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2월 29일 목요일 삼하8:1-18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다(대상 18:1-17)

Jeehyun 2022. 12. 29. 08:50

맥체인성경읽기

역대하 34, 요한계시록 20, 말라기 2, 요한복음 19

묵상구절

8: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8: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에게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들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8: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8: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8:5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8: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8: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8:8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8:9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8:10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8: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8: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8: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8: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8: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8: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8: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8: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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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0편

60:1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 인도자를 따라 수산에둣에 맞춘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60: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60: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60: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60: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60: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60: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60: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60: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60: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60: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60: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스페셜포인트

하나님께서 사울을 대신할 신정 왕국의 왕으로 예비하신 신본주의 왕 다윗의 성공, 곧 사울 왕의 전사 이후 다윗이 간음 및 살인죄를 범하기 전까지 그의 전이스라엘의 왕으로의 즉위과정과 연이어진 왕국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 종교, 법적 개혁 및 성공적인 정복 전쟁의 기사를 다루고 있는 본서 제1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제1-5장에서는 사울 사후부터 다윗이 전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고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하기까지의 역사와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어 제6-7장에서는 언약궤의 다윗성 안치와 다윗 언약 체결에 대하여 다룬다. 그리고 끝으로 제810־장에서는 다윗의 주요 정복 전쟁과 공의로운 통치에 대하여 다룬다.

이러한 맥락하의 제8-10장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8:1-14의 문단에서는 다윗의 정복 전쟁 요약과 속국들로부터 받은 조공 내역에 대하여 다룬다. 여기에 언급된 다윗이 정복한 국가는 블레셋(1절), 모압(2절), 소바(3.4.8절), 다데섹 아람(5-7절), 에돔(13,14절) 등 모두 5개국어다. 그리고 하맛으로부터는 조공을 받았다(9,10절). 또 여기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제10장과 12:26-31에 의하면 다윗은 암몬도 정복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 주변 국가 모두를 정복하였다고 볼 수 었다. 다윗이 이처럼 주변 모든 나라를 정복하기까지는 상당허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솔로몬을 낳기 전(B.C. 991년경)에 암몬을 정복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다윗의 정복 전쟁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때(B.C. 1003년)로부터 13년 정도 되었을 때에 완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즉위할 때(B.C. 970년)의 나이가 대략 20세 전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 정복 전쟁을 통해 그의 당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창15:18) 전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다윗의 정복 기사를 대하면서 주목할 것은 본서의 저자가 다윗이 정복 전쟁을 성공리에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와 관련하여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6,14절).

이것은 다윗에게 본래부터 탁월한 군사적 능력이 있어서 전쟁마다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다윗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정복한 국가들에게서 받은 조공과 노획물들을 하나님께 바쳤으며, 이것들은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데 재원이 되었다.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에 대하여 많은 시를 지어 노래하기도 하였는데, 시편 24,27,46편 등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8:15-19의 문단에서는 다윗의 행정 조직 정비에 대하여 다룬다. 여기에 보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과 의로써 공평 무사하게 다스린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다윗의 행정 관료의 임명이 공평 무사한 통치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 본장은 앞선 7장과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단순히 시간적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블레셋과의 전쟁이 기록된 본절은 블레셋 정복 기사가 기록된 5:17-25에 이어지는 내용이거나 아니면 다윗의 언약궤 운반과 안치가 기록된 6:1-23에 이어지는 내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가 이러한 다윗의 정복 전쟁 요약 기사를 7장의 다윗 언약 뒤에 기록한 것은

→ 다윗의 전반적 삶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다윗 왕국이 견고하게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제부터 전개될 내용이 앞선 7장의 내용과 그 주제에 있어서 긴밀하게 연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한편 본장에 나오는 다윗의 정복 사업은 가깝게는 앞장에 나오는 다윗 언약과 밀접하게 관계되지만 보다 멀게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이미 여러 번 주어진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다.

즉 가나안 땅은 당시로부터 천여 년 이전에 족장 아브라함(창 12:1; 13:7; 15:18-21; 17:8)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삭(창 26:3), 야곱(창 28:3)은 물론 애굽에 노예로 있었던 이스라엘 선조에게도 주어질 것이 약속되었었다(출 3:8).
그리고 이제 이로부터 장구한 세월이 흘렀으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기억하사 다윗을 통해 성취하고 계신 것이다.
  • 다윗의 정복기(1)(사무엘 하 8:1-8)

하나님은 다윗에게 도전하던 모든 적들에게서 다윗을 평안케 해주셨다. 그리고 그는 그 평안을 활용했다. 그러자 그에게 그들을 칠 위임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원수를 갚아야 했다. 아직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땅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이다.

