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5, 누가복음 8, 욥기 22, 고린도전서 9
묵상구절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
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7: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7: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7: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7: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7: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7: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7: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7: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7: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7: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7: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7: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매튜헨리/옥스퍼드
재판장이신 여호와께 올리는 왕의 악인에 대한 심판 청원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
💡 식가욘 : 히브리어 ‘쉭가욘’ - ‘방황하다’, ‘비틀거리다’ 등의 뜻에서 유래.
그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심한 정신적 층격에 의하여 비틀거리는 마음의 상태를 노래한 ‘슬픔의 노래' 혹은 ‘만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본시에 다윗이 무고한 비난을 당한 상황에서 지은 애절한 슬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추정에 신빙성을 더한다.
- 이처럼 본시는 처절한 자신의 고난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비탄시로 분류된다. 그러나 본시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단순히 자신의 슬픈 감정만을 토로한 시가 아니다.
- 오히려 본시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호소하는 청원시,
- 그리고 악인을 저주하며 그들의 심판을 호소하는 저주시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개요]
- 1-5절: 자신을 무고하게 추격하는 원수돌로부터 자신의 구원을 호소하는 내용
- 6-9절: 시선을 바꾸어 악인의 심판을 청원하는 내용.
- 10~17절: 이러한 자신의 간구가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한 공의의 설현을 찬양하는 내용
●대적들에 대한 다윗의 기도 (시편 7:1-9)
Shiggaion은 "노래" 또는 "찬송가"이다(이 단어는 단지 이곳과 하박국 3장 1절에만 사용되어 있다). 즉 그것은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소재와 구성을 인위적으로 함께 모아 놓은(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노래이며(또 다른 사람들의 견해대로)매우 흥겹고 "즐거운"노래이다.
다윗은 그것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헌신적인 믿음의 태도로 그 자신이 그것을 노래했다. 그것은 "베냐민의 구스의 밀"이나 일들에 관한 노래였으며, 진짜 이스라엘 태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구스 곧 에티오피아 태생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정도로 다윗에게 야만적인 태도를 지녔던 사울 자신에 관한 노래였다. "또한 더욱 타당한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구스"라는 이름을 지닌 사울의 한 친족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다윗의 숙적으로서 그를 사울에게 반역자라고 거짓 보고하여 그것으로 인해 사울을 격분시킨(이것은 매우 무익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자손들, 실상 벨리알의 자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윗은 그와 사울 사이를 이간시킨 그를 원망하고 있다(삼상 26:19).
이처럼 야비하게 모욕당한 다윗은 이제 여호와께 의지하고 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해를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일을 의탁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주님께 찬송하고 있다. 그의 영은 그 친송에 의해 좌절되거나 위축되지 않고 매우 평정되고 유쾌해졌다. 따라서 그는 계속 거룩한 노래가 불리워지게 했고, 그의 하프는 한 번도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받은 해가 우리를 진노케 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불붙이고 자극하도록 해야 한다.
💡 이러한 본시는 이후 부림절에 낭송되었다고 한다.
부림절은 아달월 14.15일에 거행되는 절기로 사악한 하만이 유대인을 멸절시키려는 흉계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켜졌다(에3:7; 9:26). 아마도 본시를 하나님께서 다윗을 멸절시키려는 이방인 구스의 흉계로부터 그 택하신 왕인 다윗을 지켜주신 것과 이방인 하만의 흉계로부터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해 주신 사건 사이의 유비로 인하여 부럼절에 낭송되었을 것이다
Ⅰ. 그는 그 자신을 하나님의 보호 아래 두고 있으며 도움과 피난처를 위해 그에게로 도망하고 있다(1절).
"여호와여,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그들의 세력과 해로움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리하면 그들이 나를 칠 뜻을 품비 않을 것입니다."
1. 그는 하나님과 그의 관계를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오니 내가 주께로 가지 않으면 어느 곳으로 가겠습니까?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곧 나의 방패이십니다(창 15:1).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는 보호받기를 기대할 수 있는 주의 종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 1절,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 여호와
-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깊은 신뢰가 담겨져 있다. 먼저 언약을 맺으시고 이를 신실허 지키시는 하나님의 면모가 담겨진 ‘여호와'란 명칭
- 자신을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에게 영원한 왕권을 약속하신 다윗 언약을 지켜주실 것을 염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삼하 9:8-16),
- 자신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현하는 내용이 함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내’ ‘하나님’이여- ‘엘로하이’
- ‘나의 하나님' 이란 뜻의 ‘엘로하이'란 명칭에는 → 다른 존재가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원수로부터 무고하게 핍박받는 자신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 특히 여기에 1인칭 단수 접미어가 붙은 것은 →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긴밀한 인격적 관계가 성립되어 있음을 전제한 것이다.
다윗은 그 어떤 말을 하기에 앞서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는 호칭을 통하여
- 억울하게 고통 당하는 자신을 건지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며,
- 자신의 무죄함에 대한 변명을 들어주실 분도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인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그의 확신을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건지소서. 나는 주께 의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팔을 의지하지 않고 주께 피하오니 나를 건지소서." 영예로운 자들은 결코 의지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그들 자신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할 때는 특히 그러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 1절 ‘내가 주께 피하오니’
- ‘주께’ ⇒ 직역하면, ‘당신 안으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며 또한 ‘당신'아라 부를 정도로
—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 교류를 나누었던 것.
