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23, 시편 112, 113, 이사야 50, 요한계시록 20
묵상구절
7:1 <이스라엘의 끝이 다가오다>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7:2 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7:3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나타내어 네 행위를 심판하고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7:4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네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7: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7:6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7:7 이 땅 주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7:8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
7:9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때리는 이임을 네가 알리라
7:10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도다
7:11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며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리로다
7:12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7:13 파는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가서 그 판 것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묵시가 그 모든 무리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사람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 하였음이로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다가오는 종말(에스겔 7:1-15)
여기서는 이제 신속하게 다가오고 있는 이스라엘 땅의 멸망에 대한 명백한 경고를 본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멸망에 대한 경고를 보낼 뿐만 아니라, 그 경고는 확실한 것이며 임박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 동일한 표현으로 그 경고를 되풀이할 것을 강권한다. 예언자 자신도 그 경고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우둔하고, 귀가 먹었고, 그것에 감동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을이 불에 휩싸이면, 사람들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길 주변에 서서 "불이야 ! 불이야 !" 하고 애통하는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마찬가지로 예언자는 여기에서 "끝났도다 ! 끝났도다 ! 종말이 왔다. 보라, 종말이 왔다. 들을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고 선포한다.
Ⅰ. "끝났도다(끝이 왔도다), 끝났도다" (2절). 그리고 다시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다" 고 했다(3, 6절).
그런데 이 종말은 그들의 온갖 사악함이 지향해 나아가고 있던 그런 종말이며, 하나님이 그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이 결국(끝, 종말)이 어찌 되겠느뇨?" 라고 그들에게 물으면서 마침내 오리라고 종종 말했던 바로 그 종말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모든 심판은 바로 이 종말을 초래하는 한 방편이었다. 또 "그 종말" 은 그들의 국가의 종국을 의미하며, "모든 육체의 종말을 가져온" 대홍수처럼(창 6:13), 그들 민족의 종국적인 멸망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의 "종말을 곧 보게 되리라" 는 희망으로 그들 자신을 달랬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렇다. 그 종말은 왔다. 그러나 바라던 종말이 아니라 비극적 종말이니라." "바라던 종말" 은 경건한 남을 자들에게 약속되어 있다(렘 29:11). "이 종말은 너희들이 때때로 경고받았던 바이며, 모세가 너희에게 생각하기를 원했던 저 최후의 옹말이다(신 32:29). 그런데 예루살렘은 기억하지 아니했으니, 놀랍게도 멸시당하리라" (애 1:9).
이 종말은 오랫동안 지연되었으나, "이제 왔다." 죄인들에게 멸망이 비록 서서히 올지라도 마침내 온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끝이 왔다. 그것이 너희를 지켜보고 있으며 너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종말은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당한 민족 최후의 멸망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갈대아 사람들에 의한 멸망은 그 멸망의 한 전조였던 것이리라. 또 나아가 이 불신앙 세상의 마지막 멸망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예루살렘의 최후의 멸망은 "세상의 종말" 의 한 모형이었다(마 24:3). 오 ! 세계 역사의 종말은 매우 가까이 있도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일생의 종말은 더욱 더 가까우며, 우리가 생각하기를 매우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하는 많은 "날들의 종말" (단 12:13)도 매우 가깝다. 이 "종말이 땅의 사방에 임할 것이다." 그 파멸은 최후적인 것이듯, 또한 총체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 땅의 어느 지역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나라조차도 결코 피하지 못한다. 세상의 파멸이 그러하리라. 만물이 용해될 것이다. 죄인들의 멸망이 그러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종말" 이 오기 전에, "저 사악한 자의 악한 행위" 가 끝났으면 !
Ⅱ. "보라, 재앙이로다. 오직 비상한 재앙이다" (5절).
