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6일 주일 묵상구절 민 11:24-30 예언하는 이스라엘 칠십 장로들

하나지기 2022. 3. 5. 07:41

맥체인 성경읽기

출애굽기 17, 누가복음 20, 욥기 35, 고린도후서 5

 

묵상구절

11:24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장로들 중 칠십 명을 모아 그들을 장막에 둘러서게 하였다.

11:25 여호와께서 구름에 휩싸여 내려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명의 장로들에게도 주시니, 그 영이 그들 위에 머물 때에 그들이 예언하였으나 다시는 하지 않았다.

11:26 한편 진영에 두 사람이 남아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엘닷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들 위에도 그 영이 머물렀으니, 그들은 명단에 기록된 사람들이었으나 장막으로 나가지 않아 진영에서 예언하였다.

11:27 한 소년이 달려가서 모세에게 보고하기를 "엘닷과 메닷이 진영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니,

11:28 청년들 중에 하나인 모세의 보좌관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의 주인 모세여, 그들이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하니,

11:29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위하여 질투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분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셔서 모두 선지자가 되게 하셨으면 좋겠다."

11:30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시 진영으로 돌아왔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예언을 한 장로들(민수기 11:24-30)

모세의 이스라엘 치리를 도와 주시마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을 보게 된다.

 

Ⅰ. 여기에 보면, 전체적으로 보아 70명의 정치 고문관을 뽑은 사례가 나와 있다. 모세는 백성들의 동요로 다소 심란해졌었지만,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금 온전한 평정을 회복하고, 즉시 자기의 직무로 돌아갔다. 당면한 문제에 따라서

  1. 모세는 자기의 역할을 다했다. 그는 70장로들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장막에 둘러 세웠다(24절).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대기한 것이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현현 하시었다. 또 백성들은 저들의 엄숙한 숙명에 대한 증인들이 될 수 있기도 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려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헌신하고 봉사해 야 한다.
  2. 하나님도 지체없이 당신의 하실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영을 70장로들에게 주셨다" (25절). 이리하여 그들은 갑자기 능력과 지혜를 받아 비상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행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즉 그들은 예언을했고, 그 날 종일토록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람은) 그 날만 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아마 그들이 최근에 받았던 그 율법에 대한 설명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명은 놀라우리만큼 명료하고, 뜻이 깊고, 알기 쉬우며, 표현이 정확하여 그들의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리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고전 14:25 참조). 이리하여 오랜 후에 사울이 예언의 은사를 받자, 그를 치리자로 허락받았다고 했다. 사울에게도 하루 밤낮 예언의 은사가 임했었다(삼상 10:6, 11).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내기 위해 파송될 때는, 아론이 그의 예언자로 일하도록 지시되었다(출 7:1).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다른 일을 맡기시게 되자, 모세에게 자기의 곁에 70예언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거룩한 일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을 잘 교화시킬 수 있는 자임을 명심하자.

Ⅱ. 또한 그 70인 중의 두 사람에 관한 특정 사실이 있다. 곧 엘닷과 메닷인데, 아마 형제였을 것이다.

  1. 모세는 그들을 자기의 정치 보좌관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했다" (26절). 칼빈은 이렇게 추측했다. 소환령이 그들에게 보내졌으나, 그들은 제자리에 있지 않았던 연고로 그들에게까지 소환령이 전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은 지명되었지만,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겸손과 겸양이 지나쳐서 회막에 나아가는 것을 꺼려했다고 본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약점과 무자격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치리자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사양하려 했다는 것이다. 저들의 정신은 찬미할 수 있다. 그러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은 저들의 과실이었다.
  2. 하나님의 영은 진 내에 있는 그들을 찾아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천막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서 예언했다. 즉 그들은 거기에서 기도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은사를 받아서 자기들 주위의 개인 천막내에서 그 은사를 실천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회막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과 같이 자기 마음대로 분다" (요 3:8)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로 가서 주의 영을 피할 수 있으랴?"

이 두 장로가 결석을 했다는 데에는 어떤 특별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장로들이 받은 영은 과연 하나님의 영이라는 사실, 그리고 모세가 장로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것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겸손 때문에 직무를 수행치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그 일을 맡기셨다. 아니 그보다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그 이름이 기록되는"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자들은 존귀하게 될 것이요,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가장 적은 자자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자이다.