Ⅰ. 다윗은 블레셋을 완전히 섬멸했다(1절).

다윗이 약하리라고 생각되었을 때, 그들은 다윗을 공격했었다(17절). 이제는 다윗이 자기의 강성함을 알게 되자. 그들을 쳐 그 땅의 주인이 된 것이다. 블레셋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다. 사울도 그들에게 꼼짝못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블레셋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냈다. 그것은 이미 삼손이 오래 전에 시작해 놓은 일이었다(사 13:5).

"메덱암마" 는 "가드" 였다(블레셋의 수도였다). 그리고 가드의 부족 도시였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암마 산 위에 상주하여 지키는 수비대가 있었다(삼하 2:24). 그리고 그것은 "메덱" 곧 이스라엘에 대한 "굴레" (문자적 의미이다)나 "고삐" 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빼앗아, 그들을 제어하는 굴레로 삼은 것이다. 이처럼 강한 자가 무장 해제되면, 그 가졌던 무기는 그를 치는 데 사용된다(눅 11:22).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당하듯이, 성도들이 흑암 권세에게 오랫동안 자주 고난을 받은 후에, 다윗의 아들이 저들을 발 아래 짓밟게 되면, 성도들을 정복자 이상으로 만드신다.

💡 원문으로 볼 때 본절은 다윗이 파죽지세로 블레셋을 공략하였음이 잘 드러난다.
원문의 동사들 ‘쳐서 — 빼앗으니라’ 등은

-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고 영토를 배앗는 일어 어떤 방해도 없이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뉘앙스를 준다.
- 또한 이 일을 행한 당사자가 바로 다윗 개인임을 부각시킨다. 실제 막강한 블레셋과의 전쟁이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가 일관되게 남성 단수 접미어를 사용한 것은 이 모든 일어 다윗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대업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관계됨을 나타낸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 언약을 맺기 이전부터 그 언약의 내용과 관계된 축복의 삶을 이미 다윗에게 허락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절 이하 내용은 앞선 제7장과 시간적으로 연결된다기보다는 내용적으로 연관된 기사임을 알 수 있다.

본문은 다윗이 블레셋의 수도인 가드 및 가드의 영향권 아래 있는 네 성읍, 즉 아나듯, 아스글론, 에그론, 가사 등을 빼앗아 블레셋 땅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확보한 것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이러한 승리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입성한 아래 그들을 가장 괴롭혔던 대적은 바로 블레셋이었다. 블레셋은 우수한 철제 무기로 무장하고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했다. 단 지파가 원래의 영토를 버리고 북쪽으로 이주한 것도 이와 같이 강력한 전력을 갖춘 블레셋의 위협 때문이었다(삿 18:11,27-29).
- 실로 사사 삼갈(삿 3:31), 입다(삿 10:7-9), 삼손(삿 13-16장) 등을 통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의하여 벌써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급기야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전사시키기까지 한(삼상 31:1-6) 블레셋이 드디어 다윗에 의하여 이스라엘에 종속된 위치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셔서 크게 들어 쓰신다는 증거이며, 더 나아가 사울로 인해 실패한 신정 왕정 체제가 다윗에 의하여 새로이 정착되어 가고 있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Ⅱ. 다윗은 모압을 쳐서, 이스라엘의 조공국이 되게 했다(2절).

그는 그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그 중 둘은 완전히 전멸시키고, 하나는 살려 두어, 이스라엘의 종이 되게 했다.

라이트푸트는 말한다. "다윗은 모압인들을 땅에 눕히고, 줄을 재어서, 죽일 자와 살려 둘 자를 구별했다." 그래서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고 했던 것이다(시 60:6). 유대인들에 의하면, 다윗이 그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다룬 데는 이유가 있다. 즉 자기가 유랑 중에 있을 때, 부모와 형제를 모압 왕에게 맡겼었는데, 그가 그들을 살해해 버렸기 때문이라 한다(삼상 22:3, 4).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모압인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항상 위험스런 적이었기 때문이다. 정책적인 일이었다. 그들을 버려두면, 계속 못된 일을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2/3는 죽어버려야 했지만, 줄로 한 자밖에 안 되는 자들은 살려 두라고 명령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의 길이를 충분히 늘이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의 자비의 줄을 멀리까지 뻗치게 하자. 사면 행위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리하여 발람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이스라엘에서 홀이 일어나 모압의 모퉁이들을 치리니," 죽음의 줄이 뻗친 곳에까지 라는 예언이다(민 29:17). 아합 왕이 죽을 때까지 모압인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다(왕하 3:4, 5). 그 후에는 반역해 버렸고, 다시는 속국이 되지 않았다.

