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17일 목요일 묵상구절 민 16:1-35 모세를 반역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하나지기 2022. 3. 17. 13:23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28, 요한복음 7, 잠언 4, 갈라디아서 3

 

묵상구절

16:1 레위의 증손 그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의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벨렛의 아들 온이 사람을 모으고,

16:2 이스라엘 자손 중 명성 있는 사람들로서 총회에 부름을 받은 회중의 지도자들 이백오십 명과 함께 모세를 반대하여 일어났다.

16:3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하려고 모여서 말하기를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다. 온 회중이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 왜 너희가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를 높이느냐?" 하니,

16:4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16:5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에게 말하였다.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실 것이니,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오게 하실 것이다.

16:6 너희는 이와 같이 하여라. 곧 고라와 그의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와,

16:7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안에 불을 담고 또 그 위에 향을 놓아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람이 나타날 것이니, 그가 거룩한 자이다.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분수에 너무 지나치다."

16:8 모세가 고라에게 말하였다. "들어라, 너희 레위 자손들아.

16:9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중 가운데서 너희를 구별하셔서 자기에게 가까이 오게 하시고 여호와의 성막의 일을 돌보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섬기게 하신 것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냐?

16:10 하나님께서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셨는데, 너희가 제사장 직분까지 구하니,

16:11 너와 네 모든 무리들이 모여 여호와를 대항하는 것이다. 아론이 무슨 일을 하였기에 너희가 그를 거슬러 불평하느냐?"

16: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자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다.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올라오게 하여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라고, 네가 스스로 우리 위에서 계속 통치자가 되려고 하느냐?

16:14 그뿐만 아니라 너는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유업으로 주지 않으면서 네가 이 사람들의 눈까지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다."

16:15 모세가 매우 노하여 여호와께 말하기를 "그들의 제물을 돌아보지 마소서. 저는 그들에게서 나귀 한 마리도 취하지 않았고 그들 중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16:16 모세가 고라에게 말하였다. "너와 네 모든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에 나와라.

16:17 너희는 각자 자기 향로를 가져오되 그 위에 향을 놓고 각자 자기의 향로를 가지고 여호와 앞으로 와라. 향로는 모두 이백오십 개이다. 너와 아론도 각각 자기 향로를 가지고 와라."

16:18 그들이 각자 자기 향로를 가져와 그 위에 불을 담고 또 그 위에 향을 놓은 후 모세와 아론과 함께 회막 입구에 섰다.

16:19 고라가 그들을 대항하여 온 회중을 회막 입구에 모이게 하였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셨다.

16:2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16:21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물러서라. 내가 순식간에 이들을 없애 버리겠다." 하시니,

16:22 그들이 엎드려 말하였다. "하나님, 모든 육체의 생명이신 하나님,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온 회중에게 진노하십니까?"

16: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16:24 "너는 회중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으로 부터 떠나라.' 하여라." 하셨다.

16:25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그 뒤를 따랐다.

16:26 그가 회중에게 말하기를 "이 악한 사람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에게 속한 어떤 물건에도 손대지 마라. 그들의 모든 죄 때문에 너희가 함께 멸망 당할까 두렵다." 하니,

16:27 그들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으로부터 떠났고, 다단과 아비람은 자기 아내들과 아들들과 또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들의 장막 입구에 섰다.

16:28 그때 모세가 말하였다. "너희가 이 일을 통하여 이 모든 일들을 내가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셔서 하게 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16:29 만일 이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처럼 죽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재앙을 당하는 것처럼 재앙을 당한다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다.

16:30 그러나 만일 여호와께서 새로운 일을 하셔서,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삼켜 그들이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간다면, 너희는 이 사람들이 여호와를 멸시하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16:31 그가 이 모든 말들을 마쳤을 때 그들의 밑에 있는 땅이 갈라지고,

16:32 그 땅이 자기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모든 소유물을 삼켰으며,

16:33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갔고, 땅이 그들 위로 덮여,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멸망하였다.

16:34 그들의 사방에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면서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라고 말하였다.

16:35 그때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던 자들 이백오십 명을 삼켜버렸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스페셜포인트

먼저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의 발발과 처형 과정에 이어서 고라 사건의 전민족적 소요로의 확산과 이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 및 아론의 중보 사역으로 인한 사태 수습 등이 숨가쁘게 전개된다.16~18장에 걸친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 관련 일련 기사는 B.C. 1445년 9월 초 발생한 가데스 바데아 대반역 사건으로 야기된 38년 간의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나 가던 무렵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13, 14장에서 가데스 바네아 대반역 사건이 기록된 후 삽입 기사로서 각종 기본 율법을 요약한 15장이 기록된 것을 제외하면, 38년 간의 광야 방랑 기간 중에 일어났을 그 숱한 사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곧바로 그 말기의 사건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즉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 자체를 보여 주는 제 16장과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에 즈음하여 아론 가문의 제사장직의 정통성과 레위 지파의 성막 봉사 직무의 배타적 득점권의 확립을 거듭 시도한 후속 조치를 보도하는 제 17, 18장으로 양분된다. 이에 먼저 본고에서는 일단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자체의 발생 및 종결까지의 과정을 보도하는 제 16장의 기본 의의에 대해서만 고찰해 보기로 한다.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시대에 일으킨 각종 반역 사건 중에서도 가장 조직적 반역이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여타 반역 사건온 이스라엘 회중 전체에 의하여 대부분 특별한 주모자나 선동자 없이 우발적으로 발생하였다. 그러나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의 경우는 처음부터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처, 종교적 수장으로서 각각 갖는 세속적 권위에만 눈이 먼 나머지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38년 간의 기나긴 광야 방랑으로 이스라엘 회중들 사이에 불만과 염려가 고조된 상황을 악용하여 당을 만들어 일종의 쿠데타를 감행하였고, 일반 회중은 그 나중에야 지도자 계층 간의 반역 사태로 인한 소요에 부화뇌동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더욱이 이 사건의 주모자인 고라는 그 자신이 레위 지파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모세와 아론이 각각 갖는 선민의 통수권자 및 종교적 수장인 대제사장으로서의 지위의 신적 기원과 권위에 대해서 층분히 깨닫고 있어야 할 위치에 있었다.이같은 고라의 추한 모습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딤후3:5), 그러고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만 생각하는 악하고도 어리석은 자(딤전6:5)의 전형이라 아니할 수 없다.또한 우리는 고라 일당의 반역의 일차적 대상이 된 모세와 아론(Moses and Aaron)의 입장도 한번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모세와 아론은 출애굽 시대라는 그 격변기에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서 실로 만인이 우리를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은 물어 없거나 식량이 없을 때 여정이 험할 때에는 불평과 원망의 대상이, 반대로 잠시 슴돌릴 만할 때에는 이처럼 타도와 배척의 대상이 되어야 하였다.이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은 그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이 죄악된 세상에서는 더욱더 거센 원망과 도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현실의 일면을 보여 준다. 따라서 행여 그 외면적 권위와 영광만을 탐하여 하나님의 종의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자는 참으로 하나님의 종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뇌와 고독의 깊이를 모르는 자이다.실로 하나님의 종의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자들만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감당할 수 있는 위대하고도 외로운 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영광과 권위는 오직 순수지고한 천상의 영적인 것이며, 그들에 대한 보상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상급과 지금 이 땅에서의 몇몇 진실한 성도들의 순수한 존경뿐인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이 반드시 명심할 일이다.

또한 설령 진정한 헌신과 영적 투쟁의 아픔 없이 하나님의 큰 종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것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거짓 종이거나 자신의 착각과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기대할 수 없는 자로서, 다만 자신이 스스로 크다고 착각하고 있거나 또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착각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은 백성을 위하여 그야말로 불철주야 번뇌하여야 하였으며, 때로는 목숨을 내어 걸고 중보기도를 하여야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에 의한 고라 일당의' 몰살과 그에 부화뇌동한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급격한 응징은 설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겸손히 헤아리지 않고 자의로 행동하는 자의 말로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되고 있다.

