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8월 10일 토요일 묵상구절 잠19:1-29

Jeehyun 2024. 8. 10. 00:08

맥체인성경읽기

룻기 3, 4, 사도행전 28, 예레미야 39, 시편 11, 12

묵상구절

19: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19: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19:5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19: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19:7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19: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19:9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19: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9:12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19: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9: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19:18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19:1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19:22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19: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19:24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9: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19: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19: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19:28 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19: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1) 19:1-7절

●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잠언 19:1)

  1. 여기에서는 가난한 자가 가난 때문에 멸시 천대를 받고 낙담하게 될 때에도 그에게 신망과 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를 자기 이웃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 보자.

그는 정직해야 하고 "성실히 행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양심을 지켜야 하고 또 자기가 그런다는 것을 나타내야 하며, 아무리 위장하고 싶고 자기 약속을 식언하고픈 유혹에 들더라도 언제나 성실한 말과 행실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이러한 자기의 언행을 자치있게 여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있고 선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 가치를 존중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겉으로 위대하게 보이고 두각을 나타내는 자보다 더 훌륭하고 훌륭한 성품을 소유한 자이며, 보다 나은 형편에 놓여 있고 보다 나은 사랑을 받는 자이며, 보다 선한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자라고 할 수 있다.

2. 제아무리 외양이 화려한 부자에게라도 수치를 몰고 올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 보자.

만약 천박한 두뇌와 악한 혀를 소유한다면 그의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하다"면, 그가 만일 악한 자로서 기만과 압제로 그 소유를 획득한 자라면 그는 "미련한 자"이며 이런 자보다는 가난하지만 정직한 자가 훨씬 더 애호받을 것이다.

💡 19: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무지와 성급함(잠언 19:2)

 💡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본문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일이 그 결과가 나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 무지.

어떤 이들은 "영혼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은 선치못하다"고 해독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 우리 자신의 마음도 알고 있지 못하는가? "지식없는 영혼(우리 성경:소원)은 선치 못하다."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다. 그러나 이 영혼이 지식을 소유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나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과 같도다"(시 49:20). 무지한 영혼은 선한 영혼이 될 수 없다. 지식없는 영혼은 안전하지도 못하고 유쾌하지도 못하다. 영혼이 지식이 없다면 무슨 선을 행할 수 있으며 그 영혼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2. 성급함.

"발이 급한 사람"(즉 일이 지각없이 처리하고 경솔히 행하여 자기 발이 나아갈 길이 살펴 볼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는 자)은 "그릇하느니라." 이런 자는 흔히 과녁에서 빗나갈 수밖에 없으며 여러 번 실족할 여지가 다분하다. 이에 반해 자기가 나아갈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실족을 예방할 수 있다. 깊이 사려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 여호와 원망하는 자(잠언 19:3)

💡 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두 가지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1. 어리석은 사람들은 스스로 궁지와 곤경에 뛰어 들며 자진하여 어려움에 좌초해 가지고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사업을 하다 보면 기로에 서게 되기도 하고 실망을 맛보기도 하며, 일이 자기들의 예상이나 바램을 외면하고 엇나가는 경우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런 것은 그들 자신의 탓이며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인 것이다. 즉 그들을 징계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불의인 것이다.

  1. 그렇게 되었을 때 어리석은 자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고 마치 하나님이 자기들을 그릇되게 하시기라도 한 듯이 그를 원망하는데, 실은 그들 자신이 자신을 망쳐 놓은 것이다.

원망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평화의 원수가 되는 것이며 자신을 고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를 원망"함으로써 우리는 그를 모욕하며 그의 공의와 선하심과 그의 엄위로우신 주권을 모독하는 셈이 된다. 외고집이나 태만으로 인해 고생을 자초해 놓고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책망해야 마땅할 때 하나님께 트집을 잡아 싸움을 건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이다(사 50:1).


돈에 대한 사랑(잠언 19:4)

💡 19: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1. 우리는 여기서 돈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를 살필 수가 있다.

세인은 돈을 많이 가지고 펑펑 써대는 사람이면 그가 아무리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랑할 것이며, 그로 인해 자기들이 덕을 보리라고 기대한다. 큰 재물을 가진 사람은 많은 선물을 할 수 있고 많은 향응도 베풀 수 있으며, 좋은 일도 많이 할 수가 있어서 친구들이 많이 모여든다. 재물이 있는 자에게 모이는 친구들은 사랑하는 척한다. 그에게 알랑거리며 비위나 맞추고 있지만 실은 그들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며, 나아가서는 그에게서 이득을 바라면서 자기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2. 또한 인간들 상호간의 사랑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를 살필 수 있다.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동안에는 사랑과 존경을 일신에 모으고 있던 자라도 일단 궁핍 가운데 처하게 되면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그를 아는 체하거나 우러러보고 찾아 오거나 존중해 주는 자도 없으며, 그는 경원당하고 성가신 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의 이웃과 친지라고 하던 자들조차도 그를 외면하고 딴 쪽으로 길을 비켜간다. 그런 자를 구제하고 구조해 주어야 한다고 양심이 말하는 까닭에 그들은 자신이 그를 보지 못하였다는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거짓 증언에 대한 벌(잠언 19:5)

💡 19:5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1. 여기에서는 재판에서의 "거짓 증거"와 일상 회화에서의 "거짓말"을 지닌 위협받는 죄를 볼 수 있다.

