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4월 26일 금요일 묵상구절 시편 75편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Jeehyun 2024. 4. 26. 09:45

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3, 시편 37, 아가서 1, 히브리서 1

묵상구절

75:1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75: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75: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75: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75: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75: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5: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75: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75: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악인의 뿔과 의인의 뿔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 예정을 선언하신 여호와 -

(저자:아삽, 분류:찬앙시)

서론

 📖본시는 시편 제3권에서 다윗 시대에 활동한 3대 악장 가운데 하나였던 아삽이나 그의 후손들이 성전 예배용으로 지었거나 편집하여 모은 시들의 군집인 제 73-83편까지 이어지는 시들 가운데 세번째 시.

형식상 찬양시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본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소망하는 가운데 교만한 악인의 궁극적 멸망과 겸손한 의인의 궁국적

승러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시의 저작 배경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

으나 학자에 따라 남유다 아사 왕 때 세라 휘하의 백만 구스군의 침공(대하 14:9-15), 히스기야 때 앗수르의 산헤립의 침공(왕하 18:13-19:37), 유다 사람들의 바벨론 포수 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중 히스기야 때의 산헤립 침공을 저작 배경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한 견해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본시의 저자로 언급된 아삽은 제74편과 마찬가지로 다윗 시대의 아삼이 아니라 아삽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본시는 그 구성면에서 첫 절과 마지막 두 절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진 수미쌍관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중간에 언급된 내용, 곧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관자요 심관자이심으로 인하여 마땅히 찬양받으셔야 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표현 기법입니다.

이외에도 본시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사실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 (2-5절)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과 한나의 기도(삼상 2: 1-10), 마리아의 찬양(눅 1:46-56)과 유사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업니다. 또한 본시가 제 74편의 뒤에 배치된 것은 다분히 편집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시는 비록 제74편보다 그 저작 시기가 빠를 수 있지만 그 내용면에서 보면 ‘주의 대적의 소리를 잊지 마소서’ 라는 간구로 끝나고 있는 제74편의 응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절

본시 전체의 서론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이르렀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내용

2-5절

1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된 이유로서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하여 종말론적 심판을 예고하셨음을 직접 화법으로 소개하는 내용.

6-8절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보응에 대하여 선포하는 내용업니다.

9, 10절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확신하며 1절에 이어 다시 한번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


●재판장의 결의(시편 75:1-5)

이 대목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예와 권세가 향상된 것과 하나님이 자기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여 주신 많은 일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있다(1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에 대해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그리고 다시 "감사하나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사는 자주 되풀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긍휼을 추구할 때 자주 기도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 긍휼을 얻고 났을 때, 한 두 번 감사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나와 나의 모든 친구들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긍휼을 함께 나누었다면, 우리는 그들의 찬송에도 그들과 연합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곧 우리 긍휼의 조물주께 감사함은(그리고 우리는 주께만이 합당한 그 영광을 그 도구들에게 돌리지 않겠습니다)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다윗에게 하신 주의 약속의 성취는 아주 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주께서 그들을 위해 이미 행하신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것, 즉 섭리의 일상적인 궤도와 우리의 기대를 초월하여 있으므로서 진정 "기사"(奇事)라 부를 수 잇는 많은 일들이 있다.
  2. 이러한 기사는 주의 이름이 가까움을 선포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요청한 일 속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것, 그리고 그가 그의 백성을 위해 그의 목적과 약속을 이행하시어 어떤 큰 일을 행하시려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3. 하나님의 기사가 그의 이름의 가까움을 선포할 때, 그에게 감사하는 것, 거듭거듭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 75:1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 본시는 ‘우리가 … 감사하고’ 로 번역된 ‘호디누’로 시작한다.
    • 시인은 본시의 도입부인 본절에서 이러한 ‘호디누'틀 두 번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시적 옴률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경외심을 격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호디누’의 원형 ‘야다’ : 본래 의미는 ‘손을 쭉 뻗다’
    • 일반적 의미: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밖으로 표현하는 것.
    • 특히 하나님과 관련하여 - ‘찬양하다’, ‘고백하다’, ‘인정하다’, ‘경배하다’ ⇒ 예배와 연관되어 사용된다.
  • 감사의 대상 : 원문으로 보면, 두 표현이 사이에 놓임.
    • ‘주께’, ‘하나님이여’ ⇒ 성도의 유일한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것.
    • 시인의 감사한 마음을 강렬하게 표현함.
      1. 특히 여기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는 ‘엘로힘'이란 신명을 사용
        → 하나님께서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절대 권능을 지니셨옴을 강조하기 위헤서이다.
      2. 하나님을 ‘당신께(KJV, Unto thee) '로 직역되는 ‘레카'를 사용하여 지칭
        → 하나님께서 지극히 엄위로우심에도 불구하고 성도와 하나님 사이가 ‘당신'으로 지칭할 수 있을 만큼 매우 가까움을 부각시키기 위헤서이다.

