 하 5:6-10)
👉 앞선 1-5절은 온 백성들의 추대로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였음과 그의 통치 기간을 헤브론에서의 통치와 예루살렘에서의 통치 둘로 나누어 제시함으로써 이제 곧 헤브론에서의 통치를 끝내고 예루살렘에서의 통치가 시작될 것을 암시하였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6절 이하에서는 예루살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새로운 통치의 중심지로 부각되는지를 밝힌다.
즉 본절에서 16절까지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과정과 왕도를 옮기는 사건,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얻은 다윗의 자녀의 명단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사건들은 모두 다윗이 강성해졌음을 나타내는 외적 증거들이다.
저자는 본단락의 중심에서(10절) 그 강성해짐의 근본 원인을 여호와가 다윗과 함께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힘으로써 이러한 내용들이 단순한 다윗의 일대기나 이스라엘 왕조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당신의 통치를 구현시켜 나가는 하나님 중심의 역사임을 부각시킨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사건이 17절 이하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전쟁 이후의 일이지만 이처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건(3절) 다음에 곧바로 이어진 사건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은 블레셋과의 전쟁이 블레셋의 침공에 대한 수동적 대처였던 반면 예루살렘 정복과 천도는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능동적으로 행한 첫번째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정 왕국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고 그가 갔다’ 로 직역되는 단어는 10절에서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술에는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의 행보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 다윗의 강성함이라는 인생 행보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즉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된 것이 다윗과 함께하시는 여호와의 도우심의 결과였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와이옐레크’ 와우 계속법, “가서”
1.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새로운 통치의 중심지 예루살렘 정복 기사를 기록한 6-8절은 앞의 내용과 이어지는 ‘와이옐레크’ ‘와우 계속법’
-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사건이 17절 이하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전쟁 이후의 일이지만 이처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건(3절) 다음에 곧바로 이어진 사건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은
→ 블레셋과의 전쟁이 블레셋의 침공에 대한 수동적 대처였던 반면 예루살렘 정복과 천도는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능동적으로 행한 첫번째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정 왕국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 10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이러한 기술에는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의 행보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 다윗의 강성함이라는 인생 행보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즉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된 것이 다윗과 함께하시는 여호와의 도우심의 결과였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던 곳, 살렘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면(시 76:2 를 보면 그런 것 같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유명했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시대에, 예루살렘을 가나안 남부의 중심 도시로 만들었다(수 10:1-3). 그곳은 베냐민 지파의 몫이었다(수 18:28). 그러나 유다의 땅과 밀접하게 붙어 있었다(수 15:8). 유다의 자손들이 그 도성을 차지했었다(삿 1:21). 그러나 베냐민의 자손들은 여부스 사람들이 자기들과 함께 사는 것을 허용했다(삿 1:21). 그래서 여부스 사람들이 점점 강성해지자, 그곳을 "여부스 사람들의 성읍" 이라 했다(삿 19:11).
이제 다윗은 자기가 전(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직후에 첫 원정으로 여부스 사람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원래는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울가에 충성하던 베냐민 지파가 자기에게 복종하기까지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일 것이다(대상 12:29).
💡 다윗이 여부스에 많은 무리의 군대를 이끌고 가지 않고 ‘정예 부대’를 데리고 간 것은
그들을 멸절하려는 목적보다는 새롭게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있으나 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했던 예루살렘의 소유권을 요구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예루살렘은 일반적으로 도시 국가로 묘사가 되는데 다윗은 자기의 정에 부대를 데리고 가서 그 도시의 소유권을 취하려 한 것이다. 24:18-25에 보면 다윗이 여부스 사람의 타작 마당을 값을 주고 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본절에서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을 멸절하러 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도시의 통치자들과 협상하기 위해 간 것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여부스 족속은 누구인가?
-본서는 ‘여부스 사람’을 ‘예루살렘의 거민’으로 밝히고 있다.
반면 본문과 병행 구절인 대상11:4 에서는 ‘예루살렘’을 아예 ‘여부스’로 규정하고 있다.
-본래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 주위에 있는 산악 지대에 거주했던 자들로서(민 13:29)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수아에게 일시적으로 패배했다가(수 10:23)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자신들에게 할당된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한 틈을 타서 예루살렘에 잔존하여 그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삿 1:8,21).
본문에서 이들을 ‘예루살렘의 거민’ 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예루살렘이 이들의 소유인 동시에 거주지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이들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로서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이 가나안 중심부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였다는 점에서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일은 그 통치 기반을 든든히 세우기 위한 필수적인 정치 과제였다.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Ⅰ. 여부스 족속은 다윗과 그의 군대를 무시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소경과 절뚝발이들을 물리치기 전에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6절 개역과 다름-역주). 그들은 다윗에게 이렇게 분노를 자극하는 전갈을 보냈다. 그들은 나중에 다른 기회에 한 말처럼, "어떤 적도 예루살렘의 말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 고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애 4:12).
