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6, 누가복음 9, 욥기 23, 고린도전서 10
묵상구절
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6: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일러라. 남자나 여자가 나실인의 특별한 서원을 하고 자신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린다면,
6:3 포도주나 독주를 멀리하고, 포도주의 식초나 독주의 식초를 마시지 말고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마라.
6:4 자신을 구별한 모든 날 동안 그는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모든 것, 곧 씨나 껍질이라도 먹어서는 안 된다.
6:5 자신을 구별하기로 서원한 모든 날 동안에는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고, 여호와께 자신을 구별한 날이 끝날 때까지 그가 거룩하므로 그의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나도록 두어야 한다.
6:6 그는 여호와께 자신을 구별한 모든 날 동안 시체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6:7 그의 부모와 형제 자매가 죽었을 때에라도 그들 때문에 더럽혀서는 안 되니, 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가 자기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다.
6:8 그가 자신을 구별한 모든 날 동안 여호와께 거룩하다.
6:9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곁에서 갑자기 죽어 자신을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혔으면, 그가 자신이 정결해지는 날에 자기 머리를 밀되, 곧 제칠일에 밀고
6:10 제팔일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혹은 새끼 비둘기 두 마리를 회막 입구의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한다.
6:11 제사장은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다른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쳐서, 그가 시체 때문에 죄지은 것을 속죄하고, 그 날에 그의 머리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6:12 그는 여호와께 헌신하여 자신을 구별할 날을 다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와서 속건 제물로 드려야 하며, 이전 날들은 무효가 될 것이니, 이는 자신을 구별한 그의 헌신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6:13 이것이 나실인의 법이다. 자신을 구별한 날이 끝날 때, 그를 회막 입구에 데려가야 하며
6:14 그가 여호와께 자기의 예물을 바치되,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화목 제물로 바쳐야 하고
6:15 고운 밀가루로 만든 누룩 없는 빵 한 광주리와 기름을 섞은 과자와 기름을 발라 누룩 없이 만든 전병과 곡식 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드려야 한다.
6: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가 그의 속죄 제물과 번제물로 드리고
6:17 숫양을 누룩 없는 빵 한 광주리와 함께 화목 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곡식 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드려라.
6:18 나실인은 회막 입구에서 자신의 구별된 머리를 밀고, 구별된 머리의 머리카락을 취하여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 위에 두어야 하며,
6:19 그 나실인이 자신의 구별된 머리를 민 후에 제사장은 삶은 숫양의 어깨와 광주리에 있는 누룩 없는 빵 하나와 누룩 없이 만든 전병 하나를 가져다가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6:20 그것들을 흔들어서 여호와 앞에 흔들어 바친 제물로 삼아야 한다. 그것과 흔들어 바친 가슴과 높이 들어 바친 넓적다리는 제사장에게 거룩한 몫이다. 그 후에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6:21 이것은 서원한 나실인이 지켜야 할 법이니, 자기 몸을 거룩하게 구별함으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는 일과 이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할 것이나 그가 서원한 대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한 자의 법을 따라야 한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영적교훈 서론부
본문은 본격적인 가나안 행군을 위한 이스라엘 민족의 군대 편제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그 이스라엘 진영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네 가지 사항들에 대한 실행 및 관련 율법들을 주고 있는 제 5,6장의 연속 부분.
이러한 본문은 이스라엘 동족 모두와 함께 하나님의 군대에 속한 자이나 스스로 자원하여 더욱 특별히 하나님께 성별된 삶을 살기 원하는 자를 위한 나실인 서원법에 관해 기록.
나실인 (Nazarite) 이란 일정한 기간 동안 특벌히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틀 가리킵니다.
