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18, 누가복음 21, 욥36, 고린도후서 5장
묵상 구절
11:31 바람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들을 휘몰아 와서 진영 위에 떨어뜨리니, 이쪽으로도 하룻길, 저쪽으로도 하룻길이 되도록 진영 사방의 지면 위에 두 규빗 높이로 쌓였다.
11: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또 다음날 하루 종일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을 모았으며,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진영 사방에 펼쳐 놓았다.
11:33 고기가 아직 그들의 잇새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그 백성을 매우 큰 재앙으로 치셨다.
11:34 그곳의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이는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들을 거기 장사하였기 때문이다.
11: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하세롯으로 진행하여 거기에 머물렀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팀욕자들의 죽음(민수기 11:31-35)
하나님은 모세의 치리를 도와 줄 보좌관들 세워 주심으로써 당신의 약속을 이행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당신의 영으로써 인간의 영을 다스리고 있다는 권능을 보여 주신 셈이다. 이제는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심으로써 백성들에 대한 당신의 약속을 이행하시려 하신다. 이로써 하나님은 자연계와 그 속에 있는 하등 동물들까지도 다스릴 권능이 있음을 입증하시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 그 백성들은 고기를 실컷 먹고 배불렀다. (시 78:26 에 나타난 대로 아마 남동풍의) “바람이 메추라기들을 몰아 왔다" (31절).
메추라기라는 것이 어떤 동물인지는 불분명하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나는 새" 와 같았다고 했다. 박학자 패트릭(Patrick)주교는 어떤 현대 학자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즉 그들은, 메추라기라는 것은 그 지방에 맛있는 식물로 잘 알려져 있는 메뚜기들이라고 보며, 그것들이 무더기로 쌓여졌었고, 햇볕에 말려서 사용했다고 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달간의 잔치를 마련해 주었으니,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완고한 자식들에게도 관대한 아버지 같았다. 곡식을 먹어 버림으로써 풍성한 애굽 백성에게 재앙을 내렸던 그 메뚜기들이 이제는 먹을 것을 날라옴으로써 불모의 땅 이스라엘에게 축복이 되었다.
💡 11:31 바람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들을 휘몰아 와서 진영 위에 떨어뜨리니, 이쪽으로도 하룻길, 저쪽으로도 하룻길이 되도록 진영 사방의 지면 위에 두 규빗 높이로 쌓였다.
- ‘여호와의 바람'(호13:15)
- ‘여호와의 신'을 암시하는 것. 여호와의 신(루아흐)이 70인 장로들에게 임하여 예언하는 은혜를 부어 주신 것처럼(25,26절), 이제 ‘여호와의 바람'(루아흐)’이 그 모든 백성이 거하는 진에 임하여 메추라기를 먹는 은혜를 주셨다.
- 휘몰아 와서 진영 위에 떨어뜨렸다
- 여호와에게서 나온 바람 곧 ‘주의 바람'이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진영으로 이끌어 와서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이는 약 1년 전 신 광야에서 이스라엘 진영에 메추라기가 내린 사건(출16:1,3)을 묘사한 것보다는 훨씬 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강조하여 나타내는 것이다(4절 참조).
- 떨어뜨렸다
- 이 동사는 부드러운 어감이 아니라 ‘내어버리다'(렘23:29)란 매몰찬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메추라기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바람이 메추라기를 ‘내어던졌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시78:26~28).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초자연적 역사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였다고 묘사하는 출 16:!3의 표현보다는 훨씬 더 강렬한 표현이다.
- 이쪽으로도 하룻길, 저쪽으로도 하룻길..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이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양의 고기를 어김없이 준비하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는 전혀 가늠할 수 없다.
- 메추라기가 내린 땅의 넓어가 얼마나 넓은지 진에서 한쪽 방향을 택해 걸어가면 하룻길이 되고 반대쪽을 향해 걸어도 하룻길이 된다는 말이다. 이는 양쪽으로 하룻길 되는 거리를 고려해 보면 진을 중심으로 반경 약 32km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 두 규빗 높이로 쌓였다
- 메추라기가 강한 강한 동남풍을 만나서 이스라엘 진 사방에 두 규빛쯤 내리게 되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진맥진한 엄청난 수의 메추라기 때가 진 사방에 떨어져 날개짓을 함으로써 마치 쌓여 있는 듯 보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노력하여 엄청나게 많은 메추라기를 잡아서 물릴 정도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 그들은 하나님이 보낸 그 고기를 매우 탐욕스럽게 먹었다.
그들은 지나친 식욕을 발휘하여 "탐욕을 내었다." 모세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아랑곳하지 않았다(32절). 메추라기들은 하루하고 그 다음날 낮까지 내렸고 그들은 그것을 모았다. 그리하여 각각 자기 집에다 최소한 10호멜씩 날라다 두었다.
다윗은 베들레헴 우물물을 열망했었다. 그러나 막상 거기에 도착해서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에까지 오는 데는 모험이 필요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이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았어야 할 이유는 더욱 크다. 그것은 불평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모세의 말을 들었다면 그 고기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보내어진 것이라는 것을 더 잘 깨닫고 있어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육욕적 정신의 세력에 지배받고 있는 자들은 자기들의 정욕이 채워지기를 바랐다. 그것이 오히려 자기들의 귀중한 영혼에 피해를 주고 파멸을 가져오는 것인데도 게의치 않았다.
