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사무엘하 13, 고린도후서 6, 에스겔 20, 시편 66, 67
묵상구절
11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13 아사가 왕위에 있은 지 사십일 년 후에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14 다윗 성에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무리가 장사하되 그의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 재료를 가득히 채운 상에 두고 또 그것을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서론
본절부터 14절까지는 아사 왕의 사망과 그의 행적 관련 사료를 요약 제시하는 부분.
병행 구절인 왕상 15:23에는 그의 발에 병이 든 사실만 기록하고 있을 뿐 그것에 대해 아사 왕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아사 왕이 ‘그때에 여호와 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고 명시적으로 밝힌다.
이러한 기록은 바아사의 침략 때 아사가 하나님께 의지하지 아니하고 아람 왕에게 의지하였던 사건과 싹을 이루어 통치 말기 아사의 불신앙적 측면을 부각시켜준다.
💡 11절,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본서 저자는 본서를 기록하면서 공적 연대기와 족보 기록, 선지자의 글을 포함하여 약 32 가지의 별도의 자료들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본서 저자는 바로 이러한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객관적이고도 효율적으로 기술한 것. 열왕기에서는 아사 왕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마치면서 아사의 기타 사적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된 것으로 밝혔다(왕상 15:23). → 역대기 저자와 참조한 주요 자료가 달랐음.
Ⅲ. 그는 병이 들었다.
죽기 2년 전에 "그의 발에 병이 들었다" (12절). 아주 심한 통풍으로 큰 괴로움을 당하였다. 그가 선지자를 차꼬에 채웠으므로,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를 차꼬에 채우셨다. 그러므로 그의 징벌은 그의 죄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의 병은 심히 중하였다" 고 했다. 그의 병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번역하는 자도 있고, 그의 병이 정수리에까지 올랐다고 번역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병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병은 재난이요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가" 병에 걸리자 낫기 위하여 여호와께 구하는 대신 "의사들에게 구하였다" 는 사실이 바로 그의 죄였다.
그가 의사를 이용하는 것은 의무의 하나였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저들에게서 기대하고 그들을 의지했다는 것이 바로 그의 죄악이었고 우행이었다.
피조물의 도움이란 것은 언제나 피조물을 지으신 조물주를 염두에 둔 것이라야 하며, 그에게 의존하는 경우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물주 없이는 제 아무리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극도의 충실성을 보유한 의사라 하더라도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들 의사들이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생소한 이방인들로서 일종의 요술사들이었으며, 아사가 마치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이들에게 의뢰하였다고 생각한다.
💡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아사는 그의 재위 제39년에 중병을 얻었다. 그 병은 그 의 두 발에 발하였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치료되지 못하였다.
당시 아사 왕의 발에 발한 중병이 구체적으로 어떤 질병이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 병이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갈 정도의 심한 병이었음을 감안하여 대체적으로 이것을 통풍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난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재난은 하나 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인데,
1.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 징계하기 위해 재난을 보내시는 경우가 있고,
2.그것과는 상관 없이 그를 강하게 하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기 위해 재난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 본절의 아사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불신앙에 대해 책망하는 선견자 하나니를 박해한 아사를 징계하는 차원에서 그로 심각한 질병에 걸리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징계는 아사가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사는 그때 조차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의원을 찾음으로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본문은 ‘그러나’ 란 뜻의 접속사로 시작,
→ 이러한 표현에는 과거 북이스라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하여 아람과 동맹을 맺은 아사의 과실과 이러한 불신앙을 지적하는 선견자 하나니를 투옥하며 병이 들어 상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구하지 않고 세상의 의원들만 찾은 아사의 불신앙에 대한 본서 저자의 아쉬움이 잘 드러난다.
‘아니하고’
절대부정을 나타내는 부사 + 완료형 ⇒ 단 한 번도 구하지 않았다는 의미.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침략 때 그는 여호와를 찾지 않았으며, 발에 중병이 생겼을 때에도 여호와를 찾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과거 경건한 자세로 여호와를 찾았던 신앙적 자세(14:4,7, 11; 15:4, 12, 15)와 상반되는 퇴보된 신앙의 모습을 잘 반영한다.
‘의원을 찾음’
병이 든 아사는 여러 의원들을 찾았지만, 그들은 아사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였다. 당시 상황에서 만일 그가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그는 깨끗이 치료받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 이시기 때문이다(출 15:26).
훗날 히스기야 왕의 경우는 죽을 병이 든 상황에서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찾음으로 죽음에서 놓이는 기적을 체험하였다(왕하 20:1-11).
Ⅳ. 그의 죽음과 장례.