시인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

⇒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 ‘이름’
    • 성경에서 이름은 그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 그 자체나 그의 본질, 성품, 능력 등을 함축한다.
    • 본절에서는 ‘가까움이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되어 역사 가운데 그 이름의 능력이 발현될 날이 가까웠으며 그로 인해 놀랍고 신비한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시인이 처한 현실과 신앙
    • 본시가 앗수르의 침략을 배경으로 지어졌다면 본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근동의 최강자 앗수르에게는 패퇴와 멸망이,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 임박하였다는 선포적 의미를 지닌다.
    • 물론 당시 주의 구원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현실은 극도로 암울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선취적 신앙을 가지고 이를 확신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 주의 기사 :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놀라운 일들.
  • ‘전파하나이다’
    • 당시 강력한 대적 앗수르의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 신실한 믿음의 용장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Ⅱ. 그는 하나님 안에 둔 큰 신뢰에 의거하여 그의 능력을 잘 사용해야 할 의무를 그 자신에게 지우고 있다(2절).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정의로 판단하리이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자기에게 관련되어 있는 것을 완성시키시리라는 것, 비록 회중이 매우 느리게 그에게 모이고 그것에 대한 큰 방해가 있을지라도 마침내 뜻을 이루시리라는 것을 당연한 일로 간주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으로써 말씀하신 것을 지혜와 능력으로써, 수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긍휼을 기대하고 있으므로 그는 자기의무를 마음에 둘 것을 약속하고있다.  "내가 재판장일 때, 판단하리라.  정의로 판단하리라.  나를 앞서 간 자들처럼 공의를 무시하거나 악용하여, 선을 행하지도 못하거니와 해를 끼치는 그런 재판장이 되지는 않으리라."

다음을 명심하자.

  1. 명예로운 직책으로 승진된 자들은 그들이 봉사하는 직책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이 부름 받은 일을 부지런히 열심히 행해야 한다.  그는 "내가 정한 기약을 당하면, 내가 안 이를 취하고 위험을 부리며 공적인 업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리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그것을 친히 돌보리라"고 말하고 있다.
  2. 공적인 업무는 매우 성실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판단하는 자들은, 사리(私利)를 생각지 말고, 공의의 원칙대로 정직하게 판단해야 한다.

 📖 75: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 본절 이하 5절까지는 시인이 직접 화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론적 심판 예정 선언과 경고를 소개하는 내용.

‘정한 기약’

  • 심판의 때.
    • 구약에서는 종종 ‘여호와의 날’이란 표현으로 언급됨(욜1:15; 욥1:15).
    • 본시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대적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패퇴하는 그 시점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 이를 ‘정한 기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 시인이 그 구체적인 시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임을 확신하는 표현으로 풀이하는 것이 적합하다.
    • 아울러 본문의 ‘정한 기약'이란 표현은 이러한 심판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에 의해 정하신 것이므로 인간으로서는 변경시킬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 ‘내가’
    → 본문은 심판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강조한다.
  • ‘바르게’ 심판하리니 ⇒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정의’임을 표명한다.
    • ‘정의’ (메솨림) : ‘수평, 공평’의 복수형
    • ‘메와르' 가 이처럼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은 그것이 하나님과 관련된 엄정한 것임을 강조하는 장엄의 복수형이라 할 수 있다.
      • 이를 통해 시인은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치우침도 없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 각인에게 정당한 판결이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한다

Ⅲ. 그는 자기의 통치가 이스라엘에게 공적 축복이 되리라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약속하고 잇다.(3절).

