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28, 시편 72, 이사야 19, 20, 베드로후서 1
묵상구절
99: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99: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99: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99: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99: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99:7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99: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주의 통치, 공의, 자비에 근거한 여호와 신정 찬양 촉구 -
(저자: 미상, 분류: 신정시)
서론
💡 본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그 근간으로 하여 창조자와 구속자로서 우주와 역사에 대하여 베푸시는 경륜과 섭리와 관련된 신정 사상을 노래한 신정시입니다.
시편에는 13편의 신정시가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는데, 특히 제95편에서 제 100편까지에 해당하는 여섯 편의 시들은 모두가 신정시로서 한곳에 모여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본시는 이러한 여섯 편의 시들 가운데 다섯번째에 해당하는 시로서, 특별히 만민을 위엄으로 다스리시며, 공의를 사랑하시고, 자기 백성을 자비로 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본시는 신정시 모음집에 포함된 다른 모든 시들이 그러하듯이 저자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약 헬라어 역본인 70인역은 신정시 모음집에 포함된 모든 시를 다윗의 저작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한편 본시를 살펴보면 ‘그는 거룩하시도다 '라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되고 있는데 (3, 5, 9절), 이는 일종의 후렴구로서 이 표현에 따라 본시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후렴 부분에서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거듭 찬양된다는 사실은
- 본시 저자가 하나님의 여러 속성 가운데 거룩하심에 대하여 깊이 상고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널리 선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 세 단락으로 구분되는 본시 가운데 전반부인 1-3절은 만민을 통치하시는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1-3절
세상 만민을 통치하시는 크고 두려우신 이름 곧 거록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4, 5절
공의를 사랑하시고 행하시는 거룩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6-9절
선민을 은혜와 자비로 대하시는 거룩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시편 99:1-5)
모든 신앙의 기반은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라는 진리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로 세상을 지배하며 그의 은총으로, 그의 아들에 의해서 교회를 통치한다. 우리는 여호와가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가 통치하신다"는 것도 믿는다. 이것은 기독교의 승리이며, 여호와가 그들의 왕이었던 유대교의 승리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만민이 떨 것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즉
1. 이 왕국의 신민이라도 떨어진다. 왜냐하면 구약의 규례에는 그 안에 많은 공포를 내포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심지어 모세까지도 지나치게 두려워했고 전율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성소에서 무서운 분이었다. 그가 그의 백성을 위해서 나타났을 때일지라도 무서운 일을 행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는 "불 붙는 산"(히 12:18)으로 가지 않는다. 이제는 "여호와가 통치하는 것을 딸이 기뻐한다." 이전에는 그가 거룩한 두려움이 권세로 다스렸다. 그러나 이제는 거룩한 사랑의 권세로 다스린다.
2. 이 나라의 대적들로 하여금 더욱 더 떨게 하라. 왜냐하면 그는 그들을 그이 황금 보좌에 복종하게 하거나 그의 철퇴로 그들을 부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분노하며 동요하지만 주가 다스리신다. 그들이 그들의 모든 정신을 어지럽혀도 그들의 분노는 모두 쓸 데 없다. 그는 시온의 거룩한 산에 그들 대신에 그의 왕을 세울 것이다(시 2:1-6).처음 또는 나중에 그는 그들을 떨게 할 것이다(계 6:15).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땅이 요동한 것이로다."그에게 복종하는 자들은 굳게 서고 "요동치 않은 것"(시 96:10)이지만 그를 대적하는 자들은 요동할 것이다. 하늘과 땅이 흔들릴 것이며 열방이 요동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국은 요동치 않는 것이다. "진동치 않는 것들은 영존할 것이다"(히 12:27)."이러한 것들에 지속함이 있다"(사 64:5).
여기에서 이스라엘에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시편 기자에 찬양의 주제를 만들어 주고 있다.
💡 99: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다스리시니’
- (완료형) 그 통치의 행위가 이미 끝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치의 행위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진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러한 사실이 보이지 않겠지만, 그분을 진실히 믿는 자들에게는 이 사실이 명약관화하다. 여호와의 통치는 악을 소제하고 의를 드러내며 선과 정의와 진리로 하여금 힘을 얻게 한다.
