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룻기 2, 사도행전 27, 예레미야 38, 시편 10
묵상구절
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18:2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18:3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18: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18:5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18: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18: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18: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18: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8: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18: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18: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18:16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18:17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18:18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18: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18: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18:23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 참 지혜의 촉구(잠언 18:1)
💡 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이 말씀의 원문은 난해하여 여러 갈래로 상이하게 이해가 되고 있다.
- 혹자는 이 말씀을 독선적 분리주의에 대한 책망으로 이해한다.
남의 의견이나 딴 사람들의 모임에서 "나뉘는"것을 자부심으로 삼는 자들은 자기 앞에서 하는 말이면 모조리 공박하고 자신의 새로운 의견을 전개시키며, 그것이 아무리 엉터리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집착하여 양보하는 법이라곤 없다. 이런 것은 헛된 자랑이나 욕망이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그들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찾는 이들이요 참견하는 자들이다. 그는 "자기 소욕을 따라 구하고, 온갖 일에 참견하여" 모든 사람들의 일에 판결하기를 자처한다. 그는 뚱하고 물례하다. 대체로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자부심이 강한 자들이 그러하며, 그런 자들은 이렇게 하여 스스로 남의 조소거리가 되고 딴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것이다.
- 우리 성서의 번역은 이 말씀을 지혜의추구에 부지런하라는 촉진제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지식이나 은혜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을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도 큰 이익이 되는 것으로서 열망해야 한다(고전 12:31).
우리가 추구하지 못하게 하고 물러서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스스로 "나뉘어"져야 하며, 이 세상의 헛된 소음에서 물러나야 하고, 그리고 나서 "온갖 참 지혜"의 수단과 교훈을 찾고 참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꺼이 수고를 겪고 온갖 방법을 다 시험해 봐야 하며, 다양한 견해를 다 잘 알고 있어 선한 것을 입증하고 고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명철에 대한 미련한 자의 태도(잠언 18:2)
💡 18:2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미련한 자라도 명철한 자로 자처할 수 있고 총명자로 자처하는 수단을 찾거나 간섭할 수 있다.
- 그러나 그는 그 일에서 참 기쁨을 얻지는 못한다. 그것은 단지 자기 친구들에게 환심을 사거나 자기의 신망을 보존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책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자기 일이나 성서나 기도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기의 농락물을 가지고 희희락락하기를 원한다. 학문이나 신앙을 즐거워하지 않는 자들은 그 어느 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 그는 총명하게 된다는 일에 대해 아무런 선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오직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하려고 한다. 그가 노리는 것은 자기를 과시할 수 있는 어떤 것이며 자기의 미련함을 장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까닭에 자신의 의도가 더 나은 것으로 보이기만을 원하는 것이다.
●악한 자의 멸시와 능욕(잠언 18:3)
💡 18:3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이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 악인은 냉소적이며 딴 사람들을 "멸시한다"는 것.
"악한 자가" 지혜의 강좌나 경건한 예배를 위한 모임 속에 들어올 때, 어느 좌석에 이를 때에라도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백성과 목사, 그리고 그 모든 말씀과 행위에 대한 "멸시가 따라오느니라."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에게서는 그들의 냉소자라는 사실밖에는 달리 기대할 것이 없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능욕"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면 무엇이나 업신여기고 야유를 할 것이다. 그러나 슬기롭고 선한 사람은 이를 개의치 말아야 한다. 옛 잠언에서도 이르기를 "악은 악에서 나오느니라"고 하였다.
- 악인은 수치스런 사람들이며 "멸시"를 자초한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그를 업신여기는 자들이 멸시를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던 때문이다. 언제든지 죄가 들어오면 즉시 치욕도 뒤따라 들어왔고, 죄인들은 스스로 자신을 천하게 만든 자들이다. 그들은 멸시를 자기 위에 가져 올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과 "능욕"을 자기 가족이나 친구, 목사, 자기들과 관계가 있는 자라면 누구에게든지 초래한다. 그러므로 자기 명예를 확보해 두고자 하는 자들은 자신의 미덕도 보유해야 한다.
●명철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말(잠언 18:4)
💡 18:4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본문의 직유는 다음 내용을 우아하게 치환한 듯한 감을 준다.