그 나라의 당시 상황은 매우 나빴다.  "땅과 그 모든 거민이 소멸되리라."  이전의 치세(治世)가 매우 타락하였으므로 모든 것이 파멸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패한 풍습이 만연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악하고 불경스러운 것을 법으로 처형하는 일이 결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해 주신 주권 밑에 단결하는 힘이 결여 되었기 때문에 서로 나뉘었다.  그들은 서로가 갈라졌고, 도당과 파벌로 조각이 났다.  그러므로 그들은 멸망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땅의 기둥들은 내가 세웠다."  다윗은 사울의 시대에도, 공공의 안녕을 위해 할 수 잇는 것을 행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정권을 인수하면, 더 많이 행하고, 공중의 파멸을 막을 뿐만 아니라 공중의 힘과 아름다움을 회복하기를 꿈꾸었다.  이제

  1. 파당들의 해악을 보자.  그들은 그 땅과 그곳의 기민 들을 소멸시켰다.
  2. 한 사람이 얼마나 종종 떠받들고 있는가.  다윗이 그 기둥을 부축하지 않았다면 그 건물은 무너졌을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통치권에 적용될 수 있다.  "세상과 그 모든 거민이 죄로 인해 소멸되었다."  사람의 배신이 모든 피조물을 멸망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기둥을 지탱하셨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심으로써 완전한 멸망에서 온 세상을 구원하셨고, 섭리 왕국의 행정권을 인수했다. 즉 그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는" 자이다(히 1:3).

 📖 75: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땅의 기둥을 세웠다’

  • 이 표현은 이 세상이 평평한 원반처럼 생겼으며 허공에서 기둥이 땅을 받치고 있다는 고대 히브리 세계관에서 나온 표현이다. 실제 그렇지 않음에도 본시 저작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이러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굳이 그 생각을 수정하기보다는 그 생각을 수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셨다.
  • 아울러 이는 상정적인 표현으로 인식하여 하나님이 견고한 모든 것의 기초가 되신다는 의미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세웠거니와’

  •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는 인칭 대명사를 거듭 사용하되 여기서는 완전한 형태를 사용하여 땅을 세우고 유지시키는 분이 바로 자신이심을 하나님 당신이 직접 강조하고 계신다.
  •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세상에 대한 절대 주권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부각시키기 위한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모든 죄악된 세력이 사라지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나타낸다.
  • 시인은 하나님에 의해 소멸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수동) 그 일어 설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분사) 가까이 임박하여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한다.
    • 이는 가깝게는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볼 수 있다.
    • 그러나 멀리 보면 이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예언하는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Ⅳ. 그는 그의 통치를 대적하는 자들을, 그의 직무로서 억압하는 그 악과 불경스러움을 보존하려고 분투 노력하면서 그의 즉위에 대항하고 그 경영을 방해하는 자들을 저지하신다(4,5절).

"내가 오만한 자더러 행치 말라 하셨노라."  다윗은 사울 시대에 그들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가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권세를 갖지 않았을 때일지라도 그는 그들을 책망하며, 그들에게 좋은 권고를 할 지혜와 은혜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그 불행한 왕의 호의를 자랑하고 있었을지라도, 그는 그들에게 너무 건방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는, 오히려 그는 이제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마자, 악습과 불경스러움을 치겠다고 선포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 내용을 알아보자.

  1. 천하고 비겁한 죄인들, 자기 자신을 타락시킨 이스라엘의 우매한 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만히 행치 말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과 그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너희가 거슬러 행하는 동안. 실상은 너희의 이성과 이원에도 직접적으로 역행하는 것이니, 그런 일을 행하지 말라."

그리스도, 곧 다윗이 자손은 우리에게 이러한 권고를 하신다.  즉 "오만히 행치 말라" 는 칙령을 발포하신다.  하나님으로 우리의 지혜가 되게 하시는 그는, 우리에게 지혜를 명하면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기를 명하신다.


 📖 75: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시인은 어법적으로 권면의 대상을 강조한다.

  • (반복된 표현을 통한 시적 운율, 문장 순서 배열 상)
  • 즉 이는 오만한 자들까지도 돌이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오만한 자’

  • 자신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리는 행위
  • 피조물인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의 위치에 놓는 것은 교만 그 자체이 며, 이러한 교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도전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죄악보다도 이를 가장 미워하신다.
  • 이 단어는 복수형, 이는 당시 그러한 죄악에 찌든 자들이 상당히 많았음을 암시한다.
  • 본문에서는 ‘정관사’와 함께 사용되어 → 특정 대상으로 ‘스스로를 높이며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훼방하였던 산헤립과 그의 하수인들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이다.

