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24, 요한복음 3, 욥기 42, 고린도후서 12
묵상구절
-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
28:1 <다윗의 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8: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28: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28: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28: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8: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28: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28: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 정성우 목사님 2017년 설교!
- https://cafe.daum.net/1inchrist/LXWL/20
- 이동훈 목사님 강해설교!
- https://youtu.be/jJfGuXWO2OA**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
본시의 표제가 말해 주고 있듯이 본시는 다윗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러나 본시의 저작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는 그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본시의 저작 시기에 관해 정확허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본시를 압살롬이 다윗을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켰던 때(삼하 15:1-23)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또한 전통적으로도 본시를 그러한 정황 속에서 해석하여 왔다.
다윗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그의 생애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 앞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에서 난 아들 압살롬에 의해 일어난 반역이다.
이 일이 다윗을 얼마나 깊은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을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같은 배경 아래 지어전 본시는 암울함과 어둠으로만 채색되어 있지 않다. 비록 다윗은 아들에게 쫓겨서 도망가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 속에 있었지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고 자신의 원통함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그에 근거한 기도는 합당한 응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시에서 다윗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선취적 확신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올려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본시는 시인인 다윗에게 있어 이느 특정한 삶의 정황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표현한 것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본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본시에서 찬양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6-9절을 살피보면 6, 7절에서 다윗 개인에게 맞추어졌던 찬양의 초점이 8, 9절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로 옮겨지고 있다. 이와 같이 다윗의 개인적인 상황에서 쓰여졌던 본시는 후대에 이르러서는 성전 제사와 관련해 성전 내에서 행해지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 의식에서 사용되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시 분류 : 비탄시, 찬양시, 감사 예배시
한편 본시는 앞선 제26, 277편과 마찬가지로 ‘비탄시'로 분류.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주제별 분류상 ‘비탄시'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본시 내용 전체가 비탄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본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그에 대한 찬송을 포함하는 찬양시, 감사 예배시이기도 하다.
이는 본시가 비탄시이기는 하나 그 어떤 다른 비탄시보다 더 많은 찬양과 감사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균형잡힌 내용은 인생의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노시인 다윗의 성숙한 신앙적 면모를 그 어느 시보다 더 잘 보여준다.
●구원을 위한 기도 (시편 28:1-5)
Ⅰ. 그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불렀을 때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1,2절).
💡 28:1 <다윗의 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8: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기도 속에서의 그의 믿음을 주시하라.
"여호와여, 나의 반석이며, "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그는 반석이시다)과 그 능력에 의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나의 반석이시니 내가 그에게 소망을 두리로다."
💡본문에 사용된 ‘여호와'란 신명
- 자존자 즉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거록하심을 부각시키는 표현
- 동시에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설하게 이행하시며 언약의 객체인 그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강조할 때 사용되는 신명이다.
여기서 다윗이 ‘여호와'라는 신명을 부름으로 시작하는 것 역시도 이러한 언약적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 즉 다윗은 자신이 부르짖으며 도움을 호소하는 대상이 다윗 자신을 신정 왕국의 왕으로 세우시고 자신의 후손에게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셨던 바로 그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
또한 기도 속에 있는 그의 열성을 주시하라.
"내가 간절하게 주께 부르짖으오니, 주께서 적절한 때에 나를 구하러오시지 않는다면 나는 곧 침몰되고 말 것입니다."
💡 ‘부르짖으오니’
- 이 부르짖음은 다윗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짐작하게 한다.
- 부르짖는 것은 슬픔과 고통에 처한 자가 발하는 자연스런 반응이지만 그 부르짖옴의 대상이 중요하다.
성도의 부르짖음은 여호와 하나님께 향할 때 의미가 있다.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 생명도 없으며 능력도 없는 우상을 향하여 부르짖거나 스스로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도움을 부르짖는다.
- 그러나 이는 마치 허공을 향해 목소리를 발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며 고통만 가중시킬 뿐 아무 의미조차 없는 소모적인 일일 뿐이다.
