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2월 29일 목요일 묵상구절 시편 15편 <다윗의 시>

Jeehyun 2024. 2. 29. 15:14

묵상구절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15: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15: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15: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여호와의 장막 및 성산에 거할 자의 자격과 여호와와 함께하는 자의 영원한 안전 -

(저자: 다윗, 분류: 지혜시)

 💡 제15편 : 시편 가운데서도 널리 애송되는 시 중의 하나로 다윗이 쓴 지혜시.

이 시편은 외형상 입당송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입당송
    • 예배자들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려 할 때에 사제가 예배자에게 업당 자격을 묻고 거기에 예배자가 대답하는 형태로 된 노래를 말합니다.

본시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 이 세상의 풍조에 대한 탄식을 다룬 제14편과는 그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릅니다.

  • 즉 다윗의 저작 중 지혜시의 성격을 띠고 있는 본시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예배 직전에 노래하였던 예배시로서,
  • 어떠한 자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에 합당한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자를 기뻐 받으시는지에 대해서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시는 궁극적으로는

  • 성전이 예표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게 될 자의 모습 또는 자격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지혜시.
  • 이 시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배할 자의 조건 또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자의 자격 조건으로 외적인 조건보다는 그 내면적인 마음가짐과 진실한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시의 저작 시기나 배경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 다만 ‘주의 장막', ‘주의 성산’이라는 표현에 비추어 볼 때 → 본시는 다윗이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짐에서 자기가 마련한 다윗성의 장막으로 옮겨 안치한 매(삼하 6:12-19)에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절

누가 여호와와 함께 그 장막과 성산에 거할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

2-5a절

여호와의 장막에 거할 자의 자격 조건을 제시하는 내용. 시인은 그 자격 조건을 열 가지로 제시함.

  • 적극적 측면의 조건 다섯,
  • 소극적 측면의 조건으로 나머지 다섯을 제시.

이러한 구조는 십계명의 구조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됨.

  • 다윗은 모두 네 절에 걸쳐 열 가지 자격을 열거하면서 평행 대구법을 사용.
    • 2절에 적극적 측면의 자격 세 가지,
    • 3절에 소극적 측면의 자격 세 가지,
    • 4절에 적극적 측면의 자격 두 가지,
    • 5절에 소극적 측면의 자격 두 가지 열거.
  1. 적극적 측면의 자격 다섯 가지
    1. 정직하게 행하는 것,
    2. 공의를 일삼는 것,
    3. 진실을 말하는 것,
    4. 망령된 자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는 것,
    5. 서원을 반드시 지키는 것.
  2. 소극적 측면의 자격 다섯 가지
    1. 참소치 않는 것,
    2. 벗에게 행악지 않는 것,
    3. 이웃을 훼방처 않는 것,
    4. 고리 대금을 받지 않는 것,
    5. 뇌물을 받지 않는 것.

이처럼 본시는 다윗이 단순히 정치적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리하여 하나님 백성을 통치하는 영적 지도자로서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교제함에 있어 갖춰야 할 자격 요건을 가르치는 지혜시.

  • 세상의 지혜시와 같이 성공의 방법이나 처세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 방법을 가르치며,
  • 그것도 외면적 조건이 아니라 내면적 자세를 조목조목 가르친다는 점에서 본시는 성경의 지혜시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라 할 수 있다.

5b절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갖춘 자의 영원한 안전을 선언하는 내용.


●시온의 시민 (시편 15:1-5)

Ⅰ. 시온의 시민의 자격에 관해 매우 신중하고 중대한 물음이 제시되어 있다(1절).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니이까? 누가 천국에 갈 것인지 알려 주옵소서."

그는 이름에 의해서가 아니라(이러한 면에 있어서 '여호와"만이 자기 백성을 알고 계신다)묘사에 의해 묻고 있다. "주께서 인정하시고 특별하고 영원한 은총으로써 면류관을 씌우실 자들은 어떤 종류의 백성들입니까?"