‘오만한 자 - 행악자’, ‘오만을 행치 말라 - 뿔을 들지 말라’

  • 이러한 대구는 하나님께서 오만한 것을 악으로 규정하신다는 사실과 뿔을 드는 것이 오만의 대표적인 행동임을 잘 보여준다.
  • ‘행악자’
    • 원형 ‘라솨으’ : 생각이 사악한 것과 더불어 실제로 악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이는 앞선 본문과 연계되어 오만한 자는 그 사고에 있어서 뿐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죄를 범한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 ‘뿔을 들지 말라’
    • 뿔 = 능력, 힘, 위엄과 영광.
    • 뿔을 들지 말라 =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교만히 행하지 말라.
  •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런 자의 뿔을 베어버리는 반면 의인의 뿔은 높이신다고 경고하고 있다. 본시에 언급된 이러한 표현들은 사람들이 누리는 위엄과 영광은 스스로 높이는 자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스스로 낮추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절대주권을 지니신 하나님의 뜻과 행사에 의헤 결정됨을 잘 보여준다. 

2.교만하고 대담한 죄인들,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악자들에게 그는 말하고 있다.  "뿔을 쳐들지 말라.  너희 권세와 특권을 자랑하지 말라.  너희 위에 있는 통치권에 대한 완고한 불복종과 경멸을 고집하지 말라.  마치 너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너희가 하려는 것을 행할 수 있다는 듯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라.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의 뜻에 결코 굽히려 하지 않는 것은 부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목이 곧은 자들은 그렇게 되어 멸망한다."  "산마다 낮아지리"라는 것은(사 40:4)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그의 명령의 말씀이다. 적 그리스도의 권세가 그 머리와 뿔로 그리스도에게 대적하여 머리와 뿔을 들지 않게 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반드시 산산조각으로 부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만한 목으로 말한 것은 상한 심령으로 다시 취소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한다.  바로는 곧은 목으로 "여호와가 누구이뇨?"하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쓰라린 경험을 통해 알게 하셨다.


 📖 75: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 시인은 이처럼 동일한 의미의 말을 다른 표현으로 4절과 본절에서 반복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시인이 이처럼 교만에 대하여 거듭하여 금지하는 이유는?

  • 그것이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향해 도전장을 내미는 자들은 그야말로 스스로의 패망과 파멸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시편 75:6-10)

이 귀절들 속에서 우리는 그가 이전에 말했던 것을 확증하기 위해 제시한 두 가지 큰 원칙과, 거기에서 이끌어낸 두 가지의 훌륭한 추론을 볼 수 있다.

Ⅰ.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에 관한 두 가지 큰 진리가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 믿음을 결합시켜야 하는데 이 두 가지 진리는 다음의 이유로서 매우 타당하다.


 📖 앞선 2-5절에서 시인은 직접 화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종말론적 심판 을 예정하셨음을 선언하고 경고하고 계시는 내용을 다루었다.

이제 본절 이하 8절에서 시인은 역시 직접 화법을 사용하여 시인 자신의 말로써 하나님께서 인생의 관결에 대한 유일한 주체가 되심과 악인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하실 것임을 밝히고 있다.


1. 왕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그들의 권세를 얻는다.(6, 7절).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다윗은 자기의 승진에 대한 찬미를 드리려 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얻었으므로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윗에 대적하여 뿔을 든 자들은 우매한 자들이었다.  우리는 나라의 일에서 이상한 변혁을 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갑작스럽게 수치를 당하나 어떤 사람은 승진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 날 때면, 우리 주위는 온통 이러한 변화로 가득 찬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그것을 일으키는 장본인을 바라보도록 지시 받고 있으며, 권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그것을 촉진시키는 힘이 나오는가를 배운다.  나라를, 그 통치권을 높이는 일이 어디에서 말미암는가? 그리고 나라에서 권세와 신용의 지위를 높이는 일이 오다 에서 말 미아는? 전지의 것은 백성들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으며, 후자의 것도 왕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모든 마음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승진을 추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올바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듣는다.

