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2월 26일 월요일 묵상구절 시편 12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Jeehyun 2024. 2. 26. 18:37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9, 누가복음 12, 욥기 27, 고린도전서 13

묵상구절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12: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12: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12: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12:7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12:8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저자: 다윗

-분류: 지혜시

매튜헨리/옥스퍼드

거짓이 만연하는 시대에 드리는 의인의 호소와 믿음

 💡제12편은 진실이 없고 거짓이 횡행하는 사회, 온갖 아첨하는 입술로 이웃을 해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오만 방자한 자들이 판을 치는 사회, 그런 이유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자 하는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를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압제당하고 신음하는 가련한 자와 궁핍한 자의 구원을 호소하는 비탄시적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는 다윗의 지혜시입니다.

본서의 저작 배경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내용으로 볼 때 본시는

  1. 사무엘상 22장에 나오는 놈 제사장 학살 사건 곧 놈 제사장들이 다윗을 숨겨주었다가 에돔 사람 도엑의 고발로 인하여 사울 왕에게 학살당하는 현실을 목도한 다윗이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부조러한 현실을 탄식하며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 그 외에도 다윗이 그의 통치 말기에 신실하고 충실한 신하들이 사라지고 오직 거짓말과 아첨하는 자들만이 자기 주위에 만연한 것을 보고 탄식하며 본시를 지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다윗은 악한 자가 범람하는 세태에 대한 탄식과 함께 그러한 사회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즉 본시에는

  • 부조리한 현실로 인해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의 비탄시적 요소와,
  • 다윗이 선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들을 향하여 당장 득세하고 있는 악에 동참하지 말고 여호와의 절대 공의의 심판이 실현될 것을 기억하여 소망 중에 근신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지혜시적 요소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1-4절

거짓이 만연하고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드문 패역한 세태를 발견한 시인이 하나님께서 거짓을 말하는 자와 아첨하는 자의 혀를 끊으실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에서도 현실적으로 당장은 악인이 득세하는 것으로 인하여 탄식하는 내용.

5-7절

거짓되고 아첨하는 혀와는 달리 반드시 약속한 바를 식언치 않으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대로 - 가련한 자와 억눌린 자를 구원하시고 보존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하는 내용.

8절

비루함이 만연한 세태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고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진실과 정의가 있는 사회로의 회복을 염원하는 시인의 바람을 표현한 내용.


●악한 세대에 대한 원망 (시편 12:1-8)

이 시편은 우리로 하여금 악한 세대에 대해 훌륭한 생각을 하도록 해 주고 있다. 그러한 때에는 한 마디의 말이 남의 감정을 불쾌하게 만들기 때문에 신중한 자는 잠잠히 있는다(암 5:13).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주어진 합당한 명상과 기도로써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Ⅰ.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이 세대를 악하게 만들며 언제 사람들이 그것을 악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세상 사람들에게 세대를 악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지를 물어보라. 그들은 여러분에게 돈이 없고, 사업이 망하고, 전쟁으로 인해 비참해지는 것이 세대를 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세대가 악해지는 이유를 다른 면에서 보고 있다. "고통하는 때가 이르고"(딤후 3:1) 그때에는 죄악이 가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여기에서 다윗이 원망하고 있는 일이다.

1. 사람들 가운데 일반적인 경건과 정직이 소멸될 때, 그 세대는 정말로 악하다(1절).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없어지도소이다."

경건과 충실이라는 이 두 가지 특성이 여기에 어떻게 배합되어 있는가를 주목하라. 정직함이 없이는, 참된 수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된 경건도 없다. 경건한 자는 충실한 자, "변함이 없는"자로서, 그들은 때로 그렇게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들의 말은 증서에 계약을 맺은 것같이 확고하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참된 양심을 지킨다.

