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5일 화요일 묵상구절 시편 20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Jeehyun 2024. 3. 5. 15:16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16, 누가복음 19, 욥기 34, 고린도후서 4

묵상구절

20: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0: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20: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20: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20: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20: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20: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매튜헨리/옥스퍼드

- 선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출정하는 다윗 왕의 승리를 구하는 백성들의 기도 -

  • 저자: 다윗, 분류: 신정시

서론

💡 제20편은 시편 전체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이방 나라와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 하는 시입니다.

이 시는 왕이 이방 나라와의 전쟁을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기에 앞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왕과 온 백성들이 함께 낭송하였기에 소위 출정시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본시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결국 어떤 종류의 환난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드시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에 근거하여 부른 노래이기 때문에 장르상 신정시 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본시는 궁극적으로 보면 주의 백성들이 다윗이 예표하는 영원한 왕이신 주께 서 이방 나라가 상징하는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영원한 의의 승리를 이루시며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설 것을 기원하는 시라고도 할 수 있으므로 소위 메시야 예언시로도 분류할 수 었습니다.

시기, 배경 추측

이러한 본시는 다윗이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완전히 쟁취하고자 벌인 정복 전쟁 중에서도 극히 중대한 결전어었던 암몬•아람과의 일전(삼하10:1-19)을 위하여 출정할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었습니다.

그런데 본시의 표제 ‘다윗의 시’는 ‘다윗을 위한' 혹은 ‘다윗에 관하여’ 로도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본시의 내용이 본질적으로 왕의 승리를 위한 기도라는 점에서는 ‘다윗을 위한' 이라는 번역이 적절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본시는 다윗이 지은 것이 아니라 어느 경건한 백성이 출정을 앞두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다윗 왕을 바라보며 그의 승리를 기원하며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다윗의 시' 라는 표제를 다윗이 지었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아마도 다윗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승리를 기원하도록 하기 위해 본시를 지어 낭송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세속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전투에 승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 잘 훈련된 많은 병사와 병사의 높은 사기, 병거와 같은 무기와 유리한 지형, 뛰어난 전략 및 전술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 전투의 승리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 전장에 출정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및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대한 간구를 꼽았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 앞서서 백성의 대표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인 이스라엘의 왕은

  • 하나님께 인간이 자신의 무능력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을 포함하는
  • 일련의 예식을 수행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본시는 그 어느 시보다도 긴장되고 엄숙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불려졌을 것입니다.

한편 본시에 이어지는 제21편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감사하는 개선시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21편은 출정하면서 드린 제 20편의 간절한 기원을 들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암몬•아람과의 일전에서 승리틀 쟁취하고 부른 감사의 개선 찬양시인 것입니다.

결국 제20편과 제21편은 연속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선후의 간격을 두고 불려진 노래임을 알 수 있는데, 제21편 역시 다윗의 시로 언급되고 있으나 노래틀 부르는 주체는 백성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3절

백성들이 왕이 이제 이방의 대적둘에 맞서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출정에 앞서 하나님의 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여 주시기를 비는 기도입니다.

4-6절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우심으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도록 비는 기도입니다.

7-9절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왕의 승리를 비는 최종적 기도입니다.


●주권자를 위한 신하의 기도 (시편 20:1-5)

다윗을 위한 이 기도는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교훈집이나 기도서를  작성할 만큼 거룩한 영감을 받은 그가 그 자신과 그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위해 그 영감을 회중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결코 불합리한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기도가 특별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가를 말해 주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합당한 일이다. 훌륭하고 선한 자들도,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매우 잘 알고 있는 자들도 다른 사람들이 기도해 주는 것을 멸시하지 말고 진심으로 원해야 하며, 바울은 자주 그의 친구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요청했다. 장관들과 권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기도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격려해야 하며, 그들의 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슥 12:5, 10). 그리고 그들의 기도 속에서 유익을 얻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한다.  이제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3절 : 왕의 제사가 열납되기를 간구함

Ⅰ. 그 왕을 위해 그들이 하나님께 청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것이었다.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응답하시고"(1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5절).