(1) 소극적으로, 우리가 권세의 근원을 찾아서는 안 되는 곳은 어디인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사막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한다." 즉, 예루살렘 북방에 있는 사막이나 남방에 있는 그것에서 말미암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승진의 미풍이 그 둘레의 어느 지점에서 불어오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며, 오직 위로부터, 직접 거기에서 오리라고 기대해야 한다.  사람들은 동방의 자손들의 지혜나 재물에 의해, 또는 서쪽에 놓여 있는 이방인들의 섬의 무수한 군대나 남쪽에 놓여 있는 애굽 혹은 아랍의 군대에 의해 높임을 얻을 수 없다.  제 2 원인의 일치된 미소가 제 2 원인 없이 사람을 높이지는 못할 것이다.  박학한 로이드(LIoyd) 주교는 이러한 주석을 달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힘의 원천을 얻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그것이 오는지를 몰랐다.  일반적으로 점성술을 받아들인 동방 민족들은 그것이 그들의 별로부터, 특히 그것이 그들의 신인 해로부터 오는 것으로 믿었다.  아니다, 다윗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동해서나 서에서, 이러한 운성이나 성좌가 떠오르는 곳이나 지는 곳에서, 남에서 또는 해나 어떤 별이 중천에 떠있는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Serm in Lo).  다윗은 북방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권세가 그곳에서 오리라는 추측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북방을 의미하는 그 단어가 은밀한 곳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의 비밀이나 예루살렘 북쪽에 놓여있는 시온의 신탁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승진의 바람만큼 좋은 바람은 없으며, 그 바람을 쥐신 자가 명하시는 것만큼 좋은 바람은 없다.


📖 75: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6-7절)하나님이 인생 판결의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원문을 보면 본절은 강조적 문장이다.

  • 강한 의미를 지닌 부정어 ‘로’가 2회나 사용되어 → 높이는 일이 결코 동이나 서 흑은 남에서 말미암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는 일’이 무엇인가?

  • 여기서 ‘높이는 일' 이란 4,5절을 볼 때는 스스로 높이고 존귀하게 되는 일을 가러키나 7절 이하의 내용을 볼 때는 멸망받는 것과 반대되는 구원받는 일까지 염두에 둔 표현이다.
  • 특히 본절에서는 ‘동, 서, 남’ = 세상 전체를 의미함.
    •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 본문은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지는 곳까지'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존귀나 구원을 가져다 즐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 ‘남’: 때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 여기서 ‘미드빠르'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서조차 높이는 일의 근원은 찾아볼 수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 ‘북쪽’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
    • 본시가 기록된 정황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복쪽에 위치한 앗수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보편적 견해이다. 즉 앗수르는 당대 세계 최고로 부강한 나라이지만 이는 마치 존재하지도 않으며 언급할 가치조차 없옴을 나타내기 위하여 '복'이 란 표현을 생략하였다고 보는 것이

(2) 적극적으로, 하나님은 재판장, 다스리는 자 또는 심판자이시다.

여러 무리들이 상을 타려고 다툴 때, 그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가 합당하게 여기시는 대로,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신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절대적으로 행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의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무한히 지혜롭고 거룩하고 선하신 그가 자기가 원하는 자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낮추기도 하고 높일 수도 있는 독단적이고 전제적인 권세를 갖고 계시다는 것은 해롭거나 위험스럽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왕들이 즉위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하나님께 대해 책임을 지고서 그를 위해 통치해야 하는 좋은 이유이다.


📖 75: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앞선 6절에서는 부정문을 사용하여 높이는 일이 세상으로 말미암음이 아님을 밝힌 시인이 본절에서는 긍정문을 사용하여 바로 하나님이 낮추시고 높이시는 그 주체가 되심을 밝힌다. 본문에서는 행동의 주체가 상당히 강조되고 있다.

이는 원문으로 볼 때 본절 서두에 나오는 세 단어가 주체를 부각시키는 단어라는 데서 잘 드러난다.

  1. ‘오직’
  2. ‘엘로힘’ 하나님께서 ‘재판장’ 되신다
    • 하나님은 절대적 심판을 단행하시는 분이시다.
  3. ‘낮추시고 높이시느니라’
    • 이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며 하나님의 판단에 복종해야 할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순종해야만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신 13:4; 약4:10). 

2. 모든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각자의 운명을 받는다(8절).