그러나 기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지위와 직무의 이면에 엄연히 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지와 주권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고라 일당은 외면적으로는 자신들의 반역의 명분으로 여호와의 뜻과 그분의 총회로서의 자신들 민족의 고유성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오직 이기적 탐욕에 의한 세속적 정권의 탈취에만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고라 일당은 이스라엘 사희의 지도층으로서 가데스 바네아 반역 사건으로 인한 광야 방랑 징계도 거의 끝나 가는 시점에 더욱 자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세속적 허영심과 이해타산에 눈이 덜어 모세와 아론의 수장직을 찬탈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민족파 그들이 세울 국가는 일반 민족과 그들이 세운 세속 국가와는 그 발생 과정과 건국 과정 자체가 다른 그야말로 선민 신정 국가였다. 따라서 이같은 이스라엘 선민 신정 국가의 모든 권위와 정통성은 하나님의 선택과 승인으로만 가능한 것이었다.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의 발발 및 중결 과정을 보도하는 제 16장은 크게 세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의 전개 과정과 세부 내용 구성은 본단락에서부터 시작하는 제 16장의 세 단락의 내용 분해를 보라.

그렇다면 38년 간의 광야 방랑 생활에 대한 기사는 그 처음도 그러고 그 끝도 반역 기사로 시작하고 또 마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역동적 구원 사건에 의한 구약 선민 이스라엘의 본격적 태동과 그들이 세운 신정 국가의 여명기였던 출애굽 시대에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패역이 상존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이는 실로 이 세상 역사는 태초로부터 종말까지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한 구속사를 어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절대 초월자로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또한 심판하실 자로서 모든 존재의 기반이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패역이 국명하게 엇갈리며 이어져 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이같은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을 연이어 보도하는 제 16-18장 사이의 일련 기사는 일단 고라 일당 반역 사건과, 이에 자극받아 발생한 전민족적 소요의 발생과 그 처형 과정. 그리고 곧 이어서 이 사건들을 계기로 아론과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과 성막 사역의 배타적 독점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 그리고 제사장직과 레위인의 직무 및 분 규정에 대한 재강조 등의 일련 조처 등이 연이어서 보도되고 있다.

본 단락에서부터 시작하는 제 16~18장 사어의 총 일곱 문단은 모세와 아론의 정처, 종교적 수장직에 대한 고라 일당(the Party of Korah)의 반역 사건과 그 후속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다.

 

● 반란의 3인(민수기 16:1-11)

 

Ⅰ.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반란의 이야기이다.

 

👀 고라

성막의 기물을 운반하고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던 고핫 자손의 한 사람이었다(3:27-32). 뿐만 아니라 그는 모세와 아론의 친사촌 형제였다(출 6: 21.24). 그러나 이러한 그의 혈연상의 관계나 직책상의 위치는 고라로 하여금 자신을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인 지도자로서의 자격과 자질을 충분히 갖춘 자라고 착각하게 하였다. 이는 결국 고라가 교만하게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는 반역을 자행하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본장에 등장하는 고라는 이러한 사단의 올무에 빠져 있었고 결국은 그로 인하여 파멸의 종국을 맞이하게 된다(32, 33절). 하지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혈연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직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가치가 좌우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직책은 세상적인 권세나 명예처럼 드러내거나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만한 혈통과 이만한 경력과 이만한 지식이면 어떤 일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단이 주는 교만의 씨앗인 것이다.

 

반역 행위에 동조한 자들 : 르우벤 자손들, 회중의 지도자들(1, 2절)

왜 고라의 반역에 쉽게 동조했을까?

 

이들이 고라와 함께 쉽게 반역의 무리에 동참하였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들 역시 혈연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즉 그들은 평소 자신들의 선조인 르우벤이 이스라엘의 장자였기에 그의 후손들인 자신들이 받아야 하는 장자의 권리에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야곱의 셋째 아들이었던 레위의 후손인 모세를 대신하여 정치적 지도자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대로 르우벤이 이스라엘의 장자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르우벤이 아버지인 야곱의 첩, 즉 자신의 서모 빌하와 통간하는 죄를 지었으므로(창 35:22) 아버지 야곱의 저주를 받고(창 49:3,4) 더불어 그의 장자권은 넷째 아들에게로 넘어갔었다(창 49:8-10). 따라서 르우벤 자손들인 다단 등이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지도자인 모세를 대항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거역하는 주제넘고 악한 일이었다.

 

이스라엘 자손 중 명성 있는 사람들로서 총회에 부름을 받은 회중의 지도자들 이백오십 명과 함께 모세를 반대하여 일어났다.

  • 이들은 회중 가운데서도 특별히 부름 받은 고위층들이었다.
  • 본문에 나오는 250인은 족장들 가운데서도 백성들의 신임을 받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을 받고 난 후 이들의 역할은 사실상 약화되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유명한 지도자였던 이백오십 명이 고라의 반역 행위에 쉽게 동조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모세와 아론 때문에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불만이 암암리에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 있는 족장들이 자신들의 인간적인 명예와 지위를 회복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응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악된 행위이며 참으로 어리석은 짓일 뿐이었다.
  • 반역자들의 모세와 아론을 향한 대적 행각 1단계 = ‘당을 지음’
  • 그들은 자신들의 반역에 사람들을 동참하도록 유혹하고 끌어들였다. 그리고 결국 고라 일당의 죄는 그들에게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비참한 심판으로 이어졌다(32~35절).
  • 모든 죄의 시작이 고라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으며, 점차 확산되었다. 

주동자와 그 내용은 예전의 경우와는 달리 오합지졸이거나 천민들이 아니라 상당한 인물들이었다. 오합지졸들은 이름조차도 나와 있지 않았었다.

고라는 그 주동자다. 그는 한 편당을 조성했다. 그리고 그 당을 "고라의 패역자" 들이라고 불렀다(유 11). 그는 모세의 친사촌이었다. 그러나 촌수가 가깝다고 하여 모세에게 무례해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화가 "그 자신의 집안에 있는 자들" 이 되더라도 이상히 생각지 말라. 거기에 다단과 아비람이 합세했다. 이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 지파의 주요 인물이었다.

아마 고라는 아론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과 엘리사반으로 고핫 가계의 우두머리로 삼은 일(3:30)에 대하여 특별히 불쾌했던 모양이다. 또한 아마 르우벤 지파는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진영의 선두에서는 명예를 차지했다고 화가 났을 것이다. 온이 그 파당의 한 우두머리로 나와 있다(1절). 그러나 전체 이야기에서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아마 혹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회개하고 돌아갔든지 아니면 다단이나 아비람처럼 설치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고핫 가계는 르우벤 지파가 진치고 있던 회막쪽에 있었다. 이것이 아마 그들까지 끄집어들이는 이유를 고라에게 주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며, 그의 이웃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로다". 이웃 사람도 그 나쁜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 인고로, "250인의 방백 회의" 의 공모에 유인된 것이다(2절).

아마 그들이 장자이므로, 적어도 그 집안에서는 우두머리였던 모양이다. 가장들은 아론이 서임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제사를 주관하고 있었던 자들이다. 유명한 자들의 자만성, 열망, 경쟁의식 따위는 교회나 국가에 모두 큰 피해를 끼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이여, 당신의 은혜로써 위대한 사람들을 겸손케 하시며, 그럼으로써 우리 시대에 평화를 주옵소서! 오, 주여! 여기에 기록된 것처럼 유명한 자, 이름난 자들은 옛 세계에서도 큰 죄인들이었다(창 6:4).

그들은 이름과 명성을 떨쳤으나 만족치 못했다. 이미 높았으나 더 높기를 바랐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사람들은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Ⅱ. 폭도들의 항의(3절).

 

그들의 특징은 아론과 그의 집안에 제사 장직제가 한정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영예는 모세가 주고 아론이 받기에는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에게 화를 내고 비난한 것이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도다." 즉 "너희들은 너희이웃 사람들의 수준에서 만족하라. 그들도 모두 거룩하며 모두 너희처럼 선하고, 그러므로 그들도 모두 거룩하며 너희 같이 위대해져야 하느니라" 는 것이다.