따라서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으로서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실인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도주와 독주를 금한다든지,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까다로운 규례를 반드시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런 나실인 규례가 특별히 율범 중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나실인의 특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구별된 자로서 성도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타나는 나실인 서원법은 오늘날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 구별된 성도들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 나실인에 관한 율법(민수기 6:1-21)
죄로 인하여 곤욕을 당하는 자들을 찾아내어 수치를 주는 것에 관한 율법 뒤에, 스스로를 뛰어난 경건과 헌신으로 영예롭게 하여 남과 구별된 자들을 지도하고 격려해 주는 이 율법이 나온 것은 적당한 일이다. 이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나실인" 의 성격을 지닌 자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칭호는 남보다 신앙에 더 열심이 있고 철저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나실인이라고 불러 치하했을 것이다. 본문에 보면, 나실인의 서원이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이요, 단지 그 의무 규정만을 더 분명히 하려고 할 뿐이기 때문이다. 요셉도 그의 형제들 중의 나실인이라 했다(창 49:26). 그것은 단순히 그가 형제들 때문이 아니라 그가 뛰어 났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Ⅰ. 나실인의 일반적 성격
: 그것은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려진" 사람이라는 것이다(2절). 어떤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일생 동안 나실인으로 살았다. 즉 삼손(삿 13:5)과 세례 요한이다(눅 1:15). 또 자기 부모의 서원에 따라 그렇게 된 자도 있다. 즉 사무엘이다(삼상 1:11). 그런 자들에 대해서는 이 율법에는 언급이 없다.
본 율법은 자원하여 스스로 얼마 동안 나실인으로 자청한 자들에 관한 율법이다. 제한은 있지만 여자도 나실인의 서원을 할 수 있었다(30:3). 거기에 보면 그 여인은 여호와께 특별한 맹세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남자나 여자가,
- ‘여자'가 ‘남자'처럼 나실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사희가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것을 고려해 볼 때 대단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즉 나실인의 규정은 남녀 차별이 심했던 당시대의 사회, 문화, 종교적인 관습을 뛰어넘어 여성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헌신할 수 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특별한 규례이다. 결국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여성이 인격적으로 남성과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여성 역시 남성과 동일하게 하나님께 서원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 나실인은 그들이 나실인으로 있는 동안만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다.
아마 그러는 동안 많은 시간을 율법 연구와 예배와 가르치는 일에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건한 정신이 그들과 그들이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 2절, 나실인
- 유래: ‘구별된 자, 하나님께 드려진 자’ ‘죄에서 떠나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 란 뜻.
- 나실인 = 하나님을 위해서만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구별시켜 서원한 사람.
- 두 부류
- 일시적 나실인
- 종신 나실인
- 서원의 동기
- 개개인이 자원하여 헌신하는 경우
- 부모의 서원이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명령으로 시행되는 경우(삼손-삿13:5; 사무엘-삼상1:11).
- 오늘날 성도들과의 관계
- 오늘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별된 삶을 살기로 작정한 우리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는 마땅히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그들은 일반인과 속인과 구별된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는 이 세상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남과 구별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옛 삶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 2절,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것
- 나실인이 되고자 하는 목적, 즉 죄에서 떠나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드리고자 하는 행위의 목적이 여호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 나실인은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삶 전체를 드려야 했다.
- 나실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신의 주관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을 스스로 굴복시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 우리도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 자신을 쳐 복종시키기에(신27:10; 고전9:27) 최선을 다해야 한다.
- 맹세로써 구별된다.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것을 거룩한 율법에 의해서 하게 된다. 그러나 나실인은 자기들의 행실을 통해서 스스로 경건한 일에 참여하여 그 사랑의 결실과 표현을 보임으로써 남보다 풍성한 사랑을 실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극시키시사 교회의 빛이요, 신앙의 표준을 지킨 자요, 경건의 모범으로 삼으시는 그런 자들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젊은이들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키심" 은 그 민족에게 베픈 커다란 호혜라고 했다(암 2:11). 나실인은 길거리에서 알아 볼 수 있게 되고, "눈보다 정하고, 젖보다 더 희다" 는 존경을 받게 된다(애 4:7).
그리스도는 나사렛 사람(어원은 같음:역주)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또 그의 추종자들도 그런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이 율법에 따른 나실인이 아니었다. 그는 포도주를 마셨고, 시체를 만졌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실인의 모형이 완성되었으니, 그 안에서 모든 순결과 완전이 합치되기 때문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 인은 영적 나실인이다. 그들은 맹세로 주님께 드려진 자들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자기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서 유대인들과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실인의 율법에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방인들은 "그런 일을 피해야 한다" 고 선언했다(행 21:24, 25). 어떤 사람이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지대한 영예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나실인을 악하게 말해 "그러느니 차라리 나는 나실인이 되겠다" 는 식으로 말하면, (유대인에 의하면) 그는 사악한 인간이다. 그러나 거룩하게 나실인이 되겠다고 여호와께 서원한 자는 "보라, 그의 하나님의 면류관이 그의 머리에 있도다" 라는 말을 듣게 된다.
