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3월 19일 토요일 민 16:41-50 여호와께 속죄한 아론

하나지기 2022. 3. 19. 21:23

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30, 요한복음 9, 잠언 6, 갈라디아서 5

 

묵상 구절

16:41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면서 말하기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 하니,

16:42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반대하여 모였을 때 돌아서서 회막을 보니, 보아라,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

16:43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으로 나아가니,

16: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16:45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이들을 없애 버리겠다." 하시므로 그들이 엎드렸다.

16:46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기를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 있는 불을 담고 향을 놓고 서둘러 회중에게 가서 그들을 위해 속죄하시오.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염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오." 하니,

16:47 모세가 말한 대로 아론이 향로를 가지고 모인 무리에게 달려가니, 보아라, 백성 가운데 이미 염병이 시작되었으므로 그가 향을 담아 그 백성을 위해 속죄하고,

16:48 죽은 자들과 산 자들 사이에 설 때, 염병이 그쳤다.

16:49 고라 사건으로 죽은 자들 외에도 염병으로 죽은 자들이 만 사천칠백 명이었다.

16:50 염병이 멈추자, 아론이 회막 입구에 있는 모세에게 돌아왔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영적교훈 서론부

본문은 38년 간의 광야 방랑 생활어 거의 끝나가던 시점에 발생한 두 가지 반역 사건을 보여 주고 있는 본장에서 그 첫번째 반역 사건인 고라 일당의 반역 사건을 보여 주고 있는 1-40절에 이어 그 두번째 반역 사건으로 일반 백성들의 원망 사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원망 사건은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반역하던 고라와 그 일당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그 이튿날에 있었던 사건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역자 고라 일당과 250인의 족장의 죽음의 원인이 모세와 아론에게 있다고 여기고 다시금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반역자들을 형벌하시는 바로 이 현장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반역자의 종말이 어떠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둘은 단 하루 만에 또다시 고라 일당의 전철을 밟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로 마비된 인간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해 내 기가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아론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그분의 끝없는 사랑의 신실성을 발견하고 그 앞에 무릎을 끓게 됩니다.

 

● 재기된 반역(민수기 16:41-50)

 

Ⅰ. 바로 그 다음날 모세와 아론에 대한 새로운 반역이 일어났다.

오 하늘이여! 놀랍도다. 오 땅이여, 이 일은 불가사의로다! 이렇게 불치의 타락에 떨어진 죄인들이 도대체 있었던가? "다음날" (41절), 그 백성은 폭동을 일으켰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것이 그 다음날의 시점이었다는 것이 아니고, 고라 무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했다.

  1. 바로 조금 전에 폭도들이 처벌을 받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바로 그들이다. 자기들의 영혼을 대하여 범죄했던 그 죄인들이 땅 밑으로 내려 가면서 지른 비명소리가 아직 그들의 귓전에 남아 있고, 아직도 그들을 태워 죽인 불의 냄새가 남아있으며, 입을 벌렸던 땅이 채 닫혀지기도 전에, 그런 때에 같은 죄가 재기되었다. 그러한 모든 경고는 소홀히 되고 만 것이다.
  2. 그들은 얼마 직전 바로 그들의 처벌을 함께 받았어야 했는데 간신히 구출되었고, 그 잔존자들은 "타다 남은 부지깽이" 같았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금 모세와 아론에게 도전했으니, 모세와 아론이란 바로 그들의 생존을 위해 중재 기도를 했던 자들이 아닌가.

비난의 소리는 대단히 높았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이보다 더 부조리하고 악랄한 말이 또 있겠는가? 그들은 여호와를 도전하다가 죽은 자들을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부르면서 폭도들을 정당화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 자체를 비난한 것이다.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말하는 ‘여호와의 백성' — 고라와 그의 무리, 특히 회중에서 유명한 250인의 족장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즉 여호와의 심판으로 인해 죽었던 250인을 제외한 이스라엘 족속의 나머지 대표들은 250인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들의 신변에 대해서도 동일한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즉각적으로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들도 모세와 아론에 대해 동일한 반역의 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14:1-4).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대표하던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슬픔도 그들의 마음을 격동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심판은 여호와께로부터 왔었지만 그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그 직접적인 원인을 모세와 아론에게 들려 그들이 사적인 감정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죽였다고 매도하며 그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은 고라 일당과 자신들의 사악했던 모습을 돌아보고 통회하지는 못할망정 심판을 받아 죽음에 이른 결과를 오히려 모세와 아론에게 책임을 물음으로 어리석은 죄를 다시 한번 범하게 된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그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모든 방도를 취했었다). 그러므로 원당조로 그들을 비난하면서, 사실상은 그 비난으로 하나님 자신께 모든 책임을 맡기는 것이었다. 시내 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의 엄위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들의 완악은 계속되었고, 불복종한 자들의 처형으로 심판의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모양이니, 이 사실은 인간의 심령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하나님의 은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아무리 그럴 듯한 수단이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법이다.