또는 "이제 너희가 이처럼 오래 집권했으니 그 것으로 만족하고 이제는 너의 자리를 양보하라. 이들도 너희의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고, 너희들처럼 잘 운영해 나갈 능력이 있느니라" 는 것이다.

 

1. 저들은 건방지게도 회중의 거룩함과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자랑했다.

"그들은 다 각각 거룩하니, 아론이나, 이전의 가장들처럼 제물을 드리기에 합당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시니 그들에게도 명령을 내리시고 그들을 인정해 주시니라."

실상 저들은 그 백성의 정경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만한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얼마 전에도 죄악으로 더러워졌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 속에 살고 있었으니, 제사장들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제해 준데 대하여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만 될 판이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질시했다.

 

👀 모세와 아론의 직분은 누구에 의한 것이었는가?

  1.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러한 영예를 차지했다고 비난한 것은 부당된 처사였다. 오히려 그들은 그러한 직책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었다(히 5:4).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제사장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랐고, 통치자도. 일반일이나 거룩한 일이나 간에 다스릴 자가 없기를 바랐으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헌법에 따르기를 싫어했다.

 

👀 모세와 아론은 모든 일을 직접 주관하지 않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을 뽑아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에 동역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모세와 아론은 그들 스스로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매 순간마다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힘과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해 갔었다. 그러나 고라의 일당은 교만과 권세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이러한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방법과 질서를 인정하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런 사실을 찾아 보자.

(1) 폭도들은 어떤 정신 밑에서 통치자를 멸시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력에 항거했는가? 그들은 교만하고, 질투하고 야심을 가졌고, 소동을 퍼우고, 사악하고, 부조리한 자들이었다.

(2)아무리 선하고 유용한 사람들이라도, 심지어는 그들이 용서해 주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찬탈한 자로 보이고, 최고의 통치자가 폭군으로 보인다면, 모세와 아론도 그런 억울함을 당했었다는 사실을 기억케 하자.

 

👀 반역자들의 주장

  • 그들의 주장 : (3절) 고라가 모세와 아론 뿐만 아니라 모든 회중들이 다 그들처럼 전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근거로, ***“모든 회중이 그들 각자가 거룩하여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라고 했다.
  • 이와 같은 주장의 배경 :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하다가 죽게 되었던 사건. → 즉 거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던(레 10:3) 아론의 아들들과 자칭 거룩한 회중을 대조하면서 자신들이 왜 이스라엘의 전체 지도자가 될 수 없느냐고 항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 ⇒ 온 회중이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들로서 모두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감히 여호와께 죽임을 당한 아들을 가진 자가 어떻게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며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던 것.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들임을 인정하고 현재의 직분을 내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이와 같은 주장이 타당한가?

  • 고라 무리의 말은 일면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오류를 가지고 있다.
  • 즉 그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그의 거록한 백성으로 삼으셨으므로 백성의 대표자인 회중도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 19:5)이라는 조건이 전제된다.
  • 그런데 이미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세우셔서(출 3:10-12)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자들로 교육시키고 또 그들로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신 뜻에 대해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고라 무리의 이러한 언행은 이미 거룩한 자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교만한 자의 모습이었다.
  • 모세와 아론은 스스로 높이는 자가 아니라 분명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자로서 하나님에 의하여 높임을 받았던 자들이다.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스스로 높이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던 고라 일당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은 자들을 의도적으로 모함함으로 자신들 스스로를 높이려고 한 교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는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 최후는 죽음뿐이었다(33절). 

Ⅲ. 이러한 항거가 일어났을 때 모세의 처신은 어떠했는가?

 

1. 그는 "엎드렸다" (4절).

앞에서 그러했었다(14:5).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기꺼이 굴복할 수 있음을, 그리고 자기의 자리를 즐거이 사양할 뜻을 비춘 것이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와 그를 맡기신 자에 대한 충성에 맞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었다. 이 슬픈 판국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지시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스스로 낮아져서 자기의 정신 (열이 오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의 심령은 답변을 간구한다." 하나님의 입의 조언을 들으려 한다.

 

👀 엎드리다 = 그의 얼굴이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다.

  • 모세는 고라 무리의 패역한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땅에 자신의 얼굴을 댈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원어상).
  • 모세는 고라가 무리들과 함께 떼지어 와서 자신의 권위에 대적하며 하는 그들의 말을 다 듣고도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 모세는 여호수아와 같렙의 10명의 정탐꾼의 불신앙적인 보고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원망할 때도 이러한 기도의 모습을 보였다(14:5).
  • 그런데 ***‘엎드렸다'***는 말을 원어로 보면 ‘스스로 넘어지다'는 뜻이다.
  • → 즉 타의에 의해 굴복하듯 사람들 앞에 엎드러진 것이 아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이나 생각으로 고라 일당들에게 대응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렸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무리들이 노리고 있는 자신의 지위는 자신의 능력에 의해 스스로가 쟁취한 것이 아니요 바로 하나님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고라 일당의 도전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해결책을 지시받기 위해 먼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엎드려 그분의 뜻을 간구하였던 것이다.
  • 이렇듯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위치에 확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모세의 자세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있는 자의 굳건한 모습이다. 우리 성도들도 이를 본받아 참으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신의 인간적 감정에 처우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기도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창 27:41; 삼상 17:42-44)
  1. 그는 하나님께 사정을 고하고, 자기의 직무의 정당성을 확신 하면서, 그 판결을 하나님께 맡기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지명할 태세였다.

정직한 피고는 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심도, 즉결 재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다음날 까지 연기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5-7절), 고라와 그의 동조자들에게 향로를 가져와 하나님 앞에 분향케 했다. 하나님이 그들의 분할을 받으면 그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이 옳은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만 기뻐하신다면, 이전에 그들이 모두 예언자들이 되기를 바랐듯이(11:29). 그들 모두가 제사장이 되기를 기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는 의심치 않았다) 아론으로 결정한다면, 그들의 모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세는 재판을 다음날로 연기했다. 그들이 하룻밤 자면서 생각해 보고 나면 혹 자기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중지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 모세는 어떻게 이런 사태 속에서 의연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수 있었는가? (5절)

  • 모세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택하신 지도자의 권위를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응답을 받았고 자신이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릇된 자들을 가려내어 주실 것을 믿은 것이다.
  • 이처럼 자신과 아론을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모세는 의연하게 고라의 무리와 대등하게 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

하나님의 답변은?

  • 고라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는 그들의 ‘거룩성’에 관한 것이었다.
  • 고라 자손들은 자신들이 거룩한 자라고 스스로 밝히며 자녀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아론은 거룩하지 못한 자로 비하했던 것이다(3절 설명 참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이 진정 거룩하게 여기는 자가 그들 중 누구인지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다르다. 하나님의 관점은 약간의 인간적인 경건을 가진 자가 거룩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한 자, 즉 하나님께 속한 자가 거룩한 자이다.

(6절) 하나님께서 향로를 취하고 성막에 들어갈 것을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 고라와 그 무리들에게 스스로를 위하여 향로를 취하고 성막에 들어갈 것을 명령하셨던 이유는 그 일이 바로 제사장이 행하는 가장 거룩한 직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을 통하여 신적인 권위를 받지 않은 자, 즉 여호와께서 함께하시지 않아 거룩하지 않은 자가 향을 드리려고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레10: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는 고라 무리의 반역에 대해 이미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 모세는 가능하다면 하나님의 법정에 호소하기 전에 그들과 정당한 이유를 따져서 사건의 시비를 가리려 했다. 그러면 그들의 붙평이 끝나리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1) 그는 그들을 "레위의 아들들" 이라고 불렀다(7절). 그리고 8절에도 나온다. 그들은 모세와 같은 지파의 출신이었다. 그보다도 모두가 하나님의 지파의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과 모세에 대하여 소동을 피운 것은 더 고약한 일이었다.