사람은 농담과 희롱으로, 혹은 선을 행한다는 구실 아래 진실되지 못한 말을 서슴치 않고 함으로써 급기야는 거짓 증언이라(이 거짓 증언은 거짓말하는 외에위증과 상해죄까지 추가하는 죄임) 불경건의 극치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그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도다"(렘 9:5). 담화 속에서 마음대로 거짓말하는 자들은 비록 겉으로는 위증을 싫어하는 것 같이 보이더라도 일단 유혹을 받기만 하면 보다 큰 악인 거짓 증거를 할 소지가 다분히 있는 자이다. 또한 거짓말을 삼키는 자들은 자기 양심조차 더럽히기 때문에 거짓 맹세까지 거뜬히 해 내게 될 것이다.

  1. 또한 그 자체가 위협적인 죄를 볼 수 있다.

그들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피치 못하리라." 이 말씀이 암시하는 것은 위증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들이 대담하게 이런 죄를 짓게 되는 이면에는 법이 엄하다고 하더라도(신 19:18, 19) 이 죄가 흔히 사람의 형벌은 모면할 수 있는 죄인 까닭에 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죄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피하지 못하리라."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셔서 자기 이름이 모독되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자기들의 영원한 분깃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난한 자의 어려움(잠언 19:6,7)

 💡 19: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 19:7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이 두 성귀는 4절에 대한 해설로써 다음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1. 부유하고 지체가 높은 자들에게는 호의를 베풀고 애정을 주려는 자가 매우 많으며, 간청하러 오는 자나 하인도 많다.

권병(權柄)을 장악하고 발탁과 승진을 좌지우지하는 세도가의 문과 사랑방은 청탁하러 온 자들로 초만원을 이루게 된다. 그런 자들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기꺼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많은 자들이 그에게 은혜를 구할 것이며" 그 일로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상당히 두각을 드러낸 자들조차 권세자에게는 굽실거리며 탄원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 권세자의 은혜와 비교가 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열심이어야 하겠는가!

그러나 존경을 얻는 데 있어서는 왕권보다도 관대한 것이 한 길 위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군주의 눈에 들려고 하는 자들은 많은 데 그치지만, "선물을 주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는" 까닭이다. 선물을 받았거나 받기를 기대하는 자들은 후한 자들을 기꺼이 섬기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딴 사람들도 그런 관대한 자들에게는 친근한 자들이 되어 좋은 말을 하려 할 것이다. 어리석게도 가진 것을 마구 뿌리는 탕아들에게는 재물이 있는 동안만 추켜 올리다가 없어지는 날에는 떠나가 버리는 식객과 같은 존재들이 많이 달라 붙을 것이지만, 분별있게 후한 자들은 그 후한 마음으로 인하여 이득이 있을 것이며 그 관대함은 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은인으로 간주되는 자들은 권세를 행사하며 그 권세로 이해 선을 행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눅 22:25).

  1.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은 매우 경시되고 멸시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극히 굴욕적인 처지에 있는 자까지도 정중한 대우를 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든지 하고 싶다면 통치자에게 비위를 맞추고 권세자의 대우를 하는 것은 무방하나, 불쌍한 자들을 유린하고 괄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다반사이다.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느니라." 친 혈육조차 그가 궁핍하여 무엇을 요구한다든가 얻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가 가문에 오점을 끼치는 자라고 해서 수치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조금도 혈육이 섞이지 않은 친구들이 "그를" 피하려고 "멀리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해할 일이 못된다. 그들은 남인 것이다. 그는 자기한테 친절히 대해 달라고 설득할 셈으로 "그들을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모두가 허사이다. 그들은 그와 상대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해독하는 사람도 있다. 즉 그들은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하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 "그를 따라가며 말하려 하느니라." 그들은 그가 게으르고 파렴치하며 가난은 오로지 자기 탓이기 때문에 구조해 줄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발도 다윗에게 "근일에 주인에게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다윗이란 자도 그걸 자들 중 하나인지 내가 어떻게 알랴?"하고 말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을 자기 친구로 삼아 그를 따라가며 기도하려 해야 할 것이니, 그러면 하나님은 세상 친구들처럼 없어지지 아니하실 것이다.

(2) 19:8-16절


● 지혜를 얻고 명철을 지키는 자(잠언 19:8)

💡 19: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본문은 다음과 같은 자들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고 있다.

