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역대하 31, 요한계시록 17, 스가랴 13:2-9, 요한복음 16
묵상구절
11: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11: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11: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11: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11: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
11: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11: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11: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11: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11: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11: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11: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4.여기에 향리 혹은 촌락에 관한 언급이 있다.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 거하고 있었다. 즉 유다 자손들이 거한 촌락도 있으며(25-30절) 베냐민 자손들이 거한 촌락도 있었고(31-35절)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들이 베냐민과 합한 곳도 있었다(36절).
우리는 이제 그들이 안전하고 편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비록 그들의 수효가 적고 보잘 것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귀와 능력이 점차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 가운데 전반적인 불경함이 없었다면 또 믿음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더욱 강대해 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선지자 말라기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책망을 받게 되었다. 말라기는 이 시대의 선지자였던 것으로 짐작되며 그와 그의 선각자가 나타내기 전까지 예언은 잠시 중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앞선 3-24절 단락
-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된 자들의 가문과 그 수효를 소개하였다. 이어지는 본절에서 본장의 마지막절인 36절까지는 예루살렘 이외의 유다 귀환민둘의 주요 거주지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25-30절 단락
- 유다 자손들이 주로 거주하였던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성읍을 기술하고, 31-36절 단락에서는 베냐민 자손이 주로 거주하였던 예루살렘 북쪽 지역의 성읍을 기술한다.
◈ 25-30절 : 포로 귀환 시대의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 지파의 거주지를 기술
💡 25절,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기럇아르바
- 본서 저자가 본절에서 이 지명을 지칭하면서 굳이 정관사를 사용했는데,
- → 이는 창세기 35장의 사건을 회상케 하기 위한 의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성경 속 이 지명이 갖는 의미
- 창세기 35장에서 이곳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그의 부친 이삭을 만난 장소로 기술된다.
- 더군다나 창세기의 본문은 그곳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장소임을 부기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루살렘 외 유다 지파 사람들의 거주지로 가장 먼저 기술되고 있는 이곳 ‘기럇아르바' 는 이스라엘의 회복,
→ 즉 이삭의 아들 이스라엘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 그 신앙의 열조의 거주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그들 신앙의 열조의 본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뿐만 아니라 이곳은 본래 아낙 사람의 땅이었으나(수 14:15) 가나안 정복 전쟁 때에 갈렙을 중심한 유다 지파가 믿음으로 쟁취한 곳으로(삿 1:10-15),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곳이며(삼하2:4; 5:3),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에게 분여된 레위인 거주 성읍이자 도피성이기도 하다(수20:7; 21:11).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이곳은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매우 의 미 있는 성읍이다.
- 예루살렘 이외의 성읍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한 주요 성읍을 제시하는 가운데 이 성읍을 가장 먼저 언급한 이유는?
- 이 성읍이 향후 포로기 후대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따라서 본서 저자는 무엇보다 앞서 이곳 기럇아르바를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 그 ‘동네에’
- 본문은 ‘작은 마을’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거듭 사용하여
→ 이스라엘 자손이 비교적 넓게 분포하여 거주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 본서 4장의 대적들의 군사적 위협과 같은 외부적 불안 요소가 제거되었으며
- 내부적으로 치안이 안정되었음을 보여준다.
◈ 31-36절 : 예루살렘을 제외한 베냐민 지파의 거주지를 기술.
💡 36절,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본문은 유다 지파의 땅에 머물던 레위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에 가서 정착하였음을 보여준다.
사실 포로 귀환민둘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둘이 다수를 차지하였으나 그 중에는 나머지 다른 지파 사람들도 있었고 레위 지파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본서 저자가 25-35절에서 예루살렘 외의 유다 귀환민들의 주요 거주지를 소개하면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주요 거주지만 소개하고 다른 지파 사람들의 거주지를 소개하지 않은 것은 소수에 불과한 다른 지파 사람들도 여러 성읍에 흩어져 살았을 것이지만 그 수효가 미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본장을 마감하면서
레위 지파 사람들이 유다 지파 사람들의 성읍 뿐 아니라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성읍에도 정착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예루살렘 거주 대표자들의 명단과 수효를 밝힌 3-24절에서도 레위 지파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였는 바(15-18, 19-23절) 본절과 같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모든 레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만 거하였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여타의 지파들처럼 한 지역에 모여 살지 않고 분산되어 사는 것은
⇒ 하나님의 뜻이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분배시 전국에 48개 성읍을 레위인 거주 성읍으로 할당하여 그들로 여러 지파 사이에서 흩어져 살도록 하셨다.
