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1월 8일 수요일 묵상구절 대하33:10-13 <므낫세가 기도하다>

Jeehyun 2023. 11. 8. 13:46

맥체인성경읽기

열왕기하 21, 히브리서 3, 호세아 14, 시편 139

묵상구절

33: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33: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33: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33: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므낫세의 개혁 사업(역대하 33:11-20)

◎ 10-11절 : 심판 받은 므낫세

 💡 33: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 이르셧으나’

  • 지칠 줄 모르는 므낫세의 범죄는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끌어내게 되었다.
  • 사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 므낫세에게 심판과 재앙의 예언을 선포하셨다(왕하 21:10-15).  그 메시지는
    • 여호와께서 북이스라엘과 아합의 집을 심판하던 그 심판으로써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무서운 내용이었다.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은 이러한 여호와의 경고에도 돌이키지 않았고,
  • 도리어 선지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무시해 버렸다.
  • ‘듣다’
    • 원형 ‘카솨브’ : 본래 ‘귀를 곤두세우다’ 란 의미.
    • 들려오는 말에
      •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 그 말에 적극적으로 순종한다는 뉘앙스를 지닌다(느 9:34; 욥 33:31; 시 17:1).
    • ‘로’ (강조적 부정 의미) 와 함께 쓰여 → 결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결코 순종할 마음도 가지지 않았다.

랍비 전승에는

  • 므낫세가 이사야를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언급되는데,
  • 본문은 그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과 모종의 연관을 갖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기록들을 감안할 때 므낫세와 남유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맹렬하게 다가올 심판을 더욱 재촉하였음을 알 수 있다. 

💡 33: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역사적 배경 — 앗수르와 므낫세의 대외관계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부친 히스기야가 반앗수르 정책을 렸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므낫세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였던 조부 아하스를 따라 친앗수르 정책을 폈다.

므낫세 통치 당시 앗수르는 산헤립의 아들 에살핫돈(Esarhaddon, B.C. 680-669년)과 에살하돈 아들 앗슈르바니팔(Asshurbanipal, B.C. 668-627년)이 제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역사 자료에 의하면

  • 에살핫돈은 앗수르 제국의 거대한 건축 사업에 필요한 돈과 재료를 제공하도록 무려 스물두 명이나 되는 봉신국의 왕들에게 명하였는데, 그 명단 가운데 므낫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 또한 앗슈르바니팔이 이집트 정벌을 위한 원정을 떠난 적이 있는데 그 원정을 도왔던 많은 봉신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므낫세의 이름이 있다.
  • 므낫세는 그 정도로 앗수르 제국의 일에 긴밀하게 협조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본절의 사건, 즉 므낫세가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포로되어 끌려갔던 사건은 그가 친앗수르 정책을 폈다는 점에서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 이에 대해 브라이트(J. Bright)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앗슈르바니팔 통치 당시 샤마스 숨 우킨(Shamash-shum-ukin, B.C. 652-648년)의 폭동이 있었는데, 므낫세는 그런 와중에 유다를 앗수르의 봉신국에서 독립시키려 했거나 혹은 앗수르에 대해 최소한의 충성만을 바치려 했었다.
  • 그러자 앗슈르바니팔은 이러한 므낫세의 태도를 알아채고, 이를 불쾌하게 여겨 그를 정벌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 와서 치게 하시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 대해 역대기 저자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이 사건이 여호와의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분명한 신학적 해석을 내리고 있다.

→ 본서 저자는 ‘와이야베'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사역 능동형(Hiphil)으로, 그 주어가 여호와이다.

즉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유다를 쳐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므낫세를 징벌한 주체는
    = 앗수르 왕이 아니라 온 세계를 통치하시고 그의 원대로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여호와이신 것이다.
  • 이 사건 역시 앗수르 왕의 마음을 움직여 유다를 정벌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 본문은 므낫세가 어떻게 바벨론에 이송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 본문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므낫세는 포로로 끌려가면서 봉신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도 받지 못하였다.

