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사사기 8, 사도행전 12, 예레미야 21, 마가복음 7
묵상구절
3:1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3: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3: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3: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3: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3: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3: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3:20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3:21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3:22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3:23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3: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3:25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3:26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3: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3: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30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서론
📖 1-12절
13-18절
● 지혜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잠언 3:1-6)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하나님을 따라 경건하게 사는 이 신앙의 비밀은 논란할 여지도 없이 위대한 삶이며,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본문에 나타나듯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득이 된다.
Ⅰ.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1절).
-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법과 그의 모든 명령을 우리의 규준으로 확정해야 한다. 그 규준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지배를 받으며 복종해야 할 법칙이다.
(2) 우리는 그 규준이 되는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정통(精通)해야 한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우리가 언제라도 그 규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는 그들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4) 우리의 의지와 애착심은 그들에게 복종해야 하며 모든 일에서 그것과 일치해야 한다. 우리의 머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장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한다. 율법의 석판은 언약의 법궤 속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와 마음 속에서 비치되어 있어야 한다.
💡 3:1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하나님의 법에는 제한 조처도 있고 금지 명령도 있는데, 그것은 장수와 번영에 이르는 확실한 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증하여 우리가 이 모든 제약과 명령에 복종하도록 격려하고 있었다(2절).
(1) 그것은 장수하게 되는 길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많은 해를 누리게 하리라." 땅에서 유용한 삶을 오래도록 살게해 주는 외에도 그의 명령은 "영영한 장수," 곧 천국에서 있을 영생을 더하여 줄 것이다(시 21:4).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과 우리의 장수가 되실 것이며 그것은 부가 조항과 함께 진정한 장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게 부담이 되고 고생이 될 수도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 주신다.
(2) 즉 그것은 또한 편안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의 노년은 악한 날이 되지 않고 즐거움을 누릴 날이 될 것이다. "평강을" 끊임없이 "더하게 하리라." 은혜가 증가하면 평강도 더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심령 속에섣ㅎ "그리스도의 다스리심과 평강이 끝없이 더하게 되리라." "이 법을 사랑하는 자들은 크고"도 점증하는 "평강을 누리게 되리라."
💡 3: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Ⅱ.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약속들은 그의 교훈과 동행하는 것으로 그의 명령과 함께 받아야 하며 그것과 같이 지켜야 한다(3절).
인자와진리, 즉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이행해 주시는 그의 진실로 하여금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라. 이들을 상실하지 말며 그것에 따라 살고 그들에 대한 네 연고권을 보존하라. 이들을 망각하지 말고 그것에 근거하여 살며 그들에게서 위로를 취하라. 가장 우아한 장식물로서 그것들을 네 목에 매어라.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에 우리의 연고권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명예이다. "네게 소중한 것으로서, 네 분깃으로서, 극히 즐거운 오락물로서 그것들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들을 응용하고 숙고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얻으라."
혹은 이 말씀은 우리의 의무가 되는 인자와 진리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경건과 성실, 인간들에게 한 자비심과 하나님께 대한 충실성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을 너의 고정된 지배 원리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이런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불러 넣어 주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우리 창조주와 동료들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고 있다(4절). "그리하면 네가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 3: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1.선한 자는 맨 먼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여호와께 열납받는 영광을 얻으려고 열망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은총을 얻게 될 것이며 그것과 아울러 귀히 여김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극히 선용하실 것이며 그가 말하고 행하는 것을 모두 유리하게 해석하실 것이다. 그는 지혜자의 자녀로서 인정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는" 모든 자들이 결과적으로 얻는 바 "귀중한 여김"을 받는 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칭송을 받게 될 것이다.
2.그 선한 자는 또한 사람들한테도 총애를 얻고 싶어하며(그리스도께서도 그러셨듯이, 눅 2:52) "허다한 자기 형제들에게 굄을 받고" 싶어한다(에 10:3). 그리고 그는 그런 바램의 충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를 똑바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귀중히 여긴다는 말은 선한 이해하는 뜻을 가짐:역주), 그는 그들과 관계하는 가운데 사려깊은 자로 나타날 것이며, 이지적이고도 분별있게 행동할 것이다. "그는 훌륭한 성공을 얻게 되리라"(이렇게 해석하는 이도 있다). 훌륭한 성공이란 것은 훌륭한 이해, 즉 귀중히 여김을 받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결과인 것이다.
💡 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Ⅲ.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섭리를 중시해야 하며 우리의 모든 일 가운데에서 믿음과 기도를 통해 그것을 인정하고 의존해야만 한다.
1.믿음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에 전폭적인 신뢰를 두고 그의 섭리의 범위는 모든 피조물과 그들의 모든 행동에 미치는 것임을 스스로 확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해야" 한다(5절). 그는 자기가 뜻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행하실 수 있으시고 최선의 일을 행하실 만큼 능히 지혜로우시며, 우리가 그를 사랑하고 섬긴다면 자기의 약속대로 우리에게 가장 선한 일을 해 주실 만치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모든 일을 행해 주시는 그를 전적인 복종과 만족으로써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미리 계획한 대로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해 낼 수 있으며 우리 일이 좋은 결과로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듯이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자기를 아는 자들은 자신의 명철이 상한 갈대이며 만약 그들이 자신의 명철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자기들을 실패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든 행위 속에서 우리 자신의 판단을 사양하고 하나님의 지혜, 능력, 선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섭리에 따라 가야 하며 그의 섭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이 행한 것이 가장 적을 때 그 일은 흔히 매우 훌륭한 결과로 판명된다.