‘떨 것이요’
- 의미: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진동하다, 떨리다’
→ 내면적, 외면적 떨림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
‘만민이’
- ‘백성들’ ‘민족들’
- 이스라엘, 이방인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
→ 즉 여기에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그에 반해 악을 행하는 자들까지 포괄된다고 볼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정의와 진리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은
- 하나님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 더 큰 경외심을 자아낼 것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지국하신 거록하심을 깨닫고 몸이 떨리게 될 것이다.
- ↔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고 악을 자행하는 자들은 :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떨게 될 것이다.
-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떨게 하며 - 그러한 떨림은 사람들의 본성과 내면 깊은 데서부터 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 상반절 ‘통치하시니’ 와 대구되는 표현.
- 두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 첫째는 여호와께서 성전의 지성소에 었는 범궤 위 속죄소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다는 의미이며,
- 둘째는 여호와께서 하늘의 지성소에서 천사들의 수증을 받으며 좌정해 계신다는 의미이다. 본절의 표현에는 이 두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지성소에 천사의 수증을 받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지성소에 었는 법궤 위 속죄소의 그룹 사이에 임재하시는 것으로 제시되고(레 16:2; 민 7:89) 있는 것은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요, 그들 가운데 거하셔서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시겠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물론 온 우주에 편만하신 하나님(omnipresent God) 언약궤 위 한 장소에 머물러 계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조치였다.
사실상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크신 하나님이시며(왕상 8:27) 천상의 존재인 그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이시다. - ‘좌정하시니’
- 마치 왕이 보좌에 앉아 있는듯한 뉘앙스를 함축.
-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약궤 위에 좌정하사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신다는 의미의 표현임과 동시에 온 하늘과 하늘 위에 거하는 그룹, 곧 천사들 위에 좌정하사 만유를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의미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 하나님이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자 땅이 요동한다.
- ‘만민이 떨 것이요’ 와 대구되는 표현.
- ‘땅’을 온 세상을 칭하는 대유법으로 볼 수도, 사람들과 동식물의 생존의 기반을 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든지 땅이 흔들린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로 인해 사람들만 아니라 자연 만물과 그것을 떠받치는 땅까지 뒤 흔들리는 듯한 의미의 표현을 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위엄있고 확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Ⅰ. 시편 기자는 두 가지 사실을 주장한다.
1. 하나님은 신앙의 업무를 관장한다.
그 간구를 받기 위해서, 자비로운 보좌 위에 신탁에 의해서 율법을 주기 위해서, 그의 보좌 위에 있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다"(1절). 이것이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저들은 거룩한 천사들을 수반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보았다. 성전은 그의 왕궁이었고 지성소는 임재소였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다"(2절). 거기에서 그가 알려지며 찬양받는다(76:1, 2).
그는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거기에서 광대하게 높임 받는다.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다." 높은 곳은 잘 볼 수 있는 곳이며 보이기에 합당한 곳이기에, 시온에서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하심이 그밖의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뚜렷이 보이며 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므로 시온에 거주하며 거기에서 예배하는 자들은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성은 그의 편이 되는 사람에게는 진실로 위대한 것이며 그의 적들에게는 두려운 것이다(3절). 이것이 바로 위에서 경배한 것이다.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 99:2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시온'
- 이곳은 역사적으로 여호수아의 주도로 시작된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이스라엘이 그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곳이었다.
- 즉 이곳은 여호수아가 생존한 시기와 그의 사후 계속된 사사 시대, 엘리와 사무엘이 처리하던 시기, 초대 왕 사울이 다스리던 시기까지 여부스 족속의 산지로 남아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암울한 역사적 기억이 아닐 수 없다.
- 이러한 암울한 역사를 중식시킨 장본인이 바로 다윗이었다.
- 그는 왕으로 재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온 산성의 여부스 족속을 토벌하였고 그곳을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로 세웠으며 거기에 희막을 설치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상정물인 언약궤를 안치시킴으로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진정한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알리고 그곳을 하나님의 통치의 좌소로 확정지은 것이다.
본절에서 시인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라고 선언한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감안한 것이다.
- 즉 시온은 애굽 사람을 심판하시고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물아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과 축복을 완결한 상징적 처소임과 동시에 그들 가운데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 모든 열방 가운데 이스라엘을 복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로 인해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며 모든 민족 위에 높으시도다'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물론
- 시인이 본시를 기록할 당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안에서만 경외를 받으셨으며 이방인들은 여호와를 이스라엘 자손들만 섬기는 민족 신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 또 본문에 언급된 시온은 해발 600-700m 정도의 고지로 높기는 하였으나 예루살렘 주위의 모든 이방의 산들과 비교할 때 결코 탁월하거나 특별하게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
- 그럼에도 시인이 본문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 만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며
- 장차 이러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높으심이 모든 민족 위에 알려질 것임을 확고하게 소망하였기 때문이다.
