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13일 토요일 왕하15:1-7 유다 왕 아사랴(대하 26:1-23)

Jeehyun 2023. 5. 15. 23:08

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22, 시편 62, 63, 이사야 11, 12, 야고보서 5

묵상구절

15: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15: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15: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15: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15: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15: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5:7 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병행구절)대하26:1-23 <유다 왕 웃시야 (왕하 14:21-22; 15:1-7)>

26:1 유다 온 백성이 나이가 십육 세 된 웃시야를 세워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26:2 아마샤 왕이 그의 열조들의 묘실에 누운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26:3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6: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26:6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고 가드 성벽과 야브네 성벽과 아스돗 성벽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에 성읍들을 건축하매

26:7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 블레셋 사람들과 구르바알에 거주하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을 치게 하신지라

26:8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26:9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26:10 또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물 웅덩이를 많이 파고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많이 길렀으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었더라

26:11 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병영장 마아세야가 직접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지휘관 하나냐의 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26:12 족장의 총수가 이천육백 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26:13 그의 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적을 치는 자이며

26:14 웃시야가 그의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준비하고

26:15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26:16 <웃시야에게 나병이 생기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26: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26: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6: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6: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26:22 웃시야의 남은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26:23 웃시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는 나병환자라 하여 왕들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의 조상들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앞선 14장에서는 남유다 제9대 왕 아마샤의 통처와 복어스라엘 제13대 왕 여로보암 2세의 통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처럼 14장은 각각 한 명씩의 남•북 왕국의 왕의 통치를 보도하였으 나 본장은 남왕국의 두 왕과 북왕국의 다섯 왕 등 무려 일곱 왕의 통치를 보도하고 있다.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7절: 비교적 선정을 베푼 남유다의 제10대 왕인 아사라의 통치를 다룸.
8-31절: 앞선 14장에서 소개된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 이후로부터 북이스라엘의 제19대 왕이며 마지막 왕인 호세아가 등극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북왕국 을 다스린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의 통치를 다룸.
32-38절: 남유다의 제11대 왕인 요담의 통치를 다룸.

이처럼 남북 일곱 왕의 통치가 소개되는 본장의 전반적인 내용은 매우 암울하다.
물론 남왕국의 두 왕인 아사랴와 요담은 선정을 베푼 왕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사랴는 산당 제사에 대한 징벌로 문둥병에 걸리고, 요담 역시 산당 제사에 대한 정벌로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의 침략을 받는다. 북이스라엘의 경우는 더욱더 비극적이다. 즉 다섯 왕 모두 악정을 베풀었을 뿐 아니라 모반과 살인 등으로 얼룩진 거듭된 왕위 찬탈의 악순환을 반복했던 것.

이러한 본장의 기사는 17장에서 기록될 북왕국의 최종 멸망과 25장에서 기록될 남왕국의 최종 멸망이 너무나 필연적임을 보여준다. 즉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구약 구속사의 주역으로 부름 받은 구약 선민이었으나 그들 모두 타락하여 자신돌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마침내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본장은 멸망을 향하여 질주하는 남북 왕조의 비극적 역사의 한 단 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아사랴의 통치(열왕기 하 15:1-7)

본문의 이야기는 아사랴 왕의 통치에 대한 간결한 기록이다.

👀아사랴 왕은
남유다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인 55넌을 다스린 제14대 왕 므낫세 다음으로 오랜 기간인 52년 동안(B.C. 791-739년) 통치함. 병행 문단인 대하 26:1-23에는 그의 이름이 일관되게 ‘웃시야'로 나오고 있다. 재위 초기에 아사랴는 선지자 스가랴의 지도를 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기 때문에 블레셋을 정복하고 암몬으부터 조공을 받는 등 국력을 신장시킬 수 있었다(대하 26:1-15). 하지만 스가라 사후 그는 교만해져서 왕의 본분에서 벗어나 제사장의 고유 직무인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을 행하려고 하였다.
⇒ 이에 하나님의 진노로 문둥병이 발하여 별궁에 홀로 거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아들 요담이 그를 대신하여 왕궁을 관러하며 국민을 치리하게 되었다(대하 26:16-23).

