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2일 목요일 묵상구절 시편 81편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Jeehyun 2024. 5. 3. 00:09

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9, 시편 45, 아가서 7, 히브리서 7

묵상구절

81:1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81:2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81:3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

81:4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81:5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81:6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81: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81: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81: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81: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81:12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81:13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81:14 그리하면 내가 속히 그들의 원수를 누르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대적들을 치리니

81:15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는 그에게 복종하는 체할지라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되리라

81:16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언약 율법에 따른 하나님 찬양 촉구 및 하나님의 청종 요구의 말씀 대언 -

(저자: 아삽. 분류: 감사 예배시)

서론

💡본시는 다윗 시대의 3대 악사 중의 하나였던 아삽의 시.

분류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에 낭송되었던 감사 예배시.

그러나 본시는 비록 시편 분류상으로는 감사 예배시로 분류되고는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촉구와 더불어 과거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기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는 지혜시적 성격이 매우 강한 시라고 하겠습니다.

낭송배경

이러한 본시가 이스라엘의 절기 가운데 어느 절기에 낭송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시의 표제에 나오는 ‘깃딧’이라는 말은 ‘술틀을 밟을 때 부르는 기쁨의 곡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 그러한 이유로 많은 학자들어 본시가 장막절에 낭송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5-10절의 내용어 출애굽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시가 유월절에 낭송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본시는 그 내용 면에서 확연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 1~5a절

출애굽 사건으로 수립된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

후반부 5b~16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형식으로 하나님의 율례를 거스른 과거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청종의 결단을 요구하고 측복을 약속하는 내용.

여기서 특별히 후반부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가 화와 복의 기준이 된다는 신명기적 사상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강조한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찬송으로의 초대(시편 81:1-7)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날," 곧 "여호와의 절기"에 함께 모였을 때,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잠자거나 게으름 피우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거기에는 날마다 해야 하는 의무, 즉 그날에 해야 하는 그 날의 일이 있는 것이다.

Ⅰ. 하나님 예배자들은 그들의 일을 행하도록 요구되고 있으며, 이 시편을 노래함으로써 그들 자신과 서로를 분발시켜 영광돌리는 일을 행해야 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1-3절).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적 집회에서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과업으로서 명심해야 한다.

1. 이것을 행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능력"으로서 그리고"야곱의 하나님"으로서 주목해야 한다(1절).

그는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능력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강력하게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그들을 건지실 것을, 그들의 싸움을 싸우시고 그들로 하여금 용감하고 성공적으로 행하도록 만드신 것을 그들과 언약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각 이스라엘 사람의 능력이시다.  그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봉사와 고난의 갈등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능력이신 그에게, 우리는 기도해야하며 찬미를 돌려야 한다.  즉 야곱의 씨름하는 후손들의 하나님으로서 찬송해야 한다.


 💡 81:1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

  • ‘능력되신’ :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권능이나 능력을 말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능력의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우시고 계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70인역은 직접적으로 묘사하여 ‘우리의 도움이 되신’으로 번역.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호칭은 본 단락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출애굽 사건과 관련해 이스라엘 백성의 구속을 상기시키는 표현.
  • 즉 이는 노예 생활을 하던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내신 구원자 하나님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애굽으로부터 구출된 백성은 엄밀히 말하면 모두 ‘야곱의 혈속' 이기 때문이다(출1:5).
  • 시인은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있는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도우시는 분이란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본절에서 이와 같은 호칭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기쁘게 노래하며 …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 ‘기쁘게 노래하며’ : 큰 소리를 질러 열정적으로 노래한다
  •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 놀라거나 기뻐서 ‘소리치다’, ‘즐거운 소리를 내다' 등의 의미틀 지닌 단어로 주로 절기나 제사, 종교적 행사가 있을 때 외치는 기쁨의 탄성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
  • 굳이 구별된다기보다는 열과 성을 다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강조를 위한 반복된 명령.
  • 즉 본문에서 시인은 절기를 맞이하여 그 절기에 내포된 하나님의 은총을 기리며 기쁨의 탄성을 지를 것을 촉구하기 위하여 반복법을 사용한 것이다.

