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8월 7일 월요일 묵상구절 대상15:1-24 <하나님의 궤를 옮길 준비>

미령미령 2023. 8. 7. 12:53

묵상구절

15:1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15: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15:3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15:4 다윗이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15:5 그핫 자손 중에 지도자 우리엘과 그의 형제가 백이십 명이요

15:6 므라리 자손 중에 지도자 아사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이십 명이요

15:7 게르솜 자손 중에 지도자 요엘과 그의 형제가 백삼십 명이요

15:8 엘리사반 자손 중에 지도자 스마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 명이요

15:9 헤브론 자손 중에 지도자 엘리엘과 그의 형제가 팔십 명이요

15:10 웃시엘 자손 중에 지도자 암미나답과 그의 형제가 백십이 명이라

15: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5: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15: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15: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5: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5:18 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5:19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15:20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15:21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15:22 레위 사람의 지도자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인도하는 자요

15:23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15:24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참고] 언약궤를 멜 때 지켜야 할 규례

  • 출 25:13-1525: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 25: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 25: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 민 4:10-144:11 금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채를 꿰고4:13 제단의 재를 버리고 그 제단 위에 자색 보자기를 펴고
  • 4:14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 곧 불 옮기는 그릇들과 고기 갈고리들과 부삽들과 대야들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두고 해달의 가죽 덮개를 그 위에 덮고 그 채를 꿸 것이며
  • 4:12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에 쓰는 모든 기구를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해달의 가죽 덮개로 덮어 메는 틀 위에 두고
  • 4:10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해달의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메는 틀 위에 두고

 

매튜헨리/옥스퍼드 (박스 안 내용이-옥스퍼드 주석)

 💡 본문 개요
  • 본장은 일차 언약궤 운반에 실패했던 사실을 다룬 13장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결과로 주어진 다윗의 번영 및 블레셋 정벌 사건을 다룬 14장에 이어지는 부분,
  • 예루살렘으로의 이차 언약궤 운반 과정과 운반 완료 사실에 관한 기사.
본서의 저자는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로 주어진 다윗 왕국의 번영과 대블레셋 전쟁 승리 사실을 비연대기적으로 기술한 14장 직후에 언약궤의 운반 완료 사실을 다룬 본장을 위치시킴으로써언약궤가 다윗성에 무사히 들어오게 된 것 역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은혜로 이를 허락하신 결과임을 구조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병행구절 삼하6장과의 차이점]
  • 역대기서 저자가 본장에서 16장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지면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언약궤의 다윗성 안치 사실을 다루는 것과 달리,
  • 사무엘서에서는 삼하 6:12-23의 12절 정도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 역대기 저자가 사무엘서 저자와 달리 이처럼 언약궤 이송 준비와 과정, 그 후의 사건들을 자세하게 서술하는 이유는
     본서 저자가 가지고 있는 제사장적 관점과 무관하지 않다. 즉 본서 저자는 제사장적 관점을 가지고 성전 제사 희복과 관련된 사실들을 중점적 으로 제시함으로 본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기 후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새로운 신정 국가 재건에 박차를 가하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 [본장의 구조]
  • (1-15절) 언약궤 운반의 재개를 위해 다윗이 율법에 명한 규례에 따라 운반 준비 명령을 내린 것에 관하여 다룬다.
  • (16-29절) 언약궤 운반을 위해 레위인 찬양대를 조직한 사실과 언약궤의 운반 완료 사실에 관하여 다룬다.
    • 이 중에서도 언약궤 운반을 위한 다윗의 명령 및 이에 대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명령 이행과 레위인 찬양대 구성에 대하여 다루는 본절부터 24절까지는 사무엘서가 생략한 부분.
[본서 저자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는 일보다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지은 사실을 먼저 기록한 이유]
  •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자신의 안락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 오히려 저자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왕궁을 짓던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게 되었다는 ‘태도의 전환’을 나타내기 위해 본문과 다음 본문을 대조시키고 있다.
  • 다른 한편 다윗이 자신의 궁전을 지으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궤를 안치할 처소를 예비하였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도 본문의 기록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법궤의 재이동(역대상 15:1-24)