그들은 죽음이나 황폐함 또는 이 두가지에 의해 끊어지며 없어진다고 여기에 적혀 있다. 경건하고 충실한 자는 제거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도 슬프게 몰락했으며 예전 상태와는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실상 만날 수 있었던 선한 사람들은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그는 이것으로 사울의 신하들 가운데에는 경건하고 충실한 자가 없었음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이스라엘에는 경건한 사람이 거의 없거나 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서 결백함을 지킨 자들 칠천을 두셨을 때 오직 자기 혼자만이 남겨졌다고 생각했던 엘리야(롬 11:3)와 똑같은 오류에 빠진 것이나 아닐까 하고 의심할 수 있다.

또는 그것은 비교적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믿음과 덕이 타락한 때(그러한 때는 악한, 매우 악한 세대이다)가 있었는데, 그 때에는 한 사람도 공의를 행하는 자가 없었다(렘 5:1).

2. 모든 대화가 거짓과 아첨으로 인해 타락하고 더럽혀졌을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한 세대이다(2절).

그 때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매우 방탕하여 거짓을 거리낌없이 행하고, 이웃을 해치기 위해 가장 극악한 계획을 품을 정도로 악의에 차 있고, 또한 가장 그럴듯하게 우정을 가장하고 고백함으로써 그 계획을 숨길 정도로 비열하다. 이처럼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그들은(다윗 시대의 요압이 아브넬과 아맛사에게 했던 것처럼) 입맞추고는 죽일 것이며, 너희 얼굴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너희 목을 자를 것이다. 이것이 악의와 거짓이 혼합된 완전한 마귀의 형상이다.

⇒ 이처럼 신실한 것을 전혀 볼 수 없을 때, 정직한 자들이 누구를 믿어야 하고 의지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할 때, 뿐만 아니라 친구나 길잡이를 감히 신뢰할 수 없을 때(미 7:5, 6; 렘 9:4, 5), 그 세대는 정말로 악하다. 이처럼 세대를 위험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화 있을 것이다.


💡 12: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거짓 (솨웨)

  •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거짓말.
  • 특히 이 단어는 십계명 중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3계명과(신 5:11),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제9계명(신5:20)에 각각 사용되었다.
  • 본절에서 이 단어는 이웃 사람, 즉 가장 절친한 사람들을 속여 그들을 해하고 그틀 통해 자신은 반사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

  • 이는 ‘거짓말’에 대한 구체적 예증.
  1. 아첨하는
    • 의미: ‘매끄럽다’
    •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그럴듯하게 믿게 하는 거짓된 입술을 뜻한다.
    • ‘부드럽게 지껄여대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얻기 위하여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아첨을 떠는 것이나 자신의 거짓된 말을 의심 없이 믿도록 하기 위해 아주 그럴듯하게 꾸며 말하는 것.
  2. 두 마음
    • ‘한 마음과 한 마음으로’
    • 확신이 결여된 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을 속이기 위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른 사실을 조작하는 마음. 

3. 하나님의 대적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백성들에 대한 대적들이 무례하고 대담하여 의롭고 거룩한 자들을 모두 파멸시키려고 위협할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하다. 그 때에는 교만한 죄인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극도의 불경건에 이른다.

"우리의 혀로 덕에 관한 송사를 이길찌라.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있으니 규제하거나 문책하여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4절)"


 💡 악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 그들의 교만함에 있다.

12:4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이기리라’

→ 악인들은 자신들의 과장되고 거짓된 말이나 상대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말을 통하여 자신들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1) 이것은 그들 자신의 교만한 자부심그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금지된 과일을 먹음으로써 정말 그 목적이 획득된 것같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신들처럼 독립적이며 스스로 충만하고, 선과 악에 대한 자신의 지식에 오류가 없으므로 신탁이 되기에 적합한 자들인 것같이, 또한 그들의 능력이 불가항력적이어서 법도를 지시하는 자가 되기에 합당하고 그들의 혀로써 이길 수 있는 것같이, 그리고 하나님 자신처럼 말하면 그대로 행해지는 것같이 그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도 같다.