💒 2절, 서원(vow)
- 하나님께 구두로 자신을 바치거나 어떤 일을 행할 것을 맹세하고(창28:2), 그에 합당한 제물을 바치며(레 27장), 아울러 어떤 일을 삼가는(시 132:2) 총체적 행위.
- 서원의 특성 — 자발성. 약속을 지킬 의무.
-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자발적언 의지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강제의무 규정이 아니었다.
- 그러나 일단 행한 서원은 곡 지켜야 했다(신 23:22, 23).
- 서원을 행하는 목적
- ‘서원'을 행하는 목적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여 그분을 기쁘게 해드러기 위한 것.
- 서원의 대상으로 드릴 수 있는 것
- 자기 자신은 물론 가옥, 토지, 가축 등 자신이 소유한 그 어떤 것일 수도 있었다(레 27:1-25).
Ⅱ. 나실인은 특별한 의무에 처하게 된다. 미신적인 공상가들이 끝없이 많은 제약을 만들까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율법과 규칙을 만드셨다.
- 그들은 "포도나무의 소산" 과는 일체 관계를 말아야 한다(3,4절).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며, 나아가 포도 씨나 껍질을 먹어도 안 된다. 건포도조차 먹으면 안 된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이렇게 추측한다. 즉 문둥병이나 그 밖의 질병으로 인하여 의식상으로 더러워진 것은 타락한 인간의 죄악된 상태를 상징해 주지만, 나실인의 제도는 무죄한 인간의 순결하고 완전한 상태를 말해 주려는 것이며, 나아가 아담에게 금지되었던 그 나무는 포도나무였기 때문에 여기 나실인들에게도 포도나무와 그 소산물 일체가 금지된 것이라는 것이다.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한 자는 그들에게 금지된 열매를 먹으라고 했던 그 유혹자의 일을 한 것이다(암 2:12). 레갑의 후손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고 칭찬을 하는 이야기가있다(렘 35:6).
💒 포도주와 독주
- 포도주가 상징하는 바
- 술취함으로 얻어지는 육체적인 쾌락(창 9:21; 사28:7)이나
- 세상적인 사치(삼상 25:18; 호3:1)를 상징.
- 왜 술이 금지되었는가?따라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며 살아야 하는 ‘나실인' 에게는 성막 봉사를 하는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술이 금지되었다(레 10:9).
- 실제적으로도 술은 인간의 타락한 감정을 자극하고 이성을 마비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까지 만든다.
- 포도주와 함께 금지된 것
- 포도주의 ‘초’
- 이스라엘 백성들어 빵을 먹을 때 함께 쩍어서 먹는 소스(sauce)로도 사용되었다(룻 2:14). 그러나 이 역시 술을 연상케 하는 것이며 육체의 유익을 위하여 취하는 음식어었기 때문에 자기 절제가 요청되는 나실인에게는 금해진 음식이었다.
- 포도즙, 생포도, 건포도
- 본문에 열거된 ‘포도즙'이나 ‘생포도' 또는 ‘건포도'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실인에게 먹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던 것은 나실인으로 하여금 철저히 포도 나무의 소산으로부터 단절하도록 하기 위해서.
- 씨나 껍질이라도 안됨
-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포도의 씨나 껍질을 가지고서도 술이나 기타 음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까닭에 나실인이 포도 알맹이 뿐만 아니라 포도의 씨나 껍질은 물론 이런 것들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 포도주의 ‘초’
- 금지 규례를 지켜야 하는 기간
- 서원 기간이 끝나면 나실인은 다시 평범한 일반 백성으로 둘아와 지금까지 금지되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먹을 수 있었다.
- 그러나 만일 서원 기간이 끝나기 전에 나실인으로서 먹어서는 안될 것(예를 들면 포도와 관계된 모든 것이나 독주와 같은 모든 종류의 술)을 먹었을 경우에는 서원이 무효가 되어 다시 서원을 해야 했다(12절).
나실인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 . 이유가 있다.
(1) 절제와 금욕의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하나님과 그의 영예를 위해 바친 자는 육체의 욕망을 좇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어해야 한다. "속이 아픈 자들에게는 약간의 포도주" 가 허용되었다(딤전 5:23). 그러나 "미각을" 위한 과량의 음주는 "육을 따라서"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기로 작정한 자들에게는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2)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율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잠 31:5), "술도 실수를 범하지" (사 28:7) 않기 위해서 음주는 금지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음주와 독주를 절제하자. 술을 일단 사랑하게 되면, 그는 쉽게 사탄과 한 짝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술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또한 포도의 소산물 일체가 금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죄와 죄 비슷한 것, 또는 죄로 끌려갈 우려가 있는 것은 뭐든지 피하라는 교훈을 말해 준다.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2).