1. "지혜", 즉 지식과 은혜를 얻는 일 및 하나님을 아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들.

이렇게 하는 자들이야말로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자들이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을 베푼 자들로 판명될 것이다. "자기 육체를 미워한" 자들은 없었고 오히려 누구나 다 자기 육신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영혼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자는 많다. 그러나 "지혜"를, 즉 참 지혜를 "얻는" 자들만이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들이며,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자들인 것이다.

2. 지혜를 얻었을 때 그것을 간직하려고 유의하는 자들.

영혼에게 있어서 지혜는 건강이요, 재산이며 명예이고 좋은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명철을 지키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며, 따라서 확실히 "복을," 모든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자기가 배운 선한 교훈을 보유하여 자기 언행이 그 교훈에 의거하도록 하는 자들은 자기 영혼 속에서 그 일의 혜택과 위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서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게 될 것이다.


거짓 증언에 대한 벌(잠언 19:9)

 💡 19:9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1. 여기에서는 앞서 5절에서 나온 말씀이 반복되고 있다. 거짓말하는 것과 거짓 증거하는 것보다 치명적 결과를 유발하는 일은 없는 고로 우리는 이 죄의 위험에 대해 몇 번이고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이 일에 대해 단 한 마디가 추가되고 있다. 5절에서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고 하여 거짓말쟁이는 형벌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암시하였으나, 여기에서는 거짓말쟁이의 형벌이 자신의 멸망과 같은 유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남들을 해하려고 날조해 낸 거짓말은 결국 본인 자신을 멸망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저주받을 만한 멸망의 죄이다.

● 미련한 자와 종(잠언 19:10)

💡 19: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 쾌락과 자유는 어리석은 자에게 온당치 못한 일이다.

"미련한 자가 기뻐함은(우리 성서: "사치함")은 적당치 못하다." 지혜와 은혜를 갖지 못한 자는 참 기쁨을 가질 권리나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즐거움이란 것은 미련한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자들이 딴 어떤 일에 기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들은 어떤 물건도 사용할 줄 모르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도 모르므로 단지 자신의 모습만 드러낼 뿐이다.

은혜롭지 못한 우매자에게 어울리는 것은 웃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고 슬퍼하며 우는 이이다. 그들에게는 즐거움보다 질책이 한층 더 적당하다. 즐거움은 사업가에게 알맞는 것이어서 분주한 일로 피로해진 그들에게 새 힘이 솟도록 해 주지만, 게으른 생활에 젖어서 오락을 남용하는 미련 자들에게는 적당치 못하다. "우매자의 형통"은 그들의 미련함을 드러나게 하며 "그들을 망하게 하느니라."

2. 권세와 존귀는 노예 근성을 가진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종이 방백을 다스림" 보다 어울리지 않는 일은 없다. 거지가 말 등위에 안아 호령하는 것처럼 종이 임금된 것(30:22)만치 무례하고 참을 수 없는 일도 없다. 이것 자체만 해도 불합리한 상식 이하의 일이다. 종된 자에게 매우 어울리지 않는 일은 죄를 범하여, 자기 욕망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자유인으로서 자기에게 왕되고 제사장되는 자들을 압제하는 일이다.


신중함과 관용(잠언 19:11)

💡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지혜로운 자라면 성내는 일에 있어서 다음 두 가지 규칙을 준수할 것이다.

1. 성내는 일에 너무 성급하지 않을 것.

슬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노하기를 더디하라"는 것이다. 즉 분노의 원인이 되는 사유가 갖는 장단점을 철저히 살피고, 성낸다는 행위를 진리의 빛에 비춰 보며 공정한 저울에 달아 보기까지는 분노를 용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체통을 잃을 위험이 없을 때까지 성내는 일을 보류하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자기 종에게 "내가 만약 성만 나있지 않다면 너를 때릴 것이다"고 말하였다. 성이 나거든 시간적 여유를 가져보라. 그리하면 열화가 식을 것이다.

2. 성내면서 너무 비판적이 되지는 말라는 것.

흔히 모멸하는 언동을 재빨리 알아들으면 그 사람을 재치있는 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하여, 본문에서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보고도 못본척하거나(시 38:13) 잘못을 탐지하더라도 그 허물을 용서해 주고 복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일은 자기의 영광이란 말이다.


● 왕의 노함과 은택(잠언 19:12)

 💡 19:12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이 말씀은 16장 14, 15절과 취지를 같이 하며 그 의도는 다음과 같다.

1. 왕이 찡그리거나 웃는 일에 있어서 지혜롭고 신중하도록 하기 위해 왕의 희로애락은 일반 백성과는 다르다.

그들의 찡그림은 매우 무서우며 그들의 미소는 매우 평온한 감을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좋은 일을 하고 선인에게 이마를 찌푸려서 놀라게 하는 일이 없도록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악을 자행하는 악인에게 미소를 던짐으로써 그들의 악행을 조장하는 일이 없도록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니 악인은 왕의 미소를 보면 고무되어 자기의 세력을 남용할 것이기 때문이다(롬 13:5).