이것은 시온의 시민이 되는 것이 큰 특권이라는 것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예와 유익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러한 특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남은 자만이 갖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사람은 혈통에 의해 이 특권을 부여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모신 모든 사람이 주의 장막에 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의 마음과 생명에 따라 그들의 분깃이 정해질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주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주의 장막에 유하리이까?(눅 18:18; 행 16:30)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1. 누구에게 이러한 문의를 하고 있는가를 주목하라. 그것은 하나님께였다.

하늘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우러러보아 그의 말씀으로부터 명을 받아야 하며, 그의 성령으로부터의 지시를 간구해야 한다. 그가 친히 그의 종들에게 법도를 주시고 그의 은총의 조건을 정하시며, 그의 것인 자와 아닌 자가 누구인가를 말하시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 ‘여호와여’

  • 본절 서두에 나오는 ‘여호와여'란 호칭에는 모든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겠다는 - 시인의 신본주의적 신앙 자세가 잘 드러난다.

‘누구오니이까’ (’미’)

→ 이러한 본절의 질문은 누가 하나님의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 ‘미'라는 단어를 사용해 누구인지를 물을 때는→ 사람의 됨됨이에 초점이 맞춰진다.
    → 사람의 관직이나 지식, 혹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의 정도 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 따라서 이 단어의 반복을 통해서 본시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자의 재물이나 지식이나 권력 등과 같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 내적인 됨됨이임을 알 수 있다.

2. 그것은 구약의 언어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 ‘주의 장막’ - ‘유할 자’, ‘주의 성산’ - ‘거할 자’

(→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공간적 이미지의 강조)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본문에서 다윗은 단지 이러한 구체적 장소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나타내는 이러한 공간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바른 교제,
    •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 하나님은 이러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다스리는 관계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유할 자’ ‘거할 자’

  • 미완료형 ⇒ ‘계속적으로 머물러 산다’ 

(1) "장막"이라는 단어에 의해 우리는 교회의 교전 상태를 알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모세의 장막에 의해 상징되는 것으로서 초라하고 정착되어 있지 않는 광막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은 옛날에 증거의 장막, 곧 회막에서 그러했었던 것처럼, 그 자신을 나타내시며, 거기서 자기 백성을 만나신다. 그렇다면 누가 이 장막에 거할 것인가? 누가 하나님 교회에 진정한 살아 있는 일원으로 간주될 것인가? 누가 이 장막에 뜰에 거하는 영적인 제사장들 가운데 용납될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실상 이 일에 아무런 상관이 없고 권한도 갖고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이 장막을 자기들의 것인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 ‘주의 장막’ - 언약궤가 안치된 공식적 예배 처소


 

(2) "성산"이라는 단어는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세워져야 할 시온 산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그 단어에 의해 교회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산에 거하는 것은 영화로운 성도들의 행복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안식하며,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가 거기에 거할 것인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 가운데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그 성산에 대한 기대 속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 ‘주의 성산’ - 주의 성산이 있는 시온산


 

Ⅱ. 이 질문에 대해 매우 분명하고 특별한 대답이 제시되고 있다.

그들의 의무를 알고자 하는 자들은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결심과 함께, 성서가 매우 충실한 지도자라는 것과 양심이 충실한 권고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열 가지 덕목은 모두 실천적 측면의 것들.

다윗이 이처럼 실천적인 측면의 덕목만을 나열한 이유

→ 관념적 신앙만으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이 열 가지 덕목은 모두 이웃간의 바른 관계를 규정한 것이다.

  • 이는 하나님과 바른 수직적언 관계률 유지하기 위하여는 이웃과 바른 수평적 관계를 가져야 함을 잘 보여준다.
  •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 이웃과의 관계를 소흘히 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성찰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성품

본시에 열거되고 있는 열 가지 덕목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에수 그리스도 뿐이다(요 10:38).