금송아지 사건 때에, 이미 오래 전에부터 레위의 아들은 용감하게 하나님의 편을 들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영구적인 엉예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천진난만하던 그들이 이제 와서는 범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그들이 남겨둔 모든 영예를 잃으려는 것인가? 하나님의 집에도 이런 몹쓸자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레위인들이 반역을 하다니?

 

💡 왜 르우벤 지파는 언급하지 않는가?

  • 반역의 주동자였던 고라가 레위 자손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그와 동조하여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지파는 르우벤 지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르우벤 지파는 부르지 않고 레위 지파만을 부르고 있다. 이를 통해 반역이 고라에서 시작되었고 반역의 주동자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래위인들도 이 반역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뿐만 아니라 ‘레위 자손들' 이란 말을 거듭한 배후에는 하나님의 성막과 관련된 일을 하는 레위 지파 가운데 다시는 고라와 같은 반역자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2) 모세는 그들의 비난을 역습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보고 분수에 지나치다고 비난했었다. 그겄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 이상을 친하지 않았다. 이제 모세는 말한다. "저희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자들이야말로 분수에 지나친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면 족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처방하는 것은 분수 밖이다.

(3) 모세는 그들은 레위인으로서의 특권이 있으니 그것이 그들에게 족하다고 가르쳤다. 더 이상 제사장직의 명에를 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9,10절). 모세는 그들이 레위 지파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예인가를 상기시켜 쿠었다.

 

[1] 그들은 "이스라엘 회중과 구별되어" 있다.

그들보다 더 존귀하다. 아론의 집안이 자기들보다 더 출세했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자기들의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출세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우리는 우리 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위에 있는 자들을 질투하지 않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명예, 권력, 지위, 이해관계, 소질, 미모, 능력 중에 있어서 우리보다 뛰어나다-안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가장 천한 자 보다 못한 우리가 만물의 찌꺼기 중에 들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 찬미해야 한다. 당연히 더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 중에도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2] 그들은 매우 크고 값 있는 영예를 성별 받았다.

첫째,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께 가까운 자들이지만, 레위 지파는 그들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물론, "회막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성소에 있는 그룻 하나를 운반하거나, 회막의 어느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영예가 된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는 완전한 자유로 또한 지극히 높은 명예적이다.

둘째로,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한다." 공증을 섬긴다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일이요. 교회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열자들의 명예이다. 그것은 그들의 품위를 더해 준다.

[3] 그들을 구별하신 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나 그들에게 그런 위치를 준 것은 하나님의 행동이시다. 그러므로 거기에 무슨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아론에게 그런 자리를 준 분도 바로 그분이시다. 고로 그들은 그를 질투해서는 안 된다.

(4) 모세는 이러한 특권을 과소평가한 죄를 깨우쳐 주었다.

 

💡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본문은 ‘***이것이 너희가 느끼기에는 그렇게 가치없는 일이란 말이냐?'***라는 의미의 반어적인 질문으로서 결코 작지 않은, 아주 귀중한 일이라는 의미 이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레위 자손에게 맡겨 주신 직무, 즉 그들이 회중에서 구별되어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그 일에 만족하지 못하느냐고 고라 자손들에게 일깨워 주고있는 것이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고핫 자손이 적임자이기 때문에 지성물을 운반하는 얼을 맡기신 것이 아니고 그들이 부족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서 그 일을 맡기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중대한 직무의 크고 작음을 감히 판단하며 불평하느냐하고 모세가 호통하는 것이다.

고라의 무리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기시지 않은 제사장의 직분까지도 취하여 자신들의 헛된 욕심을 채우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맡겨진 성막에서 봉사하는 임무만도 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역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 가지 일들은 인간적인 판단으로 그 크기와 가치를 헤아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서 어떠한 일을 담당하느냐보다는 우리 각자에게 맡겨 주신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느나 또는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행하느냐를 더 관심 있게 보시기 때문이다(마 25:14-30)

 

[1]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특권 그 자체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도 그것을 작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되는 기회를 소흘히 하고, 거기에 부주의하며 형식적으로 대하고, 그것을 짐으로만 생각하고 기쁨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자들은 마땅히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너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한 것이 네게 작은 일로 보이느냐?"

[2] 금지된 영예를 탐하고 찬탈하는 자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명예에도 큰 모욕을 돌리게 된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성을 기꺼이 받고, 그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다는 것을 알고, 또 실상 우리예게 과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거기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우리에게 지나치게 높은 것을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너희가 제사장 직을 원하느냐?" 그들은 자기들이 그것을 원한다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모세는 이미 그들의 눈에서 그것을 읽었다. 율법이 제단에서 일할 자들을 위해서 매우 잘 준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대로 직무에 임하려 했을 것이다.

 

(5) 모세는 이 폭동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11절).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성결과 자유를 주장하는 체하지만, 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대항하여 모반였도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규에 도전하는 자는 어떤 속임수를 쓰든, 그들이 어떻게 알고 있든, 실은 그것을 만든 자에 대한 다툼이다. 보냄을 받은 자에게 저항하는 것은 그 보낸 자를 저항하는 것이다. 오호라! 그러므로 모세는, "아론이 어떤 자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고 말했다. 이 원망과 불평꾼들이 자기들이 다투고 있는 그 도구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들이라는 것을 신중히 생각했다면,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시켜서 된 자들이고,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신중히 생각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그렇게 저들을 비난하고 모욕하는데 대담하고 분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사장직이 고정된 것을 축복으로 아는 자라면 하나님께 모든 찬양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짐으로 보는 자들은 도구에 불과한 아론과 싸워서는 안 된다. 그는 명령대로 행하는 자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이 소송에 하나님을 개입시켰다. 그래야 이 사건이 빨리 처리되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 표면적으로 볼 때 고라 일당의 행위는 모세와 아론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서 사람에게 대항하는 행위였다. 그들이 알고 그랬든지 아니면 모르고 그랬든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교만의 행위였다

 

●하나님의 진노(민수기 16:12-22)

 

Ⅰ. 다단과 아비람의 무례한 행동과 그들의 배신적인 항거가 있다.

모세는 고라가 한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답변했다. 그리고는 다단과 아비람을 불러 그들의 고소를 들으려 했다(12절). 그러나 그들은 이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마 부끄러워서 모세 앞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으며, 한 조각의 겸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모세의 권위를 그 정도까지 인정해 주고 싶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 정도로까지 무례해서였을 것이다.

 

💡 모세의 부름에 대한 그들의 답번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다단과 아비람의 거절은 모세의 명에 대한 불순종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께 불경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원어 성경을 보면 훨씬 더 명확해진다. ‘우리가 올라가지 않겠노라’ 할 때, ‘올라가다’ 로 번역된 단어는 주로 성전으로 제물을 ‘가져오다, 드리다’라는 종교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다단와 아비람이 모세의 부름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한 것은

  • 일차적으로 모세의 권위에 대한 전적인 도전이요, 근본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음이 이러한 표현 가운데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세를 공방하던 바로의 말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가 어떤 댓가를 받았는지 잊어버렸다. 저들의 머리가 완전히 돌고 마음이 굳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모세가 애굽 백성들을 죽이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심부름꾼들을 보내었던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이 세상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눈멀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부르러오던 그 심부름꾼들에게 모세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전달하여 보냈다. 그리고 그 비난이 대단했다.

1. 그들은 모세가 가기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온 것은 큰 잘못 이라고 비난하면서, 애굽을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면서 시세움을 했다(13절).

애굽에는 정말로 채소와 마늘과 물고기가 풍성했다. 그러나 결코 우유와 꿀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의 약속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가엾고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로 다. 어느 민족에게보다도 더 큰 호의를 내려 주었는데. 그것을 자기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라 하다니!

2. 그들은 모세가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음모했다고 비난 했다.

광야에서 그들이 그렇게 융성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광야에서 죽어야될 선고를 받았다면, 그것은 자기들 탓이었다. 모세는 그들을 고치려고 했지만, 그들은 고침받기를 싫어했다.

