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 있음의 네 가지 요소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성경에 사용된 이 용어들이 깨어있음을 실천하는 네 가지 요소(경성 , 주의 , 경계 , 기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주의를 기울일 것
깨어 있음은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깨어 경계하려면 생각하고, 유의하고, 빈틈없이 살펴야 한다. 깨어 있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밤에 적의 후방을 노리기 위해 고공 침투 훈련을 받는 공수부대처럼 행동해야 하고,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정신력과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들처럼 행동할 때가 너무나도 많다.
그런 승객들은 이륙 전에 승무원들이 알려준 비상시의 대처 방법을 금세 잊어버린다. 그들은 이미 모든 주의 사항을 전해 들었지만, 위험을 긴급하거나 실질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탐정 소설을 읽는 것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은 주의를 기울이라고 가르친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듣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권고의 말씀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전달된 직후에 주어졌다. 예수님은 그 비유에서 선포된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여러 종류의 토양에 비유하셨다(막 4:3-20). 3-9절은 비유 자체이고, 13-20절은 그에 대한 해석이다.
이 비유의 의미는 간단하다. 씨앗은 선포된 복음의 말씀, 곧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막 1:14; 2:2 참조) 가리키며, 땅은 여러 종류의 청중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한 곳만 토질이 좋아 열매를 맺고, 다른 땅들은 영적 원수, 박해, 세상의 일 때문에 말씀을 받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좋은 땅" 에 해당하는 청중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고 나서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고 경고하셨다. 이 말씀에는, 말씀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것을 쉽게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수는 우리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간다. 고난의 열기가 뜨거우면 말씀은 시들기 쉽고 세상의 염려와 욕망에 사로잡히면 말씀은 떠내려갈 수 있다.
히브리서도 복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이 구절은 위험을 다른 방식으로 묘사해 말씀에 신중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고한다. 예수님은 농사와 관련된 용어를 사용하셨고, 히브리서 구절은 항해와 관련된 용어를 사용했다. 배가 계류장에서 풀려나와 해안으로부터 표류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이처럼 이 구절은 복음에서 멀어지는 것을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1)
1) 주해 - 히브리서 저자는 이 문맥에서 유대인 신자들, 곧 복음에서 다시 벗어나 옛 언약으로 되돌아가려는 유혹을 느끼는 히브리 신자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서신은 복음을 굳게 붙잡아 그 안에서 인내하라고 가르치기 위해 갈수록 권고의 긴박성을 증폭시키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모세, 레위기의 제사장 제도, 옛 언약의 희생 제도보다 더 우월하시다는 것을 주의 깊게 드러냄으로써 그분의 인격과 사역이 새 언약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고 그것으로 자신의 권고를 뒷받침했다. 존 오웬은 히브리서를 강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포된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은…사도가 나중에 좀 더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대로 믿음과 복종하는 정신과 일관된 태도로 말씀의 창시자, 말씀의 내용, 말씀의 중요성과 중대성, 말씀의 목적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오웬은 이 구절을 계속해서 강해하면서 복음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려면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째,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말씀의 가치를 더 많이 인식할수록 그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음의 필요성과 가치와 영광과…탁월함을 일관된 태도로 깊이 생각해야 하며, 특히 복음의 창시자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복음을 통해 주어진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에 부지런히 주의를 기울이는 첫걸음이다."
둘째,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말씀에 주의하려면 그것을 정성을 다해 부지런히 연구하고 (시 1:2), 정해진 모든 수단을 열심히 활용해 말씀에 익숙해져야 할 뿐 아니라 그 비밀을 깨닫고 그 가르침에 정통해야 한다."
셋째, 말씀은 믿음과 결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말씀에 주의할 때는 이것이 꼭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다른 모든 노력은 한갓 죽은 송장에 지나지 않는다. 영적세계에서 듣기만 하고 믿지 않는 것은 자연 세계에서 고기를 보기만 할 뿐, 먹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노력은 헛된 공상만 부추길 뿐, 영혼을 배불릴 수 없다."
넷째 , 우리의 마음과 삶을 말씀에 순응시켜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복음의 진리에 의해 듣는 자의 마음이 살아나고, 생명을 얻고, 활기를 띠고, 그것을 통해 그 안에 말씀의 형상이 조성되고 형성되어 삶의 열매로 그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올바른 태도로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다."
다섯째, 말씀에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이려면 말씀의 진리와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요인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요인들은 많기 때문에 "깨어 있음에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복음에 주의를 기울이려면 그와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깨어 있음에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살피는 일이 포함된다. 이것이 리처드 로저스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상태가 되려면 마음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우리의 행위를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고 말한 이유다.
예수님은 종종 제자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눅 17:3)고 당부하셨다. 그분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눅 21:34)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말씀과 우리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이 두 가지를 결합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삶과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라고 말했다.
깨어 있음은 특히 그리스도께 주의를 기울이라고 요구한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려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봐야 한다"(히 12:2).
오웬은 (The Nature and Causes of Apostasy from the Gospel) (배교의 본질과 원인)에서 깨어 있음을 배교를 방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다. "그런 시기에 보호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의무와 위험과 관련해 스스로의 마음을 적절하고,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유혹은 너무나도 많지만 모든 상황에서 항상 조심하는 사람은 그 능력이 증대된다. 악의 외적 수단과 원인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든 인간의 영적 타락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원인은 주로 그들 자신에게 있다. 의무를 행할 때 신중하고, 주의 깊고, 부지런한 태도를 취하면 보호받을 것이고, 나태하고, 부주의하고, 안일한 태도를 취하면 패배할 것이다."
오웬의 견해에 따르면 깨어 있음이 이루어지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1) 우리의 마음을 깨어 있게 잘 지켜서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 우리의 마음을 깨어 있게 잘 지켜서 "도움과 구원을 발견해야 한다. 도움과 구원은 우리
구원의 대장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3) 우리의 마음을 깨어 있게 잘 지켜서 "거룩함이 증대하고 있는지 쇠퇴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3장에서 마음을 살피는 습관을 기르는 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다. 오웬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접근방식에 주목하라. 우리 자신만을 면밀하게 살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께로 향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유혹에서 지켜주실 수 있다(계 3:10). "그리스도의 영적 도우심과 구원을 받지 못하면, 오직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의 공급을 날마다 받지 못하면"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