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레위기 13, 시편 15, 16, 잠언 27, 데살로니가후서 1
묵상구절
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에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음행하기 시작하였다.
25:2 그 여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신들의 제사에 초대하니 백성이 함께 먹고 그 여자들의 신들에게 절하였다.
25: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과 결합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다.
25: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을 붙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아라. 그러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날 것이다." 하시니,
25:5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각각 자기가 관할하는 자들 중에서 바알브올과 결합한 자들을 죽여라."
25:6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서 울고 있을 때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이 모세와 온 이스라엘 회중이 보는 앞에서 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자기 형제들에게 왔다.
25:7 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이를 보고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잡고,
25:8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장막 안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자의 배를 함께 꿰뚫어서 그 둘을 죽이니, 전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다.
25:9 그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이만 사천 명이었다.
25: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5: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들 가운데서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서 나의 분노를 돌이켰으므로, 이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내 질투심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
25:12 그러므로 너는 말하여라. '보아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겠으니,
25:13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 될 것이다.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기 때문이다.'"
25:14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자와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이니 살루의 아들이며 시므온인의 가문 중 한 지도자이며,
25:15 죽임을 당한 그 미디안 여자의 이름은 고스비로서 수르의 딸이며, 수르는 미디안 백성의 한 가문의 우두머리였다.
2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5:17 "너희는 미디안 사람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쳐 죽여라.
25:18 이는 브올의 일과 브올의 일 때문에 전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누이, 곧 미디안의 한 지도자의 딸인 고스비의 일로 너희를 속였기 때문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스페셜포인트제 25장의 두 단락은 바로 이같은 우상 숭배 행위를 다름아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자행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이 어제 모압 평지에 주둔한 이태 일부의 무리가 주변의 이방인들과 동화되어 그들의 우상 곧 바알브올을 섬기기까지 되었던 상황과 이의 처리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그리고 이는 전날 시내산에서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출 32:1-35) 에 비견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애굽에서 나온 지 얼마 안되어 애굽 우상을 섬겼고 여기서는 가나안에 가까이 와서 가나안 계열의 우상을 섬긴 것만 다를 뿐 신, 구세대 모두 다 우상 숭배의 유흑에 노출되자 곧 미혹되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였다.더욱이 이 바알브올 음행 사건은 바로 앞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역사 경륜의 의지를 표명한 직후에 나온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들의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악행은 더욱더 극명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실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스라엘이 그 얼마나 소홀히 여겼는지, 역으로 이처럼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을 그대로 끝까지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마침내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얼마나 큰 것인지를 동시에 체감하게 해주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바알브올 사건 기록 중에 특이한 것은 그 사건의 발발 및 이에 대한 직접적 처리 과정보다도 이 과정 중에 있었던 하나의 에피소드인 소위 ‘비느하스의 의분'이 더욱 크게 강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의분은 정의에 대한 열정의 또 다른 발로이다.
- 이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에서는 희생과 사랑 못지않게 때로 의분이 요청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럴 때 하나님의 종들은 세속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정외를 외치고 집행할 의무가 있다. 그럴 때 전날 비느하스 개인이 그 가문의 제사장 직분을 영구히 보장받고 나아가 이스라엘 진영 전체에 내리신 형벌이 끝났듯이, 하나님의 정의를 외치는 그 개인과 그가 속한 교회나 사회 전체가 정화되고 축복받을 것이다. 또한 이같은 의분이 모든 시대와 지역에 거듭 요청된다는 사실과 개인적 희생과 위험을 무릅쓴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의 의분의 실천을 통한 각개인과 사회 전반의 측복의 회복은 기독교 2000년 역사의 숱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체험적 역사이기도 하다.
- 실로 사단(the Satan)의 유혹은 그 겉모습만 달리했을 뿐 언제 어디서나 상존하고 있으며 타락한 인간의 죄성 또한 근본적으로 번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실례라 아니할 수 없다.
- 보다 상술하자면 먼저 전반부 1-5절이 음행을 매개로 발생한 바알브올 숭배 사건과 우상 숭배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적 처형을 기록한다. 그리고 후반부 6-18절은 우상 숭배의 원인이 된 이방 여인둘과 옴행하는 자들에 대하여 제사장 가문의 비느하스(the Phinehas)가 의분을 품고 공개적으로 처형함으로써 우상 숭배의 재발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뿌리뽑은 사실 및 이와 관련된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비느하스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등을 보도하고 있다. 이 바알브을 음행 사건은 이제 가데스 대반역 사건으로 인한 38년여의 광야 방랑이 끝난지 채 얼마도 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요 이제는 사실상 출애굽 당시의 구세대는 거의 사멸하고 신세대가 이스라엘 역사의 주측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충격의 도를 더한다.