- 그러나 전능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자는
- 이미 자신이 처한 고통에서 헤어나올 발판을 마련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절, ‘나의 반석이여’
- 다윗은 목숨이 위협받는 절박한 위기 상황과 온갖 수모와 멸시의 시선이 오가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나의 반석이여’ 라고 칭한다.
- 반석
- 하나님의 견고한 보호와 도움(삼상2:2), 완전 무결한 피난처(94:22).
- 다윗은 급박하고 고통스런 상황에서 바로 반석처럼 확고 부동하며 완전 무결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주시고 자신을 위기 가운데서 보호해 주실 것을 바라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이와 같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응답을 얻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구하는가를 보라.
"나의 기도에 노한 자처럼(80:4) 내게 귀를 막지마소서. 여호와여, 내게 말하소서.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소서(슥 1:13). 비록 내가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내게 즐거움과 기쁨을 말씀하시어 나로 그것을 듣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나를 위해 말씀하소서. 내 송사를 옹호하시고 나를 구원하도록 명하소서. 그리고 내 간구의 음성을 들으시고 응답하소서."
그는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탄원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를 소홀히 여기신다면 그는 슬픈 절망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그리고 내가 주의 은총의 표적을 얻지 못하면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 것입니다. (즉 나는 죽은 지이며 잃어버린 자이며 멸망한 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의 친구가 되시지 않고, 내게 나타나시거나 나를 위해 나타나시지 않는다면 나의 소망과 구원은 "사라질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총이 고갈되고 그의 노하심을 느끼는 것만큼 은혜로운 영혼을 아프게 하고, 소멸시키는 것은 그런데 없다. "내가 음부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시고 잠잠하시는 것외에 저주받은 자들에게 더 비참한 링이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그의 찌푸리심을 죽음보다 더 나쁜 것으로 여기는 자들은 어느 정도 하나님의 은총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또 그것을 기대할 수 있다.
💡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거부하고 귀를 막으시는 것을 가정한다.
- 오로지 하나님 외에 자신을 구원할 자 없는 상황에 처한 다윗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다윗의 심경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에 대해 듣지 않거나 응답지 않는 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단순히 듣지 않거나 응답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하나님께서 귀머거리처럼 자신을 대하신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 보다 신속하고 분명한 응답을 소망하는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 다윗은 이와 같은 절망적인 용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경우 어떤 위기에 던져질 것인가를 보다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죽음의 장소에 떨어지는 비참한 상황을 원수둘의 위협이나 공격이 아닌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에 응답지 않는 상황에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다윗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두려웠던 것은
- 원수들의 위협과 죽음의 공포와 같은 것이 아니라
- 자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상황, 곧 하나님과 단절된 상황임을 나타내고 있다.
2.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푸시리라는 좋은 소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드나이다." 이 말은 그가 그곳에서 화평의 응답을 받으리라는 것에 대한 열렬한 소망뿐만 아니라 열렬한 기대도 시사하고 있다.
휘장 안에 있는 가장 거룩한 장소가 여기에서도 다른 곳에서처럼 "성소"라고 불리우고 있다. 거기에 증거 궤와 속죄소가 있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이 "두 그룹 사이에 거하시고"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고 일컬어지고 있다(민 7:89). 그것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주시하고 그를 향하여 손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모든 선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천국의 그림자였다(히 9:24).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이 오기를 기대하도록 배우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소"라 불리우고 있으며, 우리는 기도하며 기다릴 때 그것을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하시고 격려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 28: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주의 성소’
-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말씀하시는 장소로 여겨졌던 ‘성소의 내전(왕상6:19)’, ‘지성소’(왕상6:5)
- 원문에는 ‘코데쉬’(거룩한) 단어가 사용되어 → 이곳의 거룩함을 더욱 강조한다.