💡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2.기도로써(6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모든 일을 지시해 주시고 처리해 주시는 하나님의 압도하시는 손길을 우리 판단 속에서 믿어야 할뿐더러 엄숙히 그것을 자인하고, 따라서 직접 그에게 고백하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허락을 구해야 하며 우리가 정당하다고 확실히 믿는 일 이외에는 그 어떤 일도 독자적으로 계획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어려울 때 뿐만 아니라(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를 때 그에게 눈을 돌려 쳐다보게 됨은 우리 자신이 잘나서 그런게 아니라 그의 덕분이다) 모든 경우에, 아무리 그 일이 쉬운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충고를 구해야 하며 그에게서 지시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답게 성공도 그에게서 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판결을 맡으신 분으로서의 그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참을성있게 그리고 거룩한 무관심으로 그의 상을 기다려야 한다. 직선적이고 공정하며 즐거운 "우리의 모든 길에서"(본문의 원뜻은 그렇다), 즉 우리가 만족함을 얻게 되는 "범사에서" 감사하며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어긋나고 불편하며 가시로 둘러 막혀있는 "우리의 모든 길"에서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눈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여호와 앞에"다 고했듯이(삿 11:11)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 요구를 그에게 알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하여 이렇게 하도록 하시려고 "그가 네 길을 지시해 주시리라. 네 길은 안전하고 선하게 되며 그 마지막 결과는 행복한 종말이 되리라"는 약속을 주신다.
자기를 하나님의 안내 하에 맡기는 자들은 언제나 그 혜택을 입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익하도록 지시해 주는 지혜를 그들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죄악의 곁길로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연후에는 스스로 그 일을 너무나 지혜롭게 조정해 주실 것이어서 그 일은 그들의 의사에 꼭 맞거나 아니면(이 두 가지 말은 동의어이다) 그들의 유익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충실히 따르는 자들은 비록 그 길이 우회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며 마침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길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리하면…
● 하나님께 대한 봉헌(잠언 3:7-12)
우리 앞에는 세 가지 권면이 나오는데 그 하나 하나가 충분한 이유와 함께 역설되고 있다.
Ⅰ.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다스리심에 대해 겸손하고도 의무감에 넘친 복종 안에서 살아야 한다(7절).
"너의 최고 주요 주인으로서의 영호와를 경외하라. 무슨 일에서든지 네 신앙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
- 이 복종은 겸손한 순종이어야만 한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종교의 권세와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지혜를 자부하는 것보다 더 큰 적은 없다. 자기 자신의 지혜로 충분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종교의 규칙으로부터 자기들의 방법을 취하는 일은, 더구나 종교의 규칙에 얽매인다는 것은 자기들 답지 않다거나 자기들의 위신에 먹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2.또한 충성스런 복종이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그를 노엽게 할 짓이나 그의 돌보심을 목수당할 어떤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악에서 떠나기" 위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참 "지혜"요 참 "명철"이다(욥 28:28). 이것을 소유하는 자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그러나 자기 부정적으로 그래야 하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살도록 우리를 고무시키기 위해 여기에서 약속되는 것은(8절) 이것이 외적인 인간에게조차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음식처럼 쓸모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양분을 많이 공급해 줄 것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리라." 그것은 또한 강하게 해 줄 것이다. "이것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근신과 절제, 술취하지 않음과 침착함, 마음의 평정, 욕망과 정욕을 잘 다스리는 것, 이런 것은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영혼의 건강에 많은 기여를 할 뿐만 아니라 신체를 위해 좋은 습관도 된다. 몸의 좋은 습관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서 건강이 없이는 이 세상에서 썩음"과 같고 세상의 근심은 뼈를 말린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의 희망과 기쁨은 골수를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 3: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Ⅱ.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선용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재산을 불리는 길이다(9,10절)
1.여기서는 재산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우리 본분으로 삼도록 하는 교훈이 나오고 있다.
"네 재물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하나님을 공경하고 성호와 찬미로 그를 존귀케 한다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목적이다. 우리는 그를 존귀하게 하는 것 말고는 단지 그를 섬길 도리가 없다. 그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야 하며 그에게 경의를 품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소유인 우리 몸과 마음으로" 그를 공경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재물로도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하는 것이니, 이는 재물 또한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우리의 모든 종속물은 그의 영광을 위해 바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 재산은 단지 보잘 것 없는 물질에 불과하다. 그러나 변변치 못한 것이지만 이것으로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해야 하는데, 그러면 보잘 것 없던 그 물질이 실속있는 것, 즉 본질적인 것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우리는 다음 세 가지로써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
(1) "우리의 소산물로써" 재물이 불어나는 곳에서는 우리가 자신을 존귀케 하고 싶어지며(신 8:17) 우리 마음을 세상에 두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된다(시 62: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해마다 나는 산물을 먹고 살므로, 우리의 소산이라 함은 땅의 소산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항구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2) "우리의 모든 소산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사에 우리를 번영하게 하심과 같이 그를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율법은 modus decimandi 즉 십일조세의 방식에 대한 규정은 허용할 것이지만 de non decimando 즉 십일조의 납부를 면제해 주는 규정은 하나도 허용치 않을 것이다.