💡 99: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
- 히브리어에서 ‘이름'
- 말 그대로 그 대상을 지시하는 명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존재의 모든 속성과 성품, 능력, 인격을 포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찬송한다는 것은
-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그분의 능하신 창조와 구원의 역사, 그분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 공의로우심을 바라보고
- 이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거룩하심이로다’(후렴구)
‘거룩하심’
- 하나님과 관련해 사용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완전히 구별된 지극히 선하시고 성결하신 분이란 의미를 함축한다. 후렴구에 등장하는 이 어구는 본시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근본적 이유를 보여주는 핵심 단어이다. 즉 시인은 본시를 통해 무엇보다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가 만약 거룩하지 않다면,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을 것이다.
- 아무리 큰 권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에게 결함이 있고 악하고 부정한 면모가 있다면 - 결코 찬양받을 자격이 없다.
- 고대 근동에서 수많은 왕들이 바로 이러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지만,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결함투성이로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 그러나 여호와는 그러한 왕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다.
- 여호와는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권능을 지니신 분이지만 그들과 달리 악의 그림자조차 없으신 분이다.
- 즉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임과 동시에 아무런 흠조차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2. 저들의 시정(市政)의 있어서도 그는 모든 것을 담당했다(4절)
그 족속이 어디로 가든지 이스라엘의 증거는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판단의 보좌를 두었다"(122:4, 5)고 했다. 저들의 정을 들어 올렸다(어떤 사람들은 이 시편이 평온하고 행복한 다윗의 등극을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능력으로 공의를 사랑하는 왕"이다. 그는 강하며 그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의 강함은 큰 왕의 권세가 종종 그러하듯이 어떤 악을 지지하기 위해서 남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사랑한다. 그는 그의 권능으로 정의를 행하며, 그것을 기쁨으로 행한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기 위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에 오르셨다. 그는 쳐부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한다. 그는 그의 권능으로 정의를 행하며, 그것을 기쁨으로 행한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기 위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에 오르셨다. 그는 쳐부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한다. 그는 가혹하게 다스리지 않고 온정과 지혜와 부드러움으로 다스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은 왕을 가졌으나, 저들은 저들의 왕을 지배하는 하나님을 주목하라는 교훈을 듣는다.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즉 하나님은 저들에게 저들이 지배받는 가장 좋은 율법을 주었다), "야곱 중에서 공과 의를 행하신다." 그는 그의 즉각적인 섭리에 의해서 그의 율법을 실행하고 강화할 뿐 아니라, 그에 의해 지배받고 그로 말미암아 정의를 판결하는 치리자들에 의해서 저들 가운데 정의의 통치를 돌본다. 저들의 재판관은 하나님을 위해 심판했고, 저들의 심판은 그에게 속해 있었다(대하 19:6).
💡 99:4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본문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능력이 공의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구현됨을 보여준다. 이는 고대 근동의 여러 왕들이 이웃 나라를 정복하고 사람들을 압제하고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는 그런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공의를 사랑하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미쉬파트'는 사법적 측면에서 공의를 의미한다.
- 즉, 법정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공의가 바로 이 ‘미쉬파트' 이다.
- 좌우로 치우침이 없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감정에 처우처지 않고 판결하는 것이 바로 ‘미쉬파트' 이다.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품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가 이 ‘미쉬파트'인 것이다.
- 이 세상의 궁극적 심판자이신 여호와는 그것을 사랑하셨다.
- 이를 표현하는 단어 ‘아헤브' 는 남녀간의 사랑(창 24:67)과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창 22:2)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 즉, 매우 뜨거우면서도 다함이 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아헤브' 이다.
- 여호와의 능력은 공의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으로 인하여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천하 만민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유,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 원문은 ‘주께서’를 2인칭 단수 주격 대명사를 사용해 -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는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이심을 보다 강조한다.
- ‘공의’ (메솨림)
- ‘메솨림’ : 조금도 구부러짐이 없는 반듯한 모습을 나타내는 ‘야솨르’에서 유래.