- 거듭 강조하였거니와 우상숭배(Idolatry)는 하나님의 명령의 일부를 어긴 것이 아니라 아얘 하나님 자체를 부정하는 근본적 범죄이다. 또한 여호와 절대 신앙을 가진 자는 그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과 그분의 명시적 율법에 따라 악을 버리고 선을 지향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상 숭배에 빠진 자는 윤리 의식과 심관 사상의 결여로 굳어 자신을 쳐서 억누르면서까지 선을 행할 필요없어 자연스럽게 각종 악행을 행할 수 있다. 즉 인생은 그의 역사와 인생의 근본에 대한 인식과 믿음의 통시적 체계인 신앙의 여하에 따라 그의 인격과 행동 양식이 결정되기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우상 숭배는 모든 악의 출발점일 수도 있다.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민수기 25:1-5)
Ⅰ. 이스라엘은 모압과 미디안 사람들의 딸들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했다. 그들은 육체적인 음행과 함께 영적인 음행의 죄도 범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바알브을에 부속되었기" 때문이다(3절). 전부가 아니며, 또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올가미에 걸렸다.
이에 대해서 몇 가지를 고찰하여 보자.
1. 발락은 발람의 조언을 듣고,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았다" (계 2:14).
우리를 죄짓게 하는 자는 우리의 최대 원수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발락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스라엘과 싸웠다면, 이스라엘은 용감하게 능히 그들을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락이 그들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내어 우상 숭배의 잔치로 그들을 초대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뿌리째 넘어진 것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정복당했다. 발락의 칼에 쓰러지지 않는 자들이 이제 그가 보낸 매춘부에 의해 쓰러지게 되었다. 우리는 엄한 얼굴을 하고 달려드는 폭력보다도 웃으면서 달려드는 매혹술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모압의 딸들이 그들을 유혹하고 그들을 정복하였다.
하와가 최초로 범죄한 이래, 여자들은 비록 약하기는 해도, 많은 사람들의 올가미가 되었다. 그렇다, 많은 강한 남자들이 이방 여인의 입술에 의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잠 7:26) 솔로몬이 증명하여 주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그에게 올무가 되고 그물이 되었던 것이다(전 7:26).
👀 2절, 그 여자들이 ... 백성을 청하매
- 부르다, 초대하다 : 이것은 별다른 의미 없이 누구틀 부르는 행동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불러 초대하는 것을 의미한다(레 23:24; 왕상 1:9). 모압 여인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불렀던 것이다. 이 초대는 자기들과의 성적인 관계와 함께 자기들의 신들에 대한 제사에 동참하기를 요구하는 간교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영적인 간옴을 권하는 초대를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생활 가운데 불신자들과의 교제를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설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불신앙과 죄악됨을 항상 경계하고 그들에 동화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자기 신들의 제사에 초대하니 백성이 함께 먹고 그 여자들의 신들에게 절하였다(복수형).
- 그 당시 모압 사람들은 여러 잡다한 신들을 섬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특히 모압 사람들은 가나안 신들 중에서 최고의 신인 ‘바알'을 주로 섬겼다. 바알은 ‘주인'이란 뜻으로(호2:!6), 농사를 주업으로 하였던 그들에게 다산과 풍요를 내려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 절하였다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신들에게 제사한 것이 단 한 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였음을 알 수 있다. 즉 한 차례의 실수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과 함게 제사드리기를 즐겼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3. 음행과 우상숭배는 언제나 함께 있다.
음행하는 자들은 여자들과 음탕한데 빠짐으로 양심이 마비되고 타락하여 거기에 만족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고, 우상 앞에 쉽사리 절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곧 음행과 우상 숭배는 언제나 같이 있는 것이므로 바알브올의 예배에는 언제나 부정한 것이 따르기 마련인 것으로 생각된다. 정숙의 울타리를 무너뜨린 자들은 경건의 기반으로도 이를 붙잡아맬 수 없으며, 육체의 정욕으로 스스로의 명예를 더럽힌 자들을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명예를 떨어뜨린다는데 대해 하등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 음행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정욕에 의한 간음 행위를 의미하기보다는 이교적인 우상 숭배 의식 때에 행하는 성관계나(호 4:13)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떠나 다른 신을 섬긴다' (시73:27; 호 4:12)라는 뜻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이러한 단어의 용례로 보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압 여인과의 음행은 단순히 육체적인 간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교적인 우상 숭배의 관습을 받아들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영적인 간음의 의미까지 내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2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적인 순결과 더불어 영적 순결을 동시에 요구하신다(출 20:3-5,14).
본문에서는 싯딤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옴행과 우상 숭배를 통하여 자신을 더럽히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거짓 선지자 발람을 통한 발락 왕의 궤계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셨으나(22-24장),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우상 숭배의 유흑과 육체의 쾌락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함에도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6-13절; 롬 9-11)이 얼마나 놀라운가?
