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12월 26일 목요일 묵상구절 사49:8-50:3 <예루살렘의 회복>

Jeehyun 2024. 12. 26. 16:11

맥체인성경읽기

역대하 31, 요한계시록 17, 스가랴 13:2-9, 요한복음 16

묵상구절

49:8 <예루살렘의 회복>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49: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49: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49: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49:12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49: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49: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49: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49: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49: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49: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49: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49: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49: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50: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50: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옥스퍼드 주석


1) 사49:8-13 여호와의 종 메시야를 통한 선민의 회복 약속

(병행 문단, 사61:4-11)

메시야의 굴욕과 고양 (이사야 49:7-12)

📖서론


Ⅱ.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저장해 두신 축복.

1. 하나님은 그의 과업을 인정하시고 도우실 것이다(8절).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도다." 즉 네게 응답하리라. 그리스도는 "육체로 계실 때에, 심한 통곡을 올렸고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항상 그의 말을 들으시는 줄을" (요 11:42), 그 자신을 위해 그의 말을 들으시는 줄을 아셨고(비록 그 자신이 그에게서 지나가지 않을지라도, 지나갈 수 없었을지라도 그는 그것을 마실 능력을 허락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인 모든 사람을 위해 그의 말을 들으시는 줄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는 권위를 가진 자로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셨다. "아버지여 원하옵나이다" (요 17:24). 우리의 모든 행복은 하나님께 대한 그 아들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항상 그의 말을 들으시는 그의 중보의 효과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복음 시대를 은혜로운 때로, 우리에게 환영받는 때로 만든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우리가 용납하심을 얻어 그에게 화목케 되고 위탁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속자의 말을 들으시기 때문이다(히 7:25).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실 뿐만 아니라, 그의 과업을 철저히 도우실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우편에 항상 그와 함께 계셨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를 떠났을 때도 그를 떠나지 않으셨다. 흑암의 권세는, 그들이 그의 과업에서 몰아내는 시기였을 때 우리 주 예수를 그리고 격렬히 공격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보존케 하시고 계속 그것을 고수해 나갈 능력을 그에게 부여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한 돌에 일곱 눈이 있었느니라" (슥 3:9). 하나님은 그를 보존해 주실 것이고 그의 세력을 지키실 것이며, 비록 사방에서 칠지라도 사람들 가운데 있는 그의 나라를 보존하실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기독교가 있는 동안 보존되시는 것이다.


📖49:8 <예루살렘의 회복>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2. 하나님은 그가 역사하실 그 구속의 특전을 그의 교회에 적용하도록 그리스도께 권한을 부여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고 도우시는 것은 그의 복음의 날을 구원의 날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은 그리스도에 의한 화목의 말씀이 전파되도다" (고후 6:2).

(1)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간의 평화 협정의 보증이 되실 것이다.

"내가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리라." 우리는 이것을 앞에서도(42:6) 보았으며, 여기에서 다시 신실된 것으로서, 그리고 모두 받아들여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되풀이되어 있다. 그는 언약을 위해, 즉 언약의 모든 축복의 담보를 위해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자기와 화목케 하시는" 것은 그를 통해서였고, "자기 아들을 아끼시지 아니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언약을 위해 주어졌다. 그것은 그가 언약의 중보자, 즉 "우리에게 손을 얹을 판결자" 이시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가 그 언약 속에서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언약의 모든 의무는 우리가 그의 것이라는 사실로 요약된다. 그리고 언약의 모든 특권과 행복은 그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로 요약된다.

(2) 그는 교회의 썩은 곳을 수리하고 반석 위에 그것을 세울 것이다.

그는 "땅을," 또는 오히려 "나라를," 교회의 모형인 유대 나라를 "일으킬 것이다." 그는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곡케" 될 것이다. 포로들이 돌아온 후의 유다 성읍들이 황무하였고 그 교회가 그러했다. 이것들은 유대 민족의 마지막 부패한 시대에 황무한 나라처럼 되었었으나, 복음의 가르침의 열매에 의해 다시 채워졌던 것이다.

(3) 그는 사람들의 영혼을 죄와 타락의 속박에서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게 하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결박되었고 또 사단의 세력 아래 묶여있던 "잡혀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실" 것이다(9절).

용서하는 긍휼은 율법의 저주로부터의 해방이며, 소생하는 은혜는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다.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며 큰 구원의 가지들이다.

