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4월 2일 주일 왕상20:35-43 한 선지자가 아합을 규탄하다

Jeehyun 2023. 4. 4. 12:07

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5, 시편 3, 4, 잠언 20, 골로새서 3

묵상구절

20: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20: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20: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20: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20: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20: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20: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20: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20: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Ⅲ. 아합이 벤하닷에게 준 동정에 대한 책망을 살펴보자.

어떤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책망을 가했다. 유태인은 이 선지자가 미가야라고 한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항상 자기에게 악을 예언한다" 고 불평했기 때문이다(22:8). 이 선지자는 나산과 드고아의 부인이 다윗에게 한 것처럼 아합이 스스로 정죄할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 비유로서 아합을 비난코자 하였다. 그리고 비유를 더욱 호소력 있게 보이기 위해, 선지자는 스스로 부상병으로 꾸미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1.다소 어려운 일이었으나, 선지자는 스스로를 부상시키게 된다. 어려웠다는 것은 아무도 자기 손으로 부상을 입히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선지자는 자기의 "동료" 선지자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를 세게 때리라고 한다(35절). 그러나 별로 의욕적으로 자기를 때리려 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동료 선지자는 때리기를 거부한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선지자를 때릴 수 있을지언정 선지자 사이에 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때리기를 거부한 것은 좋은 정신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꼭 때려야 한다면 다른 사람이 때리도록 하라. 나는 안되겠다. 나는 친구를 때려야 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라는 원칙을 말함이다. 마음이 선량한 사람은 타인을 때리기보다는 도리어 맞지 않는 구타라도 더욱 쉽게 맞아 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확한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그 선지자 동료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안했던 또 다른 선지자처럼(왕상 13:24)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도전적인 불복종에 대해서 뿐 아니라 아합에게(아마 알고 있었겠지만) 선한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때리라고" 말씀하였을 때 친구 선지자를 때리지 않다가 이처럼 처벌을 받게 되니, 하나님께서, "때리라" 고 말씀하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적을 때리지 않는 사악한 왕은 더욱 심한 처벌을 받아 마땅한 것임을 암시하려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하나님보다도 더 공정하고 결백하며 자비심이 많다는 듯이 자기를 가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이 자비로우실 때에 자비를 베풀어야지, 달리해서는 안 된다. 다음에 만난 사람은 이 선지자를 여지없이 때렸다. 이렇게 하여 그 선지자는 "상하게 되었다" (37절). 아마 얼굴에 구타를 당해서 피가 나왔을 것이다.

2.선지자가 얻어 맞은 후 재(灰)를 가지고 위장하여 자기가 선지자임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벤하닷을 살려 준 일이 범죄가 된다하여 아합왕을 비난하는 얘기를 하고 아합왕의 판단이 있기를 기대했다. 얘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전장에서 붙잡은 포로 한 명을 어떤 사람의 감시 하에 두게 된다(어떤 고급 장관의 권한 하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감시할 때의 조건은 "만약 이 포로를 놓치면 지키는 자의 생명과 바꾸리라" (39절)였다는 것이었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포로가 도망을 쳤다. 포로를 놓치면 목숨을 빼앗겠다고 말한 그의 상급자의 지시를 무시한 이 사람을 아합왕은 놓아 주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합왕은 "천만에 그런 책임을 맡지 않았었거나, 혹은 더욱 충실하고 주의하였어야 옳았을 것이며(법 대로 해야 한다) 약속을 이행 안했으니 그대로 당해야 하며 구제란 있을 수 없노라. 그대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한다" 고 말했다. 선지자가 위장한 것을 벗기고 아합에게 자기가 선지자임을 보여 주고(41절), "그대가 그 사람이로다. 그것이 나의 운명인가? 아니다 네 것이로다. 그대가 스스로 결정 한 것이다. 당신 입으로 판단하였도다" 라고 분명히 말했다. 총사령관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긍지와 섭리로서 그대의 손에 벤하닷을 파멸하도록 하였는데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의로 그리고 자진해서 하나님을 깨끗이 잊어버렸고, 하나님의 신임을 배반했으며, 그대의 승리의 목적을 잃었도다. 그대가 구조했던 바로 "그 사람의 목숨과 그대의 목숨을 바꾸는 것 이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도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22:35). "그리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으로 대신하리라" 고 하였다 그후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왕하 10:32, 33). 그들의 다른 죄악이 그들을 비천하게 만들었을 때, 이 사건도 심판을 받았다.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속여서 하는 것" 이 되는 그런 때가 있다(렘 48:10). 어리석은 동정은 도성을 붕괴한다.

3.이 비난에 아합이 몹시 분개하는 것을 본다.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지만" (43절), 진실로 참회하는 것이 아니며, 실수한 바를 원상태로 하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선지자에 대해 격노하고 하나님에 대해 분격하며(마치 아합에게 선고된 형이 너무 가혹한 것처럼) 자신이 안절부절 못하고, 승리에도 불구하고 모든 웃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 섭리로 한 왕의 긍지를 견제하셨고, 말씀으로 또 하나의 왕의 승리에 실망을 안겨 주셨다. "그런 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2: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