→ 복수형으로 : 하나님께서 공평이 풍부하심을 보여준다. - 구약의 용례 19회 중 주로 ‘공평’, ‘정의’, ‘정직’, ‘마땅’ 으로 번역됨.
- 본문이 속해 있는 문맥 역시 재판장으로서의 여호와외 공의로운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
즉 여기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신다는 것은- 악인들을 징벌하시고 의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관 기준을 확실하게 정하신다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메솨림’ : 조금도 구부러짐이 없는 반듯한 모습을 나타내는 ‘야솨르’에서 유래.
- ‘견고하게 세우시고’
-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당신의 심판 기준을 이미 확고히 세우셨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현실을 볼 때 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세상에 악인이 득세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시인이 이를 확정적이고 이미 되어진 일로 표기한 것은
- 하나님의 이 심판 기준이 엄정하게 실현될 날이 반드시 을 것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 즉 이는 예언적 완료(Prophetic perfects)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종말에 하나님이 완전한 공의를 구현하실 것을 대망하며 확신한 것에 따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 ‘야곱에게’
- 이스라엘을 지칭.
- 하나님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공평을 견고히 세우신 후에, 공과 의를 그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행하신다.
- ‘정의와 공의를’
- 정의(미쉬파트) : 상반절의 ‘공의’ / 공의(체다카) :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성품과 행동.
- 무엇을 가리키는가?
- 하나님께서 이러한 공과 의를 행하시는 통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내리신 율법과, 그 율법을 올바로 해석하여 가르친 제사장들 및 법 집행자들이 그릇된 길로 갈 때에 준엄하게 책망하여 율법의 본래 정신으로 돌이킨 선지자들이었다.
-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에 외적의 침입 및 각종 재앙들을 보내심으로써 그들을 회개케 하사 정의로운 길로 돌아오게 하기도 하셨다.
- ‘행하시나이다’ (완료형)
- 이는 하나님히 견고히 세우신 심판 기준인 공평에 따라 불의가 완전히 소제되고 공과 의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완전히 구현된 듯한 뉘앙스를 전달한다.
- 그러나 이러한 일이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완전히 구현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는 종말론적 상황, 곧 하나님이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시사 악인들을 징벌하시고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남은 죄악의 찌끼를 소제하시고 온전한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실 것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역시도 장차 있을 일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예언적 완료형 표현이라 할 수 있다.
Ⅱ. 이러한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다른 모든 민족보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행복하였던가를 이해할 수 있다.
모세는 그것을 묘사히기를 "저들은 그룹들 사이에 앉아서 하나님이 저들에게 가까이함을 얻었다"(신 4:7, 8)고 했다. 그리고 저들은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하나님 자신이 야곱 중에서 다스리며 저 행복한 백성에게 이러한 명령을 주심으로써 지위와 심판을 매우 공평하게 받았다고 했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에게 너희가 받고 있는 좋은 지배의 영광을 돌리라. 그것이 이제 견고하게 교회와 국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 우리가 같이 나누는 공적 인자비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돌려야 할 공적인 존경의 일익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그리스도의 왕국의 건설은 우리의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에게 예배할 때, 우리의 심령은 그에 대한 숭고한 생각들로 채워지며,그는 우리의 영혼들을 강하게 한다.
- 우리가 자신들을 낮출수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복(俯伏)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를 높이는 셈이다. 우리는 그룹들 사이에 있는 "자비의 자리"(mercy-seat:언약궤의 뚜껑 역자 주)를 발등상으로 삼고,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해야 한다."
💡 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너희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높여’
-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 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존경과 친근함의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즉 시인은 자신들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시어 이를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 바로 자신들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시는 자신들의 하나님이심을 감격에 겨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 즉 시인은 자신들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시어 이를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 이러한 표현은 본절에서만 아니라 8절에 다시 한 번, 9절에서 두 번 반복되어 사용된다.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로 상징된 본문의 ‘그 발등상 앞에서' 란 표현은 구약 성경 내에서 본문을 포함해 모두 6회 사용되었는데(110:1; 132:7; 대상 28:2; 사 66:1; 애 2:1), 6회 모두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 발등상이란,
- 왕의 보좌와 관련된 도구로서 보좌에 앉은 왕이 그의 발을 을려놓았던 발판 내지는 받침을 지칭하는 것으로 지배, 주권적 행사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종증 사용된다(대하 9:18).
