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15, 누가복음 18, 욥기 33, 고린도후서 3
묵상 구절
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백성이 원망하니,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시어 여호와의 불이 그들에게 붙어 진영의 끝을 살랐고,
11:2 백성이 모세에게 울부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그 불이 꺼졌다.
11:3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을 태웠기 때문이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 그후 민수기는 본 문단 바로 직전에 기록된 바란 광야의 기착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제 하나님의 선민이 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전쟁을 완수하기 위한 진열 정비와 마침내 시내산을 너무도 당당히 출발하여 첫 기착지인 바란 광야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도하였다. 따라서 이 행군 준비 기사와 바란 광야에 기착하기까지의 최초의 행군 기사들은 희망에 가득 찬 것일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을 떠나자 마자 그 첫 기착지에서부터 갖은 이유로 원망과 불평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행군은, 더욱 엄밀하게는 구세대인 출애굽 제 1세대의 가나안 행군은 그 시초에서부터 먹구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시내산 출발 이후 다베라에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의 제 11, 12장까지의 행군 여정의 기록은 행군 사실 자체에 대한 기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일반 백성들과 지도층 인사 모두를 막론하고 여러 이유에서 거듭 불평과 분열을 되풀이한 암울한 사건의 기록들 사이 사이에 이스라엘이 조금썩씩가데스 바네아로 옮겨간 상황이 약술되는 것으로 그치는 도치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11, 12장 사이의 기본 내용 구성
- 다베라 원망 사건 발생(11:1-3)
- 음식 문제로 인한 원망 사건 발생(11:4-9)
- 거듭되는 백성들의 불평으로 출애굽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사명과 능력에 회의를 느낀 모세의 탄식과 하나님의 응답(11:10-23)
-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최고 지도층을 구성할 칠십인 장로의 선정(11:24-30)
- 메추라기 고기의 공급과 탐욕자들 대한 징벌로 인한 만나 불평 사건의 종결 및 하세롯 기착(11:31-35)
-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 비방 사건 발생과 해결 및 가데스 바데아 도착(12:1-16)
- 끝없이 흔들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방황과
-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은 끝없이 흔들릴지라도 그들의 하나님이신 당신만은 끝까지 신실하사 끝내는 그들은 당신의 약속의 땅(the Promised Land)으로 이끌어 들이신 하나님의 손길의 인도라는 이중 구조가 빚어낸 한편의 드라마(Drama)였던 것이다.
- 먼저는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인생의 가장 근본적 문제요 최종적 목적인 우리의 구원이 확실, 불변하다는 사실에 감사할 일이다.
-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지엽적 문제로 인한 희의와 불평으로 인생을 허무하게 소모함 없어 오히려 여호와 절대 신앙과 여호와 절대 순복을 통하여 더욱 온전한 축복을 매순간 만끽하기 위해서만 애쓸 일이다.
- 이같은 인생의 실체를 깨달은 영혼은
- 따라서 현재의 우리는 동시에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거듭된 원망과 불평으로 인한 혼란과 징계의 악순환에도 볼구하고 끝내는 강하고 성실한 당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끝까지 붙드사 마침내 이스라엘을 당신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능하고 자애로운 손길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향하여 당신의 백성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인도와 보호에도 불구하고 그저 당장의 안일에만 급급하여 거듭하여 원망과 불평을 심지어는 여호와 하나님 자체에 대한 불신과 거부 의사까지 보였던 이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의 행태 앞에서 참으로 질기고도 깊은 인간 죄성의 뿌리와 그것이 일상의 크고 작은 난관과 유혹에 봉착하여 경박하게 노출되었을 때의 해독의 정도에 새삼 전율하게 된다.
- 그러나 빛이 밝을수록 사물의 명암과, 깨끗하고 더러움이 더욱 철저하게 구분되는 법이다. 따라서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이 남달리 악했다기보다는 일단 모두 다 예외 없이 죄성에 물든 인간의 왜곡된 보편적 성정이, 모든 삶의 요소가 척박할 수밖에 없는 광야라는 현실에서 그저 당장의 현실 안주에만 급급했던 천박한 심정으로 인하여 여러 경우의 원망 사건으로 더욱 선명하게 노출되었던 것 뿐이다.