💒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의 바른 자세
- 나실인에게는 즐거운 잔치 자리에서조차도 술을 먹지 않는 철저한 절제된 생활이 요구되었다.
- 하나님을 위하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기쁨과 슬픔도(6.7절) 자제헤야 하는 철저한 헌신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한 자는 인간적인 기준에 의해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데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
2. "털을 자르면" 안 된다(5절).
머리를 깎아도 면도를 해도 안 된다. 이것은 우리가 종종 듣는 삼손의 나실인 됨의 징표이다.
💒 특별히 머리에 대한 규례로, 삭도를 대지 말라는 규례를 주신 이유는?
-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면도칼이 결코 지나다니도록 하지 말라'는 명령의 의미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머리털을 깎지 말고 자라게 하라는 명령이지만,
- 특별히 신체의 여러 부위 가운데 ‘도쉬' 즉 머리에 대한 규례를 주신 것은 나실인은 그 근원이 되는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맡겨야 한다는 의미.
- 나실인이 털을 자르는 것은
- =곧 나실인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과 그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란 상징적 의미.
- 나실인이 털을 자르지 않음
- 생명의 창조자이시요 주권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표현이자
- 긴 머리털이 상징하는 바 충만한 힘과 생명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겠다는 헌신의 표현.
5절, 나실인은 머리털 전체가 길게 자라나더라도 조금이라도 자르지 말고 원형 그대로 두어야 한다.
(1) 이것은 육체에 대한 고상한 경멸이요, 또한 영혼의 평안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는 완전히 자기의 온 영을 다하여 영혼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구해야 한다. 또한 나실인인 당시에는 온갖 쾌락을 물리치고 자기 부정과 고해의 삶을 살겠다는 결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슬픔을 당한 므비보셋은 "자기의 수염을 깎지 않았었다" (삼하 19:24).
(2) 혹자는 긴 머리가 복종의 표시라고 한 점에 주목한다(고전 11:5).
따라서 나실인의 긴 머리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들의 복종과 하나님의 나라에 자기들의 몸을 바친다는 것을 뜻하여 준다.
(3) 이로써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실인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나실인으로서의 존경을 받게 된다.
그것도 아무런 기술을 부리지 않고서도 그들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그들의 머리의 자연의 면류관이요, 자기들의 정결을 지켰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만일 불결해지면 머리를 잘라야 했었기 때문이다(렘 7:29 참조).
3. 시체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6, 7절).
💒 왜 시체에 가까이 가면 안됐는가?
- 죽음 = 하나님의 진노의 산물(시90:7), 정죄(롬5:16), 심판(롬1:32), 저주(갈3:13). — 따라서 죽음의 결과물인 시체도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
- 시체와 접촉을 했다는 것 = 곧 죄악과 접촉했다는 상징적 의미. 따라서 시체를 멀리하라는 것은 죄와 멀리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결된 생활을 해야 하는 나실인, 성도들
- 우리 성도들도 직접 죄를 짓지 않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근처에도 가서는 안될 만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만지면 잠시 동안 의식상의 오염에 접촉될 뿐이다. 누군가가 시체에 손을 대지 않으면, 시체를 매장할 수 없다. 그러나 나실인은 만지면 안 된다. 나실인의 전 명예를 걸고서 금해야 한다.
그들은 부모의 장례식조차 참례할 수 없다.
💒 나설인이 죽은 시체에 대한 접근을 금해야 한다는 명령은 나실인의 형제, 자매는 물론 그의 부모가 죽은 경우에도 적용되었다. 이와 같은 금령은 대제사장에게도 적용되었다(레21:10-12).
그러나 일반 제사장의 경우에는 조금 완화되어 일반 시체에 대한 접근만 금지되었고 부모 형제나 출가하지 않은 처녀인 친자매의 시체에는 가까이 갈 수 있었다(21:1-3).
서약 기간 동안 나실인은 이처럼 대제사장에 준할 정도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거록을 유지하기 위하여 엄격히 구별된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규례는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부모, 형제, 자매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부모 형제, 자매와 모든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리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렇게 명령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 7절, 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표가 자기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다.