이제 오벧에돔의 집에 있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 올 준비가 되었다. 전에 행한 시도는 매우 선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려" 하였지만, 그들이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않았다" 는 사실을 여기에서 고백하고 있다(13절). "우리가 그 일을 신중히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실수를 범하였도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 선행을 잘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 합당한 의식을 행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우리는 마땅한 규례대로 찾아야 한다. 우리가 불규칙한 행실로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서 더 질서 정연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 그 때에 우리는 징벌을 끝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제 이 문제가 어떻게 시정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다윗은 궤를 옮겨 오기 전에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해 두었다. 그리하여 그는 규례대로 구하였다. 그는 "집을 지을" 시간이 없었으나,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쳤는데" (1절), 이것은 아마도 모세가 산에서 보여준 본보기를 따른 것이었거나, 아니면 휘장과 판자로 그 모형에 가깝게 만든 것이었을 것이다.
    그가 다윗성에 자기 자신을 위한 집을 세울 때에, 법궤를 위한 처소를 예비해 두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어디에 우리의 집을 짓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궤를 위한 곧 교회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 본절은 다윗이 자신의 왕궁을 처음으로 세웠고 그곳에 언약궤 가 거할 장막을 만들어 하나님의 궤를 가져와 안치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윗은 통치 후기에 이르러 히람의 원조를 받아 보다 나은 규모를 갖춘 자신의 궁궐을 증축한 것.


1절,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 하나님의 궤 →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
  •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상정하는 언약궤를 모시기 위한 특별한 처소(마콤)를 자기가 거하는 다윗성 즉 시온에 마련한 것(왕상8:1; 대하5:2).
  •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임시로 안치하기 위해 지은 처소를 ‘장막’이라 부른 사실을 감안할 때 → 과거 모세가 지은 성막과 마찬가지로 이동이 가능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성으로 옮겨온 이유]
  • 본장과 관련있는 삼하 6-12 상반절에서는 다윗이 앞선 일차 언약궤 운반 시도의 실패로 잠정적으로 언약궤를 머물게 하였던 오벧에돔의 집이 여호와의 궤를 인하여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어떤 사람을 통해 접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하반절에서는 다윗이 오벨에돔의 집으로 가서 언약궤를 메어오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사무엘서만을 읽으면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성으로 옮겨온 동기가 단지 자신도 오덴에돔의 집이 받은 것과 같은 복을 받기 위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
  • 그러나 사무엘서 저자와 달리 역대기 저자는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라아론 하엘로힘)'라는 표현을 명시하여 궤를 자신의 성으로 옮겨오는 주된 이유 하나님의 궤를 적합한 장소로 옮기는 것 자체에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언약궤에 대한 다윗의 순수한 신앙적 동기]

역대상 본문을 통해 다양한 양태로 자세히 소개됨 (6:31; 13:2,3; 15:16-24; 16:4-6, 37-42, 15:1-5)
  • 하나님의 언약궤를 향한 다윗의 열정 —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에 안치한 이후 레위인들을 조직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케 하고 언약궤를 모신 장막을 지키게 한 사실 등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 표면적으로 볼 때 이러한 언급들은 1차보다 2차에서 다윗이 더욱더 심혈을 기울여 언약궤 이송을 준비했음을 반영.
  • 내면적으로 보면 — 이러한 각각의 해당 본문은 언약궤와 관련된 다윗의 신앙과도 직결되는 것으로,
  • 언약궤의 다윗성 안치와 관련한 그의 신앙적 동기를 특별히 부각.
  • 궁극적으로 이러한 반복이 가르치는 바는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  선민의 삶의 근거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에 있음을 강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 2-24절, 사무엘서에는 전혀 없는 내용
  •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인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 과정 중에서 특별히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들을 모집하고 준비시키며 언약궤 운반을 위하여 레위인 찬양단을 구성하는 내용.
  • 본서의 저자는 과거 다윗이 율법에 명시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대로 언약궤를 옮기다가 실패한 사실(13:9-14)을 상기하면서, 이번에는 온전하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언약궤 운반을 다시 시도하고 있음을 이와 같이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서술.
  • 율법에 기록된 대로 언약궤를 운반하는 본문의 이러한 강조 역시 선민의 삶의 근거가 “하나님 말씀에 따른 거룩함의 회복에 있어야 한다”는 본서 저자의 신학적 관점을 잘 드러낸다.