 💡앞선 1절에서 다윗이 팔레스틴의 최대의 강적 블레셋을 쳐 항복을 받고 그들의 영토를 점령하였음을 기록한 데 이어 본절에서는 사해 남동편에 자리잡고 있었던 모압을 조공국으로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모압을 쳐 이때 사로잡은 포로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여 그들의 일부를 죽였다.

여기서 키를 재어서 누구는 죽이고 살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운 사람의 열에서 2/3 사람은 죽이고, 1/3 사람은 살려주었다는 의미. 아마 이때 죽은 사람들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저항했떤 무리들로 추정되며, 본문은 그들이 전체 포로의 3분의 2에 해당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때 이렇게 많은 모압 사람을 죽인 것은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남녀를 살려두지 않고 다 죽인 것을 기록한 삼상27:9.11과 비교할 때 본문은 오히려 정도가 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압 민족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들로서(창 19:30-38) 이스라엘과는 혈통적 유대를 지녔으므로 과거 출애굽시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지 말라고 명령하신 바 있다(신 2:8,9). 뿐만 아니라 모압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였던 룻과 관계되어 있으며(룻 4:21.22) 사울에게 쫓길 때 그의 부모를 머물러 있도록 도와주었던 민족 언 점을 생각할 때에(삼상 22:3.4), 모압인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인 것은 매우 잔인한 처사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토록 잔인하게 모압인들을 죽인 이유에 대해서 유대의 전승은
- 당시 모압 왕은 이전에 다윗을 우호적으로 대하였던 모압 왕과 다른 인물로서, 다윗을 배신하고 다윗의 부모를 살해하였고 또한 다수의 사람들이 다윗에 대하여 극렬하게 저항하였기 때문이라고 해설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윗은 모압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민24:17에 나오는 발람의 예언을 성취할 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Ⅲ. 다윗이 아람 혹은 수리아군을 쳤다.

시편 60편의 제목에 있는 대로 거기에는 두 왕국이 있었다. 즉 "아람 나하라임" -즉 "강변의 수리아" 이다. 그 수도는 다메섹이었다. 그리고 그 강으로 유명했다(왕하 5:12).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람 소바" 이다. 이 왕국은 앞의 왕국에 병합되어 있었으나. 유브라데까지 뻗쳐 있었다. 이들이 두 남방 왕국이다.

  1. 다윗은 소바의 아람군부터 쳤다(3, 4절).

다윗이 유브라데강까지 자기의 국호를 확장하려 했을 때(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거기까지 허락하셨다. 창 15:18), 소바 왕은 다윗에게 반대를 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속한 나라를 자기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군대를 패주시켰다. 병차와 마병을 노획했다. 여기서는 노획한 마병이 700(우리 성경에는 "천 칠백" 이다-역주)이라 했으나, 역대 상 18장 4절에는7천이라 했다. 만일 병마를 10필 1중대로 편성했다면, 거기서의 숫자가 맞을 것이다. 즉 대장과 중대는 700이나, 마병은 7천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말의 힘 줄을 끊어서, 최소한 전쟁 때는 못써먹게 해버렸다. 하나님이 "말의 숫자를 많이 하지 말라" 고 하셨기 때문이다(신 17:16). 다윗은 자기가 쓸 병차 100개만 남기고 다른 말의 힘 줄은 끊어버렸다. 그는 자기의 병차나 병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시 20:7). 그리고 자기의 경험으로부터 이렇게 쓰고 있다. "말은 안전을 위해서는 헛 것이라" (시 33:16, 17).