- 이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다른 지파 사람들의 십일조를 받아 생활하는 일종의 종교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레위인들로 하여금 선민 공동체의 율법 교육•신앙 지도•종교 행정 등의 봉사를 효율적으로 감당하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포로 귀환 이스라엘 공동체가 약속의 땅 전부를 회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레위인들 모두가 과거 자신들의 거주 성읍에 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 각 지역에서 다른 지파 사람들 과 더불어 살면서 레위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감당하였던 것과 동일한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포로 귀환 시대에도 레위인들은
—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올바른 신앙 생활을 영위하도록 돕기 위하여
— 유다 지파의 성읍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의 성읍에도 정착하여 살게 된 것이다.
본서 저자는 포로 귀환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의 거주지를 밝히는 본장 전체의 마지막 부분에 이러한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포로 귀환 어스라엘 공동체가 선민 신정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가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장 전체는
- 포로 귀환 공동체가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전을 재건하고 대적들로부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한 성벽을 중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 이제 예루살렘의 수도 기능 확립과 방비를 위해 백성들이 예루살렘 이주 정책과 전국 분산 정책을 실시하였음을 보도하고 있다.
이 역사의 원동력과 의미
- 이는 물론 제8-10장에 보도된 에스라와 느헤미야 주도의 언약 갱신의 가시적 결과이기도 하며,
- 이후 진행될 성벽 낙성식을 거행할 모든 조건이 무르익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예루살렘의 모습
- 성전이 있고 성벽이 있으며, 이제 주민들까지 정착하게 된 예루살렘은,
-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으로서 손색이 없었기 때문에 본장에 이어지는 12장에서 성벽 낙성식이 거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는 포로 귀환 선민 공동체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던 중 본장에서는 과거 약속의 땅에서의 선민 공동체의 출발이 땅의 분배와 그 땅에서의 정착으로 이루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다 귀환민들이 종교적 • 행정적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여타 지역에 분산 정착하게 되었음을 밝힘으로써
— 포로 귀환 공동체가 선민 역사의 영속성을 이어감에 있어서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회복이 보여주는 바,
- 선민 역사의 영속성과
-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연속성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하나님은 한번 택하신 백성에 대해서는 그들을 징계는 하실지언정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 하나님은 그들이 범죄하면
- 소망이 끊어진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하셨다가도
- 다시 회복시키심으로
- 당신의 구원 사역이 단절되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부름 받은 우리는
-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연속성으로 우리의 구원이 반드시 완성될 것임을 확신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영적 교훈 중,
💡25-36절을 보면 예루살렘 외의 이스라엘 자손들의 주요 거주지를 보도.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지명들은
⇒ 대부분이 과거 여호수아 시대의 지명.
그렇다면 여러분, 왜 저자는 이렇게 포로 귀환 이스라엘 자손들의 거주지를 말하면서 여호수아 시대의 옛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 그것은 바로 포로 귀환 이스라엘 자손들의 기업이 — 전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 약속의 땅을 회복한 것임을 시사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당시 유다 귀환민들이 거주한 지역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약 50km 내외에 위치한 곳으로 과거 약속의 땅에 비해 매우 한정된 지역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과거의 지명을 사용함으로써
-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회복하여 가고 있음을 나타내려 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유다 귀환민들은 사마리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과거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다 회복하게 됩니다.
⇒ 이는 모두가 그들이 신앙을 회복한 결과였습니다.
⇒ 즉 그들은 신앙의 회복과 더불어 상실했던 본기업을 다시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며 이러한 훗날에 대한 소망을 가졌을까?
- 이스라엘 자손들은 나라가 망하고 자신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끌려가면서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물론 민족도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기업을 회복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은 이제 영원히 그들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을 것입 니다.
그만큼 남유다가 멸망할 당시의 상황은 참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와중에서도 그들을 보전하여 두셨다가 때가 되매 그들을 다시 부르사 고토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비록 포로로 끌려간 사람의 대부분은 바벨론에서 죽어 다시는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였지만 그 후손들이 돌아와 조상의 기업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우리에게 신앙의 회복이 잃어버린 축복을 되찾게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여 줍니다.
-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일쑤입니다.
- 그리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 또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상실케 합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기도 하고, 사업이 망하기도 하며, 질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 물론 우리에게 오는 모든 불행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는 아닙니다.
- 욥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죄와 무관하게 우리에게는 재앙이 오고 그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 또 신앙을 지키려다가 세상의 핍박을 받아 우리가 누리던 모든 것을 잃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가 누리던 축복을 상실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당신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에게 주셨던 모든 축복을 거두고 고통을 당하게 하기도 하십니다.
- 이 경우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회복하는 길은
⇒ 신앙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로 신앙을 다시 회복하도록 하기 위하여 축복을 거두어 가시는 바 우리가 신앙을 회복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이전의 축복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누리던 축복을 상실한 분이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을 회복하거만 하면 하나님은 전혀 회복의 소망을 가질 수 없었던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신 것처럼 여러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