13장 이후, 본장의 시점에서 다윗에게 언약궤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음.
  • 2절, ‘그 때’ (아즈)
    •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일차 언약궤 운반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문 지 3개월이 지난 시점(13:1- 14).
    • 다윗에 의해 언약궤를 안치하기 위한 장소가 준버되고 언약궤가 임시로 거할 수 있는 장막이 설치된 이후의 시점.
    ⇒ 즉 ‘아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맞이하기 위해 다윗이 율법에 지시된 그대로를 준행하고자 하는 내적 상태와 레위인 찬양단을 조직하고 문지기를 배치하는 등 외적 상태를 온전히 갖춘 시점을 지칭한다.
  • 본문에 언급된 언약궤 안치의 시점은 — 역사적인 측면에서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정착하여 온전한 평화를 구가하는 시점과도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2. 이제 다윗은 레위인이나 제사장들만이 이 궤를 그들의 어깨에 메어 올리도록 명했다.

 💡 2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택하사(’바하르’): ‘선택하다’, ‘결정하다’]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시는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를 드러냄.
  • 언약궤를 옮기는 일과 같은 거룩한 일은 인간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서 수행될 수 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에 의헤 그 일에 합당한 일꾼으로 ‘선택'된 자여야만 가능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여호와의 주권적 선택은 비단 언약궤 운반과 같온 종교 의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 본문의 ‘바하르' 동사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 왕으로 ‘선택하시고' (28:4) 솔로몬을 그의 왕위 계승자로 ‘선택하신' 사실을 묘사할 때에도 동일하게 사용된다(28:5.6,10).
  • 본서 저자는 이러한 ‘바하르' 동사의 반복적 사용을 통해 레위 자손들과 다윗, 솔로몬의 선택만 아니라 다윗 왕조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님의 선택에 있음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 궁극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통헤 본서 저자는 본서를 읽는 일차 독자들의 운명 역시도 그들을 택하신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 섬기다
    • 주로 성막과 연관된 봉사 행위(민 4:12 ;대하24:14)를 표현할 때 제한적으로 사용.
    • 본서에서도 이 단어는 레위인들의 봉사 직임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반복적으로 사용(6:32; 16:4.37 ;23:13 ; 26:12).
    • 저자는 이러한 단어가 사용된 다윗의 진술을 소개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 자신에 의헤서 규정되는 거룩한 것임을 강조한다.

전에는 그가 전혀 몰랐던 것이었지만, 이제 그는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2절). 고핫 자손들에게는 수레를 맡기지 않고 궤를 메고 걸어다니도록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직임이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민 7:9).

 💡 [다윗의 변화된 인식]

13장에서 하나님의 규례에 명시된 바를 무시하고 언약궤를 옮기다가 실패한 다윗이 어떻게 본장에서 갑자기 본절의 내용과 같은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일차 언약궤 운반 실패 이후 3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다윗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율법의 내용을 다시 연구하여 본절과 같은 결과에 이른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방의 관례를 따라 수레로 언약궤를 옮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깊은 말씀 연구와 묵상을 통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하게 된 것이다.

또한 2절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진술은 “행진 할 때에•••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희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찾 자손이 델 것이며"라고 기록된 민 4:15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언약궤를 만진 웃사의 죽음을 통해서 충격을을 받게 된 다윗은 자신의 무모한 인간적 열심을 뒤로하고 말씀이 지시하는 바를 철저히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요단을 지나 여리고를 돌아갈 때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궤를 메었다. 이 규칙은 아주 분명했으나, 다윗은 그것을 잊어버리고 궤를 수레에 실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항상 그것을 명심하여 필요한 때에 잘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도 실수하여 죄를 범하나, 그들이 일단 그 사실을 안 후에는 즉시 그것을 고칠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정당화하거나 그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만 돌리지 않고 규칙대로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자신이 죄를 범했음을 고백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3절)-전에는 그러했다 13장 2절-레위인들을 이 의식에 불러 모으는 데 주의를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모두 모였는지(4절) 특히 아론 자손이 모였는지 잘 살폈다(11절).