 💡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 고대 세계에서는 군사 원정을 통해 자기의 영토로 삼은 지역의 경계선을 표시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레하쉬브 야도’ 는 ‘자기의 기념비를 회복하기 위하여’ 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과거 하닷에셀이 사울에 의하여 땅을 상실함으로 말미암아(삼상 14:47) 그곳에 있었던 자신의 기념비가 무너졌는데 이제 다시 자기 영역을 되찾아 그 기념비를 회복하려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의 회복을 위해 향한 곳은 유브라데강이었는데 이 지역은 과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창15:18) 광야 이스라엘 택성들에게(신 1:7; 11:24)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땅의 북쪽 경계선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하닷에셀의 그런 움직임을 결코 좌시할 수 없었으며, 이때를 기회로 삼아 유브라데강 지역을 차지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소바
- 시리아 지역 곧 아람의 여러 소국 가운데 하나. 이 나라는 일찍이 나라는 일찍이 사울이 싸워 승리했던 나라로서 이스라엘의 속국이었으나(삼상 14:47) 본절의 하닷에셀이 등장하면서 다윗에게 반기를 든 듯하다. 그 나라의 왕으로 소개된 ‘하닷에셀׳ 은 앗수르의 연대기에도 등장한다. 이는 아람 왕조의 왕의 칭호를 히브리어의 형태로 나타낸 것으로서 ‘하닷은 도움이다' 란 뜻을 가진다. ‘하닷' 은 폭풍의 신의 이름이며, 우리에게는 ‘바알'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로 보아 그는 바알의 숭배자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 다윗은 그 많은 말들 가운데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다른 말의 발의 힘줄을 다 끊었다. 전투용 말의 힘줄을 끊어 무력화시키는 것은 그 당시 전쟁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관습.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적군의 말의 뒷발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었다(수 11:6.9).
- 다윗이 말의 일부를 보존한 것은 전투용이 아니라 의식용으로 쓰기 위해서. (삼하15:!, 왕상1:5)

2. 소바 왕과 연합하고 있던 다메섹의 아람군이 소바 왕을 구하러 왔다.

이 전쟁에서 2만 2천 명이 죽었다(5절). 때문에 다윗이 그 나라의 주인이 되기는 쉬웠을 것이다(6절). 하나님의 적들은 서로 동맹하고 안심하여 있지만, 결국에는 저들의 확신이 잘못되었음이 판명되고 만다. "너희는 모이라. 그리하면 낱낱이 파괴하리라" (사 8:9).

💡앞선 2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다윗은 모압을 징벌한 후 그들을 종으로 삼고 조공을 받았다. 본문의 다메섹 아람 역시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다윗에게 조공을 바쳤으나 다윗은 모압과 달러 다메섹 아람에는 수비대를 설처하였다. 다메섹 아람이 종속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비대가 필요했던 것은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에는 블레셋의 수비대가 있었고(삼상13:3,4)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큰 위협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에 합한 왕 다윗을 사랑하셔서 오히려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른 나라에 수비대를 둘 정도로 강력한 나라가 되게끔 하셨다.

Ⅳ. 이 모든 전쟁을 통해서도

1. 다윗은 보호를 받았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아마 다윗은 개인적인 일로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한 일로나, 늘 선봉에 섰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의 날에도 그의 머리를 감추어 주셨고, 후일 다윗은 이것을 일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 본문은 ‘다윗과 동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하시는 역사로 인하여 어떤 곳에서도 사악함이 다윗과 함께할 수 없었다'는 뉘앙스를 가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당시 다윗과 이웃 나라와의 싸움은 진리와 악의 싸움을 세상 역사 가운데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사역형 동사와 더불어 주어를 “여호와” 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명확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2. 그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하닷에셀의 신하들이 가졌던 금방패를 빼앗았다(7절). 그리고 아람의 여러 도시에서 많은 놋을 가져왔다(8절).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아브라함의 자손의 옛 권한에 의해서는, 다윗에게는 그럴 만한 권한이 있었다.

💡 다윗은 이 전쟁에서 많은 전리품을 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금과 놋만을 밝힌 것은 이것들이 당시 대표적인 전리품이었을 뿐 아니라 후에 솔로몬 성전 건축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즉 다윗은 세속적 목적으로 쓰이던 것을 취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였던 것이다(왕상 6장; 7:13-51; 대상 18:8). 이는 전리품을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사용하려 했던 사울의 태도와 큰 차이 를 보인다(삼상 15:9).
  • 다윗의 정복기(2)(사무엘 하 8:9-14)

1. 하맛왕이 다윗을 알현했다.

아마 이때 하맛왕은 소바 왕과 교전 중에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자기의 원수를 다윗이 쳐부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아들을 다윗에게 사신으로 보내어(9, 10절), 그의 승리를 축하하게 했고, 자기가 두려워하고 있던 나라를 쳐부수어 준 은공에 대한 감사의 답례를 하게 했으며, 우방이 되자고 청하도록 했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의 안전과 강성을 도모했다. 그리고 다윗도 그 작은 나라를 보호해 준다하여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옛 로마군들도 이 비슷한 정책을 썼던 것이다. 이리하여 정복한 나라들에게서 가져온 재물과 조공과 감사의 예물에 의해서 그는 부유하게 되었다. "금 그릇, 은 그릇" 을 예물로 가져왔다. 자의로 바친 것이 강제 징수한 것보다 더 나았다.