 

Ⅱ. 이 폭도들에 대해 하나님은 즉시 나타나셨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모였을" 때에 -아마 그들을 탄핵하든가 원망하기 위해서 -그들은 "회막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걱정스런 그들의 양심이 거기에서 어떤 불쾌한 모양이라고 보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다" (42절).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과 그들을 고발하고 대적하는 자들의 당혹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으로 나아왔다(43절).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들 때문이요(거기서 하나님은 저들을 은밀히 숨기신다. 시 27:5; 31:20). 또 다른 이유로는 하나님의 충언을 받아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함이었다(43절).

 

👀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영광의 나타나심을 보자마자 바로 스스로 현현하신 여호와의 영광 앞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신속하게 행동을 취한 것은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와 사이의 중재자요 지도자로 세우셨음을 항상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여호와께서 영광으로 나타나신 것은 자신들에게 어떤 지시를 하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정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즉 그들은 "순식간에 소멸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45절). 회개하기를 싫어하고, 날마다 반역만을 자행하는 그들을 무엇 때문에 하루 더 살려 줄 필요가 있겠는가! 정당한 보복이 일어나게 하고, 그들 때문에 일어나는 곤란은 즉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만은 먼저 구출되어야 했다,

 

👀 45절, ‘너희는 떠나라’

→ 21절의 ‘떠나라' 와는 다른 단어가 사용됨

  • 21절: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며 회중들과 같은 장소에 있지 말고 떠나라는 뜻.
  • 45절(헤롬무): 원어의 단어는 명령형으로 쓸 때 ‘높이라, 일어나라'는 의미.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하여 그들의 상대적인 지위를 높이라는 뜻.
  • 본절에서는 장소적 의미가 아니다. 이 ‘헤롬무'는 모세와 아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로서 그들의 위상을 확고히 할 것과 용기를 잃지 말고 그 직분을 잘 감당하라는 위로의 의미로 주신 것.

“내가 순식간에 이들을 없애 버리겠다.”

  • 거듭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함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극심함을 보여주는 표현..

Ⅲ. 모세와 아론은 그들을 위해 중재했다.

엘리야처럼 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 고발할(롬 11:2)만한 이유가 그들에게 충분히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당한 모욕을 용서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수들에게도 최선의 친구가 되어 준 것이다.

1. 그들은 둘 다 "엎드렸다."

그들의 죄가 지극히 크다는것을 알면서도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겸손히 중재한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이전에도 이 비슷한 일을 당하여 여러 번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거기에 대해서 야비한 앙갚음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같은 방법을 택했다. 이것이 항상 기도하는 자의 자세이다.

2. 모세는 "재앙이" 폭도들의 "회중에 내리기 시작했다" 는 사실 (즉, 그들은 모세에 대항하기 위해 한 군대 모였다)을 알면서도 아론을 시켜 그의 제사장직 직무를 통해서 그를 위해 속죄하라고 했다(46절).

그리고 아론은 기꺼이 갔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분향을 올렸다. 그것은 더러워진 공기를 정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욕을 당한 하나님께 용서를 빌기 위함이다. 그래서 심판의 진행은 늦어졌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준다.

(1) 아론은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지만, 그들을 위한 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께 대한 싸움을 복수하시고 당신의 제사장 제도의 명분을 변호하시려고 하고 있었지만, 아론은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하려고 참견하고 있다. 그보다는 자기의 연륜과 품위도 잊고서, 회중을 도우려고 그들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즉 "그들을 잠시 괴롭히소서, 그러면 내가 갈때 나를 더 잘 환영할 것입니다" 고. 오히려 모든 이스라엘인들의 생명을 지키는 보호자처럼, 죽음이 스며들고 있는 그 구렁텅이로 전속력을 다해 나아갔다.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던 모세와 아론은 이제 그들을 책망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저들이 그토록 부당하게도 살인자로 욕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리라고 감히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선량한 두 사람은 우리에게 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곧 우리는 우리를 짓궂게 괴롭히는 자들에겐 기분 나쁘게 대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우리를 모욕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우리들에게 그들을 처분한 권리가 생길 때에 그들에게 참다운 친절을 거부해 버리는 구실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악인에게 선으로 갚아야 한다.

 

👀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급박성을 전해 들은 아론은 뒤틀 돌아보거나 주변의 상황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재빠르게 회중에게로 달려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회중을 위한 속죄가 빨리 어루어져야만 여호와의 전노가 조금이라도 일찍 그치고 백성들에게 퍼진 염병이 그쳐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론은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출 7:7)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급박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복음을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아론처럼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며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발걸음이 조금만 더 빨라진다면 한 생명이라도 더 천국으로 인도할텐데, 내 발걸음이 조금만 더 멀리 간다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있을 텐데...’ 라는 아론의 제사장적 심정을 가진 자라면 말이다. 우리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 아니었던가(벧전 2:9)?