3. 그의 대적들의 횡포와 악의, 그리고 그들에 의해 그가 곧 삼키우게 된 절박한 위험을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구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파멸합니다. 저희가 먹이를 뜯는 사자같이 나를 뜯으려 합니다." 그들은 매우 오만하게, 즐겁게, 강력하게, 그리고 매우 쉽고도 잔인하게 그렇게 행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다윗이 사울을 사자에 비교하고 있는 것처럼 네로를 사자에 비교하고 있다(딤후 4:17).
💡 1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 다시 번역하면, ‘나를 박해하는 모든 자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나를 쫓는’
- 누군가를 거꾸러트리거나 치명적인 해를 가하기 위해,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창14:15)
- 당시 다윗이 표현하는 박해는 어떤 것일까?
- 이 박해는 실제적으로 다윗이 대적의 추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박해라기보다 말로써 다윗의 명예에 흠집을 내는 것과 관계된 박해인 것.
- 누구의 박해?
- 본시의 표제상으로는 다윗을 박해하는 자가 마치 구시 한 사람인 것 같지만, 본문의 표현으로 볼 때 실제로는 다수였다. 그런 자들을 다윗은 본시에서 ‘내 대적' , ‘원수' , ‘악인' 등의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 이들은 아마 베냐민 지파 출신인 사울을 추종하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다윗이 사울을 비롯한 베냐민 지파 사람둘에게 박해를 받았던 사건은 사무엘상 제24-26장과에 기록되어 있다.
‘나를 구하여’ , ‘나를 건지소서’
-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애탸게 간구하는 다윗..
4. 다른 모든 도움이 실패했음을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건지시기를 기뻐하소서. 당신외에는 나를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2절)." 하나님의 영광은 더움 받지 못하는 자들을 도우심에 있다.
💡 7: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본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건져주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여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제시.
- 다윗은 여호와께서 돕지 않으면 자신이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임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 즉 그는 자신이 과거 양을 처는 목자였을 때를 회상하며, 그의 대적들에게 마치 사자 앞의 어린양과 같은 존재로 방치되어 있음을 고백했던 것이다. - 그리고 다윗은 직유법을 사용하여 대적들이 사자와 같이 흉폭하여서 자신을 같기같기 찢고 부숴뜨릴 것이란 사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를’ = ‘나의 영혼을’, ‘나의 목숨을’
- 이러한 표현이 나타내는 다윗의 당시 상황과 심경
- 당시 다윗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이 다윗의 영흔을 파멸에 던지고자 하려는 의도를 가졌음과,
- 그러한 대적들의 압박으로 인해 다윗이 당하고 있던 고통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의 극심한 고통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Ⅱ. 그는 그의 대적들이 고소한 것에 대해 자신의 결백함을 엄숙히 표명하고 있으며, 그것에 관해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무서운 저주와 함께 호소하고 있다(3-5).
여기에서 다음은 주목하라.
1.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람들에 의해 그릇된 고소를 당할 때에도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방면(放免)한다면 우리는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계속 네 양심의 무죄함을 지키는 것, 이것이 네 방어의 강한 보루가 되게 하라.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이 비방한 것에 대해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만족스럽게 반증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
2.하나님은 억울함을 당한 무죄한 자를 옹호하신다.
다윗은 그가 호소할 만한 법정을 이 세상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의 결백함을 밝혀 주어야 할 왕이 그의 숙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날아가서 호소할 수 있는 하늘의 법정을 갖고 있었고, 그곳에는 그가 "나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었던 의로우신 재판장이 계셨다.
그러면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그가 무죄함을 진술하는 고발장은 어떠한 것인가?
그는 사울의 왕관과 생명을 해할 음모를 꾸몄다고 하여 힐책당했다. 즉 그의 왕위를 찬탄하고 살해하기 위해 그와 싸우려 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었다. 이것을 그는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이러한 종류의 불의가 없었다(3절). 그는 그러한 생각조차도 혐오했던 것이다. 그가 결코 "화친한"적이 없었던 사울이나 다른 사람들을 "악으로 갚은"일은 없었다(4절). 다른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자기를 해친 자를 결코 해하지 않았다.
💡 7: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 1절에 이어 본절의 서두에서도 다윗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란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 이는 잔인한 사자 앞에서 떨고 있는 어린양과 같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분은
— 자신과 언약을 맺으셨으며 자신과 인격적 교류를 나누는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절감한 것으로부터 나온 호칭이다.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 다윗의 변호는 맹세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자신의 무죄함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
- 여기서 다윗은 만약 자신에 대한 대적들의 모함이 사실이라면, 자기가 멸망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역으로 그만큼 자기 자신은 무죄하며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 많은 학자들은 이를 → 다윗이 전왕인 사울을 부당하게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모함에 대한 답변으로 이해한다.
- 그렇다면 이는 좀더 구체적으로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삼상 24,26장)와 관련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 즉 다윗은 동굴 속에서 발을 가리우는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으나 그를 죽이지 않았고, 텐트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가지고 갔으나 역시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 두 번의 경우에서 그가 사울의 옷자락을 베고 창과 물병을 가지고 간 것은 사울을 충분히 죽일 수도 있었으나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울 진영에 입증해 보이기 위함이었다.
- 이처럼 다윗이 사울을 죽음으로 내물았거나 왕위를 찬탈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대적들은 다윗이 사울에 대하여 그런 죄악을 행하였다고 맹비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일을 해명하기 위하여 본문의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 그의 무죄함에 대해 그는 어떤 증거를 내놓고 있는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다윗은 그 부정적인 사실을 매우 훌륭히 증명할 수 있었다. "내가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다"(4절).
