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2월 25일 토요일 왕상8:54-61 솔로몬의 축복

Jeehyun 2023. 2. 25. 16:45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8, 누가복음 11, 욥기 25, 26, 고린도전서 12

묵상구절

8:54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

8:55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이르되

8:56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8:5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

8:58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8:59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8: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8:61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솔로몬의 백성에게 대한 축복과 권면(열왕기 상 8:54-61)

👉54-61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솔로몬의 축원과 권면의 내용을 소개.
 👉 54절, 무릎을 꿇고

그 가운데 본절은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일어났음을 밝힌다. 솔로몬이 기도할 때 여호와 앞에서 취한 무릎 꿇는 자세는 탄원(단 6:10; 행 7:60)이나 복종(왕하 1:13;마 17:14), 그리고 예배(19:18; 사 45:23)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자세이다.

즉 솔로몬이 취한 이같 은 자세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보잘 것 없음과 의존성 및 겸허함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준다. 이처럼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통치하는 왕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겸허하고 낮은 자세를 견지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겸손하게 나아와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요4:23.24).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자기 설교를 다한 뒤 전반적인 것에 대한 결론을 제시하는데 여기서도 긴 기도를 마친 뒤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백성을 축복하였다고 말하고 있다(55절).

그는 서서 축복하였는데 이는 보다 잘 들리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권세를 가진 자로서 축복하였기 때문이다.

👉 앞서 솔로몬이 성전 봉헌에 즈음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무릎을 꿇은 자세를 취하였으나, 이제 백성들을 위하여 축원하고 권면할 때에는 자세를 바꾸어 일어섰다.

앞선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대표 하는 자로서의 겸손함이 전제된 것이라면 지금의 자세는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신정 왕국의 왕으로서의 당당함이 전제된 것이다.

이러한 당당함은 큰 소리로 축복하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 ‘큰’ 에 해당하는 ‘까돌’ 은 ‘큰’ (신 6:10)이라는 뜻 뿐 아니라 ‘중한’ (창 4:13), ‘강한’ (신 2:10), ‘높은’ (창 29:7)이라는 돗도 가지고 있다. 이는 육중하며 강하고 큰 소 리로 말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솔로몬이큰 소리로 백성들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드려진 봉헌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는 내적인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말씀은 너무나도 적절했고 격에 어울렸다. 회중은 결코 흩어지지 않았다. 그의 말은 회중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기억에 남을 만하였다.

Ⅰ.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셨던 크고 인자한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56절).

그는 회중을 축복하기 위해 일어섰으나 하나님을 송축함으로써 시작하였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에게 속한 것을 위해 잘 해 주시기를 기대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온갖 기회를 이용하여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을 칭찬하자.

솔로몬은 태평을 주신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다. 그는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말하지 않고 평안이 딴 어떤 것보다 고귀한 축복인 듯 태평을 운위하고 있다.

평안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딴 게 다소 결여되어 있더라도 그 축복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저희에게 내리신 축복과 약속을 비교하는데 이는 신실성과 말씀의 진리성으로 하나님께서 존귀를 받으시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주께서는 주의 모든 이름보다 주의 말씀을 높게 하셨다" (시 138:2).

👉 하나님께서 언약하셨던 모든 것을 이루심을 찬양
이는 오늘 이루어 진 사건이 인간의 노력과 계획에 의한 결과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의 선조와 언약하셨던 바를 친히 성취하심으로 이루어진 결과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약속대로 태평을 주심을 찬양
*태평: ‘평강, 안식, 평안’
이는 안전한 거주지를 얻고 방황으로부터 벗어남, 혹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물리치사 이 땅에 구원과 안식을 주심, 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얻는 평안의 은총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약속이었다(신 12:9, 10). 일차적으로 이는 여호수아를 통해 성취되었지만(수 21:44) 그것은 불완전한 안식이었다. 왜냐하면 여전히 가 나안 족속들이 약속의 땅 도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사면의 모든 적들을 제압함으로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안식은 완전 성취되었다. 따라서 솔로몬은 이러한 사실에 감격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과 그의 세대가 누린 이러한 태평은 장차 도래할 메시야 왕국에 비하면 여전히 임시적이며 불완전한 것이었다. 참되고 영원한 안식은 오직 평화의 왕이시며 임마누엘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히 4:9-11).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이루지 않음이 : ‘떨어지다’(레11:38), ‘망하다’(민14:43), ‘무너지다’(사9:10), ‘죽다’(출19:21).
원문에는 한글 개역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았지만 ‘말씀’이란 뜻의 단어가 나온다.
⇒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한 말씀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언약하신 말씀이 효력을 잃거나, 방치됨 없이 모두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본문과 연관해서 예수께서는 “진실로 너회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고 말씀하셨다(마5:18). 