(2)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오만한 경멸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드스리실 타당성이 없는 것처럼 여기고-"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다"(이것은 부당한 주장이다. 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고, 누구의 손으로 그에게 생기를 넣었으며, 그가 숨쉬는  것은 누구의 공기인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명하거나  심판하실 권한이 없다는 듯이 바로가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말을 듣겠느냐?"(출 5:2)***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한다.

이것은 전자의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불합리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의 안에서 살도록 하시고 우리를 움직이시며 우리의 존재를 부여하신 하나님은 명백한 권리에 의해 우리를 주관하시는 주님이 되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 그들의 교만은 극치에 달하고 있다.

본문을 다시 번역해 보면 ‘도대체 누가 우리의 주인인가?'라는 의미이다.

  • 이러한 반어법은 자신들을 가로막을 자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그들의 확신을 잘 나타내준다.
  • 그들은 그들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이 심관날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마 12:36)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사악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못할 말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건한 자였던 다윗은 이들의 이러한 말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어러석고 교만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 다윗은 인간은 물론 우주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알고 있었기에,
  • 자신의 입술을 제어하고 다스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가련하고 궁핍한 자가 눌리고 학대당하며 멸시당할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하다. - 하나님께서 친히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주시하신다는 구절 속에 이것이 암시되어 있다(5절).

  • 그들은 가련하기 때문에 눌림을 당하며, 그들이 해를 당하는 모든 이유는 단지 그들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눌림을 당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옹호하는 것이 압제자를 불쾌하게 할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불운을 몰래 슬퍼하면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영혼의 한숨을 쏟아놓으면서 탄식한다. 만일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힘이 되어 주기를 요청한다면, 그 압제자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또 자기 자신의 죄악과 가련한 자들의 비참함을 경시하며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10:5 참조).


💡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본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일어서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이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서시는 까닭은

  • 악인들의 사악한 말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궁핍해진 사람들의 탄식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이 박해받는 모습을 보고, 또 그로 인한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공의로운 심판을 단행하기 위하여 일어서신다. 또 억압 속에서 부르짖는 자들을 악인들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5.압제자들의 권위로 가련한 자들을 보호하고 지지한다는 구실아래 사악함이 가득차고 몰염치하게 될 때, 그 세대는 매우 악하다(8절).

그 때에는 "비루한 인생들이" 책임 있고 권력 있는 자리로 "높아지며"(이들은 악과 불의를 처벌하는 법도를 수행하지 않으며 그들의 업적에 따라 악인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지지하고 보호하며 그들을 후원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그러한 일을 행함으로써 악인들에 대한 평판을 지속시킨다.) - "악인이 도처에 횡행하게" 된다.

그들은 모든 곳에 들끓고 있으며 타인을 속이고 타락시키고 파멸시킬 기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깨닫는 것을 두려워 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소돔처럼 그들의 죄를 선포하고 그들을 저지하고 제제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악인은 야비하며 가장 미루한 자들이다. 그들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역시 그러한 악인인 것이다. 성서에서는 유명한 안티오커스를 "비천한 사람"(단 11:21)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이 발탁되면 그 나라에 해롭다. 그 때에 사악함이 경솔하고 무례함으로 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악인 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Ⅱ. 우리가 여기에서 이처럼 악한 세대에 관해 얼마나 훌륭한 생각들을 얻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자.

우리는 우리가 어떤 세대를 맞이할 것인가를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세대가 이처럼 악할 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위로가 될 것이다.

1.우리는 우리가 가서 우리의 모든 슬픔을 시정해 주기를 요청하고 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시편을 이러한 말로 시작하고 있다(1절).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 지도소이다. 다른 모든 도움과 돕는 자들은 끊어졌나이다. 심지어 믿음이 소멸되어 가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빌려 주어야 할 경건하고 충실한 자들까지도 없어졌습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주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서 그것을 구하겠나이까?"