2. 우리는 그와 더불어 거룩한 영적 교제를 가져야 한다.

기쁨과 환희를 나타내는 온갖 표현을 동원하여 이것을 행해야 한다.  당시는 악기로써, "소고와 수금과 비파"로써 행해져야 했다.  그리고 "나팔"이 울려 퍼짐으로서, 어떤 사람들은 더욱 더 크게 울려 퍼지던 시내 산에서의 나팔소리를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시편을 노래함으로서, "크게" 노래하고 "즐거이 소리"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  수금의 즐거운 소리와 나팔의 두려운 소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유쾌함과 거룩한 기쁨으로써, 경외감과 거룩한 두려움으로써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크게 노래하고 소리를 발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으며, 그에게 은혜를 입고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진실로 선한 뜻을 가지고 그를 찬송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 수효가 많을수록 더욱 천국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 81:2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 ‘시’ : 하반절에 나오는 여러 악기들과 대비되는 것으로 사람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의미.
  • ‘읊으며’ : 소리를 높여 노래하는 것.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 매우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영적 교제의 감격과 기쁨의 감사를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3. 이것은 정해진 때에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시간은 어느 때고 잘못됨이 없다.("하루에 일곱 번식 내가 주를 찬송하리이다." 아니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그는 항상 준비하고 계시다).  우리가 서로 만나 하나님을 함께 찬미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신성한 절기는 찬미의 날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그것을 즐기는 그때가 그를 찬송하기에 합당할 때이다.


 💡 81:3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

공식적 찬양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시기.

  • 그 시기란 바로 월삭과 월망과 그들의 절일이다.

초하루(월삭): ‘새 것의 때’

  •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 달의 첫번째 날은 지난 달에 지은 죄를 사함 받은 후(느10:33) 새로운 달을 맞아 하나님께 희생과 봉사를 다짐하는(삼상 20:5)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날이다. 따라서 이 날에는 특벌한 희생 제사가 드려졌고(민 28:11-14) 나괄을 불며(민 10:10) 일상의 일을 쉬었다(암 8:5). 특히 유대 민간력으로는 1월이며 종교력으로는 7월인 월삭은 신년절로 지켜지는 엄숙한 날로서 특벌한 의식어 행헤졌다(레 23:24-25).
  • 이런 점에서 본문의 월삭을 이 날을 한정해서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 일반적언 월삭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듯 하다.

‘보름’: ‘꽉 찬 때에’

  • 여기서 ‘케쎄'는 달이 꽉 찬 날 곧 태음력을 사용하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매달 15일을 가러키는 말로서 어 때에도 제사가 드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 특별히 종교력 7월 15일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광야의 고초와 유랑의 장막 생활을 기념하는 초막절이 시작되는 날로서 중요하게 여겨겼다. 그래서 본문의 월망을 이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 이 역시 일반적인 의미의 월망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우리의 명절에’

  •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지키는 3대 절기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중 한 절기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임.
  • 본 시의 5,7,10절을 통해 이 절일은 유월절 아니면 초막절이라고 추정하는데 분명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 다만 본시는 이 두 절기 중 어느 때에 하난미을 찬양하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작시된 것임은 틀림 없다. 

Ⅱ. 그들은 여기에서 그 일에 대한 지시를 받고 있다.

1.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를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바로 그의 제도를 지키는 것이 것이다.  모든 종교적인 예배에서 우리는 그의 명령을 주목해야 한다(4절).

"이는 이스라엘의" 즉 이스라엘 중에서 신앙의 면목을 지키기 위한, "율례요," 그것은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서, 모든 야곱의 자손이 지켜야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은 훌륭하고 좋은 일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우리가 이것을 무시한다면 우리에게 위태하다.  그리고 모든 신앙의 행사에서, 우리의 명령과 규율로써 그의 법령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행한다.  따라서 나는 주께서 나를 용납하시기를 희망"한다.  이때에 비로소 이것이 믿음 안에서 행해진다.


