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2월 24일 금요일 왕상8:22-53 솔로몬의 기도(대하 6:12-42)

Jeehyun 2023. 2. 25. 00:28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7, 누가복음 10, 욥기 24, 고린도전서 11

묵상구절

8:2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8: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8: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8: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8:26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8: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8: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8:31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8: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공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8: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8: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8:35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8: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8: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8: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8: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8:40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8:41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8: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8: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8:44 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8:45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8:46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8:47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8:48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8: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8:50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8:51 그들은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됨이니이다

8:52 원하건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8:53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나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성전에서 드려진 솔로몬의 기도(열왕기 상 8:22-53)

솔로몬은 그 집을 총괄적으로 하나님께 양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집을 점령하심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표했다. 거기에 뒤이어 솔로몬의 기도가 나온다. 그 기도를 통해서 그는 온갖 겸손과 경외심을 품고 그 양도물의 사용 목적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선언하면서, 하나님께서 그것에 동의해 주시기를 바랬다. 간략하게 말해서, 그가 간구하는 바는 이 성전을 제사의 집으로서 뿐만 아니라(그의 전체 기도를 통하여 이러한 것은 언급되는 바 없지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백성들이 기도 드리는 집" 으로 여겨지고 받아들여지기를 원한 것이다. 기도하는 집이란 의미에서 보면 성전은 복음 교회의 한 예표가 된다(마 21:13 과 비교하여, 사 56:7 참조). 그러므로 솔로몬은 특별한 제사뿐만 아니라 또한 특별한 기도를 가지고 이 집의 문을 열었다.

Ⅰ. 이 기도를 드린 인물은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 솔로몬은 이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제사장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예언자들 중의 어느 누구를 지명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의 큰 회중을 마주서서" 기도를 드렸다(22절).

1.그가 이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다행한 일이며, 그것은 그 부모가 그에게 베풀어 주신 신앙심 깊은 교육을 그가 크게 발전시켰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배운 바 모든 지식을 활용하여 그는 훌륭하게 기도 드리는 것을 익혔으며 정해진 형식을 갖추지 아니하고 prore nata-즉 즉석에서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에게 생각했던 바를 아뢰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그의 철학적 담화, 그의 잠언과 노래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심을 잊지 아니하였다. 그는 기도하여 뜻을 이룬 자요(3:11 이하), 생각건데 그는 기도에 열중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기도의 은사에서도 뛰어났던 것 같다.

2.그가 서슴치 않고 기도 드리려 했고, 또한 그렇게 많은 회중들 앞에서 거룩한 의식을 행하는 것을 결코 수줍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행한 일이다. 그는 자신이 성직자역을 맡으며 하나님께 대한 회중의 대변자 역을 하는 것이 자기 체면을 깎는 일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자기들은 너무나 지위가 높아서 자신의 가족들을 위하여 이러한 직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겠는가? 솔로몬의 온갖 다른 영광, 특히 상아로 만든 그의 왕좌까지도 지금의 솔로몬보다 더 훌륭하게 할 수는 없다. 높은 자들은 이처럼 신앙적 행사의 존귀성을 지원해 주어야 하며, 자기들의 지위 높음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의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한 예표이니, 그리스도는 자기가 다스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중재자이시다.

Ⅱ. 그가 기도 드리는 자세는 매우 경건했고, 그 기도는 겸손함과 진지함 그리고 열성이 아주 잘 나타나 있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 서서" 라고 하였으니, 이는 때가 차면 장차 드려질 희생의 제물을 힘입어 자기의 기도가 성공하리라고 믿었던 것을 시사한다. 이 제단에서 드리는 제사는 그 제사(예수)의 한 예표이다.

그러나 기도 드리기 시작할 때,

1. 그는 "무릎을 꿇었다" (54절 참조; 대하 6:13 비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기도 드리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올바른 자세이다(엡 3:15). 아무리 지위 높은 자라도 "자기의 조물주 앞에 무릎 꿇는" 것이 그의 지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허버트(Herbert)씨는 "무릎 꿇는 것이 결코 실크 양말을 못쓰게 하지는 않는다" 고 말하고 있다.