  • 근본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이 열 가지 덕목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열납되고자 하는 자는 우러를 대신해서 여호와의 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께 접붙임을 당해야 한다.
  • 그런 연후에 그분이 보내신 영의 도우심을 통해 본시에서 제시되는 열 가지 덕목으로 대표되는 의로운 삶을 행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 즉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충족시키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므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의 거룩하고 의로운 삶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삶은

  •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바이며,
  •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은 자가 생활 가운데서 마땅히 맺어야 할 삶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성도는

  • 그 의로우신 요구를 적극적으로 층족하기 위해,
  • 그리고 그리스도께 접붙임된 자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롬 3:31)

그러면 여기서 시온의 시민의 세부적인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1️⃣ 2절: 적극적 조건 3가지

1. 그는 믿음에 있어서 신실하고 완전한 자이다. 그는 언약의 조건에 따라 "정직하게 행한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 이것은 여기에 사용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면 너는 내가 모든 것에 풍족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는 그가 고백한 그대로의 사람이며, 마음이 건실하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의 결백함을 하나님께 입증할 수 있다. 그의 대화는 한결 같으며 그 자신과 일치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같게 되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그의 눈은 약할지 모르나 그것은 사물을 보는 옳은 눈이다. 그도 실제로 흠이 있으나 그는 그것을 채색하지는 않는다. 그는"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요 1:47; 고후 1:12). 성실함이 없는 믿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정직하게’ (’타밈’)

  • ‘정직한’ 이란 의미보다 ‘완전한’(perfect) 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칭6:9; 17:1)
    • 온 세상이 페괴하고 죄악으로 관영할 때에도 노아만은 당세에 완전한 자였다고 평가하는 문맥에서(창 6:9),
    •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기 위해 친히 선택하신 아브라함에게 완전하라고 명하시는 문맥에서(창 17:1)
    → ‘완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가 바로 ‘타밈’.

이제 다윗은 과거 신앙의 선조들에게 사용된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여,

  •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완전함 가운데 행해야 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완전한 삶을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완전함을 요구한 이유는?

  • 결국 하나님 앞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틀 믿음으로 그 의를 덧입으라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그는 모든 처사에 있어서 양심적으로 정직하고 의로우며, 그가 관련을 맺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성실하고 공정하다.

그는 "공의를 일삼는다."


💡 공의 (’파알’)

  • 원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의로움을 행하는 자’
  • 이 동사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6:9; 민 23:23)을 강조하는 동사이다.

이러한 단어를 통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는 무엇인지를 배운다.

  • 마음 속에 공정한 태도를 갖는 것을 넘어서,
  • 하나님 앞에서 옳게 여겨지는 것들을 삶 가운데,
  •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주님의 모든 규례과 명령에 의해 행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합당한 것을 주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의롭다. 그리고 그는 이 양자 모두에게 "그 마음에 진실"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기도, 고백, 약속 등은 거짓된 입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거나 거래하는 데 있어서 감히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그는 의와 진리의 규례를 따르며, 불의와 속임수로 얻은 것을 멸시하고 혐오한다. 그는 속임수로 이루어지는 것은 좋은 매매나 저축할 수 있는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여기며, 그 이웃을 해한 자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변명하더라도 결국엔 그 스스로에게 큰 해를 행했음이 증명되리라고 생각한다.


💡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 한글 개역 성경의 본문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아 본문을 직역하면 — ‘그의 마음에 있는 진리(진실)를 말하는 자'가 된다.

  • 한글 개역 성경상 본문은 ‘그 마음을 향하여(toward heart)' 진리를 말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 그러나 원문상으로는 ‘그의 마음에 있어서(in his heart)' 또는 ‘그 마음에 의하여(by his heart)' 진리(진실)를 말한다는 의미.