(2) 또 아론은 매우 용감한 자였다.

자기를 치려고 모여 있는 노한 폭도들, 이제 시작된 재앙으로 인하여 더욱 감정이 격화된 그 폭도들,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또 그는 전염병이 퍼져 있는 한가운데로 용감히 나아갔다. 거기에는 죽음의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수백 수천 명이 그의 좌우에 넘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그는 자기의 손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그것이 자기에게 위험해지리라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 아론은 염병으로 이미 죽은 사람들로부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전염되어 염병에 걸러지 않도록 그 사이에 서서 자신의 온 몸으로 막은 것이다. 이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란 각오로 아하수에로 왕에게로 나아갔던 에스더의 담대한 모습과도 같다(에4:16).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선 아론은 여호와께서 속죄외 분향을 받으시고 그의 진노가 그처사 회중 가운데 임한 재앙이 멈추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3) 아론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또 하나님께 관한 거룩한 일에 있어서 "사람을 위해 임명된" 자였다.

제사장직에 부름받은 자기의 소명은 이로써 확고히 되었고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에 도전한 이 침략자들을 죽이면서 아론의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한 도구로 삼으셨다. 아론의 향로와 여기에 나오는 "그들의 영혼을 거스르는 죄인들의 향로들" 과 비교해 보라. 그것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시켰으나, 아른의 향로는 그 분노를 진정시키었다. 그들의 것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시켰으나, 아론의 향로는 구했다. 그런고로 아론이 제사장에 소명받은 자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철저히 내어던지는 자들, 여호와의 자비를 얻어 진실하고 유용한 자들, 바로 그들이 공공의 영예를 차지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어떤 위대한 사람이 있다면, 그로 하여금 만인의 종이 되게 하라.

(4) 아론은 그리스도의 할 모형이다.

그리스도는 죄를 위한 속죄물로 세상에 오셨고,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제하여 버리려고 오셨으며, 그 방편은 그의 중보와 중재 곧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서" 그의 택함받은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보존하고, 죄와 저주에 감염된 이 세계 한가운데서 그들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둘을 구원한 아론은 후일 온 세상의 사람들을 속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중보 사역을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히9:28)

 

Ⅳ. 사건의 결말

  1. 그들 중의 몇몇 사람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정의는 영광을 받게 되었다. 여호와의 검은 순식간에 큰 힘을 발휘했다. 아론은 최선을 다해 서둘렀지만, 그가 자기의 직무 자리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1만 4천 7백 명이 죽어 넘어졌다(49절). 고라의 사건 때에는 그 선동자들만 본보기로 죽었으므로 비교적 소수의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와 참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피는 정의가 아끼지 아니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 중에서 몇백 명이 참변을 당해 죽은 것을 불평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천 명을 죽이심으로써 그들의 불평을 침묵케 했다. 하찮은 심판에 도전하는 자들은 더 큰 심판을 초래하고 만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는 언제나 승리하신다.
  2.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 두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비는 영광을 받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셨고, 당신의 정의가 무엇을 행하는가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그 후에는 당신의 사랑과 자비가 어떤 것인가도 보여 주셨다. 이 모든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 중보자를 통하여 그들을 남기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시고자 하셨다. 아론이 피운 분향의 연기가 올라가기 시작 하자 그 재앙은 그쳤다. 분노하신 중에도 수없이 자비를 기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더욱 영광되게 한다. 그리고 비록 심판은 시작되었지만, 기도는 그것을 중지시켰다. 하나님은 그토록 용서를 기뻐하시기 때문이요, 죄인의 죽음을 조금치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 본문은 아론이 염병으로 죽어 가는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하여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48절)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던 처음 출발점이었던 회막으로 돌아왔음을 보여 준다. 이때 아론은 희비가 엇갈려 있었을 것이다. 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또한 자기 백성 일만 사천칠백 명이란 생명이 순식간에 시신으로 바뀌는 비극을 목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한 사명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고라의 반역 사건(1-50절)에 대한 기록이 아론이 회막으로 둘아오는 장면에서 끝나는 것은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사실 고라의 반역 사건의 발단은 아론 계열의 사람들만이 제사를 집례하는 데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하였었다(3, 10절).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사건의 중간에 아론 자손에게만 제사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천명하셨다(40절). 그러고 다시 사건의 최종결부에 와서 이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아론으로 하여금 자신둘의 죄로 언해 걸린 염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게 하셨다(48절). 뿐만 아니라 본서의 저자언 모세는 아론이 자신의 제사장으로서의 모든 임무를 마처고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상정인 성막으로 다시 둘아오는 장면으로 고라의 반역 사건에 대한 기술을 종결함으로써 아론과 하나님 사어의 특별하고도 밀접한 관계를 암시적으로 강조하고 었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