2. "그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폈다."

그리고는(54절로 보아 그런 것 같다) 계속하여 그 기도가 끝날 때까지 그러한 자세로 있었으니,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소망과 그로부터의 기대를 말함이다. 그가 손을 폈으니 이는 말하자면 활짝 열어놓은 마음으로부터의 기도를 드리고, 그것을 하늘에 바치고자 하며, 또한 자기가 간구한 그 자비로우심을 양팔로 받고자 함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이렇듯 신앙심의 집착과 열의를 외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멸시하거나 조롱해서는 안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탄원의 기도.

Ⅲ. 그 기도는 매우 길었다. 아마도 실제로는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의 보좌 앞에서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 이 자유를 활용해야 마땅하다. 그리스도께서 책망하시는 것은 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식적으로 행하는 기도인 것이다. 모든 기도를 통하여 우리도 그러해야 마땅한 사실이지만, 솔로몬은 이같은 훌륭한 기도를 통하여,

1.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는 가장 올바른 경앙의 행동으로써 이 기도를 시작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라고 말머리를 시작하고 있으니, 곧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을 말한다. (옥: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찬양)

그리고는

(1) 그는 하나님 자신의 놀라운 존재를 총괄적인 말로 찬양한다.

존재 가운데 으뜸이시며("주와 같은 신이 없사오며, 하늘과 땅에 있는 어떠한 권능도 결코 주와 비교할 수 없나이다") 또 그 백성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상전이 되심을 찬양했다. "주께서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셨나이다. 언약을 지키시는 데만 신실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는 일에 있어서도 신실하시나이다. 이는 저들 종들이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고, 그 눈을 주께로 돌려 열성을 보이기만 하면, 저들에게 분명히 약속하지 않으신 자비까지도 베푸시옵니다."

👉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많은 신들보다 더 힘이 세고 상대적으로 뛰어난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며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삼하7:22; 22:32).

또한 본문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함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함.

⇒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방의 신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 그분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

*다윗 언약에서 드러난 여호와의 ‘헤쎄드’
1.첫째 내용: 다윗의 몸에서 날 자가 성전을 건축할 것
2.다윗의 위를 보존하실 것 →앞으로 성취되어질 것.
⇒ 이 둘째 내용에 하나님의 ’헤쎄드‘가 강하게 대조되어 있음. 솔로몬이 범죄를 저지르면 징계를 내릴지언정, 사울에게서처럼 ’은총‘을 거두어가시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셧다. 바로 여기에 다윗과 다윗의 몸에서 태어날 자식을 향한 하나님의 ’헤쎄드‘가 결정적으로 드러남.

*하나님께서 ‘헤쎄드’의 언약을 주신 것처럼 인간의 편에서도 하나님과의 언약은 ‘헤쎄드’로 지 켜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헤쎄드’는 ‘은혜’가 아닌 ‘성실함’과 ‘사랑’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되 율법의 명시된 사항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 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준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 율 법을 어기는 것만 아니라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심령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형식적인 자세만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도 궁극적으로는 ‘헤쩨드’를 파기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언약의 파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언약의 두번째 내용을 성취해 달라는 기도는 25, 26절에서 보다 구체 적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 ⇒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본문은 하나님의 법과 율법을 사랑하여 이를 마음에 담 삶의 기준으로 삼아 의지적으로 행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주께서 이러한 자에게 언약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솔로몬의 진솔한 신앙고백이다.

한편, 본문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신앙적 유혹들과 일상적인 어려움 속에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온 마음과 온 듯과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당신을 전심으로 섬기는 자들을 사랑하사 눈동자같이 지키 시고 주의 날개로 보호하시며 (시 17:8),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사 말할 수 없는 탄식 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 따라서 우리들은 현실의 어려움에 주목하기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환난과 유혹가운데서도 타협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숙한 신앙인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본문은 솔로몬의 신앙 고백인 동시에 그의 불행한 운명을 암시하기도 한다. 솔로몬은 다윗 의 유언을 따라(2:4)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김으로 지혜를 얻어 성전 건축의 대과업을 이루었지만, 결국 인생 말년에는 그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돌이켜 우상들에게 향함으로 왕국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11 :4), 왕국 분열과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 본서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 속에서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야기된 솔로몬의 암울한 미래를 일종의 복선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는 하나님께서 전에 행하신 바에 대해, 특히 자기 가족들을 위하여 이룩하신 바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있다(24절).

