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16일 화요일 왕하15:17-22 이스라엘 왕 므나헴

Jeehyun 2023. 5. 17. 23:56

묵상구절

17 유다 왕 아사랴 제삼십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십 년간 다스리며

18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되돌아가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21 므나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2 므나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3.므나헴은 10년간 통치했다(17절).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왕상 20:31)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그의 나라의 수치거리인) 이 므나헴은 자기에게 항복하기를 다소 주저했던 자기 나라의 백성들에게 너무나 잔혹하여서, 한 성읍과 그 해안을 파멸시켰을 뿐 아니라-자기도 여인의 자식임을 망각하고-" 아이 밴 모든 여인을 갈랐다" (16절).

👀 17절, 유다 왕 아사랴 삼십구년에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왕이 되어 10년간 다스림

본절은 므나헴의 왕위 등극 공식 문구.
이는 므나헴이 살룸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었다는 앞선 14 절의 보도와 내용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14절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서 저자는 므나헴의 잔혹한 행적을 16절에서 먼저 소개한 이후에 그의 등극 사실을 묘사한다.
⇒ 이는 자기에게 반대하고 저항했다는 이유 때문에 한 성읍의 아이 밴 여인 모두의 배를 가르는 잔학 행위를 저지르고도 자신은 태연하게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는 므나헴의 비정함을 적나라하게 부각시켜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더불어 본서 저자는 이러한 므나헴의 왕위 등극 사실을 서술하면서도 이전 왕들과 동일한 왕위 등극 공식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 이는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저자의 신념을 반영해 준다. 즉 므나헴이 모반하여 왕이 된 사건이나 이후 저지른 모든 유혈 사태까지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복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사건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므나템의 즉위 연대

‘아사랴 39년'은 아마샤(B.C. 796-767년)와 함께 섭정한 24년의 기간을 포함한 연대로 B.C. 752년경이다. 므나헴은 즉위 후 B.C. 742년경까지 10년 간 왕좌에 있었다. 그러나 그 10년의 통치 기간은 여호와께 악을 저지른 기간의 연속이었다는 점에서 스가랴의 6개월 통치 기간이나 살룸의 1개월 통치 기간과 질적으로 전혀 다를 바가 없 다. 므나헴 통치 당시 북이스라엘에는 호세아(B.C. 755-723년)와 아모스(B.C. 793-750년) 등의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선지자들이 중교적•도덕적 타락을 강도 높게 지적한 것은 그 당시 시대가 극도로 혼탁한 가운데 있었으며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시기가 임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18절,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평생을 떠나지 아니하였음

“평생을” → 모든 그의 날들.
므나헴은 평생 여로보암의 죄에 유착되어 있었다는 강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이처럼 북이스라엘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회복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죄에 집착하며 오히려 점점 더 멸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토록 야만스럽고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그런 마음씨가 인간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응당 이상하게 여길 수 있다. 이런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는 스스로를 강화하고, 자기 주변의 모든 자들을 놀라게 하려고 희망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 앗수르 왕이 그를 대항해 왔기 때문이다.

(1) 그는 자기 백성을 거의 신뢰하지 않았던 고로 앗수르 왕을 대적으로 부닥쳐 볼 생각도 감히 못했다. 결국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평화를 얻지 않을 수 없었다.

(2) 그는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잡게 해 줄 그런 도움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는 이 사실을 앗수르 왕과의 흥정계약의 일부로 삼았고(앗수르 왕은 다른 기회에 이것을 유리하게 이용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불만을 품은 자기 백성들을 치는 일에 도와 달라고 한 것이다.

그가 앗수르 왕의 우의(友宜)를 흥정한 돈은 막대한 액수로서, 은 1000달란트에 달했다(19절). 그리고 므나헴은 군대의 강제 집행으로 "모든 유력한 부호들에게서" 이 돈을 토색(討索)하였다. 그래서 그것이 조달되자 "앗수르 왕에게 주었다." 그것은 그의 군대에 대한 급료였고 매 사람마다 은 50세겔씩에 해당된다. 그래서 그는 잠시 동안 앗수르 왕을 피할 수 있었다.

앗수르 왕이 그 땅에 머물러 숙영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부하 군대는 별 어려움 없이 너무나 풍부한 노획물을 얻었으므로, 그 후 얼마 안 되어 노략물이 떨어지자 다시 쳐들어오는 용기를 얻었고, 그래서 나라의 보호자가 되기로 했던 "그는" 반역자가 되었다.

👀 19절, 므나헴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대외적인 주요 사건.

⇒ 앗수르의 침공 사실

앗수르의 ‘불’
본문에 등장하는 “불” 즉 디글랏 빌레셀 3세는 29절에서 베가 왕 때 북이스라엘을 침공했으며 16:5-9에서 남유다 왕 아하스의 요청으로 다메섹을 침공했던 자와 동일 인물. 하지만 본문의 사건은 29절과 16:5-9의 사건들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발생한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불, 즉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약 20년(B.C. 745-727년)에 걸쳐 앗수르의 왕위에 있었던 자로서 그의 주요 정책은 팔레스틴 원정을 통하여 정치, 경제적 이권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팔레스틴은 애굽과 서남 아시아, 그리고 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광물과 목재가 풍부하였다. 때문에 앗수르는 이곳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팔레스틴 원정을 여러 차례 시도하였는 데, 본문은 그의 원정 가운데서 시기적으로 첫번째에 해당한다. 그리고 16:5-9 사건은 본사건과 29절의 사건이 있은 후 북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반앗수르 동맹이 맺어진 후 발생한 사건이다. 대체로 본문의 사건을 B.C. 745년경에 발생한 앗수르외 1차 원정으로, 2) 29절의 사건을 B.C. 740-734년 사이에 발생한 앗수르의 2차 원정으로, 3) 16장의 사건을 B.C. 732년경에 일어난 앗수르의 3차 원정으로 추정한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었음

