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6월 16일 월요일 묵상구절 겔5:1-17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상징> (왕하25:1-7)

Jeehyun 2025. 6. 16. 15:44

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21, 시편 108, 109, 이사야 48, 요한계시록 18

묵상구절

5:1-4

5:1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상징>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

5: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5:3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5:4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5:5-17

(대조문단, 왕하25:1-7)

5: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5: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5: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5: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5: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5:10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5: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5:12 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

5:13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5:14 내가 이르되 또 너를 황무하게 하고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모욕 거리가 되게 하리니

5:15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네가 수치와 조롱 거리가 되고 두려움과 경고가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5:16 내가 멸망하게 하는 기근의 독한 화살을 너희에게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라5:17 내가 기근과 사나운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에 전염병과 살륙이 일어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매튜헨리/옥스퍼드

옥스퍼드 주석

●머리카락과 수염의 표징(에스겔 5:1-4)

여기에는 예루살렘의 파괴를 말해 주는 징조(표징)가 나온다. 앞장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예언자 자신이 표징이 되며, 백성들은 비록 황폐하게 될 것을 선언하고는 있지만 그 예언자 자신이 예루살렘의 처지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과 관심을 가지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일로 생각할 만큼 예루살렘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조금도 바라지 않았다.

Ⅰ. 에스겔은 자기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깍아야 했다(1절). 그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단호히 버릴 것을 상징한다.

그 백성은 살려둘 값어치가 없는 무익한 세대이다. 아니 그들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가 될 그런 세대였다. 그 백성을 전적으로 절단하는 그 심판과 도구는 바로 "날카로운 칼" 이요 "면도날" 이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우두)머리였지만, 타락했기 때문에 이제는 "머리카락" 처럼 되었다. 그것은 자라서 빽빽하고 길게 되면, 사람은 그것을 제거해 버리고 싶어한다. 그것이 짐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죄인들이 하나님께 그러하다. "아 ! 내가 내 대적을 속시원히 물리치리라" (사 1:24 . 공동 번역)

에스겔은 불필요한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 버려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에게 행하려고 하는 바 무르익은 종말을 나타낸다. 예언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손질되고 깨끗하게 되려하지 않는 머리카락은 철저한 파괴에 의해서 몽땅 잘려나가야 된다. 개심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멸망할 것이다.

Ⅱ. 그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저울에 달고, 그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공정성과(하나님은 인간들의 행위를 진리와 공의라는 정확한 저울로 "측량하신다") 하나님의 정의가 심판을 통해서 각 사람에게 내리는 형량의 비율의 정확성을 말해 준다. 하나님의 심판은 여러 가지로 뜻을 이룰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자유와 영예가 상실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자른다. 그것은 하눈이 다윗 왕의 사신에게 준 치욕처럼 수치의 표식으로 보인다. 또한 그것은 도도한 기쁨의 상실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저들은 큰 슬픔을 당한 경우에는 머리를 깍았기 때문이다. 머리깍는 행위에 대해서 하나의 의미를 더 첨가한다면, 그것은 나실인의 자격을 잃는 것이다. 왜냐하면 머리를 깍는 것은 서원 기간 동안이었기 때문이다(민 6:18). 그리고 예루살렘도 그때는 더 이상 "거룩한 도성" 이 아닌 것이다.

Ⅲ. 에스겔은 터럭을 모두 파괴시키고 흩어지게 해야 했다(2절).

  1. 터럭 "1/3은 성읍 안에서 불살라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에워싸는 날이 찼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역병, 또는 성읍의 큰 화재로 말미암아 죽게 될 것을 나타낸다. 혹은 영광스런 성읍이 잿더미 속에 잃게 되는 것이 경고된 파멸의 1/3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1. 또 1/3은 "칼로 잘리움" 을 당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포위 기간 동안 전투에 출격했다가 포위자들의 검에 의해서 살해됨을 나타내 준다. 가장 강폭한 갈대아인이 가장 유약한 유대인을 폭풍으로 휩쌌을 때이다.

  1. 나머지 1/3은 "바람에 흩어지게" 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정복자의 땅으로 사로잡혀가며, 다른 사람들은 피난처를 찾아서 이웃나라로 피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바람에 흩어진 머리카락과 수염같이 몇몇은 사로잡히고, 나머지는 피난하느라고 바빴다.