"나오라" 고 말씀하는 것은 그이시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그 아들이시며, 그때 우리는 진정 자유롭다. 그는 "흑암에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타나라" 하셨다. "볼 뿐만 아니라 보여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네 자신은 안위함을 얻으라." 그는 문둥병 환자를 감금에서 해제하셨을 때,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빛을 볼 때, 우리의 빛이 비추이게 하자.


📖49: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 막5:1-20
  • 막1:40-45

(4) 그는 그가 자유롭게 하시고 휴식처를 얻어 행복하게 정착하도록 만드신 자들에게 편안한 길을 마련해 주실 것이다(9-11절).

이 구절들은 사로잡혔다가 귀환한 유대인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공급되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그때 그들은 하늘의 총아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의 특별한 돌보심 아래 있었고, 지금도 특별한 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은 속박에서 풀려 천국의 가나안에 정착한, 하나님의 영적인 모든 이스라엘이 받고 있는 거룩한 은혜의 인도하심에 적용될 수 있다.


📖49: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1] 그들은 그들의 짐을 견뎌낼 것이며 필요한 양식을 무료로 얻을 것이다.

"그들이" 양같이 "길에서 먹으리라."

하나님은 옛날처럼 지금도 "요셉을 무리 양같이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대로(大路)의 땅도 그의 초장의 양들을 양육하기에 좋은 땅이 될 것이다. 그들의 풀밭은 골짜기에 뿐만 아니라 대개 건조하며 불모지인 "모든 자산( 山)에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인도해 내신 곳에서 그들에게 이로운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돌보실 것이다(시 34:10). 그리고 그들은 매우 잘 공급받을 것이므로 굶주리거나 갈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궁핍함이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 전에 적절한 때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들을 괴롭히려는 모든 것으로부터 숨겨지고 보호받을 것이다.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그의 양떼로 오정에 쉬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아 1:7). 거룩한 보호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어떤 화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즉 그들은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딜"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 아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을 포로 상태로부터 이끌어 내시는 가운데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구름과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그들의 열조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이끌되," 그들이 행진할 때 이미 그들에게 준비되어 있을 "생의 근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적합하고 때에 알맞은 위로를 주실 것이며, 그것은 바카 골짜기의 빗물 못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따른 반석의 룰과 같을 것이다. 거룩한 인도하심 아래 있으며 그것을 철저히 따르는 자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거룩한 위로와 감로주를 바랄 만한 좋은 근거를 갖는다. 세상은 그 추종자들을 파괴된 저수지나 여름이면 물이 마르는 시내로 인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추종자들을 샘물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안내하시는 자들은 길이 마련되어 있고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1절). "내가 나의 모든 산으로 길을 삼으리라." 과거에 바다에 길을 만드신 그는 비록 산이 통행하기에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거기에 길을 만드실 것이다. 대로나 둑길이 만들어져 그것을 보다 더 평평하고 좋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길을 감독하실 것이며. 옛적에 도피성으로 인도한 길처럼 그것이 잘 손질되고 수선되어 있도록 돌보실 것이다. 예언된 바대로(40:2, 3)바벨론으로부터의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은 복음 사업에 적용되었고 이것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비록 천국으로 가는 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난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도와 그것을 극복하게 하고 산까지도 길로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35:8).

(5) 그는 그들 모두를 온 지역으로부터 이끌어 내어 함께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한 몸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이 서로 격려하여 더욱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대적이 원했던 대로 바벨론 땅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그들이 결속되는 것을 방해받았다. 그러나 그들을 함께 인도해 내려는 하나님의 때가 이르를 때, 한 심령이 그들 모두를, 서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고무해 줄 것이며 다른 나라로 피신하였던 자들도 유다 땅에서 그들을 만날 것이다(12절). 여기에 한 무리가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에서," 혹자는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올" 것이다. 아마도 시님 땅은 바벨론의 어떤 도일 것인데 여기 이외에서는 성경에 지명된 바가 없다. 그러나 혹자는 그것을 우리가 에스겔(30:3, 16)에서 볼 수 있는 "신" 이라 칭하여졌던 애굽의 주요 성읍들 중에 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약속은 개종자들의 큰 무리가 교회로 들어갈 때 더 성취될 것이었고 하나님의 택하신자들이 동으로부터 와서 하나님 나라에 족장들과 함께 앉게 될 때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마 8:11).