3. 모세가 "스스로 자기들의 왕이" 됨으로써 자기들을 노예로 하는, 자유 침해를 꾀했다고 비난했다.

그들의 왕이라니! 모세는 그들에게 어진 아버지 같지 않았던가? 그보다도 여호와로 인하여 종처럼 헌신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번영이 보장되었고, 그들의 요구는 관절되었고, 재판은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편안하고 영예롭게 살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멍에가 바로의 멍에보다 더 무겁다는듯이 불평을 한다. 그리고 모세가 왕이 되려 했다니 ? 당치도 않는 말이다. 처음에는 모세가 그러한 직책을 얼마나 유괘히 사양하려 했던가! 그러나 이제 모세는 가장 지독한 폭군이요 권력 찬탈자라는 취급을 받고 있다.

 

💡 3,6절과 9,13절이 교차된다. 고라를 꾸짖는 모세의 모습과 모세의 명령에 반항하는 다단 무리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끝까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4. 그들은 복된 땅에 대한 기대감을 주어놓고 나중에 가서는 그것을 좌절시킴으로써, 자기들을 굴였다고 모세를 비난했다(14절).

당신은 약속대로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인도하지 않았나이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냐? 모세는 그들을 그 땅의 국경지대 까지 끌고 갔었다. 이제 막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그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버리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잘못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모세에게 씌웠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그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잠 19:3).

 

💡 다단과 아버람은 영적으로 그러고 육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풍요틀 상정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란 표현을 놀랍게도 그들이 영적, 육적으로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 대해 사용하고 있다(13절). 즉 그들은 애굽인들의 종들로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지언정 광야에서보다는 조금 더 잘 먹고 조금 더 편안히 잘 수 있었던 애굽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 없는 육적인 풍성함이란 곧 우리 영혼의 괴로움이요 아무 의미 없는 죄악된 삶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다. 결국 영의 눈이 어두워져 위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땅의 것만을 바라보던 그들은 하나님을 등지는 죄악을 범한 것이다.

  1. 그들은 도대체 부당한 비난을 했다. 모세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것은 모세가 그들을 눈멀게 해놓고 마음대로 끌고 간다는 뜻이다.

💡 본문에서 다단과 아비람이 말하는 ‘눈’이란 단지 어떤 상황을 사리에 맞게 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안목이라는 의미이다. 다단과 아비람이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 어떤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13,14절) 우리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데 네가 우리를 눈이 빠진 봉사 취급을 하느냐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상황을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그들 스스로의 교만한 마옴과 달러 이미 영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 앞에 놓인 현실적인 광야밖에 볼 수 없었다. 실로 육체적 안목을 따라 살려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안목만을 최고로 여기며 사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전지한 눈을 인간에게 향하시며 인간들을 살피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다(시33:18; 34:15).

이러한 하나님을 영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육안의 시력만을 의존하여 살아간다면 이야말로 자기 스스로 자기의 눈을 빼어내는 것이요 멸망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모세의 모든 계획은 그들의 눈을 열어 두려고 했지만, 그들은 모세가 그들의 눈을 빼어 버리려고 한다고 빗대어 말했다. 아무리 선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거나,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지는 못하는 법이다. 최고의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도 때로는 지독한 비난을 당한다. 모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수많은 일을 그들에게 행해 보였는데, 도대체 왜 그를 비난하는 것인가?

 

Ⅱ. 그들의 무례함을 보고 모세는 분개했다(15절).

가장 온유한 모세였지만, 자기로 인하여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는 "심히 노했다." 모세는 자기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해주었는데도 스스로 파멸로 들어가는 백성을 보고 견딜 수 없었다.

 

👀 ‘심히 노했다’

  • 당시 모세의 분노는 매우 심했다.뿐만 아니라 분노하게 만든 고라의 무리들을 심판하실 분 역시 여호와이셔야 한다는 사설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1-35절). 모세는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하나님께 아뢰면 그들과 자신에 대한 정의로운 판결을 하나님께서 내려 주실 것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 그렇지만 그는 그 의분을 즉시로 그들에게 발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에게 주어건 지도자의 권위로서 다단과 아비람을 즉각적인 형벌에 처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여호와께 나아갔다. 왜냐하면 모세 자신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모세는 고라 일당의 반역에 대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 후 단호한 입장을 취하여 그들을 책망하고 자신과 아론의 권위 회복보다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요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로서의 모세의 의연함과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철저한 신본주의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이렇게 당황한 모세는 자기의 정직성을 하나님께 호소했다. 반면에 그들은 모세가 야심장이요, 탐욕이 많고, 압제적이라서 자기 들을 지배하는 왕이 되려 한다는 비열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증인이었다.

(1) 모세는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취하지 아니했다는 것을 증언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나귀 새끼 한 마리도 취하지 아니했느니라."

탈취나 징발로는 물론이요, 묘세가 그들에게 많은 재산을 가지게 해 주었다는 이유로 보상이나 팁을 달라고 하여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장군의 급료를 받거나 대판관의 봉급을 받지 않았으며, 왕의 조세도 물론 안 받았다. 그는 여수룬의 통치자가 되기 전 이드로의 양을 칠 때에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2) 아무도 모세로 인하여 재산을 잃은 사람이 없다. "난 그 들의 아무것도 침해하지 않았느니라."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자 아무리 악한 자, 아무리 자기를 분노케 하는 자라도 해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자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악을 행치 않았다.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은 결코 남의 중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명심하자. 남들이 우리를 비난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에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편안할 수 있다.

  1. 모세는 고라와 그의 친구들이 드린 향에 대하여 분노함으로써 자기의 소송 이유를 하나님에 호소하여 개진하여 주기 원했다.

그 분향에는 다단과 아비람도 공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주여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소서." 이것은 아마 후세에 와서 자기 손으로 기록했던, 그 가인의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듯 하다. 가인과 가인의 예물은 하나님께서 열납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창 4:5).고라의 패역을 좇은 "이들은 가인의 길을 향한 자들이다" (유다서 11절에는 함께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들도 가인과 같이 수치와 당혹을 당하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Ⅲ. 모세와 그를 고발한 자간에 문제가 일어났다.

  1. 모세는 다음날 아침, 아침 분향을 드리는 그 시간에 아론과 함께 그들더러 나오라고 했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자는 것이었다(16,17절).

모세는 자기의 노력으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음을 알자,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타나실는지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논쟁의 판결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다. 모세는 전에도 이런 식으로 할 것을 동의했었다(6.7절). 그래서 여기서는 한 귀 절만 더 첨가했다. 이것은 모세가 원고들에게 지극히 겸손한 태도를 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아론은 하나님의 제도에 의해서 회막에서 분향을 드리는 영예를 획득했지만 그도 재판 중이어서 죄인석에 서야 하므로, 회막문간에 고라와 같이 서게 했다. 그러나 모세도 같이 서겠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불평을 공정히 들어주었고, 그 "모든 입은 닫혀졌다."

 

2. 고라는 이 제의를 받아들이고, 모세와 아론과 함께 "회막문에" 나타나 자기의 가식을 드러내었다(18,19절).

 

👀 고라의 무라가 회막문 앞에 선 것은 모세의 말에 순종하여서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달게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들의 마음은 계속되는 불평과 불만으로 요동치고 있었던 것에서 잘 드러난다(19절). 따라서 결국 그들은 여호와의 불에 소멸되는 무섭고도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된다(35절).

