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출애굽기 39, 요한복음 18, 잠언 15, 빌립보서 2
묵상 구절
20:2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가데스에서 진행하여 호르 산에 이르렀고,
20:23 여호와께서 에돔 땅의 경계에 있는 호르 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0:24 "아론이 자기 조상에게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20:25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 산에 올라가서,
20:26 아론의 옷들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혀라. 거기서 아론이 죽어 조상에게 돌아갈 것이다."
20:27 모세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했으며, 그들이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호르산으로 올라갔다.
20:28 모세가 아론의 옷들을 벗겨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혀 주자 아론이 그 산 꼭대기에서 죽었고, 모세와 엘르아살은 그 산에서 내려왔으며,
20:29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이스라엘 온 회중이 아론을 위하여 삼십 일 동안 슬피 울었다.
매튜 헨리/옥스퍼드
● 아론의 죽음(민수기 20:22-29)
본 장은 미리암의 장례식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남동생 아론의 장례식으로 끝맺는다. 죽음은 때로 한 가정에 겹쳐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여자 예언자의 죽음으로 당하던 고통을 선용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직후에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장을 데려갔다.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시험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그들이 호르산을 좌로 두고 떠난 바로 그 다음 단계에 가서 일어났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죽음은 따라오며, 언제나 무덤은 우리 곁에 있다.
Ⅰ. 하나님은 아론의 죽음을 예고했다(24절).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다.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 사랑하는 이 두 형제는 이제 헤어져야만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형 아론이 먼저 죽는다. 그러나 모세도 멀지 않아 그의 뒤를 따르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이별은 잠시 잠깐이었다.
💡 히브리인들은 죽는다는 것을 ‘여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문학의 관용적 문구이면서도, 이 말에는 히브리인들의 내세관이 담겨 있다. 구약 초기의 사람들은 아직 부활 신앙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창조 신앙에 근거하여(창1:24-31; 전12:7), 사람이 죽으면 선조들이 있는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열조들이 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죽음을 또 다른 새로운 시삶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졌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이 명령 속에서 몇 가지 불미한 점이 있다.
아론은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 다툼의 물 사건 때에 아론이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 한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모세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모세는 자신도 같은 죄인임을 알고 있었다.
💡 모세와 아론은 므리바 물 사건(1-1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패역한' 자들이라고 질책했지만(10절) 실제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마라=하나님을 향한 배반과 반역. 불순종)'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아론과 모세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12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혈기로 하는 열심이나 충성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바로 그러한 삶인 것이다.
2. 그들에게는 큰 자비이기도 하다.
아론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거니와, 악인들처럼 재앙이나 하늘의 불에 의해서 죽지 아니하고 평안하고 영예롭게 죽었다. 그는 "그의 백성에게 끊쳐진" 것이 아니다. 심판을 받아 죽은 자는 흔히 그렇게 표현했다. 그는 "그의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품속에서 죽는 자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3. 그들에게는 의의가 크고 어떤 모형적인 성격도 있다.
아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것은 레위적 제사장직의 불완전성을 시사한다. 그 제사장 제도는 보다 나은 것을 바라는 희망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 제사장들은 죄와 죽음 때문에 계속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썩어질 수 없는 것이요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론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모든 영예를 양보해야 한다(히 7:23-25). 아론은 순복했다. 지정된 방식대로 죽었다. 마치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쾌히 죽어갔다.
- 그는 호르산 꼭대기에서 자기의 거룩한 옷을 벗어서 그의 형제와 아들에게 넘겨 주었다.
💡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아론과 엘르아살을 데리고 호르산에 오르게 하셨다. 그 이유는 엘르아살을 아론의 뒤를 잇는 대제사장이 되게 하시며, 또한 아론이 최후를 호르산에서 맞이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27절) .
모세가 27절에서 여호와의 명령하신 대로 실행하였다.
아론은 출애굽 시작 때부터 그와 함께 40년을 동고동락한 동역자였으며, 또한 그의 하나뿐인 형이었다(출4:14, 15; 5:1). 이제 그 아론이 죽음을 맞이할 순간이 다가왔다. 이는 곧 모세의 죽음 역시 다가왔음도 의미하는 것이었다(12, 24절; 27:13). 수많은 역경과 고통 속에서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왔던 대제사장 아론을 모세는 묵묵히 하나님의 명에 따라 그 인생 최후의 장소로 인도하는 것이다.
아마 이스라엘 장로들도 몇몇 동반한 것 같다(27절). 그들은 "온 회중의 목전에서" 산으로 올랐다. 아마 그들 이 산에 오르는 용무를 들었을 것이다.
💡 왜 모세는 모든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산에 올랐는가?
- 이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보게 될 그들의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최후의 길을 보게 하여 아론이 그들의 기억 속에 남게 하기 위함이었고,
- 또한 대제사장이란 직분이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그 백성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 그리고 끝으로 아론의 뒤를 이어 엘르아살이 하나님이 택하신 차기 대제사장이 될 것을 공식적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이 엄숙한 절차에 의해서 아론은 자기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가는 자처럼 갔다. 그가 죽기 위하여 산에 올랐다는 것은 성도의 죽음(아론은 "여호와의 도소" 라고 했다)이 그들의 승천이라는 것을 뜻한 바, 그들은 죽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간다.
