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칼럼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 이동훈 목사

하나지기 2023. 8. 28. 22:49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의 성장은 멈춘 상태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죄책감은 우리를 마비시켜 영적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솟구치는 열망을 느낀다. 우리는 현재보다 더 많이 성장하기를 갈망한다.
솔직히, 영적 성장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면 우쭐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그런 자기평가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은밀히 비교한 결과이거나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실질적인 동기를 깊이 있게 점검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결과일 것이다.

이 질문은 우리 가운데서 바람직하지 못한 냉소적 감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왔거나 최소한 그렇게 했던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했고, 이런저런 책을 읽었으며, 이런저런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향한 올바른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심정을 느낄 뿐이다. 

우리 가운데 성장의 필요성을 의문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성경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5)라거나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 4:15)와 같은 말씀을 발견한다. 우리는 비단 성경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성장의 필요성을 의식한다. 문제의 핵심은 성장이 필요하냐가 아닌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에 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이런 다양한 감정 상태의 어딘가에 성장을 갈망하는 진지한 마음이 존재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헨리 스쿠걸은 참된 변화는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성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려면 그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은 정형화된 경험이 아닌 관계적인 경험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엄청난 권위와 통치를 축소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이유는 주 예수님, 곧 언젠가 민족들의 분노를 작은 속삭임만으로 일순간에 잠잠하게 만드실 참된 예수님을 경이롭고, 두렵게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하셔야 했는지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을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오백 데나리온 비유)를 이용해 구원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셨다(눅 7:36-50).

모든 인간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다. 비유의 요점은 우리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패가 명백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죄를 더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자신을 죽음에서 건져 온전한 생명에 이르게 할 구원을 더욱 간절히 바라는 법이다.

우리의 영적 성장이 더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감당하신 큰 희생을 진정으로 의식하는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속력으로 다른 방향을 향해 질주할 때, 그분은 우리를 쫓아와서 우리의 반역을 제압하고, 우리에게 자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그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구명구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라 돌처럼 바다 밑바닥에 완전히 가라앉아 죽어버린 상태였다. 그분은 그런 우리를 건져 올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일으켜 세우셨다. 우리가 지금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신 덕분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그리스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분의 품에 온전히 안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자신의 목적에 온전히 내맡기라고 요구하신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이유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고 애를 쓰다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고, 영적으로 무능력한지를 깨닫기 전까지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우리 자신의 노력을 포기하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번쩍 추켜들어야만 우리 안에서 비로소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왕성하게 역사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 안에 내주하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능력의 사역을 쉽게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다.

닫힌 구멍은 깨끗이 청소할 수 없고, 가득 찬 잔은 채울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자아를 의존하는 한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겸손하신 성령께서는 괴로워하는 자, 공허한 자, 애원하는 자, 절망하는 자, 세금을 납부하는 식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남은 것으로 살려고 애쓰는 일에 지친 자의 마음은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내적 변화를 이루실까?
신약성경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일깨워 우리를 변화시키신다고 대답한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신다. 즉, 예수님을 보는 것으로 신자들이 변화된다(고후 3:18). 성령께서는 효과적인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게 해달라고 성령께 간구하라. 성령께서는 우리의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적인 원인자이시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대상은 그리스도이시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가장 큰 비결은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분 안에서 성장할 수 있지만, 그분에게서 눈을 돌려 우리의 성장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우리가 원하는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속죄 사역과 끊임없는 중보 기도를 통해 분명하게 입증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마음을 경이로워하라. 죄인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이라. 그것을 거부하지 말라. 그분이 가까이 오시게 하라. 그분을 바라보라. 우리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한다. 그분과 교통하라.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그분의 사랑과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라. 교회를 통해 주어지는 설교와 성례를 통해 그분을 바라보라. 그분을 주시하라.

성장하려면 개인의 마음속에서 가장 깊고 근본적인 무엇이 일어나야 할까?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죄인들의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통해 복음의 경이로움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라. 마음을 잘 살피라. 

예수님에 관해 많이 배우라. 자신을 한 번 볼 때마다 그리스도를 열 번 바라보라. 그분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우시다. 그분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지만, 죄인들은 물론, 죄인의 괴수까지도 온유하고 은혜롭게 대해 주신다. 하나님의 미소 가운데서 살며, 그분의 빛을 마음껏 누리라. 하나님이 만물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사랑스레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분의 전능한 팔에 평화롭게 안기라.

마음을 황홀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비롯해 그분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영혼을 가득 채우라. 그러면 어리석음이나 세상이나 사탄이나 육신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