이러한 아사랴의 교만과 타락은 조부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을 때에는 바르게 살다가 여호야다가 죽은 이후에는 타락하여 우상 숭배에 빠진 경우와 비슷하다(21:1-21; 대하 24:1-27).
⇒ 양자는 모두 신앙의 지도자를 잃은 후 영적 긴장을 늦추게 되었고 나라가 평안해짐에 따라 점차적으로 영적 타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2절, 16세에 왕 등극. (아사랴의 통치 기간 참고)
일부 기간은 아버지 아마샤와 공동 통치한 섭정 기간 포함.
본문은 14:21에 이어 다시 한번 아사라의 등극 당시의 나이를 ‘16세’ 로 밝히고 있다. 이 나이는 섭정 왕으로서 처음 등극한 나이로 볼 수 있다. 즉 그는 16세였던 B.C. 791년경에 즉위하여 아버지 아마샤가 죽은 B.C. 767년경까지 24년 간 공동 통치한 후, 40세경에 단독 통치를 시작하였던 것. 본서 저자가 여기서 단독 통처 시작 시점이 아니라 보다 나이 어린 시점인 공동 통치 시작 시점을 기록한 것은 아사랴가 자신의 결단이 아닌 주위 세력들의 간섭을 받으며 통치할 수밖에 없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아마 그는 통치 초기 부친 아마샤의 섭정하에 나라를 다스렸을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영적인 측면에서 그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이같은 영향에 대해서 본서 저자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역대기 기자는 아사랴의 통치 초기에 신앙 적인 도움을 준 인물로 선지자 스가랴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대하 26:5).

아사랴에게 영향을 미친 스가랴 선지자
대하 26:5에 그가 ‘하나님의 묵시를 밝허 아는' 자로 소개되고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아사라를) 형통케 하셨더라"란 평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스가랴는 진실한 선지자였고 아사라가 통치 초기에 선정을 베푸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이 기록의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다른 것들과 같은 형식의 것이다. 아사랴는 어려서 즉위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통치했고(2절)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했다(3절)(선한 통치가 오래 계속된 것은 그 왕국으로서는 행복한 일이었다). 그는 산당들을 제거할 만큼의 열심과 용기는 없었다(4절).

👀 3절, “아사랴가 … 정직히 행하였으나”

병행 문단인 대하 26:1-5에 보면 본문과 같은 평가 외에도 아사랴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즉 아사랴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가르쳐준 스가랴로 인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구했고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를 형통케 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는 이러한 사실들을 생략하고 아사랴가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정직히 행했다고 기록함으로써, 아사랴도 부친 아마샤와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 러낸다. 즉 아사라의 통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언급되는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라는 표현은 아마샤가 아사랴에게 좋온 영향을 끼쳤다는 긍정적 의미와 더불어 초기에 선정을 베풀었지만 에돔과의 전쟁 이후 우상을 숭배하는 등 온갖 악한 행실을 저지르다 궁극적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던 부친 아마샤의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 이어지는 4절은 부친의 후기 생애에서 나타난 부정적 측면이 아사랴에게도 나타났음을 밝히고 있다.

4절, 오직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 본절은 아사라의 52년 간의 통처 전반에 대하여 소개하는 3.4절 가운데서도 특히 그의 종교 정책을 간략히 언급하는 부분.

그런데 그의 종교 정책은 14:4에 나오는 그의 부친 아마샤의 종교 정책과 동일하다. = 즉 그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므로 백성들로 산당에서 제사지내는 악행을 계속하도록 하였던 것. 이처럼 열왕기 저자가 선왕 아마샤에 이어 아사랴에 대한 평가에 었어서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유다의 각 왕들을 평가함에 었어서 ’산당의 제거 유무‘ 가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다 왕 중에는 선한 왕으로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사실이 과오로 지적되는 왕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바로 본절에 나오는 아사랴와 그의 부친인 아마샤, 아사, 여호사밧, 그리고 아사랴의 아들 ’요담' 등이다. 이러한 산당 제사는 히스기야 시대에 이르러서야(18:4) 비로소 제거되었고 요시야 왕 때에야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한 제의가 완전하게 정착하게 된다 (23:8).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 중앙 성소를 중심한 제의가 드려져야 마땅함에도 이를 저해하는 산당을 아사랴 역시 허용한 과오를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아사랴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백성들로 하여금 산당 제사의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 사실만이 과오로 지적되고 었는 것에 반해 관련 문단인 대하 26:16-20에서는 조금 다른 사례를 기록함.