 

그가 그렇게까지 무례한 자가 아니었더라면, 문제를 이렇게까지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그는 나답과 아비후를 생각지 못했을까? 그들은 얼마 전 거룩하지 못한 불로 분향을 드린 죄로, 성별되었던 제사장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었다. 그런데 고라나 그의 동료들은 거룩하지 못한 손으로 분향을 드리고도 그들보다 더 낫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그러나, 그는 모세와 아론에 대결하고, 극도로 교만에 눌려 하늘에까지 도전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도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요구하는 모험을 했다. 이처럼 죄악의 기만성으로 인하여 굳어 진 마음들은 극도로 비천해지는 법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향로를" 들고 오게 했다. 아마 이 사람들은 가장들이므로 자기 들의 집에서 쓰던 향로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것은 분향이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제단에서만 할 수 있도록 명령되기 전에 쓰던 향로였을 것이다(그들은 아마 다시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는 그 향로들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보통 화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엄숙한 재판에 나아와 그 결과의 증인이 되기 위해 모세가 "그 폭도를 대하여 회중을 모아야 했다" 고 생각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고라가 모세를 대하여 회중들을 모은 것 같다(19절). 이것은 대부분의 회중이 고라의 편을 들고, 그가 승소하기를 바랐다는 것을 시사하며, 아론을 물리치고 고라의 회망이 성취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고라가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더라면, 재판을 그렇게 공공연히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회중이 모인 것은 자기의 패배에 대한 증인들이 되고 말리라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 교만하고 야심적인 사람들이 자기들의 출세를 도모하나 그 결과는 종종 치명적인 수치로 끝나고 만다.

 

👀 왜 고라가 각자 향로를 들고 오게 했을까?

  • 고라가 각 지파의 나머지 대표자들 즉,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중요한 일에 대한 공적인 결정을 할 때에 펄요한 구성원들인 회중을 모두 모은 것은 이렇게 모인 군중의 힘을 업어 자신의 지도자로서의 지혜와 능력이 모세와 아론보다 한층 더 높은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시키려 한 것이다(1-3절).

Ⅳ. 재판이 열렸다. 재판장이 법정에 나와 회증에게 인도했다.

 

1.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 (19절).

처음에 아론을 그의 자리에 임명해 줄때 나타났던 바로 그 영광(레 9:23)이 이제 그의 자리를 확증해 주기 위해 나타났다. 그리고 그를 반대한 자들을 당황케 하고, 그를 대적한 자들을 꺼꾸러 뜨리려 한 것이다. 세키나(shechinah) 곧 하나님의 엄위, 영원한 말씀의 영광이 공공연해 회막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일상시에는 회막 속에 있는 그룹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 ‘나타나리라' : 일차적인 뜻은 ‘보다(see)’, 본문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출현하셨다는 뜻.

이로 볼 때 회막문에 군집해 있던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영광은 그 형체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 그들의 육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현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영적 존재이시므로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 동안 많은 이적과 기사로 그의 존재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셨다(출 7-9장; 11장). 그러나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회막문 앞에 서 있던 고라와 그에게 동조하는 무리들의 영적인 시력은 소경 상태에 있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육신의 눈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보여 주심으로 그들을 향한 당신의 진노의 뜻을 보어시는 것이다. 더욱이 여호와께서는 고라와 그 무리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는 그 순간에 임하셨다. 이는 마치 재판장이 범법자가 죄악을 저지르는 그 현장에서 범인의 덜미를 잡는 것과 흡사한 경우이다. 변호인 출두나 재판의 어떤 절차도 필요치 않는 명확한 범죄의 현장에 만유의 주요 대재판장되시는 여호와께서 직접 임하셨던 것이다.

 

👀 20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 본문에서는 모든 회중과 고라 무리 등 여러 군중 앞에 임하신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떤 새로운 규례를 주시기 위해서 임재하신 것이 아니라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나타나신 것이다.
    • 온 회중을 멸하시는 것이었고(21 절) 또한 모세와 아론을 피신시키시기 위한 것이었다.
  • 즉 본문 이후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뜻은
  • 그러나 여호와께서 회중을 벌하기에 앞서 먼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을 건네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회중에 대한 심판을 실행하시기 전 그가 중재자로 세운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와 아론 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이 엎드려 온 회중에게 벌하심을 거두실 것을 간청할 것을 기대하시고 있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감지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엿보게 된다.
  •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을 들어주시어 심판의 대상을 여호와의 희막 앞에 모인 모든 회중에게서(21절) 처음부터 반역에 참가했던 250인의 회중에게로(35절) 축소시켜 주시고 계심을 보게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순식 간에 소멸하리라" 고 경고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더러 그들에게서 물러나라고 명령했다(21절). 이로써 하나님든 그들의 죄가 얼마나 중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노하셨는가를 보이셨다. 죄인들과 한패가 되거나 작은 일에라도 그들과 동조 하는 것이 얼마나 위함한 일인가를 깨닫자. 아마 많은 회중은 단지 따라와서, 즉 군중들을 따라와서 사건의 결말을 호기심으로 보러 왔던 것 같다. 그들은 사실 폭도들을 고발하는 증인이 되고 하나님과 모세를 공공연히 지지하러 왔어야 했지만, 실상 그런 뜻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를은 순식간에 모두 소멸될 뻔했다. 우리들이 패거리를 따라서 마귀가 들어간 곳으로 따라 들어간다면, 그것은 생명을 내놓는 일이 된다.

 

Ⅴ.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위해서 겸손한 중재를 드렸다(22절).

 

1. 저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조르는 자세를 취했다. 그들이 "엎드렸다."

이것은 저들이 자비를 얻어 내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복한 것이다. 백성들은 지독하게도 그들을 증오하고 공격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책임에 신실했으니, 양떼들이 위험해지면 공격에 맞서 싸우는 이스라엘의 목자와도 같았다. 남들이 우리들에게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이것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게 의무를 소흘히 해도 된다거나 그들의 복지를 구해야 될 우리들의 책임을 등한히 헤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 22절, 모든 사람이 함께 심관받아 멸망받지 않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온 회중들이 여호와 앞에서 죄를 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지만(14:1-3) 그들에게 죄의 동기를 불어넣어 준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자는 고라 한 사람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모세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모세의 중보 기도의 지혜는 ‘진노하시나이까’ 라는 단어에서 나타난다.

  • 하나님께서 크신 진노를 불러일으키게 한 구체적인 원인 제공자 는 고라 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진노는 여러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지목하고자 했다. 즉 본문은 비록 ‘온 회중들’이 고라의 추종자들이었음에는 분명하나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친히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언약하신 그 관계를 상기하시어 온 회중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간구가 담긴 표현인 것이다.

2. 그들의 기도는 탄원의 기도였고, 응답받는 기도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의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했더라면(시 106:23) "그들을 죽이려고" 했었다. 그러나 모제가 이 사건에 하나님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열의 있게 개입했다고 상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이 죄인들의 죄에는 선고를 내려 당신의 의로운 분노를 보여 주고, 그와 동시에 모세의 중재로 선고를 취소하심으로써 성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양보를 보여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이 기도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해 보자.

(1) 그들이 하나님을 부른 호칭.

"모든 육체와 생명의 하나님" 이라 했다. 인간이 뭔가를 보라. 인간이란 육체에 깃든 생명이오, 몸으로 나타난 영혼이니, 하늘과 땅의 놀라운 복합으로 이뤄진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보라.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생명이시다. "그가 생명을 조성하셨도다" (슥 12:1). 그는 "육체의 아버지시라" (히 12:9),하나님은 인생들을 조성하는 능력(시 33:15)과 원대 복귀시킬 권위를 가지고 계시니, "모든 사람은 나의 것이라" (겔 18:4)고 말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런 호칭을 사용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즉 하나님 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이 회중을 일시에 소멸시킬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지만, 그들을 살려두는 자비를 베푸실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인생들을 하나님의 솜씨로 지으신 작품들이요, 그들에게 대한 정당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며, 게다가 "생명의 하나님" 이신 고로 하나님은 그들의 성분을 아시며, 그래서 주동자와 선동을 당한 자들을 구별하실 수 있으며, 사악한 마음을 품고 범죄한 자들파 그들의 악의 때문에 죄에 빠져들은 자들을 또한 구별하실 수 있으며, 당신의 판결에 따라서 다른 처벌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서이다.