⇒ 다윗은 지극히 거룩한 곳 이란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아마도 본시를 기록할 당시 다윗은 -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을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을 향하여 반역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의 공격을 피해 도망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 외에 의지할 자가 없음을 절감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본문에서 하나님과 당신의 택하신 백성, 그리고 그 백성 위에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인 언약궤가 보관된 성막이 위치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손을 들어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러고 있는 것이다.
‘나의 손을 들고’
- 어떤 의미인가?
- 본래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자의 몸짓을 나타내는 표현.
- 그러나 이것은 후에 간절하고 열정적인 기도의 일반적인 자세를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었다(63:4; 134:2).
- 그래서 많은 경우 이러한 행위가 수반된 기도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여호와께 드리고자 하는 헌신의 의미를 포함한다(애 3:14).
- 본절의 묘사에도 이같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그의 기도와 탄식은 점점 더 그 강도를 더하여 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 다윗의 간구는 : 일시적,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 반복적인 것이었다.
-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자신의 간구를 경청하사 그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
Ⅱ. 그는 앞에서와 같이("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 26:9) 악인들의 멸망을 호소하고 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성소에 있사오니,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3절)."
💡 다윗은 악인들의 사악함을 강조하고, 그들과 자신을 똑같이 취급하지 마시기를 여호와께 요청한다.
1. “그들이 나를 위해 놓아둔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구원하소서.”
“그들은 나를 감언이설로 속이고, 아첨하며 내게 화평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대한 계략을 품고 있습니다. 즉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그들은 나를 혼란케 하려고, 또한 멸망시키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그들의 저주스런 계획에 끌리어 멸망하도록 하지 마소서. 왜냐하면 그들은 위로부터 허락하지 않는 한 나를 칠 능력을 가질 수 없으며 성공을 얻지도, 또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 악인들의 대표적 특징
- 겉으로는 이웃과 언약을 맺고 이웃에 대해 ‘솰롬’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웃의 ‘솰롬’을 깨뜨리고 그들을 고통에 몰아넣음.
- 겉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맺는 척하고 다정한 인사를 나누지만, 그 마음속으로는 ‘솰롬’과 정반대 되는 악독을 마음에 품고 있음.
2. "그들의 죄에 감염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과 같이 행하지 않도록 구원하소서.“
”그들의 악의 있는 화술이나 유혹에 끌려 주의 거룩한 성소(그곳은 내가 나의 생의 모든 날을 거하기를 원하는 곳입니다.)로부터 멀어지고 악한 일을 행하지 않도록 하소서(141:4 참조)."
"여호와여, 나의 안전함을 위해서 그들이 나의 멸망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은 속임수와 배반 행위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소서. 섭리에 의해 내가 유혹에 빠져 그 악한 무리를 따르거나 그들 권세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소서."
선한 자들은 죄인의 길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그 길로 빠질 때 생기는 위험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순전함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그의 은혜를 진심으로 간구해야 한다.
3. "내가 그들의 파멸 속에 끼여들지 않도록 구원하소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않도록 하소서. 왜냐하면 나는 마음속으로는 싸움을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화평을 말하는 자들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과 함께 그들의 죄에 참여지 않도록 주의하는 자들은 그들이 받는 재앙을 함께 받지 않기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계 18:4).
Ⅲ. 그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임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4절).
"저희 행위대로 갚으소서." 이것은 분노나 복수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또한 우리의 대적들을 위해 간구해야 하는 기도의 의무와 상반되는 것도 아니다.
💡 ‘악한 대로’
- ‘로아으' : ‘윤리적인 면에서의 사악함', ‘행동 면에서의 사악함' 등 전인적인 모든 측면에서 악함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 이같은 표현을 통해 다윗은 그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죄악에 오염되었으며 악에 치우쳐 행하는 자들인지를 고발한다. 그야말로 다윗은 이들을 악의 덩어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이처럼 극단적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이유
- 단순히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적개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 이는 하나님의 뜻과 언약을 이들이 전적으로 무시하는 자들이기 때문.