2.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자기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의무를 다하도록 하기 위하여.

통치를 받는 자들은 정부를 거스리고 나면 그 결과가 얼마나 가공할 일인지 침착하여 어떤 불충도 삼가야 할 것이다. 신하된 자들은 일반 대중에게 대한 모든 선한 봉사에 대해서 군주자의 총애가 따라 오리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런 임금이시다. 자기 원수에게 대한 이 왕의 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음"것이며(계 10:3), 자기 백성에게 대한 그의 은총은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을 것이다(시 72:6).


그릇된 아들과 아내(잠언 19:13)

💡 19: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우리가 최대의 위안을 기대하는 일에서 가장 큰 비애를 맛보기 쉽다는 사실은 세상의 허됨을 증명하는 실례이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좋은 아내와 착한 자녀보다 더 큰 위안물이 현세에 있을까? 그러나 보라!

1. "미련한 아들"은 크나 큰 고생보따리여서 차라리 자식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골백 번도 더 원하게 만든다.

공부나, 사업에도 전념하려 들지 않고 충고를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으며, 난봉과 무절제와 방탕의 삶을 살면서 자기 소유를 마구 낭비하고 주색잡기와 노름에 탕진하는 아들이나 교만하고 멋이나 부리고 허세를 부리는 아들과 "그의 아비의 재앙이다." 그런 아들은 가문의 수치요, 그 가문을 파멸시킬 우려가 다분히 있는 아들인 것이다. 그는 자기 수고의 열매는 그러한 아들에게 남겨야하는 사실을 보게 될 때 자기의 모든 수고를 증오하게 된다.

2. 성잘내고 비꼬인 아내 또한 커다란 골치거리이다.

그녀의 "다툼은 그치지 않느니라." 허구 많은 날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또 하루 중 한 시간도 쉴사이 없이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들 일을 일으킨다. 잔소리하는 데 익숙한 자들에게는 참견할 일이 이것저것 끊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어서 그 끊임없는 성가심을 견딘다는 것은 비가 오면 누을 수 없을 만치 비가 많이 새는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술망난이 자식과 잔소리하는 아내를 가진 자는 그 생활이 편안치 못하며 능히 자기 고난을 견디고 그 의무를 다하려면 보통 이상의 지혜와 은혜가 필요하다.


● 슬기로운 아내를 갖는 유익함(잠언 19:14)

 💡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 분별있고 정숙한 아내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남자에게 마련된 정성된 선물이다.

슬기로운 아내는 다투는 아내(13절)의 반대가 된다. 비록 계속 흠을 잡는 아내가 자신의 그런 점을 재치와 슬기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실은 그것이 곧 그녀의 어리석음이다. 슬기로운 아내는 겸유하고 정숙하며 만사를 좋게 생각하려 든다. 그러나 그런 아내를 데리고 사는 남자는 그것을 자기 자신의 지혜로운 선택이나 자신의 지혜로운 행동의 덕분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왜냐하면 가자 지혜롭다 하는 자도 여인에게, 또 여자로 말미암아 기만을 당해 온 까닭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처복을 자기에게 어룰리는 배필을 만들어 주시고, 자기에게는 우연히 굴러 온 듯이 보이지만 섭리의 우여곡절을 통해 연분을 맺어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 덕분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모든피조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인 것이다. 행복한 결혼들도 하늘에서 맺어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사실을 믿고 기도를 드렸었다(창 24:12).

2. 슬기로운 아내를 갖는 것은 "집과 재물"보다 더 귀중한 선물이며, 이것은 남편이 갖는 생의 위로와 신망에 한층 더 이바지하고 자기 가문의 복리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한다. 또한 좋은 아내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보다 큰 증좌이며 이를 통해 신의 섭리는 보다 특별하신 모습으로 그 은총을 말씀하고 계신다.

훌륭한 재산은 "조상에게서 상속"받을 수 있으며 섭리의 일반적 지시에 의해 사람에게 입수된다. 그러나 어떤 자도 상속이나 유산에 의해 좋은 아내를 얻지는 못한다. 세상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 준다고 해도 그들에게 집과 재물을 마련해 주는 것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위에 슬기로운 아내까지 더하게 되는 경우라면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게으른 자의 멸망(잠언 19:15)

💡 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여기에서는 게르으고 나태한 성벽이 가져다 주는 폐해를 관찰해 보자.

