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6, 시편 5, 6, 잠언 21, 골로새서 4
묵상구절
27:1 <거짓 선지자들과 싸우는 예레미야>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
27: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27:3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주어 에돔의 왕과 모압의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의 왕과 시돈의 왕에게 보내며
27:4 그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의 주께 말하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의 주께 이같이 전하라
27:5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내가 보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노라
27: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27:7 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27: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27: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너희는 듣지 말라
27: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 너희가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내가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망하게 하느니라
27:11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관련 문단, 왕하25:1-17)
27: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27:13 어찌하여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27:14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27:15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27: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27:17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
27: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27: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과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7:20 이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인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가져가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7: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7: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 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느부갓네살의 승리 예언 (예레미야 27:1-11)
이 예언의 연대를 결정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이 말씀은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아서" 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1절). 그러나 예레미야가 바벨론에게 충성의 표시를 하라고 권한 사신들은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왔다" 고 기록되어 있다. 시드기야는 여호야김의 통치가 시작된 후 11년 후에야 왕위에 올랐다(3절). 어떤 이들은 이를 복사가의 과실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1절은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 로 되어야 옳다고 본다. 부주의한 복사가가 전 장의 1절을 기록하던 습관으로 여호야김이라 기록했을 것이라고 한다. 만일 과오로 본다고 하면 1절에서 착오가 생긴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드기야가 다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12절). 그리고 다음 번의 예언도 같은 해로 기록되는 데 즉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을 해" 라고 되어 있다(28:1). 라이트푸트 박사(Dr. Lightfoot)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여호야김이 통치를 시작하던 해에 예레미야가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고 유다가 바벨론 왕에게 항복할 것을 예고하였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행위가 바로 그 때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이웃 왕들에게 사신들을 보낸 것은 여호야김을 계승하여 즉위한 시드기야 시대로서 그가 사신을 보낸 답례로 사신들이 이스라엘에 온 것이다. 이 사실이 예언 직전에 언급된 것이라고 한다.
Ⅰ. 예레미야는 이 모든 국가들이 바벨론 왕에게 항복해야 된다는 것을 단번에 나타낼 수 있는 상징물을 준비하였다(2절). 즉 그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멍에를 목에 걸고 빠져나오지 않도록 목에 단단히 맸다.
이렇게 하여 예언자는 자신의 목을 그들이 깨닫게 하려는 예언적 상징으로 삼았다. 그가 이렇게 하고 다니면 예레미야의 멍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누구나 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8장 10절에서 그의 모습이 문제가 되고 있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는 그들에게 조언해야 할 사실을 자신의 몸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우면서" 자기들은 손가락도 하나 대지 않으려는 무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교역자들은 이와 같이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한 설교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껴야만 한다.
Ⅱ. 예레미야는 이러한 모습을 하고서 인접 국가의 왕들에게 예언 내용을 전하라고 사신들에게 명한다.
여기서 언급된 국가들은(3절) 가나안 땅과 인접한 국가들이다. 유다 왕과 이들 모든 국가의 왕들과의 사이에는 공동방위 조약이 체결된 것처럼 보인다. 예루살렘은 조약체결 국가들의 회의 장소로 지정된 곳이었다. 모든 왕들은 예루살렘에 그들의 전권대사를 파견하였다. 그들은 동맹을 맺어 바벨론 왕의 증대해가는 위협을 막아 공격하는 일에나 방어하는 일에 서로 돕기로 하였다. 그리하여서 바벨론 왕의 엄청난 세력을 막고자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연합된 힘을 대단히 신뢰하여 스스로 칭하기를 대동맹국이라 하였다. 그러나 사절 일행이 조약 체결서를 가지고 각각 자기 군주에게로 돌아갈 때 예레미야는 각국 사절들에게 그들의 군주에게 그들이 멍에를 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라고 명하였다. 즉 그들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바벨론 왕의 종이 될 것인데 어느 길을 택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전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여 그가 원하시는 대로 나라들을 처리하실 것이 주장되고 있다(5절).
그는 만물의 창조자시라. 비록 "한 세대는 가고 다른세대는 오지만" 이 원리는 한결 같으시다. 그는 또한 계속되는 창조 활동을 통하여 "지상에 사람과 짐승들을 지으시는데" 이는 그의 "크신 권능과 펴신 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는 팔을 펴셔도 힘은 여전하시다. 이러므로 그는 자기가 기뻐하는 자들은 누구에든지 재물과 지배권을 주실 수 있다. 그는 자비를 베풀어 "땅을 인생에게 주셨다" (시 115:16). 그뿐 아니라 크든 작든 각자에게 그 몫을 정해 주셨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수여된 것임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만족히 여겨야 한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작더라도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졌다고 하여 그들이 가진 것을 탐내서도 안 된다.