(3) 아벨처럼(창 4:4) "온갖 처음 익은 열매로써" 이것은 율법이요(출 23:19) 선지자였다(말 3:10). 처음이요 가장 선하신 분 되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물의 처음 것과 가장 좋은 것을 받으셔야 한다. 그의 권리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 우선하시므로 그는 맨 먼저 대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의 세상 제물을 우리 종교에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며 그들 및 그들로 인해 갖게 되는 이익을 우리의 종교의 진흥을 위해 사용하며, 우리의 가진 것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유익을 베풀고 아끼지 않고 "후히 줄 것을 꾀하면서" 경건과 자선의 모든 일을 충만히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2.또한 여기에는 우리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리 우리의 이익으로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적은 것을 많게, 많은 것을 더 많게 만드는 길이다. 그것은 번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리라" 그는 네 주머니라고 하지 않고 네 창고라고 말하며 네 옷장을 새로 채운다고 하지 않고 네 즙틀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겉치레나 장식용이 아닌, 쓸모있는 소산물로 너를 축복하실 것이다. 몰래 감춰두고 쌓아두기 위한 것으로가 아니라 사용하고 투자하기 위한 것으로 너를 축복해 주실 것이다." 자기들이 가진 것으로 선을 행하는 자들은 더 많은 선을 베풀 수 있도록 더욱 많이 받을 것이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세상 재산으로써 우리 종교에 쓸모있도록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종교가 세상 일의 형통에 매우 유용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경건함에는 현재 생명의 약속이 있고" 그 모든 위로도 있다. 우리가 만일 준다고 해서 망하게 되고 가난하게 되는 줄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면 우리가 그로 인해 부자가 될 것이다(학 2:19). 우리는 우리가 준 것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요 받을 것이다.
💡 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Ⅲ.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올바로 처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11, 12절).
사도는 이 말씀을 인용하며(히 12:5) 이것을 아버지의 권유와 애정을 가지고 "그 자녀에게 하듯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훈계"라고 부르고 있다.
본문에서 우리는 고난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1.우리가 환란에 처할 때 우리의 주의는 어디에 있어야만 되는가?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지 말며 지겨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앞에서 나온 그의 훈계는 부유하고 형통한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나 여기에서는 가나하고 역경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하는 훈계이다.
(1) 우리는 그 고난이 아무리 가볍고 단시간에 걸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주목해 볼 가치가 없는 듯이, 혹은 또 그 고난이 어떤 심부름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어서 응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무시해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환란을 당하여서 목석이나 금욕주의자처럼 무감각해지며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점점 경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또한 하나님이 없이도 그 고난을 쉽사리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스스로 강퍅케 되어서도 아니 된다.
(2) 우리는 그 고난이 아무리 중하고 오래 계속되더라도 지쳐서는 아니되며 사도가 해석하듯 그고난 아래서 "낙심"해서도 아니 되고 실망해서도 안된다. 그 때문에 우리 자신의 영혼을 빼앗겨서는 아니되며 혹은 절망에 떨어지거나 자신을 구출하고 억울한 점을 시정하기위해 어떤 부당한 수단을 사용하게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그 고난이 정도 이상으로 강하게 압박하거나 보다 오래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빨리 구원이 이르지 않는다고 하여 구원될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려서도 안된다.
💡 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2.우리가 고난에 처해 있을 때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은 무엇인가?
💡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1) 그것은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징계라는 점이다.
그것은 "여호와의 징계"이다. 이 점은 왜 우리가 그 고난에 승복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비할 데 없이 지고한 주권과 항거할 수 없는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과 다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왜 우리가 그 고난을 만족히 여겨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된다. 왜냐하면 오점 하나 없이 순전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못하시지 않으시며 무한한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하시진 않을 것을 우리가 확신하는 까닭이다. 그 고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경히 여겨서는 안 된다. 사자(使者)에게 가하는 결례는 그를 보내는 자에게 대한 모욕인 것이다. 그 고난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에 싫증을 내서는 아니 된다. 그는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2) 그것이 아버지의 징계라는 점이다. 그 징계는 재판장으로서, 그의 응징하는 정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그의 지혜로운 애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한다. 아니,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까닭에, 자식이 지혜롭고 선하게 되기를 바라는 까닭에 징계한다. 그는 자기 아들의 귀엽고 마음에 드는 점을 기뻐한다.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결함이 되고 자기의 기뻐하는 것을 손상시키는 점을 방지하고 치료하기 위해 징계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라"(계 3:19)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다음 사실은 고통을 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1] 고난은 사랑의 언약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에서 유출되는 것이란 사실.
[2] 고난은 그들에게 실제의 해를 입히기는커녕 도리어 그 고난과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아주 풍성한 유익을 주는 것이며 그들을 신성하게 하는 복된 수단이라는 사실.