(1) 가장 훌륭한 사람들도 큰 환난에 처할 때가 있다. 다윗 자신에게도 자주 환난의  날, 실의와 곤경의 날, 억눌림을 당하고 당황하던 날이있었다. 그의 머리의  면류관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은혜도 그를 환난에서 면제해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 20: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환난 날에’

  • ‘환난 날에'에 해당하는 ‘데옴 차라’ 에서 ‘차라'는 = ‘괴로움'(창 42:21), ‘고통’ (삼상10:19), ‘곤란' (왕하 19:3)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 이는 적에 의해 포위된 백성의 내적 혼란(25:17), 강한 적 앞에서의 공포심(렘 4:31) 등을 표현하는 단어로 본문에서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큰 전쟁을 목전에 둔 혼란과 공포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 직접적으로 이는
    •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완전히 쟁취하고자 벌인 정복 전쟁 중에서도 극히 중대한 결전이었던 암몬 및 아람 연함군과의 전쟁을(삼하 10장)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게 응답(’아나’)하시고’

  • 여기서 사용된 동사 아나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 언어의 형태로 주어지는 대답(사 46:7) 뿐만 아니라 불어나 천둥과 같은 응답(대상 21:26; 출 19: 9)까지도 포함된다.
    → 그리고 이러한 응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귀결된다(22:21; 60:5).
    그런데 기도나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기도와 제사를 열남하셨음을 의미하는 반면,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은 인간의 심각한 범죄로 언한 관계의 단절로 말미암은 징벌로 이해된다(삼상 8:18; 미 3:4).
    그러므로 본문의 이 동사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기대하는 회중의 간절한 기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 ‘응답’ 이란 이 단어는 - 마지막 9절 하반절에 ‘날에’ 라는 표현과 함께 다시 사용→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간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
  • 자구적 의미
    : 여호와께서 고통의 날에 당신에게 응답하시기를(NASB, May the LORD answer you in the day of trouble)’
  • 본문의 정황과 의미를 살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의역하면
    : (이방의)침략의 날에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승리를 베푸시기를(The Anchor Bible, May Yahweh grant you triumph in time of siege)

(2) 따라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다윗은 비록 실무가였고, 무사였지만 믿음의 생활에는 항상 꾸준했다. 그는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그의 신하들 가운데 많은 선한 백성들을 갖고 있었으나 그것으로써 그가 그 자신을 위해 스스로 해야 할 기도를 면제받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위해 기도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소홀히 하는 자들은, 그들을 위한 교회의 기도에 의해, 그리고 사역자들이나 친구들의 기도에 의해서 혜택을 입으리라는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촉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도하는 방백들을 가진 백성들은 행복하며 그들은 그 기도에 "아멘"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은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그의 사람을 보호하시고 그의 생명을 보존하시리라는 것이다.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너를 대적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두시리라."


💡 ‘너를 높이 드시며’

  • ‘사가브' 는 방어와 보호를 상징(69:30; 91:14).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

  • 이 표현은 ‘하나님’을 나타낸다(Calvin, Briggs.)(1,5,7절에서 반복 사용)
    → ‘이름’(쉠)은 :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대상의 본질을 나타낸다.
  •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임재(신 12:11,21)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의 적극적 개입과 도우심을 바라며 사용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Kraus).
    • 그리고 더 나아가 : 그의 인격적 통치와 활동을 나타내는 강력한 표현이기도 하다(미 5:4).
      •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상대할 때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 (삼상 17:45)으로 나아간 것은 바로 이러 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 따라서 여기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바라보고 그분의 강력한 개입으로 인한 승리를 염원하며 ‘하나님의 이름’ 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 "하나님으로 하여금, 환난에 날에도 야곱을 지키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섭리로 너를 안전케 하시게 하라."

다윗은 그를 지킬 용맹한 자를 갖고 있었지만 그 자신과 그의 백성들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에 맡기고 있다.