1.솔로몬은 모세를 빙자하여 허하신 약속을 언급한다. 그는 다윗에게 허락된 약속도 언급하였다(15, 24절).

모세는 교훈 외에 약속도 하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약속하신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들은 많은 시련 끝에 마침내 평안을 얻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이 그 모든 수고로부터 안식하게 될 날은 올 것이다(계 14:13).

2.그는 말하자면 계약서의 뒷면에다 완전히 영수하였다는 사실을 기재하는 셈이다.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인의 이름으로 계약이 이행되었음을 공표하여 하나님의 성실성에 대한 영원한 명예가 되게 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격려가 되게 한다.

Ⅱ. 그는 다음 네 가지에 대한 자신의 진지한 소원과 희망을 표명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회중을 축복하고 있다.

👉 5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하여 취해 주시기를 바라는 태도
      58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취하여 할 태도와 관계된 기원.

1. 하나님의 임재.

교회나 민족이나 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행복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 큰 회중도 조금 있으면 뿔뿔이 흩어질 터였고 이 세상에서 다시 함께 모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해산에 앞서 이렇게 축복한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옵소서. 그러시면 우리가 서로 떠나 있게 되는 때에도 우리에게 충분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합니다(57절). 우리를 떠나지 마옵시고 우리 앞에 있던 자에게 하신 것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시고 우리 후손에게도 영원히 그렇게 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우리와 함께(임마누)’ 계시옵고
*‘임마누’ : ‘함께(창18:23), ‘근처에’ (창 25:11), ‘곁에’ (수 7:2)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긴밀한 친교와 교제를 의미하는데, 고난이든 번영이든 같이 경험하는 관계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일에 함 께 동참하는 관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친교와 교제를 나누사 이들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하시며, 형편과 사정을 상관하지 않고 모든 일에 관여 하시고 통참해 달라는 기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이 놀라운은총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축복’이라고말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대주재이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그로 말미암지 않고 되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이미 모든 것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막 9:23). 그러한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미천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는 가장 복된 자이다(녹 16:20.25).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사실이 모든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이자 축복이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사 8:8;마 1:23).

‘우리를 떠나지 마옵시며, 버리지 마옵소서’
*이는 일시적으로 버려두거나 상관하지 않으시는 일종의 징벌 가운데도 처하지 않게 하여달라는 간구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어 일시라도 하나님이 그를 떠나거나 외면하시는 것만큼 커다란 고통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예 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라는 부르짖음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2.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

"우리와 함께 계시옵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와 계속 함께 하소서. 이 소원은 해안선의 확장과 부의 증가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셔서 그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고 그의 계명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58절).

👉 이스라엘 백성이 취하여야 할 태도의 출발점은 ⇒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는 것.
*58절을 직역하면, ‘그에게 우리의 마음이 향하게 하도록’(RSV, incline our hearts to him).
⇒ 이는 마음의 내적 성향까지도 주 께 복종하는 철저한 헌신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사역형 동사가 사용되어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가능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영적 축복은 최선의 축복이기에 우리는 이 축복을 간절히 탐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자연히 의무를 싫어하기 마련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은혜이며 은혜는 기도로써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그가 방금 한 기도에 대한 응답.

"나의 말씀을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옵소서" (59절).

"여기에서 하는 모든 기도에 대해 은혜로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면 그것은 이 기도에 대한 계속적 응답이 될 것입니다."

 👉 가까이: ‘가까이(시119:151)’, ‘친근히(시148:14)’.
⇒ 이는 아주 가깝게 다가가 친밀하게 접촉하여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백성들을 대표해서 드린 솔로몬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친밀하게 가까이 다가가 언제나 기억될 수 있는 기도가 되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이다.