이것은 직접적인 반박 이상으로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해할 의도가 없었음을 말해 준다. 즉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섭리가 사울을 그의 수중에 넣을 수 있도록 명했고 그 주위에는 곧 그를 죽이려는 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너그럽게 그리고 양심적으로 그것을 막았다.
그가 그렇게 행할 수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르고(삼상 24:4). 그의 창을 가져갔던(삼상 26:12) 것이다. 사울 자신도 이 두가지를 다윗의 결백함과 그에 관한 선한 마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것으로 인정하였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갚고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기를 스스로 거절한다면, 우리의 그러한 행동이 언젠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증거가 될 것이다.
(3) 만일 그가 유죄하다면 그는 어떠한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인가?(5절)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죽이게 하시고, 내 훌륭한 이름도 사라지게 하소서. 그로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1] 만일 그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해하였다면, 그는 그들이 똑같은 대가를 돌려 주리라고 예상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대적하는 손을 가진 자는 모든 사람들의 손이 자기들을 대적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또한 그는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 그를 건져달라거나 그의 편을 들어달라는 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범죄하여 마땅한 대가를 받고 있는 자들이 마치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처럼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무례하고 위험한 일이다. 이러한 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겸손히 하고 그들의 죄악에 대한 형벌을 달게 받아들여야 하며, 의로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를 보호하시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3] 그는 그의 무죄함에 대해 스스로 매우 만족하게 여겼다. 우리가 우리들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짓된 맹세를 한다면 우리에게 내리는 저주는 그 어떤 맹세에 대한 것보다도 더 무서우리라고 간주되어 있다. 이러한 맹세, 또는 저주로써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무죄함에 대한 항변을 재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소하고 하찮은 주장에 대한 맹세와 저주는 우리를 정당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중대한 경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7: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 다윗은 앞서 3,4절에서 가정법을 사용하여 말한 바와 같이 그가 만약 그를 비난하고 모함하는 자들의 말처럼 실제로 그러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이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 이는 역으로 자신은 결코 그런 죄악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맹세하는 것이 된다. - 즉, 본문의 표현은 자신의 무고함에 대한 자신감의 표명.
다윗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 신념
한편, 본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다윗은 그가 만약 죄를 지어 원수들에게 모멸과 치욕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게 된다면, 그것이 그들의 자의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허락하에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 자신이 만약 죄를 범했다면 : 원수들을 통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당해도 이를 달게 받아야 할 것이고,
- 자신이 만약 무죄하다면 :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잔혹한 손을 멈추실 것을 확신하였다.
‘내 생명을 땅에’ ‘내 영광을 먼지 속에’
- 다윗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과 - 신정 왕국의 왕이란 자신의 소중한 명예를 내세우며
→ 이것이 ‘땅’과 ‘진토'에 떨어지고 짓밟히는 치욕을 가정하면서까지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함.
⇒ 다윗의 애절한 심정
Ⅲ. 그 자신의 무죄함에 대한 양심의 증언을 한 후에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나타나시어 그를 핍박하는 자들을 대항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6-9절)
그는 하나님 앞에서 고소하는 법을 아는 자로서 합당한 탄원을 드려 그의 모든 청원을 후원하고 있다.
- 앞선 1~5절에서 다윗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향하여 무고히 자신을 핍박하는 대적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 6-9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핍박하는 대적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 자신의 의로움과 대적들의 불의함을 바탕으로 여호와께 공의로운 심판을 단행해 달라고 간청한다.
💡 7: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사와 그 도우심을 구하는, 갈구하는 시인의 애절한 심경이 응축되어 있음.
- 일어나사
- 깨소서
- 막으시며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쿠마)’
- 쿠마 = 앉았던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라는 의미.
- 어법적으로 여호와의 즉각적인 역사하심을 바라는 다윗의 간곡함을 나타낸다. (연장형을 강세 명령형으로 표현)
- 이러한 호소는 민 10:35의 언약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전쟁, 곧 여호와의 성전에 나타난 영상과 동일한 표현이며, 구약에서 이와 동일한 뉘앙스의 표현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3:7; 9:19; 17:13; 44:26; 102:13; 사 33:10).
⇒ 이는 언약의 말씀에 근거해 -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구하며 당신의 공의로운 심판을 불의한 자들에게 내려주실 것을 촉구하는 것을 나타낸다.
1.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들에게 진노를 보이실 것을 기도하고 있으며, 그를 대적하는 그들의 분노를 탄원하고 있다.
"주여. 그들은 내게 부당하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주께서 그들에게 정당하게 진노하시고 그 진노를 그들이 알게 하소서(6절).진노로 일어나서 심판의 자리에 가시어, 주의 능력과 심판이 명백히 드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대적들의(이 단어는 복수로 쓰여져 있다)노를, 맹렬한 분노를 막으소서."
자기를 옹호해 줄 하나님의 진노를 갖고 있는 자들은 사람들의 진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리요?"
💡 ‘진노로’
- 인간의 진노는
- 이기심이나 잘못된 관단 또는 과도한 감정의 발산 등에서 비롯 되어 죄와 관련되기 쉽다.
-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 인간의 불의와 죄에 대한 하님 자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성품의 발산이라 할 수 있다.
- 인간이 죄를 짓지 않으면, 또한 인간이 그분의 뜻을 거역하지 않으면 ⇒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전노하지 않으신다.