 💡본문의 ‘야곱의'라는 표현을 학자에 따라서 개인의 이름, 즉 이삭의 아들 야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는 야곱이 어려운 삶의 과정을 통하여 연단을 받았음을 염두에 둔 이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 이를 개인의 이롬이 아닌 구원받은 백성, 즉 야곱으로부터 말미암은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란 표현을 쓰지 않고 ‘야곱의' 란 표현을 쓴 것은
→ 하나님께서 전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야곱의 기도를 듣고 그를 환난에서 구원하신 사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 이라는 표현은

  • 고난의 상황 가운데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임재하셔서 당신의 백성에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 지금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도우심의 역사가 위기 가운데 빠진 이스라엘에게 절실하였으므로 그것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은혜로 너를 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히 있도록 하게 하라.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믿음으로써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 18:10). 다윗으로 하여금 여러 번 그래왔듯이 그 자신을 그 강한 망대로 피난할 수 있게 하라."

3.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부여하시어 공적인 유익을 위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즉 전쟁 때에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그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그를 붙드시리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섭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과 언약의 궤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시고 성소에서 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가운데 그를 도와 주실 것이다. 성소에서 나온 긍휼은 가장 달콤한 긍휼로써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의 표징이며, 우리 가신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시온으로부터의 힘은 영적인 힘이며, 영혼 속에, 있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봉사하고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가장 원해야 하는 것이다.


💡 20: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

  • 이스라엘 백성은 성소의 언약궤를 자기들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삼상 4 3).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주술적 행위가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오직 성소가 상징하는 바,
    •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만이 자신들의 승리를 보장하며,
    • 하나님께서는 공간적 • 물리적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초월적인 분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 그렇기에 시인은 성소가 상징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적 관계가 이방의 땅에서도 지속되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본문의 간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본문은 일면 고대 근동의 다른 민족들이 생각하는 지역신의 개념에서 벗어난 천지에 충만하시고 편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관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그리고 시온으로부터 너를 붙들어 주시기를(NASB And support you from Zion!)'이다.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본문 역시 멀리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달라는 간구이다. 

4. 하나님께서 그가 기도로써 바친 그 재물을 그가 이 위험한 원정에서 쓰러지기 전에 그 시대의 법도에 따라 너그럽게 받으실 것을 입증하시리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신다"(3절). 또는  "그것이 제가 되게 하신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네가 재물과 함께 기도로써 그에게 요구했던 승리와 성공을 베풀어 주신다. 그리고 그가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그 제물을 사르셨던 것같이 그 기도를 그가 열납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 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우리 영혼에 불을 켜신다면 경건하고 신성한 사모함의 거룩한 불꽃이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을 타게 할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에 의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제물을 열납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20: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기억하시며’

  • 죄에 대한 하나님의 기억은 하나님의 은헤의 보류와 하나님의 심판을 야기한다(호 7:1,2). 그러나 반대로 언약과 의로운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기억은 구원을 불러온다(창 8:1; 출 2:24; 레 26:44,45). 여기에서는 후자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 사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므로 하나님의 기억에서 실제로 잊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문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를 호소하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이 동사는 본시의 7절에서 다시 한번 사용되어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시고 호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을 묘사한다.

‘네 모든 소제를’

  • 복수로 되어 있는 본문의 ‘희생 제물둘'은 → 출정에 앞서서 드려진 제물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드린 모든 제물들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 번제 : 제물 전체를 완전히 태워 드리는 번제(whole offering)
    • 성경의 여러 제사 중 가장 기본적인 제사(출 29:38-42; 민 28:3),
    • 헌제자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당신의 번제를 기름지게 하시기를’
      → 이는 왕의 번제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열납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표현.
    • 그래서 기타의 번역본들은 본문을 ‘그가 당신의 번제를 기쁘게 여기시기를(regard with favor your burnt sacrifices)' 으로 번역하였다.
    • 이러한 제사의 열납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시인 다윗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여부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뿐 아니라 모든 문제 해결의 관건임을 깨닫고 이를 간구하는 것이다. 