- "지혜의 샘은 깊은 물과 같으니라" 이지적이고 지식이 있는 자는 쓸모있는 것들을 훌륭하게 온축하고 있는 보고가 있어서 그것은 어떤 경우에든지 적절하고 유익한 말을 그에게 공급해 준다. 이것은 "깊은 물과 같아서" 소리는 없으나 결코 마르지 아니한다.
- 그러한 "사람의 입의 말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말할 만한 사유가 보이면 그에게서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며, 그 말은 아주 수월하고 자유스러우며 유창하여 막히는 데가 없다. 그의 말은 깨끗하고 신선하며, 또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해 준다. 그의 "깊은 물"로부터는 시냇물이 저지(低地)를 축여 주듯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때마다 필요한 것이 것이 흘러 나온다.
● 공정한 재판(잠언 18:5)
💡 18:5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법의 행사에 관여하는 자로서 다음과 같이 판결을 왜곡시키는 자는 정죄받아 마땅하다.
- 높은 지위나 재산이나 어떤 개인적 정실 때문에 사람들의 죄를 묵과하며 착취와 폭력을 비호하고 장려하는 자. 그들이 어떤 구실을 내세우더라도 이처럼 "악인을 두호하는 것은 선하지 아니하니라." 그와 같은 짓은 하나님께 죄가 되고 정의의 법에 대한 모독이며, 인류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고 죄와 사탄의 나라에 대한 실질적 봉사가 된다. 중시해야 할 것은 사건의 사실여부이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것이다.
- 가난하고 세상에서 저급한 존재이거나 같은 패거리나 종파에 속하지 않거나 타국의 나그네라 하여 정의와 공평을 어겨 판결하는 자. 이런 것은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또는 뒤엎는)것"이다. 그런 의인은 마땅히 바로 붙들어 주어야 마땅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바로 서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미련한 자의 입(잠언 18:6,7)
솔로몬은 악인들이 멋대로 혀를 놀림으로써 딴 사람에게 얼마나 해독을 끼치는가 하는 것을 여러 번 지적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악인들이 그 스스로를 얼마나 해롭게 하는 것인가를 제시해 주고 있다.
💡 18: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 그들은 다툼에 휩쓸려 들어간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어떤 이유나 필요도 없이 타인들이 들으면 반대하지 않을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의견을 내놓음으로써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이렇게하여 언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혹은 도발적인 언사를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의 분개를 자아내게 되고, 또 그에 따라 상대는 명예 회복을 요구하고 나서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무시하고서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말함으로써 분쟁을 야기시킬 것이다.
교만하고 격하기 쉬운 자들이나 술주정뱅이는 미련한 자들로서 그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지혜있는 자도 자기 의사에 반하여 언쟁에 끌려들어 가는 수가 있으나, 다툼을 피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즐겨 뛰어드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며 뒤늦게야 이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 그들은 자기 자신을 징벌에 내어 준다. "미련한 자의 입은" 실제로 "매를 자청하느니라." 그가 이제껏 말해 온 것은 매로 벌받아도 마땅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는 현재도 매로 억제하고 금지 시킬 필요가 있는 말을 여전히 뇌까리고 있는 것이다. 아나니아도 부당하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였던 것이다.
💡 18: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 그들은 스스로 멸망에 말려들게 된다. 과거에는 딴 사람을 멸망시켜 왔고 또 그것을 원으로 삼았던 "미련한 자의 입"이 드디어 "그 자신의 멸망"으로 판명된다. 이 멸망은 아마 사람들에게 주륙당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시므이의 입은 자신의 멸망을 가져왔고 자신의 머리에 대적하여 말했던 아도니아의 입도 그러했다. 우매한 자는 어리석은 말로 재판정에 뛰어들고는 자기가 한 말을 정당화하고 변명함으로써 자신을 안전 지대에 옮겨 놓은 줄로 생각하지만, 실은 자기를 방어한다고 했던 말이 자기를 공격하는 말이 되며 그의 입술은 여전히 자기 영혼의 그물이 되어 더욱 더 얽어 밸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악한 말 때문에 하나님의 법정에서 정죄될 때는 그들의 입이 곧 그들의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저희 혀를 서늘하게 해 줄" 한 방울의 물이나 위로도 허용하려 들지 않을 정도의 극악한 파멸일 것이다. 즉 혀는 그들을 걸리게 하는 그물이요 그들의 몸서리치게 하는 고문자가 될 것이다.