그러나 이런 분산이 탈출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저들이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라는 말을 더 첨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재앙이 그들을 추적할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기에, 그것으로서 죄많은 백성들의 멸망을 성취시킬 것이며, 하나님이 어떤 일을 시작하면 반드신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Ⅳ. 에스겔은 "바람에 흩어버릴" 터럭 중 적은 양을 저장하고, 마치 아주 귀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여기는 것을 감추듯이 해야 했다.

"옷자락에 싸야" 했다(3절). 마치 아주 귀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여기는 것을 감추듯이 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은 백성들의 원체(原體)가 포로로 사로잡혀 갈 때에, 땅을 소유하기를 바라서, 그달랴의 통치 하에 남겨졌던 몇몇 사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만약에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 잘 행했다면, 하나님도 그들에게 선을 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류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다시금 "불에 던져졌다" (4절). 그달랴와 그의 친구들이 살해되었을 때, 그의 보호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흩어졌다. 몇몇 사람은 에집트로 갔으며, 나머지 사람은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요컨대 그들의 전부가 완전히 그 땅에서 추방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에 일이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그 불에서 "불이 나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이르렀으며," 서로가 서로를 태우는 연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비의 기념비를 위한 표적으로 남았던 것 같던 자들이 진노의 불에 던져진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때에는 남은 자도 도망한 자도 없으며, 감금된 자나 살아남은 자도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죄악상(에스겔 5:5-17)

여기에서는 앞서 말한 것과 유사한 것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다" (5절). 성서의 용법에서 보면, 상징(징조)으로 상징되는 실체를 가리킬 때 이와 같은 말을 쓴다. 마치 그리스도가 "이것은 나의 몸이다." 라고 말할 것과 같은 경우이다. 잘려져 나갈 예언자의 머리카락은 예루살렘을 상징한다. 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그 속에 있는 모든 장식물을 빼앗기고, 모든 거주민이 쫓겨나 공허한 성읍이 되며, "세 내어온 삭도에 의해 모든 털이 깍여서 벌거벗기울" 것이다(사 7:20). 제사장, 예언자, 혹은 거룩한 사람의 머리(카락)는 대체로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을 표시한다.

본문의 내용은 예언자들의 글에서 종종 보게 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예루살렘의 특권은 매우 영예로운 것이다(5절).

"내가 이방인 가운데 예루살렘을 두어 열방으로," "유명하고 강대한" 민족들로 "둘려 있게 하였다." 예루살렘은 열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이름도 없이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구가 많고 문명이 발달되고 예술과 학문이 발달된 열방들의 중앙에 있으며,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속에는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예루살렘은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모든 열방과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들보다 더 우수하다. 예루살렘은 열방들을 초월해서, 그들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거룩한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서 높임을 받았다" (사 2:2).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시기하느뇨? 이 산은 여호와께서 영원토록 거하시고자 하는 산이다" (시 68:16). 예루살렘은 산 위에 있는 도성이며, 유난히 눈에 띄는 성읍이다. 열방들은 예루살렘을 경계하고 있으며, 혹자는 선한 뜻으로, 혹자는 나쁜 뜻으로 지켜보고 있다.
  2. 예루살렘은 "주위에 있는 열방들" 에게 좋은 감화를 끼치도록 계획되었다. 그리고 촛대 위에 있는 양초처럼, 예루살렘은 축복으로 받은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열방들의 모든 어두운 구석에 비추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의 중앙에 세워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그들로 부터 더 멀리 땅끝까지 발하게 될 것이다. 모든 선한 것의 모범이 되고, 이 어두운 세상을 신령한 빛으로 밝힐 뿐만 아니라, 이 죽어가는 세상을 신령한 생명으로 고무하여, 마치 몸 속의 심장처럼 되어 열방들의 "중앙에" 세워졌다. 열방들은 이스라엘을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 들이라고 생각하고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 가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다(신 4:6).