- 본시 11,12절에서 다윗은 바로 이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2.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사정을 변호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1)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나를 위하여 깨소서(즉 내 호소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 6절, ‘나를 위하여 깨소서’
- 다윗이 실제로 잠을 주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깨우는 것이 아니다.
- 사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주야로 이 세상을 감찰하시는 분이다.
- 그러므로 잠에서 깨어나라는 이러한 표현은 - 여호와께 다윗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알아달라는, 그래서 그 억울함을 속히 풀어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아울러 이는 방심하지 않고 정신을 바싹 차려서 경계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동사.
- 이는 사사기의 드보라의 전쟁 기사에 전쟁과 관련해 사용된 표현이기도 하다(삿 5:12).
- 이를 감안할 때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이 주무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 시인이 하나님께
- 자신의 어려움과 자신이 치르는 고통스런 현장을 주시하시고,
- 그에 따른 공의롭고 분명한 처분을 보다 속히 내려주시길 구하는 의미
[1] 거룩한 권능
하나님께서 실제로 복을 주시기 때문에 "복을 명하신다"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실제로 판단하시므로 "심판을 명하신다"고 일컬어진다. 따라서 그 심판은 아무도 취소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 심판에 대한 집행은 함께 시행되어지는 것이다.
💡 본문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주이심을 시인 스스로 상기하는 표현이다.
아울러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까지 세상의 악에 대해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칼을 뽑아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2] 거룩한 목적과 약속.
"그것은 주께서 주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에게 내리시기로 결정하신 심판입니다. 주는 세상의 왕들과 방백들에게 피해받는 자들을 구제해 주고 핍박받는 자들을 옹호해 주도록 명하셨습니다. 주여 깨어나셔서 그것을 심판하소서."
의를 사랑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요구하는 자들은 틀림 없이 그 자신도 그것을 시행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께서 잠들어있는 자처럼 그것을 묵인하고 계시는 듯이 보일지라도 합당한 때에 깨어나실 것이다(78:65), 그것을 지연시키신 것이 결코 무관심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실 것이다.
(2) 그는 또한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7절).
💡 7: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6절 마지막 부분에서 다윗은 ‘주께서 심판을 명하셨나이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이제 본절에서 다윗은 실제로 배설된 재판정을 마음에 그리며 노래하고 있다.
문맥상 본절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만민들을 증인과 참관인으로 삼아 재판정을 열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즉 다윗은 지금 만백성들이 여호와를 둘러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높이 세워진 재판정에 들어서시는 장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민족들의 집회’
- 이들이 하나님의 재판정에 앉았다는 것은 이들 모두가 재판의 참관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판결에 대한 증인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시인이 모든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 위에 하나님이 좌정하시기를 구하는 본문,
-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불의를 행치 않았음을 입증해 달라는 의미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그 . 위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 하나님이 재판장으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으실 것을 가정한 표현.
- 아울러 이는 인간과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적인 무한한 격차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 하나님은 불의한 인간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공의롭고 지존하신 분이다.
- 다윗은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재판정 최고의 자리에 좌정하셔서 완전한 공의를 나타내시고 시행하심으로써 부정한 자들의 오만함을 꺾으시고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
"그위 높은 자리에 돌아 오소서. 그리하여 주워 위엄을 유지하시고, 그들이 멸시한 주권의 거룩한 보좌를 되찾으소서. 그리고 그들이 그 판결을 무시한 심판대에 오르소서. 높은 자리에, 즉 하늘 자체도 시인하고 있음을 온 세상이 인정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볼수 있는 자리에 돌아 오시어 다윗의 사정을 변호해 주소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하늘로 돌아가셨을 때(높이 들림을 받으셨을 때) 모든 심판을 의탁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가르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또 그가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 세상 높은 자리로 돌아 오시게 될 그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의 상처받은 백성들은 이러한 재림을 기다리고 있으며, 간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도로써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부당한 책망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3) 그는 다시 기도하고 있다(8절).
"나를 판단하소서. 나를 위해 판단하시고 내 편이 되시어 판결을 내리소서."
[1] 이 청원을 강력히 하기 위해 그는 당시에 그의 소송을 합당한 법정으로 가지고 왔었음을 진술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8절). 그것은 그의 본분이었고, 그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나를 심판하소서."
그는 온세상의 재판장이시므로 틀림없이 옳게 행하실 것이며, 모든 것은 그의 심판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 심판자는 법과 정의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공의를 그의 보좌의 기초로 삼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89:14)은 → 당신의 거룩한 성품 그대로 오로지 공의에 근거해서만 심판을 단행하신다.
- 그는 뇌물을 받지 않으시며, 사람의 외모를 따라 재판하지 않으신다.
- 또한 그분은 당신의 전지하신 능력으로 각 사람의 행위와 마음의 동기를 정확히 살피사 완전하며 공정하게 심리하신다.
다윗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바로 그 하나님께 자신에 관한 판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는 자기와 사울간의 불화 관계에서도 결백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서 그 심판이 자신의 의에 따라서, 또한 발자취 속에서 가졌던 그의 마음의 성실함에 따라서 행해질 것만을 원하고 있다.
💡 8절,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으로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의 심관에서 무죄 관결을 받아낼 수 있다는 확신을 말하고 있다. 자신은 의롭고 무죄한 사람으로서 악인들에게 무고를 당했다는 것.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의를 말하는 것은
- 자신이 하나님처럼 완전히 의롭다거나 전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 그는 대적들이 모함하는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다는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것.
의, 성실함을 따라..