특별히 본문은 모압 여자들이 던저 이스라엘 백성을 유흑했다고 말하지 않고 ‘그 백성이 음행하기 시작했'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아무리 그 일이 발람의 악한 꾀에 의해 (31:16) 미디안과 모압의 계략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헤도 결국엔 이스라엘이 그들과 함께 악을 행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그들의 죄악은 그들이 직접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다.
4.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 그 제물을 바친, "바알브을에게 부속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친 제물" 을 먹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을 먹음으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10:20).
그것은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하였다(시 106:28). 그것은 우상 자체가 죽은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영웅이 죽었을 때 그 주검이 신격화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 음식을 먹고, 절하며 성적으로 타락한 제사 의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따라서 본서 기자는 이러한 모든 행위가 바로 바알에게 그들 자신을 스스로 묶어 맨 행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에 자신의 몸을 맡겼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을 바알에게 헌신하였다는 것이다.
본문은 바알브올에게 스스로를 묶은 대상을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전체의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이는 바알 신전의 예배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본 사건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삶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또한 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 성결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바알브올에게
- 바알브올은 모압인과 미디안인들이 섬겼던 신이었으며, 그 신당 가까이에는 창기들의 방들을 두었다. 왜냐하면 음행이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을 경배하고 그를 통하여 축복을 얻는 데 요구되는 하나의 예배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신전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신전에 찾아온 남자들은 제사 의식의 한 부분으로 음행을 하였던 것이다.
5.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그 죄가 더욱 심각한 것이 되었다.
그 곳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요,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곳이었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잔치에서 풍성한 식탁을 대할터인데 그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우상의 제물을 먹음으로 해서 지금까지 그들이 충실히 믿어오던 하나님을 극단으로 배반하고, 은혜를 잊어 버렸으며 속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Ⅱ. 이러한 죄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노엽게 여기시었다.
💡 본문은 히브리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에 참여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의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본문은 또한 이스라엘이 자신의 백성임에도 그들을 적대시하시어 그들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죄에 대한, 특별히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매우 강렬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음행은 발람의 모든 사술로도 이룩하지 못했던 일,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하시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의 원수가 되고, 그들과 싸우시게 되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 아니 이처럼 많은 왕들이 죄를 범함으로 그 죄가 국가적인 죄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는 일이 많으시다.
💡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다' 란 표현은 단순히 ‘진노하셨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범죄에 대한 심판이 동반되었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결코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진노를 쏟지 않으시는 너무나 인자하신 분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나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죄를 극도로 증오하시며 회개치 않은 죄에 대한 진노를 결코 누그러뜨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시38:3).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요9:39)을 기억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빌2:12). 그러할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염병이 즉시 발생하였다, 우리는 염병이 그쳤다는 말(8절)과 염병으로 인해 죽은 자의 숫자(9절)는 읽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염병의 시작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3절)라는 말씀에 "염병이 그 중에 유행하였다" (시 106:29)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염병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요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죄에 대해 알 맞는 형벌이다. 한 사람이 걸리면 또 다른 사람이 뒤따라 걸린다. 염병은 물론 가장 죄를 많이 지은 자에게 단단히 달라붙는다. 그자는 즉시 그 금지된 열락의 값을 치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하나님께서 그때 그 사람들에게 물으셨던 것같이 언제나 그런 죄인들에게 염병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말씀은 여전히 실현되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3:17).
2. 백성들의 두령들을 잡아 제판자들의 손으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왜냐하면 오직 그 길만이 염병을 물리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4절).
"백성들의 두령들을 잡으라" 고 하였다(백성들 가운데서 그 중의 일부가 이스라엘의 진영을 떠나 우상 숭배를 위해 모압 땅으로 갔기 때문이다).
💡 어쨌든 **‘모든 두령들'**이란 말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공적인 지도층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백성의 모든 두령들을' 잡아 죽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처형 명령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상숭배와 음행의 범죄가 얼마나 무섭고 큰 범죄인지를 잘 보여 준다.
싯딤에서 그들의 음행은 하나님 앞에 어떤 행위였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본문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벌하기로 하셨는가?
- 싯딤에서의 음행과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거듭 경고하신 명령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거부한 사악한 행위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방인들과 음행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는 범죄에 빠졌다면 그 땅에 들어간 이후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상황은 매우 심각했고 하나님의 진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불타올랐다. 무엇인가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고 하나님의 뜻을 재확인시키기 위한 강력한 해결책이 필요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자신들 뿐만 아니라 백성을 올바로 인도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그들을 징계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당사자들을 잡아내어 그들을 벌하시지 않으시고 백성의 두령들을 벌하시는 것은 합당치 않은 처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지도자의 미치는 영향력과 그 책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백성들을 올바르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골3:23). 하나님의 이러한 처사는 바로 지도자들의 위치와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목매어 달라."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나머지 백성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희생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우 선 제판자들이 그들을 칼로 치고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 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우둔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그들의 지도자가 그들의 음행과 우상 숭배 때문에, 그들의 지위에도 상관없이 준렬한 심판을 받는 것을 보고 죄의 무서움과 그들을 항한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죄를 범한 지도자들이 심판의 본보기가 되었다.