"여호와의 잔에 손이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성분이(그가 합당하게 생각하는 대로) 섞인 섭리의 잔, 고통의 잔을 사람의 자손들의 손에 놓으신다.  그리스도 고난은 잔이라 불리우고 있다.  (마 20:22; 요 18:11).  죄인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도 "여호와의 오른 손의 잔"이다(합 2:16).

"술거품이 일어난다는"말은 하나님의 진노를 시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죄인들에게 임한 심판 속에 부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환난과 비참함 속에 있는 번 민과 고뇌이다.  그것은 불처럼 붉고, 피처럼 붉다.  왜냐하면, 그 진노는 타며,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하다."  그 목적에 응답할 수 있도록, 지혜 가운데 마련되었다.  고통의 잔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손에 놓여질 때, 그 속에는 긍휼과 은혜가 섞여 있으며, 그것이 악인의 손에 놓여질 때에는 저주가 섞인다.  즉 그것은 담즙이 섞여있는 술이다.  이 대접들은

(1) 모든 사람 위에 부어진다(계 15:7; 16:1  참조.  여기에서 우리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땅에 쏟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 진노의 방울이 우연히 선한 사람들 위에 떨어질 수 도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널리 퍼질 때, 그들도 그 공통적 재앙을 함께 겪는다.

(2) 그러나 그 잔의 찌끼는 악인들을 위해 간직된다.  재앙 자체는 그 진노와 저주가 담겨있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맨 윗 부분에는 혼합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침전물은 순진한 진노이며, 죄인들의 몫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지금의 양심의 공포 속에서 그리고 후에는 지옥의 형벌 속에서 그 잔의 찌끼를 마신다.  그들은 한 방울의 진노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기울여 마실 것이다."  왜냐하면 저주가 "물처럼 그들의 배에," "그리고 기름처럼 그들의 뼈에 들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진노의 잔은 그들에게 떨림 의잔, 곧 영원한 떨림의 잔이 될 것이다(계 14:10).  악인의 잔은 그가 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동안에도, 속에 썩은 것이 가득하며 그 밑바닥은 가장 쓰다.  악인의 심판의 날까지 남겨 두어진다.


📖 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 본절에서 시인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잔과 술의 비유를 사용하여 악언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응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먼저 시인은 순수한 영으로서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처럼 손에 잔을 들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그 진노의 잔을 기울여 심판을 행할 준비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로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보여준다.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 ‘일어나다’ : ‘끓어오르다’, ‘발효하다’ ‘숙성하다’
    • 본문은 마치 술이 오랜 기간을 거쳐 발효되듯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진노를 참아오셨지만 이제는 그 인내가 극에 달해 곧 넘칠 정도임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는 곧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 ‘섞은 것이 가득하다'란 말은
    • 술을 독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첨가제나 향료를 섞은 것을 의미한다.
    ⇒ 하지만 여기서는 술이 독하게 되었듯이 하나님의 진노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내준다.
  • 이는 독한 술로 인해 사람이 판단이 혼미해지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듯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잔을 마시는 사람들마다 방향 감각을 잃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처럼 비참한 처지에 빠져 핍절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 이 일이 신속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 지체치 않고 심판의 잔을 쏟아 부으신다는 것이다. 이틀 통해 시인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긴박하게 내려절 것인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 악인들이 그 앙금까지 짜내서 마실 것이라는 묘사
    :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조금의 감함도 없이 마지막 하나까지 받게 될 것이란 의미를 전달한다.
  • 이는 악인들이 하나님에 의해 철저한 심판을 받게 됨으로 인해 반드시 멸망에 이르고 말 것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Ⅱ. 여기에 이러한 큰 진리들 속에서 이끌어낸 두 가지의 좋은 실질적인 추론이 있다.  그것들은 그가 이 시편을 시작할 때 언급한 것과 꼭같은 의무에 관한 취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1.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승진시키신 그 권능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 돌릴 것이다.  "나는 주의 기사를(1절) 선포하리로다."

그는 긍휼이 선명하게 느껴졌던 처음에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신 것에 대해 찬양할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 높이 들리 우심은 성도들의 영원한 찬양이 주제가 될 것이다.  다윗은 그것이 하나님의 종, 야곱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으므로 자기를 왕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기의 하나님으로써 뿐만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이다.