 💡 ‘요람’ → ‘여호뢈’의 약자. → ‘여호와는 높임을 받다’란 뜻.

우상 숭배자신 아람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여 아들의 이름을 지었을 리가 없다. 이 이름은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고 하맛이 아들의 이름을 바꾸었거나 아들 자신이 자기의 이름을 ‘요람’으로 바꾼 것으로 보이며, 저자는 바꾸니 이름으로 하맛의 아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왕의 아들이 사신으로 파견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방의 왕의 아들의 개명을 통해서도 당시 다윗 왕의 높아진 위상과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널리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

2. 다윗은 자기에게 들어온 약탈물과 예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봉헌했다(11, 12절). 이것이 다윗의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다윗이 시저나 알렉산더 대왕과의 다른 점은, 그는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그는 그들보다 뛰어나다. 그가 차지한 모든 물건은 이미 작성된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봉헌된 것이었다. 적시에 이방인들 의 자선이 있었고, 만반을 위해 기도할 하나님의 집의 건축을 돕는 일이 생기고, 그 성전이 이방 민족의 전리품과 예물로 지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좋은 전조이다. 이것을 예로 들어, "땅의 임금들이 새 예루살렘에 영광과 찬양을 돌린다" 고 했다(계 21:24).

그들은 금신상을 태워버렸다(삼하 5:21). 그러나 그들의 금그릇은 봉헌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아들은 은총으로 영혼을 정복한 다음,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은 파괴한다.

즉 모든 정욕은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 올릴 수 있는 것은 바친다. "상품들과 상속인" 도 "여호와께 거룩한 것" 이어야 한다(사 23:18). 그 이득은 "온 땅의 여호와께 성별하여 바쳐야 한다." (미 4:13). 그렇게 하는 것이 실로 우리의 행복이 된다.

3.아람과 그의 동맹국을 이김으로써 다윗은 특별히 이름을 얻었다. 아마 시편 60편은 그 때에 썼을 것이다(13절).

"다윗이 이름을 얻었다." 그의 처신과 용맹은 모든 사람들의 찬미거리가 되었다.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다면, 그에게 많은 영광이 돌아왔지만, 그는 신중하게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는 점이다. 아마 이 때에 시편을 썼던 것 같다(12절). 우리가 용맹해질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을 통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을 통하여 당신의 이름이 명예롭게 되는 것을 기뻐하신다. 렘 13:11에 나오는 하나님의 탄식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는 에돔을 쳐서 이겼다. 그들은 모두가 다윗의 종이 되었다(14절). 이제야 비로소 이삭의 축복이 이뤄졌다. 야곱이 에서의 주인이 되리라 한 축복이다(창 27:37-40). 그리고 그후 계속 에돔은 유다 왕들에게 조공을 바쳤다. 그리고 요람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왕에게 조공을 바쳐야 할 입장이 되자, 그들은 반란을 했다(대하 21:8). 그것은 에서가 시간이 흐른 뒤에 자기의 멍에를 꺾어버리리라고 미리 예언했던 그대로이다.

이리하여 다윗은 이 정복을 통해서

(1) 자기 아들에게 평화를 보장해 주었다. 그래서 아들은 성전을 지을 시간을 번 것이다.

(2) 아들에게 부를 축적해 주었다. 그는 집을 지을 재물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종들을 여러 가지로 쓰신다. 이런 자는 영적 싸움에서, 또 어떤 자는 영적 건축에서, 또 어떤 자들은 그들을 위해서 수고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

다윗의 모든 승리는 사탄에 대한 복음의 승리의 한 진행이다. 그 때에는 다윗의 아들이 앞으로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며, 거역하는 모든 왕들을 발 아래 굴복시킬 것이며, 모든 권세자들을 제압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은 다윗처럼(2절), 죽이는 사자요, 구원하는 사자(lion)이다. 같은 복음이 어떤 자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고, 어떤 자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가 된다.

  • 다윗의 정치 기구(사무엘 하 8:15-18)

다윗은 국내 정치를 등한시할 만큼 그렇게 국외의 전쟁에 몰두하지는 않았다.

