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9월 23일 토요일 묵상구절 대하11:18-23 <르호보암의 가족>

Jeehyun 2023. 9. 25. 07:46

맥체인성경읽기

사무엘하 19, 고린도후서 12, 에스겔 26, 시편 74

묵상구절

11:18 르호보암이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삼았으니 마할랏은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의 소생이라

11:19 그가 아들들 곧 여우스와 스마랴와 사함을 낳았으며

11:20 그 후에 압살롬의 딸 마아가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가 아비야와 앗대와 시사와 슬로밋을 낳았더라

11:21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

11:22 르호보암은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세웠으니 이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로 삼아 왕으로 세우고자 함이었더라

11:23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18-23절

르호보암의 가족에 대한 대략적 소개와 원만한 왕위 승계를 위한 르호보암의 사전 조치를 소개한다.

그는 18명의 정부인과 60명의 첩을 두어 그들에게서 28명의 아들과 60명의 딸을 낳았고, 그 자녀들 중에서 아비야를 그의 후계자로 세웠다.

구약 시대에 자녀가 많은 것은 일반적으로 신적 축복으로 여겨졌다(대상 14:2-7; 시 127:3-5). 그러나 율법은 왕된 자가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을 금하고 있다(신 17:17). 그러므로 르호보암이 많은 처첩을 둔 것은 율법을 어긴 것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상 르호보암의 부친 솔로몬도 많은 부인들을 두었으며, 그들로 인해 결국 자신을 비롯한 온 나라가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큰 폐해를 낳았다(왕상 11: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는 르호보암에 대하여 어떤 도덕적•종교적 평가도 내리지 않고 단지 현상적 사실만을 기술하고 있다.
→ 이는 르호보암의 집안이 융성케 되는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만을 강조하여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본서 저자가 열왕기 저자와 달리 르호보암의 부인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Ⅱ. 르호보암이 환락 생활에 탐닉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쇠약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그는 그 아버지처럼 "많은 아내를 원하였다" (23절).

1.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는 그가 자기 아버지보다 더 현명하였으니, 아내를 취하되 이방 여인과는 혼인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처첩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일 뿐 아니라 다윗 가계의 딸들이다. 한 아내는 다윗의 형 엘리압의 소생이었고(18절), 또 다른 아내는 압살롬의 소생인데(20절), 이 압살롬은 아마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었을 것이다. 또 한 아내는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소생이었다.

💡 11:18 르호보암이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삼았으니 마할랏은 이새의 아들 엘리압의 딸 아비하일의 소생이라

마할랏
마할랏은 르호보암의 삼촌 여러못과 그의 부인 아비하일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르호보암과는 사촌간이었다.
‘여러못'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자녀 계보에 나타나지 않는 인물. 이는 아마도 그가 다윗의 첩들 중 하나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대상 3:1-9).

11:19 그가 아들들 곧 여우스와 스마랴와 사함을 낳았으며

여우스
르호보암의 장자. ‘여호와께서 구하여 주시기를 원한다’ 란 뜻. 이는 아마 그가 왕위를 계승하기틀 바라서 지은 이름이었을 것. 그러나 여우스는 르호보암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였다.

스마랴
‘여호와께서 지키셨다’ 란 뜻. 르호보암의 차자로 여겨짐.

사함
‘싫증을 느끼게 하다’ 란 어원에서 유래한 이름.

그가 마할탓이 낳은 셋째 아들에게 불명예스런 이름을 준 것으로 볼 때, 르호보암은 마할랏이 셋째 아들을 낳은 직후 그녀를 멀리하고 또 다른 부인인 마아가에게 온 정신을 다 빼앗겼던 것으로 보인다 (20, 21절).
더구나 이상의 세 아들을 모두 제쳐놓고 마아가에게서 낳은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삼은 것은 그가 마아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

11:20 그 후에 압살롬의 딸 마아가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가 아비야와 앗대와 시사와 슬로밋을 낳았더라

‘딸’ = ‘손녀’로 이해하는 것이 좋음.

‘마아가'
압살롬의 외손녀 즉 압살롬의 딸인 다말의 딸이었을 것이다. 13:2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미가야'로 나오며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로 나온다. 그렇다면 ‘마아가' 즉 '미가야'는 기브아 사람 우리엘과 압살롬의 딸 다말 사이에 태어난 딸이 된다.