(2) 그들이 주장한 논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중재할 때(창 18:23)사용한 논점과 비슷하다. "주여,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여기서도 나온다. "한 사람의 범죄로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이 사건에 관련된 것은 그들 전체의 죄악이 아니라 이 대역죄를 처음에 교사한 자의 죄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주권자이시요 엄격한 심판자 이시라도, 한 사람의 죄로 온 회중이 멸망되지는 않을 것이요, "의와 평화" 는 구속자의 역사를 통하여 "서로 입맞추며" "자비가 심판을 물리치리라" 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온 회중이 점차적으로 광야에서 죽으리라는 것은 이미 모세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일시에 소멸시키지 말고 집행유예의 은혜를 베플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주여, 금년만 버려 두소서."

 

● 반역자들의 심판(민수기 16:23-34)

모세에 도전한 다단과 아비람과의 논쟁이 결판이 났다. 그 다음 문단에서는 아론에게 상대한 고라와 그의 동료들에게 대한 논쟁이 결판을 내리게 된다. 다단과 아비람은 자기들의 가정용 천막의 가운데 에다가 별도의 회막을 세웠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거기서 법정을 열고, 회의로 모이고, 모세에게 도전하는 깃발도 내다 건 것이다. 그 래서 본문에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회막" 이라카고 했다(24, 27절). 거기는 그들의 약속 장소였고, 고라와 그의 친구들이 여호와의 회막을 세워놓고 그들의 재판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그 재판이 끝나기 전에 그들이 거기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판결을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Ⅰ. 이 폭도들 주변에서 즉각 물러나라는 경고가 회중에서 내려졌다.

  1.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것을 시켰다(24절).

이것은 모세의 기도의 응답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온 회중은 멸하지" 않기를 간구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래, 그러지 않겠노라. 그러나 그들은 재빨리 스스로의 안전을 찾아 그 위험의 길에서 떠나야 된다. 그들이 폭도들에게서 순순히 물러나면, 그들과 함께 죽지 않으리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운명을 당하리라."

******우리 스스로가 구원의 방편을 활용하는 일에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않는 한,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의 기도로써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은혜를 쌓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구원의 방편으로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결코 하지 않으신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 모세는 "다가을 진노를 피하라" 고 그들에게 경고 해 주었다.

2. 이리하여 모세는 반역자들의 본부로 갔다. 아론은 그냥 회막 문간에 남겨 두었다(25절).

다단과 아비람은 건방지게도 모세에게 나아오기를 거부했었다(12절). 그러나 모세는 겸손히 그들에게 내려갔다. 아무도 회개치 않고 자기 주장을 하고 있는지 보려는 것이었다. 사역자들은 자기들을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이토록 온유한 마음으로 훈계하며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가장 고집센 자들 앞에 굽히는 것은 그들 밑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도 반항적이요 배신적인 사람들에게 당신의 손길을 뺀쳤다. 이스라엘의 70장로들은 폭도들이 모세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호자들처럼 모세를 수행했다. 그들이 수행한 것은 모세에게 영예스런 일이요, 가능하다면 그 배신자들에게 화를 내리게 하려 함이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피해받은 순결과 영예를 지원해 주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다.

 

👀 모세는 직접 반역에 참여하지 않은 회중을 용서한다는 여호와외 말씀이 마치자마자 무릎끓고 엎드려 간구하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고 또한 조금도 지체치 않고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을 향하여 황급히 달려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회중에게 전함으로 그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또한 순식간에 심판을 이루시는 여호와의 결단을(21절) 모세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회중을 고라의 무리로부터 돌이키게 하는 일을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으므로 모세는 촉각을 다투듯 황급히 행동을 취하였던 것이다.

 

3. 자기들의 안전을 도모한다면, "이 사악한 자들의 장막에서 떠나라" 고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26절).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명분과 입장을 증오하고 그들의 범죄와 의도를 규탄하며, 그들에게 내릴 벌을 두려워한다는 표시였다. 죄인과 함께 멸하고 싶지 않는 자들은 "그들에서 나와" 따로 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패역한 세대" 에게서 떠남으로써 자신을 구하지 않는 한, "우리를 죄인들과 함께 모으지 마소서" 하는 기도는 헛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의 죄와 재앙에 참여하지 않는 한 그들은 거기서 탈출하게 될 것이다(계 18:4).

 

👀 모세는 지금 회중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고 회개하는 차원에서만 죄된 자리에서 돌이키라는 정도의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일단 그들을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에서 먼저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단순히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지역을 떠나는 행동까지도 촉구하는 것이다. 모세의 마음은 매우 시급...

 

Ⅱ. 회중들은 경고를 받아들였으나, 그 폭도들을 계속 고집을 부렸다(27절).

1. 자비롭게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폭도들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그들은 고라와 다단과 아리람의 장막에서 떠났다."

자기들의 땅이 그들에게 가까이 있어 그 부분에 있던 자들과 (틀림없이 이들은 가족들과 모든 재산까지 이동시켰을 것이다.) 그들의 결과를 보려고 각지에서 모여온 자들도 모두 피신을 했다. 하나님께서 회중의 마음을 감화시키사 그들을 생존케 하신 것은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심정을 주사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행악자들과 구별시켜 주는 은혜는 구원에 수반되는 한 가지 일이다.

2. 정의롭게도, 하나님은 그 폭도들을 그대로 버려두사 고집을 계속 부리게 하셨다.

이웃들이 자기들을 떠나가는 것을 보고도, 또 하나님의 정의의 화산이 자기들을 표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하나님과 모세 앞에 엎드려 자기들의 죄를 겸손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며 군중들과 함께 도망하여 퍼난처를 찾는 대신, 그들은 하나님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최악의 일까지도 행하겠다는 듯한 태도로써 계속 "자기들의 장막문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완악해진 심렁들은 스스로에게 멸망을 가져오며, 자기들의 실정은 가장 두려운 처지이나 오히려 무서움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죄를 지을수도 무서워할 줄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도 그들의 부모들의 자만으로 인하여 비극에 처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배운 자들은 행복하며,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자들은 어린 자라도 불행하지 않도다!

 

Ⅲ. 모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엄숙한 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한 권능으로 선고가 집행됨으로 그 논쟁은 판결이 났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모든 이스라엘의 눈들이 집중하여 사건을 지켜보는 가운데서, 폭도들의 건방진 태도에 대하여 정당하고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었다. 그리하여 모든 문제는 놀라운 결말을 내게 되었다(28-30절).

 

👀 28절, 그때 모세가 말하였다. "너희가 이 일을 통하여 이 모든 일들을 내가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셔서 하게 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모세의 말은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단 한번도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이나 이익 때문에 어떤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출애굽 시켜 광야 생활을 하게 한 것은 결코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이나 어떤 사사로운 목적을 두고 행한 것이 결코 아니었고 순전히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출 3:10; 6:11).

30절, 그러나 만일 여호와께서 새로운 일을 하셔서, 땅이 그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삼켜 그들이 산 채로 스올로 내려간다면, 너희는 이 사람들이 여호와를 멸시하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 호의적인 처분을 받았던 사람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은혜틀 베풀었던 사람에게 배신하는 태도나 행위를 나타내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고라 무리는 여호와들 모르거나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전에 넘처는 여호와의 복주심을 경험했던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만의 늪에 빠져 감히 여호와를 경멸하였던 것이다. 이에 그들은 최고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임을 모세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삶 속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본문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틀 체험하였음에도 볼구하고 다시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그 길로 빠져들어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는 다시 돌이킬 수 없으며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이다(히6:4-6).
  • 본서의 저자 모세는 고라의 무리들이 여호와틀 멸시한 것은 이방인들이나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여호와를 경멸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그 폭도들이 평범한 죽음을 죽었다면, 능히 한 사기꾼으로 불리우고 그렇게 간주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자연사를 했거나 다른 악행자들의 경우와 같은 종류의 처벌로 죽었다면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이 재앙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분노, 또는 검으로 죽임을 당했다면, 하나님은 모세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1. 그러나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었다면" (이런 심판은 전례가 없었다), "그들의 모든 집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요, 보내심을 받은 자요, 당신을 위해 고용된 자요, 내게 항의하던 자들은 당신께 항의하던 자인 줄을 확실히 알리리다."