💡 32절,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또 다음날 하루 종일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을 모았으며,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진영 사방에 펼쳐 놓았다.
- 온종일, 밤새도록, 또 다음날 하루 종일...
- 메추라기가 내린 그 날 낮과 밤, 다음 날 낮까지 그 백성은 조금도 쉬지 않고 메추라기를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구하던 고기에 대한 탐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들의 불신앙을 드러내고 있다.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와 역사 가운데서도 탐욕을 채우느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불신앙의 죄악에서 헤데이고 었는 것이다(시 106:13.14). 그리고 결국 그들의 탐욕은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34절; 약1:15).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 간 물릴 정도로 고기를 먹게 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메추라기가 곧 없어질까 봐서 한 마리라도 더 얻기 위해 발버둥친 것이다.
-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을 모음..
- 호멜은 히ㅂ리인들이 사용하는 도량형 단위 중 가장 큰 것. 10호멜은 2,200리터, 120말.
- 그들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렇게 많은 메추라기를 모아들였다. 그들이 모은 앙은 곧 그들의 탐욕의 정도를 대변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19.20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욕심대로 많은 앙의 메추라기를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자신들을 위하여 사방에 펼쳐 두었다...
- 이스라엘 백성이 메추라기를 모으는 일에만 아니라 그것을 보관하고 저장하는 일에도 혈안이 되어 있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탐욕스럽게 많은 고기틀 거두어 들여서는 이 많은 앙을 한꺼번에 먹을 수는 없 었으므로 고대 이집트에서 하던 방법대로 고기를 햇별에 말려서 보관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도 하 나님께 감사 에물을 드러거나 이웃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그랬던 것이다. 그들의 끊임없는 탐욕과 불신앙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욕심만을 추구하였다.
- 바울은 이렇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특성임을 말하였다(엡2:3).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오직 성령을 좋아 행동하므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아야 한다(갈5:16).
- 내일을 위해 고기를 저장하는 것이 인간의 눈에는 지혜로운 것 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 불과한 것으로 어는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었다(20절).
- 심판이 왔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잔치에 대하여 얼마나 값비싼 댓가를 치루었던가! "여호와께서 심히 큰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다" (33절).
💡 본문은 고기가 더 소비되어 없어지기 전에 재앙이 임했다고 한다. 그 재앙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떤 육체적 질병이 임한 것 같다. 아마 이것은 저들이 포식한 결과였을 것이며.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죽은 자들은 아마 그 폭동의 선동자들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종종 진노하시사 죄인들의 욕망을 버려두신다. 반면에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는 욕망을 거부해 비리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는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시 106:15). 그러므로 그들을 향하여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저희 식물이 아직 그 입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진노하셨다" 고 기록되어 있다(시 78:30, 31).
우리가 부당하게 욕심을 낸 것은 성취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오히려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에게 고통이나 십자가가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먼저 실컷 먹여 주시고나서 재앙을 내리셨다.
(1) 이것은 하나님 당신의 권능이 지니고 있는 명예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하나님은 능력이 모자라 거부하였도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2) 또한, 죄인의 번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번영은 멸망을 향한 것이다. 그들은 소와 같이 도살 때를 위해서 살찌워지는 것이다.
- 끝으로, 그 장소에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이름이 붙었다(34절).
모세는 그곳을 기브롯·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고 불렀다. 탐욕을 부리는 이스라엘인들의 무덤은 이스라엘의 탐욕 자체를 나타내는 무덤으로 보아도 당연할 것이다. 그런 지명이 붙은 것은 경고를 위함이요, 그 결과의 정당함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여전히 죄를 범하였느니라" (시 78:32).
💡 이스라엘은 광야 여정 가운데 수치스런 행적을 한 장소의 이름으로 남기고 있다. 우리 성도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삶에 있어서 이미 죄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영적 출애굽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는 삶의 헌장에서 어떤 발자취를 남기며 신앙 생활의 굽이마다 어떤 이름을 남기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늘 순종함으로 신앙 생활의 여정에 좋은 이름을 남겨야 할 것이다(마7:19,20).
기브롯 핫다아와
- 무덤 + 정욕, 탐심 = ‘그 탐욕의 무덤들' 이란 뜻.
- 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람욕으로 인해 받은 심판의 사건을 교훈하기 위해 ‘탐욕의 무덤'이라는 지명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
- 우리들도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한 탐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탐욕으로 인하여 죽음에까지 이르지 않고 다시 둘이킬 수 있는 길은 궁극적으로 십자가틀 붙드는 것과 또한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민감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뿐이다. 즉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싸옴에서 성령이 육체를 거스려 이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갈5:17).
💡 35절,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하세롯으로 진행하여 거기에 머물렀다.
- 하세록 : 사실 ‘하세롯'은 이스라엘 광야 역사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곳이고 이후에도 잠시 스치듯 언급될 뿐이다(33:17, 신1:1). 그런데 성경 기자는 본 11장을 마감하면서 ‘하세롯'이란 지명을 두 번 언급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그 지명에 모으고 있다.
- 이는 ‘다베라'(1~3절)와 ‘기브롯 핫다아와'(4~34절)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원망의 역사가 ‘하세롯'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12장에 들어서면 전혀 새로운 유형의 불신앙, 즉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의 권위에 대한 미리암과 아론의 도전을 보게 된다.
- 하나님의 일하심과 찬미 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