  1. 이러한 성격은 사람을 마비시키고 사리를 모르게 하며, 마치 "깊이 잠들게"된 자처럼 꿈만 많이 꾸고 아무 일도 하지 않게 하여 자기 일을 전혀 개의치 않게 만든다. 게으른 자들은 자기 시간을 졸면서 없애버리고 자기 재능을 파묻어 버리며 쓸모없는 삶을 영위하는, 이 땅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짐스러운 존재들이다. 게으름의 잠에서 깨면 어떤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는 데에도 그들은 항상 잠자기를 더 좋아한다. 그들의 영혼조차도 게을러서 잠을 자며 그 이성의 힘은 냉냉한 바람이 감돌고 얼어 붙어있는 것이다.
  2. 나태는 사람을 가난하게 하고 궁핍하게 만든다. 수고하려하지 않는 자들은 먹을 것을 기대할 수 없고 "주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해태한 사람"(혹은 영혼)은 자기 영혼의 일에 게으른 자로서 자기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걱정과 수고를 하지 않다가는 결국 영혼의 생명과 행복에 필요한 것이 부족함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될 것이다.

계명의 준수(잠언 19:16)

 💡 19: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 신중히 행하는 자들의 행복.

매사에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본분을 삼으려 종이나 환자에게 어울리듯 규칙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자기의 영혼을 지키게"된다. 이러한 자들은 현재의 평강과 미래의 행복을 확보하며 어느모로 보나 자신에게 좋은 일을 예비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로 해로운 모든 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2. 되는 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행하는 일에 유의하지 않는 자들의 행복.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을" 것이며 영원히 멸망하리라. 그들은 파멸의 고속도로상에 있다. 자기 길의 종착점에 대해 무심하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 생각해보지 않는 자, 자기가 걷고 있는 길의 규칙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마음의 길대로 행하며 세상 행로를 따라 나아가려는 자(전 11:9), 그리고 자기가 행하여 온 일을 성찰해 보지 않거나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려해보지 않고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온갖 모험을 다 행해보려는 자, 이러한 자들은 모두가 한 가지이니 이런 일에서 나올 결과는 최대의 앙화(殃禍)밖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3) 19:17-29절


●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선(잠언 19:17)

💡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Ⅰ. 여기에는 자선의 의무가 묘사되고 있다. 이 일에는 두 가지 일이 내포되어 있다.

1. 긍휼.

동정심은 마음에서 울어나는 자선의 내적 원리이다. 그것은 곧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수중에 동전 한 푼 갖고 있지 못한 자라도 가난한 자에게 대해 연민의 정과 자비로운 관심과 동정의 마음은 품을 수가 있다. 그리고 설사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할지라도"그 마음에 이 자비심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우리는 "주린 자에게 우리 심정을 동하지"(사 58:10) 않으면 안 된다(축어적으로는 "우리 영혼을 꺼내 주어야"한다:역주).

  1. 관대와 후사(厚謝).

우리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필요성과 우리의 능력에 따라 주기도 해야 한다(약 2:15, 16). 본문에서는 "그가 준 것을"이라고 되어있으며 다른 난외주에서는 "그의 선행을"(우리 성경과는 반대임)이라고 되어 있다. 즉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행동하는 것도 자선이 된다. 이와 같이 수족과 감각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면 서로에게 자선을 베풀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Ⅱ. 자선에 대한 격려가 나오고 있다.

  1. 자선의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친절한 해석이 적용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주거나 그들을 위해 행한 일을 자신에게 꾸어 준 것으로 계산하시며 "이자가 붙는 차용"(이 단어의 의미는 그러함)으로 간주하실 것이다. 그는 이 일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직접 행해진 일인양 달갑게 받아들이신다. 그는 우리가 자선 행위의 위안을 얻으며 마치 고리대금업자가 거액을 믿을 만한 자들에게 빌려 주고 기뻐하는 것에 못지 아니하게 즐거워하기를 원하신다.

  1. 매우 값비싼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가"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또 영원한 차원의 축복으로 "갚아 주시리라." 따라서 구제하는 일은 번성하게 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인 것이다.


자녀에 대한 징계(잠언 19:18)

💡 19:18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여기에는 패역하고 사악한 성향을 가지며 엄하게 다루지 않고서는 도저히 고칠 가망이 없는 나쁜 성품이 엿보이는 자녀들에 대해서는 어리석게도 가만 내버려두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부모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1. 이런 자녀를 바로 잡는 데에는 어느 시기가 되든지 다 괜찮다고 말하지 말아라.