- 나실인의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의 의미
-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머리 위에 썼던 대제사장의 ‘관’, 관에 부착된 ‘성패’와 같은 의미였다. 이 두 가지는 의미만 같은 것이 아니라 원어상으로도 일치한다.
- =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대제사장보다 더 엄한 것이다. 까닭은, "그의 하나님의 성별됨이 그의 머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를 구별한 자들은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 즉,
(1) 남과 다르고 남보다 뛰어나는 일.
(2) 죽은 일로 마음을 쓰지 않는 일, 부정한 것을 만치지 않는 일이다. 우리의 신앙 고백이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죄를 멀리 하려는 관심도 그만큼 더 커야 된다. 죄로 인하여 그 많은 명예를 쉽게 잃고 말기 때문이다.
(3) 자기 친척들에게 지나친 애정을 기울이어서 그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복종이 파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마 8:21, 22 참조).
4.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들은 "여호와께 대하여 거룩해야" 한다(8절).
이것은 그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를 뜻하며, 이것이 없이는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드려져서, 그를 위해 일하고 그에게 마음을 주어야 한다. 마음과 생활이 순결해야하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형상과 뜻에 맞아야 된다. 이것이 거룩해지는 것이요, 정말 나실인이 되는 것이다.
💒 나실인으로 헌신하는 구별 기간
- 최소 30일 이상.→ 나실인은 서원한 기간 동안 자신의 삶 전체를 철저히 세상과 구별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했던 것.
- 따라서 이 기간 동안(혹 그 기간이 일평생이 된다 할지라도) 나실인은 자신의 유익이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생활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서원한 기간 중에 나실인의 몸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 ‘자기 몸을 구별하는’
- 4절 — 본절과 동일하게,
- 5절 —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 6절 —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 이와 같은 규례가 우리에게도 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전생애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진 날이다(딤후4:6-8).
-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성도들은 자신이 생존해 있는 동안 항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성화시켜 나가기에 최선을 다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Ⅲ. 그가 만일 시체를 만져 어쩔 수 없이 의식법상의 불결을 당했을 때, 그를 깨끗게 하는 대안이 있다.
앞에 나온 율법을 고의로 범한 경우에는 이 율법은 아무런 대책도 없다. 신앙으로 그런 서원을 한 자가 고의로 그런 짓을 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실수로 포도주를 마시거나 머리를 깍는 짓을 하겠는가?
순수히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자신의 실수가 조금도 아닐 때에라도, 그는 시체에 접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럴 경우이다(9절). 즉 "누가 우연히 그 곁에서 죽어, 그가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혔을" 경우이다.
💒 ‘홀연히’
- 어떤 사람이 급작스럽게 죽은 경우.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가항력 상황을 위한 9~12절의 규례는
- ⇒ 사람이 취한 행동의 외적 결과로만 판단하시지 않고 주변적 상황과 내적인 동기까지 보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배려였다(삼상15:20~23; 히4:!5)
죽음은 때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히 사람을 데려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사람은 그렇게 건강했다가 순간적으로 죽을 수 있으므로, 아무리 조심성 있는 나실인이라도 그 시체로 인한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시간에서 영원에 이르는 거리는 이렇게 짧고 순간적이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갑작스런 죽음을 준비해 주셨다 !
이런 경우에는
- 나실인이 다른 사람들처럼 7일간 의식법상의 부정을 당하게 된다(9절).
💒 7일간 정결케 되는 기간을 보냄.
- 죄 짓기 이전의 성결한 상택로 돌이키게 되는 날, 부정하게 된 날로부터 7일이 지난 날(19:11) 부정하게 된 자는 부정하게 된 날로부터 7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속죄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 그런데 정결케 되는 기간이 ‘7일'로 정해진 것은 ‘7' 이란 숫자가 **절차상에 아무런 부족이 없음을 나타내는 ‘완전수'**였기 때문.
- → 이는 부정하게 된 자가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인식하고 깊이 통회하며 자신을 살펴야 하는 의식적 기간이었던 것.
머리를 완전히 조금도 남김없이 밀어 버려야 함
- 나실인에게 있어서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렸다는 표이다. 이렇게 나실인의 ‘머리'가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것은 그의 전인격이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의미요, 반대로 머리가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인격 전체가 죄로 오염되었다는 것을 상징했다. ⇒ 그러므로 시체와의 접촉으로 오염된 나실인이 자신의 전인격의 상징인 머러털을 밀어 버리는 것은 죄로 인한 부패와 오염으로부터 벗어남을 상징한다.