이 심판은 그 자체가 폭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기에 충분했을 것이요, 모든 사람 들은 "그들이 여호와를 분노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토록 엄숙히 모세를 통해 미리 예고되었다면 구체적 설명이 전혀 없었다하더라도, 그 명백한 증거는 보다 설득력 있게 되고, 모세는 단순히 하나님의 종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총애를 입는 자요, 하나님의 뜻을 아주 친밀히 아는 자이며, 그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러한 강경한 힘의 출현까지 동반시킬 수 있는 자라는 사실이 논쟁의 여지 없이 밝혀진 것이다.

 

Ⅳ. 집행은 순식간이었다.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는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모세가 말을 하자마자, 하나님은 시행했다. 땅이 "갈라져" (31절), "입을 벌리고 그들을 삼켰다." 그 사람들과 그들의 물건들(32절)도 삼켰다. 그리고 땅이 "그들 위에 합해 졌다" (33절).

 

👀 모세가 여호와께서 반역한 고라 무리들을 어떻게 처벌하실 것인지에 대한 말을 마처자마자 그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 그대로 실행되었다는 점에 대해 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의 선언과 여호와의 심관 사이에는 어떠한 시간적인 틈이 없이 곧바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고라 무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가 여호와께서 세우신 그들의 진정한 지도자라는 사실을 강하게 확신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1. 이 심판은 비할 데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창조하셨다." 즉 전에는 결코 한 일이 없던 일을 행하셨다. 그의 전통에는 여러가지 화살이 있다. 그래서 자비에도 그렇지만 진노도 여러가지로 작용하게 된다. 다단과 아비람은 세키나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안전하리라고 생각했다. 세키나에서 때때로 여호와의 불이 나왔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qui procul d Jove-천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은 벼락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께서는 벌을 줌에 있어서 한 가지 방법에 구애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불과 마찬가지로 땅도 효율적으로 그의 정의를 실행한다.

  1. 산 채로 무덤에 들어가 곤충처럼 시체가 되고 매장되며, "평안하고 조용하여 원기 왕성할 때에" 무저갱의 빗장에까지 내려가게 된다는 것은 죄인 본인들에게는 대단히 무서운 일인 것이다,

👀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그의 가족들이 생매장 당했다는 말이다(26:10). 보통 사람은 숨을 거둔 후에 무덤에 묻히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아론과 모세의 직분에 대항하던 무리들은 산 채로 땅에 삼키워짐으로 참혹한 육체적인 죽임을 당하였다. 고라와 그를 동조하는 반역자들과 그 가족들은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모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어진 지진으로 인하여 땅 속으로 끌려 들어가 죽임 당했고 파멸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죽음이 죄에 대한 하나님외 공의로운 심판이었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좋아 홍해를 건너다가 수장되어 버렸던 애굽 군대에 대한 징벌을 연상하게 한다(출14:26-29).

 

3. 그것은 또한 그들의 가엾은 자녀들에게도 가혹했다.

그것은 심팍의 무서움을 더하게 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뜻을 더 밝혀내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자녀들이 부모들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자식들이 그런 벌을 받아야 할 만큼 악하다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 줄 만큼 자비롭다고 하는 기록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무한한 재판자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행하지 아니했다고 하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행할 수 없느니라."

4. 그 사건은 완전히 기적이었다.

땅이 갈라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요, 바다가 갈라지는 것만큼 초자연적인 일이다. 그리고 바다가 다시 합쳐지듯이 땅이 다시 합쳐졌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명령하신다. 그가 원하시면, 언제라도 그 아무것이든 당신의 정의를 실행하는 도구추로 삼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라면, 어떤 피조물도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모세가 최근에 자기의 기도로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시 90:11). 즉 "누가 주의 분노와 위력을 알리요?" 하는 사실을 그 백성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때면,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이한 벌을" 내리신다(욥 31:3).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누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리오?"

5. 그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하늘의 거슬렀고", 그리하여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 되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땅이 입을 열어 그들을 삼켜 버렸다. 그들은 회중 사이에서 틈을냈다. 바로 그 때문에 땅은 그들 밑에다 틈을 내었다.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고의적인 죄인들은 땅에게도 짐이다. 온 피조물이 그들 밑에서 신음을 하게 된다. 이것은 그 사실을 상징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땅이 이 폭도들을 가라앉게 하였다. 그 땅이 그들을 지고 있다가 싫증이 났고, 그들 밑에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은 지금도 무서운 불의로 인하여 괴로운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때가 바로 땅이 그들의 짐을 삼켜버릴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6. 이 사건은 회개하지 않고 죽은 죄인들의 영원한 파멸을 상징한다.

아마 이것을 비유하여 그들은 "웅덩이에 빠진다" (시 9:15). 또 "지옥으로 빨리 내려가는도다" (시 55:15)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깊은 수렁에 빠져서도" 믿음으로 기도했고, 저주받은 자와 생명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놓여 있듯이 "깊음이 나를 삼키 지 말게 하소서" 라고 했다(시 69:2-15). 다윗의 실정도 형편 없었다. 그러나 본문에 있는 자들처럼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Ⅴ. 모든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경보가 울렸다. "그들(회중)은 그들(폭도)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했다" (34절).

그들은 때늦은 뒤에서야 도움의 고함을 질렀다. 저들의 비탄은 구조자를 부른 것이 아니라 다 빨리 쫓아 버렸다. 저들은 각자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땅이 우리도 삼킬까 하여" 서로 도망쳤다.

 

👀 그러나 원어 성경에서 보면 ‘부르짖음’ 이 아닌 ‘소리' 이고 이 소리는 땅이 갈라지는 거대한 소리와 고라와 그에게 속한 무리들이 땅 속은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면서 지르는 괴성을 포함한 모든 소리를 가려킨다. 이 끔찍한 광경을 두려움으로 목격하던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겁지겁 그 자리를 피해 도망쳤다.

 

우리는 남의 패망을 보면 스스로 경고를 받아야 한다. 무저갱으로 내려간 자들의 소리를 신앙으로써 들을 수 있다면, 우리도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위해서 보다 열심히 도망해야 한다.

회막문을 다시 돌아보자. 거기에는 제사장을 사칭하여 자기들의 손에 향로를 들고 분향할 채비를 하고 있던 자들이 남아 있었다.

 

Ⅰ. 그들에게는 보복이 가해졌다(35절).

다단과 아비람을 삼키려고 그들의 진에서 강이 열렸던 바로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250인을 소멸하니라." 그러나 아론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 일은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1.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천둥이 하나님의 음성의 무서움을 알리는, 들을 수 있는 소리이었다면 번개불도 또한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당신의 논쟁자들을 삼키는 강렬한 분노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으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진다는 것" 이(히 10:27-31)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알자.

2. 우리가 남의 일에 간섭하면 위험해진다.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세우신 제 제도의 영예를 귀히 여기시사, 그것이 침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라 자신도 분향하다가 죽은 이 250인 가운데 끼여 불에 타 죽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가 표적 삼은 것은 제사장직이요, 그래서 그는 회막문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라. 자칭 제사장들이라고 뽐내던 자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들은 레위인이므로 신성하고 영예로운 직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그것은 그들이 받을 자격 이상의 것이었다. 그랬더라면 그들은 기쁨과 명예 속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지은 천사들과 같이, "자기들의 처음 자리를 떠나" 지시되지 않은 영예를 탐하다가 하데스에 떨어졌다. 그들은 "영원한 불의 보복" 을 상징하는 불에 의해서 향로를 뺏기고 숨이 끊어졌다.

 

👀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 고라와 그와 관련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심판을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하였다는 것은 단순히 고라 무리가 빠진 땅에 실수로 휩쓸려 들어갈까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 그들은 고라 무리들과 동일하게 모세의 지도권과 더 심층적으로는 가나안으로의 인도를 위한 하나님의 출애굽 역사 자체에 대해서도 불만과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14:1-3). 이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고라 무리들과 동일한 죄를 지은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한 것이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찬미 자매의 매일 정리해주는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