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9월 25일 월요일 묵상구절 대하12:13-16 <르호보암이 죽다>

Jeehyun 2023. 9. 25. 19:25

맥체인성경읽기

사무엘하 21, 갈라디아서 1, 에스겔 28, 시편 77

묵상구절

12:13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예루살렘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그의 이름을 두신 성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여인이더라

12:14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12:15 르호보암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12:16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비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르호보암의 죽음(역대하 12:13-16)

르호보암의 통치 기사는 다른 통치 기사와 아주 흡사하게 결론 맺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일이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1. 그는 드디어 "자기 나라에서" 아주 "강하게 되었다" (개역과는 다소 다름)(13절)고 했다.

성벽이 있는 유다 성읍들은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예루살렘에서 스스로를 강하게 하여", 그 곳의 요새화를 자기 본업으로 삼았으며, 그곳 즉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도록 택하신 성읍에서" 17년 간을 통치하였다.

이것은 그의 명예와 특권을 시사하는 바이다. 즉 그는 자기의 왕위를 저 거룩한 성에다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거룩한 도성은 아직도 그의 불경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에 불과했으니, 성전에는 가까웠으나 하나님께로부터는 멀었던 것이다. 그의 백성과 여로보암의 백성들 사이에 있어서 잦은 충돌이 "끊임없는 전쟁" 으로까지 번졌으나(15절), 그는 자신의 나라를 확보하고 통치하였다. 또한 그의 통치 4년째에 행하였던 것처럼(1절) 그렇게 심히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린 것" 같지는 않다.

 💡 12:13a 르호보암 왕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다스리니라

→ 르호보암의 회개에 따른 결과를 보여준다.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여’

한글 개역 성경처럼 ‘스스로 강하게 하여’ 로 번역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러한 번역은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스스로의 인간적 노력으로 왕권을 강화하였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르호보암의 세력이 강성하여졌음을 나타내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애굽 왕 시삭의 침략으로 남유다가 매우 큰 곤경에 빠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회개하므로 다시 왕위를 굳건하게 할 수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 역대기와 열왕기서의 결론의 차이
르호보암의 사적을 시삭의 침공으로 인하여 성전과 왕궁의 보물 및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를 모두 빼앗기고 대신 놋방패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끝맺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즉 본서 저자는 르호보암의 왕위 재건 사실로 르호보암의 사적을 끝맺음으로 회개로 인한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3b-16절: 르호보암의 통치 개요와 평가, 사망 기사

 💡 12:13b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예루살렘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여 그의 이름을 두신 성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여인이더라

본문에는 르호보암이 왕권을 행사한 장소인 예루살렘이 매우 강조됨

본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거기에 두시려고 택하신 성(NASB, the city which the LORD had chosen to put His name there)'.

‘그의 이름을 두신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여호와를 기억하게 하신다’는 의미.

예루살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어떻게 드러나는가?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는가?
예루살렘의 이러한 위상은 솔로몬 성전을 통해 가능해진다(대하 6:20; 7:16).
먼저,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 자연스럽게 여호와를 기억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또한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 제사는 — 여호와 하나님의 사유의 은총을 나타냄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 결론적으로 예루살렘은 그 안의 성전으로 인해 여호와의 이름이 머물러 있는 곳이 되었던 것이다.

르호보암의 모친
‘나아마’ : ‘즐거운’ 이란 이름 뜻; 암몬 족속 여인; 유다 왕 솔로몬의 처가 되어 르호보암을 낳음.

갑자기 르호보암 모친이 암몬 여인임을 굳이 밝힌 이유

1.14절에 언급된 바 르호보암의 악행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암시하기 위함이다. 즉 르호보암은 마음을 오로지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함으로 악을 행하였는데, 바로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그의 모친 나아마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방인과 교류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
르호보암의 모친 나아마를 비롯하여 솔로몬이 사랑 한 많은 여인들은 이방 여인들이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으로 그들과의 교류를 금하고 있었다. 만약 이방인들과 교류하게 되면 그돌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돌이켜 자신들의 신을 쫓게 할 것이기 때문에(왕상 11:2)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의 교류 자체를 엄히 금하셨던 것.

솔로몬의 죄와 그로 인한 결과
그러나 솔로몬은 여호와의 뜻을 어겨 이방 여인과 결혼하였으며, 그 결과 이방 아내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을 좋게 하였다(왕상 11:3,4). 특히 르호보암의 모친 나아마가 속한 암몬 여인들은 이스라엘에 그들의 가증한 ‘밀곰' 신을 들여왔다(왕상 11:5). 따라서 르호보암은 그의 모친을 통해 밀곰 숭배에 익숙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는 우상 숭배의 죄를 지은 것은(왕상 14:22-24)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저자 당대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역대기 저자가 활동하던 포로 귀환 이후 시대에 유다 사람들은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로 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하였다(느 13:23). 그 시대의 민족의 지도자 느헤미야는 그들을 책망하면서 과거 솔로몬 왕의 사례를 언급하였다.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느 13:26.27).
→ 이처럼 솔로몬의 통혼은 솔로몬 개인 뿐만 아니라 그 아들 르호보암까지도 범죄로 이끌었다.
역대기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던 당대의 사람들에게 과거 조상들처럼 그들도 만약 이방 여인과 결혼하게 되면 그들로 인해 여호와를 떠나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르호보암의 모친이 암몬 여인이었음을 굳이 밝혔던 것이다. 