- 궁극적으로 다윗은 마음의 동기를 살피시며 각 사람의 모든 행위를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이처럼 의로움과 관련된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것.
[3]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나타나신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한층 더할 것이고 그 의 백성들의 교화와 위로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예시하고 있다. "백성들의 회중으로 주를 두르게 하소서. 따라서 그들이 주의 전에서 찬미하고 봉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그것을 행하소서."
- 첫째,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것을 행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이 되시고 그의 약속을 그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은 그의 의로움과 선함과 성실함을 부여 주시는 일이므로, 이 사실은 그를 성실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넓힐 것이고 그들의 입을 찬미로 채울 서이다. 다윗은 그의 나라가 특히 그 곳의 모든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가 정당한 방법으로 왕좌에 오른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크게 기뻐했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이다. 그들의 무리는 그들의 나라가 축복 받음을 찬미하면서 그의 단어 모였을 것이다.
- 둘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가 능력을 물려받는다면,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교회로 돌아오도록 온 힘을 기울일 것이며 하나님의 궤는 결코 "사울 때"처럼 소홀히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대상 13:3).
3. 그는 일반적으로 죄인들의 회심과 성도들의 확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9절).
"나의 대적들뿐만 아니라 모든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우리 모두가 원해야 하므로 또 기대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이 여기에 있다.
(1) 죄의 멸망.
우리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죄는 종결되도록 해야 한다. 타락이 없어졌을 때, 악인의 길과 생각이 버림받았을 때, 세상과 육신을 향하여 급격하게 흐르던 물줄기가 역회전하여 하나님과 하늘을 향해 흐를 때, 악인의 사악함은 끝날 것이다. 풍습이 일반적으로 개혁될 때, 무신론자들과 불경스러운 자들이 회심하여 전향할 때, 죄가 퍼지는 것이 중단되어 악인이 더 이상 재앙을 행하지 못하게 되고 그들의 어리석음이 밝혀질 때, 교회의 대적들의 악한 계략이 죄절되고 그들의 힘이 꺾이며 죄인이 멸망할 때, "악인의 악이 끊길"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그를 위해 악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고 간구하는 것이다.
💡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본문에 나타나는 다윗의 심판은 악인 대 의인에 대한 심판이 아닌, 악인의 악 대 의인에 대한 판결.
여기에서
- 다윗은 악인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악을 미워함을 알 수 있다.
- 한걸음 더 나아가 여기에서 악인들이 악을 버리고 옳은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다윗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신정 왕국의 왕이었던 다윗은- 대적들의 멸망을 바란 것이 아니라, 대적들의 회개를 바랐고
- 하나님의 의가 널리 드러나기를 바랐던 것어다.
- 여기에서도 다윗의 신앙 인격의 성숙함이 잘 드러난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심장들과 콩팥들을 감찰하시나이다’
- 사람의 마음과 양심’(립보트) - ‘심장들과 콩팥들’
히브리인들이나 고대 근동 사람들은 심장이나 콩팥과 같은 인간의 내장을 감정 이나 생각의 동기가 형성되는 좌소로 보았다.
→ 따라서 심장들과 콩팥들을 감찰한다는 것은 인간들의 모든 생각과 일의 동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 다윗은 사람들이 그들의 동기와 속마음을
- 다른 사람들에게는 속일 수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만큼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 알고 있었다.
- 즉 그는 악인들이 그를 까닭 없이 모함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해도,
- 여호와 하나님만큼은 견실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악인들이 제아무리 세치 혀로 거짓 모함을 한다 할지라도, 사람의 진심을 궤뚫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모함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밝히실 것이다.
- 다윗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조금도 흠 잡힐 죄악을 범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결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2) 의로움의 불멸.
"의인을 세우소서."
우리는 악인이 선하게 되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선한 자가 더욱 선하게 되어 더욱 훌륭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악인의 책략에 넘어가지 않고 악인의 악의에 놀라지 않도록,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택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견고히 하나님과 믿음의 세력을 지키고 "악인의 악을 끊기"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해야 한다. 그가 이러한 탄원을 하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은밀한 악을 알고 계시며 그것이 끝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다. 그리고 그는 의인의 은밀한 성실함을 증거하시고 은밀히 그들을 세우신다.
우리가 오해를 받거나 해를 당할 때 우리를 변호할 수 있는 편견없는 양심의 증거를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이 구절들을 노래함에 있어서 의로우신 하나님께 우리의 호소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우리의 의로운 주장을 인정하실 것이며 어느날, 적어도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결백함을 밝혀 주실 것이 분명하다.
●핍박자의 파멸 (시편 7:10-17)
💡
- 앞서 6-9절에서 다윗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악인을 심판하여 주실 것을 청하는 간구를 올렸다.
- 10-17절까지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이를 이루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본단락에서는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번화가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는 다윗의 선취적 신앙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시편의 앞 부분에서 기도로써 하나님께 호소하고 그의 결백함을 엄숙히 고백하였던 다윗은
뒷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써 그 호소에 대한 심판을 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심판이 의인에게는 행복과 안전을 가져다 주고 계속 회개할 줄 모르는 악한 자들에게는 명백한 멸망을 가져다 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Ⅰ. 다윗은 그의 강력한 보호자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나님, 그리고 억압당하는 무죄한 자를 옹호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10절).
"나의 방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께서 내 방어가 되신다는 사실을 내가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는 오직 그 속에서만 방어와 안전을 구한다. 위험한 때에 내가 바라는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 내게 방패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나의 방패는 하나님께 있도다"(어떤 사람들은 그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방패는 그의 것인 모든 사람들에게 보호를 확신시켜 준다. 그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이다(잠 18:10).