●지혜의 유익함(잠언 3:13-20)
솔로몬은 지혜를 부지런히 찾으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당부하였고(잠 2:1 이하) 우리가 성실히 그리고 꾸준히 추구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도 심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지혜를 찾았을 때 그로 인하여 얻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유리한 점을 내다본다는 것은 부지런함이 근본이 되고 부지런하도록 박차를 가해 주는 동기가 된다. 그러므로 그는 "지혜를 얻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라는 의심할 나위없는 진리를 제시하면서 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인지 나타내 보이고 있다. 즉 이 지혜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데에 존재하는 참 지혜이며 그의 진리와 섭리와 법칙의 모든 의도에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지혜에 의해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혜를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 우리는 지혜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혜를 발견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그 이익을 얻으며 그 소유권을 얻는 자는 복이 있는 자이고, 또한 "명철을 뽑아내는"(단어의 뜻이 그렇다) 자는 복 있는 자이다.
💡 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 즉 그런 사람은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이끌어 내는 자이다. 그는 지혜를 자기 자신 안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히 주시는" 모든 지혜의 원천으로부터의 기도의 물통으로써 지혜를 긷는 자이다.
(2) 그는 광산에서 광석을 뽑아내는 사람이 그렇듯이 지혜를 얻기 위해 수고하는 자이다. 지혜가 쉽사리 나오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뽑기 위해 보다 많은 힘을 들여야 한다.
(3) 그는 그 지혜 안에서 향상하는 자이다. 얼마간의 명철을 가지고서 지식이 자라나게 하며 다섯 달란트를 열 달란트로 불림으로써 명철을 뽑아내는 자이다.
(4) 그는 그 지혜로 선을 행하는 자이다. 그는 술독에서 술을 떠내듯 자기가 가지고 있는 창고로부터 그것을 꺼집어 내어 타인들에게 "새 것과 옛 것"을 가르치기 위해 전달하는 자이다. 이렇게 선한 용도에 쓰이는 지혜야말로 잘 획득한 지혜이며 목적에 부합하는 지혜인 것이다.
2.우리는 지혜를 매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혜라는 상품에 대해 읽게 된다. 이것이 암시해 주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상인이 자기 생각과 시간이 대부분을 자기 상품에 쏟듯이, 그것을 우리의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2) 우리는 주식의 매매처럼 그것에 모든 것을 투기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기꺼이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진주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사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팔아야 할 만큼 굉장히 비싼 진주이다(마 13:45, 46). "진리를 사라"(잠 23:23). 그는 어떤 시세로 사라는 말을 하지 아니한다. 이는 우리가 그것을 놓치느니 보다는 차라리 어떤 값을 치르고라도 꼭 사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3.우리는 수지맞는 물건을 살 때처럼 지혜를 꽉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손에서 빠져 나갈 위험이 다분하다면 더욱 신경을 써서 그것을 꼭 쥘 것이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지혜를 포착하고 그것을 추적하는 데에 최대한의 정력을 내어야 하며, 그것을 중진시킬 수 있는 온갖 기회를 꼭 붙잡아야 하고, 그것이 지시하는 바를 한 마디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
4.우리는 지혜를 소지해야 한다. 지혜를 붙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코 놓지 않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우리가 잡은 것을 견지해야 하며 굳게 잡고 있어야 한다. 또한 끝까지 지혜의 길안에서 참고 견디며 매질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떠 받쳐야"한다(그렇게 읽는 이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떠받쳐 주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듯이 우리 힘을 다해 그것을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경건한 종교의 세력을 후원하기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5.그것은 초월적인 행복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 재물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행복, 이 세상 물질이 주는 행복을 완전히 능가하는 행복이 바로이 행복이다(14, 15절). 지혜, 그리스도, 은혜, 또는 신령한 축복을 위해 거래를 하는 것은 은이나 금이나 진주(혹은 루비)를 얻기 위해 거래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보다 이익이 많은 장사이다. 한 사람이 이러한 보석들을 풍부하게 가졌다고 상상해 보라. 아니 이 세상에서 소원할 수 있는 온갖 것을 다 가진 자를 생각해 보라(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가졌던 자는 누군인가?).
Ⅱ. 지혜를 찾아 낸 자들의 행복은 어떤 것인가?
(1)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도 하늘의 지혜)를 사지는 못한다. 아니, 그런 것은 "완전히 업신여김을 받으리라." 그것은 "정금으로도 바꿀 수 없느니라"(욥 28:15 이하).
(2) 이 모든 것으로도 하늘이 지혜의 결핍을 보상해 주지 못하며, 그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상실된 영혼에게 보석금이 되어 주지도 못한다.
(3) 이 모든 것은 사람에게 참 지혜자가 누리는 행복의 절반도 주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도 갖지 못한다 할지라도 참 지혜를 소유한 자는 이 세상에서 조차 이런 것들을 가진 인간보다 몇 배 이상 행복한 것이다.
(4) 하늘의 지혜는 은과 금과 진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획득해 줄 것이며 그것을 확실하게 지켜 줄 것이다.
💡 3: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 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2.그것은 진정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들 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으며 그런 모든 것들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16, 17절).
지혜는 여기에서 명철하면서도 관대한 여왕으로서 충성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자기 신하들에게 선물을 건네 주며 자기의 다스림에 복종하는 모든 자들에게 선물을 하사하는 한 여왕처럼 묘사되고 있다.
(1) 장수는 축복인가?