4-6절 :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의 도모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

5. 하나님께서 공공의 안녕을 위해서 그의 모든 고귀한 계획과 사업을 훌륭히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이었다(4절).

"여호와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허락하신다."

그들은 이것을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자로서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는 그 어느 것도 계획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그들을 흡족하게 해 주시리라는 것을 기대할수 있다. 그리고 그의 뜻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그가 그들의 뜻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을 그들 자신에게 약속할 수 있다. "당신이 계획하시면 그 일은 당신께 이루어지나이다."


💡 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 본절은 왕의 마음에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달라는 본문의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백성들의 간구 내용은 ~~왕의 사적언 탐욕이나 욕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마음의 소원, 특별히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어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구현하고자 벌이는 성전에서의 승리를 염두에 둔 것.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이 세운 전락 전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틀 간구하는 내용.
  • 이는 전쟁의 승리가 인간의 힘이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잠 21:31). 

Ⅱ.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선한 왕을 위한 이 탄원에 대해 화평의 응답을 들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가?(5절).

 💡 20: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승리에 대한 소망과 간구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리라. 신하된 우리가 우리 왕의 보존과 번영을 기뻐하리라." 또는 오히려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주의 승리로 인하여 구원하실 주의 능력과 약속으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리라"***라고 볼 수도 있다.

항상 주님의 구원을  주목하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은 그 구원의 기쁨으로 채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다."

1.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하리라. 우리는 우리의 주장이 선한 것을 볼 것이며 모든 일에서 그의 영광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입에 있는 뜻을 물을 것이며 그를 모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지시를 따를 것이며, 그의 도움을 구하고 그것에 의지하며, 그 결과를 그에게 맡길 것이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대적했던 것이다.(삼상 17:45).

2."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우리의 승리를 축하하리라. 우리가 개가하여 기를 세우고 기념비를 세울 때는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승리의 영광을 차지하실 것이며 어느 누구도 그에게 돌려져야 할 영광을 받지 못하리라."

이것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를 다스리는 정부의 유익과 그 형통함을 바라는 우리는 열렬하고 선한 소망을 하나님께 올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앞을 내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다윗에 대한 이 기도는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는 그에게서 풍성한 응답을 얻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한 구제와 사업을 이룩하셨고, 흑암의 권세와 싸우셨던 것이다. 고난의 날 그의 영혼이 심히 슬펐을 때, 주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 즉 그가 경외하는 가운데에 그것을 들으셨다(히 5:7). 또한 하나님은 "성소에서 그를 도와 주시고," 하늘로부터 천사를 보내시어 그를 강하게 하시고, 그의 영혼을 속죄물로 바쳤을 때 그 제들을 인지하셨다. 그의 번제물을 열납하시고 그것을 재로 변하게 하셨다. 마땅히 죄인들을 살라야 했던 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불사르는 것이던 것으로써 만족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소원하는 대로 허락하셨고, 그의 영혼의 고통을 보게 하셨다. 또한 만족할 만큼 그의 손 안에 그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고 그 자신과 우리를 위한 모든 간구를 이루어 주셨다. 그의 아버지께서는 그를 위해 항상 들어 주시며, 그의 중재는 언제나 성공하시는 것이다.


💡본절 상반절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2인청 단수 표현을 사용하여 ‘너의 승리' 즉 이스라엘 왕의 승리로 묘사되었는데 본문에서는 1인청 복수 표현을 사용하여 즉 ‘우리'라는 공동체의 승리로 묘사된다.

이스라엘의 왕은

  • 왕국을 다스리는 한 개인이 아니라,
  •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대표자이며 이들 모두를 대표해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여야 할 존재이다.
    ⇒ 그러므로 그의 제사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열납은 = 그가 대표하는 공동체의 열납을 의미한다.
    ⇒ 또한 그 점에서 그의 구원과 승리는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신정 공동체 전체의 것이다.