다윗은 다음 두 가지 근거위에 이러한 확신을 갖고 있다.
1. 하나님은 신실한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은총을 내리신다.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히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을 하늘의 왕국에 있게 하실 것이다.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는 한 그는 현재의 환난에서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들의 결백함과 정직함은 그들을 보존할 것이다. 마음이 정직한 자는 인전하며, 거룩한 가호 아래서 그러하다고 스스로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은 공의에 대해 일반적인 관심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의 의인을 판단하시도다." 그는 모든 의로운 주장을 인정하신다. 그리고 모든 의로운 자들의 주장을 옹호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며"(어떤 사람들은 그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그는 친히 의를 행하실 뿐만 아니라 인생들이 의를 행하도록 돌보실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불의를 보복하시고 벌하실 것이다.
💡 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본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분으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가 되신다고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악인들이 다윗을 비록 악한 말로 모함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다윗은 평온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악인들이 쏟아내는 거짓된 비난의 화살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막아낼 수 있는 완벽한 방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달리 말해 다윗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정직' 한 가지만 가지고,
자신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의 무고한 거짓 송사와 악의적인 비난에 대항하고, 그 모든 불의한 공격에 넉넉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만약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 방패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겠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기 때문에 그는 그 방패가 자기 앞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방패’
앞선 2절에서
- 다윗은 과거 자신의 목자로서의 경험이 반영된 표현을 하였다.
- 목자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사자와 같은 맹수의 습격이다. 따라서 다윗은 원수가 자신을 해치는 양상을 사자가 어린양과 같이 무력한 자신에게 덤벼들어 찢고 뜯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본절과 12절에서
- 다윗은 과거 자신의 군사로서의 경험을 반영된 표현을 한다.
- 특히 본절에서는 방패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노래하고 있다.
방패(’마겐’)
- 히브리어에서 방패를 나타낼 때에는 본절에 사용된 ‘마겐’ ‘친나’ ‘쉴레트’ 세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들 간의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특히 ‘마겐'은 전신을 가릴 수 있는 큰 방패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 이러한 사실은 35:2에서 큰 방패를 나타낼 때는 ‘마겐'을 사용하고 손방패를 나타낼 때는 ‘친나'를 사용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병사들은 ‘마겐'과 같이 온몸을 다 가리는 방패를 사용하여 → 적의 화살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전쟁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경험했던 다윗이,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한 원수들의 사정없는 공격에 직면하여 자신을 보호할 분으로 하나님을 떠올렸으며, 더구나 그분을 온몸을 가리는 방패에 비유한 것은
→ 지금 자신이 당한 어려움과 관련해 하나님이 얼마나 절대적인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부각시켜 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Ⅱ. 그는 그를 핍박하는 모든 사람들의 멸망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려" 하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11-16)
💡 앞선 10절에서 다윗이 의로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본절부터 16절까지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될 악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이 결코 악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설을 재차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의로우심' 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차마 악을 보지 못하시며(합 1:13), 패역에 대해서 심판의 불을 쏟으시는 분이다(창 19장).
그는 여기에 그들의 파멸을 적어 놓고 있다. 그것은 가능하다면 그들이 자신의 유익함을 위해 악의를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거나, 또는 자신의 위안을 위한 것이었다. 즉 그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 때 형통하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그곳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1. 그들은 진노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시며, "매일 분노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을 행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분노하시며 "진노의 날에"대비하여 그 분노를 쌓아 놓으신다. 그의 자비가 매일 아침 그의 백성들에게 새롭게 부여되는 것과 같이, 악인들의 새로운 범죄가 저질러짐에 따라 그의 진노도 매일 아침 그들에게 새로 임한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가장 형통하고 즐거워하는 날에도, 그들이 예배드리는 날에도 그들에게 분노하신다. 그들이 형통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분노 속에서 행해지는 일이며, 그들이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도가 가증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머물러 있으며(요 3:36) 그 진노는 계속적으로 불어난다.
💡 본문에서 ‘분노하시는'
- ‘조엠' : 본래 입에 거품이 일 정도로 분노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사 66:14).
- 그분의 악에 대한 분노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분노와 다른 성질의 것으로서,
- 이 세상에 만연한 악을 분쇄하여 당신의 의로우신 통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관련된 것.
- 이러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노가 없다면…?
- 이 세상은 악인들의 횡포로 생지옥이 될 것이다.
- 다윗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속성을 알고 또한 악인에게 분노하시되 쉬지 않고 매일 분노하심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무고히 모함하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매일’ 분노하신다
- 이 전치사구는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이 모든 날들 동안 하나님께서 공의를 드러내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 하나님이 잠시 잠깐이라도 악을 묵과하지 않으시며 악인의 행하는 바에 대해 공의에 근거한 거룩한 진노를 쌓고 계시다. (롬2:5)
→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채워지고 그 진노를 악인에게 퍼부으실 날이 임박해오고 있음을 함축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악인이 그 거룩한 진노하심을 피하지 못할 것이며 비참한 지경에 처해질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귀결된다
2. 그들은 사망의 자손들이며, 모든 진노의 자손들과 같이 파멸하게 되어 있는 지옥의 아들들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그들의 멸망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파멸은 "전능자로부터 나온 멸망"이다. 우리 각자는 이 멸망을 두려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하나님의 분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13,14절).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1] 죄인들의 멸망은 그들의 개심에 의해 방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위협에는 이러한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아" 그 악한 길에서 "회개치 아니하면," —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일을 버리지 아니하면, 그는 그것이 그의 파멸을 초래하리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면 그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며 모든 것은 잘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처럼 분노의 위협 가운데에도 은혜로우신 자비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파멸하는 자들의 멸망 속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의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회개하여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악행을 계속하여 나아가 죽게 되고 그들의 피가 그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게 된다.