2.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나라들을 느부갓네살에게 넘기셨음이 선포된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받은 은사에 의하여 알게 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된다. Sciant praesentes et futuri-즉 이 모든 나라들을 그 나라에 속한 재물과 함께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다는 사실을 이 일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하노라. 밭의 짐승들 즉 야생동물이나 가축을 물론하고 또한 목초지와 휴양지도 그에게 주노라. 이 모든 것이 다 그의 것이라. 느부갓네살은 거만하고 악한 인물이었으며 또한 우상 숭배자였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섭리에 의하여 이 막대한 영토와 소유물을 그에게 주신다. 이 세상의 물질들이 최상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막대한 소유물을 악인들 곧 하나님과 겨루고 그에게 대적하는 자들에게 주시기로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많은 소유를 허락하셨다. 지배권이란 은총에 의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영원한 행복이란 아름다운 권리로 얻지 못하는 자들이 일시적인 재물을 누린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느부갓네살은 매우 나쁜 인물이었는데도 하나님은 그를 그의 종이라고 칭하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로 자기의 섭리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었다. 즉 나라들은 특히 그의 백성들을 징벌하시는 하나님은 그를 도구로 쓰신다. 하나님은 그의 수고의 대가로 그에게 소유물로 보상하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쓰여진 자를 섭섭하게 하시지 않으신다. 더구나 성실하게 마음먹고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 그는 풍부한 보수자가 되신다.
3.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가 한동안 어쩔 수 없이 바벨론 왕의 지배하에 있을 것을 확증하신다(7절).
"열방이" 즉 본문에 기록된 나라들과 기타 여러 나라들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고 하신다. 느부갓네살의 아들 이름은 에벨메로닥이고 그의 손자의 이름은 벨사살이었다. 이 벨사살 때에 이르러 왕국은 망한다. 즉 그의 나라를 계수하신 때가 이르른 것이다. 이제 판도는 바뀌어 많은 나라들과 대왕들이 메대와 페르샤 제국으로 병합되겠고 25장 14절에서 말씀된 바와 같이 그들이 "바벨론으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 고 한다. 이같이 되어 아도니베섹은 그가 다른 왕들을 짓밟은 것처럼 자신도 짓밟히게 되었다.
4.하나님께서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대적하고 바벨론 왕에게 복종하지 말자는 사람들을 경고하신다(8절).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으로 벌하리라." 느부갓네살은 인접국가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는데 있어서 또한 무력으로 그들을 그에게 굴복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불의하고 야만적이었다. 그렇지만 느부갓네살로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바르고 거룩한 것이었다. 즉 이들 민족들의 우상 숭배와 큰 부도덕 때문에 그들을 처형하시기 위하여 그를 이용하신 것이었다.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파멸시키기로 작정해 놓은 적들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5.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탐닉하고 있는 꿈 즉 그들이 자기들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다는 생각의 헛됨을 보여 주신다(9,10절).
다른 국가에도 그들 나름대로의 예언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별, 꿈, 열광적인 황홀 상태를 통하여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듯이 행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군주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않으리라" 고 보장하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또한 이들 점술사들은 그와 같은 점괘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므로 점술사들은 군주들로 생기를 얻어 용감히 저항하도록 하고 있었다. 점괘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었지만 그 점괘대로 되기를 그들은 바랐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열왕들에게 결과는 그들의 파멸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저항으로 인하여 열왕들은 정복자를 격노케 할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들을 가혹히 취급하여 포로로 삼아 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열방들은 포로가 되어 거기서 뿔뿔이 흩어져 결국 망각 속에 묻히게 될 것이라 한다. 이스라엘에 인접하고 있는 이들 국가들에 대한 특별 예언들은 몇 번이 나타난다. 본문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들의 파멸이 예언되고 있다. 이러한 예언을 우리는 48, 49장, 에스겔 25장에서 볼 수 있는데 이들 예언들도 본문의 말씀과 함께 그대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면 그대로 이루신다" 는 사실을 기억하자.
6.하나님께서는 항복이라는 쉽고도 조용한 방법을 통하여 그들이 파멸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다(11절).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바벨론 왕을 섬겨 70년동안 조공을 바치기를 수락하는 국가들은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거하게 하리라." 구부리는 자들은 꺾임을 당하지 않는다. 또한 바벨론 왕의 지배가 자기들의 왕들의 지배보다 더 어려운 짐을 지우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기보다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 더욱 참된 지혜인 경우가 가끔 있기는 하다. 또한 반면에 잇사갈이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며" 그 아름다움을 평화롭게 즐기기 위하여 본문에서 충고되고 있는 것처럼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서 섬기리라" 고 하였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잇사갈의 수치라고 하지는 않았다(창 49:14, 15). 마찬가지로 본문에도 "바벨론 왕을 섬기며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고 하신다. 어떤 이들은 이런 행위를 천박한 영혼을 지닌 소치라고 비웃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 행위로 온유한 영혼에서 우러나온 행위를 권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불가항력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혹한 섭리의 변화에 잠잠히 복종하는 것이 불행 중에서 최선의 길을 택하는 것이 된다. 섭리에 역응하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 다음과 같은 고시(古詩)가 있다.
Levius fit patientia
Quicquid Corrigere est nefas. -Hor
우리에게 인내가 요구될 때 참는 것은 짐을 가볍게 하는 효력이 있네.
비천한 운명(섭리) 앞에서 자기를 굴복시킴으로 파멸의 운명(섭리)를 제지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말할 수 없이 무거운 십자가를 우리 머리 위에 얹고 가는 것보다 우리의 가는 길에서 십자가를 가벼이 하고 가는 것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