"주께서는 주의 다른 종들에게와 같이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셨나이다." 이 약속은 그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놀라운 은총이요 지주이며 기쁨이었으며, 이제 그 약속의 성취는 그 극치인 것이다. "주께서 오늘날과 같이 말씀하신 바를 이루셨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을 새로이 체험하면 보다 큰 찬양을 드리게 된다.

💡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를 잊지 아니하시고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이행하심으로 그 언약이 오늘날 성취된 데 대한 감격에 찬 고백이다.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 주의. 손으로 이루심 ⇒ 여호와 하나님게서 무엇을 성취하셧음을 고백하는가?

*‘하나님께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하시는 말씀’ (애 3:38) 과 ‘하나님의 주권적 역 사와 신적 능력’ (신 6:21) 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크신 신적 권위 로 다윗과 언약하셨고(삼하 7:11-16), 이 언약을 당신의 주권적인 역사로 성취하셨음을 나타낸다. 여기서 말하는 성취란 솔로몬을 다윗에 이어 왕위에 세우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평화를 허락하사 성전을 건축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성전을 언약 성취의 표적물로 보고, 성전을 완공케 하심으로 친히 언약을 성취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다.

2.그는 하나님께 은혜와 돌보심을 간구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그 전에 약속하신 바 있는 자비로움이 자기와 그 가정에 이루실 것을 간구한다(25, 26절).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 그는 부분적으로 약속의 성취에 감사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성실하게 지키셨다. "주께서 주의 종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사, 그 아들로 하여금 그의 왕위에 앉게 하고, 뜻하셨던 바 성전을 건축케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 주의 종 다윗에게 계속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그것은 아직도 때를 기다리며 남아있나이다."
    하나님이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을 우리가 체험하면, 우리들은 용기를 내야 하며, 그 약속을 의지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야 마땅함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의 그의 자비로우심을 희구하는 자는 이전에 베풀어 주신 자비로우심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는 것도 마음에 새겨야 한다.
  •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도우셨다(고후 2:10).
    솔로몬이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반복하고 있다.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그 조건을 소홀히 하지만 아니한다면, "네게로 좇아나서 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는 약속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주시는 조건을 이행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불행하게도 솔로몬 및 솔로몬의 후손들은 다윗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지 못하였다. 따라 서 그들의 왕권은 위축되었으며 심지어 단절되고 말았다. 즉 솔로몬은 통치 후반기에 하나님보다 재물과 군사력, 주변 나라의 힘을 의지하는 방향으로 치우쳤고 이방 여인들을 연모한 나머지 많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이들을 통해 도입된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동 그의 신앙이 현저히 퇴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상대자인 다윗 후손의 이러한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다윗 언약을 충실히 이행하셨다. 즉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일한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선포하는 선지직과 인간을 대신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직을 완전하게 수행하셨을 뿐 아니라 우주를 통치하는 권한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위입받아 영원히 왕직을 수행하시는 완전한 왕이 되셨던 것이다. 이는 구약에서 거듭 예언된 바이며(삼하 7: 16 ; 사 9:6 ; 시 2:6 ; 단 7:13.14; 미 5:2 ; 슥 9:9) 또한 신약 에서도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거듭 밝히고 있다(마 3:2 ; 막 1:14, 15; 눅 1:31-33).