 💡 81:4 이는 이스라엘의 율례요 야곱의 하나님의 규례로다

특별한 절기에 모여 찬양해야 하는 이유’

여기서도 시인은 1절에 이어 ‘하나님' 앞에 ‘야곱의'란 표현을 덧붙여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이 본시에서 하나님을 거듭 ‘야곱의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만유의 하나님이시지만 특별히 택한 백성,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이란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부분에 굳이 ‘야곱' 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 과거 선민의 조상이었던 야곱이나 이삭, 아브라함 등 조상 적부터 구체화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적 관계를 보다 강조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2.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작용들을 회상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일이 바로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엄숙한 의식은 "증거로서 세워진"것이다.  즉 사실을 입증해 주는 영구적인 전통의 증거였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주는 증거로서,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 열조를 위해 행하신 것을 알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이 그것을 모르고 잊어버리면 그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도록 위한 것이었다.

 

(1) 시편 기자는 백성의 이름으로, 그 자신에게 이스라엘의 편이 되시어 행하신 하나님의 전반적인 일을 상기시키고 있는데, 그 일은 이것과 다른 의식들에 의해 기념되었다(5절).

하나님께서 애굽 땅을 치시고 그것을 황폐케 하여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가게 하도록 촉구하신 그 때에, 그는 그것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특히 여기에서"절기"라는 말로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3절) 유월절로서 영원히 하나의 율례로 지키게 하기 위해 "여호와의 절기"를 명하셨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장자를 죽이기 위해 애굽 땅을 두루 돌아다니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넘어가신 바로 그 때에 정해졌다(출 12:23, 24).  그것에 의해 그 기이한 일은 영구한 기념으로 남겨져 모든 세대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냉혹하심을 볼 수 있게 했다.  시편 기자는 그의 백성을 위해 말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그 괴로운 환경을 주목하고있다.  그들은 그 낯선 땅에서 나그네들이었다.  애굽 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은 말이 안 통했다.  왜냐하면 요셉은 통역자로서 그의 형제들에게 말해 주었고(창 42:23), 애굽 사람들은 야곱의 집에 대해 "방언이 다른 민족"이라고 부르고 있기(114:1) 때문이다.  구원 받은 것을 더 은혜롭게, 더 영광스럽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원되기 전에 처해 있던 그 고통의 요인들이 더 비통스럽게 나타나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좋다.


 💡 81:5 하나님이 애굽 땅을 치러 나아가시던 때에 요셉의 족속 중에 이를 증거로 세우셨도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 본문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던 때에 각 절기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규례를 제정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요셉의 족속’

  • 본문에는 ‘요셉의 족속'이란 표현이 나온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요셉 족속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요셉의 후손으로 구성된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맥으로 볼 때 이는 이스라엘 전체 지파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요셉 족속으로 호칭하는 이유
    1. 요셉이 이스라엘을 존속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창49:26; 출 1:8) 뿐 아니라 야곱의 혈통적 장자 르우벤을 대신하여 장손의 명분을 얻어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요셉이 받았던 축복을 상기시킴으로써 요셉의 족속으로 호칭되는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측복된 백성임을 암시하기 위한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거기서 내가 알지 못하던 말씀을 들었나니

  • 시인은 ‘거기서' 즉 에굽에서 영적인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가 출애굽시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이스라엘 백성과 지금의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그들이 건지움을 받은 몇 가지 세목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인칭을 바꾸고 있다(6절).  하나님은, 내가 어깨에서 짐을 벗기었도다"하는 말씀을 그를 통해 하시고 있다.  그로 하여금 이 절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하게 하자.


💡 81:6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 본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1인칭 화법을 사용하여 화자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특별히 본절 이하 12절까지는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지적하고 있다.
    → 1인칭 화법으로 진행되는 본단락의 특징은 특별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친밀함에 대한 강조에 있다.
  •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너'라고 지칭할 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분임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향하여 순종을 촉구하고 이에 따른 축복을 약속하신 것은
    —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잘 보여준다.

[1]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그들을 막 쓰러지게 하던 그 압제의 짐을 치워 주셨고, "그 손에서 광주리," 곧 그들이 진흙과 벽돌을 나르던 큰 바구니나 그릇을"제거 하셨다."  노예에서 구출되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긍휼이며, 영원히 기념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었다.