그리고 그들을 솔로몬 시대의 현자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지혜를 들으려고 했다(왕상 4:34).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명성을 간직하여, 올바르게 사용했더라면, 주위에 있는 모든 열망들에게서 얼마나 큰 축복을 주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되는 데 실패하였고, 그 성취는 "시온으로부터 홀이 나아오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주 예수의 말씀이 나아오게 될 때" 까지 유보되었다. 그리하여 나중에 이곳에서 "회개와 용서" 가 선포되기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전도자들이 "모든 민족에게로 나아갔다."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예루살렘은 무너졌다. 처소들과 사람들이 위대하게 될 때, 저들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되리라" 는 뜻이 실현되어 그들과 그들 주위가 서로 복을 받게 된다.

Ⅱ. 예루살렘이 범한 죄악을 보자.

그 도성에 대해서 극심한 비난을 퍼붓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도성의 특권을 빼앗아 버리고, 전쟁의 피해를 입게 만든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정의로움을 입증해 주고도 남음이 있음을 말해 준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율례대로 행치 아니했고" "규례를 지키지 아니했다" (7절). 아니, 오히려 예루살렘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거절했다" (6절). 그들은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 고 말했다. 열방들이 존경했던 "율례와 규례" 를 그들이 경멸했으며, 눈 앞에 두었어야 했을 것을 등 뒤로 돌려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대한 경멸은 모든 죄악으로 통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하나님의 율례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대하실 때 고려하시는 조건이다. 하나님의 조건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2.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규례(법도)를 악으로 바꾸었다" (개역 성경과 다름. 6절). 이것은 매우 심한 모독의 표현이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복시키고 악용하여, 그것으로 그들의 죄악의 구실로 삼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규례 대신에 이교도의 관습을 사용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것이며(롬 1:25), "하나님의 영광을 부끄러움으로" 바꾸는 것이다(시 4:2). 잘 교육받은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악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면전에서 모욕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죄의 후원자로 만들고, "하나님의 규례를 악으로 바꾸는" 것이다.
  3. 예루살렘은 모든 열방들의 선한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열방들보다도 더 악해졌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와 거짓 예배를 통해서 "열방들보다도 더욱 나의 규례를 (변경시켰다)거슬렀다" (6절). 즉 이스라엘은 "주위에 있는 열방들보다도 더욱" 우상들과 제단들과 신들과 성전의 수를 "증가시켰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나이며, 그의 이름도 하나이고 그의 제단도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한 분이신 하나님과는 반대로, 그들은 그들의 "성읍들의 숫자만큼" 신들을 증가시켰으며, 그들의 재단을 "들의 밭고랑 가운데 있는 더미만큼" 증가시켰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신들과 많을 주(主)를 가진 점에 있어서 그들의 이웃에 있는 모든 열방(민족)들보다 뛰어났다. 그들의 계시된 종교는 이방 사람들의 자연적인 종교보다도 더욱 타락했었다. 만약에 경건한 교육을 받아왔고, 종교를 고백했던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이탈한다면, 그들은 어떤 고백도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하나님을 더 모독하는 것이다. 그들은 "더 악한 다른 일곱 귀신들" 에 잡힌 자가 된다.
  4.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않았다" (7절).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들을 향해서 행했던 것처럼(비록 그 신들이 거짓 신들이었을지라도)-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참 하나님에도 불구하고-그들의 하나님을 향해서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의 깊게 살펴 보지도 않았으며, 그에 대해서 확고한 신앙을 갖지도 않았다. 어느 나라가 "자기 신을 바꾸거나," 혹은 그신을 모욕한 적이 있었느냐?(렘 2:11) 또는 이 말은 그들의 도덕성을 언급하는 것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열방들을 개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도 미치지 못했다. 많은 "무할례자" 들이 "할례를 받은" 사람들보다도 "율법의 의" 를 더 잘 "지켰다" (롬 2:26, 27). 성서의 빛을 받은 사람들이 오직 자연의 빛만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규례(법도)" 만큼도 행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 심판날에 더 좋은 성품과 생활을 가졌던 건실한 이방인들에 의해서 판단받을 자도 있을 것이다.
  5. 예루살렘이 정죄받은 특정한 죄는 신성을 모독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거룩한 것들은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의무와 명예이었다(11절). "너희는 너의 모든 가증할 것들" 즉 우상들과 우상 숭배로써 "내 성소를 더렵혔다." 거짓 신들의 형상들과 그들을 위해서 세운 숲이 성전으로 옮겨졌다. 우상 숭배자들이 사용했던 예식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신성한 모든 것이 더럽혀졌다. 어느 곳에나 있는 매우 보기 흉한 우상들이 성스러운 곳 안에 특히 많았다.