쇠사슬로 결박 당함

  • 본문에서는 쌍수형으로 사용되어 므낫세의 두 발목에 구리로 만든 사슬 즉 ‘족쇄(KJV, fetters)'를 매어 끌어갔음을 나타내고 있다.
  • 한편,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이 므낫세를 앗수르로 끌어가지 않고. 바벨론으로 끌어간 것은 당시 바벨론이 앗수르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12-13절 : 므낫세의 회개와 귀환, 왕권 회복

💡 앞선 3-11 절에서는

  • 므낫세 통치 전반기의 악정과 그로 인해 내려진 심판의 측면을 다루었다. 그는 과거 유다의 어느 왕보다 우상 숭배에 몰입하였고 급기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사슬에 매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비참한 운명에 던져지고 만다.

그러나 이제 12절부터 17절까지에서는 다른 양상의 내용이 전개된다.

  • 므낫세는 사로잡혀 간 땅에서 회개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다시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왕권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 국방 강화와 종교 개혁 등 긍정적인 모습으로 통치 말년을 매듭지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열왕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 열왕기는 므낫세의 부정적인 면만을 소개하였지만
    ↔ 본서는 후반기의 긍정적인 면도 소개하였던 것이다.

본서 저자가 열왕기에 나오지 않는 이러한 내용을 짧지 않게 기술한 것은 — 본장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 본서 일차 독자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

  • 유다 민족은 므낫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줄곧 악을 행하다가 마침내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으며 그 후 하나님의 은혜로 석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왔다.
  • 본서 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신정 왕국을 재건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
    므낫세처럼 과거의 죄악된 삶에서 떠나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런 므낫세의 긍정적 측면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므낫세가 그의 아버지의 선행을 본 받지 않고 사악하게 행한 것을 보았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는 그가 회개하여 이전에 행하던 악을 쫓지 않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열왕기에서와 같이 그의 악한 행적이 많이 언급되어 있지도 않고, 열왕기와는 반대로 그가 죄를 계속함으로써 멸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이 열왕기의 의도가 그들의 멸망을 초래한 이교도국의 사악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므낫세의 회개와 그에 대한 은혜가 중요시되지 않은 것은, 그 일이 국가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용서해 주시는 자비의 풍성함과 새로운 은혜를 더 하시는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으로써 상세히 다루고 있다.

Ⅰ. 므낫세가 회개하게 된 것은 그의 환난 때문이었다.

므낫세는 환난을 당했을 때(아하스왕과 같이) "하나님께 더 이상 범죄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교만함을 꺾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성결화된 환난은 흔히 전향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11절에서 그의 환난에 대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의 군대로 하여금 그를 치게 하셨다. 즉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던 므낫세의 아버지에게 아첨을 했었던 바벨론 왕은, 이제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 므낫세를 침입했던 것이다.

바벨론 왕이 여기에서는 "앗수르 왕" 이라 불리우고 있다. 그는, 산헤립의 군대가 패하여 예루살렘 앞에서 격파되면 보다 쉽사리 앗수르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자였다. 그는 그의 신복들이 모아둔 보물과 모든 귀중품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내시어 죄악에 빠진 백성들을 징벌하고 빗나간 왕을 굴복시키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 장관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므낫세" 를 잡았다. 이 가시나무는 그가 숨어 있던 그의 정원을 가리킬지도 모르지만, 그의 계획의 혼돈과 일에 대한 당황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가시방석에 앉아 빠져나갈 길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쉽게 앗수르 장관들의 먹이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왕하 20:17, 18) 그의 집을 약탈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간 것은 물론이다.

교만한 히스기야는 그들의 먹이였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저지른 죄의 끈으로 묶여 있던 므낫세를 잡아 바벨론으로 포로로 데려 갔다. 이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적혀 있지 않으나 유대인들은 이 일이 그가 왕위에 오른지 이십 이년 만에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 33: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므낫세가 환난 가운데서 좌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며 겸비함을 보였음.

