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창세기 34, 마가복음 5, 욥기 1, 로마서 5
묵상구절
1: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1: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1: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1: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열왕기상 리포트
성경 전체가 역사서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History )'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경 전체는 대략적으로 태초에서 종말까지를 망라하여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성경에서 소위 역사서로 불리는 책들은 연대기적 순서에 따른 배열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는 저자의 기록 관점이 서로 같을 뿐만 아니라 연대기적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즉 사무엘서는 사사 시대 말기부터 다윗 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면 열왕기서는 다윗을 이은 솔로몬 시대로부터 남북 이스라엘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두 역사서가 서로 연결되는 것은 사무엘서가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시대에 기록된 반면 열왕기서는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멸망한 직후에 기록된 책으로서 열왕기서의 기자가 사무엘서가 이미 기록된 것과 그 내용을 전제한 상태에서 사무엘서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솔로몬 이전 시대의 역사적 기록을 생략한 까닭이다.
한편 사무엘서나 열왕기서와 동일하게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역대기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 열왕기서와 상당 부분 중복되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서의 이러한 내용의 중복은 단순히 역사 기록의 반복이 아니다. 즉 역대기서의 저자는 열왕기서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즉
- 열왕기서 기자가 소위 선지자적 관점(prophetic point of view)을 가지고 B.C.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B.C. 586년 남유다 마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상황에서 선민 이스라엘로 하여금 멸망까지 자초한 과거 자신들의 죄악사를 회고•반성케 하기 위하여 비교적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하며 기록하였다면,
- 역대기서 기자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귀환한 상황에서 소위 제사장적 관점 (priest point of view)을 가지고 하나님은 한번 택한 당신의 백성에 대해서는 그들이 잘못할 경우 징계는 하시되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분임을 확신시켜 선민 역사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통해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투철한 여호와 신앙에 근거하여 선민의 새 역사를 창조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하며 기록하였다. 때문에 역대기서는 선민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다윗 언약을 열왕기서에 비해 강조하고 있으며, 다윗 가문을 배반한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 또 역대기서 기자는 여호와 신앙을 강조하기 위하여 성전 제사 제도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열왕기서는 B.C. 561-537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돌이 바밸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때이다. B.C. 1050년 사울의 죽위로 시작된 이스라엘 신정 왕국은 사울을 이어 왕위에 오른 다윗과 그의 아들인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솔로몬 시대에는 근동 지역에서 애굽과 그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성해지고 경제적 번영도 누리게 된다. 또 이때에는 전민족적 여망이었던 성전도 건축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이스라엘의 영광은 일순간에 불과하였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하더니 남북 왕조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다가 급기야는 북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 의하여 B.C. 722년에 멸망하고 B.C. 586년에는 남유다마저도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여 그 백성들은 바밸론으로 골려가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것은 ‘왜 여호와의 선택된 백성이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해야 하는가?’였다.
특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마저도 파괴된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까지 희의를 갖게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열왕기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문에 답을 주어 그들에게 믿음과 정체성을 다시 심어주기 위해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열왕기에서 기자가 답으로 제시한 이스라엘 민족의 몰락의 원인은 한 마디로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역사의 주권자이시고 사랑의 주어신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데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왕정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되 신정 왕국의 대러 통치자로서 선민의 대표자였던 여러 왕들의 행적, 곧 다윗 사후 솔로몬의 행적으로부터 시작하여 분열 왕국 시대 여러 왕들의 행적을 가감 없이 그대로 기록하는 것은 물론 그 사이 사이에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사역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왕들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아사나 여호사밧과 같이 남유다 왕들 가운데 선한 왕들의 행적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인 논조는 그들의 악한 행적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어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참 신이 아니거나 또는 언약에 신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의 타락과 범죄 때문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열왕기서의 저자가 이스라엘의 몰락의 원인이 그들의 타락과 범죄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멸망의 원인을 밝혀 그들의 멸망의 정당성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저자가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다름 아닌 그들의 범죄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비록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자신들이 몰락하게 된 원인인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절대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앞선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최후의 사사 사무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통치 체제가 이양되는 과정에 등장한 초대 왕 사울의 통치와 하나님이 세우신 새 왕조의 첫 왕 다윗의 치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신정 왕국 체제가 기틀을 확립하였음을 다루었다. 어제 이에 이어지는 열왕기서는 연로한 다윗 왕을 어어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다윗 왕에 이은 솔로몬의 즉위와 왕권 강화를 기록하고 있는 왕상 1,2장의 내용들은 삼하 9장부터 20장까지에 걸쳐 소개되는 ‘다윗 왕궁의 역사(The court history of David) 의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문장 스타일 역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헬라어 번역본인 70언역과 라틴어 번역본인 벌게이트역(Vulgate)은 열왕기서와 사무엘서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이어지는 하나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동일한 흐름에 있는 하나의 역사로 이해할 경우, 본장은 앞선 사무엘서에서 중심 인물이었던 다윗 왕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 역사의 중심 인물인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열왕기서를 새롭게 여는 본장에는 노쇠한 다윗의 왕위를 솔로몬이 계승하는 과정에 있었던 암투와 갈등 및 위기 상황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세속 역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권력 투쟁의 기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본서 저자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 과정을 기술하면서 정치적 공작과 계략이 난무하는 격변의 와중에서 순리를 역행하는 모든 일시적 현상들과 정권 획득을 위한 움직임,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이권을 따라 움직이는 악인들의 이합집산 과정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께서는 결국 당신의 뜻을 관철해 가심을 강조하고 있다.