[2] 하나님은 홍해에서 그들을 건지셨다.  그때 그는 실제적인 응답으로  "뇌성의 은밀한 곳에서" 대답하였다.  즉 불기둥에서 대답하셨다(출 14:24, 25).  그것을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시내산은 은밀한 곳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보는 자는 죽음을 당했고(출 19:21), 그 당시 하나님은 뇌성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시내산의 두려움마저도 이스라엘에게는 은총이 되었다(신 4:33).

[3]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의 처사를 참으셨다.  "내가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너는 거기에서 네 격분을 보였으며, 너는 그때 믿음이 없는 불만투성이의 백성이었지만, 나는 계속 네게 은총을 베풀었다."  "셀라-이것을 주목하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람의 악함을 비교해 보라.  그것들은 서로를 돋보이게 할 것이다.  이제 그들이 그들의 절기에 애굽에서 구속된 것을 이처럼 돋보이게 할 것이다.  이제 그들이 그들의 절기에 애굽에서 구속된 것을 이처럼 상기해야 했다면, 우리는 기독교 안식일에, 애굽 사람의 속박보다 더 나쁜 상태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더 영광스러운 구속을 상기해야 하겠다.  또 우리의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여러 가지 은혜로운 응답을 또한 상기해야 한다.


 💡 81: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 6절에 어어 본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과거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구원들을 상기시키신다.
  • 특히 본문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기억들도 상기시키는데, 이는 곧 여전히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패역했던 그들의 모습을 걸정적으로 증거하는 므러바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주는 권고(시편 81:8-16)

하나님은 여기에서 시편 기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세상의 끝을 맞이할 우리에게 그것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며 세상의 끝을 맞이할 우리에게 그것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Ⅰ. 그는 그가 이제 말씀하시려는 것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들어 주도록 요구하고 있다(8절).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 백성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누가 내 말을 듣겠는가? 내가 너희 말을 듣고 네게 대답했었다.  그런데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겠는가? 가장 엄숙하게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없이 가장 확실하게 말하는 것을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로 하여금 듣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 더 합당하게, 또는 더 당연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만일"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만일 네가 내 말을 듣는다면(한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음) 그것이 네게 유익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네 목은 쇠 힘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 81: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당신께서 중거하시는 바를 들으라고 강력히 촉구하신다. 이러한 본문은 원문으로 볼 때 하나님의 열정이 보다 잘 드러나고 있다.
  • 사실 논리적 순서를 보면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가 던저 나오고 ‘들으라'란 말이 뒤에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들으라' 란 명령형 동사가 먼저 나오는 것은 — 어떤 경우에도 지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바람과 그러면 그들에게 유익하였을 것이란 사실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 속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새겨듣지 않았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고 더 나아가 원하지도 않았음이 밝혀진다(11 절).
  •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에 대해 가지는 아쉬움과 더불어 미래에는 그들이 듣기를 원하신다는 바람이 함축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하나님이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이 새겨 듣기를 원했던 말씀은 어어 나오는 9절과 10절에서 언급되고 있다. 

Ⅱ. 그는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구속자로서, 그에 대한 그들의 채무 관계를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10절).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로다." 이것은 십계명의 서문이며, 그것을 지켜야 하는 강력한 이유로서 제시된 것이다.  우리가 거기에 불복종한다면, 우리는 그 모든 약정을 끊어버리는 것이 된다.


💡 81: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을 에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5-7절)은 당신의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는데(8-9절), 바로 그들이 이 율법에 순종하며 그들의 입을 넓게 열면 하나님께서 그 입을 좋은 것으로 채우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입을 넓게 열라'는 권면은

  • 하나님께서 구원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간구하라는 의미.
  • 이러한 일을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당신에게 간구하는 자의 필요를 풍족하게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Ⅲ. 그는 여호와이시며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그들이게 준 계율과 약속에 대한 것을 그들에게 발췌해 주고 있다.

1. 대 계명은 그들이 그 앞에서 다른 신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9절).