-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원칙적으로는 머리를 밀어 대머리 되게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음(레19:27, 신14:1)
- 그러나 본문의 규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없이하고 깨끗이 한다는 측면에서 예외.
- 오늘날 영적 나실인인 우리 성도들도 평소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더라도, 구약의 나실인처럼 머리를 밀지는 않아도 되지만 우리에게는 그 행위가 갖는 진정한 의미인 마음을 찢는(욜2:13) 온전한 회개가 요청된다.
- 때때로 자신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 죄로 인해 상실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나실인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한 것이 요구된다. 즉 그는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 그를 위해 속죄해야 한다(10, 11절).
이것은 인간이란 제약성에서 오는 죄와 갑자기 겪게 된 실수도 성실히 회개해야 한다는 것과, 나아가 날마다 그런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제사의 효험이 우리 영혼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요일 2:1, 2). 또한 탁월한 신앙 때문에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고백한 자가 그 고백의 명예를 지키지 못하면,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보다 더 큰 것이 요구된다는 것도 알려 준다.
💒 8일 째에 제사를 드림
- 성경에서 ‘8’ = 회복, 새 출발을 상징하는 숫자.
- 부정해진 나실인은 깊은 통희의 기간인 ‘7일'을 완전하게 채운 후 이제 8일째부터 죄악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 8일은 나실인이 과거의 부정을 모두 씻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날.
10절,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
-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는 가난한 자들이 속죄 제물과 번제물로 사용하던 것. 뿐만 아니라 비둘기는 노아 시대(창8:20)와 아브라함 시대에도 이머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진 정결한 짐승이었고 때때로 가난한 자들의 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 그런데 이 제물들이 부정해진 나실인이 바쳐야 할 제물로 언급된 것은 그들이 자신의 부정함과 죄악으로 인하여 육적으로 가난한 자들과 같이 영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상정적으로 강조한 것.
부정하게 된 나실인은 제물을 회막 입구의 제사장에게 가져가야 한다 — 제사장의 중재 —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 부정하게 된 나실인이 이처럼 번제단 앞에 섰다는 것은 속죄제를 통해서 부정하게 된 자신을 다시 정결케 하는 제사를 드러기 위해서.
- 나실인이 부정함을 면하기 위해서 ‘제사장’의 중재가 반드시 필요했음.
- 신약 시대에는 본문과 같은 하나님 백성을 위한 중보자로서의 제사장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이미 대속하셨기 때문이다(히9:26).
- 그 결과 우리는 각자가 하나님이 택하신 영적 제사장어 되어 그러스도를 통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게 되었다(벧전 2:9).
속죄제와 번제를 드림
- 속죄제
-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계명에서 빗나간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 고범죄를 제외한 인간의 연약함이나 실수, 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범한 죄를 깨닫고 용서받기 위해 드리던 제사.
- 번제
- 어원적으로 볼 때 번제는 희생 제물을 불에 태워 그 연기와 냄새를 하나님께 피워올리는 제사.
- 번제는 구약의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이 되는 제사.
- 신분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드렸던 속죄 제물과는 달리 드리는 사람의 생활 형편에 따라 제물이 다르게 구분되었음.
- 영적 의미
- 짐승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다 태워 드린다는 것에서 기원하여 드리는 자의 완전하고도 철저한 희생과 헌신을 보여준다.
시체를 가까이하여 부정함을 입은 나실인은 이 두 제사를 모두 드렸다.
- 속죄제 : 자신의 부정함을 씻는 의미로
- 번제 : 다시 새롭게 헌신과 희생을 다짐하겠다는 의미로.
그 머리를 성결케 할 것 — 9절에서 나실인은 자기 머리를 모두 밀어 버렸다. 그런데 왜 다시 성결케 하라고 하는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죄제를 드린 후에 그의 머리를 다시 성결케 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실인의 성결은 자기 몸을 구별하는 제 칠 일에 단순히 머리를 미는 행위를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궁극적인 죄 용서와 성결은 오직 피흘림이 있는 제사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 이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의해서만 우리가 죄 씻음을 받고 성결케 될 수 있다는 원리와도 통한다.