‘’환난을 당하여’

  • 원형 ‘차라르’ :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사방이 꽉 막힌 상태(출2:34; 민10:9)
    • (사역 능동형) → 이는 므낫세가 당한 고통의 원인이 — 그 자신에게 있었음을 보여준다.
    • 그리고 그는 이렇듯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런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하고 과거 교만하던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게 되었다.

‘여호와께 간구하고’

  • 직역하면,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였다’
    • 얼굴 (’페네’) = 비유적으로 ‘은혜’ 란 의미.
    • 간구하다
      • = 기본적으로 마음의 고통과 비통함을 나타냄.
      • 신체적 질병을 나타내는 용례로도 사용됨.
  • 므낫세가 마음의 고통이 너무 심해 육체에 병이 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는 뉘앙스를 전달함.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 ‘겸손하여’ = 원형 ‘카나으’
    • 본래 무릎을 굽히는 모습을 나타내는 동사,
    • 비유적으로 전에 교만하고 거만하던 자기 자신의 태도를 굽히고 철저하게 낮아지는 것을 의미함(욥40:12).

본문에 나타나 있는 므낫세의 이러한 태도는

  • 과거 그가 행했던 죄악을 회개하고,
  • 선지자들을 통해 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했던 교만함을 철저하게 회개하였음을 나타낸다.
  • 본서 저자는 이러한 므낫세의 태도 변화를 강조하고 그것을 죄로 인 한 징계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으로 제시하고 있다 

Ⅱ. 그는 어떻게 그의 회개를 나타내었는가(12, 13절).

 

"그가 환난을 당했을 때" 그는 그 자신과 환난에 대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는 그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겪게 되는 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가 섬기던 신들이 그를 도울 능력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이제 회개만이 그의 일들을 복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배반했던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1. 그는 여호와만이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 을 이제야 알았다(즉 믿고 존경했다).

만일 그가 기록되고 가르쳐 온 말씀에 합당한 신뢰와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러한 큰 희생 없이도 그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고 무지하여 파멸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이러한 벌을 받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만일 그가 바벨론 궁의 왕이었다면 그는 아마도 그의 우상 숭배를 더욱 신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바벨론 감옥으로 사로잡혀 감으로써 그의 죄를 깨닫고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2. 그는 이제 "그의"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었다.

 

즉 그는 모든 다른 신들을 물리치고 그 열조의 하나님이시며 그와 언약을 맺으신 그 하나님께만 매달릴 것을 결심했다.

 

3. 그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그의 교만을 크게 꺾었다.

 

그것은 그가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부끄럽게 생각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죄인들이 그들이 거역한 하나님의 면전에서 겸손해지는 것은 매우 온당한 일이다. 또한 환난 중에 있는 자들도 그들을 바로 잡으신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교만을 꺾는 섭리 아래서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그 섭리에 적응하게 되며,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에 응할 수 있게 된다.

 

4.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은총을 다시 내려 주실 것을 간구했다.

 

기도는 회개하는 자의 위안이며 고통당하는 자의 위로이다. 정경이 아닌 책 가운데서 "유다 왕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갔을 때의 기도" 라는 표제가 붙은 책자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참된 회개를 나타낸 훌륭한 기도서가 되고 있다. 이것이 정말 그의 것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다. 만일 그의 것이었다면 그 속에서 그는 "그들 열조의 하나님" 이시며 "그들의 의로움의 씨앗" 이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또한 "거역할 수 없는 진노" 를 내리시나 "측량할 길 없는 자비로운 약속" 을 주시는 이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자들에게 회개와 용서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과 같은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같은 죄인" 을-" 왜냐하면 나는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 구원키 위해 회개를 명하셨습니다." 그는 이처럼 그의 죄를 모두 고백하고 그 죄를 더욱 무겁게 하였다. 그는 또한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오, 주여 저를 용서하시고 멸하지 마옵소서." 즉 "당신은 회개하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기도하였으며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겠습니다." 등으로 끝내고 있다.

