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출애굽기 38, 요한복음 17, 잠언 14, 빌립보서 1
묵상 구절
20:14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왕의 형제 이스라엘이 이와 같이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우리가 겪은 모든 고난을 알고 있으니,
20:15 우리의 조상들이 이집트로 내려가 우리가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이집트 사람들이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학대하여
20:16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왕의 영토 경계에 있는 성읍 가데스에 있으니,
20:17 우리가 왕의 땅을 통과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밭이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않고 우물의 물도 거저 마시지 않을 것이며, 다만 왕의 대로로만 지나가고, 왕의 영토를 벗어날 때까지 좌우로 치우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20:18 에돔 왕이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나의 땅을 지나가지 못할 것이니, 내가 나가서 칼로 너를 맞이하겠다." 라고 하였으므로,
20:19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대로로만 가겠고 만일 우리와 우리의 가축이 왕의 물을 마시면 우리가 그 값을 지불하겠으며 우리는 다만 걸어서 지나가고 다른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20:20 에돔 왕이 또 대답하기를 "너는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그들을 막았다.
20:21 에돔 왕이 이스라엘을 막아 자기 영토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아섰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에돔과의 협상(민수기 20:14-21)
이스라엘인들이 에돔인들과 벌인 협상이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인들이 현재 진치고 있는 곳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첩경은 에돔 땅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 에돔의 위치는 당시 이스라엘이 있던 가데스의 동복쪽에 있었으며, 사해 남쪽으로부터 홍해 동북편 아카바 만에 미치는 산악 지대였다. 한편 가데스에 있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에돔 지역을 통과하여 가나안 동편인 트랜스 요르단으로 행군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가데스에서 바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유다 산지틀 가로지르는 길로서 매우 험하고 가파른 산악 지대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세는 요단 동편의 길이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적합한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절에 와서 모세는 그의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으로 에돔 땅을 통과하게 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가데스에서의 므리바 물 사건으로 자신은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진 모세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가나안에 진입하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Ⅰ. 모세는 에돔 왕에게 대사들을 파견했다. 그 땅을 통과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서 할 말을 일러 주었다 (14-17절).
- 에돔인들에게 친절을 요구하라고 했다. "그와 같이 네 형제 이스라엘이 말하였느니라."
이 두 민족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공통 조상으로 하고 있는 민족들이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요, 그들이 각 조상이다. 고로 혈족 관계에 있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당연히 친절을 기대할 수 있었다. 또한 에돔인들은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이 나쁜 음모를 꾸미고 있다거나 자기들을 이용해 먹으려 한다는 두려움 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 에돔과 이스라엘의 선조가 각각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등이 형제 ‘에서'와 ‘야곱'이었기 때문이다(창 25:19-27). 한편 에돔의 선조 에서와 이스라엘의 선조 야곱은 장자의 명분 때문에(창 25:18-34) 갈등을 겪은 후 사이가 멀어져 갔고(창27:30-45), 결국 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서 세일산 부근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고 에돔 족속의 선조가 되었던 것이다(창 36:1-43).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자틀 보내면서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이라고 청한 것은 선조 때부터 있어 온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의 갈등 관계에 관한 언급을 희피하면서 친족 관계라는 사설을 강조하고 부각시켜 에돔 왕의 선처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현실에 관한 간략한 이야기를 에돔에게 들려주어야 했는데, 이것은 당연히 인정되는 이야기요 에돔인에게도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중적인 탄원이 있다.
(1) 이스라엘은 애굽인들의 학대를 받았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친척들에게서 동정과 원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애굽인이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학대하였느니라. 그러나 이제 우리는 형제 에돔에게서는 그러한 고생을 겪지 않게 되기를 바라노라."
(2) 이스라엘은 여호와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원과 애호를 받아야 한다(16절).
"우리가 여호화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천사를 보내었다 곧 그의 임재의 천사요 계약의 천사요, 영원한 말씀이시니, 그가 우리를 애굽에서 구하여 내었도다. 그리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했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의 은총을 받고 있는 백성과 친교하는 것이 에돔인들의 유익이요, 그 나라에도 큰 은혜가 된다. 그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면 큰 위험이 닥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에게 친절을 베풀고 하나님의 백성을 우리의 백성으로 삼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요 해야 할 의무이다. "오라, 너 여호와의 축복받은 자여!"
👀 천사,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을 친히 인도했던 ‘하나님의 사자'(출14:19). 인간 역사에 들어오셔서 그의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가시는 제2위 하나님의 현현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듯 모세는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벗어난 출애굽의 대역사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된 역사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 그들은 에돔 땅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간청해야 했다. 하나님이 친히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사고 계시므로, 그들이 세계 어디를 가든 그것은 정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돔인들에게 이 같은 존경의 뜻을 표했으니, 그것은 어느 누구의 재산도 종교적 구실로 침해받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상 영토는 은총이 아니라 일반섭리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의 고을을 통과하시게 되었을 때 그가 가는 것이 그들에게 기분 나쁘게 하기 쉬운 일이었으므로, "먼저 사자를 보내어" 허락을 구했던 것이다(눅 9:52). 친절을 받은 자는 친절의 요구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 그 길을 통과할 때 행동을 조심하겠다는 점을 알려야 했다. 왕의 대로만 아니고 땅이나 우물이나 아무 의 재산도 침해하지 않을 것이며, 값을 죽지 않고 이용하지는 않을 갓이요, 할 수 있는 한 빨리 도보로 통과하겠다고 했다(17, 19절). 아주 공정히 하리라는 것이었다.
Ⅲ. 그 대사들은 부정적 답변을 가지고 돌아왔다(18절). 에돔, 즉 에돔의 왕은 그 나라의 보호자로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통과하지 못하게 하리라." 그리고 대사들이 계속 간청하자 그는 거부를 되풀이했고(20절), 그 땅에 들어오면 용서치 않겠다고 위협까지 가했다. 그는 그들을 물리칠 만한 잘 훈련된 군대를 자랑했다. "이리하여 에돔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이스라엘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피해를 받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그들의 약속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무수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군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지휘 훈련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을 무서워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학대 받기보다는 학대하는 것은 더욱 용서치 않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토록 의로운 법도 와 율례" 를 가지고 있는 민족을 무엇 때문에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인가?
- 에서가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옛날의 적의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에게 피해를 끼치리라는 우려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큰 선의를 베풀고 싶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에서는 야곱을 미워했다. 그것은 축복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미움이 재기된 것이다. 바야흐로 그 축복이 물려지려는 때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에돔의 악한 성격이 수치가 되게 하고 이스라엘의 선한 성격이 영예가 되게 하려 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서 돌이켰다." 이 기회에 그들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타당한 요구가 부당하게 거부되거나,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자나 인간의 치욕을 당한다고 하여 이상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귀머거리 같이 듣지 아니하노라." 에돔인들이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경멸을 퍼부은 뒤에, 하나님은 "에돔을 미워하지 말라" (신 23:7)고 하는 특별한 주의를 주었다. 에돔은 그렇게 이스라엘을 미워했지만 같이 미워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도 그런 경우에는 복수를 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