💡 7: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 ‘사람이 죄를 범하면'이 아니다.
→ 만약 이것이 심판의 조건이라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의하여 멸절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본성적으로 부패하였고 죄악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롬 3:9-12). -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조건이 아니라 회개치 아니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리셨다. 즉 범죄하였다 할지라도 참으로 회개하는 자는 심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 이러한 다윗의 말은 자신의 대적들을 향하여
- 회개함으로 심판을 면하라는 의미와 더불어,
- 더 이상 거짓되고 사곡한 말과 행실로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간곡한 요청으로서의 의미.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 여호와께서 죄인의 악을 심판하고자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이 지날 때까지 죄인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준비하신 칼과 화살로 단호하고도 분명한 심판을 범죄자에게 단행하실 것이다.
-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행동 착수에 대헤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셨지만, 즉각적으로 이를 단행하지 않으시고 죄인이 회개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심을 함측적으로 전달한다.
‘그의 칼’. 그의 활’ =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 하나님께서 칼을 가셨고 활의 시위를 당기고 있다는 것은 악인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 앞선 1, 2절에서는 다윗 자신이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에 처하여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제 다윗은 대적들의 공격으로 인한 자신의 물리적인 상황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눈, 즉 영적 안목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윗은,- 자신은 하나님의 방패로 안전하게 보호받는 반면,
- 대적들은 무방비 상태로 이미 당겨진 하나님의 활과 예리하게 간 칼이라는 위기에 노출되어 있음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또한 그것은 만일 죄인이 개심으로 인해 그 파멸을 방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그를 위해 예비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13절) 그는 "죽일 기계를 예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죽이고자 하신다면 어떤 피조물도 죽이실 수 있는 기구를 갖고 계시다. 그가 원하신다면 가장 보잘 것 없고 가장 약한 것들도 죽이는 일에 사용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첫째, 여기에 여러 가지 도구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모두 협박과 살인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칼은 가까이에 있는 자들을 상처입히고 죽일 수 있으며, 활과 살은 모든 것을 해명하는 하나님의 의가 미치지 못할 정도로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상처입히고 죽일 수 있다. 만일 죄인이 "철병기를 피한다" 할지라도 "놋활이 쏘아 꿸 것이다"(욥 20:24).
- 둘째, 이 죽일 도구가 이미 모두 예비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찾으실 필요가 없이 그것들을 항상 손에 들고 계시다. "심판은 냉소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불 지옥은 오래 전에 준비되어 있다."
- 셋째, 하나님께서는 죽일 기계를 예비하고 계시는 반면에 ↔ 죄인들에게 그 위험을 적당한 때에 경고하시어 그들이 회개하고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여유도 주신다. 그는 형벌 주시는 것을 서두르지 않으시며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기로 "
- 넷째, 회개할 시간을 주기 위해 파멸이 오래 지연될수록, 그 때를 잘 선용하지 않는다면 그 파멸은 더 쓰라릴 것이며 더 무거울 것이고 영원한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칼은 갈아지고 있으며 활은 당겨지고 있다.
- 다섯째,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의 멸망은 그것이 비록 늦게 올지라도 분명히 오고야 만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비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 여섯째. 거룩한 분노는 모두 죄인들 가운데 핍박자들을 겨냥의 표적으로 세운다. 다른 사람에게보다도 바로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살을 예비하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항하나 결코 그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다.
💡 7: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그 만든’
= 완료되지 않은 진행의 의미. (’그는 불타는 화살들을 만들고 있다’)
악인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은 죽일 무기들을 이미미 준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불타는 화살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
-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
(2)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파멸시킬 것이다(14-16절).
죄인은 그 스스로를 파멸시키기 위해 큰 수고를 하는 것으로서, 올바른 지시를 받아 그의 영혼을 구원하려 하기보다는 자기 영혼을 저주하기 위해 더 큰 수고를 한다고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그의 행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1] 그릇된 계획을 낳는 수고하는 여인의 고통으로(14절). 꾀가 들어 있는 죄인의 머리는 "잔해를 잉태하여"매우 교묘히 계략을 고안해 낸다. 그리고 그 계획을 깊이 두며 단단히 지키고 있다.
- 분노로 차 있는 죄인의 마음은 "궤휼을 낳는다."
- 그리고 그 마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적하는 해로운 계획을 낳기에 고심한다.
그러나 태어난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
→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그의 오른 손에 있는 거짓이다. 그는 자기가 의도했던 것을 획득할 수 없다. 설령 그가 자기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감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 그는 "바람"(사 26:18)과 "겨"(사 33:11)와 "사망"(약 1:15), 즉 "궤휼을" 낳는다.
💡 7: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 다윗은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라는 진리(삼상 24:13)를 재차 확인시키고 있다.
- 즉 본절은 여인이 아기를 잉태하여 낳는다는 인간사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출산의 영상을 사용하여 악과 악인 사이에 있는 불가분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삼상 24: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악인은 도무지 생산적이거나 아름답고 선한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악인은 결코 참된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의로운 빛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둠에 속한 것에서만 발견되는 것들을 잉태하여 낳는다.