- 이같은 이스라엘 구세대의 불평으로 인한 상황의 돌변은 마침내 저 38년간의 의미 없는 광야 유랑과 이를 통한 구세대의 진멸이라는 징계를 야기한 제 13, 14장 사이에 기록된 가데스 바네아 사건의 전조 내지 복선을 어루고 있기도 하다.
- 그러나 본 문단에 이르러 상황은 돌변한다.
- 지금까지의 민수기 기사는 그야말로 내일의 희망으로 가득 찬 가나안 행군 준비와 시내산 출발 기록의 연속이었다. 민수기는 총 11개월 여에 이르는 시내산 기착 시기의 말미에 실시된 군대 계수 즉 이미 시내산 선민 언약 체결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성막의 건립, 각종 제사 제도와 기본 율법의 수여가 끝난 상태에서 이제 출애굽 제 1세대인 자신들의 가장 큰 시대적 소명인 가나안 정복 전쟁 준비에 가장 직접적으로 요청되는 전 국민의 군사 편제화를 마무리 하기 위한 군대 계수 실시 장면으로 그 막을 열었다.
● 여호와의 불(민수기 11:1-3)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엿보게 된다.
Ⅰ.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있다. 그들은 "원망했다" (1절).
"말하자면 그들은 원망장이들이었다" -흠정역의 난외에는 그렇게 되어있다. 그들에게는 다소의 은근한 불평과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아직은 공공연한 폭동을 야기시키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이 작은 불티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을 보라!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우수한 율법과 규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의 산을 출발하자 마자 하나님께 도전하기 시작했다.
💡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백성이 원망하니,
-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의 인도하심 가운데 나타난 여호와의 명을 좋아 때로는 한나절을 머물기도 하고 때로는 일 년을 머물기도 하면서(9:18-23) 광야 여정을 잘 참고 견디었지만 사실상 광야에서 장정만 60만어 넘는 대군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항상 물도 부족했을 것이고, 만나만으로는 그들의 식욕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악한 말로’(’라’)는 — 이러한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한다.
이 사건 속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읽어보자.
1. 죄의 사악성.
이것은 종종 계명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분노케하는 기화로 삼는다.
2. 육을 통하여 주어진 율법의 연악성(롬 8:3).
율법은 죄를 발견했다. 그러나 죄를 파괴시킬 수는 없었다. 죄를 견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죄를 정복하지는 못한다. 그들을 "원망했다" . 주석가들은 그들의 원망 내용을 연구한다. 즉 그들은 고깝게도 많은 도움을 입고 있는 그때에, 바로 그런 때에 뭐 원망할 것이 또 있었겠는가 하는 것 때문이다. 물론 원망하는 사람들의 내용이 모두 한 가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자들은 시내 산을 떠나온 것을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거기서는 그들이 긴 휴식을 취했던 곳이다. 또, 어떤 자들은 기후에 대해서, 또 어떤 자들은 저들이 가는 길에 대해서 원망했을 것이다. 또 어떤 자는 3일간의 여행은 너무 먼 행군이라고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자들은 그만한 여행으로는 가나안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들의 진영이 어떻게 보호 받았으며, 어떻게 인도되었고, 어떤 편의를 제공받았는가를 생각하며, 또 저들이 좋은 음식과 친구를 가질 수 있었고, 그 행군에도 많은 보호를 입어서 저들의 발이 부풀거나 의복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볼 때(신 8:4),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저들을 더 이상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했다.
격렬한 불만의 정신을 품은 자들은 언제나 투덜댈 구실을 찾는 법이며, 저들의 외부적 형편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호전되었을 때라도 투덜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Ⅱ. 이 죄로 인하여 분노를 느끼신 하나님의 정의로운 분개가 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들으셨다."
아마 모세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불안과 불평을 아무리 다른 사람들에게 교묘히 숨기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점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대단히 분노하셨다. 그래서 그의 "진노가 불붙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유가 있을 때에는 우리들에게 불평을 털어놓을 자유를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시 142:2). 그러나, 타당한 이유가 없는 데도 불평을 할 때에는, 하나님은 당연히 분개하시고 그 불평을 악하게 여기신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 밑에 있는 자들이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우리는 분개할 것이다.
💡 ‘여호아께서 그것을 들으셨다’는 말은 지금까지 ‘여호와-모세-이스라엘 백성'으로 이어져 온 삼각 관계에서의 혁신적인 변화를 뜻하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는 항상 모세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원망했고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며 그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삼각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백성은 여호와를 향하여 직접적으로 원망하고 (1절 설명 참조), 지도자격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지도권에 도전한다(12:2). 그 결과 하나님은 마침내 자기를 향하여 원망하는 그 말을 친히 들으시고 즉각 이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신다(14:27, 28).