즉 아사랴가 왕국이 강성해짐에 따라 마음이 교만해져서 스스로 제사를 주도하려고 했고 제사장의 만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향단에 분향하려 한 심각한 범죄까지 저지른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것. ⇒ 이와 같이 역대기 저자는 아사랴의 죄를 개인적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한 반면, 본서 저자는 조상 때부터 되물림 되어 내려온 것으로서 백성들에게 강력 한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적 차원에서 아사라의 죄를 지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열왕기 저자가 본서틀 기록한 목적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즉 본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었어서 순종에 따른 축복과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거듭 언급하는 바 일차적으로 아사랴가 불순종으로 인헤 5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문둥병의 징벌을 받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유다 백성들이 계속하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는 죄를 범하고 있음을 밝혀 ⇒ 남왕국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신 므로닥보다 힘이 약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듭 죄를 범하는 유다의 온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멸망을 허락하신 것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 말하자면 열왕기서 저자는 ⇒ 아사랴의 죄를 지적하되 남유다 전체의 범죄와 관련된 죄만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2.(하나님이 그를 문둥병으로 치셨다)(5절)는 특별한 사실은 역대하 26장 16절 이하에서 그 이유와 함께 보다 자세히 언급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통치 전반기의 영광과 후반기의 불명예를 보게 된다.
아마샤가 행했던 바와 같이 그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했다. 아사랴 왕은 아마샤를 좋아했고 처음에는 잘 해나갔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 5절은 여호와의 징벌로 아사라가 문둥병에 걸려 격리 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아들 요담이 섭정하였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여호와의 징계는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 이처럼 아사랴가 여호와의 징계를 받아 문등이가 되었다는 본문의 보도는 3절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라는 표현과 모순 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것은 그의 초기 행적과 관련.

열왕기에서는 생략되었지만 그의 후기 행적과 관련되는 대하 26:2-16을 보면 그가 돼 하나님외 진노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아사랴에 대한 역대기 저자의 기록을 보면 아사랴는 이방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많은 영토틀 확보하였으며 주변 나라의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결과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고 부왕 아마샤와 같이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된 것인양 행하며 교만에 빠지고 말았다. 게다가 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하는 큰 죄를 범하였다. 제사장이 만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소 분향을 강행하려 한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의도적으로 어긴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무시한 처사였다.
⇒ 따라서 그는 그 자리에서 즉시 문둥병에 걸리는 징계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아사라가 여호와의 정계를 받아 문둥병에 걸러게 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산당 제사와 연관해서 곧바로 징계를 받은 것으로 기록하여,
⇒ 아사라에 대한 범죄와 징계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닌 남유다 사희 전체를 포괄하는 임을 부각시켰다. 즉 백성의 대표인 왕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은 백성들 전체가 산당 제사로 대변되는 우상 숭배로 인하여 저주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5절, “치셨으므로”
완형 ‘나가으’는 단순히 ‘벌을 내리다’ 라는 뜻이 아니라, ‘질병으로 벌을 내린다’ 라는 의미와 ‘(손으로) 만지다’(왕상19:5)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아사라에게 문둥병이라는 질병으로 징계하시되 마치 손으로 그의 몸을 만지신 것과 같이 직접적으로 징계하셨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병행 구절인 대하 26:19,20을 보면 여호와께서 치심으로 문둥병이 발생했다는 본서의 기록과는 달리, 아사랴의 문둥병은 저절로 생겨 난 것이며 여호와가 치심으로 여호와의 전에서 쫓겨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를 통해 본서 저자는 아사랴의 문둥병의 직접인 동인이 바로 여호와이심을 역대기 저자보다 더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사랴에게 다른 재앙이 아닌 특별히 문둥병으로 징계하신 이유는 무엇언가?
⇒ 이는 열왕기서에서 문둥병과 연관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
5장에 보면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순종으로 문둥병에서 치료받은 사건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물질을 탐하다가 오히려 문둥병에 걸린 사건이 등장한다(5장). ⇒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순종할 시에는 이방인일지라도 축복을 받지만 불순종할 시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자일지라도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남왕국 유다의 왕조차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문둥병 징벌을 당한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불순종한다면 다윗 언약을 소유한 남왕국일지라도 가차없이 재앙을 내릴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병행 구절인 대하 26:21에서는 아사랴가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다'라는 기록을 추가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아사랴가 명목상 왕일 뿐 실제로는 왕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 반면, 역대기 저자는 아사랴와 여호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첨가하고 있다. 신정 왕국의 왕에게 있어서 통치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 중한 징계는 이처럼 여호와께 직접 나아갈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는다.