2. 그는 그의 손에 맡겨진 권세를 그 위대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10절, 그리고 앞의 2, 4절).

높은 권세를 지닌 자들의 의무를 따라

(1) 그는 행악자들을 두렵게 하고, 그들의 교만을 낮추고, 그들의 힘을 꺽기로 결심하고 있다.  "비록 악인의 머리를 모두 베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그 불쌍한 이웃을 찌른 그 뿔을 다 베리로다.  나는 그들이 죄악을 행하지 못하게 만들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 땅을 헤친 열 국의 뿔을 떨어뜨릴" 목수들을 세울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슥 1:18-21).

(2) 그는 선행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칭찬해 줄 것을 결심하고 있다.  "나는 의인의 뿔을 높이 들리라."  의인들은 권세의 자리로 발탁될 것이다.  그리고 선하며, 선을 행할 마음을 지닌 자들은 선을 행할 능력과 기회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결심과 일치하고 있다(101:3 이하).  여기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 입기운으로 악인을 죽이실 것이나, "의인의 뿔은 영화로이 드실" 것이다(112:9).


📖 75: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원문에 입각하여 본절 전체를 다시 번역하면

  • ‘그리고 나는 영원히 선포할 것이다.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 상반절과 하반절은 그 강조하는 바가 각각 다르다.

상반절: 그리고 나는 영원히 선포할 것이다

  • 선포의 주체 : 시인 자신의 강한 의지와 결단이 변치 않을 것임을 강조.

하반절: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 찬양의 대상이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속에서 그들의 현존재가 규정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언급할 때 종종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그들의 조상을 거론하며 하나님을 호명한다.
  • 여기서 ‘야곱'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 본문에 언급된 야곱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좌계 조상으로서 그가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인생이 험악한 세월의 연속이었다(창 47: 9).
    • 그러나 그처럼 험난한 인생 가운데서도 그는 약속을 받은 자, 믿음의 조상으로 든든히 세워질 수 있었다. — 이는 그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를 돌보시며 인도하신 하나님 때문이었다.
  • 실로 하나님께서는 그와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고 그를 아브라함, 이삭을 잇는 믿음의 조상, 선민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해 보호와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다.
  • 시인은 이를 상기하였고 과거 연약한 가운데 있었던 야곱을 돌보신 것처럼 현재 외적의 침입으로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보호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 칭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자신의 간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였기에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할 것임을 노래하는 것이다.

📖 75: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 상반절에서 : 본시 전반에 걸쳐 강조한 바 있는 악인의 운명을 앞선 4절에서 사용한 바 있는 뿔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 하반절에서는 : 동일하게 뿔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이와 반대되는 의인의 종국적 운명을 밝힌다.
  • → 즉 본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인의 권세는 무너뜨리고 의인의 권세는 높이시는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선포하는 것이다.

‘악인(라솨으)’ ‘의인(찻디크’)

  • 도덕적인 선악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불경건과 경건, 거짓과 진실이라는 기준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즉 시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준에 따라 인간의 선악을 판단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 원문으로 볼 때,
    • 악인 = 복수형, 의인 = 단수형.
      → 이것은 이 세상에 의인은 적은 반면 악인은 범람한다는 시인의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악인은 :
    •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산헤립과 그를 동조하는 무리들을,
    • 더 넓게 보자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의 힘과 권력으로 영광을 삼는 오만한 무리들을 가리킨다.
  • 의인은
    •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
    • 더 넓게 보자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아가는 겸손한 자들 곧 성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결론

 📖이상에서 살피본 본시는 대적의 공격으로 나라가 전란의 위기에 핍싸였을 때 쓰여진 시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시는 위험에 대한 탄식보다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내다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일관된 찬양시이다. 즉 시인은 일촉죽발의 위기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절대 주권과 공의로우심, 그리고 결국에는 심판받게 될 악인의 종말을 확신하면서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이다.

특히 시인은 수미쌍관법, 뿔과 잔 등의 상징적 표현, 반복법과 교차 대구법 등 각종 문예 장치를 사용하여

  • 악을 심판하시고 의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며,
  • 악인을 향한 경고와 의인을 향한 격려를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는 사단이 왕 노릇하는 현실 가운데서 비록 험난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의를 지키는 성도들에게 위축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같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소중한 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