 💡 3절,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가 전부 이 일에 동의하고 열심을 보였다.
  • 이같은 강조는 본서의 일차 독자인 포로기 후대 이스라엘 공동체로 하여금 거국적으로 이루어진 이 역사적 사건을 다시 조망케 하여 그들의 당면 과제인 신정 왕국 재건에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토록 하기 위한 동기.
  • 다윗이 아론의 후손들과 더불어 레위인들을 부른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언약궤를 운반하는 일을 전적으로 맡기기 위해서였다(12.13절). 
 💡 [5-10절] 다윗에 의해 소집된 레위 사람들
  • 5절 — 그핫 자손
    • 그핫 자손이 10절까지 계속되는 다윗에 의하여 소집된 레위 사람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그들이 언약궤를 옮기는 이번 일에 었어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
    • 여호와의 언약궤률 운반하는 일에 그핫 자손들이 주로 부름받은 이유는 그들이 과거부터 규례에 따라 성막의 기구들을 운반하는 등의 일을 담당하여 왔기 때문이었다(민4:4; 15 :7, 9).
  • 6절 — 므라리 자손
  • 7절 — 게르솜 자손
  • 8절 — 엘리사반 자손
  • 9절 — 헤브론 자손
  • 10절 — 웃시엘 자손
  • 11절 — 사독과 아비아달, 다윗이 소집한 4-10절에 언급된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들의 대표들
    1. 사독
      • 아론 자손 중에서 엘르아살(Eleazar) 계열을 대표하는 제사장(24:3).
      • 그는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무리가 있을 때에도 다윗에게로 가서 젊은 나이에 한 족속의 장관으로서 다윗을 보좌하는 용맹한 군사가 되었으며(12:27,28),
      •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본문에 나오는 아비아달과 함께 제사장이 되었다(삼하 8:17).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당시에도 아비아달과 함께 다윗을 도와 그가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수 있도록 도왔던(삼하 15:31,37 ;19:11) 충성스러운 인물이었다.
    2. 아비아달
      • 아히멜렉의 아들. 사울과 다윗 양시대에 걸쳐 제사장 직분을 수행했다.
      • 그의 아버지 아히멜렉은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에 다윗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제사장 85명과 함께 몰살당했으며 그 때 아비아달은 사울의 칼을 괴헤 겨우 다윗에게로 피신하였다(삼상 22:20). 이때 아비아달이 가 지고 갔던 에봇(출 28:30)은 다윗이 여호와의 뜻을 묻고자 할 경우마다 사용되었다(삼상 23:9- 12; 30:7, 8 ).
      • 그러나 그는 후일 다윗의 또 다른 아들 아도니야가 반역하였을 때 그를 도왔다가 다윗이 왕으로 세운 솔로몬에 외해 제사장 직분에서 파면되었다(왕상 2:26).
      • 그가 사형당하지 않고 파적과 추방의 형벌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거에 사독과 함께 다윗에게 보였던 충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사장의 계보에서 그의 이름은 완전허 제거되었다(6:1-15).
  • 본문에서 다윗이 언약궤의 다윗성 안치를 위해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른 때는 — 다윗의 집권 초기, 그들이 모두 제사장으로 일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는 그들에게 엄숙한 임무를 부과했다(12절).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다른 사람들보다 권세가 높은 자들에게는 그 임무를 행하는 데 있어서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너희는 족장이니 너희 스스로 의무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나, 다른 사람을 감화시키는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너희에게 더 많은 기대가 쏠려 있다. 그러나 너희는 제일 먼저 그것을 행하지도 않았고, 스스로의 의무도 행하지 않았고, 또한 우리를 훈계하지도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로 인해 징벌당해야 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다. 우리는 너희의 소홀함으로 징벌 받았다. 즉 이것은 너희의 행위 때문이었다(말 1:9 참조).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몸을 성결케 하고 너희 직분에 마음을 다하라. 그릇된 행위로 고통을 당한 자들이 이처럼 좀 더 훌륭히 행하기를 배운다면 그 잘못은 잘 시정되어질 것이다."