다윗은 범죄했으나 범죄한 이후에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의 태도만은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들 솔로몬은 치정 말년에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우상을 따름으로 부친 다윗이 걸어간 길을 가지 못 했다. 솔로몬의 치명적인 문제는 이방의 우상을 섬겼다는 사실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하나님을 지워버리고 그분의 통치를 거부했다는 데 있었다(11:9, 10). 이러한 솔로몬의 마음 상태를 본서 저자는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라고 평가하고 있다(11:4).
  • 그 다음으로 솔로몬은 겸손하게 그 계승권을 간구한다.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주의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6절). 하나님의 약속은(우리가 빈번히 살펴 보아 왔듯이) 우리들의 소원에 대한 길잡이요, 우리들 소망의 근본이며, 기도를 통한 기대가 되어야 마땅하다. 전에 다윗이 기도하기를(삼하 7:25), "여호와여, 말씀 하신대로 행하소서" 라고 하였다.
💡여기서 솔로몬은 언약을 확신할 수 있도록 이를 견고히 보증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자녀 된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는 그 부모들로부터 기도하는 법과 기도를 통하여 간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2) 하나님께서 이제 소유하신 이 성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실 것과 주의 눈이 "끊임없이 이곳을 향하사" (29절), 너그럽게 그 성전을 소유하시고, 그것을 존귀케 하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1] 그가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겸양에 대한 겸손한 감탄이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리이까? 한량없이 높으시고 지극히 거룩하시며 자족하신 하나님께서 땅에 거하시고-타락하여 죄악으로 뒤덮인 이 땅-저주받아 불태우기 위하여 남겨둔-이 땅의 벌레만도 못한 인간을 축복하여 줍소사고 말씀을 들을 만큼 창피함을 무릅쓰고 낮추실 수가 있으리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사오리까? 주님이시여, 어찌되는 일이옵니까?"

둘째, 솔로몬은 자기가 지은 집이 매우 넓기는 하나 하나님을 용납하기에는 지극히 부족하게 여기는 겸손한 자이다.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나이다. 왜냐하면 무소부재하신 이를 그 일부라도 포함시킬 수 있는 곳이 없사오며, 이 집 역시 너무나도 협소하고 누추하여, 그 존재와 영광에 있어서 한량없으신 이의 거소로 삼을 수가 없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하였을 때 명심해야 할 사실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 우리들의 봉사와 그의 완전하심 사이의 무한한 차이와 불균형을 자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 그의 총괄적인 기도는 이런 전제를 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가 지금 드리고 있는 기도를 은혜롭게 들어 응답하시리라(28절).

그것은 겸손한 기도(" 종의 기도")라 했다. 열렬하기도 하였으며(" 부르짖음" 과 같은 기도였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였다(나의 하나님 여호와로서의 "주의 앞에서" 의 기도였다).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기도가 아니라(이 세상에 있는 여하한 고관 대작이나 명예로운 칭호라도 그것으로 하나님 마음에 들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신의 종의 기도도 들으시고 돌보아 주옵소서."

둘째, 그가 이제 건축하고, 특히 하나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29절)고 하신 이 집안에서나 이 집을 향하여 금후 언제든지 드리는 온갖 기도를 하나님께서 마찬가지로 들어 응답하시리라.

자기 자신의 기도와(" 당신의 종이 드릴 기도를 들으시옵시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실 것을 빌고 있다(30절). "이곳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옵니다마는, 진정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저들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죄와 저들의 성물(聖物)의 부정함까지 사하여 주옵소서."

 💡과거 하나님께서는 성막이 불완전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로 스스로 작정하셨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솔로몬의 성전 역시 이러한 모세의 성막과 별로 다르지 않다. 즉 솔로몬의 성전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할지라도 광대하신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에는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두실 처소로 선택하셨다는 점에서 성막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솔로몬의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실 유일하고도 영원한 장소임을 선언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당신의 영광을 나타낼 거룩한 처소로 선택해 주실 것을 바라는 일종의 기원문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 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열납하셔서, 그의 성전에 당신의 이름을 영영히 두 시며 당신의 눈과 마음을 항상 머물게 할 처소로 삼으실 것을 약속하셨다 (9:3).
솔로몬은 어떤 조건이나 장소에도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그의 기도 가운데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a.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기도하는 백성들이 되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도 몸소 그러한 본분을 준수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

b.그는 이 땅 위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기꺼이 드러내시고자 하신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라고 백성들에게 명하고 있다. 제사장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나, 저들의 성전 뜰에서 예배드리게 될 때에 저들의 예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그것은 우상이니) 저들의 나약한 신앙을 돕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행하여야 할 온갖 일에 눈을 돌려야 마땅한, 진정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의 예표로서 제정된 저들의 예배의 중재자가 되는 이 성전을 향하여 눈을 돌려야 마땅한 것이다. 성전이 폐허화되었을 때까지도 그 성전을 위하여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도 예루살렘 쪽으로 얼굴을 돌렸던 것이다(단 6:10).