💡다윗이 소경들이나 절뚝발이 등과 같은 약한 자라도 물리칠 수 없을 것이라는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떠한 견해를 취하든 본문이 상대방을 조롱하는 말임은 분명하다.
그들은 적어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자기들의 신의 보호에 대한 신념.
그러나 다윗은 그 신들을 경멸하여 "소경과 절뚝발이" 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발이 있으나 걷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도성의 수호신이다. 네가 이들을 물리치지 않고서는(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혹자들은, 그 신은 놋으로 만든 별 자리의 우상이며, 요새의 은밀한 곳에, 보호 구역에 안치해 두었을 것으로 본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을 "마우짐" 곧 "요새" (단 11:38)라고 불렀다. 그 자체가 요새에 의지해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이 우리의 강한 망대이니," 그의 팔이 튼튼하고, 그의 눈이 투시력을 가지고 있음이로다.
2.또는 자기들의 요새의 힘을 믿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천연적으로든, 인공적으로든 너무도 난공불락의 성으로 방비되어 있으므로, 비록 소경이나 절뚝발이들도 충분히 적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특별히 시온의 요새를 의지하고 있다. 아마 그들은 성벽 위에다가 소경과 절름발이들-병자든 처벌을 받은 죄인이든-을 세워두고 다윗과 그의 군대를 비웃게 하며, 그들이라야 다윗의 적수가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부상당한 자들만 남아 있었지만, 공격자들은 능히 격퇴하리라고 믿었다. 예레미야 37장 10절과 비교하라.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들은 흔히 자기들의 힘을 신뢰하며, 자기들의 몰락할 날이 다가왔을 때에도 아주 안심하고 있은 것이 보통이다.
💡고대 전쟁에서 전투에 앞서 말로써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이는 랍사게가 예루살렘 사람들을 앞에 놓고 조롱한 말과도 비교해 볼 수 었다(왕하 18:19-27). 본문의 상황에서 여부스 사람들의 다윗에 대한 조롱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예루살렘이 천혜의 요새라는 점에서 비롯된 교만으로 다윗이 데려온 사람들이 정예 부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외적인 숫자만을 보고 한 말일 수 있다.
Ⅱ. 다윗은 여부스족을 치는데 성공한다.
그들의 교만과 무례가 다윗을 놀라게 하기는커녕 원기를 돋워 주었다. 그래서 다윗은 총공격을 하면서 부하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누구든 여부스족을 칠 자는 하수로 내려가서 저 소경과 절뚝발이를 치라. 그들이 우리와 우리 하나님을 모독하려고 성벽 위에 세워져 있도다." 그들은 어떤 불경스런 말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다윗의 미움을 샀을 것이다. 8절의 말씀을 그렇게 읽을 수 있다. 현재와 같은 해석(흠정역)은 역대상 11장 6절에서 따온 것이다. 거기에 보면 단지 여부스족을 쳤다는 말만 나온다. 소경과 절뚝발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 8절, 본단락은 ‘여부스를 치는 모든 자는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이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에게로 올라가라׳ 란 의미가 된다.
본문에는 언급이 없으나 병행 구절인 대상 11:6을 보면 다윗은 이때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두목과 장관을 삼으리라׳ 고 약속하였으며 요압이 공격의 선두에 섬으로써 군대 장관이 되었다.
다윗이 어떻게 여부스 족속을 쉽게 정복했는가?
- ‘수구로 올라가서’
→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수 있는 전술은 수로를 차단하는 것. 물의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여부스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히 항복하게 만들었던 것.
- 1867년에 기혼 샘에서 예루살렘 성 안으로 통해 있느 수로가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 통로가 본문 당시 여부스 사람들의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그 당시의 것이라면 이 수로는 다윗의 정예 부대의 공격의 통로가 되어 충분히 예루살렘성의 아킬레스건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부스 사람은, 자기들의 신상이 자기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소경과 절뚝발이도 이 집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즉(그레고리 씨의 해석대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의 부적을 믿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그 신상들을 존경하지 않을 터였다. 다윗도 그 요새를 점령하고 나서 역시 그런 말을 했다.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이 신상들을 더 이상 그 자리에 둘 수가 없다고 했다.