Ⅲ. 이런 죄악 때문에 예루살렘은 벌을 받는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징벌하지 않을 것인가?" 의심없이 그는 징벌할 것이다.

본문에서 보면, 예루살렘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매우 두려운 것이며, 그 표현법이 매우 끔찍하다. 심판이 다양하며, 경고가 되풀이 되어 있고, 여러 가지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할 때 누가 감히 하나님의 면전에 설 수 있는가?" 라고 사람들이 말하게 될 것이다.

  1. 하나님은 그 자신의 손으로써 친히 예루살렘을 징벌하는 과업을 수행할 것이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진노의 위력을 알 수 있으랴? 또 하나님의 손 안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얼마나 강조되고 있는지 보라(8절). "나 곧 내가 너를 칠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했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대항해서 싸우고, 예루살렘의 적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의 실정은 비참해졌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대항하면, 모든 피조물이 우리를 대항할 것이요, 어느 것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예루살렘을 에워싼 것은 오직 갈대아 사람들의 군대일뿐이다 라고 너희는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손이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막대기에 불과하다. 너를 대적하는 것은 나이며, 나는 예언자를 통해서 너를 대적하는 말을 할 뿐만 아니라, 섭리로써 너를 대적하여 행할 것이다. 나는 너희 중에(8절), 벌을 내릴 것이다(10절). 변두리뿐만 아니라 성읍의 중앙에, 그리고 나라의 변경지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내릴 것이다." 하나님의 입의 심판을 주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의 심판은 백성들 가운데로 관철될 것이며, 영혼 속으로 임하고, "물과 같이 내장 속으로" 스며들며, "기름같이 뼈 속으로" 파고 들 것이다.

"나는 벌을 내릴 것이다." 하나님은 친히 진리와 심판의 목적에 따라서, 그의 자신의 심판을 수행하신다. 도구야 무엇이든, 주요 행위자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자.

  1. 이런 징벌은 진노하심으로부터 올 것이다. 사랑으로 교정되지 않을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진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벌을 내릴" 것이다(15절). 스스로 선언하기를, "은혜스럽고, 자비스럽다" 고 하신 하나님, "진노에 더디며," 또 "진노는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에게는 걸맞지 않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죄의 사악성과 죄가 정의롭고 거룩한 하나님께 끼치는 모독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토록 큰 은총을 베푸셨던 하나님을 그렇게 진노하게 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매우 악한 일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크게 만족해하고 있었던 터였다(13절). "오랫동안 억제해 왔던 내 노가 이제 다한즉 그들에게서 나의 분을 풀리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거기에 머물게 되며, 그들의 사악의 그릇을 채워 파괴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정의가 영광스럽게 되므로, 나는 만족할 것이다(속이 시원하리라). 내가 행한 일에 대해 전적으로 만족해할 것이다." 죄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모욕당했을 때는 그가 "근심" 한다고 했다(시 95:10). 마찬가지로, 죄인들을 멸망시킴으로써 하나님이 그의 명예를 회복했을 때는 매우 "만족하다" 고 하신다.