다윗이 강조하는 바는 = 실천적 측면

여기에서 다윗이 강조하는 사람은

  • 자기 마음 속에 진리를 품고 있을 뿐 아니라,
  • 그 진리를 가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자이다.
    • 마음 속에 진리를 품고 있다 할지라도 → 그 입으로는 진리를 말할 수도,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 하지만 마음 속이 거짓으로 충만한 사람은 → 그 입으로 거짓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 근본적 측면에서 - 마음 속에 진리를 소유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며,
  • 실천적 측면에서 - 진리를 말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다. 

2️⃣ 3절 : 소극적 조건 3가지

 💡 앞선 2절에서 다윗은 긍정문을 사용하여 주와 함께 거할 자의 세 가지 적극적 조건을 밝혔다. 이제 본절에서는 부정문을 사용하여 주와 함께 거할 자의 세 가지 소극적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3. 그는 그의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유익을 고안해 내며,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매우 주의를 기울이며 그의 이웃의 평판에 특별히 유의하는 자이다(3절).

그는 고의적으로나, 자발적으로나 결코 "그의 벗에게 행악치 아니한다."

그는 벗의 심령을 불쾌하게 하거나 상심케 하는 일은 결코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건강이나 몸의 편함을 해치지 아니하고, 그의 가산이나 세속적인 세력, 그의 가족이나 친족들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는 그 공기의 황금률에 따라 행한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 이웃들을  해하는 방법으로 그들이 명성을 떨어뜨리려고 할지라도, 그는 그의 이웃의 훌륭한 평판을 해하지 않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 이웃 혹은 벗은 평소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절친한 사이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대상을 향해 사악한 짓을 행하는 것은 → 신의를 배반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자가 거룩한 주의 장막에 유하지 못하고 주의 거룩한 산에 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만일 그 누구든지 이 일에 있어서 자신의 혀를 제재하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헛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명성의 가치를 알고 있으므로 "참소치 아니한다."

  • 그 누구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 누구에 대해서도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과실을 그의 일상적인 화제거리로 삼지 않으며, 더욱이 희롱이나 조롱거리로 만들지도 않는다.
  •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지도 않으며, 교화를 위한 목적이 아니면 전혀 말하지도 않는다.
  • 그는 모든 사람들을 가장 좋게 만들며 아무도 가장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

💡 ‘참소하다’ (’라갈’)

  • ‘바리’이라는 의미의 어원에서 유래한 동사. 기본적 의미 : ‘~을 따라 걷다’
  • 구약 성경에서 모두 28회 사용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정탐(탐지)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창 42:9; 수 6:25).
  • 그러나 본문에서는 사람의 발이 아닌 혀가 걸어다니는 영상을 나타내고 있다.
    • 이는 남에 대한 해로운 소문을 퍼뜨리거나 남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를 헐뜯고 비방하는 것을 나타낸다.

중상 모략으로 다른 사람을 해하는 행위는 - 사단이 즐겨 취하는 방법이다(계 12:10).

그러므로 그런 행위를 즐기는 자들은 사단의 악에 동참하는 자로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다.


그는 "훼방치 아니한다."

💡 이웃

  • ‘아주 가까운 사람’ (이웃만이 아니라 친분을 유지하며 지내는 친우, 지인들까지 포함)

본문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모욕함으로써 수치스럽게 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

  • 이러한 본문은 당시 인간 사회에서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 흔했음을 나타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 부부 사이에 상호 존중하지 않는 일이나 자녀를 학대하는 일, 그러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며 친구를 모욕하는 일 등이 이러한 범주에 속할 것이다. 

  • 즉 훼방을 일으키거나 받지 아니한다.
  • 그는 비방을 믿거나 지지하지 않으며 참소하는 혀에 대해 얼굴을 찡그려 그것을 잠잠케 한다(잠 25:23).
  • 그의 이웃에 대한 나쁜 성품이나 나쁜 이야기가 그에게 할 수 없다면 그는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반증하려 한다.
  •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는 그것을 제재하여 더 이상 퍼지지 못할 것이다.
  • 그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다."