즉 본장은 당장 눈에 보어는 혼탁한 현실 정치 너머에 있는 확고부동한 하나님의 초월적 의지의 실현을 보여주는 것이 그 기본 목적이다.
●아도니야의 야심(1)(열왕기 상 1:1-4)
사무엘 끝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다윗은 한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파멸케 하는 천사의 칼을 모면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질병이나 위험으로부터 구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집행 유예)에 불과하다. 촛불은 바람을 불어 끄지 아니하면, 저절로 다 타버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고령이라는 약점 때문에 몰락해가고 있는 것과, 그것으로 인하여 무덤의 문턱에까지 이끌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자는 "덫에 빠지게 된다." 어차피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1.이처럼 연약해진 다윗을 본다는 것은 염려스러운 일이다. 그의 몸은 늙었고 체온마저 다하여 어떠한 옷으로도 그의 몸을 따뜻하게 보온할 수가 없게 되었다(1절).
💡 이제껏 사무엘서에서 중심 인물로 등장하였던 바로 그 다윗이 늙었음
이러한 표현은 앞선 삼하 24장에서 백성을 위한 적절하고도 긍정적인 중보자의 역할을 했던, 즉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단을 쌓고 백성을 위한 기도를 올렸던 다윗이 더 이상 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암시함으로써 왕위를 물려주어야 할 시점이 가까워 왔음을 보여준다. 신정 왕국의 기틀을 세웠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며 강성한 나라로 만든 성군 다윗도 어쩔 수 없이 70세에 가까운 노인이 되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삼하 5:4).
이처럼 늙고 허약해지는 것은 인류 모두에게 정해진 보편적 운명이다(시 90:10). 따라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이 순간을 준비하여 지혜롭게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도자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인간의 유한성, 우리가 소망을 두어야 할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것.
다윗은 과거에 원기 있는 활동가이자 사업자였고, 맹렬한 불길이 언제나 그의 가슴 속에서 불일듯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 그의 피는 싸늘해지고 순환이 불순하여, 침상에만 틀어박혀 있기만 하는데도 체온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이제 70세가 되었다. 허다한 사람들이 그 나이에는 아직까지 박력있게 사업을 수행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하겠다.
그러나 다윗은 이전에 범했던 자신의 죄, 특히 우리야의 사건을 통하여 범했던 죄에 대하여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겪은 예전의 여러 가지 수고와 역경을 그 당시에는 예사로이 여기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더욱 악화됨을 깨닫게 되었다.
"힘센 자들아 너희의 힘을 자랑말지니라." 그 힘은 질병으로 곧 쇠잔하여 질 수 있으며, 또 마침내는 노령으로 약화되고야 말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이러한 불행날이 이르기 전에 "너희들의 젊은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지라."
우리의 손이 하나님과 우리의 영혼, 그리고 우리들이 세대를 위하여 할 일을 발견했다면, 우리의 온 정성과 힘을 다하여 그 일을 하자. 왜냐하면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 곧 연륜이란 밤이 오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들의 정력이 다 사라지고 났을 때, 그 정력을 선용했다는 사실을 회상하면 큰 즐거움이요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다윗의 의사들이 너무나도 무력하고 기술이 없어서 외형적인 처방으로밖에는 시술할 수 없음을 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없다. 강장제라던가 활력소가 아니라, 단지
(1) "그들이 이불로 그를 덮었다." 하였다.
💡 한글 개역 성경에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의 침소에서 다윗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음을 보여주는 원문은 이제 연로한 다윗이 스스로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몸이 더이상 따뜻하지 않음
-몸이 따뜻하지 않은 상태 틀 나타낼 뿐 마니라 더 나아가서는 늙어 전혀 성욕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 즉 더 이상의 뜨거운 열정이 없고 생식력이 멈춘 상태, 이 상태가 이어졌음.