📖49: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 49:12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2) 49:14-26 바벨론 포수 중의 선민을 위한 기억과 회복의 약속

(관련 문단, 사48:17-22)

시온에 대한 격려 (이사야 49:13-17)

📖서론


이 구절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로부터 귀환하는 것과 그리스도에 의해 역사될 영원한 구속(그것은 이 구속의 모형이었다)은 교회의 기쁨에 큰 이유들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자상히 돌보신다는 것에 대한 큰 증거들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Ⅰ.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찬송과 감사의 노래보다 나은 것을 공급할 수 없다(13절).

온 창조물은 우리와 함께 기쁨의 노래에 참가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와 함께 구속의 은혜를 나누기 때문이며, 그들이 이 신성한 멜로디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처럼 측정할 수 없는 은총에 대한보답으로는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시 96:11). 하늘에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 위대하신 구속자를 송축할지어다. 땅과 산들은, 특히 땅의 큰 자들은 "기뻐하며 즐거이 노래하라. 피조물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 이고(롬 8:19, 21) 그것은 이제 "충분히 응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축복이요 장식물이다. 그러므로 범우주적인 기쁨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이" 슬픔 속에 있는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의 긍휼을 인하여 "그의 고난당한 자를," 그의 연약을 인하여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기" 때문이다.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Ⅱ.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가장 자상하고 애정 깊은 관심과, 교회의 유익과 위안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설득력있는 이론을 우리에게 공급해 줄 수는 없다.

1. 교회의 환난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배려를 의심할 만한 계기가 되고 있다(14절).

"시온이" 환난 중에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더 이상 돌보시지 않는다. "주께서 나를 잊으셨으며" 앞으로도 더 이상 나를 돌보시지 않으시리라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형편이 때로는 매우 비참하여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잊어버린 바 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라. 이러한 때에, 그들의 시험은 놀랄 만큼 맹렬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신앙심이 없는 자들은 무엄하게도, "하나님께서 이 땅을 버리셨고" (겔 8:12) "저희 죄를 잊으셨다" (시 10:11)고 말한다. 또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낙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셨고 그 백성의 슬픔을 잊으셨다" 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섭리와 공의를 의심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약속과 은혜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는 보수하시는 자이심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보답해 주시는 자이시다. 그러므로 우정의 독소인 경계심을 제거하라.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2. 환난이 지난 후에 오는 교회의 환희는 적당한 때에 그 환난을 문제시되지 않게 만들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해 행하실 일을 들을 수 있다(17절).

[1] 교회의 친구들, 즉 그것을 버리고 떠나갔던 자들이 그곳으로 모일 것이며, 교회를 돕고 위로하는데 최선을 다해 기여할 것이다.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리라." 그리스도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은 교회의 자손들이다.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크게 즐거워하면서 교회에 연합할 것이며 창가에 모여드는 비둘기처럼 성도의 교제에 올 것이다. "너를 건축할 자들은 속히 돌아오리라(혹자는 그것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그들이 네 집과 네 벽을, 특히 네 성전을 지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신속히 행할 것이다." 교회일은 보통 천천히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 그것은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다.

[2] 교회를 위협하고 공격했던 그 대적들은 거기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그 나라를 점령하며 파괴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그리스도에 의해, 이 세상 군왕들, 즉 그 큰 파괴자들은 쫓겨나가고 탈취당하며, 그 힘을 꺾이우고 그 시도를 완전히 좌절당한다.


📖49: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2) 이것에 의해, 하나님께서 시온을 버리거나 잊으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라는 시온의 말은 모두 터무니없는 것임이 나타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하라.

[1] 하나님은 그의 교회와 백성에 대해 자상한 애정을 품고 계신다(15절).

시온의 두려움에 대해,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영광을 염려하는 자로서(그는 만일 시온이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셨다" 고 말한다면, 자기 자신의 체면을 손상당한 것으로 여기시며 자기의 깨끗함을 입증하실 것이다), 또한 자기 백성의 안위함을 염려하는 자로서 답변하고 계신다. 그는 그들이 풀이 죽어 낙심하게 내버려 두시거나 불안한 생각에 빠지도록 하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내가 너를 잊었다고 생각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느냐?"

