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6월 29일 토요일 시편 129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Jeehyun 2024. 6. 29. 15:31

맥체인성경읽기

여호수아 1, 시편 120, 121, 122, 이사야 61, 마태복음 9

묵상구절

- 시온의 수호와 대적의 파멸에 대한 순례자의 확신 -

129: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129: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129: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129:4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129: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129: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129: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129:8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국내의 행복(시편 129:1-4)

하나님의 교회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제는 늙고 백발의 머리를 한 개인과 같이 말해졌고, 또한 여기에서도 그렇게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날을 회고하며 지난 때를 반성하고 있는 한 개인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게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닫는다.


 💡 129: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Ⅰ. 교회가 지상의 적들에 의해서 종종 크게 핍박을 받아 왔다는 사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나는 다른 백성보다 더 많이 핍박을 받았고 "무늬 있는 매"와 같아서 "매들이 에워싸서"(렘 12:9) 쪼임을 당했다. 저희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신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이웃이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박해한 것은 이스라엘의 계약의 특수성과 그 종교의 유일성 때문이었다.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도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해 보자.

1. 하나님의 백성은 많은 적을 항상 갖고 있으며, 교회의 상황은 그 소시부터 자주 고난받은 상황이 되어 왔다.

이스라엘은 초기에 애굽에 있었고 사사 시대에 있었다. 그 때 이래로 그들은 다소 고난을 받아 다. 복음의 교회는 시작된 이래로 처음부터 고난을 받아 왔다. 그리고 교회는 소시부터 이 멍에를 대부분 담당하였고 초대 교회가 신음하던 열 가지의 박해를 증언하고 있다. "밭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았도다"(3절). 우리는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친다"(시 125:3)는 것을 읽은 바 있다.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의 운명을 정하는 쟁기를 기대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악한 자의 쟁기가 의로운 자의 등에 미치는 것을 읽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히려 권세를 찾고자 기대한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은유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양자의 의미는 동일하며 매우 자명하다. 하나님의 백성의 적들이 항상 그들을 야만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농부가 쟁기로 땅을 갈 듯이 그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파괴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땅이 오랫 동안 버텨온 땅을 마멸시키고(우리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마음에서 평온을 빠앗아 "지고자(至高者)의 성도들을 마멸시켰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그들에게 갈도록 허용하셨을 때 그는 그것을 그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 의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휴경지(休耕地)를 파괴하는 것은 그의 은총을 저들에게 뿌려서 그들에게서 좋은 열매의 추수를 거두려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마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사 10:7). "그들은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그렇게 행할 때에 교회의 파멸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아무 것도 노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등에 일은 "고랑"이 이스라엘 백성과의 싸움이라고 이해한다. 그들은 "재단사들이 내 등을 잘랐다"고 풀이한다. 성도들은 종종 잔악한 채찍과 악독한 조롱의 시험을 받는다(아마도 포로기 때에 받은 채찍을 의미할 것이며 혀의 채찍과 매를 의미하는 조롱일 것이다. 히 11:36). 그것은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는"(사 50:6)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도성들을 황폐케 한 것을 언급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리라"(미 3:12).


💡 129:3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2. 교회는 항상 은혜롭게 하늘에 있는 후원자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

(1) 적들의 계책은 패배당했다.

그들이 교회를 파멸시키려고 교회를 괴롭혔지만 그들은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다. 교회는 많은 강풍을 만났고, 많은 충격을 받았고 불사름을 당했고 괴로움을 당했지만, 교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태풍으로 배가 뛰고 큰 파도와 물결이 배를 뒤덮을 때 이 배가 바다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셨다. 그래서 지옥의 문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영원히 이기지 못할 것이다.


💡 129:2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2) 적들의 능력이 끊어졌다. 하나님께서 "악인의 줄을 끊으셨도다."