"너희 중에 다른 신은 이방신이라 일컬어 마땅했다. 왜냐하면 참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신 백성이 다른 신을 갈망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질투하신다. 그는 그의 영광이 다른 자에게 주어지지는 것을 용납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일에 있어서 그들은 신중해야 했다(출 23:13).


💡여기서 하나님은 이방신을 ‘다른' 신 곧 ‘낯설고 생소한' 신으로 묘사하고 었다.

  • 즉 그 신들은 지금까지 서술한 바 이스라엘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고 고난 중에 건지며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이스라엘의 고통의 현장과 역사 가운데 함께해 오신, 이스라엘에게 있어 너무도 친숙하고 익숙한 하나님이 아니라 낯선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출애굽 당시 주셨던 많은 말씀들 중에 특별히 이 말씀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 곧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구원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겼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진술들이 이스라엘의 특별한 절기에 낭송되어졌다는 것은

  • 곧 역사를 통해 뒤돌아볼 때 ‘다른 신’을 섬겼던 자신들의 허물을 인정하는 겸손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aside>

2.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에 충만한 하나님으로서 그들이 요청할 데마다 그들에게 가까이 하시리라는 것이었다(신 4:7).

즉 그들이 그를 자기들의 유력한 보호자이며 지배자로서 신봉한다면, 그들은 그가 그들의 후한 은인이심을 늘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새끼 까마귀가 입을 열고 지저귈 때, 이미 까마귀가 그 속에 먹이를 넣는 것처럼, 내가 채우리라."

여기에서 다음을 주시하라.

(1)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기대를 가지며, 그를 향한 우리의 소망을 넓히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물에게서 극히 조금밖에는 구할 수 없으며, 창조주에게서는 매우 많은 것을 구할 수 없으며, 창조주에게서는 매우 많은 것을 구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궁핍함을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가 우리의 성품되시는 그의 안에서 궁핍함을 당하겠는가?

(2)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내가 좋은 것으로 네 입에 채우리라"(103:5). "하나님 안에서 우리 곳간에 채울 것"(잠 8:21),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실 것"(렘 31:25), 우리의 모든 부족함을 채우시며 우리의 모든 소망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완전히 행복하게 만드실 만한 것이 "충분히" 있다.

육적인 즐거움은 지나치게 먹되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사 55:2).  거룩한 즐거움은 만족을 얻되 폭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그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만일 그가 그들의 열조에게 행하셨던 것과 같이 따르기만 한다면, 그들에게 아무리 휼륭한 것을,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지나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이것 저것을 더 주시려 했다"(삼하 12:8),

Ⅳ. 그는 그들에게 법을 준 자로서의 권위에서 나온 지고한 경멸감을 품고, 그리고 그들의 은인으로서 은혜와 은총을 품고 그들을 책망하시고 있다.(11절).

그는 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행하셨으며 더 많은 것을 행하시기로 계획했으나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내 백성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모든 말에 귀를 막았도다."


💡81:11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다음 두가지 일을 원망하시고 있다.

1. 그의 명령에 대한 그들의 불복종.

그들은 다른 백성과는 달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말에 복종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음성의 지배를 싫어했다.  율법의 뜻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2.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싫어했다.

"저희가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저희가 내 말에 순종하지 아니 하였도다"(갈대아판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하나님은 기꺼이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시고자 했지만 그들은 그에게 그의 백성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조건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들을 모으려 하나 그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치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원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당당히 초대받았다.  그들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전히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백성이라 부르시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에 의해 인도되었고 수천 개의 끈에 의해 그에게 묶여져 그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복종하지 않았다. "내 친구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은 나를 무시했고, 나를 원치 아니 하였도다."  악한 세상의 모든 악은 악한 뜻의 고집스러움에 기인하고 있다.  백성들이 신앙적이 아닌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던' 것으로 평가하신다.

‘원치’

  • 이에 해당하는 ‘아바'는 ‘원하다’ 라는 뜻 외에 ‘동의하다 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고 의지적으로 그 뜻에 부합되게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바라신 것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말씀에 대한 그와 같은 적극적인 동의를 원하셨으나 그들은 그와 같은 동의를 하지 않았다.
  •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래 줄곧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만을 거듭했을 뿐이었다. 