3️⃣ 4절: 적극적 조건 2가지

4. 그는 덕행과 경건에 의해 사람들을 평가하며 그들이 세상에서 얻은 출세에 의해서 그들을 평가하지는 않는다(4,5절).

(1) 그는 화려하고 장엄해지기 위해 사악하게 행하는 자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한다."

💡 하나님의 판단에 그 면전에서 내쫓아야만 하는 자들,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판단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질 정도로 사악한 자들을 멸시하는 태도는 →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태도임을 밝히는 것.


사악한 자들은 망령된 자들이며, 쇠똥이나 겨 또는 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무가치하고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선택과(렘 2:13) 행실에 있어서(사 32:6) 망령되다. 따라서 지혜롭고 선한 자는 그들을 멸시한다. 권위와 권세를 지닌 자로서 망령된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정중한 공경과 존경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벧전 2:17; 롬 13:7),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판단하며 그들을 멸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자들을 부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뇌물을 무익한 것으로 여기고(사 33:15) 그들의 진수와(시 141:4) 그들의 낙을(히 11:24, 25) 무미건조한 것으로 여겨 멸시한다. 그들은 그러한 자들의 모임을 멸시한다(119:115; 왕하 3:14). 즉 그들은 그러한 자들의 조롱과 위협을 멸시하며 그것에 의해 움직이거나 동요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무력한 악의에서 나온 보잘 것 없는 힘을 멸시하며(2:1, 4), 곧 그러한 자들의 멸망에 개가를 부르게 될 것이다(52:6, 7)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멸시하시며, 그들도 하나님과 같은 의견을 갖는다.


(2) 그는 빈곤하고 천하다고 해서 그러한 사람의 경건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여호와를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한다."

💡 두려워함

  • 단순한 무서움의 감정이 아니라 거룩한 두려움, 즉 경외를 나타낸다.
  • 이는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자 하나님에 대하여 피조물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존대하며’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 아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존중하는 자세 

그는 진정한 경건은-

  • 그것은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간에-사람을 존대케하는 것이며, 재물이나 기지, 또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명성이 행하거나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그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 그리고 그들의 우정과 대화, 그리고 그들의 기도 속에 있는 이득을 바라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거나 그들에게 선한 일을 행하기를 기뻐한다.
  • 또한 그들의 송사를  변호하고 존경으로써 그들에 대해 말하며, 그들이 흥하면 기뻐하고, 그들이 쫓겨나면 슬퍼한다.
  • 그리고 그들이 사라졌을 때 그들에 대한 기억은 그에게 귀중한 것이 된다. 그것으로 우리는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법칙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는가?


5. 그는 어떠한 세속적인 이익이나 유익따위 보다 항상 선한 양심을 택하는 자이다.

만일 그가 어떠한 일을 하기로 맹세로써 약속했다면, 비록 후에 그것이 매우 손해가 되고 그의 세상적인 재물을 해친다 하더라도 그는 그것을 지지하며 "바꾸지 아니한다"(4절).


💡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 본문을 직역하면 ‘그는 스스로를 상하게 하는 서원을 했으나 (그 서원을)바꾸지 않는다’
  • 서원한 바를 어떤 경우에도 지킨다는 적극적 측면.

해로울지라도

  • 서원을 하되, 그 서원이 결국 자기 스스로를 해하는 경우가 있다(삿11:31,35).
  • 그러나 하나님께 한 서원은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민 30:2). 

지혜롭고 선한 자들까지도 얼마나 약하고 근시안적인 안목을 갖고 있는가를 보라. 그들은 언제 맹세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저희 마음에 서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맹세의 의무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라. 사람이 그 맹세를 깨뜨리면 그것은 그의 이웃을 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과 그의 가족들에게 손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맹세는 신성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성급하거나 허술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4️⃣ 5절: 소극적 조건 2가지

6. 그는 부당한 책략을 써서 그의 재산을 늘리고자 하지 않는 자이다(5절).