이처럼 본절에서 인청 대명사의 변화는 신정 왕국에서 하나님의 대리 통치인 왕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기도 속의 개가 (시편 20:6-9)

Ⅰ. 거룩한 다윗은 선한 백성의 기도로 인해 얻은 유익 속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6절).

"여호와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이 시편을 지은 내가)아노니, 왜냐하면 그가 야곱의 자손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왕이나 백성들에게도 길조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도의 영을 퍼부으실 때 그것은 마땅히 행복한 전조로 간주 될 수 있다. 우리가 그를 구하는 것을 그가 보셨을 때 그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발견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로 하여금 말씀  가운데에서 소망을 갖게 하신다면 그는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하늘에 매우 큰 관심을 두고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에게 화평의 응답을 허락하시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치 않을 것이다.


💡 20: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구원하시는 줄’

  •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케 하심의 결정적 선언.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신정 왕국 이스라엘이 신앙의 터 위에 바로 서 있을 때 전투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 성전(Holy war)의 특징으로 볼 때,
    당시 다윗은 이스라엘이 신앙의 터 위에 굳건히 서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내가 아노니’

  • ‘이제’
    → 어떤 상황이 그 구분점이 되었는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본문의 ‘이제'라는 표현은 왕의 희생 제물과 회중의 간구가 하나님께 드려진 그 결과 — 새로운 국면, 즉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구원과 승리가 기정 사실로 선포되는 상황에 접어들었음을 염두에 둔 것만은 분명하다.

메시야 예언시

한편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절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거룩하게 성별된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 다윗을 가리킨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이는 만왕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본시는 단순히 신정 왕국의 왕 다윗이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구현하고자 출정하면서 승리를 기원한 시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룩하실 메시야 예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을 쳐부수고 승리하실 것을 내다본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시는 신정시의 범주를 넘어 메시야 예언시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1. 그런데 그 응답은 위로부터 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성소로 모형되고 있는(히 9:23)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그가 하늘에 마련해 놓으신 보좌에서, 즉 긍휼의 보좌로 모형되고 있는 그곳에서 응락하시리로다.

2. 그리고 그것은 이 아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오른 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에게 응락하시리로다.


💡 다시 번역하면,

  • ‘그분의 오른손의 구원하시는 강한 힘으로(NASB, With the saving strength of His right hand)'
  • 본문은 자신의 백성을 효과적이고도 완전하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강조하는 표현. </aside>

그는 그의 기도에 대해, 그를 위한 그의 친구들의 기도에 대해 실지로 응락하실 것이다. 그것은 편지나 말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훌륭한 그의 오른손에,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위해 일을 행하심으로써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는 것을 나타내실 것이다.

7-9절 : 왕의 승리를 구하는 최종적 간구

Ⅱ.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에 대한 그들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알리신 그 자신의 계시 안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들로부터 그들 자신을 구별된다.

1. 세속적인 사람들과 경건한 사람들이 그 신뢰하는 면에서 어떻게 다른가를 보라(7절).


💡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신앙을 고백하고 다짐함.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 병거와 말
    • 고대 근동의 가장 강력한 전투 무기
    • 최강의 전투력의 상징으로(Craigie). 이방 민족들이 전투를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 자신들이 소유한 전투력.
  • 이러한 이방인들의 마음가짐은 ↔ 하반절에 묘사되는 바 전쟁에 임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제2의 근거에 의지하며 그것이 그들에게 미소를 짓기만 해도 모든 것이 잘되는 줄 생각한다. 그들은 "병거나 말"을 의지하며 그 수효가 많은 수록 그들이 싸움에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더 강하게 갖는다. 아마도 다윗은 여기에서 우리가 그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많은 병거와 말로 구성된 병력을 지니고 있었던 아람 사람을 지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삼하 8:4; 10:18).

그러나 "우리는 의지할 만한 병거와 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을 원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성공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의지하리로다.