그렇다. 가장 가치있는 축복이다. 생명은 모든 선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여인은 "우편 손"으로 장수를 제시하고 있다. 신앙은 장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갖게 하며 우리로 그 약속의 유자격자가 되게 한다. 땅 위에서 우리가 사는 날이 설사 이웃 사람들보다 더 많지 않더라도 그것은 보다 나은 세계에서 누릴 영생을 우리에게 보증해 줄 것이다.
(2) 부유와 존귀는 축복으로 간주되는가?
이것도 역시 축복이다. 그래서 이 여인은 부귀를 "자기 왼편손"으로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이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에게 복종하는 자들을 그녀가 양 팔로 즉시 포옹할 준비가 되어 있음과 동시에 양손으로 그들에게 즉시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한하신 지혜자가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시는 범위 안에서 이 세상 부를 얻게 될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께 대하여 부자가 되게 하는 참 부도 그들에게 보장된다. 나면서 얻는 것이든 출세로 인한 것이든 어떤 명예도 종교에 부수되는 명예와는 비교도 되지 아니한다. 그것은 "의로운 자를 그의 이웃보다 더욱 훌륭하게" 만들며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하고, 인류 중 모든 온전한 자들에게서 존경과 경의를 자아내도록 해 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은 비록 미미한 가운데 파묻혀 지내는 자들을 저 다른 세상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해 준 것이다.
(3) 즐거움은 딴 어떤 것에 못지 않게 환영받는 것인가?
그렇다. 진정한 경건에는 최대의 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길은 즐거운 길이니라." 지혜의 그 여인이 우리에게 걸어가라고 지시하는 길은 풍부한 기쁨과 만족이 발견되는 그런 길이다. 감각이 누리는 모든 향락과 위안물은 은혜로운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선을 행하는 가운데 얻는 즐거움과 비교가 안 된다. 우리는 그 길이 아름답든 더럽든, 즐겁든 불쾌하든, 우리 여행의 종착지에 올바로 안내해 주는 유일한 길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올바른 길인 동시에 즐거운 길이다. 그 길은 매끄럽고 깨끗하며 장미꽃들이 뿌려져 있다.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종말에 가서 평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도에도 평강이 있다. 종교 전반의 길에 평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길의 개개 소로와 그 모든 길, 즉 각각의 행위와 사례와 그 모든 의무의 길에도 평강이 있다. 이 세상의 길처럼 하나가 달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쓰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길이 다평강이어서 달콤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기도하다. 성도는 피안의 천국의 평강으로 들어가며 현재의 안식(Sabbatism)을 누리는 것이다.
💡 3: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 3: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3.그것은 낙원의 행복이다.
"지혜는 생명나무이도다"(18절). 참다운 은혜는 영혼에게 있어서 생명나무가된다. 우리의 첫조상은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그 생명나무로부터 축출당하였다. 그것은 썩지 않는 씨앗이요,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샘"이다. 그것은 그 한 가운데에 "생명나무"가 서 있는 새 예루살렘의 모형이다(계 22:2; 2:7). 이 하늘의 지혜를 먹고 즐기는 자들은 모든 치명적 질환에서 치유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노년과 죽음에 대한 해독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먹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4.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행복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요 축복이기 때문이다(19, 20절).
"여호와께서 지혜로 땅을 세우셨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신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땅은 여호와께서 세우셨으므로 움직일 수도 없으며, 그것을 창조하신 모든 목적에 추호라도 어김이 없다. 즉 땅은 창조하신 그 목적에 놀라우리만치, 그리고 예외 없이 부합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천제의 모든 운동을 가장 훌륭한 모양으로 지정하셨다. 천제들은 광활하다. 그럼에도 그들에는 흠도 없으며, 무수하지만 무질서하지 않고 그 운동은 빠른데 파멸되거나 손상됨도 없다. 깊음의 바다가 터지고 궁창 아래에서 물이 나오며 "구름이 이슬을 내리고"("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고"-우리 성경;역주)궁창 위로부터 물이 나온다. 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는 자는 복되도다." 왜냐하면 그는 지혜로 말미암아 "모든 선한 언어와 행실을 완전히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 지혜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지음을 받았고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한 그를 "지혜의 하나님으로 삼는" 이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앞에 나온 장수와 부와 명예의 모든 약속을 실행하실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재화가 다 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 3: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 3:20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지혜를 보유하라는 권고(잠언 3:21-26)
솔로몬은 지혜를 붙잡을 뿐만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 복된자들이라고 표명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는 데에 위로가 있으리라고 확신시키면서 지혜를 보유하도록 하고 권면하고 있다.
Ⅰ. 그의 권면은 경건한 신앙 생활의 규칙을 항상 조망하고 심중에 두도록 하나는 것이다(21절).
1.이것들을 언제나 조망(眺望)하라는 것.
"내 아들아!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눈이 이들에게서 떠나 허영을 좇아서 방황하지 않게 하라. 언제나 그들을 마음에 유의하며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것들을 틈틈이 생각해 보며 사귀고 결코 네가 충분히 오래도록 그들을 보아서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망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들과의 친분을 유지하며 도야하여라." 서예를 배우는 자들은 자기가 본으로 사용하는 것에 항시 눈을 붙이고 있어야 하며 자기 시야에서 글씨본을 사라지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신중히 행하려는 자들은 지혜의 말씀을 꾸준히 주의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2.이것들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으라는 것. 그것은 바로 마음의 보고, 즉 마음에 숨은 속 사람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지혜와 근신의 원칙을 고수해야 하며 그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지킬 가치가 있는 재산인 것이다.