악인이 낳는 것 3가지
- 죄악 (’아웬’)
- ‘공허함’, ‘헛됨’
- 이는 거짓된 우상 숭배와 관련된 죄악을 지적할 때 흔히 쓰인다(삼상15:23; 사66:3)
- 잔해 (’아말’)
- 악에서 비롯되는 ‘고난’(창41:51)
- 궤휼 (’솨케르’) : ‘거짓말’
-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다윗의 명예를 추락시킨 부당한 모함.
[2] 웅덩이를 파기 위해 힘든 일을 한 다음 그 속에 떨어져 죽어버리는, 수고하는 남자의 고통으로.
- 첫째, 이것은 어떤 면에서 모든 죄인들에게 적용되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파멸을 예비하고, 죄의 짐을 지고, 그 타락에 굴복함으로써 스스로 파멸을 준비한다.
💡 7: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 악인이 이미 판 그것을 계속하여 또다시 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 이러한 모습은 악인이 무죄한 자를 함정에 빠뜨리고 그를 완전히 파멸시키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강조적으로 보여준다.
본문에서 잘 드러나듯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살아 있는 한 악인들의 악은 의인을 멸망시키지 못한다.
- 하나님은 의인이 악인의 함정에 빠져 멸망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악인의 몰락을 확신한다. 새를 잡기 위해 놓은 덫에 사냥꾼 자신이 걸리는 것처럼 악인은 그가 되한 악의 구렁텅이에 스스로 빠지고 만다.
- 본문에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은 → 멸망에 떨어진다는 것을 상정적으로 나타낸다.
- 둘째,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나 그들이 이웃을 해할 뜻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흔히 눈에 띄게 일어나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의로우신 손에 의해 그것은 "그들의 머리로 돌아 오게 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파멸시키기 위해 고안했던 것이 그들 자신을 혼란시키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 증명된다.
살해할 계획을 품은 장본인이 바로 그 계획이 의해 멸망하는 것보다 더 공평한 법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자기 칼에 죽은 사울에 적용시키고 있다.
💡 7: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다윗이 강조하려는 바는
- 악인이 가장 내세우고 소중히 여기는 그 부분에 하나님의 재앙이 임한다는 것.
머리에 재앙이 내려진다
- 악인이 치명상을 입고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한다는 의미.
그의 재앙, 그의 포악
- 재앙 = 불행, 슬픔
- 포악 = 흉포함
- 부정적 의미의 단어가 반복되는 것 역시 무죄한 사람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며 악을 획책하는 자와 저주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가 한 저주를 그 자신이 필연적으로 받게 됨을 잘 보여준다(109:17)
이 시편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여기에서의 다윗처럼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해야 한다(17절). 즉 그가 그의 고통당하는 백성들을 은혜롭게 보호해 주시고 그들을 괴롭힌 자들을 추적하시어 그들에게 의롭게 복수하시는 일에 대해, 그에게 영광돌려야 한다. 그의 대적들의 교만하게 행할 때 그들보다 위에 계심을 보여 주시는, 가장 높으신 여호와께 우리는 이러한 찬미의 노래를 드려야 한다.
💡 7: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
- 여호와의 이름이 지극히 높다는 것은 = 여호와께서 지극히 높다는 의미.
- 실로 모든 존재 가운데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는 지극히 높이신 분이다.
‘감사함이여', ‘찬양하리로다'
- 그러한 지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해 - 악인이 필멸하고 의인이 승리하리라고 확신하는 다윗의 선취적 신앙을 나타내준다.
따라서 지금 현재 본시의 저자는 처음 시작할 때와 그 상황이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여전히 대적의 집요한 핍박 가운데 있지만, 여호와를 소리 높여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 변하기 쉽고 표리부동한 외적 환경이 아니라,
- 변함없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온전하심에 근거해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와 찬양을 생활화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악인들의 모함으로 인한 고통의 호소로 본시를 시작했던 다윗은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가 살아 있는 한 악인의 악은 필연적으로 심판을 당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후에는 그 마음에 기쁨이 넘쳐 하나님의 의에 대한 찬양으로 본시를 마리 짓는다.
이러한 본시에서 시인이 주안점을 두고 언급하는 소재는
-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 그에 따른 심판, 그리고
- 그 이후 개인의 운명의 판이한 역전이다,
먼저 시인은 자신의 불의한 현실적 상황, 악인들의 횡포와 거짓 참소로 인해 시시각각 곤경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만 같은 상황을 서술한다.
그러나 앞선 제3~5편과 마찬가지로 본시 역시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끝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 시인은
- 어려운 현실적 상황에서도 - 범사에 최종 결정권을 지니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묵상하면서 의를 행하고자 몸부림쳤던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된다.
- 그리고 그로 인해 암담한 현실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승리와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상기함으로 인해 시인은 자신이 승리와 축복을 얻을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악인들의 모습
- 반면 악인들, 즉 자신을 무고히 참소하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공의로 관단하시며 그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확신한다.
- 그렇지만 악인들은 현실에만 집착한 나머지 끝내 회개치 않는다.
⇒ 이는 궁극적으로 악인의 필연적언 파멸과 하나님의 심관이 불가피함을 나타내준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위대한 신앙인 다윗처럼 이 사실만 확실히 믿을 수 있다면, 억울한 고통의 상황에서 결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처럼 선취적 신앙을 가지고 의와 불의를 분명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얻게 될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확신 속에서 소리 높여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