💡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성전 안에서 혹은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는 근거는, 인간이 지은 성전 자체에 특별한 능력이나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의 눈이 항상 성전을 향해 있기 때문.
*여호와의 눈: 눈은 ’지식, 성격, 태도 성향, 견해, 열정 및 반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함‘. 특별히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인간에 빗대어 설명한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 선악을 감찰하시며, 의인을 지키시고(대하16:9), 은총을 주시며(창6:8), 인간을살피시고 구원해 주시는 신적 속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냄(시33:18; 34:15)
*따라서 하나님의 눈이 성전을 향해 주야로 항상 열려 있기를 구하는 내용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항상 주목하사 누구든지 성전에서,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관심을 가지고 응답해 달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솔로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당신의 눈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성전에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다 (9:3). 그리고 이러 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후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는 관습을 낳게 하였다(시 5:7 ; 단 6:10 ; 용 2:4). 

c.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그것은 이 집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 없고 또한 이곳을 바라보지도 아니하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는 아무리 열성적인 기도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이 집이 축복으로 받은 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가시적 표징이 언제나 마음이 있는 간구자들에게 뚜렷한 용기와 위안이 되게 하실 것을 바라고 있다.

💡 ‘들으심’
*기본적 의미는 ‘듣다 (hear, 창 27:6) , ‘주목하다(listen to , 시 132:6) ’ 이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서 마음에 간직하려고 주의 깊게 ‘듣다 (heed, 창 17:20 ; 30:6) ’ 란 의미도 지닌다. 또한 이는 공정한 판결을 위하여 송사를 ‘듣다(신 1:16) ’ 란 의미도 지닌다. 즉 이 단어는 어떤 사실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여 ‘알아듣다( understand, 창 11:7) ’ 란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의 ‘들으심’은 자기 백성이 성전에서 혹은 성전을 향해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를 주목하시며 주의 깊게 들으시고 그 사정을 김이 이해하셔서 은혜로써 응 답해 주시기를 바라는 솔로몬의 간절한 호소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입술과 마음으로 시인하여 용서를 구하면 아버지가 아들의 잘못을 덮어주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듯이(녹 15:11, 또 진정 잘못을 인정하는 죄인에게 법적 사면이나 특사를 선포하듯이 은혜를 베풀어 사유해 달라는 뜻이다.
*성전 봉헌에 즈음해, 솔로몬이 드린 이와 같은 기도는 하나님의 실제적 임재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드릴 기도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즉 성도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 되(렘 29:13) 여호와의 긍홀에 의지하여(시 69:16; 109:21 ; 단 9: 18) 죄사함을 호소하여야 한다(대하 7:14). 
 💡 본문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호와의 이름 을 성전 안에 두느, 즉 여호와께서 그곳에 엄재하시느냐의 여부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결정하실 문제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성전 자체가 하나님의 엄재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성전의 부재가 여호와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하나님의 초월성)

성전과 여호와 임재 사이에 드러나는 이러한 신학적 해석은 성전의 훼파와 바벨론 포로 유수를 경험한 본서 기록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방 땅에서 성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이 여호와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성전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자신들을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 본절부터 53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인 주기도문(마 6:9-13)과 유사한 7중 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솔로몬이 이와 같이 철중으로 청원한 것은 성경에서 ‘칠’ 이라는 숫자 가 완전성과 총체성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솔로몬의 칠중 청원 기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칠중 청원 기도는
1.맹세와 관련된 악인의 정죄와 의인의 보호 (31, 32절)
2.범죄함으로 전쟁에서 패하였을 경우 회개하고 성전에 나아와 빌 때 회복시켜 주실 것에 대한 간구 (33, 34 절)
3.죄를 고백할 때 가뭄과 기근으로부터의 구원 (37-40절)
4.경건한 이방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과 이를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경외케 할 것을 구하는 내용 (41-43절)
5.전쟁에서의 승리 간구 (44, 45절)
6.죄를 고백할 때 포로된 것에서의 해방을 구하는 간구 (46-5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 7가지로 정리된 가정된 상황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할 수 있는 전형적인 위기들이나 어려움들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그 모든 상황에 대해 온전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또한 가정하고 있다.