💡 3:21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Ⅱ. 이러한 권면을 강조하게 되는 논거는 이렇게 지켜진 지혜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말로다 할 수 없는 이익에서 나온다.
1.강함과 만족이란 점에서.
"그것은 네 영혼의 생명이 될 것이다(22절). 그것은 네가게을러지고 태만하게 될 때 너를 자극하여 의무의 길로 달려가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은 네가 낙심하고 낙담하기 시작할 때 고통 중에 있는 너를 소생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너의 영적인 생명력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다." 영혼의 생명이야 말로 참 생명인 것이다.
💡 3:22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2.명예와 명성이란 점에서.
"그것은 금사슬이나 보석처럼 네목에 장식(혹은 은혜)이 될 것이다. 네 턱에 은혜(이렇게 해독하는 이도 있다)가 될 것이며, 네 맛과 기호에 은혜로울 것이다(더러는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것은 네가 말하는 모든 것에 은혜를 주입할 것이며(또 딴 사람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마음에 드는 말을 네게 공급해 주리라. 이 말들로 인해 너는 신앙을 얻게 될 것이다."
3.안전과 보장이란 점에서.
그는 네 개 성구에서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의도는 "의의결과"(여기에 나오는 지혜와 동일하다)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데에 있다(사 32:17). 선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거두어 들여진다. 거기에서 그들은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안전하며 다음 여러 가지 경우에도 편안할 수 있다.
(1) 낮의 활동에서(23절).
우리 신앙이 우리 반려자가 돼 줄 때 그것은 우리의 호송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리라. 자연적인 삶과 그에 속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보호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영적 삶과 그와 관계된 모든 일도 그의 은혜의 보호 아래 있다. 그래서 너는 죄악에 빠지거나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질 것이다." 지혜는 우리에게 유혹으로부터 안전한 길을 지시해 줄 것이며 될 수 있는 대로 그 안전한 길에 머물도록 할 것이고, 거룩한 보호로써 우리가 능히 그 길을 행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의무의 길은 안전한 길이다. "우리는 엎어질 위험에 처해 있지만 지혜가 너를 지켜 주어서 네 발이 거치지 않게 되리라" 많은 자들을 실족케하고 거치게 하여 엎드러지게 하는 것에 너의 발은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지혜가 너로 그것을 넘어 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 줄 것이다."
💡 3:23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 밤의 휴식에서(24절).
우리가 쉴 때는 노출된 채 있으므로 극히 두려움을 받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고 선한 양심을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누울 때에 화재나 도둑이나 유령이나 어떤 암흑의 공포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우리와 우리의 모든 친구가 잠자고 있는 때에라도 이스라엘과 모든 참 이스라엘인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줄 우리가 아는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그에게 네 자신을 의탁하였고 그의 날개 그늘 아래 피신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망을 보기 위해 앉아 있을 필요가 없이 누울 것이로다. 누우면 잠을 자게 될 것이고 근심 걱정과 불안 때문에 뜬 눈으로 새우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밖에서 오는 것이든 안에서 오는 것이든 어떠한 두려움으로도 동요되는 일이 없이(시 4:8; 116:7), 네 잠은 달 것이며 상쾌할 것이다." 편안한 밤을 보내는 비결은 선한 양심을 간직하는 것이다.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의 잠처럼, 지혜롭고 경건한 사람의 짐은 달다.
💡 3:24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3) 최대의 곤경과 위기에서.
온전과 정직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창졸간의 두려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25절). 불시에 기습하는 불의의 해는 생각해 보고 말고 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으므로 우리는 극히 당황하기 쉽다. 그러나 지혜롭고 선한 사람은 제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고통을 주거나 아무리 갑작스레 닥치는 놀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어떠한 두려움에도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라.
💡 3:25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1] 즉 그것은 악한 자들이 거룩한 종교와 경건한 신앙인에게 자행하는 멸망인 것이다. 설사 그런 멸망이 임하고 곧 문앞에 닥친 것같이 여겨지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설령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징계하는 도구로 그런 악인을 사용하실지라도 그는 결코 악한 자가 자기 백성을 박멸하는 원흉이 되도록까지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다.
[2] 이것은 오히려 악인들이 순식간에 맞게 될 멸망을 말한다. 그 멸망은 꼭 임할 것이다. 그런데 소심한 성도들은 그 때 자기들이 그 멸망에 포함될 것을 염려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로 하여금 심판이 비록 전체적으로 황폐케 하며 혹은 최소한 혼잡하게 행해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가자기의 백성인가를 아시며 귀한 자와 악한 자의 구별법을 아신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게 하라. 그러므로 극히 무섭게 보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대저 여호와는 너를 안전히 지켜 주시는 보호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너를 든든하게 지켜 주시는, 너의 의지할 자가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네 발이 원수에게 걸리지 않게 하시며 네 자신의 두려움에 빠지지도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성도들의 발을 지키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 3:26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이웃에 대한 지혜로운 교훈(잠언 3:27-35)
우리의 의무는 하나님께 대한 것과 인간에게 대한 것으로 양분되는데, 참다운 지혜는 이 두 가지의 우리 의무를 정당히 이행하는데에 있으며 그것도 경건함과 아울러 정직한 가운데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대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 관련되는 지혜의 여러 가지 훌륭한 교훈들이다.