2.그는 자기 종교에서는 올바로 공고히 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그 또한 한가지다(14절).

그는 결코 하나님을 아주 저버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점에서는 악을 행하였으니, 곧 "그가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지 않았다" 는 점이다. 그 잘못이 무엇인가를 보자.

(1) 그는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지도 않았던 까닭이다. 그는 솔로몬이 행했던 것처럼 지혜와 은혜를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다. 만약 우리가 더 잘 기도한다면, 어느모로 보나 더 나아질 것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지도 않았고, 신탁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그로부터 지시를 받지도 않았다.

(2) 그는 자기 종교를 개의치도 않았으니, 이는 그가 자기 종교에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요, 또 뜨거운 열성으로 그 종교에 관심한 적도 없었으며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것에 유의하지도 않았고 확고부동한 결심으로 그 종교 안에서 머물게 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 가졌던 그의 선한 마음도 무상하여 아침 구름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악을 행하였다. 그것은 그가 선한 일을 하려고 결단하지 못했던 연고이다. 선한 일에 대해 동요를 느끼고 변하기 쉬우며 신앙을 자기 기업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 자들은, 사탄이 유혹하면 어떤 악이든 쉽게 행한다.

 💡 12:14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본절은 르호보암의 인생 전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그가 영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르호보암의 전반적 삶의 모습
르호보암은 여호와와 이방 여러 신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의 본성 사이에서 심하게 요동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통치 초기 한 때와 징계 후 잠시 동안은 → 여호와께 겸비한 자세를 보였지만, 그의 인생은 전반적으로 → 여호와를 구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삶이었던 것
💡 12:15 르호보암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본절은 역대기 저자가 르호보암에 관한 기사를 쓸 때에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책을 참조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에는 더 자세한 르호보암의 행적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들을 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이는 병행 본문인 왕상 14:29에서 유다왕 역대지략을 제시한 것과 대조된다.
열왕기 저자가 — 궁중실록이나 왕실일지 등과 같은 공적 문서를 주로 참조한 반면
본서 저자는 — 이러한 공적 문서는 물론 선지자나 선견자 개인의 글들도 폭넓게 참조하였옴을 잘 보여준다.

‘선지자’ 스마야, ‘선견자’ 잇도 로 소개함
선지자 = (한나비) ‘할 말이 속에 있어서 그것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선견자 = (하호제) ‘이상을 보는 사람’
이 두 표현상의 차이는 강조점의 차이일 뿐이지 직무상의 차이는 아니다(삼상 9:9). 즉 이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대언하는 직무를 맡은 자들이었던 것.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르호보암 통치 초기에는 여호와께서 르보호암에게 여로보암과의 전쟁을 금하셨고 그가 하나님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전쟁이 없었다(11:4).
그러나 본절은 그와 배치되는 듯한 내용.
⇒ 이는 르호보암이 통치 초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여로보암과 전쟁하였음을 나타낸다. 이는 로호보암이 여호와의 뜻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항상’ : ‘그 모든 날들’ (all the days). 전쟁이 많았음을 나타내는 다소 과장된 표현.

👉 30절,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본문은 성경에 기록될 정도의 대규모 전투는 없었지만 영토와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소규모의 국지전은 계속되었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북 왕국의 분열이 하나님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므로 두 왕국이 결코 싸워서는 안됨을 분명히 선언하셨다(12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왕국이 계속해서 전쟁을 하였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계속해서 범죄하였다는 것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비극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12:16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비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조상들과의 유대 관계를 강조하는 이러한 표현과 더불어 조상들이 묻힌 다윗성에 장사된 사실까지 밝히는 것은
→ 그가 앞선 다윗이나 솔로몬 왕처럼 평온한 죽음을 맞았음을 암시하여 준다.

‘아비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상14:31 ‘아비얌’
아비야 : ‘나의 아버지는 여호와’ / 아비얌 : ‘나의 아버지는 바다’ 

결론

💡 앞선 11장

1.남북 분열의 빌미를 제공한 르호보암의 어리석음과 악함에 대한 부정적 내용이 기록됨.
2.왕국 분열 이후 제3년까지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며 복이스라엘의 배교에 따라 참신앙을 사수하기 위해 내려온 신앙적 망명자들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등의 르호보암의 긍정적 면모가 기록됨.

(본장)그리고 마지막으로 제12장에서는
르호보암의 악정과 회개 그러고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 등의 기사가 기록되었다.

본장의 강조점
즉 본장에서는 비록 악한 자라 할지라도 희개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사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처럼 역대기 기자는
르호보암의 생애를 부정적으로만 기록한 열왕기 기자와는 달리 ↔ 선한 면모를 기록에 남겼을 뿐 아니라,
특히 회개로 인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기록하여 — 하나님의 자비를 강조하였다.

여기에는 포로에서 귀환한 본서의 일차 독자들에게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에만, 그로 인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의 은혜가 있음을 교훈하고자 하는 본서 저자의 의도가 깊이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