죄는 "재앙" 이다. 즉 "비상한(오직) 재앙" 이다. 거기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가장 악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재앙(악)은 고난이라는 재앙이다. 그것은 "하나의 재앙" (영문에는 an evil-역주)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완전한 멸망을 위해서 충분한 하나의 재앙이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하나의 재앙이 "완전한 종말을 이룬다."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나 1:9). 그것은 전무후무한 "재앙" 이다. 그것은 회개치 않은 자들에게 내릴 "하나의 재앙," "비상한 재앙" 이다. 그것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며, 그들의 타락을 촉진시킨다. 이에 반하여,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써 그 재앙이 성화(聖化)되며, 축복의 수단으로 변한다. 그런 자들은 "그들의 축복을 위해서 바벨론으로 보내어졌다" (렘 24:5).
동일한 재난이 우리의 행실 여하에 따라서 절반의 "재앙" 이 되기도 하고 "비상한 하나의 재앙" 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악한 세상에 "종말이 왔을" 때, 그때에 비로소 "재앙, 곧 비상한 재앙" 이 임한다. 일시적인 심판에는 그 속에 고통을 가볍게 하는 완화제가 들어 있지만, 이것은 마지막 심판의 "재앙이며, 비상한 재앙이다."
Ⅲ. "그 날이로다." 이 "비상한 재앙" 을 내리기로 작정한 때가 왔도다. 끝장을 낼 때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모두가 정해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일은 실현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악한 사람을 보응하는 때, 그들의 행실을 판가름하는 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날" 은 정해져 있다. 또 우리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그의 날이 오고 있음을 아신다." 이런 사실이 되풀이되어 있다(10절). "보라, 그렇게 오랫동안 지연되었던 그 날이 드디어 임했다." "보라, 그 날이 임박했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 임박했도다" (7, 12절). 경고된 심판이 비록 오랫동안 지연되긴 하지만, 취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심판을 실행할 때는 꼭 올 것이다. 하나님의 인내가 심판을 연기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참된 회개와 회심 외에는 아무 것도 심판을 피하게 할 수 없다.
"아침(한글에는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였다" (7절). 그리고 다시금 10절에서, "아침이 이르렀으니" 라고 했다. 즉 고통의 새벽, 파괴의 낮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침" 은 숨겨진 것을 드러낸다. 그들은 자기들의 은맬한 죄악이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빛 앞에 서게 되었다. 그들은 아침에도 범행을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심판과 그 심판을 집행할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 즉 죄인들에게 "요란한" (곤고한)날 "징벌의 해(年)" 가 다가오고 있다. 파괴의 날이 이미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 이 백성들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보라. 그러므로 계속해서 그것에 대한 말을 들어야 한다. "곤고한" (요란한), 진실로 곤고한 "날" 이 "가까이" 있으니, 그것은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소리(한글-날)가 아니로다." 그것은 고난에 대한 단순한 메아리나 소문이 아니었다. 저들은 헛 소문이라고 생각하려했다. 마치 "그들에게 나아온 사람들" 은 "산(山) 그림자" 에 불과하듯이(스불이 가알에게 말했던 것처럼, 삿 9:36), 또 저들이 들은 정보는 산에서 울려온 "빈 소리" 에 불과하다는 듯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곤고는 공상이 아니니, 곧 알게 될 것이다.
Ⅳ.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나오며, 이전처럼 자비가 혼합되어 있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은 우물이니, 여기서부터 모든 재앙이 흘러나오리라. 이것은 "쓴 쑥이요 쓸개" 다. 이것이 재난을 더욱 비참하게 한다. "내가 진노를 네게 발하리라" (3절).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여호와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할 때 외에는 발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지휘하고 명령을 내리는 데로만 간다.
이런 재앙에 대한 표현은 더욱 심각해진다(8절). "이제 나는 속히" 가득 채워져 있는 "내 진노를 너에게 쏟을 것이며," "나의 진노" 는 모든 목적을 "너희에게서 이루리라." 이런 진노는 여기에서 한 번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본을 보이기 위해서 이곳 저곳에서 나타난다. 재앙이 "모든 무리에게 임하리라" 는 것이다(12, 14절). 온 민족이 "진노의 그릇" 이 되었으므로, "멸망당하기에 아주 적합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진노 중에도 자비를 기억하지만," 이제 "내 눈은 너희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자비를 베풀지 않으리라" 고 거듭해서 말씀하신다(4, 9절). 자비가 주어졌는데도 그것을 경시하던 자들에게는 "자비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Ⅴ. 이런 모든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징벌이며, 그들 자신의 어리석음에 의해서 초래되는 재난이다. 또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들로 하나님을 옳다고 시인케 하려 하신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오직 지혜와 정의를 통해서만 진노를 발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 행위에 따라서 너희를 문책하리라" (3절)는 말씀이 뒤따라온다.