  • 첫째, 그 자식을 잊는다는 것은 여인답지 않은 일이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연약한 성(性)이라는 것이 그 영예가 되어야 하는 여인은 자식에 대한 동정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식은 순진하고 무력하므로 마땅히 동정을 받아야할 대상인 것이다. 어머니는 특히 자기 자식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자식은 그녀의 것이며 그녀 자신의 분신이고 근래에 그녀와 함께 한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는 자기의 젖먹는 자식에 대해 자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그것을 잊는다면, 그녀의 유방이 곧 그것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 둘째, 그녀가 잊을 수도 있다. 여자는 자기의 젖먹이는 아이를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할 수도 있으며(그녀는 병들어서, 죽어가며 망각의 땅으로 갈 수도 있다), 또한 자기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자기의 자식이 생명으로 태어나자마자 죽이는 자들처럼(애 4:10; 신 28:57)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정도로 비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
  •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은 자기 자식을 향한 가장 자애로운 부모들의 것을 무한히 능가한다. 하나님의 그 자식들에 대한 본연의 애정은 얼마나 큰 것인가!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2] 그는 그의 교회와 백성을 끊임없이 돌보신다(16절).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이것은 각 사람의 운명이 손금으로 새겨져 있고 거기에 있는 금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수상술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잊어 버릴까 염려해서 그것을 염두에 두기 위해 손이나 손가락에 줄을 감아두는 관습이나, 어떤 귀중한 친구를 기념하여 도장이나 기념반지를 지니고 다니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그가 그들을 이처럼 그의 팔의 인장으로써 정하신 것은 그가 그들을 그의 마음에 인장으로써 두신 것을, 그리고 그가 항상 그들과 그들의 권익을 마음에 두시는 것을 시사한다(아 8:6).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우리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는다면" (신 6:8, 11, 18), 그는 우리의 권익을 우리 손에 기호로 새길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시고 그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고 계신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으리라. 네 파괴될 성벽이 비록 즐거운 광경은 아닐지라도, 나의 긍휼의 생각 안에 있을 것이다." 시온의 친구들이 "그 티끌을 연휼히 여기는가?(시 102:14) 시온의 하나님은 그러하시다. 또는 "건축되어야 할 네 성벽의 설계도가 내 앞에 있고 그것은 반드시 그것대로 건축될 것이다." 혹은 "네 성벽(즉 네 안전함)을 네 성벽의 파수꾼처럼 끊임없이 돌본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혹자는 그가 손에 교회를 새기시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그 손에 생긴 상처에 적용시키고 있다. 즉 그가 그 자국을 보시고 자신이 위하여 죽으셨던 자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여호와의 돌보심 (이사야 49:18-23)

두 가지 사실이 여기에 약속되어 있는데, 그것은 유대인이 포로가 되었다가 귀환한 후에 유대교가 소생하는 일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될 것이었고, 또한 그리스도 복음의 전파에 의해 기독교가 심어지는 일에서 더 완전히 성취될 것이었다. 우리는 이 언약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Ⅰ. 교회는 그것에 부가되는 다수의 군중으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그 자녀들이 속히 돌아오리라" 는 것이 약속되었다(12절). 그 약속은 여기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고 매우 격려를 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약속된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무리들이 온 지역에서부터 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사방을 보라." 유대교에로의 지역적인 접근으로 인해 "다 모여 내게로 오느니라" (18절). 그들은 모든 인접 마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 당시 그것은 그들이 집합하는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 아래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에 영적으로 도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께 오는" 자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시온 산," 곧 "장자들의 총회에 온다" (히 12:22, 23). "눈을 들어" 얼마나 "밭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는가" 를 보라(요 4:35).

그리스도께로 오는 개종자들의 무리를 보는 것은 교회에게 기쁜 일이 된다.


📖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2. 교회에 더 더하여지는 자들은 교회에게 있어서 짐이나 결점이 되지 않고 그 힘과 장식이 될 것이다.

이 약속의 부문은 맹세로써 확증되어 있다.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몸에 차리라." 교회에 이러한 무리가 더하여지는 것은 교회의 옷을 완전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택함받은 모든 자들이 충분히 부름을 받을 때, 그때에 신부, 즉 어린양의 아내가 예비할 것이며 완전한 옷차림을 할 것이다(계 19:7). 그들은 교회를 우아하고 유력하게 나타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신부가 자기의 장식물을 손질하듯 매우 배려깊고 즐겁게 그들을 결속할 것이다. 교회에 더하여진 자들이 신중하고 거룩하며 그 대화에 있어서 모범이 될 때, 그들은 교회의 장식이 된다.