자비와 심판 사이의 투쟁이 끝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심판이 승리한다.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멸시당해 온 자비는 이제 침묵하고, 그의 주장을 포기하며, 배은망덕하고 구제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내 눈이 너를 귀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11절). 하나님의 긍훌하심은 징벌을 지연시키거나 완화시키며 혹은 징벌을 당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거나 그 징벌을 단축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자비가 없는 심판" 이다. 한 푼의 동정심도 섞이지 아니한 진노이다. 심판에 대한 표현들은 이렇게 강조되어 있는데, 그것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의 보복까지도 알려 주려해서였다. 구약 성서에서 보는 어떤 파멸은 그 영원한 불의 한 전형인데, 특히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러하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완전히 성취된 지옥이 이 세상에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내 눈이 너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내가 나의 진노를 풀고, 시원하게 되리라." 완고하게 살다가 회개하지 않고 죽는 사람들은 긍휼이 없는 멸망을 당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끼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1. 징벌은 공적이며 공공연히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심판을 이방인의 면전에서 실행할 것이다" (8절). 하나님의 심판은 멀고 가까운 모든 이방인들이 알 수 있도록 현저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세계의 한 구석에서 되어지는 일이지만,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현저하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 공적인 죄악은 공적인 견책을 요구하는 것처럼(죄지은 자를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하라), 만약에 그런 책망으로도 설득되지 않으면, 다시금 공적인 심판을 요구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악한자로 여겨 사람들의 목전에서 치신다" (욥 34:26).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영예를 유지하며 옹호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리티우스(Grotius)가 설명하듯이, "오직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악인들을 붙이신다는 말을 그가 어찌 들으리요?" 심판의 공개성이 하나님의 명예에 이바지하는 것이 되듯이, 또한 다음 사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1) 징벌을 더 악화시키며, 엄하게 한다. 예루살렘이 "황폐해" 졌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이방인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서 능욕거리가" 된다(14절). 이스라엘이 그들의 번영의 날에 더욱 현저하고 눈에 띄게 특유함을 간직했던 만큼 더욱 큰 치욕에 떨어진다. 바로 그런 것이 예루살렘의 실정이다. 예루살렘이 "땅 위에서 칭송을" 받아 온 것만큼, 이제는 큰 "책망" 을 받게 될 것이다(15절). 예루살렘은 영광을 발휘한 만큼 경고를 받았으며(왕상 9:8), 그 영광이 티끌같이 되었을 때 큰 슬픔이 왔다(애 2:15).

(2) 이방인들로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경외감을 갖도록 했다. 하나님은 자기와 매우 친밀한 사람들일지라도 죄인에게는 매우 엄하게 징벌하신다. "그것은 이방인에게 경계와 괴이한 것이 되리라" (15절). 예루살렘은 자신의 경건심과 덕으로써 그의 열방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가르쳐야만 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그렇게 행하지 않자,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파멸시킴으로써 열방들에게 그것을 가르쳤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푸른 나무가 이러할진대, 시들은 나무야 오죽하랴? 만약에 "심판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시작된다면,"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만약에 몇몇의 우상 숭배자들이 있던 이스라엘이 이와 같이 징벌받았다면, 모두가 우상 숭배자들인 우리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건가? 몇몇 사람의 멸망은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자. 악인들은 이 두려움 가운데서(in terronem)공공연하게 징벌받았으니,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이다."

  1. 이런 징벌은 그 종류에 있어서 매우 엄하고 슬픈 것이 될 것이다.

(1) 이스라엘은 전무후무한 징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다른 사람들의 죄악보다 더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것이며, 그들 위에 내려졌던 심판은 특이한 것이 될 것이다(9절). "나는" 전에는 저희가 결코 맛보지 못한 "전무후무한 징벌을 너희에게 내릴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징벌은 내가 결코 다른 어떤 성읍에도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루살렘에 대한 이러한 징벌은 "소돔에 내린 징벌보다 더 큰 것" 이었다고 한다(애 4:6), 이전에 내린 모든 징벌보다 더욱 슬픈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징벌은, "전무후무" 한 것이 될 것이며, 예루살렘이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전복될 때까지 결코 이와 같은 일이 이 도시에 반복된 적이 없을 그런 징벌이다.

이것은 가장 슬픈 심판을 표현하는 말이며 이전이나 "이후에도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히스기야 왕의 경우와 같은 것이었다.

