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28일 주일 왕하19:20-34 이사야가 왕에게 보낸 여호와의 말씀(사 37:21-38)

Jeehyun 2023. 5. 27. 08:24

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1, 시편 81, 82, 이사야 29, 요한삼서 1

묵상구절

19: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19: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19: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19: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19: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19:25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19:26 그러므로 거기에 거주하는 백성의 힘이 약하여 두려워하며 놀랐나니 그들은 들의 채소와 푸른 풀과 지붕의 잡초와 자라기 전에 시든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19:27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내게 향한 분노를 내가 다 아노니

19: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19: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19: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19: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19: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19: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19: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예언된 산헤립의 몰락(열왕기 하 19:20-34)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여 준 은혜롭고 풍부한 답변이 나와 있다. 히스기야가 보냈던 바로 그 사람의 손으로(6, 7절) 다시 전달돼 온 메시지는 그의 기도에 충분한 응답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불변하는 사실로 그가 격려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시다" 는 사실 때문이다(히 6:18).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산헤립에 대(對)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그에게 확인하셨다(20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고소하는 기도의 대상자들은 비참한 것이다 왜냐하면 압박당하는 자들이 압제자를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출 22:23).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 오른 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들으신다(시 20:6).

이 메시지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Ⅰ. 산헤립과 그의 군사는 혼란과 수치를 당한다. 그가 낮아지고 꺾여지리라고 예언되었다. 이사야 예언자는 산헤립의 말씨처럼 그에게 고상하게 말한다(사 10:5). "오, 앗수르인이여, 나의 진노의 막대기로다!" 이 메시지는 산헤립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의 결과로 인하여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섭리자 하나님은 증인과 더불어 그에게 그것을 말하셨다. 아마 산헤립 자신의 마음이 이 사실을 자신에게 속삭여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당신의 분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를 발하며 진노하시기도" 하신다(시 2:5).

산헤립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자로 표현되어 있다.

1.예루살렘이 그를 경멸한다(21절). 그는 자기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처녀인 시온의 딸들의 두려움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고, 위협으로 그녀를 강제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 있어서 그의 보호를 받는 처녀는 너를 대항하고, 너를 멸시하고, 너를 비웃어 경멸한다. 너의 무력한 협박은 조소거리에 지니지 않는다. 하늘에 앉으신 그가 너를 비웃으신다. 그러므로 그의 그늘에 거하는 자도 그같이 하느니라."

하나님은 이 말로써 히스기야와 백성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육의 눈에는 원수가 방대하게 보였지만, 신앙의 눈에는 그들이 보잘 것 없이 보였다.

2.하나님의 원수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비참하게 될 충분한 조건이 된다. 히스기야는 이 점을 역설했다. "여호와여! 그가 주를 비방하였나이다" (16절).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는 실로 그리했니라. 나도 그것을 내 자신에 항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22절). 저희가 누구를 비방했는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아니냐? 그의 명예는 그에게 귀중한 것이요, 누가 그의 명예를 변호할 힘을 가지지 않았는가? 이교도의 신들은 그럴 능력이 없느니라." Nemo me impune lacesset-나를 노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받으리라!

3.거만하고 자만심 강한 바보라고 표현되었다. 그는 크게 과장된 공허한 말을 지껄이고, 위협과 허세로써 여호와를 비방하며, 거짓 재능을 과시했다.

(1)그는 자기의 공적을 분수 이상으로, 실제 이상으로 과장했다(23, 24절). "너는 이런 저런 것을 말했다." 이 사실은 그가 쓴 편지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거기에 쓰여진 내용을 알고 계시며, 다른 곳에서, 아마 그의 회의나 군사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말한 것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히스기야에게 알려 주셨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의 자랑을 주목하시고, 그것들을 언젠가는 헤아리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발견하여 낮출 것이다" (욥 40:11). 산헤립은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장수라고 생각했던가! 그는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전차를 몰아 가고, 숲과 강을 뚫고 달리며,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자기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그의 앞에서 견딜 수 없으며,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언덕도 높아서 오르지 못할리 없겠고, 어떠한 나무도 그가 쓰러뜨릴 수 없을 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강물도 말릴 수 없을 만큼 깊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치 하나의 신적인 권능을 가진 자처럼 행동했다.

(2)그는 그 위대한 일을 한 영광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여호와께서 하신 일" 이다(25, 26절). 산헤립은, 그의 편지에서, 히스기야도 그 사실을 들었다는 점을 역설했다(11절). "너희가 앗수르 왕이 행한 일을 들었도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회신은 하나님이 옛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 즉 홍해를 말리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에 정착시킨 일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이것을 위하여 너희가 행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그리고 너희가 땅, 특히 유다 땅을 황량하게 한 일에 대하여는 너희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 즉 단순한 연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을 이룬 자는 바로 나다. 내가 너희에게 힘을 주었고, 너희에게 성공을 주었고, 현재의 너희가 되게 하였고, 너희를 일으켜 견고한 성읍을 황폐케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악을 벌하였고 "그로 인하여 그 거민은 약세에 몰렸도다." 그가 행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아래 된 일인데, 그가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대적하다니,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가! 산헤립의 허풍은 이사야 10장 13, 14절에 상세히 설명되었다. "나의 손의 힘으로 내가 그것을 행했다. 그리고 나의 지혜로……"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느냐?"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대답이다. 수레바퀴 위의 파리가, "내가 먼지를 피우는구나!" 하고 말하는 것과 손에 들린 칼이 "내가 하는 것을 보라!" 하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불합당한 말이다. 되어지는 모든 일의 중심 동인(動因)이 하나님이시라면, 자랑이란 일체 부당한 것이다.