경건하고 충실한 백성들이 끊어지고 없어질 때가 바로 "여호와여 도우소서"하고 부르짖어야 할 때이다. 죄악이 넘치는 곳에는 대흥수의 위협이 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고결한 자를 도우소서. 결백을 지키려는 자들은 거의 없으며 틈 사이에 서려는 자 거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쓰러져가는 주의 세력을 구원하도록 도우소서. 여호와여, 주를 위해 역사하실 때가 되었나이다."


💡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라는 애절한 간구

‘도우소서’(야솨으) = ‘구원하다’ 란 의미.

  • 본문에서 다윗은 인간으로부터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확인하고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주셔야 함을 강하게 드러내기를 강조한다.

구원의 대상은 누구?

  • 본문에는 구원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문장의 구조상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를 구원해 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 문맥상 이는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절망감을 느끼는 다윗 자신으로 볼 수 있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층실한 자가 없어지며 아첨을 일삼는 악인들이 횡행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다윗은 한 동안 절망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의로우시며 성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유일한 소망을 두고 작금의 현실을 호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윗이 호소하는 대상 : ‘여호와’

  • 이 신명은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면모와 관계된 신명이다. 다윗이 이 명칭으로 하나님을 부른 것은 하나님께서 과거 자신에게 주신 다윗 언약에 근거한 것이다(삼하 7:8-16).
  • 하나님은 다윗을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당신의 대러자로 세우셨을 뿐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 그 나라를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하셨다. 다윗은 이 언약을 기억하고 자신이 통치하는 신정 왕국 이스라엘에 사악한 무리가 횡행하는 것에 대하여 탄식하며 여호와란 신명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간구하는 이유: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 ‘충실한 자들이 .. 없어지도소이다’

  • 경건한(하씨드) 자 =
  • 충실한(에무님) 자 = 굳게 세워져 있는, 확고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
  • 다윗은 본문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대리 통치하는 세상에서 ‘하씨드’와 ‘에무님’이 끊어지는 현상을 목격함으로 느끼는 깊은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즉 다윗은 경건하고 충실한 자를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세상 한복판에서 외롭게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것이다.
  • 본문의 표현은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악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소멸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뜻한다.

2. 하나님은 분명히 거짓되고 교만한 자들은 헤아리실 것이며, 그들의 무례함을 벌하시고 제어하실 것이다.

그들은 인간들이 지배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으며, 사람들을 무시한다. 사람들은 아첨하는 자들의 그릇됨을 발견할 수 없고, 뿐만 아니라 교만하게 말하는 자들의 오만을 꺾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의로우신 하나님은 배반자의 입술, 즉 입맞춤을 하고 마음에 적의를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보다 더 부드럽게 말을 하는 "모든 아첨하는 입술"을 끊으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믿음에 대적하여 "자랑하는 혀"를 잡아 빼실 것이다(3절).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거짓되고 악한 입술을 끊어 주옵소서"라는 기도로 풀이한다. "입술을 닫아 잠잠케 하소서."


💡 12: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 악인들은 아첨하며 자랑하기를 밥 먹듯이 하지만 다윗은 그들을 심판하시는 여호와가 계시다고 말한다.
  • 그분은 거짓을 일삼고 아첨하며 안하무인으로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 그러한 악인들의 혀와 입술을 끊어버리실 것이다.

‘끊다’

  • 이 단어는 본절에서 ‘혀’와 상관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에 주목하여 알덴(Alden)과 같은 학자는 본문은 고대에 거짓말을 하는 자에게 내렸던 형벌과 관련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 사실 여부를 차처하고 여하튼 다윗이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멸절시킨다는 것이다.

‘아첨하는 입술’ (’자랑하는 혀’)

  • 문자적 의미: ‘크게 말되어지는 혀’
  • 여기서 크게 말되어진다는 것은 작은 것을 부풀려 과장되이 말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신을 높여 상대방을 멸시하거나 위협하는 말을 나타내기도 한다.