  1. 이 정보가 모세에게 전해졌다(25절).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개인 천막에 비밀 집회가 있습니다. 엘닷과 메닷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감독과 관할을 벗어났으며, 다른 장로들의 회합에서도 이탈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한 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불법적인 일로 본 것 같다.
  2. 여호수아는 그들을 중지시키자고 말했다.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28절). 여호수아 자신도 그 70인 중의 한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차지한 직위의 명예를 매우 존중했을 것이다. "예언의 영은 예언자에게 따르는 것이므로" 여호수아는 자기들이 아무런 강압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아님을 당연지사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는 그 두 사람도 예언을 하지 않든지, 아니면 회막에 나와서 자기들과 함께 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는 그들이 예언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단지 앞으로는 금하자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제안은 훌륭한 원칙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것이 엘닷과 메닷을 싫어하는 어떤 개인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정직한 열성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가 통일되기를 바란 것이요, 하나님과 모세의 영예에 관심을 가졌었다.
  3. 모세는 그 제안을 거부하고, 비난했다(29절).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너는 네가 어떤 영을 받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여호수아와 모세는 특별히 서로 신뢰하는 친구 사이였다. 그는 모세의 영예가 장로들을 부른 이유로 격감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를 책망하고, 다음과 같은 정신을 보여 주었다.

(1) 우리는 남이 받은 은사, 은혜, 능력을 은밀히 시기해서는 안 된다. 예수의 영예가 자기의 스승 요한의 영예보다 올라가는 것으로 인하여 예수를 시기한 것이 바로 요한의 제자들이 저지른 과오였다(요 3:26 이하).

(2) 우리는 남의 약점이나 결점을 찌르는 일에 열중해서는 안 된다. 엘닷과 메닷이 규칙 위반의 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하더라도 여호수아는 지나치게 성급하게 그들을 대한 것이다. 우리의 열심은 언제나 지혜로운 온유로 조절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인간의 분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약 1:20).

(3) 우리는 가장 선하고 유력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어느 파당의 머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자기의 이름을 이용하여 파벌을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고전 1:12, 13).

(4)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그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마치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지 않은 듯이 생각하여, 우리와 다른 자들을 정죄하거나 금지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막 9:38).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신 자들을 우리가 버린다거나, 남들이 우리와 꼭 같은 생각을 품고 있지 않다 하여 그들에게 선행을 금지시켜서야 되겠는가! 모세는 그런 부류의 인물이 아니었다. 이 두 사람을 침묵시키고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소멸케 하기는커녕, 오히려 "여호와의 백성 모두가 예언자들이 되기" 를 바랐던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주시기를" 원했던 것이다. 모세는 정당한 자격을 받지 않은 예언자들을 금지시킨다거나 또는 예언의 영이 그렇게 일반화되어 누구게나 임하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여호와의 모든 백성" 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 남의 은사에 대한 찬사, 그리고 엘닷과 메닷이 자기가 오지 않는데서 예언한다고 하여 조금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표명한 것이다. 거룩한 바울 사도도 바로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진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는 자기의 고난을 더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지만(빌 1:16) 그래서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와 정책의 신용이 실추되더라도, 하나님이 예배되고 영광 받으시며 찬양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기뻐해야 한다.

  1. 이제 새로이 서임된 장로들은 즉시 자기들의 직무에 들어갔다(30절). 저들이 예언을 함으로써, 그 소명이 충분히 실증되자, 그들은 모세와 함께 진으로 돌아가 각각 업무에 임했다. 그들은 은사를 받고 나서 "충실한 청지기로 봉사했다." 이제 모세는 자기의 일과 영예를 그 많은 삶들이 같이 담당해 줄 것을 기뻐했다.

(1) 권력을 잡으려는 자들은 모세의 중언을 명심하자. 즉 통치자기 된다는 것은 하나의 짐이다. 그 통치의 의미를 위식하고 있는 자에게 염려와 번민의 짐이 된다. 그리고 그 의무를 의식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마지막 심판날이 오면 그것은 더 큰 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터이니, 그 때에는 그들이 자기의 재능을 감추어 둔 종들의 운명을 이어 받게 될 것이다.

(2)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은 모세의 모범을 본받자. 남의 충고나 협조를 경멸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바라고 감사하게 여기면서, 지혜와 권력을 독점하려고 시기하지 말자. 조언자들이 많으면, 안전이 있다.

 

- 찬미 자매 수고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