자녀에게 부패한 성향이 엿보이거든 그 악한 기질이 싹돋고 뿌리를 내려 악습으로 굳어지기 전에 즉시 그것을 억제해야 한다.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는 동안 그를 징계하라." 만일 그를 잠시 그냥 버려두면 아마 그는 소망이 없어 될지도 모를 것이며, 지금은 조금만 징계해도 효력이 있을 것이나 나중에는 더욱 크게 징계해도 소용없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잡초는 싹이 돋자 마자 곧 뽑아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것이며, 멍에를 씌우려는 소는 때를 놓치지 않고 길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2. 자녀를 벌하기가 불쌍하며, 용서해달라고 울부짖으며 애걸복걸하기 때문에 도저히 징계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징벌을 가하지 않고도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잘된 일이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흔히 판명되는 바와 같이 회개하는 체하며 개과천선할 것을 약속하는 데 넘어가 한 번 용서해 주었더니 그로 인해 더욱 그 나쁜 소행이 대담해진다고 깨닫거든, 특히 그들이 또 범하는 잘못이 죄악일 때는(거짓말이나 맹세나 욕질이나 도둑질 따위 등)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의 울부짖음으로 용서하지 말지니라"(우리성경:"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그들은 치안 판사의 검 아래, 혹은 한층 더 두려운 하나님의 보수의 칼 아래서 울부짖는 것보다 너의 매 아래에서 울부짖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격정적인 자에 대한 경고(잠언 19:19)

 💡 19:1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1. 우리가 본문을 읽으면서 단적으로 암시를 받는 것은 성내는 자에게는 결코 비애가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감정이 격하거나 혹은 오히려 제멋대로이고 혈기에 차있는 자들은 보통 자신과 그 가족들을 성가신 소송과 분쟁 및 도발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수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열정을 주체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런 저런 일로 계속 혼이 나게 된다. 설혹 친구들이 한 가지 어려운 분란에서 그들을 끄집어내 주어도 그들은 늦을세라 또 다른 분쟁에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건져 주게 되리라." 그들이 만약 자신의 격정을 억누르고 자기 마음을 지배한다면 자기와 타인을 괴롭히는 이 모든 일이 방지될 수 있을 것이다.

  1. 이 말씀은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노가 큰 자(징계받는 자녀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노는 벌을 참지못해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을 치는 자식이 징계의 막대기에 대해 품는 노를 가리킨다)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 때문에 "네가 그를 놓아 주면" 그 다음 번에는 부득이 그에게 엄청나게 더 큰 벌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배짱이 두둑하고 기가 센 아이는 제때 항복하게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그 때문에 더욱 악화될 것이다.


● 권고와 훈계(잠언 19:20)

1. "필경은 지혜롭게" 되며.

자기들의 나중을 위해서, 그리고 장래 상태를 위해 지혜로우며 저 다른 세상을 위해 지혜로운 자들은 훌륭하다. 자기 종말이 이르러서 지혜로운 자로 발견되는 자들은 곧 슬기있는 처녀들이며 지혜로운 건축자들이요 지혜있는 청지기인 것이다. 그들은 결국 지혜있는 자여서 "그들의 눈에서 감추이기 전에 자기 평화에 속하는 일들을 깨닫고 있다." 육욕에 눈이 먼 세상 속인들은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나(렘 17:11), 경건한 것을 좇는 일은 마침내 지혜로운 일로 판명될 것이다.

2. "필경은 지혜롭게"되고자 하는 자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처음부터 기꺼이 가르침을 받고 다스림을 받아야 하며 청년의 날에 즐겨 충고와 책망을 받아야 한다. 겨울에 비축해 두기 위해서는 여름에 모아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뜻과 다스림(잠언 19:21)

💡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1. 계획하는 인간.

인간은 자기 스스로 계획을 간직하고 있으나, 의중의 책략조차 하나님께로부터 숨길 수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많은 계획"을 아신다. 그런데 그 계획들은 하나님의 의도에 배치되는 것들이며(시편 2:1-3; 막 4:11 처럼), 그의 의향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들이다(약 4:13 말씀에 나오는 것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한 것들이어서 이런 저런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계획에 불과하다). 그 계획들은 하나님의 계획같지 아니한 것들이다.

인간은 계획하는 중에도 동요를 느끼고 갈팡질팡하며 흔히는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지혜로 우며 거룩하고 꾸준하며 균일한 것이다.

2. 지배하시는 하나님.

갖가지 사람들은 자기 취향과 이해가 이끄는 대로 각양 각색의 계획을 가진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은" 인간의 계획이 어떻게 되든 간에 "완전히 서리라." 그의 의향은 인간의 대책을 꺾어버리며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켜 버릴 때도 있다. 반면에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의 의도를 추호도 변경시키지 못하여, 그 진행을 교란시킬 수도 없고 그에게 새로운 뜻을 세우게 하지도 못한다(사 14:24; 46:11). 자기들이 온 인류의 지혜보다 뛰어나다고 믿고 있는 정치적 권모술수의 대가들에게 하늘에는 자기들을 비웃으시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장애가 될까!(시 2:4)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전부 다 공의롭고 선하다고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모든 하나님의 목적이 적당한 때가 되면 다 성취될 것이라는 말씀은 그러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이 될 것인가!


인자한 자와 정직한 자(잠언 19:22)

 💡 19:22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1. 선을 행함으로 얻는 명예는 우리가 훌륭히 열망할 만한 일이다.

미덕의 불꽃을 소유한 친절한 사람은 "남에게 사모함"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자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알맞는 신분을 탐내기 보다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친구들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기를 더 바란다.