(1) 그것은 그가 문둥병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재난과 인간의 연약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것들은 인간의 본성에 공통된 요소다. 만일 그들이 극악한 죄를 범한다면, 그들은 가장 고통스런 징계의 채찍 앞에서 아주 처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2) 하나님께서 문둥병으로 그를 치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가 제사장의 성소에 무례하게 침입한 일을 징계하시기 위함이었다. 위대한 자라도 교만하면,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그를 낮추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들보다 높으시다는 것과, 그가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그들이 교만하기 때문임을 알게 하실 것이다.

(3) 그가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그가 회개하고 그 죄사함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타인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 그는 생명이 있는 한 계속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 아래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가 그러했던 것은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유익한 일이었을 것이다.

(4) 그가 "별궁(別宮)에 홀로 거하였다" 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가 비록 왕이라도 따라야 하는 규율이다. 즉 그는 율법에 따르면 의식상 부정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의 전에 무례히 들어가서 제사장인 체한 일로 인하여 이후 자기 궁전에서 쫓겨나 죄수로서 혹은 은둔자로서 감금되어 지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별궁" 은 쾌적한 그리고 안락한 곳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이는 그곳을 "자유로운 집" 이라고 번역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자기 욕구대로 할 자유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명예롭고 활동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사회에서 단절되어 "별궁" 에서 항상 거하는 것은 하나의 큰 굴욕이었다.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보다 하위의 사람들과 사귀도록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생활 자체를 하나의 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가장 명상적인 사람들조차도 곧 지쳐 버릴 생활이다.

(5) 그의 아들이 그의 궁정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왕국에 대한 두 가지 일에 있어서 부왕(副王)이었다는 사실이다.

궁전에 대하여란 그가 그 "궁전을 다스렸기" 때문이고, 그 왕국에 대하여란 그가 "그 땅의 거민(居民)을 재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아샤라 왕에게는 하나의 위로였다. 그리고 그의 자리를 맡을 아들을 가진 그의 왕국에게는 하나의 축복이었다.

💡 6절, 지금까지 기록된 아사라의 행적은 그의 통치 기간 52년에 비하면 양적인 면에서 너무 보잘 것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1-7절에 기록된 내용에 있어서도 아사랴가 산당을 없애지 아니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의 죄를 짓게 한 결과 여호와의 징계로 문둥병자가 되어 일생을 별궁에서 불행히 지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는 아사라가 초창기에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했으나 통치 후반기에는 그러한 태도를 버리고 다른 역대 왕들과 다름없이 악을 행하 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의 보도에 의하면 아사랴도 다른 유다 왕들처럼 다윗 왕조의 묘실에 장사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하26:23에 의하면 아사랴 즉 웃시야는 ‘왕실의 묘실에 접한 땅곧그 열조의 곁'에 장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아마 그가 문둥병자였기 때문에 부정하게 여겨져 열조의 무덤 에 묻허지 못하고 열조둘의 무덤 결에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본서 저자가 이와 같은 부정적 사실을 생략하고 비교적 중립적으로 기록한 것은 비록 웃시야가 범죄함으로 여호와의 징계를 받기는 하였지만 다윗의 언약 아래에 있는 남유다의 왕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