💡 12절, 몸을 성결케 하고 …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몸을 성결케 하고
  • 직역하면 — ‘너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 다윗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내린 이와 같은 명령은 모세의 율법에 따른 것으로, 레위 자손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을 거록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우선 성결을 위하여 몸을 씻고 옷을 빨아야 했으며(창 35:2 ;출 19:14)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내조차 가까이하지 않아야 했다(출 19:15 ;삼하 21:5).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 여기에서는 언약궤를 메는 행위가 아닌 레위인들인 ‘너희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올리는' 행위 자체가 강조됨.
  • 제사장 계통의 우두머리였던(12:28)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과 이다말 계통의 아비아달과 레위 자손의 7인의 족장들에게 궤를 예루살렘으로 올리는 일의 책임을 맡기면서 다윗이 내린 이 명령 역시 모세의 율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13.15절).
    →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해서 다윗이 이방의 풍습을 좋아 아비나답의 후손들로 하여금 수레를 이용해 궤를 운반하게 하였던 과거와 달리,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시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3절,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1. 언약궤 운반 시도 실패의 외형적 요인
    • 여호와의 직접적인 심판을 받았던 대상은 죽임을 당한 ‘웃사'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여호와께서 충돌하신 대상을 ‘우리'라고 표현한 이유
    • ⇒ 다윗이 하나님께서 웃사를 심판하신 일을 다윗 자신과 그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 대한 엄중한 징계로 받아들였기 때으로 풀이된다.
    • 다윗은 언약궤의 일차 운반 시도의 실패의 이유를 분명히 파하고 있었고 또 그 실패에 따른 심판의 결과 역시도 어느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닌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전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였음.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2. 언약궤 실패의 근본적 요인
  •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차 언약궤 운반 시도시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 자신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
  • 하나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본문에 표현된 대로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규례대로' 행하는 순종의 모습이 선행되어야 했다. 

3.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몸을 성결케 하고(14절) 율법에 따라 궤를 그들의 어깨에 멜(15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의무를 태만히 하던 자들도 성실한 충고를 받을 때는 자기들의 잘못을 고치고 더 나아지게 되는 자들이 많다.

웃사에게 내려진 돌변 사건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몸을 성결케 하는 데 유의하도록 하였다. 즉 그들로 하여금 의식적인 타락을 씻어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일에 마음을 기울여 백성들을 존중하도록 했다. 모범을 보이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보고 예의와 범절을 지키는 자들이 있게 된다.

 💡 15: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다윗이 이 일을 명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과정을 본문에서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언약궤 안치를 위한 제2차 시도에서 다윗과 온 이스라엘이 언약궤 안치와 관련된 준비와 과정 등 모든 면에 걸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강조하여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본문은 언약궤 운반과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과 관련 된 모든 일을 감당함에 있어 먼저 자신의 몸과 마옴을 성결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5절, 레위 자손들이 언약궤 운반에 관한 규례를 정확히 준수하고 있음을 나타냄]
  • 출 25:13-15, 민 4:10-14 에 기록된 바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지켜야 하는 규례를 그대로 따른 것.
  • 1차 시도 때와의 극명한 대조 — 잘못을 인정하고, 율법을 따르는 다윗의 성숙한 신앙
    • 이와 같이 언약궤 운반을 위해 취한 조치들은 — 1차 언약궤 운반 시도를 다룬 13장에서 다윗과 이스라엘이 규례를 무시하고 수레를 이용하여 언약궤를 이동시킨 사실 및 웃사가 언약궤를 부주의하게 손으로 만졌던 사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옥스퍼드 주석, 영적 교훈 부분 중,

…. 하나님의 규례를 따르지 않은 다윗의 1차 언약궤 운반 시도는 웃사의 죽음이라는 불상사만 낳은 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으며,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은 언약궤 운반 재개를 위해 새로운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자세

  • 이처럼 언약궤 운반 재개를 위해 준비하는 다윗의 모습은 매우 진지하고 주도면밀하였습니다.
  • 그는 먼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장막을 다윗성에 예비하였고,그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메기에 합당하도록 그들의 몸을 성결케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리기 위하여 레위 지파 사람들을 소 집하였으며,
  • 즉 다윗은 처음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이번에는 그 준비를 철저히 한 것입니다.