3. 이처럼, 황폐하고 적막하며 거할 자가 없는 땅에(5:9; 6:11)다시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아니, 사람들이 넘칠 것이다(19절).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즉 오랫동안 그렇게 버려져 있던 곳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 즉 너와 함께 파멸되었고 아무도 거하려 하지 않던 네 땅이 이제는 백성들로 가득 찰 것이므로 거할 곳이 없을 것이다." "복을 쌓을 곳" 이 없을 때까지 복이 쏘아진다(말 3:10). 그러나 거기에 그 대적들로 들끓거나, 그 땅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 때문에 아브라함과 롯이 그러했던 것처럼 거할 곳이 없어 곤경을 당하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너를 삼켰던 자들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네 소유권이 취하되었을 때 네 땅을 소유한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네 백성이 무수할 것이며 그들 중에는 나그네나 대적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일부는 유대교의 부패함으로 인해, 그리고 일부는 이방 세계의 가증스러움으로 인해 황폐케 되고 거의 거민이 없었던 "하나님의 나라" 에 기독교가 세워지고 그 은혜와 영광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람들이 거하고 풍요케 될 것이다.


📖49:19 이는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주민이 많아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4. 새로운 개종자들이 놀랍도록 불어나고 증가될 것이다.

칼과 기근과 포로로 인해 많은 자녀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은 그들 대신 자라나는 새 가정을 얻게 될 것이며, "아벨대신에 다른 씨를 주신" 셋처럼 "고난 중에 낳은" 자녀들과(20절). 집이 무너졌을 때 죽임을 당한 자녀들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욥의 자녀를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와 손실을 보상하시고 그 속에 그를 섬기는 자손을 확보해 두실 것이다. 유대인들이 돌아온 후에, "예루살렘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는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슥 8:5). 교회는 자기의 불신앙으로 인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유대인들을 잃은 후에도, 유대인들이 교회에 속했을 때 그러했던 것 이상으로 여전히 많은 자녀들을 갖게 될 것이다(갈 4:27 참조). 그들은 매우 수효가 많을 것이다.

(1) 그리하여 그 자녀들은 장소가 좁은 것을 불평할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들이 아들들이 불평했던 것처럼(왕하 6:1) "우리 수효가 급격히 늘어나니 이곳은 우리에게 좁다" 고 말할 것이다(그것은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장소가 좁을지라도 들어오려는 욕구는 여전히 더 많을 것이며, 교회는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일 것이고 장소가 불편하고 비좁다는 사실이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찌 생각하든,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올지라도, "오히려 자리가," 들어온 자들에게 충분한 진리와 아직도 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눅 14:21, 22).

(2) 어머니는 자기 가족이 불어나는 것에 놀랄 것이다(21절).

그녀가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할 것이다. 그들은 그녀에게로 와서 온갖 의무를 다하고 애정을 쏟으며 자녀로서 복종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들을 위해 어떤 수고도 하지 않았고, 그들과 더불어 고생을 하지도 않았고, 그들은 이미 양육되어 그녀의 손에 주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녀에게 즐거운 놀라움을 안겨 주고 그녀는 그녀가 근래에 매우 오랫동안 처해 있었던 형편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대 민족은 자기 자녀들을 떠나 버렸고 그들은 끊어졌다. 그 민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지하신다는 표적들인 궤와 제단과 성전 봉사가 없어지고 황폐케 되었다. 아니, 그 민족은 포로였었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이리저리 이동했으며 하나님을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자녀를 키울 것 같지 않았다. 그 교회는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홀로 남겨졌고(" 이것은 아무도 구하지 않는 시온이라") 매우 고독하고 슬픈 과부 상태로 남겨졌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어떻게 이처럼 다시 채워지게 되었는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교회는 영구히 현존하지 않고, 그것이 황폐하여 홀로 남겨지고 숫자적으로 극히 적을 때가 있다.

[2]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황폐함도 영구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회복시키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돌들을 일으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음이 발견될 것이다.

[3] 때로는 이것이 나라가 하루에 생길 때처럼(66:8) 매우 놀랍게 이루어진다.


📖49:20 자식을 잃었을 때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내게 좁으니 넓혀서 내가 거주하게 하라 하리니


49:21 그 때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들을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워졌으며 사로잡혀 유리하였거늘 이들을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남았거늘 이들은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5. 이것은 이방인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2절).

유대인들은 버림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에서 교회가 세워질 것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이 땅에 심으실" 것이며, 거기에서 풍성한 수홧을 거두실 것이다(호 2:23).