11:21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여

마아가의 모친 다말은 매우 아름다운 여자였으며(삼하 14:27), 그녀의 외조부 압살롬 역시 당대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빼어난 외모를 가진 자였으므로(삼하 14:25) 그런 핏줄을 타고난 ‘마아가' 역시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 분명하다. 르호보암이 18명의 부언과 60명의 첩 가운데서 ‘마아가'를 가장 사랑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르호보암이 많은 첩을 거느린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후비 7백과 빈장 3백을 둔 솔로몬에게는(왕상 11:3) 미처지 못하였지만 르호보암이 많은 처첩을 거느린 것은 사실이다.
→ 아마 이는 솔로몬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통하여 자신의 왕권을 강화 하려는 의도에서 취한 조치일 것이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일부일처제를 명하신 하나님의 기준에 는 분명히 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문에서 역대기 저자는 르호보암의 일부다처를 비난하기보다는 왕조의 번영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로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르호보암이 히브리 혈통의 아내를 맞이하였고는 원만한 왕위 승계를 위한 조치를 미리 마련한 사실을(22, 23절) 소개함으로써 부정적 면모보다는 긍정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11:22 르호보암은 마아가의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세웠으니 이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로 삼아 왕으로 세우고자 함이었더라

혈통상의 장자는 여우스였지만(19절), 르호보암은 그를 후계자로 삼지 않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 마아가에게 서 얻은 아들 아비야를 후계자로 삼았던 것이다.
성경에는 혈통상의 장자가 아니면서도 그 가문의 후계자가 된 경우가 많이 나온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러하며,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아들 유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등이 그러하다.

아비야
아비야는 그 아버지의 총애로 인해 어려서부터 후계자로 임명되어 지도자 수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부친 르호보암을 이어 유다왕이 된 후 3년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왕상 13:2,22; 15:2, 8). 
💡 11:23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지혜롭게 행하여’
이 동사의 원형 ‘삔’ : 매우 신중을 기하고 숙고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신32:7; 단11:30)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게 된 원인,
자녀를 많이 둔 르호보암은 그 자녀들 사이에서 권력 암투가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그것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대처하였다. 실제 그의 조부 다윗 당시에는 다윗의 아들들 사이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권력 암투가 벌어졌었는데, 르호보암은 그런 역사를 자신의 반면 교사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간의 권력 암투를 예방하기 위해
→ 후계자로 세운 아비야를 제외한 모든 자녀들을 예루살렘 밖 유다와 베냐민 땅의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치로 르호보암은 자식들간의 권력 암투 및 아비야에 대한 반란을 예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균형 있는 발전까지도 도모할 수 있었다 (Raymond B. Dillard).

본문은 르호보암이 아비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자녀들을 전국 각지에 흩어 살게 한 것이 그들을 미워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그 모든 자녀들에게 풍부한 양식과 아내들을 얻어줌으로써 그들이 불만 없이 살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그의 조치로 아비야는 순조로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고 또한 전국 각지로 흩어진 르호보암의 아들들이 각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유다 모든 지역이 왕실에 결속될 수 있었다.

2.그가 "많은 아들과 딸들을 둔 점" 에 있어서도 자기 부왕 솔로몬보다 더 행복하였다. 이에 반하여, 솔로몬 왕은 여로보암 외에 다른 아들들을 두었었다는 기사를 읽을 수 없다. 솔로몬 왕이 더 많은 아들을 두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우나, 만약 있었다 하더라도 말할 가치가 없었으리라. 그에 반해 르호보암의 여러 아들은 여기에 저명 인물로 열거되어 있다(19, 20절).

그는 저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에 흩어 살게 하는 것" 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여러 아들들이 활동적인 자들이었기 때문이다(23절).

(1) 아니면, 그가 이같이 한 목적은 다른 아들들이 그가 후계자로 지목한 아들 곧 아비야의 대적이 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2) 또는 르호보암이 공공의 안녕과 평화를 보존하는 일에 있어서 그 아들들에게 신뢰를 둘 수가 있어서, 성벽이 있는 성읍들을 맡길 수가 있었던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이것은 외적의 침입이 있을 경우 자기를 대신하여 그들과 싸울 준비를 갖추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우행을 저지르던 그가 나중에는 자기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였다. 늦게라도 지혜가 생기면 아예 지혜 없는 것보다는 낫다. 나아가, 기지는 비록 한 왕국을 잃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 샀다 하더라도 손에 잡기만 하면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본장 결론

💡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어 본장은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을 기록한 제10장에 어어 르호보암의 통치 초창기의 사적을 다루었다. 그런데 이러한 본장은 르호보암이 북부 지파의 배반을 응징하기 위하여 군대를 소집하였으나 여호와의 동족 상잔 금지 명령에 따라 전쟁을 포기한 사실과 국방을 튼튼히 한 사실, 북이스라엘에서 남하한 제사장과 레위인 및 경건한 자들을 포용하여 남왕국의 번영울 이룩한 사실 등 극히 긍정적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열왕기에서는 르호보암의 긍정적인 면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점과는 극히 대조되는 사항이다.
이러한 기록은 역사의 왜곡이 아니라 역대기 저자의 본서 집필 목적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본서 저자의 의도
남북 왕국이 분열된 암울한 현실 가운데서도, 남왕국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왕에 의하여 계속 신정 왕국 의 면모가 유지되었음을 부각시켜, 본서의 일차 독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남유다 왕조의 전통과 번영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촉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