 

 

Ⅲ.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은혜롭게 받아 주셨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셨다." 비록 환난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나 우리가 성심으로 그를 구하면 그는 우리를 거부하시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에게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고의로 보내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푸신 표징으로 그가 도망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다. 환난은 그 역할을 행한 후에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므낫세가 하나님과 그의 직분으로 돌아온다면 그는 곧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돌아오는 죄인을 받아 주시고 환영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얼마나 "신속히 자비를 보여 주시는가" 를 보라. 큰 죄를 범한 자라도 절망하지 말라. 므낫세 자신도 회개했을 때는 하나님의 은총을 얻게 되지 않았는가? 즉 하나님께서는 디모데 전서 1장 16절과 이사야 1장 18절과 같이 "오래 참으심의 본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 33: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본절 전체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의 기도를 받으셨다. 그러자 그는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 그러자 그의 왕위를 위하여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이키셨다. 그러자 므낫세는 여호와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

 

이처럼 본서 저자는 본절에 나오는 5개의 동사를 모두 계속적 '와우’ 와 연결므낫세외 회개와 겸비함에 따른 하나님의 신속한 축복을 생생하게 묘사.

  • 여호와는 겸손하게 낮아져 간구하는 므낫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회복시켜 주셨던 것.

무한하신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은혜

이와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본절에는 특히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가 강조되어 있다.

  • 인간적인 마음 같아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인데, 영원히 고통 속에 쳐넣어도 속이 시원찮을 상황인데,
  • 하나님께서는
    1. 므낫세의 진실한 간구를 들으시고
    2. 그를 용서하기로 결정하셨으며,
    3. 나아가 신속하게 그를 귀환시켜 주시고
    4. 왕직을 수행하도록 복위시켜 주셨던 것이다.
  •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라고 고백했는데,
  • 므낫세가 바로 이와 같은 여호와의 은혜를 받은 자가 되었던 것이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한편 다시 유다로 돌아와 왕위에 앉은 므낫세는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 알게 되었다.

본서 저자는 므낫세가 깨달은 것이 바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 (문법적) '여호와' 뒤에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인칭 대명사 '후'를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내는 '엘로힘' 앞에 정관사 '하'를 결합시켰다.

므낫세의 이러한 모습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모습과 흡사하다.

  • 천하가 다 자기의 수중에 들어오자 느부갓네살은 '교만하여 자기 스스로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망상에 사로졉혔다.
  •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칠년 동안 들에서 들짐승처럼 미친 사람으로 살게 하심으로 징계하셨다.
  • 이 일을 겪은 후 정신이 온전해진 느부갓네살은 그제서야 비로소 유다 민족이 섬기는 여호와만이 온 세상의 하나님이며, 왕권을 주기도 하시고 때앗기도 하시는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단 3,4장).

그런데 므낫세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섬기는 분위기에서 성장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공부했을 것인데,

이방인 느부갓네살과 동일한 과정을 겪은 후에야 여호와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매우 아쉬운 일이다.

  • 그는 과거에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참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섬겼으나 그런 것들이 그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 그러다가 고통 가운데서 여호와께 기도함으로 구원함을 받아 그분만이 참으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알았더라’ (원형 ‘야다으’)

  • 단순한 지식적 앓만을 의미하지 않고, 부부 관계와 같은 깊은 관계 및 전쟁 등 생생한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창 4:1; 삿 3:1).
  • 욥이 환난 후 여호와를 만나고 나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삼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기도한 내용(욥 42:5)도 바로 이와 같은 '야다으'의 앓을 나타낸다.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체험적이면서 확고한 므낫세의 깨달음

이어지는 그의 개혁 작업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 즉 므낫세는 귀환하여 전면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하고 과거의 모든 죄악들을 척결해 나가는 일을 수행해 나가는데,
    ⇒ 이러한 일은 그가 여호와를 살아계신 참 하나님으로 확실히 인지함으로 인해 이루어진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올바로 깨달아 아는 자만이 자신과 자신의 삶의 주변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개혁시켜 나갈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