우리는 그를 우리 주 하나님으로 삼은 것과 우리가 그의 우리 주 하나님으로 삼은 것과 우리가 그의  이름을 통하여 그에 대해 아는 지식 위에서 그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우리는 그가 그 자신을 알리신 모든 것으로써 그 이름을 자랑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랑할 것이고 그 자랑으로써 격려받을 것이되. 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찬미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 =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1절) = ‘우리 하나님의 이름’(5절)
  •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다.
  • 앞선 1절의 '야곱'이라는 표현은 → 5절에서 ‘우리'로 바뀌었으며 → 본절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가장 거룩한 것으로 여겨지며 선민과 언약 관계를 맺으신 자존자이심을 나타내는 ‘여호와'란 호칭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에 근거하여 언약을 지키사,
  • 승리와 영예를 얻도록 하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확신하며 간구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2. 그들이 신뢰한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는가를 보라.

그것에 의해 우리는 선택의 지혜를 판단해야 한다. 만사는 그것이 드러나는 대로인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들의 신뢰를 부끄러워 하고 또 누가 부끄러워하지 않는가를 보라(8절).

"병거와 말을 의지한 자들은 굽어 엎드려졌다. 그 병거와 말은 그들을 구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욱 패망하도록 만들었고, 더욱 쉽게, 더욱 심히 정복자의 희생물이 되도록 했다(삼하 8:4). 그러나 우리 주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우리는 바로 서서 우리의 땅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일어나서 그 대적을 쳐 땅을 획득하여 승리를 거둔다."

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믿음과 순종으로써 의지하는 것이 성공과 견실함으로 이르는, 일어나서 바로 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의지했던 피조물들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 이것이 대신 우리를 격려해 줄 것이다.

 

Ⅲ. 그들은 호산나와 함께, "여호와여 구원하소서"라는 말로써 왕을 위한 간구를 끝내고 있다(9절).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왕을 축복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즉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그로 성공하게 하소서"라는 기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하여금 그들을 축복하도록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는, 즉 "우리가 그에게 공의와 긍휼을 구할 때 왕이 응락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로도 간주될 수 있다. 치리자들로부터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이처럼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은 왕의 왕인 메시야를 언급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우리가 부를 때에 그로 우리에게 응락하시도록 하자. 그로 하여금 정해진 때에 약속대로 우리에게 오시도록 하자. 또한 그로 하여금 요청하는 자들의 위대하신 주인으로서 우리의 모든 탄원을 받아들여 그것을 그의 아버지께 전하시도록 하자. 그러나 많은 해설자들이 이 구절을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그리고 우리가 부를 때에 응락하소서"라고 변경함으로써 또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시 전체의 요약도 역시 그러하며 이것은 English Liturgy(영국 기도서)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그리고 우리가 부를 때에 자비롭게 응락하소서."


💡 20: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왕을 어느 위치에 번역시키느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짐.

  •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답하소서’

사실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의 참되고 유일한 왕은 하나님을 대신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인간 왕이 아니라 그에게 왕권을 부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삿 8:23). 그러한 의미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 고백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간구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절들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우리 자신을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서 우리를 다스리는 권세를 지닌 자들을 위해 진지하게 간구하도록 스스로 분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항상 경건하고 거룩한 가운데 그들 아래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해야 한다.


결론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시는 승리 기원시.

메시야 예언시, 신정시로서의 특징 등을 두루 내포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본시는 읽는 자들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감흥과 교훈을 준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이 읽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승리를 구가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뜨거운 신앙을 전달받게 된다.

이는 비록 말을 달리고 활을 쏘며 칼을 부딪히는 고대의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아니나 사단과 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같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원수 사단과 끊임 없는 영적 전투를 치르는 성도들에게 본시는 승리의 관건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에 있다는 소중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뿐만 아니라 치열한 영적 싸움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들의 영원한 승리로 귀결된다는 벅찬 갈등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속사의 찬란한 지평을 제시하는 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