- 그러므로 여호와의 발등상이란 표현은 - 여호와를 왕으로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특히 이 표현은 그것이 사용된 용례들 중 사 66:1을 제외하면 모두 성전의 언약궤와 관련해 사용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발로 속죄소 위의 그룹을 믿고 앉아 계신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Rawlinson).
- 이를 감안하면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란 본문의 표현은
- ‘하나님의 성소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할지어다'란 표현으로 다시 번역할 수 있다.
- 앞선 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왕으로 묘사하고 왕이신 하나님께서 공의를 사랑하시며 공과 의를 행하신다고 찬양한 바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나타내는 통치의 보좌를 연상케 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그 앞에 경배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 이는 궁극적으로
-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통치를 지속적으로 베푸실 것을 기원하는 의미와 더불어
- 그러한 하나님의 통치 앞에 순종하며 복종하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 이는 궁극적으로
'경배할지어다'
- ‘엎드리다, 굴복하다, 복종하다’ 란 의미를 지닌 단어.
- 그러므로 본문은 신하 혹은 백성이 왕 앞에서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사람들이 여호와를 절대적으로 섬기고 복종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 앞선 1-3절에서는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송할 것을 촉구한 데 이어 4, 5절에서는 의와 공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통치에 복종할 것을 촉구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인간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복종하는 근본 이유가 됨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사례(시편 99:6-9) - 과거에 나타난 여호와의 주요 사역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행복은 그의 통치의 몇 가지 특수한 예들에 의해서, 특히 저 백성들의 수석 지도자와 가장 유능한 통치자들 - 모세, 아론, 사무엘 - 에게 관련지어 볼 때 명백히 판명된다.
처음의 두 사람 모세와 아론에게서 신정 정치 혹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을 한 백성으로 형성하도록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통치의 형태가 마지막으로 사무엘에게서 크게 종막을 거둔다. 백성들이 사무엘을 배척하고 그에게 퇴위하도록 요청했을 때 저들은 하나님 자신을 버리고 그를 이제 저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삼상 8:7). 왜냐하면 저들은 이제 모든나라들과 같이 왕을 가지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아론과 마찬가지로 모세는 "제사장 중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는 아론이 거기에 자리잡고 그가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성직을 임명할 때까지 제사장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를 "제사장 중의 제사장"이라고 부른다.
💡 99:6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 시인은 여호와의 공의로움을 따라 그 뜻대로 행하며 백성들을 위하여 간구한 인물 세 사람을 제시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소개하고 있다.
시인이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한 많은 인물 가운데 이 세 사람을 거론한 구체적인 이유는?
- 그 이유를 규명하기는 어렵다.
- 그러나 이 세 인물은 본시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잘 투영시킨 자들이기 때문인 듯하다.
- 모세는 애굽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였다.
- 아론은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여 백성들어 그 지은 죄를 씻게 함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영위케 하였다.
-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역자로 섬김의 직무틀 감당하며 이스라엘을 350여년 간 지속된 사사 시대의 반역, 패역, 영적 암흑의 자리에서 이끌어 다시금 거룩한 역사의 궤도에 올려놓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세 명의 주요 지도자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자.
Ⅰ. 저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가졌고 그는 저들에게 놀라운 은총을 허락했다.
지상의 어떠한 나라에서도 하늘과 교통하며 하나님이 "이름으로 아는"(출 33:17) 이러한 세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 여기에 저들의 은혜로운 하나님께 대한 공경이 있다. 어떠한 나라도 이스라엘 왕국의 이 세 인물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물을 가지지 못했다.
(1) 그들은 "기도로써"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사무엘은 그가 제사장 중에서 간구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 있었다." 저들은 모두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유명했으며, "여호와께 간구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지혜나 덕망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유사시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들의 간구를 그에게 드리고 그를 의지했다.
(2) 그들은 "복종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저희가 그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다"고 했다. 그들은 의무감을 가졌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율법을 저들의 규범으로 삼았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기도와 응답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잠 28:9). 모세는 그에게 나타난 양식(樣式)에 따라서 모든 것을 이행했다. 그것은 자주 반복되어 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따라서 그가 행했다." 아론과 사무엘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증거를 지키고 그의 말씀의 규칙을 따른 가장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사람들이다.
2. 여기에 하나님이 저들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사실이 나타난다.