Ⅴ. 그는 그가 그들에게 임하게 한 그 영적인 심판으로 그 자신을 의롭게 하시고 있다(12절).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 두었도다."

이것은 이웃 민족들보다 그들에게 더 위험한 대적이었고 더 해로운 압제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그의 영을 거두셨고 제지하는 은혜의 굴레를 제하셨으며,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버려 두셨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마음대로 하려 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했다.  "에브라임이 우상에게 연합하였으니, 내버려 두라." 그러한 자들을 그들이 빠져 있는 마음의 정욕 속에 버려두시고, 그들로 그 정욕에 의해 지배되게 놔 두시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의로운 일이었다.  왜 그의 영이 항상 싸워야하겠는가? 그의 은혜는 그의 것이며, 그는 어떤 사람에게도 빚을 짓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당한 자에게는 결코 자기의 은혜를 주지 않듯이, 또한 먼저 은혜를 잃어버린 자들에게서가 아니고는 아무에게 그 은혜를 빼앗지 않으셨다.  "저희가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버려 두었도다.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마음대로 가도록 버려두라.  그리고 그 다음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아.  "저희로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저희 마음의 길로, 저희 눈에 보이는 대로, 저희가 섬기고 이야기하는 대로, 행케 하였도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악한 것을 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죄의 저작자는 아니었다.  그는 그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대로, 그들 머리의 계획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들이 잘못 행했다면, 그 책임은 마음에게, 그리고 그죄는 그들의 머리 위에 돌아가야 했다.

Ⅵ. 하나님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 올바로 행하기를 발하는 선한 뜻을 입증하셨다.

그는 그들의 형편이 얼마나 딱하며, 그들의 열망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아시고, 그들을 그들의 탐심에서 건지셨다.  그것은 사탄에게 빠지는 것보다 더 나쁘다.  사탄에게 주는 것은 개심하고(딤전 1:20) 구원받게(고전 5:5)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정욕에 버려지는 것은 유죄로 낙인 찍히게 된다.  그러나 자기들의 정욕에 버려지는 것은 유죄로 낙인 찍히게 된다.  "부정한 자는 그대로 더럽게 버려 두라."  이것은 사람을 얼마나 끔찍한 낭떠러지로 목아 갈 것인가!  이제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매우 불쌍히 여기시고 있다.  그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파멸 속에 버려두신 것은 마지 못해 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호 11:8, 9)  따라서,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기를 원하노라"(사 48:19  참조).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의 완악함에 대해, "너도 알았다면"하고 한탄하셨다(눅 19:42).  이 표현들은 매우 감동적인 것으로서(13-16절),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않으며, 모두가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그는 죄인이나 죄를 지은 민족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을 보여 주려 하고 있다.  또한 죄인들은 그들 자신에게 적이 되고 있으며, 그들이 이처럼 쉽게 행복하게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분한 일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려 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을 주시하자.

1.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저장해 두셨고, 그들이 복종할 때면, 그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신 그 큰 긍휼을 보자.

(1) 그는 그들에게 원수들을 승리하게 해 주시려 했고, 그들의 패망을 곧 중단하려 하셨다.

그들은 남아 있는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을 괴롭게 침략하는 이웃들을 쳐서 그들의 딸을 지키게 할뿐 아니라, 그들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14절).  "내가 저희 원수를 제어하리라."  우리 원수를 제어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  또한 그는 그들로 하여금 지루한 전쟁에 대한 대가와 피곤함을 치르게 하러 하지 않았다.  그는 속히 그렇게 행하시려 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손을 돌려 저희 대적을 치시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그 대적들도 그들과 싸울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은 얼마나 쉽게 그것을 행하셨을 것인가를 시사하고 있다.  그가 손을 돌림으로써, 아니,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다"(사 11:4).  만일 그가 손을 돌리기만 한다면,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할 것이다"(15절).  그리고 그들이 그를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지라도, 두려워하게 될 것이며, 그가 그들에게 너무 엄하시다는 것과 그와 겨루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킨자들을 굴복시킴으로써-비록 그것이 강요되고 가장된 굴복에 불과할지라도-영화롭게 되시며, 그의 이스라엘도 그렇게 된다.