- 물론 다윗이 이들을 이와 같이 부르는 것은 앞선 3절에서 고발한 대로 그들이 철저하게 위선과 외식, 악독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다윗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위를 굳게 하시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 즉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 거짓된 술수와 선동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자기둘의 손에 넣으려 하였던 것이다.
- 다윗 자신을 반역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악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든 것, 곧 하나님을 대항헤 반역을 도모한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들을 직접 응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이 일의 직접적 당사자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 대로' 즉 그들의 부도덕하고 반역적인 행사에 대해 친히 보응하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 다윗은 분명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임을 알고 있었다(삼하 3:39).
📌 그리고 이러한 죄악에 대한 보응은 →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서 비롯된다.
- 하나님의 공의란 죄없는 자에 대해서는 고통을 없애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벌을 내리시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 다윗 역시 이 사상에 근거하여 악인들에게 그에 할당한 벌을 내려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간구가 사랑을 근본 정신으로 하는 기독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봐서는 안된다.
- 지금 다윗은 개인적인 보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다윗은 하나님의 뜻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신에 대하여 반역한 무리들로 인해 무너진 신정 왕국의 도덕 체계와 질서가 하나님의 공의의 역사로 인해 다시 희복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러나 그는 이처럼 그가 행악자들에게 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과 함께 이끌려 다니지 않기를 간청했어야 할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즉 그는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받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욱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2. 그는 이처럼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예로운 공의에 대한 그의 열의를 표하려 했다.
"여호와여,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을 모두 좋게 여기고 있으며 그들의 사악한 행실을 스스로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저희 손에 지은 대로 갚으소서. 그리하여 그들 주변에 있는 자들이 그들이 행한 것이 처벌되지 않고 지나감으로써 그 속에 해로움이 없다고 잘못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소서(94:1, 2)."
3.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조만간에 회개하지 않는 모든 죄인들을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리라는 예언이다.
잘못 행한 것에 대한 회개함이 없다면 분명 응보의 날이 올 것이며,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악한 행위를 고집하는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이것은 특히 파괴하는 자들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그러하오니 여호와여, 저희의 행위대로 갚으소서. 약탈자들로 하여금 약탈당하게 하시고 속임수로 행하는 자들이 속임을 당하게 하소서(사 33:1; 계 18:6; 13:10 참조)."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라.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행위대로 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아 주실 것을 예고하고 있다.
- 즉 죄인들은 그들이 행한 재앙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계획하고서 하고자 하는, 그리고 그들이 계획했고 영향을 끼친 재앙에 대해서도 문책당할 것이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규정에 의해 악인들을 다루신다면 분명 그는 의인들도 그렇게 다루실 것이며 그들이 행한 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비록 성취하지는 못했을지라도 하고자 노력했던 선에 대해서도 갚아 주실 것이다.
Ⅳ. 그는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손을 경멸한 것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리라고 예고하고 있다(5절).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즉 그것에 의해 그가 그 자신을 나타내시고 인생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 어리석음이 - 곧 죄인들이 죄을 짓는 동기가 되며 따라서 그것은 그들 멸망의 원인이 된다.
그의 손의 지으신 것-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에 관한 눈에 보이는 것을 명백하게 나타내는 것이다-을 염두에 둔다면,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나 그 속성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모든 불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에 대해 하늘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진노의 예들을 깊이 생각한다면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잊고 그 없이 살며, 더욱이 그를 모독하고 배역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 역사하신 일과 그것을 통해 그것에 얼마나 소중한가를 나타내신 사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대적들이 그 백성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며 그들을 해할 계획을 품을 수 있겠는가?(사 5:12 참조)
이것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행악하는 자들과 합세하도록 하는 모든 유혹에 맞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무장시켜야 한다. 그리고 행악자들로부터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모든 환난에 대적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 28: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
- 의미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부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의미함.
-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친히 집을 세워주실 것이며 그의 왕권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리라는 다윗 언약을 주신 바 있다(삼하 7:5-16).