[3] 더욱 자세하게, 이 기도의 집 안에서나 이 집을 향하여 하나님께 드려질 간구의 여러 가지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첫째,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어 그 정당성을 결정 짓기 위하여 맹세로써 하나님께 탄원되었고, 그 맹세가 이제 단 앞에서 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논쟁하는 당사자간의 진실을 찾아내시사 심판하여 달라고 솔로몬은 기도했다(31, 32절). 그는 어려운 일에 대하여는, 은혜의 이 보좌가 심판의 보좌가 되어, 믿음으로 이곳에서 호소하는 피해자의 권리를 하나님께서 찾아 주시어, 뻔뻔스럽게도 이곳에서 호소하는 가해자들을 벌하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성전과 제단을 걸어 맹세하는 것이 상례였던 것인데(마 23:16, 18), 성전이나 제단을 "걸어서" 하지 않고 성전과 "제단에서" 또는 그 "가까이에서" 맹세하는 것이 더욱 엄숙한 맹세가 된다는 가정 때문에 그 맹세는 타락해 버렸다.

둘째,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민족적인 재난으로 신음 한다든가 또는 어느 특정한 이스라엘 사람이 사적인 불행으로 괴로워 한다든가 하면, 이 집에서나 이 집을 향하여 기도할 것이요,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응답해주실 것을 희구하였다.

a. 공적인 심판, 즉 전쟁(33절), 가뭄(35절), 기근과 온역(37절), 그리고 다른 재앙이나 질병 등 "기타 여러 가지" 로(라는 말을 끝맺고 있다)-어떠한 재난이나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의 기근이다. "기타 여러 가지" 란 말은, 다른 백성들에게 재난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ㄱ) 심판의 원인은 다름 아닌 죄악이 될 것이다. "만일 저들이 적국 앞에 패하거나 비가 부족하다면 이는 저들이 당신을 거역하여 죄지음을 말미암은 것이옵니다." 온갖 재앙을 낳는 것은 죄악이다.

(ㄴ) 심판의 결과는 저들이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이 집에서나 이 집을 향하여 하나님에게 간구하게 되리라. 이전에 하나님을 멸시한 자는 후일 그에게 간청하게 되고야 만다. "여호와여, 재난 가운데서도 저들이 주를 찾아 왔나이다." "재난 중에 저들이 조속히, 그리고 진정으로 나를 찾으려 할 것이라."

(ㄷ) 심판을 벗어나는 조건은 단순히 그것을 위하여 기도 드리는 것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저들이 "죄악으로부터 돌이키고(35절)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아니하는 한, 저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달라고 청할 수도 없고 또 그러려고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곧 저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행실을 바로 잡지 아니하면 그렇다 함이라. 다른 어떠한 조건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 구원을 탐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들이 자비로움을 입기에 합당하다면,

[ㄱ] 하나님이 하늘, 곧 위에 있는 거룩한 그의 성전-이것을 저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에서 "이" 성전을 통하여 들으실 것이다.

[ㄴ] 하나님께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죄사함을 받은 후에야만 심판이 제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ㄷ]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의 말씀과 예언을 통하여 "저들이 걸어야 할 선한 길을 저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 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저들의 고난을 인하여 유익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연단하고 가르치시는 자가 복이 있기 때문이다"), 쾌히 구원함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길과 의무의 길을 걷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으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ㄹ]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제거하실 것과 불평의 호소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고쳐 주시리라-그 기도를 용납하실 뿐만 아니라, 간구한 자비를 주시리라.

b. 개인적인 재난의 경우도 열거했다(38-40). "어느 이스라엘 사람이 주께 용무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여기에서 주를 찾게 하시고, 이곳에서 주로부터의 은총을 찾게 하소서."