그의 장례식은 다소 성대하였던 것 같다(14절). 그들은 "그를 위해 굉장한 장례" 를 치렀다. 나는(혹자들이 생각하듯) 그 스스로가 이 호화판 장례를 명하였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으며, 또 유대인들의 방식대로가 아니라 이방인들처럼 매장되기를 바랐던 것이 그의 허영의 한 증좌였다고 생각하고픈 마음도 없다. 참으로 "그는" 마치 자기 무덤을 염려하는 자와 같이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팠다" 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화려한 장례는 오히려 그의 말기의 실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그를 향해 품었던 큰 존경심의 발로였던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것은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그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비록 오점을 남긴 적이 있더라도 선량한 자들의 탁월한 경건심과 유용성은 찬양하고 기념되어야 마땅하다. 그들의 잘못은 무덤 속에 매장되어 버리고 그들의 공헌은 그 무덤을 넘어서까지 기억해 주어야 한다. "선을 행하며 죄를 짓지 않는 정직한 자는 하나도 없다" 고 말하신 분이 "그러나 정직한 자를 기억함은 복된 일이라" 고 또한 말했으니, 그것이 그대로 될지어다.
💡 16:13 아사가 왕위에 있은 지 사십일 년 후에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아사는 — B.C. 911년에 유다 왕위에 올라 41년을 통치한 후 B.C. 8기년에 사망. 그의 통치 기간 중 유다에는 각종 우상이 타파되고 백성둘의 마옴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등 엄청난 신앙적 번화가 있었다.
그러나 통치 말년에 그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선지자를 박해하는 등의 악행을 범하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음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였다.
16:14 다윗 성에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무리가 장사하되 그의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 재료를 가득히 채운 상에 두고 또 그것을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
‘다윗 성에 자기를 위해.. 장사하되’
남유다 왕들의 경우 우상을 숭배하고 실정을 하는 경우나(21:20 ; 28:27) 문둥병 이 걸린 경우(26:23) 등 극히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다윗성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었다(24:16 :35:24). 그러나 아사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다윗성에 자기틀 위하여 파두었던 묘실'에 장사되었다.
→ 이는 그가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였음을 보여준다.
본서 저자는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그의 장례 과정까지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그에 대한 경의를 드러내고 있다.
⇒ 이는 통치 기간 중에 비록 실정들도 있었지만 2차에 걸친 그의 종교 개혁을 높이 평가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체를 .. 상에 두고’
→ 역대기 기자의 관점이 반영된 기술
상 = ‘눕는 곳, 침대’
병행 구절
왕상 15:24에는 단순히 ‘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장사되고'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서 저자는 아사왕의 장사에 대하여 더 자세히 기록하여 그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였다.
시신을 향 재료가 가득 차 있는 침대에 눕히고 거기에 분향하는 것은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의 장례 풍습이었다. 그러나 왕정 시대에는 왕들의 장례식 때에만 이와 같이 행하였다. 또한 이러한 장례 행위는 죽은 자에 대한 극도의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비록 아사가 그 통치 말년에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인 신앙 자세로 일관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는 재위 초기에 이룩했던 종교개혁의 성과들로 인해 다윗과 히스기야, 요시야와 더불어 경건한 왕으로 꼽히는 왕이었다.
본문에서 아사의 성대한 장례식을 자세히 서술한 이유는 그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심과 과거 아사의 신앙적 측면을 상기시키려는 본서 저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
문자적으로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그를 위하여 어마어마하게 큰 불을 살랐다’
→ 이는 아사 왕을 위하여 분향하되 그 규모가 엄청났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한글 개역 성경은 단순히 ‘많이’로 번역하였으나 이에 해당하는 ‘께둘라(매우 큰) 아드 리므오드(대단히)’ 는 매우 강조적 의미를 지니는 것.
이러한 강조적인 표현이 사용된 것은 백성들이 말년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아사를 대단히 존경하였음을 보여준다. 분향을 많이 하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에 악정으로 일관했던 여호람의 경우 다른 왕처 럼 분향을 하지 않았다는 표현에서도(21:18.19) 잘 잘드러난다.
💡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제14-16장은 남유다 제3대 왕 아사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었다.
열왕기서가 15절로만 기록한 아사의 행적을(왕상 15:9-24) 본서 저자가 무려 48절에 걸쳐 기록한 것은→ 그의 삶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이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여호와를 찾을 때는 형통하지만 반대로 여호와를 찾지 않을 때에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아사의 삶 자체가 응축적으로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14, 15장에 걸쳐 아사가 여호와를 찾을 때에는 강력한 종교 개혁을 실시할 수 있었고 백만이나 되는 적군도 쳐부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여호와를 찾지 않고 인간에게 도움을 구하며 더 나아가 이러한 인본주의적 행태를 비관하는 자들을 박해하는 등, 여호와 중심의 신앙에서 떠날 때 —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본서 저자는 이와 같은 아사 왕의 뚜렷하게 대비되는 삶을 통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며 섬기되, 일시적, 부분적으로 섬길 것이 아니라 영구적, 절대적으로 섬길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