4.그가 망령되게 말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견재와 견책을 받고 있다.

(1)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인지(認知) 아래 있다(27절). "나는 너의 주거(住居)를 안다. 너가 비밀히 계획하고 도모하는 것, 들어오고 나가는 것, 전진과 후퇴, 나와 나의 백성에게 대한 너의 분노, 너의 열정의 동요, 네가 일으키는 잡음과 소요, 이 모든 것을 내가 안다" 는 것이다. 그것은 적의 동태를 알기 원했던 히스기야가 알고 있는 사항 이상의 것이다. 하나님의 눈이 그를 끊임없이 감찰하신다면, 이것에 대하여 무슨 부족이 있을까?(대하 16:9)

(2)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다(28절). "거대한 바다 짐승 같은 너의 코에다 내가 갈고리를 꿰고 거대한 악어 같은 너희 입에다 자갈을 먹이겠다. 나는 너를 제어하고, 너를 다스리고, 내가 원하는 길로 돌이키고, 너를 바보와 같은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겠고 re infecta-너의 목적을 좌절시키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원수들의 코에다 갈고리를 꿰고, 그 입에 자갈을 먹이고, 그들의 노(怒)를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되게 하고 봉사가 되게 하시며 그것을 기억치 못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리하여 그 도도한 물결은 조용해질 것이다."

Ⅱ.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에게 구원과 기쁨이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화해하셨다는 표시이다. 또 그의 노(怒)가 사라졌다는 표시이다(사 12:1). 그것은 그들의 눈에 놀라움(표적이란 때로 이것을 의미한다)이요, 선의 표지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간직하셨던 보다 큰 자비의 보증이며, 모든 면에서 그들의 고통이 좋을 결말을 가져오리라는 증거였다.

1.식량은 귀해지고 비쌌다. 그리고 식량 조달을 위해 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땅의 소산은 앗수르 군대가 다 먹어 버렸다(사 32:9, 10 이하). 이유는 그들이 그 땅에 거하며, 실제로 "양식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다면, 그들을 굶어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근으로 죽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그들은 칼을 피할 것이다. "너희는 이 해에 절로 자란 것을 먹으라. 그러면 너희는 그것을 풍족히 얻을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이 너희가 뿌린 것을 수확했느냐? 너희는 뿌리지 않은 것을 수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해는 안식년이었다. 그때는 그 땅이 쉼을 얻는다. 그래서 경작을 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그 해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여호와 이래" -여호와께서 공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씨와 노동을 절약할 것이며, 그 해에는 또 땅이 절로 내는 소출이 그들을 부양하며, 기경하는 사람이 있기 전 땅이 소출을 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창 1:11).

2.그 나라는 황폐되었고, 가정은 붕괴되고, 산산이 흩어졌고, 그리고 모든 것은 혼란되었다. 그러한 군대의 침략이 전국에 밀어 닥쳤을 때는 달리 또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에 대하여, "유다의 집을 피한 남은 자는" 다시 자기의 집에 즉 본토에서 정착되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고, 번영하리라는 약속을 받는다(30절).

그들의 번성함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라.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과실을 맺고, 정주하여, 자신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며, 그리고 손님을 대접한다고 했다. 영혼의 번성함도 그렇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

3.성읍이 폐쇄되고, 아무도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시온과 이스라엘에는 남은 자들이 자유로이 나다닐 것이며 그들을 막거나 위협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31절). 도시나 시골 어디에나 큰 파괴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나 도피한 남은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받은 남은 자를 대표했다(로마서 9:27, 28 과 바로 이 사건을 말하는 이사야 10:22, 23 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스런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4.앗수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은 잠깐 사이에 포위되어 그들의 수중에 떨어질 초미지급(焦眉之急)의 위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했던 그 포위에서 보호되리라고 약속되었다. 적군이 그 성읍 앞에 진을 쳤다 할지라도 결코 그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그 곳에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할 것이다(32, 33절). 원수들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서, 수없이 자기 일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그 성을 보호하는 일을 맡으셨다(34절). 그러니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그 사람들과 장소가 안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하나님의 명예와 진리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 데 개입된다. 이것은 과연 위대한 일들이지만, 어떻게 실행될 것인가?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것을 할 것이다" (31절).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는 모든 피조물을 그의 손짓으로 좌우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하실 수 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신다" 고 했다(슥 1:14). 정숙한 처녀와 결혼한 남편이, 그 여자가 학대받는 것을 보면 참고 견디겠는가?(21절) "너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런 큰 일들을 너희를 위하여 할만큼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열심이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1)그의 열심은 자기 명예를 위한 것이다(34절). "내가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할터인데, 이는 내 이름을 영원히 빛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그 이유들은 그 자신 안에서 나온다.

(2)그의 열심은 자기의 진리를 위해서이다. "나는 내 종 다윗을 위하여 그 일을 행한다." 이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와 맺은 약속과 그와 맺은 계약 즉 다윗에게 보장한 자비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구원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