그는 낱낱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참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생의 고난이 있다.

(ㄱ) 자기를 원망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고통을 지극히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그것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정을 하나님께는 공개하고자 한다고 솔로몬은 생각한다. "그들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문제점을 알아, 저들의 손을 펴리라. 곧 저들의 사정을 공개하리라. 이는 곧 히스기야가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중에 편지를 공개함과 같은 것이다. 그 괴로움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저들은 그것을 하나님 앞에 밝힐 것이다. 특히 내적인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죄는 우리들 자신의 마음의 재앙이 된다. 우리가 타락 가운데 거함이 곧 우리들의 영적 질병이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인 진정 이러한 것을 알려고 노력하여, 그러한 것을 억누르고, 그러한 것들이 소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솔로몬은 탄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신음하고 있는 고통이다. "오, 불쌍한 자여, 그가 곧 나이니라!" 이러한 것들이 그로 하여금 무릎꿇게 하고, 그를 지성소로까지 이끈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비탄해 가면서, "그는" 기도 중에 "손을 펴고 있다."

(ㄴ) 솔로몬은 이 전으로 가져와야 할 이러한 종류의 온갖 사정을 하나님께 맡긴다.

[ㄱ] 그의 전지하심에 맡긴다.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시오니" 저들 마음의 재앙과 몇 가지 궁핍함과 고통뿐만 아니라(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아시지만 우리들로부터 이러한 것을 아시게 되리라), 마음의 소망과 의사, 마음의 신실함과 위선까지도 다 아심이니이다." 주는 어떠한 기도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이며, 또한 어떠한 것이 입술만으로 행하는 기도인지를 아시옵니다." 왕들의 마음이라도 하나님께는 헤아려질 수밖에 없다.

[ㄴ] 그는 공의에 맡긴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법칙으로 어김없이 그렇게 하여 주실 것이다. 율법으로서라면 우리들 모두가 멸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ㄷ] 그의 자비로움에 맡긴다.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행하소서" (39절). "그리하면 저희가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40절).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활용하여, 우리가 사는 동안 그를 더욱 경외해야 하겠다. "여호와 그의 선하심을 경외할지어다." 그에게는 "용서함이 있으니, 경외하리로다."

c. 이스라엘 사람 아닌 이방인의 경우가 다음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자기 나라 신을 숭상하는 일이 우매하고 사악함을 뉘우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 드리려고 이 성전에 오는 개종자를 말함이다.

(ㄱ) 그는 그와 같은 사람이 많이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41, 42절).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룩하신 위대한 일에 대한 명성이 먼 나라에까지 미치리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그러한 위대한 일을 통해서 자신이 모든 신들 위에 있고, 홀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입증하셨다. "먼 곳에 사는 자들이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게 되리라.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려 깊은 백성들을 이 전을 향하여 기도 드리도록 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그네들에게도 참된 자비를 베푸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될 것이옵니다.

(ㄴ) 그는 하나님께서 개종자들의 기도를 용납하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구한다(43절).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소서" . 이처럼 일찍부터, 이처럼 고대적부터, "이방의 죄인들" 을 향한 은총에 대한 징조가 있었다. 그때에도 "본토인이나 이방인에게나 하나의 법" 이 있었던 것과 같이(출 12:49), 모두에게 같은 복음이 있었다.