● 고자질장이의 폐해(잠언 18:8)
💡 18: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고자질쟁이들은 이야기를 이집 저집으로 몰래 퍼뜨리고 다닌다. 그들의 말 중에는 아마 진실도 다소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개하기에 적합치 않은 비밀이나 야비하게 그릇 표현되고 그럴 듯하게 꾸민 말일 것이다. 그런 모든 말이 노리는 것은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우정을 깨뜨리며 친척이나 이웃 간에 불화를 조성시키고 이간질하는 일이다. 그런 자의 말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 "사람이 부상당하는 때와 같다"(난외주는 그렇게 해독한다). 그들은 이러 저러한 자의 비행 때문에 무척 충격을 많이 받았노라고 꾸며 보이며, 그들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처럼 위장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최대의 슬픔이며 정말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그 일로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이나 내심으로는 "불의를 기뻐하고"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있으며, 자만심과 즐거움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실상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 말들은 금박을 입히고 사탕발림을 한 "독약과도 같이 뱃 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
- "상처와도 같다"(우리 성서와 다름). 그 상처는 깊으며 죽음을 가져오는 치명적인 상처요, "뱃속 깊은 데에 있는 상처"이다. venter medius vel infimus-즉 중복부나 하복부, 흉부나 복부에 입는 상처는 치명상이다.
이와 같이 고자질장이의 말은 그 말의 주인공을 부상시키고 그의 신망과 이익에 손상을 입히며, 그 말을 듣는 이에게는 그의 사랑과 자비심을 상하게 한다. 그 말은 말하는 당사자를 범죄하게 하여 그의 양심에 상처를 입힌다. 아마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이런 말을 가볍게 여기는 듯하나 그들은 마땅히 사랑해야 할 자에게 대한 자기 애정을 소원하게 함으로 인하여 부지불식간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게으른 자의 해(잠언 18:9)
💡 18: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 낭비는 매우 그릇된 살림살이이다. 세상에는 자기 재산을 마구 낭비하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살며 자기 능력 이상으로 써버리거나 주거나 하여 사실상 자기의 가진 것을 던져버리는 거나 거의 다름이 없으며 그래서 자기 재물을 바닥나게 하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바보로 낙인 찍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며 그들은 맡은 바 달란트에 대하여 하나님께 거북한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 게으름이라 하여 이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자기 일에 태만하며 자기 "손을 늘어뜨리고 있고"(본문의 의미는 그러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 자기 손가락을 빨고 서 있으며, 자신의 사업을 등한히 하여 전혀 일하지 않거나 일하지 않는 듯한 자는 방탕하여 패가하는 자의 친형제인 것이다. 그는 낭비하는 자만큼 어리석은 자이며 빈궁에 이르는 확실하고도 빠른 길에 서 있는 자이다. 전자는 자기가 가진 것을 뿌리는 데 반하여 후자는 자기가 가질 것을 손가락 사이로 달아나게 한다.
이 관찰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도 너무도 역시 부합하는 일이다. 기도하는 일이나 말씀을 듣는 일에 소홀하고 부주의한 자는 전혀 기도하지 않거나 전혀 말씀을 듣지 않는 자와 같은 부류이다. 의무의 불이행과 의무에 태만한 것은 죄를 이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다.
● 여호와의 견고하심(잠언 18:10)
💡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
여호와의 "이름은" 그들에게 "견고한 망대"가 된다. 그들은 피곤할 때면 그 안에서 쉴 수 있고 추격을 받을 때면 그 안에 피신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그들은 원수들보다도 높이 치솟아 있을 수 있고 그들에게 대항하여 요새와 같이 강하게 될 수 있다. 하나님과 그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계시 속에는 우리를 언제나 편안히 해 주기에 충분한 것이 있다. 이 망대 속에 쌓아 놓은 재물은 성도들을 부자로 만들고도 남음이 있으며 끊이지 않고 축제를 벌이고 그들의 무진장한 보고가 되기에 족하다. 이러한 망대의 강력한 힘은 성도를 보호하기에 충분하다. "여호와란 이름"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알리신 모든 것이며, 그의 칭호요 속성일 뿐만 아니라 그의 언약이며 그 모든 약속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합해져서 한 망대를 구성하며, 그 망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강하고 뚫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망대가 된다.