-한편, 본서 서두에서 이렇게 다윗의 육신적 상태를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있음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이것은 다윗에 어떤 체온이 다소 있다면, 그 체온을 보존하여 온기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몸에 온기가 없다면, 온기를 전달하여 주는 데는 아무런 효험이 없는 것이니, 왕실의 침구로서는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엘리후는 "우리들의 의복이 우리에게 따뜻한 까닭" 을 알기 어렵다고 했다(욥 37:17).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아니하면 "사람이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아니한데" (학 1:6), 다윗이 지금 그러하였다.
(2) 어리석게도 그들은 그의 장례식을 마련했어야 했는데도 혼례를 권하였다(2-4절).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자기들의 타락을 충족시킬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다윗의 건강을 진단한다는 미명하에 다윗의 타락(된 마음)을 만족시키는 일에 급급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그의 의원들에게 처방을 물었듯이, 그의 예언자들에게도 뜻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아내를 많이 거느리는 것이 묵인되던 그 당시였던지라, 이러한 일도 변명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같이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 남자는 한 아내를 취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마 19:5). 나아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 (고전 7:1)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기 전에 먼저 다윗과 혼인하여,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것은 아도니야가 자기 아버지 다윗이 죽은 후에는(2:22) 그녀와 결혼하려 했음을 그의 크나큰 범죄로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 2절, ‘왕께 고하되.. ‘
-신하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윗의 노쇠함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한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다윗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겠지만, 그밖에도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사실, 당시 다윗은 기력을 되찾기 위하여 젊은 처녀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노쇠하였고 이는 신하들에게 큰 근심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던 왕정 시대에 왕의 건강의 악화는 나라의 안위에 큰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다윗의 노쇠는 국정 공백, 판단력 착오 등의 문제를 야기하였을 것이며, 이 중 대부분은 국가적인 문제로 직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하들의 발상과 건의는 효과적이지 못한 것이어서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4절).
-사실 신하들의 건의는 동녀에 관한 것이 아니라 후계자를 통한 왕권 계승에 관한 것이어야 했으며, 다윗은 이렇듯 노쇠한 상태가 되기 전에 왕위를 솔로몬에게 물려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에 아도니야의 반란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까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다윗의 신하들은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젊은 여자를 다윗 가까이 두어 다윗으로 하여금 성욕과 원기를 회복케 하고자 했다.
3절,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함
-다윗의 신복들은 왕에게 허락을 받은 후 즉시 이스라엘 전역을 대상으로 동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사실 왕비도 아닌 수종들 여자를 뽑기 위해 이러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다윗의 노쇠가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내준다.
수넴 여자 아비삭
-아비삭: ‘나의 아버지는 방랑자, 나의 아버지는 실수하는 사람’ 이란 의미로 볼 수 있음.
이는 아비삭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버지의 이력이나 혹은 성격과 관련하여 붙인 이름이겠지만 아비삭이라는 이름 그대로 다윗의 신복들이 아비삭을 간택하여 다윗의 원기를 회복하려 한 시도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실수'로 귀결되고 만다. 즉 아비삭은 다윗의 원기 희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후에 아도니야의 경우는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다가 솔로몬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자초하였던 것이다(2: 12-25).
다윗은 아비삭과 더불어 동침하지 않음. 그 이유는?
-먼저 다윗의 기력이 너무 노쇠하여 성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입장은 본 문맥이 다윗의 노쇠를 나타내는 문맥이란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다음으로 다윗이 스스로의 경건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과거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난 이후 다윗이 철저하게 회개했다는 점에서 볼 때 설득력을 지닌다.
당시까지 왕위 계승에 대한 전통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음, 더불어 당시 이스라엘 내에 과거의 인물인 다윗에 대한 미련이 매우 강하게 남아 있었음.
즉, 이제 정복 전쟁이 완전히 마무리된 시점에서 이스라엘에는 새로운 행정 능력을 지닌 왕과 관료들이 필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스스로도 왕좌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신복들도 정복 시대의 인물인 다윗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본절의 표현이 다윗 왕의 경건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는 그가 아도니야의 왕위 찬탈 시도를 좌절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왕위 계승자 솔로몬을 즉위시키는 하나의 배경이 된다. 즉 다윗이 성욕을 제어하고 자신의 경건을 유지하였던 것같이 왕위 계승의 문제도 차질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완수할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의 언급이 물론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다윗의 극도의 노쇠를 보여주는 실례로 제시된 것이라 할 수도 있으나 후에 나오는 아도니야 왕위 찬탈 시도에 대한 다윗의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행동을 감안할 때 이 본문은 그의 경건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실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