(1) 어떻게 이방인들이 부름을 받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종일 손을 펴서 유대인들을 불렀으나(65:2) 헛되이 돌아가자, "그들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고" 그들을 인도하거나 부르실 것이다. 또는 그것은 전능하신 능력이 발휘되는 것으로, 즉 그들이 기꺼이 오도록 하게끔 그의 성령과 은혜가 발휘되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향하여 그의 기호를," 영원한 복음의전파를 "세울" 것이며, 그들은 거기로 모여들고 거기에 편입할 것이다.

(2) 어떻게 그들이 올 것인가?

"그들이 그의 아들들을 품에 안을 것이니라." 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올 때 그들 중에서 발견된 시온의 아들들을 도울 것이며, 연약하고 무력한 아기를 부모가 품에 안는 것처럼 매우 자상하게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이방 사람들 중에서도 친구들을 일으키실 수 있다. "땅이 여자를 도왔도다" (계 12:16). 또는, "그들은 올 때 그 자녀를 데리고 올 것이며, 그들은 그의 자녀로 만들 것이다(60:4 와 비교). "누가 이 무리를 낳고 양육하였는고? 하고 네가 묻느냐? 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낳아 양육되었지만 이제 네 가족이 되리라는 사실을 알라"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린 개종자들, 그리고 신앙적으로 어린 초보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어린양들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는" 것처럼 매우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그들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Ⅱ. 교회는 열국들에게서 크고도 유력한 세력을 얻을 것이다(22,23절).

📖49:22 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 나라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49:23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1. 열왕들 중의 일부는 교회의 후원자와 보호자가 될 것이다.

"열왕을 네 양부가 되어" (모세처럼, 민 11:12) 네 아들을 그들의 품에 안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가장 적합한 양육자이므로, "앙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니라." 이 약속은 유대인들이 사로 잡혔다가 귀환했을 때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고레스 다리오, 그리고 아닥사스다와 같은 여러 바사 왕들은 그들의 권익을 보살펴 주었고, 그들을 장려 하고 격려했다. 또한 에스더 왕비는 포로로 남아있는 유대인들의 양모로서 불 속에서 그 아기를 꺼내기 위해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릎썼다. 오랜 감금 상태 후의 기독교 교회는 교회를 온갖 배려와 자상함을 갖고 양육했던 콘스탄티누스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 같은 왕들과 왕비들 가운데서 행복했으며, 그 후에는 데오도시우스와 그밖의 왕들 가운데에서 행복했다. 통치의 홀이 신앙적인 군왕들의 손에 놓일 때마다, 이 약속은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는 유아 상태에 있으며, 교회를 위해 큰 봉사를 행할 수 있는 군왕과 장관들의 권세 안에 있다. 그들이 그렇게 행할 때, 그들의 권세가 잘 행하는 자들을 칭송을 할 때, 교회는 행복한 것이다.

2. 그들 중에서, 교회의 세력이 도전하는 사람들은 항복하고 그들의 반항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은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라."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약속은 이 말씀을 빌어온 것으로 보인다(계 3:9). "내가 사단의 회의 몇 사람으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 또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서 자기 자신을 명시할 때, 왕과 나라들이 교회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기꺼이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시 72:11).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리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의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1) 하나님은 여호와, 만유의 주재이시며, 그 어느 것도 끝까지 그에게 대항하거나 버틸 수 없다.

(2) 그를 바라는 자들, 즉 그의 약속에 의지하며 그의 뜻에 맡기는 자들은 그들의 소망에 대해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평강에 대한 비젼은 정해진 시기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말에는 이것이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전능하심 (이사야 49:24-26)

Ⅰ.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의 해방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제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한 자, 그 당시 땅에서 가장 큰 군주의 손에 떨어진 먹이였으므로, 그들이 폭력적으로 구조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24절).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즉 그들은 합법적인 포로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전쟁에서 잡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그들이 속전되거나 교환될 때까지는 마땅히 포로로 감금되어 있어야 했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그들의 대적들은, 자기네들이 그들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러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권력과 권리를 주장한다. 교만한 자들은 그들이 손을 대는 모든 것이 그들의 것이고, 그들이 가장 큰 칼을 갖고 있기만 한다면 훌륭한 직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그들의 친구들이 구원에 대해 낙심하여 불신하는 투로(" 우리를 감금한 자들을 누가 완력으로나 화친으로 다룰 수 있겠느냐?") 또는 그 구원에 대해 감탄하는 감사의 어투로 이러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 그 희생물을 용사에게서 빼앗을 것을 누가 생각했겠느냐?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졌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구속에 적용된다. 우리는 사단에게 용사의 손에 있는 먹이였으나, 생명의 권세를 지니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지닌 사단에게서 건져졌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포로였으나 헤아릴 수 없이 귀한 대가에 의해 건지워졌다.