2) 모세의 손은 처음에 아론의 제사장 복을 입혀 주었었으나, 이제는 그것을 벗긴다.
제사장직을 하는 의미에서 본다면, 제사장복을 입고 죽는 것은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의 옷을 벗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알몸으로 왔으니 알몸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옷, 장식품, 또는 명예는 별로 적당한 것이 못 된다. 멀지 않아 죽음 이 우리의 영광을 벗겨가고 우리의 모든 직능을 빼앗아가고, 우리의 금관을 찾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 제사장 옷을 벗기라고 명령하심은 — 아론에게 맡기셨던 대제사장의 직분을 거두신다는 의미이며, 아론의 생애가 다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아론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대제사장으로 위임받아 그 웃을 업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옷을 벗게 되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호르산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였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한 세대가 끝나고 그 세대에 있었던 죄의 형벌이 끝나듯이(35:28) 아론의 죽음은 곧 광야 1세대의 종결을 암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을 허락하시고 다양한 직분과 사역을 주신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에게는 인생의 종말이 있다(시90:10). 하나님이 천국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들을 충성되게 행하여 훗날 잘했다 칭찬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3) 모세는 즉시 제사장의 의복을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혀 주었다. 즉 그에게 그의 아버지의 예복을 입히고, "그의 띠로 그를 힘있게" 해 준 것이다(사 22:21).
(1) 이것은 모세에게 큰 위안이 된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제사장직에 관한 율법을 주었었고, 이제는 그 제도가 계승되는 것을 보았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해서 하나의 등불이 임명되고 죽음도 그 불을 꺼버릴 수 없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교회에게 아름다운 징조를 보여 준 것이다. 즉 사역자들과 신도들(영적 제사장들이다)의 한 세대가 가면 또 다른 세대가 그들과 귀를 이르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아론으로서는, 사랑하는 자기 아들이 살아 남았고, 자기의 뒤를 잇고, 또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의 한 상징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제사장직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구화될 수 있다. 아론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주여, 이제 주의 종은 편안히 떠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뵈었음이니 이다."
💡 자신의 가는 길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될 호르산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아론의 심정은 어땠을까?
-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겪어온 기나긴 광야 생활 동안에 체험했던 하나님의 기적과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와 회개 및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도가 그의 마음 속에 가득 왔으리라.
(3) 그 백성들에게는 큰 친절이다.
아론이 죽기 전에 엘르아살이 취임한 것은, 아론의 집안에 대하여 나쁜 생각을 품은 자들이 아론의 죽음을 이용하려 그의 아들을 물리치고 제사장을 세우려 하는 따위의 유혹를 막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이미 결정나고 말았으니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으랴? 또한 그들 중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격려가 되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이기도 했으며, 하나님의 진실함이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약속이기도 했을 것이다.
**4) "아론은 거기서 죽었다."
제사장복을 벗은 후 즉시 그는 편안히 누워 죽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의 능력 이상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또한 선한 자들의 바램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 상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세대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그 이상까지 오래 살려고 애쓰는가? 모세와 엘르아살은 동반자들과 함께 아론을 그 자리에 묻었다(신 10:6 참조).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아론을 뒤에 두고 내려왔을 때, 아마 그들은 오히려 아론이 자기들을 뒤에 두고 더 좋은 세상으로 올라가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온 회중이 "30일을 아론을 위해 울었다" (29절).
엘르아살로 아론의 자리가 보충되었다. 오히려 엘르아살은 생의 황금기에 있었으므로 아론보다는 공무에 더 적합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인이 된 대 제사장 때문에 곡을 한 것이다.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사사건건 그에게 원망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죽자 그들은 그를 애도했다. 이로써 자기들의 즐거움을 감사치 않으려 하던 많은 자들은 그것을 잃고 난 후에 슬퍼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많은 선량한 자들은 생전에 보다 죽어서 더 영예를 받는다는 사실은, 살아서는 핍박을 받던 자들이 죽으면 그들의 무덤이 곱게 단장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 온 회중은 아론이 함께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었음을 알아첸 것이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들의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에게 임하였다는 것을 지각하게 됨과 동시에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벌하시는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 영적교훈 서론부
본문은 가데스 재집결에서부터 모세의 신명기 설교가 있었던 모압 평지까지의 행군 중에 있었던 각종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제20-25장의 연속 부분.
이러한 본문은 이스라엘의 에돔 땅 우회 사건을 기록한 지난 단락(14-21절)에 이어 아론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아론은 이스라엘이 가데스를 출발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여 호르산에 이르렀을 때 산꼭대기에 올라 아들 엘르아살에게 대제사장직을 승계하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때는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이었으며 아론의 나이 123세였습니다.
아론이 이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것은 므리바 물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으로(10-13절)
-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여 줌과 동시에
- 인간 제사장직의 불완전성과 한계성을 보여 주어 완전한 제사장직의 필요성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히7:21; 8:1-4).
한편 본문의 아론의 죽음 사건은 시간적 순서로 볼 때 20, 21절에 나오는 에돔 왕의 대적보다 앞선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돔 왕의 대적을 먼저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의 에돔 땅 우회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 때문인 듯합니다.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