- 하나님 안에서 얻는 성도의 안전함.
이 망대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자들에게는 그것은 강한 망대가 된다. "의인"은 믿음과 기도,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그에게 대한 의존심을 지니고, 피난지된 그리로 "달려가느니라."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이익을 얻으리라고 확신하는 그들은 그 이름이 주는 위로와 혜택을 얻는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며 세상에서 물러나와 위에서 살고,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거하며 하나님은 그들 안에 거하신다. 따라서 그들은 안전하며 그들 스스로도 안전하게 느끼고, 또 그들은 사실상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부자의 재물(잠언 18:11)
💡 18:11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솔로몬은 10절에서의 의인에게 대한 낭비가 얼마나 견고하며 신용할 만한 지를 묘사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이 세상 것에서 자기 분깃과 보물을 가지며 자기 마음을 거기다 두는 부자의 방어가 얼마나 거짓된 것이며 기만에 찬 것인가 하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부자는 경건한 자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이나 자기 재물을 믿고 있으며, 또 기대 또한 경건자의 기대 못지 아니하다.
- 그는 자신을 얼마나 든든히 지키는가?
그는 자기 "재물로 그의 성"을 삼는다. 그는 하나의 시(市)를 통째 자기 수중에 넣기라도 한양 아주 굉장히 자기 만족 속에서 거기에 거하며 그 속에서 다스린다. 그것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 속에서 그는 견고하게 몸을 지키며 천하에 자기를 해칠 것은 없다는 듯이 위험도 업신여긴다. "그의 자만은 자기 갑옷이다." 그의 재물은 그가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성벽이며 그는 그것을, 사다리로 올라가 타넘을 수도 없는 "높은 성벽"같이 생각한다(욥 31:24; 계 18:7 참조).
- 그렇다면 그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인가?
그것은 "견고한 성"이요 "높은 성벽"이지만 그것은 다만 그 자신을 독단에서만 그렇다. 실제로는 그것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명될 것이며 모래 위에 세운 집 같은 것으로 입증될 것이다.
그것을 세운 자가 극히 필요로 할 때, 그것은 그를 실망시킬 것이다.
● 교만한 겸손(잠언 18:12)
💡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 교만은 멸망의 전조이며 마지막에 가서는 멸망이 자만심에 대한 형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멸망의 선봉"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의해 더욱 빠져들기 때문에 여늬 때보다 더욱 거만해지며, 따라서 그들의 멸망은 더 쓰라리고 놀라운 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설사 늘 그렇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교만으로 높이 들리운 다음에는 패망이 오는 것이다(16:18).
- 겸손은 존귀의 전조이며 사람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 준비시키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15:33) 존귀는 마지막에 가서 겸손에 대한 상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아주 믿기 싫어하는 일은 자주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경솔한 자의 수치(잠언 18:13)
💡 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사람들은 칭찬을 얻고자 하는 일로 인해 흔히 자신을 노출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살펴 보자.
- 어떤 이들은 신속하다는 데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은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로서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전에, 뿐만 아니라 그것을 채 듣지도 않고 대답한다. 그들은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자기들의 명예가 된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말만 듣고서 그들은 진상이 너무나 명백하여 다른 한 편의 말은 번거롭게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그 일에 대한 평가를 끝내고 그 사건의 시비를 전부 통달했다는 듯한 태도이다. 임기응변하는 재치는 써먹기에 즐거운 것이기는 하나, 반면에 일을 신중하게 행하는 것은 확고한 판결과 완전한 지혜가 되는 것이다.
- 신속함을 자랑하는 자들은 보통 주제넘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한다. 사람이 자기가 이해하고 있지도 못한 일에 대해 말하려고 돌아다니거나, 진상을 완전히 알지도 못하고 또 엄밀한 조사를 끝까지 해 보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리거나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면 그것은 수치이며 또 치욕이 될 것이다.