(1) 그는 부당 이득에 의해 재산을 놀리고자 하지 않는다.

"변리로 대금치 아니한다."

즉 그 자신의 근면으로써 재산을 증진해 나갈 능력이 있는 한, 그는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덕으로 편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한다. 돈을 빌려 준 자가 그 돈으로 얻은 이득을  돈을 꾸어간 자와 나누어 갖는다는 것이 공의나 자비의 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토지의 주인이 임대료를 요구 하는 것도 정당한 일이다. 토지는 돈과 마찬가지로 기술이나 노동에 의해 개정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온의 시민들은 가난한 자에게 그 능력에 따라 무료로 빌려 줄 것이며, 섭리에 의해 위축된 자들에게서 냉혹하고 엄하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 직역하면, ‘그는 그의 돈을 고리(usury)로 빌려주지 않는다’ 가 된다.

구약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 동족간에 고리 대금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레 25:35-38).
  • 하지만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정당한 경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더욱이 외국인에게 돈을 빌려줄 때에는 이자를 받는 것이 허용되었다(신 23:19, 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고리대금을 금지했던 것은

  • 높은 이자를 갚지 못할 경우, 채주에게 착취를 당하고 부당하게 이용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
  • 따라서 하나님은
    • 선민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고리 대금을 엄히 금하셨고
    • 오히려 빈한한 이웃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도록 명하신 것이다.

⇒ 이처럼 형제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하지 않고, 그를 층심으로 돕는 자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자이다.


(2) 그는 뇌물에 의해 재산을 늘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지" 아니할 것이다.

만일 그가 공공의 의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다면 그는 그 자신의 이득과 기대를 위해 의로운 주장을 해치는 일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 본문이 의미하는 뇌물의 성격

  • 단지 무죄한 자를 해치기 위한 목적에서 오가는 뇌물만이 아니라 무죄한 자에게 불이익을 가하기 위한 목적에서 오가는 모든 종류의 뇌물에 대해 말하고 있음.
  • 원문의 의미가 한글 개역 성경의 의미보다 더 포괄적인 것.

뇌물은 그것을 받는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 부당하고 왜곡된 결정을 내리게 한다(출 23:8).

따라서 하나님은 특별히 재판관,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자들은 그 어떤 뇌물도 받지 말 것을 엄명하셨다(신16:19).

뇌물은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정직하고 돈 없는 자들을 고통과 한탄 속에 빠뜨린다.

→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그분이 세우시길 원하는 사희 정의를 구현하길 원한다면, 결코 뇌물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것이다


Ⅲ. 이 시편은 시몬의 백성의 성품을 비준함으로써 끝맺고 있다.

그는 요동치 아니하여 영원히 있는 시온 산 그 자체와 같다(125:1).

교회의 참된 살아 있는 일원은 - 모두 교회 자체와 같이 음부의 문도 이길 수 없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단어 그대로 "영영히" 요동치 아니할 것이다.


 💡 ‘요동하다’

  • 결코 그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 혹은
  •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에 나아가 그곳으로부터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의미 

하나님의 은혜는 → 그를 안전케 하고 하늘 나라의 흠없는 자가 되도록 보존하기 위해 항상 그에게 충족할 것이다.

따라서 유혹이 그를 정복하지 못할 것이며, 환난이 그를 압도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그의 현재의 화평이나 미래의 축복을 그에게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 시편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서로를 가르치고 훈계하여 여기에 주어진 시온의 시민의 성품에 합당하게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에서 결코 요동치 않을 것이며, 마침내 영원히 유혹과 위험이 닿지 않을 성산에 이를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가장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 영적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다윗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자신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그는 본시에서 주와 함께 거할 자의 자격을 제시하여 백성들을 계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와 함께 거하는 삶은 구약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만세대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반드시 요청되는 바이다. 본시가 시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까닭은 만세대 사람들에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 행복인 주와 함께 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