2. 선을 행할 마음은 있으나 그렇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 되어 있는 것이, 능력은 있으면서도 그것을 행할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사람이" 친절과 자비와 관대함을 "사모한다"는 것은 곧 자기가 "인자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며, 남들도 그렇게 인식해 줄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다 "그가 품고 있는 대로"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것이며 더 이상은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잘 되기를 빌면서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이 없음으로 해서 너에게 아무 것도 약속해 주지 못하는 "가난한 자는," 부자로써 네게 근사한 일들을 해 주겠노라고 믿게 해 놓고도 정작 해 줘야 할 때가 되어서는 아무 것도 해 주려 들지 않는 "거짓말장이보다 나으니라." 가진 것이 없어서 아무 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 신분이 비천한 자의 특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신분이 높으면서도 그들이 기대하게 해놓은 만큼 부응해 주지 못하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다.


● 여호와에 대한 경외(잠언 19:23)

💡 19: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생활하며 항상 그에게 대한 의무를 본분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보라.

1. 안전.

그들은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그들에게도 질병이나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병고나 환란이 재앙을 몰고 오지는 않으며 아무 것도 그들을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사랑으로부터 그들을 떼어 놓거나 그들의 영혼을 해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2. 만족.

그들은 "족하게 지내리라." 경외하는 자들은 흡족한 위안을 받을 것이며 변함없는 만족과 안심을 지니게 될 것이다. 감각적인 만족은 모두가 덧없는 것이며 쉬사라지는 것임에 반하여 이 만족은 떠나지 않고 머누는 만족이다. satur pernoctabit, non cubabit incoenatus-즉 그가 저녁을 굶고 잠자리에 들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고적하고 적막한 시간에 자기를 평안히 해 주고 즐거움이 되어 줄 것들을 얻게 되리라(시 16:6, 7).

3. 진정하고도 완전한 행복.

진실한 신앙은 바로 "생명"과 모든 선한 것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첩경이다. 그것은 확실하고 얻기 쉬운 길이다. 그 경건한 신앙심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합당하게 하고 또 천국으로 인도하는 어떤 특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게으른 자(잠언 19:24)

💡 19:24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본문에서 게으른 자를 어리석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가 신경을 쓰는 일은 기껏해야 수고와 추위를 면해 보려는 일뿐이다.

그의 태도를 보라. 그는 "그의 손을 가슴에("그릇에" 우리 성서)넣고" 자기가 불구자여서 일을 할 수 없는 자인 척한다. 그의 손은 싸늘하여 자기 품 속에 넣어 따뜻이 하지 않을 수 없고, 손이 따뜻해지면 또 계속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편안만을 꾀하며 움추리고 있으면서 어떤 수고와 어려움에도 부딪치지 않으려 한다. 게으른 자의 입장으로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인생인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은 일해야만 하는 것이다.

2. 그는 제가 먹는 수고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멋들어진 과장법이다. "너무 게을러서 자기에게 붙은 불티도 끄지 않으려 한다"는 속담과 같이 본문에서는 게으른 자가 자기 품 속에서 손을 꺼낼 생각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음식을 자기 입에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만약 법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규정돼 있다면 그는 움직이느니 보다 차라리 굶어 죽겠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의 게으른 죄는 바로 그의 벌이 된다. 그리고 그의 이와 같은 게으른 죄는 크나 큰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거만한 자와 명철한 자에 대한 견책(잠언 19:25)

 💡 19: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1. 경멸하는 자들에 대한 형벌은 딴 사람들에게 이롭게 해 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사람이 악에 너무 깊이 물들어서 개선과 교화를 위해 엄한 방법을 써도 아무 효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을 위해서는, 즉 딴 사람들이 "듣고 두려워하도록"하기 위해서(신 19:20) 그런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거만한 자"는 그 병이 너무나 고질화되어 있는 고로 자기 죄에서 회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어리석은 자가 경성하여" 사람을 그토록 혹심한 꼴로 만들어 버리는 죄를 감히 짓지 않으려고 조심하게 될 것이다. 설사 그 엄한 방법이 전염병에 걸린 자를 낫게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염병의 만연은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1. 지혜로운 자에게 대한 책망은 현인들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들은 때릴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명철한 자"에게는 단지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이익을 매우 거시적으로 파악하게 되어 "지식을 얻게"될 것이고, 일단 한 번 듣기만 하면 무지나 부주의로 그 지식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책망을 이처럼 매우 달게 받아들이며 그것을 잘 활용한다.


탕자의 죄와 수치(잠언 19:26)

💡 19: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1. 탕자의 죄.