📖49: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Ⅱ. 이러한 의미에 대해 특별한 약속. 즉 또 하나의 약속이 주어져 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모두 예와 아멘이기 때문에 그 약속들은 서로 확증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1. 대적의 힘에도 nonobstante- 즉 불구하고 특별한 약속이 주어져 있다(25절).

"용사의 포로는 그 용사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그에게서 벗어날 것이며, 용사는 그것을 막아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강포자의 빼앗은 것은, 그 강포자가 아무리 무시무시할지라도 건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온갖 힘을 기울여도 그 구원과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찌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파렴치하다 할지라도 태연할 수가 없다." 여호와는 그의 손에 모든 권세와 마음을 쥐고 계시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는 그의 말씀을 성취하실 수 있다.


📖49: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


2.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이루실까를 보여주면서, 또 하나의 약속이 주어져 있다. 그는 학대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학대당하는 자들을 위해 구원을 역사하실 것이다.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너를 학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자들에 대한 네 사유를 변호하리라. 너와 다투는 자가 누구든지 간에, 비록 그가 단 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니, 이처럼 내가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포로된 자들은 "사로잡는 자를 사로잡히게" 함으로써, 즉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만든 자들을 포로로 보냄으로써(계 13:10) 건지워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피의 보복을 피로 받게 될 것이다(26절).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라. 교만한 바벨론 사람들은 서로에게 쉽게 먹이가 될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드는 먹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분열하는 마음을 보내실 것이며, 외세의 침입에 의해 시작된 그들의 멸망은 내부의 분열에 의해 완결될 것이다. 그들은 피차 멸망할 때까지 물고 삼킬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피와 살들을 게걸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먹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압제자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멸망시키는 자로 만드실 수 있다.

신약 바벨론은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성도들의 피를 마시게 만들었으므로, "그것이 마실 피를 얻을 것이니, 그것은 합당한 연고라." 사람들은 때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라. 사실상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자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람들의 보복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늠했던 것에 의해 그들을 잴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피에 갈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매우 게걸스럽게 마시기 때문에 그것에 취하며, 마치 그것이 달콤한 술인 것처럼 매우 즐겁게 마신다. 죄인들이 서로에게 노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지 않는다면, 세상은 곧 아겔다마(피밭)나 또는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Ⅲ. 바벨론이 멸망한 결과가 어떠할 것인가를 보라.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인 줄 알리라." 하나님은 그것을 나타내시어, 비록 이스라엘이 실종당하고 버림을 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구속자를 갖고 있으며, 비록 그들이 용사에게 희생이 될지라도 야곱은 그의 모든 대적을 다루실 수 있는 전능자를 갖고 계신 것을 온 세계에 깨닫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건지심으로써 자기 이름을 공고히 하고 높이시려는 의도를 지니고 계시다.


📖49:26 내가 너를 억압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살을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 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3) 사50:1-3 (관련 문단, 하42:18-25)

이스라엘에 대한 충고 (이사야 50:1-3)

📖 서론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했으나 냉혹한 대우를 받는 자들은, 마치 그가 그들에게 가혹하게 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의 불평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Ⅰ. 그 싸움이 하나님 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그것에 대해 어떤 증거를 대라는 도전이 그들에게 주어짐(1절).

그러나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잘못 행하셨다거나 독단적으로 행하셨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1. 그는 그들에게 남편이 되어오셨었다.

그 당시 남편들은 조금 싫증나면 자기 이러자마자 내들을 버릴 권한을 허용받았다. 만일 그들의 아내가 그들의 눈에 고임을 받지 못했다면, 그 아내는 그들이 이혼증서를 주는 것에 대해 아무런 항의도 할 수 없었다(신 24:1; 마 19: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다루셨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제 그에게서 떠나 여러 날 동안 에봇이나 제단이나 제물없이 살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었는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미에게 이혼 증서를 주셨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혼 증서는 이혼당한 여자의 손에 주어졌으니, 만일 그들이 할 수 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게 하라.


 📖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2. 그는 그들에게 아버지가 되어 오셨었다.