침입을 막고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함.
⇒ 19절, “저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직역하면 ”그의 손이 저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하여“
본문은 므나헴이 단지 국난을 극복하고자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쳤던 것이 아니라, 앗수르 왕의 능력을 힘입어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려는 적극적언 목적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한글 개역 성경은 앗수르 왕의 ‘손’ 을 ‘도움'이라는 추상적 의미로 번역하여 원문의 의미를 잘 드러내지 못했다. 원문상 본절은 앗수르 왕의 '손'과 ’자기 손에'로 번역된 므나헴의 ‘손'을 동시에 기록함으로써, 므나헬이 앗수르 왕과 결탁하여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권은 전적으로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는 것인데, 므나헴은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을 망각하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방 왕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실제로 므나헴이 죽기 전인 B.C. 743년경에 세워진 디글랏 빌레셀의 비문에는 므나헴의 조공 사실이 기록 되어 있다. 디글랏 빌레셀은 팔레스틴 지역 뿐 아니라 애굽의 경계에 이르는 지역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이에 반항하는 국가들은 철저하게 응징하였다. B.C. 732년경 다메섹의 함락에 따른 아람의 멸망과, B.C. 722년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그 실례이다.

은 일천 달란트는 앗수르 왕 아닷니라리 3세가 아람 왕으로부터 강탈한 2,300달란트,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바친 금 30달란트와 은 800달란트와 비교될 만큼 엄청난 금액. 실제로 은 한 달란트는 6,000 드라크마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1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 따라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5만원으로 계산하면 은 일천 달란트는 약 3000억 원 정도의 막대한 금액.

이처럼 므나헴이 많은 액수의 조공을 앗수르 왕 불에게 바친 것은 그의 침공이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조공으로 인해 자신의 취약한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물질을 통해서 국난을 극복하려고 했던 므나헴의 행동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 이를 통해 앗수르의 침공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는 있었으나 북이스라엘은 군사적인 측면(17:7)에서 점점 앗수르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앗수르에 의한 멸망을 앞당기고 말았다.

이처럼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 지 않고 조공을 통해서 이방 왕을 의지하는 므나헴의 모습은 국난을 조공으로 헤결하려고 했던 남 유다 왕 히스기야의 그럼자와도 같다(18:13-16).

히스기야 역시 앗수르의 침공을 조공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연이은 침공을 받았으며, 이러한 태도는 바벨론 사신들에게 왕국의 모든 보화를 공개하는 어리석옴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남유다의 멸망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20:12-18).

20절, 므나헴은 이스라엘을 침공한 앗수르 왕 불에게 줄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북이스라엘 내의 부자들에게 돈을 강제적으로 징수하였음

므나헴이 일천 달란트의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세금을 징수한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동원하여 부자들에게 은을 강제로 빼앗았음. 므나헴이 집권했을 당시 이스라엘은 거듭되는 반란과 분쟁으로 인해 조공조차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이 바닥난 상태였으므로 결국 부자들의 주머니를 강탈하여 조공을 바칠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

각각 부자들에게 은 50세겔씩 갈취함

은 50세겔=노동자 200일의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
은 일천 달란트를 세겔로 환산하면 ⇒ 150만 세겔, 한 사람당 은 50세겔씩 약 3만명 정도의 사람에게 징수해야 모아질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금액.
⇒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당시 므나헴은 극심한 강압 정치를 하였으며 국가적으로 볼 때 나라의 안보와 정권의 안정을 위하여 무리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을 정도로 북이스라엘은 총체적 난국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 저자는 므나헴이 북이스라엘을 10년 간 통치하면서 다른 업적도 쌓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그는 악한 왕이었고 한 일이라고는 그가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서 부유한 백성들에게 세금을 강제 징수한 것밖에는 없다는 식으로 본문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북이스라엘의 열왕들의 치리에 대하여 신앙적인 측면과 관련해 일관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본서 저자는 므나헴에 관하여는 신앙적인 면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 대한 통치의 측면에 관해서도 부정적인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므나헴은 자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딥사성에 가서 그 사람들을 학살하고 심지어는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잔악 행위와 쌍을 이루어서 본문은 므나헴이 이방의 왕을 만족시키고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백성들을 토색한 사건을 보도한다. 이는 단지 므나헴 때에만 있던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도리어 북이스라엘 역사 전반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왕들의 잔악 행위와 토색, 갈취를 받아 온 백성들의 고된 삶을 표본적으로 반영해 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므나헴의 통치와 관련된 본단락의 기사는 우상 숭배로 점철된 북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역사가 하나님의 진노 하에 있었을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고통거리였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앗수르 왕과 평화스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또 자기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므나헴이 취한 본문의 정책은 일시적인 평안을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영구적인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먼 불신앙적 방편이었을 뿐이다.

므나헴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했다. 그것이 참으로 자신의 왕위를 공고히 하고 백성들을 위기 가운데서도 건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보다는 앗수르 왕을 의지함으로써 패망의 길을 택하였다. 즉 므나헴은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왕위를 견고히 세우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안있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하게 된다.
⇒ 이는 므나헴이 택한 길이 얼마나 어러석으며 그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행한 바 인간적인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반영해 주는 역사적 증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