💡 앞선 1-14절은 다윗의 왕국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얼마나 굳건해졌는지를 밝히는 중에 특허 대외적인 정복과 관계된 군사적 측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15-18절은 대내적으로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 정비라는 행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행정 관리들의 목록은 본서 20:23-26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불필요한 반복이 아니다. 이 두 곳은 모두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라 할 수 있는 신정 국가 이스라엘을 공고하게 수립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본서 저자가 의도적으로 관리들의 명단을 배치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 아주 간략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통치의 중심에 놓고 다윗 왕은 다만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공과 의를 실천한 자로만 보고 있는 저자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제사장을 교차 대구 구조의 중심에 두고 그 주위에 문관과 무관을 배치하여 이스라엘의 통합의 구심점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예빼에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신정 정치의 구현이 다윗 왕구의 기본 통치 이념이었다는 저자의 신정 왕국적 국가관을 확인할 수 있다.

Ⅰ. 그의 통치는 그의 영토 전역에 미쳤다(15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그에게는 온 지파를 다스릴 권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들은 모두 다윗의 보호 하에 안전을 누렸고, 그의 선정(善政)의 열매를 향유했다.

Ⅱ. 다윗은 편견없는 공정한 손으로 다스렸다.

"그는 모든 백성에게 공(公)을 행했다. 그는 잘못을 행하거나 권리를 보류해 두는 일이 없었다." 즉,

  1. 임무에 부지런히 헌신했고, 모든 탄원은 그에게 어려움 없이 전달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아무리 비천한 지파 출신이라도 언제든 왕과 자문할 수 있었다.
  2. 법을 집행할 때의 불편 부당성을 뜻한다. 어떤 자에게 호의를 베풀거나 무시를 했기 때문에 법 시행을 그르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이 점에서 그리스도의 한 전형이다. 신실하고 진실했다. 그는 "의롭게 재판하고 전쟁했다" (계 19:11; 참조 시 72:1, 2).
💡 “공” ⇒ 다윗은 모든 소송의 마지막 결정권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함.

이것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의 통치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며(신 32:4), 또한 오실 메시야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의” ⇒ 사법적 의미.

율법이 말하고 있는 바 ‘옳은 것’을 판단하는 행위.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는 모습.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렘 23:5).

Ⅲ. 다윗은 조정의 질서를 잡고, 훌륭한 대신들을 두었다.

확고 부동한 정치 기구를 가지기는 다윗이 처음이다(사울의 왕위는 짧았고 불확정했었다). 그래서 그는 행정 기구를 구상했다. 사울 시대에는 아브넬보다 더 높은 관원이 없었다. 그는 군대장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더 많은 관원을 임명했다.

1. 두 군사 관원.

요압은 군대 장관이었고, 브나야는 그렛인들과 블렛인들을 관할하는 군대장이었다. 그렛인들과 블렛인들은 시민군(市民軍:갈대어 역에는 궁술군과 투석군으로 되어 있다)이나 자위대, 혹은 왕을 지키는 상비군이나 친위대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국내 일을 도울 준비를 했고, 사법 행정을 조력하고, 민중의 평화를 보존했다. 그들이 솔로몬을 데려오는 일에 임명된 것을 알 수 있다(왕상 1:38).

2. 교회 관계원 두 사람.

"사독과 아히멜렉은 제사장이었다." 즉 그들은 대제사장 아비아달 밑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할 자들이었다.

3. 두 시정관.

그 중 하나는 사무관 곧 보고자였다. 왕에게 때 맞는 일을 하도록 그 업무를 상기시켜 준다(그는 국무대신이었다. 물론 왕의 양심을 보호해 주는 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업무를 상기시켜 주는 자였다). 다른 하나는 서기관, 곧 내무장관이었다. 그는 공중 질서를 다스리고 재판을 기록했다.

4. 다윗의 아들은 자라서 업무에 임할 수 있게 되자 방백들이 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재능에 맞게끔, 군대나, 국내 일에나 사법부의 일에서 요직을 맡았다. 그들은 왕을 모신 대신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역대상 18:17 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왕 가까이에 있어서, 그의 지휘를 받았다.
우리 주 예수께서도 자기 나라에 관원을 임명하셨다. 그래서 그 나라가 번영할 수 있게 하셨다. 그가 높은 데로 올라가셨을 때, "이 은사들을 주셨다" (엡 4:8-11).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막 13:34). 다윗은 자기 아들들을 대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모든 신도들, 그리스도의 영적 자손은 더 좋은 자리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왕이요,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계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