●심령의 힘과 고통(잠언 18:14)
💡 18:14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 외면적인 고통은 마음이 즐겁고 편안한 이상 참을 만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체적으로나 명예나 재산상으로 당하기 쉬운 질병과 재난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것은 선한 처신과 용기만 있다면 견디어 낼 수 있으며, 이성과 각오 아래 행동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특히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 양심이 자기를 위하여 증언해 준다면 그런 고통 하에서도 버티어 나갈 수 있다. "사람의 심령이 그 병을 능히 이긴다"고 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인의 심령이야, 뿐만 아니라 환란의 날에 우리 심령 안에서 증거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야 말해 무엇하랴!
- 모든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고통이 가장 견디기 어렵고 무거운 것이다. 이 고통은 딴 여러 가지 병을 짊어져야 하는 어깨를 더욱 쓰라리게 만든다.
이성이 환란을 일으키며, 어떤 형태로든 고난을 당하게 되어 구제받을 희망이 없어지는 좌절을 맛봄으로써 심령이 상하게 된다 하자. 또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깨닫고 경악하게 되거나 심판과 열화 같은 분노에 대해 전전긍긍하게 됨으로써 심령이 상하게 된다면 그것을 "누가 능히 일으키겠는가?" 심령이 상한 사람 자신도 자기를 도와 줄 수가 없고, 그들을 도울 방법을 알고 있는 자도 없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지식을 구하는 자(잠언 18:15)
💡 18: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 명철한 자들은 지식을 구할 것이며 자기 귀와 마음을 지식의 추구에 기울일 것이다. 귀는 지식의 획득 수단이 되고 마음은 자기들이 듣는 것을 신앙에 다 혼합하여 선히 활용하는 일에 사용된다. 명철한 자는 스스로 명철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아직도 자기에게는 사려 분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명철한 자이면 자일수록 그는 지식, 즉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무나 천국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식의 추구에 더욱 열심인 법이니, 이는 그것이 바로 최선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 명철하게 지식을 구하는 자는 기필코 지식을 얻을 것이니,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구해도 헛되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얻을 것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귀가 지식을 구하면 마음이 그것을 얻어 간직학 되고, 또 그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다. 우리는 지식을 얻어 우리 머리 속에 담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슴속에도 간직해dio 하며, 그 지식의 냄새와 맛까지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지식의 효능과 영향력을 체험해 봐야 한다.
●선물의 효과(잠언 18:16)
💡 18:16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선물(즉 뇌물)이 얼마나 굉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인지는 그가 앞서 17장 8절 및 23절에서 언급하였다. 여기에서는 선물, 즉 하급자가 자기 윗 사람,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지고 드리는 선물의 위력을 설명하고 있다. 좋은 선사품이 기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만일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선물"이 그의 석방을 주선할 수도 있다.
심지어 무고하게 억류되어 있는 자를 위해 사재를 들여서라도 응호하는 자들은 그로 인해 상급을 기대할 수도 있다. 혹은 비천한 자가 큰 인사를 만나려고 해도 접근할 수 있는 방도를 알지 못할 때, 그는 그의 하인에게 사례금을 주거나 그 사람에게 직접 선물을 건네 줌으로써 소원 성취를 할 수가 있다. 그들은 그에게 너그러이 자리를 비켜 줄 것이다.
- 그 사람의 승진에 대하여.
선물은 그를 명예와 권세를 가진 존귀한 자들 사이에 앉을 수 있도록 인도해 줄 것이다. 공적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던 자들이 선물에는 꼼짝 못하는 세태(世態)를 볼 때 얼마나 부패한 세상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더구나 선물은 전혀 유효하지 않고 부적당한 자들에게까지 그들이 바라는 것을 얻어다 준다. 그리고 그렇게 뇌물을 주고 한 자리를 차지한 자들이 그 공직으로 뇌물을 받는다는 것은 하등 신기한 일이 아닐 것이다. vendere jurapotest, emerat ille prius-즉 법을 산 자는 그 법을 팔 수가 있다.
● 신중한 판단의 필요성(잠언 18:17)
💡 18:17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의 이야기는 딴 얘기를 들을 때까지만 선하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 먼저 말하는 자는 보나마나 일사 천리로 얘기를 해 나갈 것이며,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나열하고 가장 그럴 듯하게 가장 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의 주장은 옳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 원고가 증언을 다 마치고 나면 피고의 말을 듣고, 피고에게도 반증을 제시하고 반대심문을 하도록 하며, 앞서 나타난 사실과 전혀 딴판으로 나타나는 그것으로 원고가 주장한 사실의 허위성과 오류를 지적하도록 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두 개의 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분쟁의 해결(잠언 18:18)
💡 18:18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 분쟁은 흔히 강한 자들 간에서 발생한다.