방탕한 자식은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의 선한 부모에게 해를 입힌다. 자기란 존재를 있게 해 준 분이었고 또 자기를 위해 근심 걱정과 수고를 그토록 많이 한 부모에게 야박하고 불손하게 대하여 배은망덕한 짓을 일삼는다는 것은 그의 죄를 가중시키며,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극도로 악한 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아비를 구박하고"(원 뜻은 "낭비하고"), 즉 노령에 든 아버지를 봉양하는 데 사용해야 할 재산을 탕진하며 그의 전신을 소모시키고 그의 마음을 꺾으며 그의 백발로 "근심하며 음부에 내려가게"한다. 그는 "자기 어미를 쫓아내며" 모정을 자기에게서 소원하게 만드는데, 이 일은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는 섭섭함과 불안을 안겨 준다. 그는 무례함과 오만불손으로 어머니를 지치게 하여 잠시나마 조그만 안정을 갖기 위해 자진하여 가정을 떠나고 싶어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자기의 것을 다 탕진한 뒷면 어머니를 문 밖으로 쫓아내기도 하는 것이다.

2. 탕자의 수치.

이토록 짐승같이 천륜을 모른다는 것은 방탕한 자식 본인에게도 수치가 된다. 그는 스스로 온 인류에게 보기 싫은 자가 된다. 그는 또 부모와 가문의 수치이다. 아마 정당한 이유가 없더라도 그 가족은 그에게 좀더 훌륭한 교육을 시키지 못했던가, 아니면 그의 부족한 점으로 인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 자녀에게 지식을 따르라는 훈계(잠언 19:27)

💡 19: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이 말씀은 좋은 교육을 받은 자들에게, 훈계를 빙자하여 그들이 훈련받은 선한 원리들로부터 곁길을 탈선시키려는 소리에 함부로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하라는 좋은 경고이다.

1. 겉으로는 훈계를 의도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청년들을 파멸로 이끄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 세상에는 흔하다.

악을 위하는 인자(因子)들이 청년들에게 자유로운 사상과 시대에 맞는 처신을 교육한다고 나설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겨냥하고 있는 죄악을 적당히 변명하고 양심의 소리를 억제하며, 저희의 교육이 제한하는 바로부터 회피하고 재치와 멋의 소유자로 각광을 받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려고 나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과 사랑으로 굳게 붙잡고 있어야 할 건전한 형태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이다.

2. 그런 교훈에는 귀머리같이 되는게 청년이 지혜이다. 마치 살무사가 자기를 홀리려고 거는 주문(呪文)에 가는 귀가 먹듯이 말이다.

"해이한 원리들을 마음에 주입시키게 하는 담화는 듣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만약 네가 그런 자와 연관이 되있거든 그들과 관계를 끊어라. 네가 들었던 것만 해도 충분하며, 아니면, 너무 많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착한 행실을 타락시키는 나쁜 전언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말라."


● 망령된 증인의 폐해(잠언 19:28)

💡 19:28 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여기에는 극히 그릇된 죄인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그 죄인의 "마음은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도다"(전 8:11).

  1. 그들은 죄를 짓지 못하게 억지(抑止)하고 말리는 것을 멸시한다. "망령된 증인"은 그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언을 하는 자로서 딴 사람에게 화를 입히려고 위증을 하려 한다. 이 일은 크게 불의한 일일 뿐만 아니라 불경건한 일이기도 핟. 이런 자는 가장 극악한 자 중에 하나이다. 또는 "망령된 증인"은 종교와 경건한 신앙에 대해 불경스럽고도 무신론적인 증거를 하는 자로서 그 교훈은 "지식의 말씀에서" 꾀어내는 것짓 증언이다(27절). 그런 자는 "공의(혹은 판결)를 업신여기고" 여호와의 두려우심을 조소하며, 경외하는 일을 조롱한다(욥 15:26). 그런 자에게는 성서의 기록과 맹세는 거룩한 것이어서 결코 희롱의 대상이 되지 않고 또 계산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는 법과 형평법에 대해 말해 주어라. 그는 이 모든 것을 비웃으며 그것에 주의하는 일조차 업신여기는 것이다.
  2. 그들은 탐욕에 가득 차서 자기들에게 범죄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면 기뻐한다. "악인의 입은 죄악"을 열심히 "삼키며, 악을 짓기를 물마심 같이 하느니라."(욥 15:16).

● 심판과 채찍(잠언 19:29)

💡 19: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1. 냉소하는 자들은 미련한 자들이다. 참되고 거룩한 일들을 조롱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조소의 대상으로 만들 뿐이다. "저희의 어리석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날 것이니라"(딤후 3:9).
  2. 심판을 경멸하는 자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28절). 인간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경고가 무효화 되지는 않을 것이다. "죄악을 삼키는" 자들은 미끼와 함께 낚시 바늘까지도 삼키게 된다.

공법을 맡은 치안 판사는 "거만한 자를 위하여 심판을 예비"하고 있으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칼을 공연히 차고 있는"셈이된다. 그러나 설사 사직 당국자가 직무에 태만하여 죄를 묵인해 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졸고 있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마 2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