💡 소경과 절뚝발이는 이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 : 여부스 사람들
-집 : 다윗의 왕궁으로 상징되는 예루살렘 전체
💡 7절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빼앗았으니(’라카드’) : ‘산성을 빼앗았다’는 것은 그 장소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쟁취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그토록 정복하기 어려운 요새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절에는 다윗이 그것을 어떻게 정복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다는 것과 너무나 간단하게 ‘와우 계속법'을 사용해서 사건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독자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이 산성을 취했던 전략은 8절에 암시되어 있으며, 9절에서도 다윗이 예루살렘성 보강 사업을 했다는 언급을 통해서 공격 당시 그 성이 취약한 상태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가 다윗의 전략과 승리의 관전이 되었던 정보를 담고 있는 8,9절의 내용을 먼저 언급하지 않고 바로 다윗이 그 성을 취한 것부터 언급한 이유는 → 6절에 나온 여부스 사람들의 조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본서 저자는 그 조롱에 대한 즉각적인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후에 저자는 독자가 혹시라도 가질지 모르는 의구심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8,9절에서 그 성을 빼앗을 수 있었던 전락과 요인을 암시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로잡다'라는 의미와 ‘취하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라카드' 동사를 와우 계속법과 더불어 사용한 것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여부스 사람들을 죽일 필요도 없이 쉽게 그 성을 정복하고 그 거민들을 사로잡았음을 암시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에게 소경과 절뚝발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조롱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들은 다윗 앞에서 자신들 모두가 소경과 절뚝발이처럼 무능력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 ‘예루살렘’ — ‘시온 산성’
-‘산성’ :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 ‘성채’
-‘시온’ : 예루살렘 남쪽 언덕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로 추정되는데, 다윗은 이 언덕을 지키고 있는 요새를 취하여 ‘다윗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적인 의미에서 예루살렘 전체를 뜻하므로 본문에서 다윗이 ‘시온’을 빼앗은 것은 예루살렘 전체를 회복한 것을 의미한다.
다윗이 이러한 예루살렘을 취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사실 예루살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땅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수치였다.
따라서 통일 왕국의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곳은 천연의 요새였을 뿐 아니라
-기혼 샘과 같은 수원지가 있어 물이 풍부하여 외적의 방비에도 좋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의 중앙에 위치하여 국가적 종교 행사를 거행하는 데도 적합하였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지니는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신정 왕국의 수도로 삼으려 하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다윗에 의하여 통일 왕국의 수도가 된 이후 남북 분열 왕국 시대에도 남유다의 수도였으며 신약 시대에 이르기까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종교적•정치적 중심지로 유지되었다.
Ⅲ. 다윗은 시온에 도읍을 정했다.
이제는 안전한 요새에 거하게 될 것이다. 한 때는 그에게 대항하고 위협적 존재이던 자들도 이제는 그의 안전에 기여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수행원들과 호위병들을 위해서 그 둘레에다 집을 지었다(9절).
그 집은 밀로(마을 회관이나 정부 청사 같은 곳)로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지었다. 그는 계속 진행했고, 그의 손이 닿은 모든 일은 잘 되어갔다.
명성을 떨치게 되고, 권세와 재산이 갈수록 더해갔고, 자기 백성들이 보기에는 점점 영예로왔고, 적군들의 눈에는 두려운 인물이 되어갔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 ‘그와 함께 계시니’
→ 원어에 이 표현에는 따로 동사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는 것이 특정 시제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는 사실이 항시적이었다는 것과 더불어 우리 시대에 있어서도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만물을 자기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뜻대로 이용하시며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그런 그분이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지도하시고 지키시고 번영케 해 주셨다. 만군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들은 인간들이나 마귀의 무리들이 대적해 올지라도 겁낼 것 없다.
크게 강성해진 자들은 그것이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 덕분임을 알아서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 만군의 여호와
-군대의 하나님, 전쟁의 하나님. →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대적들과 전쟁을 수행하시고 승리하시는 하나님.
-이미 다윗은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을 내세워 승리함으로써 그 이름의 능력을 체험한 바 있다(삼상17:45). 또한 본문은 3:1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저자는 ‘사울의 집안과 다윗의 집안에 전쟁이 오래되어 다윗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은 점점 약해졌다’ 라고 밝혔다.
이러한 진술을 본문과 연결해서 생각해 본다면, 예루살렘을 희복함으로 다윗이 점점 더 강성해진 것은 인본주의적인 왕 사울을 폐하시고 당신의 마옴에 맞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만군의 여호와’가 동행하신 결과였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는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여 이스라엘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게 한 원인이었으며,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는 결정적인 힘이었다.
이상과 같이 6-10절에는 다윗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장면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본단락과 병행 문단에 해당하는 대상 11:4-9을 비교할 때, 사무엘서는 반요압적 정서를 표면화시키고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왜나하던 역대기에는 ‘스루야의 아들인 요압이 여부스 사람들을 물리쳐 먼저 여부스 사람을 처는 자는 두목과 장관을 삼으리라’ 란 다윗 왕의 제시 조건을 만족시킴으로써 두목 즉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는 사실이 언급되지만, 본단락에서는 요압의 영웅적 행위가 생락되고 다윗의 행적만이 요약 기슬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을 통해서 신정 왕국을 확립하려는 여호와의 계획에 요압이라는 인본주의적 인물이 부정적인 역할을 한 까닭에 그를 기록에서 배제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회를 "시온" 이라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읍" 이라고 한다.
여부스족들, 그리스도의 적군을 먼저 정복하여 찾아내야 한다. 즉 절름발이와 소경을 쳐부셔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그리스도께서 노략물을 나누시고, 자기의 보좌를 거기에 정하시며, 성령에 의해서 그곳을 자기의 주재지로 삼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