  • 사실 웃사의 죽음으로 인한 언약궤 운반의 중단은 다윗에게 있어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외면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자신은 하나님의 궤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다윗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 다윗은 1차 언약궤 운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왕궁으로 돌아와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 시작부터 모든 것을 되짚어보면서,
    • 무엇이 언약궤 운반을 실패로 몰고가게 했는지,
    • 무엇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 그리고 삼개월의 기간 동안 다시 언약궤를 모셔오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였습니다.
  • 그렇습니다. 다윗은 한 번의 실패로 인하여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실패를 반성하고 그것을 통하여 옳은 길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 즉 그는 언약궤 운반 실패의 책임을 하나님과 웃사에게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되짚어보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의 이러한 자기 반성은 그로 하여금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성공적으로 안치하게 하였습니다.

  • 이처럼 우리 성도에게도 철저한 자기 반성과 회개가 필요합니다.
  • 이것이 우리를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며,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볼완전한 존재이며 실 수와 실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유한하며, 완전함에 이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느 냐고 말씀합니다(욥 14:4).  
     우리 인생은 누구 하나 완전 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죄를 짓고,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와 견책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 우리는 좌절할 수 있고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와 견책은 우리를 좌절하고 낙심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며 보층하고 고쳐서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한 순간의 실수와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좌절하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도리어 러한 상황을 기회로 삼아 여러분의 모습을 둘아보고,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자신을 세우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 영적 교훈 부분 2

신앙 생활은 편리함을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해야 한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하 는것보다는 수레에 싣고 운반하는 것이 휠씬 안전하고 신속하며 합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때문에 다윗도 1차 운반 시도 때에 비록 언약궤 운반에 관한 규례를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언약궤를 레위인에게 메게 하는 대신 수레에 싣는 방법을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록 합리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궤를 옮길 때 반드시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옮기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의 방법은 그것이 비록 합리적이고 안전하고 명쾌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하 나님께서 제시하신 방법을 따른 것이 아니었기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사람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에 따라서 해야 옳다 인정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인간이 자의로 선택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던 기독교 신앙 역시 여타 인본주의적인 세속 종교와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세속 종교는 — 위로부터의 신앙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신앙입니다.
→ 즉 인간이 신을 만들고 자신의 생각에 의존해서 만든 방법에 따라 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은 다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위로부터의 신앙입니다.
     → 즉 기독교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이루어진 종교이며,
    → 그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방법에 의해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방법이 아닌 인간적 판단에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면
→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는커녕 징계만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1차 언약궤 운반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 우리의 판단이 아무리 현명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귀기울이고 그것을 따라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잣대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 그것이 비록 불편하고 터무니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더 하나님의 말씀 아래로 쳐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편리함과 합리성과 효율성 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 그리고 이런 풍조는 우리로 점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며, 더 이상 말씀을 우리에게 유효하지 않은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언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 따라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조차도 말씀의 원리와 신학적 원리보다는 세상의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방법들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교희에 적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성도들 가운데도 바쁜 시간을 내서 교회에 나오기보다는 TV나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러며, 여가를 즐기기 위해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에 얘배를 드리고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 뿐입니까? 적당한 헌금 생활, 자기 희생이 없는 헌신들로 신앙이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철저한 내 상황과 생각이 중심이 되고,
신앙적 주체, 예배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나로 바뀌어져 버리는 심각한 신앙의 타락이 우리 안에 있음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8)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내게 유익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것조차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 자신의 명석한 생각을 실현시키는 삶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현시키는 것이 성도의 을바른 삶인 것입니다.
  • 정녕 여러분은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내 자신을 희생시켜야 한다 할지라도 나를 포기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틀 바랍니다.

[수22:5]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마7:13-14]
7:13 <좁은 문(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6-29절: 언약궤 운반을 위한 레위인 찬양대 조직 및 언약궤 운반 완료 사실.

4. 유사들에게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기쁨을 표현함으로써 그 궤를 환영할 준비를 하라는 명이 내려졌다(16절).