- 따라서 압살롬을 비롯하여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은
⇒ 단순히 다윗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행사와 그 지으신 것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 따라서 다윗은 본문에서 이들의 소위가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참되고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 행위이며,
- 이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바를 허는 자라고 고발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본문에는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지은 것만을 생각하는 악인들이 맞게 될 최후의 운명은 멸망뿐이라는 다윗의 선취적 신앙이 잘 드러나고 있다.
즉 그들의 도모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이들 악인들이 철저한 파멸을 당할 것이란 다윗 자신의 확신을 반영하는 것.
●열렬한 감사와 찬미 (시편 28: 6-9)
💡전반부 1-5절에서 자신이 처한 억울한 상황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과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여 악인들을 멸망시켜 줄 것을 호소하며 이것이 성취될 것을 확신한 다윗은 후반부인 6-9절에서는 여호와를 찬양한다.
그중에 6, 7절은 특히 다윗 자신의 개인적인 찬양을 담고 있다. 이를 시작하는 본문에서는 급격한 내용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5절까지의 어두운 분위기는 어느새 사 라 지 소망과 기쁨의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원수에 대한 보응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확신한 것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다윗은 벅찬 감격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Ⅰ. 다윗은 그가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청종하시려 한 것에 대해 앞의 대문에서와 같이 마음을 다하여 그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6절).
얼마나 빨리 성도들의 슬픔은 노래를 바뀌고 그들의 기도는 찬미로 되는가! 다윗이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2절)라고 기도한 것은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던"(6절)것을 감사하고 있다.
1.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은 소망 가운데 즐거워할 수 있다.
"그가 내 기도를 들으셨고(은혜롭게 나를 영접하셨고)나는 마치 실질적인 응답을 이미 받은 것처럼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 28: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임을 믿었던 다윗은 원수들에 대한 보응이 이미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선취적인 신앙에 근거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
- 다윗은 자신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미 응답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
‘들으심이로다’
- 이처럼 회중을 향해 구원을 간증하는 시를 기록할 당시 다윗의 간구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 그럼에도 이처럼 완료형 동사를 사용한 것은 아직 응답이 주어지지 않았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다시금 바르게 세우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 이처럼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너무나 확고하여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나타낼 경우 완료형을 사용하여 표기하는데 이를 확신의 완료형(Perfects of Confidence)이라고 부른다.
다윗이 이러한 선취적인 고백을 올려 드릴 수 있었던 것은
-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과 맺으신 언약을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키설 것을 흔들림없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기도를 통해 얻은 것을 우리는 찬미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어 주셨는가? 그렇다면 그의 이름을 찬미하도록 하자.
Ⅱ.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온전케 해 주시리라는 소망을 갖도록 스스로 격려하고 있다.
하나님께 그의 은혜에 대한 영광을 돌린 후에(6절) 그는 겸손하고도 대담하게 그 위로를 취하고 있다. (7절).
-이것이 곧 화평을 얻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찬미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을 찬미한 다음에 우리 자신을 축복하도록 하자.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므로 나를 부축하시고 나로 나의 모든 봉사와 노고를 감당하게 하신다. 또한 그는 나의 방패이시니, 나를 치려는 대적들의 모든 악한 계획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신다. 나는 그를 그러한 자로 택하였고 항상 그렇게 해 주심을 발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을 기대한다."
💡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나의 힘’ ‘나의 방패’
- ‘힘’ : ‘내적인 힘’ (삿9:51; 30:8)
- 여기서는 다윗이 온갖 어려움 중에도 낙심치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내적 능력을 가리킨다.
- ‘방패’ : ‘보호자’
- 다윗은 방패가 갖는 특성, 즉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방어용 무기로서의 이미지를 하나님께 적용시킴으로 - 하나님께서 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시는 분임을 부각시킨다.