  • 위 표현과 관련하여, 본시의 저작 배경과 관련된 추측
    • 본시는 다윗의 저작이기는 하지만 기록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어 정확히 언제 지어진 시인지는 알 수 없다.
    1. 견해1
      1. 혹자는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악한 자의 혀에 의하여 큰 화가 미친 도엑 사건을 본시의 저작 배경으로 본다.
      2. 즉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도피하던 중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은 일을 에돔 사람 도엑이 다윗의 정적 사울에게 고발하여 놈에 있던 제사장들이 학살당한 일이 있었는데(삼상 21.22장), 다윗이 이 사건을 듣고 악한 자의 거짓된 혀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에 대한 신뢰로 거짓된 세상에 대해 승리할 것을 노래했다는 것이다.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이 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설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정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2. 견해2
      1. 그리고 본시가 죄악이 횡행하는 거짓된 세상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 그러나 거짓된 세상에 대한 탄식이 주조틀 이룬다는 점 등을 들어 다윗 통치 후반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2. 만약 이런 입장을 취한다면 본시는 아마 다윗이 통치 말기에 신실하고 충실된 신하들이 사라지고 주변에 거짓된 입슬과 아첨하는 자들만 만연한 것을 보고 탄식하는 한편 이러한 암울한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의 신실함이 주는 위로를 경험하고 본시를 지은 것이 된다.
    이 두 견해는 모두 가능하나 전자에 대한 지지가 더 많다.

3. 하나님은 합당한 때에 그의 눌린 백성들을 위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이며,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의 사악한 계획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5절).

"여호와 말씀에,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 하시도다."

여기에서 다윗이 예언의 영으로 전한 하나님의 이 약속은, 그가 기도의 영으로써 하나님께 울렸던 그 청원에 대한 대답이다. 그는 "여호와여 도우소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러마, 내가 여기 있다. 적절한 때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내가 도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1) 그것은 합당한 때에, 적절히 이루어진다.

[1] 압제자들이 극도로 교만하고 무례할 때-그들이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하고 말할 때- (4절)

→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혼냄으로써 자신이 그들 위에 계시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

[2] 압제받는 자들이 깊은 고통과 낙담 속에 있을 때, 그들이 잔인한 속박으로 인하여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처럼 탄식할 때, (5절)

→ 그 때가 바로 이스라엘이 매우 낙심하고 바로가 매우 높아졌을 때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나타나실 때이다. "내가 이제 일어나리라." 박해를 당하는 무고한 자들을 구할 사간은 정해져 있다. 그 때는 반드시 올 것이며, 우리는 그것이 가장 적합한 때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102:13).

(2) 그것은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저를 안전 지대에" 또는 구원의 자리에 "두리라."

하나님은 그를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전의 형통함을 회복시켜 주시며, "그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실"것이다(66:12).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그는 그 고난으로 인해 손실당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4. 비록 사람들은 거짓되더라도 하나님은 성실하시다.

비록 그들을 신뢰할 수 없더라고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다. 그들은 거짓과 아첨을 말하나,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하도다"(6절). 그것은 흙 아궁이나 용광로에서 제련한 은같이 모두 진실일 뿐만 아니라 매우 순수하다.


💡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의 말씀의 특징

  • 인간의 말, 특허 4절의 악인들의 말과 달리 거짓과 허영과 불의가 없다.
  • 순결함 = 흠없고 깨끗한 것을 의미.
  • 일곱 번 = 문자적으로 일곱 번을 의미하기보다는 은에 불순물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제련한 것을 의미.
  • 이렇게 해서 제련된 순수한 은을 다윗은 바로 여호와의 말씀에 비요하는 것

다윗은 이처럼 여호와의 말씀의 순수함을 굳게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앞서 5절에 나온 바, 이 세상에서 가련하고 눌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거짓어 만연하는 시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신실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 모든 말씀은 여기에 묘사된 것처럼 다른 것과는 달리 정말 신실하다. 그것은 우리를 조롱하지 않으며 우리를 속이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 한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의도로 지니고 있지 않다.