그 당시 아버지들은 그들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갚기 위해 그 채권자들에게 그 자녀들을 노예로 파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그 후에는 로마 사람들에게 팔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빚을 갚기 위해 그들을 파셨는가? 아니다. 그는 그들이 팔려간 자들에게 빚을 지지 않으셨다. 또는 그가 그들을 파셨다면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다" (시 44:12).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징계하실 때, 그것은 그의 즐거움이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히 12:10). 구원받는 모든 자들은 은혜의 대권에 의해 구원받으나, 멸하는 자들은 절대적인 주권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의 행위로써 끊어짐을 당하는 것이다.

Ⅱ. 그들 자신이 그들의 멸망의 장본인이었음을 그들에게 보이면서, 그들의 죄과가 제시됨.

"오직 너희는 죄악을 인하여, 죄악의 즐거움과 네 야비한 욕망의 충족으로 인하여 팔렸다. 즉 너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너희가 팔린다. 부모들의 빚으로 인해 부모들에 의해 팔리우는 자식들처럼 팔린 것이 아니라, 자기의 범죄로 인해 벌을 받기 위해 재판장들에 의해 팔리우는 범인처럼 팔렸다. 너희는 악을 행하기 위해 너희 자신을 팔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너희 대적의 손에 파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대하 12:5, 8).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과 그녀 자신의 간음으로 인하여 내어 보냄을 입었느니라." 간음은 항상 이혼의 정당한 사유가 되어 왔었다. 유대인은 우상 숭배와 결혼 언약을 파기한 죄로 인해 바벨론으로 보내어 졌고,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것으로 인해 마침내 거부당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팔려내어 보냄을 입게 한 죄악이었다.

Ⅲ.이 도전과 고소의 확증.

1. 그들이 버림받은 것은 그들 자신 때문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은총을 제공하셨으나, 그들의 환난을 막거나 그들을 거기에서 구하시기 위해 그의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셨으나, 그들은 그와 그의 은혜의 제공물들을 경시했다.

"너희가 그것을 내 탓으로 돌리느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느뇨?(2절)"

하나님은 그의 종들인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오셔서 그의 포도원의 실과를 요구하셨다(마 21:34). 그의 사신들을 "그들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셨다" (렘 35:15). 그가 그들에게 죄에서 떠나 그들 자신의 멸망을 막도록 요청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없었거나" 선지자들이 준 경고를 경청하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답하거나 그가 그들에게 보내신 메시지에 응하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그들은 팔렸고 내어 보냄을 입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셨다" (대하 36:16, 17). 마지막으로 "그가 자기 아들을 저희에게 보내셨다." 그러나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자기에게로 부르셨으나 대답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자식들을 함께 모으려 하셨으나 그들은 그렇게 하려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평강에 속한 일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앙의 날을 알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쫓겨남을 당했고 그들의 집은 황폐케 되었다(마 21:4; 23:37, 38; 눅 19:41, 42).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행복에로 부르셨으나 그들이 대답하려 하지 않을 때, 그들은 비참한 상태로 버려져도 마땅한 것이다.


📖50: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2.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전능하시어서 그들을 그처럼 큰 사망으로부터 회복시킬 수 있으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벨론에 있었던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건지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구출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시대의 사람들은 비웃으면서 "저가 자기를 구원할 수 없거늘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하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손이 어찌 짧거나 연약하겠느냐?"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전능자에게 한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위대한 구속자인 자가 구속할 수 없겠느냐? 모든 능력을 지닌 자가 "건질 능력" 이 없겠느냐? 그의 능력에 대한 그들의 의심을 잠잠케 하고 영원한 수치가 되게 하기 위해, 그는 여기에서 그것에 관한 의심할 여지없는 증거를 제시하고 계신다.

(1) 그는 원하신다면, "바다가 마르게" 하고 하수로 광야가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셨을 때 그렇게 행하셨으며,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속해 내기 위해 다시 그렇게 행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셨을 때, "저희 물고기를 죽이셨도다" (시 105:29). 믿음의 능력에 관해 우리 구주께서 때로 사용하신 표현, 즉 그것이 "산을 옮기고 뽕나무를 바다에 심기우게" 하리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만일 그들의 믿음이 그것을 행할 수 있었다면, 의심할 것없이 그들의 믿음이 그들을 구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불신앙으로 멸망했다면, 그것은 변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2) 그는 원하신다면 하늘의 빛을 가리우실 수 있다. 즉 그가 조정하시는 평평하게 뜬 뚜껍고 어두운 구름을 가지고(욥 36:32; 37:16)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으실" (3절) 수 있다.


📖50:3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