강자들은 자기 명예와 권리에 대해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양자를 모두 고집하며, 자기 쪽이 이기리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으므로 화해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쉽사리 응락하려 들지 않는다. 이에 반해 빈약한 자들은 억지로라도 화해하지 않을 수 없으며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 달리는 타협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강한 자들의 분쟁도 제비뽑기로 종식될 수 있다.
끝없이 입씨름을 벌이거나 굽혀서 양보하기 싫어하는 것보다 때로는 제비 뽑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으며, 일단 여기에 응한 이상 제비의 결정에 묵묵히 따르는 것이 대장부다운 일이다.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가나안 땅은 제비 뽑기에 의하여 분배되었던 것이다. 만약 신의 뜻을 묻는 이런 방식의 추첨을 부당하게 모독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오늘날까지도 많은 분쟁의 해결에 이것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도하는 자세와 엄숙한 심정으로 제비뽑기에 임한다면 그것은 분쟁을 해결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분쟁 당사자에게는 만족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잠언의 이 말씀과 성서내의 어떤 기사들은 이런 추첨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특히 사도행전 1장 26절 말씀도 그러하다. 이와 같이 법이 제비뽑기라고 할 수 있다면(혹자는 그렇게 지칭하는 자도 있다)제비뽑기 또한 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친족간의 불화(잠언 18:19)
💡 18: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 친척이나 서로가 특별한 의무로 관계지워져 있는 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그런 불상사가 극히 부자연스럽고 천륜에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흔히는 그런 자들간의 다툼이 여늬 싸움보다 더 무자비하고 지나친 적개심을 유발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혜와 은혜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우리에게 허물을 짓더라도 쉽사리 용서해 줄 수 있게 만들며, 반면에 부패한 마음은 그들을 용서해 주는 것을 극히 어려운 일로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형제나 형제처럼 지내온 자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자. 배은망덕에 성내지 않을 자가 없는 것이다.
- 친척 사이에 불화의 빌미가 되어 있는 일은 쉽도록 속히 타결하도록 크게 애쓰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너무나 해내기 어려운 일이므로 만약 성공하기만 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더 더욱 영예로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에서는 "노엽게 한 형제"였고 그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 듯이 보였으나, 야곱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작용하심으로 말미암아 야곱은 에서의 호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양심의 증언(잠언 18:20)
💡 18: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 우리 자신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간에 우리의 양심에 의한 증언은 우리의 위안을 크게 좌우한다. 본문에 나오는 "배"(belly)는 20장 27절에서와 같이 양심을 나타낸다. 그래서 양심이 만족하게 되느냐의 여부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양심이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만족과 내적인 평화도 결정될 것이다.
- 양심은 우리가 자신의 혀를 잘 제어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든지 아니면 불리한 증언을 하든지 할 것이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가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불의한 자인지 의로운 자인지 판명되듯이, 사람의 품성도 그러하며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대한 양심의 증언 또한 그러하다. 패트릭 감독은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가 먹는 땅의 소산물이나 나무의 열매에 대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만큼이나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도 크게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건전하냐 불건전하냐에 따라 우리가 배부르게 되는 것이 즐거움이냐 고통이냐가 정해지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혀의 올바른 사용(잠언 18:21)
💡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 사람은 자기 혀의 사용법에 따라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까지도, 많은 유익을 끼치거나 아니면 많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자기 혀를 그릇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을 졸라매고, 자기 혀를 거짓되이 놀려서 타인의 목을 옭아맨 자는 부지기수이다. 이에 반해 사려깊고 온화한 입술로 자신의 생명을 건지고 또 그 위안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 적절한 증언과 변호를 해 줌으로써 그들의 목숨을 구출한 사례 또한 적지 아니하다. 우리가 말로써 무죄한 자로 여김을 받거나 유죄로 정죄되지 않을 수 없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죽고 사는 것은 혀의 권세에 달려있는" 것이다. 혀는 이솦의 가장 좋은 양식이면서 가장 악한 양식이었지 않은가.