하나님께서 바퀴와 쟁기 자국를 끊으시고 저희의 밭가는 일을 중지시키셨다. 그들의 매를 끊으시고 채찍질을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함께 연합한 결속을 끊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의 속박에서 끊어내셨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도로 악한 자들이 교회에 대한 해를 끼치려고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시며, 그들의 계획을 부끄러워하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의로우사"라는 말씀은 교회의 고난 혹은 구원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1] 고난받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의로우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적들이 아무리 불의할지라도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다"(느 9:33)고 고백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129:4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2] 파멸되어도 고난받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의로우시다." 왜냐하면 그가 백성을 스스로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같이 선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의 박해자를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보상"하시는 일에서도 의로우시다(살후 1:6).


💡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시편 129:5-8)

시편 기자는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지옥만큼 깊이 놓여진 많은 계획을 패배시킨 것을 보고 승리의 개가를 올리면서 드보라가 노래한 것처럼 이 시편을 결론맺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소서"(삿 5:31).

Ⅰ. 시온을 미워하며 시온의 하나님과 그에 대한 예배와 예배하는 자들을 미워하는 많은 자들이 있다. 그리고 종교와 경건한 백성에 대한 반감을 갖고 그것을 파멸시키려고 추구한 많은 자들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교회를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

Ⅱ. 우리는 교회에 대한 그들의 모든 시도가 좌절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계획과 기대가 이뤄지지 않게 되어 "수치를 당하여 물러가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들이 모두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그들이 반드시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저주받고 예측된 혼동이 비유로 묘사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무거운 종려나무나 푸르고 열매 맺는 감람나무처럼 번창하는 반면에 적들은 "지붕의 풀과 같이 마를 것이다." 그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풀과 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사 51:12). 시온에 대적하는 많은 적들이 파멸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이 적고 짧고 신 냄새가 나고 쓸 데 없는 지붕의 풀과 같이 경멸을 당하며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 될 것이다.


💡 129:5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1. 그것은 재빨리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성숙하게 "자라기 전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그 자리가 높을수록 아마도 교만한 자리에 있을수록 태양의 내리쬐는 열기에 노출되어 결국 더욱 쉽게 마르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은 뽑히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고 읽는다. 하나님의 대적들은 저절로 마르며 하나님의 심판에 뿌리기 전에 사라진다.


💡 129:6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2.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지상의 무익한 짐에 지나지 않으며 시온에 대한 저희의 계략이 무르익고 어떤 자의 머리에 떠오른다고 해도 저희가 스스로 약속한 것이 무엇일지라도 그들은 농부가 지붕의 풀과 같이 여기는 것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심판 슬픔의 날에 저희의 농작물이 없어질 것이다."(사 17:11).


 💡 129:7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Ⅲ. 어떤 현명한 자도 베는 자와 묶는 자를 축복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8절).

  1. 낯선 자와 여행인에게 인사하며 좋은 하루가 되기를 소원하는 고대의 훌륭한 관습이 있었다. 그 때에 특히 추수하는 일군의 번영을 기도하였다. 보아스도 이와 같이 그의 추수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다(룻 2:4).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감사해야 하며, 우리 이웃에게 우리의 선한 뜻을 증거하고 그들의 근면을 칭찬해야 한다. 그것이 경건하고 정직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경건한 절규로써 하나님을 영접해야 할 것이다.
  2. 종교적인 표현은 거룩한 것들이기 때문에 가볍고 경박한 행동으로 결코 사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지붕의 풀을 베는 것은 장난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에 경의를 표하는 자들은 열심을 자극하는 인사의 일상 형태를 거기에 악용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들이 그렇게 조롱당하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다.
  3. 교회의 적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그들의 계략에 우리의 선한 소망을 두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이 11). 이것은 아무도 그들을 축복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존경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모든 지혜롭고 선한 백성들이 그들의 수치를 외칠 것이며, 그들이 패배당하도록 하나님께 빌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의 기도를 그들에게 두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집을 저주하였노라"(욥 5:3).

💡 129:8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