"나는 너희가 지금까지 행했던 행위를 심문할 것이며, 그것을 율법과 비교하고 그 공적에 따라서 너희를 취급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4절).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아무리 중한 벌을 가하더라도, 하나님은 오직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 하실 뿐임을 기억하자. 그들은 그들이 만든 막대기로 맞는다. 하나님이 죄많은 백성들과 셈을 하러 오시면, 그는 모든 죄악을 헤아릴 것이다. "나는 너희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3절). 이제 "그들의 죄악이 드러나 미움을 받으리라" (시 36:2). "그리고 너희의 가증이 너희 중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4절). 즉, "은밀한 죄악이 이제 빛 아래 놓이게 되며 전에는 밝혀지지 않은 채로 너희가 행해 왔던 모든 것이 이제 나타나리라. 너희 죄는 이제 너희 자신에게 가증한 것이 될 것이다." "황폐의 가중한 것" 이 나타나게 될 때, 죄의 가증함도 밝혀지리라(마 24:15).
또는 "너희의 가증(즉 "징벌)이 너희 중에 있게 되리라." 그리고 그것은 "너희 가슴에까지" 미치리라(렘 4:18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은 아끼지 않을 것이며,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에게 "보응하더라도" "그들은 고통 중에서 계속 더 범죄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증함" 이 여전히 "그들 중에" 있으며,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 잠자고 있다. 8, 9절에서 이것이 되풀이된다. "나는 너를 문책하리라." "나는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이런 심판을 가져오도록 하나님을 진토케 한 두 가지 죄악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것은 교만과 학정이다.
1. 하나님은 그의 심판으로써 그들을 낮추리라(겸손케 하리라)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난의 "몽둥이에 꽃이 피었다." 그러나 "싹이 난" 것은 "교만" 이다(10절). 죄 가운데서 싹 난 것은 심판 안에서 꽃이 필 것이다. 봄에는 나무에 싹이 돋아나듯,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에게 교만이 생겼다.
2. 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혹독하게 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로를 혹독하게 다루였기 때문이다.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다" (11절). 즉, 서로에 대한 그들의 중상모략이 치리자의 권력에 의해서 비호되었다. 정치의 몽둥이가 "죄악의 몽둥이" 가 되어, "포학(폭력)이" 엄청나게 쇄도했다. 재판정에 악이 있음을 보았노라" (전 3:16; 사 5:7). 하나님의 심판의 열매가 무엇이든, 우리이 죄악이 그 심판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Ⅵ. 이런 심판을 막을 방책이 없으니, 그 심판이 사방에 임하고, 그 심판 앞에서는 모든 것이 굴복당하며, 어떤 구제책도 없기 때문이다.
1. 죽음이 도시와 농촌에서, 성읍 안에서와 성읍 밖에서 여러 모양으로 활개를 칠 것이다(15절).
어디에서도 사람은 안전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들에 있는 자는 칼에 의해서 죽을 것이며" (모든 들은 싸움터가 될 것이다), "성읍 안에 있는 자는" 비록 그것이 거룩한 도성일지라도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리니, "기근과 온역에게 삼켜지리라." "트로이 사람들과 그리이스 사람들이 똑 같이 죄를 범하듯" (침입한 것같이), 죄가 도성과 농촌 어디나 범람했다. 그러므로 성읍과 농촌 어디나 재앙이 범람했다. 그러므로 성읍과 농촌이 모두 황폐해졌다.