(2) 이 징벌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지고 있는 본성적인 사랑의 가장 강력한 유대 관계까지 깨뜨리게 할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의 유대를 고의적으로 깨뜨린 그들에 대한 징벌이 될 것이다(10절). "아버지는 아들을 먹고 아들은 아버지를 먹을 것이다." 극심한 기근 때문에 혹은 그들의 야만적인 정복자에 의해서 그들은 이러한 일을 행하도록 강요당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심판은 이와 같이 2중 3중적일 것이다. 그중 어느 하나의 심판만으로도 공포와 황폐를 끼치기에 족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심판이 한꺼번에 임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질병에 의해서 죽을 것이다(12절). 파괴하는 천사처럼 "온역을 너희 가운데서 행할 것이니" (17절), 그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휩쓸어갈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니," 폐병에 걸린 사람처럼 점차적으로 말라 죽어갈 것이다(12절). 이것이 다시 한 번 강조된다(16절). "나는 기근의 독한 살로 너희를 멸하러 보낼 것이다. "굶주림이 그들을 파리하게 할 것이며, 마치 "독한 화살" 처럼 그들의 심장을 꿰뚫고, 독 묻은 창이 그들에게 쏘아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화살통 안에 많은 화살들, 즉 "독 묻은 화살들" 을 가지고 있다. 몇 개의 화살이 소모되고 나도, 여전히 화살을 많이 저장하고 계신다. "나는 너희에게 기근을 증가시킬 것이다." 빼앗긴 나라의 기근은 열매가 나오듯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포위된 성읍의 기근은 "증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기근을 자기 자신의 행동으로 말씀하신다. "나는 기근을 증가시킬(더 할) 것이며,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없애며, 너희가 의존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너희를 좌절케 할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구제책도 없으며,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양식을 얻지 못한다면 그 삶은 매우 약해지고 괴로운 것이 될 것이며, 양식이 끊어지면 곧 쇠약해져서 죽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 출격했다가 예루살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하나님이 "가져올 것은" "칼" 이다(17절). 예루살렘의 방비를 위해서 뽑혔던 여호와의 칼이 이제 예루살렘의 멸망을 위해서 뽑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악한 짐승들" 에게 삼켜진다. 이 짐승들은 사막과 산으로 피난처를 찾아 도망하는 자들을 잡아먹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피난처를 구하던 곳에서 멸망을 당하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곳은 아무 데도 없기 때문이다(17절).

마지막으로, 도망한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바람에" 날릴 것이다(10, 12절). 이 말은 그들이 "바람 앞의 겨" 와 같이 이리 저리 흩어질 뿐 아니라, 허둥지둥 딩굴고 질주하게 됨을 알려 준다. 아니, 오히려 도망자와 방랑자가 되어야 했던 카인의 저주도 그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들의 불안한 생명은 피비린내나는 죽음에 의해서 끊어질 것이다. "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 칼을 뺄 것이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그들을 쫓을 것이다. 재앙이 죄인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저주가 그들 위에 임할 것이며, 그들을 압도할 것이다."

  1. 이런 징벌은 점차로 그들에게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 그들을 "미약하게" 할 것이다(11절). 그들의 힘과 영광도 점점 감소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기쁨과 확신을 빼앗고, "외롭게" 할 것이다(17절).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킬 목적으로 이런 심판을 보낸다(16절). 하나님의 화살은-사울의 아들이며 다윗의 친구인 요나단이 쏜 화살처럼-그들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날아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 위에 내린 그의 진노를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13절). 하나님의 인내의 날이 지나갔으니, 멸망을 구원할 방책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예언은 갈대아 사람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써 곧 성취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멸망의 집행자는 밝혀지지 않고 단지 죄인의 이름만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따라서 이 예언은 로마 사람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최종적 파멸까지도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이다. 그때는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완전히 종결지었고, "그들에게 분이 풀렸던" 것이다.

  1.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진실성에 의해서 비준된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5, 17절).

이 선언은, 하늘과 땅의 심판 주이신 하나님이 직접 선언하신 것이다. 그의 심판은 "진리에 따른" 것이며, 그의 손의 심판은 그의 입의 심판에 따르는 것이다. 심판을 말한 하나님은 그것을 행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판을 말로 선포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실제로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불과한 존재" 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심판을 말했으니, 우리는 그것을 들어야 하고,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의 명령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것에 동의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들이 나 여호와가 그것을 말한 줄을 알게 될 것이다" (13절). 사람들은 이 심판은 예언자가 일시적인 기분으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심판을 성취시킴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열심히 그것을 말했다는 사실을 사람들로 알게 할 것이다. 조만간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입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