- 그리고 그는 구별된 날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즉 그가 정한 기일이 거의 완료될 무렵이었더라도, 지나간 시기는 오염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시간이므로, 나실인으로 지낼 기간을 다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12절).
때문에 그들은 죽은 시체로 인해서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대단히 주의를 했던 것이다. 그 일이 그들의 시간을 잃어버리게 하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인이 그의 의를 떠나버리면" 죽은 일로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니, 그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의로운 행실은 그에게 헛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겔 33:13). 끝까지 보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은 헛되고 만다(갈 3:4). 그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
💒 우리가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 뜻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왔더라도 현재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더러운 죄악 가운데 었다면 지난 시간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한 점의 죄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아에 그 시간들을 무효화시켜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을 더럽힌 죄를 발견하는 순간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영육간에 정결한 삶을 살도록 다짐하며 노력해야겠다(빌 3:13, 14).
Ⅳ. 그가 정한 기일이 다 되어 나실인에서 해방되는 식에 대한 율법이 있다.
그는 정한 기일이 완료되기 전에는 해방될 수 없다. 맹세하기 전에는 그의 권한에 있던 것이라도, 맹세한 다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유대인의 말에 의하면, 나실인이 맹세할 기간은 최소한 30일 이상이라 한다. 그리고 어떤 자가, "나는 이틀간만 나실인이 되겠나이다" 해도, 그는 역시 30일간 나실인의 법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서원은 단지 7일간이었던 것 같다(행 21:27). 그렇지만 오히려 그는 성전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겐그레아에서 몇 년 전에 머리 자르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나실인의 의식을 잘 지킨 것 같다(행 18:18). 작정한 날이 다 되면, 그는 자유롭게 된다.
- 공중 앞에서 곧 "회막 문에서" (13절) 그 식이 있게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와 맹세 기간이 완료되었음을 알아서, 그가 지금까지 그토록 거절하더니 다시 술을 마시는 것을 보더라도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아다.
- 제사가 따랐다(14절).
이러한 특별한 헌신 때문에 마치 하나님께서 그에게 빚진 자인 양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서원이 끝났을 때에도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잘 이행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의 일을 다 못할 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각종제사의 예물을 한가지 씩 바쳐야 한다.
(1) 번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특정한 서원에서 해방되지만 여전히 그가 자기를 다스리고 계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 번제
= 자기 헌신을 위한 제사(레1:3~17)
나실인으로서의 의무가 끝나 이제 일반인이 되었지만 계속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는 의미.
(2) 속죄제.
이것이 두번째로 언급되어 있지만(14절) 먼저 드려졌을 것이다(16절). 다른 어떤 제사가 받아들여지기 전에 먼저 속죄가 이루어져야만 되기 때문이다. 나실인이 사람들의 눈에는 "눈보다 더 정하고 우유보다 더 희다" 고 하더라도, 속죄 제물이 없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감히 그렇게 보일 수 없는 법이다. 그가 비록 아무런 더러움 없이 정한 기간을 마쳤다 해도, 역시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아무리 선한 자에게라도 모르는 사이에 죄에 부딪히게 되고 아무리 선한 일에라로 티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어떤 선은 실행치 못하고서도, 어떤 악은 허용했을 것이다. 엄격한 재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죽게 될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속죄물을 드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도록 탄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 속죄제
나실인으로 살았던 기간 동안 부지중에 지었을지 모르는 죄에 대한 회개를 드리는 제사. 비록 구별된 생활을 하였지만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
(3) 자기의 서원을 마치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과거에 나실인이었던 자답지 않은 일을 하지 않도록 계속 지켜 달라는 탄원으로 화목제를 드린다. 그가 이제는 자기의 서원에서 해방되었지만, 하나님의 율법에는 계속 제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화목제
- 나실인으로 헌신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또한 계속해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지속되기를 기원함으로 드리는 제사.
(4) 여기에다가 법식에 따라서(15, 17절) 소제와 전제가 뒤따랐다. 그 제사들은 번제와 화목제에는 항상 따라다녔던 것이다. 또 그 외에 무교병과 무교전병 한 광주리도 바친다.
💒 소제
- 나실인으로서 헌신하는 동안 생명을 보존하여 주시고 봉사와 충성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제사(레2장).
💒 전제
- 다른 제사(번제, 화목제, 소제)와 함께 드려지는 제사(레23:13). 화제, 요제, 거제와 함께 제사를 드리는 네 가지 방법 중 하나, 포도주나 독주로 드리는 제사.