2. 죽음의 인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악의 몽둥이" 로 불쌍한 이웃에게 학정을 가했던 교만한 압제자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다가오고 있는 황폐에 의해서 모두 전멸당할 것이다(11절). "그 무리들", 곧 피해를 입히고, 저들이 하는 일을 후원하여 "십자가에 못박으라 ! 못박으라!" 고 소리치게 하기 위해 모였던 폭도들은, 저들이 파멸당할 때, "아무도 달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가족들도 모두 멸망당할 것이며, 뿌리든 가지든 남지 아니하리라. 이런 무리들, 폭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보복이 특별한 방식으로 가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모든 무리들에게 미쳤으며" (12, 14절), "묵시(환상)가 그 무리들 전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13절).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 무리들을 일괄하여 제거할 것이며, 그들과 그들의 주모자들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이 일단 시행되면, 많은 무리들조차도 그것을 물리칠 수 없다. "손에 손을 잡고" 서로 굳게 "결합할지라도," "악한 자들이 징벌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3. 멸망당한 사람들에 대해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그곳에는 그들을 위한 통곡도 없으리라" (11절, 우리 성경과 다름).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 애통할 사람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그들을 따라서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때가 너무 참혹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황폐함을 보지 않고, 재앙을 겪지 않고 죽은 친구들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축하할 것이다(렘 16:4, 5).
4. 그들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으리라. 포고령은 이미 공포되었으며, 그들에 관한 "묵시" (환상)는 "돌이킬 수 없으리라" (13절).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취소하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무효화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포고령은 "일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돌이킬 수 없었으니, "반드시 그 보내진 뜻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행될 것이니, 그때에는
(1) 어떤 사람들도 하나님을 거스리지 못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악한 생활로 자신을 강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죄인들은 항상 그랬지만, 이제 하나님과 그의 심판에 도전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거슬러 마음을 강퍅게 하고서 잘 되지는 못한다." 죄악으로 자신을 강하게 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이 그들 자신을 약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패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시 52:7).
(2) "무리들" 도 이런 심판의 급류에 저항할 수 없으며, 막아낼 수가 없다(14절). "그들이," 군대를 모으고, 그 모인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격려하기 위해서, "나팔을 불며," "모든 것이 예비되었다" 고 할지라도, 그 모든 군대와 예비한 것이 헛되게 될 것이다. 징병에 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적과 싸울 만한 용기를 가진 자도 없으리라.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한다면,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5. 그들이 역경에 처할 경우 자기들을 부양하리라고 마음먹었던 재물에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물건을 사는 자는 "그의 재산이 증가되고, 구매자가 되었음을 "기뻐하지 말라." 또는 "파는 자도" 그의 재산이 감소되고 파산자가 되었다고 "근심하지 말라" (12절). 이 세상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알라. 고통의 때가 되어서, 우리가 그것들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가장 하찮은 것으로 여길 것이다. 물건을 팔아 버린 사람들은 잃은 것이 적기 때문에 거의 근심하지 않으며, 그 물건을 산 사람들에게 오히려 근심과 두려움이 더욱 증가된다. 그러므로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라." 왜냐하면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가며," 그들의 재산을 빼앗길 날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전 7:29-31). 그러므로 이런 말이 첨가되어 있다. "판 자가 희년이 올 때까지 칼과 온역을 피해서 살아있을지라도, 희년이 되어 다시 돌아가 율법에 따라서 판 것을 다시 얻지는 못하리라. 어떤 재산도 70년이 차기까지는 향유할 수 없으며, 그 후에야 사람들이 자기들의 소유물로 돌아가,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이런 신념으로, 예레미야는 "그의 삼촌의 밭을 샀다." 그러나 그는 그 권리로 인해서 기뻐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불평했다(렘 32:25).
6. 하나님은 모든 것 중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내가 여호와이며(4절), 나 여호와가 치는 줄을 알리라(9절). 너희는 너희를 쳐서 멸망시키는 자가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단지 하나님의 막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너희는 알게 되리라. 너희를 쳐서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다. 누가 하나님의 손의 위력을 알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선(善)을 행했던 자가" "여호와" 임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들을 "치는 자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는 것도, 혹은 징벌하는 것도 모두 다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하나님을 시인하게 되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