"그가 저희에게 응답하셨도다." 그리고 저들이 그에게 간구하는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 놀랍게도 저들은 모두 기도로써 하나님을 힘입어 승리했다. 저들의 특수한 본보기와 요청에서 기적들이 수행되었다. 그는 저들을 위하여 그들이 바라는 것을 겸손하게 행할 뿐만 아니라 그는 천하게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친구와 같이 그들과 교통한다(7절). "그는 구름 기둥에서 저희에게 말씀하신다." 그는 종종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소년 시절부터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고 그는 때때로 그를 가리우는 밝은 구름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에게는 종종 그 유명한 "구름 기둥"(출 16:10; 민 7:5)으로부터 말했다. 이스라엘은 저들이 매일 구름기둥과 같은 하나님의 임재의 가시적 표지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저들의 처음 설립자들에게, 저들의 위대한 개혁자였던 그에게는 이와 같이 하나님이 그 자신을 기꺼이 나타내셨다는 저들의 신앙을 확증하기 위해서, 지금 그것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Ⅱ.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선한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을 위해서 중재했으며 저들을 위해서 그들은 많은 평화의 해답을 얻었다. 모세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었으며, 아론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위태할 때 사무엘은 저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삼상 7:9).
여기에 이것이 언급되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저희에게 응답하셨도다"(7절).
저들의 기도를 듣고 저들이 간구하는 백성을 "하나님이 사하셨다."
비록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들의 죄값으로 저들을 백성 가운데서 잘라 버리지 않았다. "저는 저들을 위해서 호의를 가진 하나님이시다"(Dr Hammond).
여호와는 저희가 행한 대로 갚으려고 할 때에도, 즉 그의 진노가 극도에 말해서 저들을 완전히 내어 던지려고 할 때에도, 즉 그의 진노가 극도에 달해서 저들을 안전히 내어 던지려고 할 때에도, 저들의 간구를 듣고 저희를 인하여 백성을 사하셨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보다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실례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께 찬양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후에는 물 전에도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을 인하여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시온의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9절). 거기에서 그는 이제 그의 성전을 세우고 "그의 왕을 세울 것이다'(시 2:6). 거기를 연합의 중심지로 하고 모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만나게 한다. 저들의 경배로써 만남이 이뤄진다. 왜냐하면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거룩한 율법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의 거룩한 복음에서도 그렇게 나타나신다.
💡 99:7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 앞선 6절에서는 중재자들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분이란 점이 부각되었다.
- 이에 이어지는 본절에서는 ‘저희’ 곧 앞선 6절에 중재자로 언급된 이들이 하나님게서 베푸신 증거와 율례를 지킨 사실을 부각시킨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 이유를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 즉 이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 그 주신 증거와 율례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자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하는 바를 들으셨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지켜 하나님을 존중히 여겼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존중히 여겨 그들이 간구하는 바에 응답하셨던 것이다(삼상 2:30).
하나님께서 그 증거와 율례를 주신 곳 : ‘구름 기둥’
- ‘구름’ 의 기능
-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
-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빛을 흡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영광의 현시를 직접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빠져 나온 직후부터 여호와는 구름 기등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으며(출 13:21), 모세는 구름 기둥이 서 있는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와 더불어 마치 친구 사이에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기도하였다(출 33:9-11). 이처럼 구름 기등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뿐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케 하고 구름 기등이 서 있는 회막에서는 하나님의 응답과 계시의 말씀어 전달되었다.
- 물론 앞선 6절의 중보자들 가운데 사무엘은 이러한 구름 기등을 보지도 못하였고 그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신비로운 음성을 직접 들었다(삼상 3:1-14). 따라서 시인은 사무엘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모세와 아론과 동일한 경험을 한 자처럼 묘사하였다.
중보자들이 지킨 것 :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
- ‘증거와’ :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으로 계시하신 명령들.
- ‘율례들’ : 기록된 문자로 주신 율법.
- ‘그들에게 주신’
⇒ 그들이 하나님의 증거와 율례를 충실하게 준행했음을 보다 강조함.- 이는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를 감안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 모세와 아론이 활동하던 출애굽 제1세대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불순종과 패역함 그 자체였다.
- 또 사무엘이 등장하는 시점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삿21:25)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인 사사 시대였으며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 곧 백성들의 비전과 꿈이 상실된 시기였다(삼상 3:1).
- 이처럼 패역하고 어두운 세대 가운데 살고 있었지만 그들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철저히 순종하고자 충성을 다했던 것이다.