-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헌신적으로 봉사할 것임을 다짐하기 위해서 드려짐.
16~17절: 구체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순서
-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가운데 가장 먼저 드려진 제사는 ‘속죄제’.
-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담 역할을 한다(사59:2). 따라서 죄 있는 영적으로 더러운 상태의 인간은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드리기 이전에 무엇보다 먼저 죄를 청산해야 하는 것이다.
- ⇒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헌신과 감사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이 죄 문제의 해결이었기 때문.
머리털을 밀고, 화목제물 밑에 불에 둘 것
- 머리털을 미는 행위
- 서원 기간 동안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나설인의 표로 여겨졌던 머리카락을 미는 행위는 서원한 기간이 끝난 나설인이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된 자로서 특별하게 구벌되었던 기간이 끝났으며, 일반인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의식.
- 그러나 나실인이 머리카락을 밀어 버리고 서원의 기간을 끝냈다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그분의 주권에서까지 벗어났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이제 자신의 부모의 시신 곁에도 가지 못할 만큼 까다로웠던(7절) 나실인의 규례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였다.
- 서원의 기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증표로 자른 머리카락을 불에 태우는 데 담긴 의미
- 그동안 자신을 나실인으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지금까지 나실인으로서의 헌신의 삶이 열납되기를 바라는 기원의 의미.
- 머리털을 잘라 바친 것은 앞으로는 더이상 나실인이 아니기 때문에 나실인의 증표를 없엔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친다는 의미도 있음.
(5) 화목제의 일부는 무교병과 전병을 함께 요제물로 드린다(19, 20절). 이것은 먼저 하나님 앞에 보인 후에 이 제사를 위해서 수고한 그 제사장에게 사례비로 지불된다.
💡 요제물
- 삶은 수양의 어깨
- 제사장에게 돌려진 것의 의미
- 삶은 수양의 어깨 부위는 이미 화목 제물로 드렸던 ‘혼든 가슴과 높이 든 넓적다리'와 함께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이와 같이 나실인의 서원이 마쳐졌음을 선언하는 예물이 제사장에게 돌려졌던 것은 그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상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
- 어깨 :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팔'로도 번역됨.
- 하나님의 ‘구원의 팔'(출6:6; 시98:1), ‘창조의 팔'(렘32:17)과 같이 능력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됨.
- → 따라서 이 부위를 하나님게 바치는 것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짐.
- 무교병 하나, 무교전병 하나
- 소제 예물 중 삶은 수양의 어깨와 더불어 나실인이 양손에 들고 있어야 하는 것.
- 무교병
- 신 16:3에서 ‘고난의 떡'이라 지칭됨.
- 고전 5:7,8에서는 ‘성도들’이 누룩없는 떡으로 비유됨
- 무교병
- 나실인이 양손에 이어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들고 여호와 앞에 선 것은 이제 비록 그가 서원 기간이 끝나 나실인으로서의 삶은 그만두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세상의 어떤 시험과 고난 속에서도 거룩한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제를 드림 — 제사장의 행위에 담긴 의미
- 제사장은 요제로 드려질 제물인 삶은 수양의 어깨, 무교병 1개, 그러고 무교전병 1개틀 나실인의 두 손에 들게하고 자신은 그의 두 손을 붙잡고 앞뒤로 흔듦으로써 제사를 진행했다.
- 나실인이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음.
- 제사장이 다시 그 예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음.
(6) 이 모든 것 외에도 그는 자원 예물을 드려야 한다.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드리는 예물이다(21절). 그의 능력 이상이나 이하도 안 된다. 또, 이 의식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이 때에 친구들이 "함께 비용을 내는" 수도 흔히 있었다(행 21:24).
💡 나실인은 자신의 서원 기간을 마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기본 예물(14~20절)만 드리는 데 만족해서는 안된다.
끝으로, 한가지 의식이 더 지정되어 있다. 그것은 이 의식이 실행되고 나면 그의 속박의 줄이 끊어진다는 것과 같은 의식이다. 즉 그가 나실인으로 있을 동안 계속 자라도록 두었던 "머리를 잘라서" 화목 제물을 삶는 불에 넣어 태우는 의식이다(18절).
이것은 그가 자기의 서원을 완전히 이행했으므로, 그가 오직 위대한 제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것을 의미해 준다. 그러므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는" 것을 배우자.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를 기뻐하시지 않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