Ⅰ. 우리는 정의와 자선에 있어서 그것들을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자에게 줘야 하며 그 실천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27, 28절).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그들에게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이거나 아니면 네 돈에 대한 사랑이 너무지나쳐서)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 네 입장이 그럴 능력을 갖지 못한 처지라면 이같은 것이 기대될 수도 없다. 그러나 네가 사치와 낭비로 인하여 정의롭게 행할 수 없게 되고 자선을 베풀지 못하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너의큰 실책이다. 그리고 만약 마땅히 받아야 할 자에게 줄 자력이 없다기 보다 차라리 네 자신의 위안과 편안이 궁핍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너를 무능력하게 하셨다면 너는 그것을 너의 최대 슬픔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그것을 "아끼지 말라(이 단어는 억제한다는 뜻임). 이 말씀은 그렇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렇게 해 줄 것이 기대되었지만 손을 오무려들이고 "자비심이 닫혀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딴 사람들의 자선 행위를 막아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들 스스로도 그 행위를 기피하여 우물쭈물해서도 안 된다. "네가 오늘 가지고 있고 그것을 네 손에 장악하고 있거든 네 이웃에게 이르기를 이번에는 돌아가고 보다 적당한 때에 다시 오라, 그러면 내가 어떻게 되나 보리라, 내일 내가 주겠노라고 말하지 말아라. 너는 네가 내일까지 살지도 또 그것이 내일 네게 있을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더라도 이처럼 내 돈과 헤어지기 싫어하지 말아라. 해야 할 의무를 발뺌하려고 구실을 만들지 말며, 네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하고서 즐거워하지 말며, 적선하는 이가 걸인에게 하듯 권위를 과사하려고 하지도 말아라. 기꺼이, 즐겁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양심의 원리로 마땅히 받아야 할 자에게 선을 베풀어라." "그것의 주인들과 소유주들"에게(단어의 의미는 그러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을 차지할 권리가 있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어라.
💡 3: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 3: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 우리의 정당한 부채는 사기나 협잡이나 연기함이 없이 갚을 것.
- 일한 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것.
- 우리의 친척들과 우리에게 의조하고 있는 자들을 부향할 것.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교회와 국가, 위정자와 목회자에게 마땅히 바쳐야할 것을 바칠 것.
- 우정과 인정어린 모든 행위를 다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며 무슨 일에나 이웃의 도리가 다할 것.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우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황금률에 의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 불쌍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자비롭게 대할 것. 타인들에게는 생활 필수품이 없고 우리에게는 그들을 후원해 줄 자력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마땅히 그들에게 돌려 주어야 할 것으로 간주하여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의연금은 "의로움"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그것이 가난한 자에게 갚아야 할 빚인 까닭이며 지불을 연기해서는 안 될 빛이기 때문이다. Bis dat, qui cito dat-즉 속히 쥐는자는 두배를 주는 자이다.
Ⅱ. 우리는 누구에게든 상처나 해를 입히려고 꾀해서는 안 된다.(29절).
"네 이웃을 모해하지 말라. 어떻게 하면 네 이웃에게 들키지 않고 해를 끼치며, 어떻게 하면 그의 몸이나 물건이나 명망에 손해를 입힐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지 말아라. 더욱이 그가 네 곁에서 안연히 살면서 네게 집적거리지 않고 너를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으며 따라서 방심하고 있다 하여 그에게 해를 입히려고 생각한다는 것은 더더욱 부당한 일이다." 사람에게 앙갚음을 하면서 예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예나 우정의 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자기 이웃을 은밀히 돌로 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이웃 사람들이 우리가 자기들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는 호감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기화로 그들을 기만하여 해를 입힌다면 얼마나 비열하고 점잖지 못한 일이겠는가!
💡 3: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Ⅲ. 우리는 다투고 소송하기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30절).
까닭없이 사람과 더불어 다투지 말라. 네가 아무런 명분을 갖지 않은 일로 싸우지 말아라. 우연히 잘못 본 것에 불과한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하여 성내지 말아라. 네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거나 정당성을 밝힐 수 있는 때에 부질없는 불평이나 트집 또는 성가신 소송으로 "네 이웃을 괴롭히지 말아라." 법은 최후의 수단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힘이 미치는 한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산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동시에 우리의 이득도 되기 때문이다. 주고 받는 계산이 끝나면 싸워서 득볼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3:30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Ⅳ. 우리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번영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31절).