(2) 하나님의 말씀의 고귀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고도로 정련된 은같이 매우 훌륭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책잡힐 만한 것도 전혀 없다.

(3)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참됨을 증거한 많은 일들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흔히 시험되어 왔으며 모든 세대의 모든 성도들이 그것을 믿고 따라서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결코 속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대를 꺾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Experto crede-즉 "시험해 본 것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시인하였다. 그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가련하고 눌린 자들을 구조하고 위로하는 이러한 약속들을 특히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친구들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리라는 기대를 그들이 갖게 했으나 그것은 부러진 갈대임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들의 말을 신뢰할 수 없을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도록 해야 한다.

5. 하나님은 아무리 세대가 악하더라도 그가 택하신 남은 자들을 안전케 하실 것이다(7절).


💡 12:7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 본절은 미래의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보존하심에 대한 저자의 강한 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여호와여 당신은 저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을’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가?

  1. 5절을 염두에 두고,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련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
  2. 6절의 ‘여호와의 말씀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로 번역할 수 있음.
    • 그렇다면 본문은 ‘여호와, 당신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로 번역할 수 있다. 즉 여호와께서 지키시는 대상을 ‘그들'이나 ‘우리들'이 아닌 ‘말씀들'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 여호와는 인간과 달리 식언치 않으시고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민 23:19)과 관련하여 본문의 이와 같은 해석도 층분히 가능하다.
    • 그리고 이는 원문의 훼손을 막을 뿐 아니라 6절과 관련하여 여호와 언약의 신실성을 강조하는 번역이 되므로 이러한 해석이 보다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이것은 세상이 계속되는 한 거기에는 교만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비열한 수단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함으로써(단 7:25) 믿음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홀로 그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시도록 하고, 그 자신의 백성들을 보존하시도록 하라. 그는 이 세대로부터 그들을 지키실 것이다.


 💡 다윗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다.

(1)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 의해 타락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섞이거나 그들의 일을 배우지 않게 그들을 지키실 것이다.

배신이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시대에도 주님은 그의 백성들을 알고 계시며, 그들은 그들의 결백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2)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 의해 파멸당하거나 근절되지 않도록 그들을 지키실 것이다.

교회는 반석 위에 지어졌다. 그리고 매우 잘 요새화되어 있기 때문에 음부의 문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가장 악한 세대에도 하나님은 그의 남은 자들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모든 세대마다 거룩한 후손을 보유하실 것이며 그들을 그의 천국에 간직하실 것이다.

이 시편을 노래하고 그것을 간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세대가 전반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탄식해야 하며, 한편 그보다 더욱 악하게 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는 이 세대가 더욱 나아질 것을 간구하고 바래야 한다.


결론

💡본시는 악한 자들이 횡행하는 세상의 현실로 인해 탄식하면서도 결 국에는 가련하고 눌린 자둘이 여호와에 의해서 구원받을 것임을 확신하는 내용외 비탄시적 지혜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시에서 다윗은 비열한 짓을 하는 악인이 득세하는 일이 계속될 것임을 간과하지 않았다.

특히 본시는 첫행과 마지막행에 경건한 자와 층실한 자는 사라지고 없는 반면 비루함이 높아지고 악인이 횡행하는 시대상을 수미쌍관적으로 제시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는 시편의 대부분의 시들이 비록 암울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 이러한 현상이 해결될 것임을 노래하는 양상과는 다르다.

다윗이 이러한 보편적 양상까지 깨면서 현실의 부조리를 강조하는 것은

  •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본 다윗의 시는 그 어느 시대보다 악인이 득세하는 암울한 이 세대의 성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성도들은 본시를 통하여 악인이 득세하는 이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의인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같이 순전하여 조금도 어그러짐이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악인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거친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 가지 않고 성도로서의 고결한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