⇒ 즉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적으로는 자신의 힘의 근원이 되어주시며, 외적으로는 모든 공격으로부터 그를 막아주시는 방패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윗이 여호와를 ‘나의 힘'과 ‘나의 방패' 라고 고백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아니다. 다윗은 이미 과거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힘과 방패가 되어주셨던 여호와를 체험했었다.
다윗의 확신의 근거는 : 이미 실제로 과거에 이루어겼던 일과 관계가 있다.
→ 그는 과거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항상 여호와를 신뢰했었으며,
→ 그로 인해 여호와의 도움을 얻었다.
2. 그는 그러한 의뢰에서 오는 혜택을 체험하고 있다.
"내 마음이 저를, 그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하였고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도움을 얻고 또 자주 도움을 얻어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내가 의지한 그 도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의지하는 바로 그 믿음이 그 동안에 나를 도왔으며 내가 쓰러지지 않게 해 주었다."(27:13).
즉 믿음의 행위는 낙심한 심령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되고 간혹 죽음으로부터 소생시키기도 한다.
3. 그는 이 체험을 발전시키고 있다.
(1) 그는 이 체험을 기뻐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리로다."
믿는 자의 기쁨은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반면에, 우매한 자는 웃을 때에도 그 마음이 슬프다. 믿는 자의 기쁨은 큰 기쁨, "표현할 수 없으며 영광이 가득한 기쁨"이다. 진심으로 믿는 마음은 합당한 때에 크게 기뻐할 것이다.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은 바로 "믿음 가운데 있는 기쁨과 화평"이다.
(2) 하나님은 그 찬미를 받으실 것이다.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할"때에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의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역시 그를 의지하도록 인도하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크게 기뻐하며' (’와이야알로즈')
- 원형 ‘알라즈’ : 본래 ‘기뻐서 펄쩍 뛰다'(68:3), 또는 전쟁과 관련해서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다'(삼하 1:20)와 같이 기쁨의 정도가 매우 커서 격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이와 같은 다윗의 넘치는 기쁨은 세상적인 것을 누리는 데서 오는 일시적이거나 감정적인 쾌락이 아니었다.
사실 다윗은 지금 기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했다.
- 그는 왕의 신분으로 모반을 당하여 도괴하는 지경에 처해 있었으며 그 모반의 주모자는 다름아닌 자기 친아들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반란은 아직 진압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다윗 자신은 이들 반란자들의 위협을 받는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윗은 기뻐하고 노래하기보다 오히려 수치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떨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올리는 과정에서 모반을 일으킨 자들이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을 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목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다윗의 기쁨은 현실적이거나 세속적인 기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풍성한 기쁨이었다.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찬송은
이처럼 그가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하나님어 지속적으로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를 깨달을 때,
우리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게 된다.
Ⅲ. 그는 모든 선한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유익을 기뻐하고 있다. (8절).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로다. 나의 힘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힘이시도다."
성도들은 그들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의 위로도 기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햇빛으로부터 혜택을 받듯이 하나님의 얼굴빛으로 받는 혜택도 균등하며, 또한 그 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몫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그리고 각 사람에게 충분한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이 모든 성도들과 우리가 나누는 교제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힘이고 그리스도는 그들이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신 것이다(고전 1:2). 그는 그들의 힘, 모든 이스라엘의 힘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기름 부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기 때문이다.
1. 즉 그는 다윗의 모형 속에서 구원의 산성으로 나타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며 그들을 위해 싸운 그를 힘있게 하심으로써 온 나라를 강하게 하셨다. 그는 그 자신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 부르고 있는데 그것이 그의 대적들의 시기를 받게 만든 기름이 되었으므로 그것은 그에게 거룩한 보호를 부여해 주었다.
2. 또한 그 원형으로서 그리스도, 그의 기름 부음 받는 자, 그의 메시야의 구원의 산성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산성으로서 그의 사업을 행할 자격을 주셨고 그것을 수행하도록 해 주셨다(89:21; 사 49:5; 50:7, 9 참조). 그리하여 그는 그들의 힘, 모든 성도들의 힘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힘있게 하셨으며, 그를 통해 모든 성도들에게 힘을 선포하신다. 또 그의 힘을 명하셨으며, 그리하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히 하신다."(68:28; 80:17, 18).