이 경고는 시편 37편에서 매우 많이 강조된 것과 동일하다. "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라. 그가 설사 부유하고 대단하며, 비록 편안히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자기 주위의 모든 자로 하여금 늘 자기를 두렵게 여기도록 한다 하더라도 그를 행복한 자로 생각하지 말며 나도그런 처지에 있어 봤으면 하고 부러워하지 말아라. 그의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그를 본받지 말며 그가 부자가 되기위해 취한 경로를 밟지 말라.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너도 그렇게 하면 꼭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하는 데로 해 볼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그것은 비싼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죄인들을 부러워할 이유라고는 전혀 없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솔로몬은 이제 본장의 마지막 네 구절에서 죄인의 처지와 성도의 처지를 같이 비교하고 있다(자기 아버지 다윗이 한 것처럼, 시 37편). 그는 하나하나를 대조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도가 비록 억눌림을 당하고 있을 망정 얼마나 복된 존재들이며 악인은 비록 압제자이지만 얼마나 불행한 존재들인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심판을 받기로 되어 있으며, 하나님 앞에 서는 때가 바로 그 때이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한 판단 하시는 그대로가 심판이며, 세상의 책에 나타나는 것 그대로가 심판이 될 수는 없다.]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자들은 정당하다. 죄인은 다른 자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라면 죄인이 아무리 번영을 구하더라도 성도는 그를 부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만큼 복된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 3: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1.그것은 죄인들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거나 성도들은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32절).
패역한 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속 멀어져 가는 자들이며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심술궂게 반대하는 삶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는 자"들이다. 자기 손수 지으신 그 어떤 것도 미워하시지 않는 그 분이지만 이와 같이 스스로를 못쓰게 망치는 자들은 증오하신다. 저들은 그가 보시기에 가증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증스러움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의인들은 그들을 부러워할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교제를 가지신다. 이 교제는 세상에게는 비밀이며 그들은 나그네가 간섭할 수 없는 기쁨을 이 교제에서 얻는다. 그는 자기 사랑의 은밀한 증거를 의인들에게 전달하신다. 그의 언약이 그들과 함께 있다. 그들은 그의 마음을 알며 그의 섭리의 의미도 의도를 딴 사람들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나의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서 숨기겠느냐?"
💡 3: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2.죄인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으니 곧 그들과 그들의 집이다. 그의 저주 아래 있다. 반면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으니 곧 그들과 그들의 거소가 다그의 축복 하에 있다(33절).
악인이 가진 집은 아마 강하고 으리으리할 것이지만 "여호와의 저주"가 그 위에 있고 "그 안"에 있어서 그 가정의 일이 잘 되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축복이 저주가 된다(말 2:2). 몸은 아주 비대하게 살이 쪄 있을 때에도 "영혼은 파리하게 하신다(시 106:15). 저주는 말 없이, 천천히 역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둥병이 좀먹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저주는 "그 집의 나무와 그 집의 돌"을 아울러 소멸시킬 것이다(슥 5:4; 합 2:11). 의로운 자도 처소가 있다. 즉 초라한 오두막집(이 단어는 양우리에 대해 사용하는 말임)으로서 아주 보잘 것 없는 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을 축복하신다. 그는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까지 줄곧 그 집을 축복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저주나 축복은 그 집에 사는 자가 악하냐 경건하냐에 따라 그 집에 임한다. 그리고 비록 가난하지만 축복받은 가정이라면 저주받은 가정을 부러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은 확실히다.
💡 3: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하나님은 죄인을 경멸하시나 성도들에게는 경의를 표하신다(34절).
(1) 자기 스스로 높이는 자들은 낮아질 것이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들을 비웃으신다." 종교의 규율에 복종하는 것을 비웃고 하나님의 멍에 데기를 냉소하며 그의 은혜에게 신세지기를 싫어하고 경건함과 경건한 백성을 조롱하며, 그들을 골리는 일이나 들춰 내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는 교만한 자들, 바로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냉소하실 것이며 온 세상 앞에서 그들을 멸시받게 하실 것이다. 그는 저희의 무능한 악의를 업신여기시며 "하늘에 앉아 저희를 보고 웃으신다"(시 2:4). 그는 그들에게 보응하시며(시 18:26), "교만한 자를 거스리신다."
(2) 스스로 겸손한 자들은 높임을 받을 것이다.
"그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때문이다. 그는 그들 안에 은혜를 역사시키셔서 그들로 존귀케 하시며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께 기뻐 받으시는 바가되고 사람들 앞에서 시인을 얻는다." 거만한 자들로부터 받는 모욕을 끈기있게 참는 자들은 하나님과 모든 선한 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엇 때문에 거만한 자들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의 행위(혹은 길)를 좇겠는가!
💡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4.죄인들의 종말은 영원한 치욕이 될 것이나 성도의 종말은 끝없는 영광이 될 것이다(35절).
(1) 성도들은 지혜있는 자들이며 스스로 지혜롭게 행동한다. 저희 신앙 생활 때문에 미미하게 파묻혀 지내며, 또 저희 신앙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지만 그들은 끝내 틀림없이 영광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그들이 받는 영광은 너무나 지극한 것이며 영원한 비중을 갖는다. 그들은 그 영광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기업으로 얻게 될 것이니 그것은 가장 달콤하고도 확실한 향유(享有)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34절). 그러므로 저들은 영광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 즉 은혜는 영광인 까닭이다(고후 3:18). 은혜는 영광의 시작이요 영광의 모형이다(시 84:11)
(2) 죄인들은 우매자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치욕을 준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이 위대해질 수 있는 길을 택하고 있기라도 한 양 영광에 대한 전망으로 우쭐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증명할 것이다.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 그들이 영달을 누리게 되는 대신 치욕을 당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벌은 더욱 더 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원한 당황을 기뻐하실 거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항상 바라지 않으면 안 될 모든 현달이 될 것이다.
💡 3: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