- 이는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를 감안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 99:8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기도에 응답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감격스러움
‘주께서는’
- (’앗타’) 2인칭 단수 대명사를 사용해 - 응답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응답하셨고’
- 원형 ‘아나’ : 상대방의 말을 주의해 자세히 듣고 거기에 따라 긍정적 답을 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삼상 7:9).
- 이러한 사실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시는지와 더불어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게 반응하며 순종하는 자들, 그들이 올리는 의롭고 합당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 ‘그들’은 누구?
- 모세와 아론, 사무엘을 지칭하기보다는 죄를 짓기도 하고 사함받기도 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갚다’
- ‘싫어하다, 벌주다, 보복하다’ : 악한 행위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에게 그 행한 바 악에 대한 징벌을 가하시는 하나님의 면모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 죄를 미워하시며 죄값을 치르게 하시고 벌을 내리시는 공의로운 분이실 뿐 아니라
- 사죄의 간구, 중보의 간구를 들으사 긍휼을 베푸시며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진노와 긍휼의 모습은
= 본시에서 반복적으로 고백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여러 신들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명백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부각시키는 속성이라 할 수 있다.
- 당시 주변 열국의 신들의 속성이나 그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이유는
- 선과 악, 공의를 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방인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이유는 다만 그것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 죽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아울러 이들 이방 신들은 대개 자연 현상과 관련해 사람들의 타락하고
미신적인 생각이 결부되어 만들어진 신들이다. 즉 이방인들은 태양이나 달, 바다나 불, 말 못하는 금수들 중에서도 힘이 강한 것들, 거대한 바위나 나무 등을 신격화시켜 섬겼던 것이다. - 이러한 신들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라도 용서와 자비, 긍홀을 구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 선과 악, 공의를 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실 뿐 아니라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며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점에서 이들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거룩하신 분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본절에서 강조되고 있는 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면모와 자비로우신 면모는
→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 만일 하나님께서 죄에 대헤 형벌 없이 용서만 베푸신다면,
- 사람들의 완악함은 결코 변화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의 교만함도 치료되지 않을 것이다.
- 다른 한편, 용서 없이 형벌만 가하신다면,
- 인간은 모두 멸망할 것이며, 하나님은 진정한 구원자로서 그 권위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은 이처럼
- 완전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모,
-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끄시며 희복시키시는 복되신 면모를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희를 사하신 하나님' 이란 함축적인 표현을 통해 찬양하는 것이다.
💡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앞선 6-8절에서 시인은
-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중거와 율례를 지키는 신실한 당신의 종들의 간구에 응답하시고 공의와 긍휼에 근거해 이스라엘을 이끄시고 돌보신 하나님의 면모를 증거하였다. 의인들의 간구에 응답하시고 증거와 율례를 주시며 행한 대로 갚기도 하시나 용서를 베풀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회상하였다.
- 이제 본시의 마지막 구절인 본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며 찬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본절은 5절의 반복,
- 경배하는 장소: 5절에서는 ‘그 발등상’, 여기서는 ‘그 성산’
- 발등상 = 성소를 의미, ‘그 성산’ = 성소가 있는 시온산을 지칭
- 본절이 조금 더 확장된 개념이지만 동일한 장소를 지칭함.
- 즉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지칭하는 것.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본시는 제95편 이하 계속되어 온 다른 신정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롱처를 찬양하는 신정시이다.
다만 본시는 여호와를 찬양하되 그 근거를 하나님께서 만민을 통치하심과 절대적 공의를 행하심 그러고 선민을 향하여 은혜와 자비를 베푸신다는 데 두고 었다.
뿐만 아니라 본시는 이상의 신정시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던 바 악인의 심판을 통하여 구현되는 하나님의 통치의 측면을 언급하지 않고 당신의 백성둘을 향한 궁정적 통처의 측면만을 들어 하나님의 신정에 대한 찬양을 촉구한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즉 본시는 3희 반복되는 후렴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면모를 소개하고 어에 근거하여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의 면모만 아니라 그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 우러 하나님’이라는 (5.8.9) 사실이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공의로 당신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며 이 땅에 공의를 세워나가고 계시며 마지막 날에 완전한 의를 드러내설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거록한 통치, 의로우신 통처는 거룩하신 분 여호와를 우리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자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또 그것이 만방에 확장되기를 고대하는 모든 성도들이 영원히 찬양할 제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