솔로몬이 여기에서 자기 기도에 대해 요구한 것은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에서 허락되었다. 솔로몬의 간원은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의 예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간구는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있다. 우리의 크신 대언자(Advocate)께서 바로 이 일에 끊임없이 힘쓰시고 계신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신원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 의뢰할 수 있다. 그는 우리를 밤낮 참소하는 원수와 대항하신다(계 12:10). 그는 우리를 위해 신원하시며 우리 주장을 대변하신다. 그는 우리 일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 대로 돌아보신다. 모든 경우에, 필요할 때마다 그는 우리 일을 돌아보신다(" 돌아본다" 는 단어는 "신원한다" "…의 주장을 대신 한다" 는 뜻도 가짐:역주).

원문은 "그 날의 말씀을 그 날에" 우리를 위해 말해 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이로부터 모든 때를 따라(히 4:16, 원의: 모든 궁핍한 때에) 충분하고 알맞고 적절한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 60절,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백성을 향한 축원이 하나님 유일신 신앙의 광범위한 선포를 바라는 염원으로 결론지어지고 있다.
*본문은 여호와만이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참되고 유일하신 신임을 나타내는 강력한 표현.
*하나님께서는 신화 속에 존재하는 보잘것 없는 거짓 신이 아닌, 살아계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친히 강한 손과 펴신 팔로 구원의역사를 베푸시며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신 4:35, 39). 특별히 본문과 같은 신앙 고백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적할 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이 기적의 불로 임하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거듭 울려 퍼졌다(18:39).
*앞선 59절과 관련하여 주의 종과 주의 백성의 일을 하나님께서 날마다 돌아보심으로 인하여 세상 만민으로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줄 알게 하여달라는 이러한 솔로몬의 간구는 온갖 불신앙적인 세력이 기숭을 부리는 오늘의 세상 속에서도 진실한 신앙을 간직한 성도의 입술을 통해 동일하게 고백되어져야 할 간구의 내용이다.

4. 하나님의 영광.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이러한 축복과 은총을 이스라엘에게 내려 달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만백성이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솔로몬은 자기 나라가 자기의 바램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만민이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와서 그를 경배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솔로몬의 기도는 자기 아비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와 같이 이로써 끝이 난다(시 72:19, 20).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우리는 기도를 끝냄에 있어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란 함축된 말보다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없다.

Ⅲ. 솔로몬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꾸준히 이행할 것을 엄숙히 당부하고 있다.

백성을 위한 기도는 끝냈으므로 솔로몬은 여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백성한테로 말머리를 돌린다. 그의 설교로 더 선하게 된 자들만이 그의 기도에서 보다 나은 혜택을 얻을 것이었다. 그의 고별사는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라" 는 것이었다.

👉 화합
번영 뿐만 아니라 고난도 함께 경험하는, 또한 신분조차 뛰어 넘는 깊은 친교와 교제를 의미함. 따라서 이와 같은 원어의 뜻을 고려해 볼 때,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같이 ‘화합하여’ 라는 의역도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함이 곧 하나님과 ‘친교’ 함이요, 하나님과 ‘친교’ 함이 곧 하나님과 ‘화합’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케(솰렘) 하라
‘솰렘’ : ‘완전한 , ‘온전한’, ‘평안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성경에서 저울의 정확한 무게를 말할 때(신 25:15), 사람이 일생 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을 말할 때(대하 15:17), 모든 수 즉 전체를 언급할 때(암 1:6.9), 위협이 없는 평안한 삶을 의미할 때(창 33: 18) 사용되었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성실하게 변함없이 주의 말씀 그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성숙하여 지정된 목표에 도달한 상태나 처음부터 완전하고 평안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부족하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유혹과 시험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사는 온전함을 의미한다. ⇒ 이러한 온전함은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여 화합한 상태를 유지할 때 도달할 수 있다.

"너희는 순종하라. 그러나 그 순종은 나뉨이 없이 절대적이어야 하며 꾸밈이 없이 정직해야 하고 쇠퇴함이 없이 항구적이어야 한다" 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적인 완전이다.

👉 솔로몬의 권면은 성전 봉헌시 왕과 백성들의 마음 상태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이 이와 같이 최고점에 달한 헌신의 열기를 잃지 말고 끝까지 유지시킴으로,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자 솔로몬은 오히려 자신이 앞장서 우상 숭배의를 조장하는 아이러니를 드러냈다.

⇒ 이는 지속적인 신앙 정검과 훈련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도 교만하지 말고(잠 18:12), 우리 안에 있는 죄악된 본성과 마귀의 집요한 공격에 대항하여 늘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힘써야 한다(벧전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