(2) 그는 그들의 번영을 견고케 하고, 영구하게 하시려 했다.

그것을 확고히 하고 영속적인 토대 위에 세우시려 했다.  그들을 치려는 그 원수들의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이게 주신 그 좋은 땅에 대한 소유권을 결코 침해받지 않았을 것이다.  더우기 그곳에서 축출당하고 소유권을 박탈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3) 그는 그들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풍성케 주시려 했다.(16절).

"그가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즉 가장 훌륭한 알과 종자로 그것을 다량으로 수출했었다(겔 27:17).  그는 그들에게 가장 훌륭한 종류의 밀을 공급해 주시려 했을 뿐만 아니라,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그들을 배불리려" 했다.  불모지가 한 군데도 없었던 그 비옥한 토양에서 나와는 귀한 소산물 이외에도, 그들의 반석의 틈은 꿀벌통의 역할을 했고, 그 속에서 그들은 꿀을 풍족히 구할 수 있었다(신 32:13, 14).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사에 편하고 행복하게 해 주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 ‘밀의 아름다운 것', ‘반석에서 나오는 꿀'은

  •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께 순중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하나님께서 이 모든 긍휼의 조건으로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의무.

그는 스승에 대한 제자로서, 그들이 "그를 청종하는" 것, 주인에 대한 종으로서 그의 지시를 받는 것, 그의 명령을 받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올바르고 즐거운 여호와의 도를 따라 "행하여야"  했다. 그들은 그의 제도를 준수해야 했고, 그의 섭리의 통고에 따라야 했다.  여기에는 불합리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3. 그 긍휼을 빼앗은 이유가 = 그들이 의무를 무시한데에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만일 그들이 "나를 청종"했더라면, "내가 속히 저희 원수를 제어했으리라."  민족의 죄나 민족의 불복종은 민족의 구원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크고도 유일한 원인이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바로 잡으려 할 때에,"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바로 잡으려 할 때에,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바로 잡으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악이 드러났도다."  그리하여 치료하려던 것이 중단되고 말았다.(호 7:1).  우리는 이렇게 말하기 쉽다. "만일 그러한 방법이 취해졌다면, 그러한 도구가 사용되었다면.  우리는 곧 우리의 원수를 제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청종하고 우리 의무를 지켰다면, 그 일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우리의 고통이 오래 지속되게 하고 구원을 늦게 하는 것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우리의 고통이 오래 지속되게 하고 구원을 늦게 하는 것은 바로 죄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원망하시면서, 사정이 달리 되었기를 원하시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로 은총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그에 대한 의무를 행하도록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는 우리가 그에게 봉사하는 것을 기뻐하시는데, 그것은 그가 그일로 인해 더 유익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더 유익해지기 때문이다.


결론

 💡이상으로 살펴본 본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흥겨운 절기에 낭송하던 전형적인 감사 예배시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절기 제의에 참석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역사적 사건인 출애굽 역사를 에로 돌어 그들이 희개해야 할 바 불순종의 기억둘을 떠을리도록 유도하고 있다(6-12절).

뿐만 아니라 8절의 ‘내 백성이여 들으라' (신 4:1; 5:1; 6:4; 9:1; 20:3), 8절의 ‘내가 네게 증거하리니'(신 31:19,26,28), 9절의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라'(신 32:12.16), 10절의 ‘나는•••여호와 네 하나님이니'(신 5;6) 등의 표현은 신명기 율법에 나오는 잘 알려진 문구둘이다.

즉 시인은 본시에서 어떤 참신한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알고 었던 사건들과 하나님의 말씀들을 들어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에게 순종하라는 평범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교훈일수록 지키기 어려우며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평범하고 어렵지 않은 교훈이라 해도 그것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들에게 — 하나님은 놀랍고도 풍성한 측복을 약속하셨고 그것을 또한 향유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이 면에서 본시는 평이하고 잔잔하지만 성도들 각각에게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강렬한 내용어 숨겨 있는 힘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