- 사람들의 말은 그들이 말할 때 까지는 애호심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 말을 올바로 할 뿐만 아니라(악한 자는 자기 신망을 높이거나 상대방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말한다)바른말 하기를 좋아혐 말의 선택을 잘하고, 또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바로 그것이 생명이 될 것이다. 말을 그릇되게 할 뿐만 아니라(선한 자도 실수로 잘못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사망이 될 것이다(시 52:4). "혀를 쓰기 좋아 하는"자는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이다.
●복된 아내를 얻는 자(잠언 18:22)
💡 18:22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 남자에게 있어서 좋은 아내는 큰 축복이 된다.
"아내를 얻고"(이는 진실된 아내를 말한다. 악처는 그렇게 존귀로운 이름으로 불리울 자격이 없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조력자를 만나며(아내란 어휘가 갖는 본래의 뜻으로서의 아내가 곧 이것이다), 주의와 기도로 그러한 자를 탐색하여 자기가 찾던 이를 얻은 자는 복을 얻은 자이며 값비싼 보석 진귀한 보배를 얻은 자이다. 그가 얻은 복은 이 생에서 얻는 어떤 위안보다 더욱 더 많은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그를 천국에 이르는 길로 더욱 빨리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 이 일로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마땅하다.
이것은 그의 은총의 표상인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은총을 내리시겠다는 복된 보증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기쁘게 여기시어 그에게 선을 베푸시고 그를 위해 자비를 쌓아두고 계신다는 신호이다. 그러므로 좋은 아내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또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간청과 교만(잠언 18:23)
💡 18:23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 빈궁은 신체에는 많은 불편을 몰고 오지만 영혼에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 수가 적지 않다. 왜냐하면 가난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며 유순하게 하고 인간의 자만심을 억제해 주기 때문이다. 가난은 인간에게 "간절한 말로 구하는"일을 가르쳐 준다. 사람이 필요에 따라 구걸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되면 자기들이 지시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되며 주는 대로 받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절로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난한 자이기에 누구나 간절한 말로 구하기만 할 뿐 대답해서는 안 되고 간청을 해야 하며, sub forma pauperis-즉 구호 대상자처럼 구해야 한다.
- 번영을 누리는 형편이라면 유리한 점도 많이 있겠으나 화가 부수되는 수가 적지 않으니, 곧 형통은 인간을 자만과 교만에 흐르게 하며 위태한 지경에까지 몰고 간다는 점이다. 나발이 다윗의 사자들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대답했듯이 "부자는 가난한 자가 간절한 말로 구하는"데 대해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부자이기 때문에 가혹한 말을 하고 엄하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경우에 조차 야박한 말을 해도 좋다고 믿으며, 엄한 말로 대답하는 것이 부자에게 어울리는 태도인 줄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특히 보잘 것 없는 데서 입신양명하게 된 자들이 그렇다. 그러나 신사는 관대해야 마땅한 것이다(약 3:17).
●친구의 유익함(잠언 18:24)
💡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 우리가 교분을 맺고 우정을 쌓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스스로 호의를 보여야"한다(우리 성경과 상이함:역주).
우리가 친구를 얻어 그와의 교분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모욕하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온갖 친근한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이를테면 흉허물 없이 터놓고 지내는가 하면 그들을 즐겁게 해 주고, 우리가 방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찾아올 때면 반가이 맞아 주며, 특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도리를 다하고 우리 힘이 미치는 일이라면 무슨 일에서나 그들에게 봉사를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호의를 보이는"길이다.
Si vis amari, ama-
네가 만일 애정을 얻고 싶거든 애정을 주어라(세네카).
Ut ameris, amabilis esto-
사랑을 받는 비결은 사랑스러워지는 것(오비디우스).
-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 이유는 진정한 친구에게서 우리는 많은 위안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장 17절에서 이미 그가 언급했듯이 참다운 "친구는 위급한 때를 위해서 태어났느니라." 우리가 환란을 만나면 친척들에게서 위로와 구제를 기대할 수 있으나 때때로 우리와 하등 친척관계가 없는 "어떤 친구"에게서 그것을 구하는 것이다. 즉 존경과 사랑으로 묶어진 결합력이 현연의 결합력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는 "형제보다 친밀하여"위난이 오는 때에는 형제가 우리를 위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에게 있어서 "형제보다 더 친밀한"친구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스스로 호의를 나타내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