💡 다윗의 기쁨을 청각적 이미지로 전달함
  • 다윗이 레위 지파 족장둘에게 그 형제 중 찬양단을 세우고 각중 악기와 노래를 통하여 영광을 돌릴 것을 명하는 본절을 원문으로 읽으면 하나님의 궤가 율법에 기록된 대로 들려 올려지자 레위인들에게 찬양하고 연주할 것을 명령하는 다윗의 흥분된 소리가 뒷전에 들러는 것 같은 생생한 뉘앙스가 전달된다.
  • 저자는 두운과 각운을 통해 다윗의 기뻐하는 마음과 흥분된 목 소리를 득자둘어나 청중들에게 청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
  • 이는 오벧에돔의 집을 떠난 언약궤가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올 때에 자신의 몸이 드러나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었던 다윗의 모습 을(삼하 6:20)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한 것에 비견되는 것으로 언약궤 운반에 대한 다윗의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넘치는 기쁨을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전달하는 표현.
16절,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본절에서 다윗이 내린 명령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
  • 소리가 즐거운게 아니라, 소리를 내는 자들에게 즐거움을 가지고 악기 연주 소리를 높여 그 즐거움이 듣는 자들에게까지 미치게 하라는 명령.
  • 즐거운 (시므하)
    • *‘하나님의 절기’ ‘여호와 자신 ‘그분이 행하신 구원’*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나타낼 때 주로 하용되는 단어.
    • 이로 보아 다윗은 언약궤를 오덴에돔의 집에서 자신이 예비한 집으로 옮기는 일
      •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기쁨에 맞먹는 엄청난 기쁨(시므하)으로 받아들임
      • 다른 이들과 이 기쁨을 공유하기를 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13장에 나온 찬양 행위와의 차이점]

  • 언약궤 이동시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는 이미 13장에서 언약궤를 일차로 이동할 때도 동일하게 있었다(13:8).
  • 13장에서는 다윗과 온 무리들이 함께했다는 것,
  • 본장에서는 다윗의 명령에 따라 선별된 레위인들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행헤졌다는 것. 
     즉 다윗은 언약궤 운반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자신들의 감사를 표현하도록 하되 성결한 자들로 하여금 거룩하게 표현하도록 하였던 것.
    이를 통해 구원에 대한 감격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감사률 스스로의 마음 속에 갖고 있거나 삶 속에서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사와 감격을 크게 소리내어 증거하고 거룩하게 찬양함으로 드러내는 것 역시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삼하 22:50)

다윗은 레위 족장에게 이 일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을 추천하도록 명했다. 헤만과 아삽 그리고 에단이 제일 먼저 지명되었다(17절). 그들은 놋제금으로 소리를 내도록 했고(19절), 어떤 자들은 비파를 타기도 했으며(20절), 또 어떤 자들은 수금을 타서 가장 높거나 가장 낮은 여덟째 음(Sheminith)으로 행렬을 인도할 것을 약속했다(21절).

 💡
다윗 당시 레위인 찬양단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1. 첫번째 그룹은 ‘놋제금을 치는 일'을 하는 자들. 위에 기록된 삼인이었는데, 이들은 놋제금 연주틀 통헤 전체 찬양대를 총 지휘하는 일을 하였다.
  2. 두번째 그룹은 여창에 맞추어 비파를 타는 자들(20절).
  3. 세번째 그룹은 쉐이니트에 맞추어 수금을 타는 자들(21절).
위의 세 그룹은 각각의 악기와 당시 음조와 가락에 맞추어 전문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도맡아 하며 자신들의 사역을 개 발해 나감으로 보다 나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자 하였을 것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것은(24절) 궤를 옮길 때나(민 10:8) 엄숙한 잔치석상에서의(시 81:3) 통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노래를 부르도록 지시했다(22절). 왜냐하면 그는 노래에 익숙하여 잘 불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노래를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익숙하다 = 한 분야에 있어서 가장 정통한 전문가를 지칭함.

모든 사람들은 각자 "은사 받은 대로 봉사하여야" 한다(벧전 4:10). 탁월한 은사를 받은 자들은 그것을 공동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들처럼 지혜롭게 만드는 일을 인색하게 여기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

악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방법은 여지껏 사용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에 의해 이것을 시작하였으며, 사도의 말대로 하나님의 섭리로 된 "육체적인 예법" 을(히 9:10) 거기에 덧붙였다. 신약에는 시편의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으나, 아직 교회의 음악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짐꾼으로(18절), 또 어떤 사람들은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로(23, 24절) 지정되었다.
문을 지키는 자들 가운데 오벧에돔이 끼었는데, 그는 물론 그 직책을 영예로운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 궤로 해서 그가 받은 복에 대한 대가로 그것을 쾌히 응락하였다. 그는 석달 동안 그 궤를 지켰으므로 실상 그것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궤에 대해 지녔던 애정으로 기꺼이 그 문지기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