(ㄷ)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에 대한 지식이 전파되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오, 이방인들이여! 특별히, 그대들의 말을 속히 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대한 좋은 평판을 본국으로 가게 하시사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만민으로 주를 알고 경외하게 하소서(그리고 저들이 주를 바르게 알기만 하면 주를 경외할 것이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배를 독점하여 그것을 이스라엘에만 한정하기를 원하는 자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며(그러한 소행은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이 계시던 시대에 유대인들의 시기심 많은 욕망이었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처럼 만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 을 기도하고 있다.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양자로 택함을 입어, 그의 자녀가 되기를! "아버지여" 그리하여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d.다음으로 전장에 임하는 군대의 경우를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총에 맡기고 있다. 그 군대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 적국과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서 야영을 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있다(44절). "저들이 적과 교전할 태세를 갖추고 전쟁의 큰 위험성과 미심쩍은 그 결말을 생각하여 저들의 눈을 이 도성과 성전을 향하고 하나님의 가호와 승전을 기도하게 될 때,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마음에 용기를 일깨워 주시며, 저들의 팔을 강건케 하시고, 저들의 머리를 엄호하시사, 저들의 대의명분을 지켜 승전을 허락하게 주소서." 전선에 있는 군사들은 집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저들 자신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면 자비로우신 응답의 소망이 있다고 격려를 받고 있다. 기도 드리는 일이 항상 싸움과 동행해야 한다.

e.끝으로 가련한 포로의 경우가 여기에 하나님의 연민의 합당한 대상으로 언급되어 있다.

(ㄱ)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범죄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는 그들과 자기 자신,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생각을 그릇된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범죄치 아니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무리 가혹한 섭리로 인간을 책망하시더라도 그것이 능히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정당화가 될 수 없고, 큰 죄를 질 위험에 빠져있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이 버려두시면 죄 짓지 않을 사람이 없는 때문이다.

(ㄴ) 그는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면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진노하사 저들을 적의 수중에 넘겨" 낯선 이국 땅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시리라는 당연한 예상을 했다(46절).

(ㄷ) 다음으로는 저들이 자신을 잘 생각하고 저들의 길을 잘 살펴서(재난이라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심사숙고케 하기 때문이다) 일단 깨닫게 되면, 저들이 회개하고 기도 드릴 것이며, 저들의 범죄를 자백하고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였나이다" 라고 말하면서 겸손하게 처신할 것이며(47절), 저들이 "적국의 땅에서-본국에서는 멸시하던-하나님께로 돌이키리라" 는 것을 예상했다.

(ㄹ) 저들이 기도로써 자기들의 나라, 거룩한 땅,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거룩한 집인 이 성전을 향하여 바라보게 될 것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 땅을 저들에게 주시고 그 도성을 택하신 분, 그리고 성전의 건립의 목표가 되었던 그 영광의 주인공인 분을 그렇게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다(48절).

(ㅁ) 그는 하나님께서 저희 기도를 들어 주시고 저희 죄를 사해 주시며 저희를 위해 신원해 주시고 저희 원수로 하여금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해 주시도록 간구한다(49, 50절). 하나님은 모든 심령을 장악하고 계신다. 그는 원하시면 극히 물살이 센 격류도 반대로 흐르게 하실 수 있으며 자기 백성에게 극히 잔인한 박해자 되었던 자로 긍휼심을 품게 하실 수 있다. 이 기도가 응답받는 것을 눈여겨 보자(시 106:46). "그는 저희로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포획자들이 포로를 방면하지는 않았다면 하다 못해 그들의 포로 생활을 편하게라도 해 주었던 것이다.

(ㅂ) 그는 하나님께 대한 저희의 관계와 저희에게 대한 하나님의 권익을 들어 강변한다. "저희는 주의 백성이 됨이니이다. 주께서는 저희를 취하여 주의 언약 안으로 끌어 들이셨고 주의 인도와 돌보심 아래 들이셨으며 주의 산업으로 삼으셨나이다. 주의 공세(貢稅)와 영광의 납세는 딴 어느 민족보다 이 산업으로부터 많이 나옵니다. 저희는 세상 만민 가운데서 구별되어 주의 산업이 되었고 현저한 은총에 의하여 주의 전유물로 되었나이다(53절)."

마지막으로, 그는 전체적인 간청으로 기도를 끝맺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든 백성이 부르짖는 대로 다 경청하시기를 요구하고 있다(52절). 구약의 성전 시대와는 달리 복음 하에서는 장소가 기도의 수용성을 좌우한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때에는 성전에서 기도하면 그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데 보탬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실체는 그리스도시다. 그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