Ⅲ. 이 죄에 대한 응징을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으니라."
이 불은 구름에서 나와 나답과 아비후를 불살라 죽이던 그런 불꽃이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의 진노외 불꽃이 그들의 심중에 타오르고 있을 때(시 39:3), 마땅하게도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그들의 육체를 삼켜 버렸다. 우리는 여러번 그들의 불평에 대한 기록을 보았다. 그들이 애굽에서 처음 나왔을, 때에 그러했다(출 15,16,17장). 그러나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그들의 불평에 대한 재앙이 내렸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그들은 그들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크게 체험했으므로, 지금에 와서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불신한다는 것은 보다 더 용서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불이 야곱에 대(對)하여 붙었다" (시 78:21). 그러나 그 불이 그들을 삼킨 것은 "진 맨끝에" 있던 자들만이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싸우시기를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보여 주신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점차로 그들에게 임하였고, 그들은 경고를 받게 된 것이다.
💡 ... 진노하시어 여호와의 불이 그들에게 붙어 진영의 끝을 살랐고,
- 진노하시어 : 원어는 화가 나면 콧김이 뜨거워지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에서 연상되어 ‘진노’라는 의미를 갖게 된 단어.
-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원망하는 일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다.
- 여호와의 불 : 이 징벌은 여호와로부터 임한 심판이었고, 동시에 이 불은 자연적으로 진 중에서 발생한 불이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임한 불이었다.
- 진영의 끝 : 여기서 끝은 어떤 사물과 다른 것 사이에 갈라져 구분이 이루어지는 그 뒷부분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진 끝’이란 말은 진이 진행할 때 질서있게 움직이는 대열의 뒷부분을 의미하기보다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뒤에 처져 따라오는 무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여호와의 언약궤와 구름의 인도함에서 멀리 떨어져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큰 불평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Ⅳ. 그들은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모세는 노련한 그들의 중재자였다(2절). "그(하나님)가 그들을 치시매, 그 때에야 그들이 그를 찾으니라." 그리고 비로소 그들은 모세에게, 자기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간청했다.
💡 백성이 모세에게 울부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그 불이 꺼졌다.
- 울부짖음 : 매우 큰 재앙을 당해서 도와 달라고 부르짖거나 매우 흥분했을 때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의미한다(출12:30; 신22:23~27; 삼상4:14). 이와 같은 표현이 본문에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불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보여준다.
- 본문에 사용된 단어들은 우리가 환난이나 징벌을 당할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고통과 해결의 중간에 바로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 이유 없는 원망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망거리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은 지당한 처사이다.
- 자기들이 번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친구를 경시하는 자들도, 다시금 곤궁에 처해지면 하나님의 친구들이 자기들의 친구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조상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보내 주소서!"
Ⅴ. 그들을 위한 모세의 중재에 성공했다.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 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기 위해서 하나님과 그들의 틈바구니에 설 각오가 항상 되어 있었다) "그 불이 꺼졌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인간을 징벌하시기를 기뻐하시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싸움을 막 시작하신 그 때에, 이미 기꺼이 그 싸움을 취소해 버리시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꺾어 버린" 유력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Ⅵ. 이리하여 그 곳에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원망하는 백성들의 수치와 의로운 하나님의 영예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 곳은 디베라 곧 불사름이라고 불려졌다(3절).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이 지명을 듣고 두려워하여 그들이 범한 죄를 범치 않도록 경고를 받게 됨으로써, 저들과 같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전 10:10).
💡 다베라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행 경로를 밝히고 있는 민수기 33장에도 다베라란 이름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시내 광야에서 발행하여 기브룻 핫다아와에 진쳤고' (33:16) 란 기록만이 나온다. 그런데 기브롯 핫다아와는 1-3절의 원망 사건에 이어져 4-35절에 나오는 탐욕스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주신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다(35절).
물론 기브롯 밧다아와의 위치도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다베라가 기브롯 핫다아와 보다도 그들이 출발한 시내산에서 더 가까왔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로 보아 그들은 은혜의 장소인 시내산을 출발하자마자 바로 하나님을 원망한 실로 패역한 무리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