💡 28: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이스라엘에서 기름부음을 받아 성별되는 대상은 대표적으로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왕이 있었다.
- 이들 모두의 직분은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서 거록하고 온전하게 세우는 중차대한 것이었으므로 ‘기름부음' 이라는 거룩한 의식을 거쳐 직임을 감당하도록 한 것이다.
- 본문에서는 이 표현이 다윗과 관련되므로 - 왕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다윗이 본절에서 ‘왕’ 이란 표현 대신 ‘기름부음 받은 자 ' 란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
- 자신의 직임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밝히기 위함이다.
- 궁극적으로
-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자신의 왕위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완전하게 보호될 것이란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 그러나 더 나아가 본문의 이같은 내용이 예표하는 바
-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이신 메시야 그리스도의 승리와
-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의 완전한 보호와 승리를 예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Ⅳ.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짧지만 포괄적인 기도로써 끝맺고 있다(9절).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고("나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주의 백성"으로 여기고 기도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세력은 그 자신의 세력보다도 더 그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니이다"라는 말은 훌륭한 탄원이 된다.(사 64:9; 63:19). "내가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유업으로서, 그에게 소중하며 그가 보시기에 귀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서 얻은 영광이 매우 적을지라도 그는 그것을 그들로부터 얻으신다. '여호와의 소득은 그의 백성이다."
💡28: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그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들로부터 그리고 그들이 처해 있는 위험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 그가 그의 약속을 이행하시는 가운데, 그의 은총으로부터 흘러 넘치고 그들을 행복에 이르게 해 주는 모든 선으로 그들을 축복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 그가 "저희의 목자가 되사" 그들을 풍성하게 복 주시고 특히 영혼의 양식이 되는 그의 의식의 풍성함으로 복 주시리라는 것이다.
난외주에는 "저희를 다스리사"로 되어 있다. "그들의 뜻과 행동이 바르도록 지시하시고 그들의 일이 유익하게 되도록 다스리소서. 그들을 먹이시고 다스리소서. 그들에게 목사를 두시고 다스리는 자를 두시면 그들을 지혜와 명철로써 일을 행할 것입니다." - 그가 그들을 영원토록 환난과 고통으로부터 "드십소서" 하는 것이었고 또 그 세대에 속한 자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모든 세대,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이것을 행해 주시리라 것이다.
"그들을 주의 영광스러운 나라도 들어 주시고, 그들을 하늘 만큼 높이 드시옵소서." 그곳에서만이 성도들은 영원히 들리울 것이며, 결코 더 이상 가라앉거나 기가 꺾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다스리시는 자들, 기꺼이 그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안내받고 다스림을 받으려는 자들, 그러한 자들만이 구원되고 복을 받으며 영원히 들리울 것이다.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어 본시는 크게 탄원과 찬양이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탄원과 찬양의 전환을 이루는 중심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다윗은 사랑했던 아들의 배신으로 인해 깊은 영혼의 상처를 받았으나 그러한 현실 앞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거나 반대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어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절망의 벼랑 끝에서 유일한 소망이 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며 자신의 고통을 간절히 호소하고 하나님께서 간섭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러한 간구의 과정을 통해 다윗의 탄원은 응답되었고 어느세 찬송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이같은 결과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 다윗이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또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다스리도록 허락하신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하고 그들을 축복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즉 다윗은
-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들고 있었고
- 이와 동시에 그가 다스리고 있는 백성들을 위한 마음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성경은 다윗을 언약적 왕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본시를 통하여 진정한 문제 해결은 사람을 통헤 얻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과거 다윗과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서 영혼 깊은 곳의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상처는 사람에 의해서 씻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본시에 나타나는 바 환난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는 이 시대틀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영적인 삶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