💡 이처럼 백성의 두령들을 처형하여 그 시체들을 대낮에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나무기둥에 매어 달라고 하신 것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 주기위한 것이었고 또한 음행과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게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이같은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신32:15-26; 왕상 9:6-9)
‘그리하면 ... 떠나리라’
- 본문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원래의 인자하고 사랑이 많으신 모습으로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이며 범죄에 대한 징계로 주어진 ‘염병'의 재앙을(9절) 그치게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이와 같이 처벌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위험부담을 줬을까? 그에 따라 모세는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따라서 모세는 나름대로의 묘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바로 직접 바알브올에게 부속된 관련자들만 처벌하는 것이었다(5절).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재앙인 염병은 떠나지 않는다(6,8절).
- 그 두령들은 백성들을 통솔하는 실질적인 지도자들이었고 또 그들을 처형한다면 그들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이 갈 사람들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모세는 자신이 그 일을 강행하려 했다면 오히려 그 모든 두령들이 역으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 이처럼 하나님은 분명히 그 진노를 돌이키고 염병을 그치게 할 방법으로 백성의 모든 두령을 처형하라고 즉 그 모든 두령의 피로써 속죄하라고(16:45-50; 삼하24:15-25) 명하셨다. 하지만 백성의 모든 두령들을 죽이는 것은 모세에게 있어서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겼을 것이다.
5절, 모세는 아마도 그 사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이 재앙의 책임을 물어 너희 모든 두령을 목메어 달라고 명하셨다. 그러니 혹 너희가 너희에게 속한 자들 가운데 바알브올을 숭배한 자들을 직접 죽이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염병을 그쳐 주실까 하노라"라고...
각각 자기가 관할하는 자들 중에서 바알브올과 결합한 자들을 죽여라
- ‘그의 사람들' 이라는 히브리어의 표현은 지도자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백성들을 인도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 준다. 참된 지도자는 군림하거나,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이들을 마처 자기의 가족처럼 여기며 애착을 갖고 돌보아야 한다.
- 또한 참된 목자되신 주님처럼 자기 양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인격적인 관계를(요 10:1-8) 이루어야 하며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영적 교훈 서론
본장은 가데스 재집결에서부터 모세의 신 중에 있었던 각종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신명기 설교가 있었던 모압 평지까지의 행군 20-25장의 종결 부분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본장의 전반부에 헤당하는 부분으로 이스라엘의 모압 여인과의 음행 및 바알브올 숭배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사건은 제 22-24장의 발락과 발람의 이스라엘 저주 시도 사건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24:25에 보면 발락과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으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과 역사로 말미암아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발락이 약속한 재물과 명예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발락과 헤어지기 전에 신의 힘을 빌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방법 대신 내적 타락을 유도하는 방법을 발락에게 조언해 주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31:16).
본문의 음행과 바알브올 숭배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이 발람의 간계에 넘어간 결과인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의 결과가 무엇인지 쓰라린 대가를 지불하여 배워야 했으며 이스라엘을 범죄에 빠뜨린 발람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31:8). 여기서 우리는 죄의 비극적 결과를 다시 한번 배우게 됩니다.
●비느하스의 열심(민수기 25:6-15)
여기에서는 악과 정의 사이의 대담하고도 단호한 투쟁의 기록이 눈에 띈다. 물론 정의가 승리를 거두었다.
Ⅰ. "스므온인의 종족 중 한 족장" 이었던 시므리의 악덕은 가장 뻔뻔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악덕은 모세와 그리고 많은 이스라엘의 선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한 미디안의 창녀를 공공연히 데리고 올 정도였다(그 창녀는 그 자신처럼 높은 신분을 가진, 미디안 백성 중 한 종족의 두령의 딸이었다). 시므리는 그 창녀와 함께 모압의 신들을 예배하러 간 것만으로도 이미 지나친 처사인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 일이 끝나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기 위해 그 창녀를 이스라엘 진영으로 데리고까지 왔다. 그는 그 창녀가 자기의 친구인 것과 어느 이스라엘의 딸들보다 더 마음에 든다는 것을 공적으로 시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데리고 "막에까지 들어갔다" (8절). 그 말은 곧 음탕한 짓을 하기 좋은 그런 은밀한 방이나 장소를 말한다.
이처럼 그는 "소돔 사람들처럼 자기의 죄를 드러내었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고 있었다. 이 모든 환경은 그의 죄를 더욱 현저하게 만들었으며 더욱 더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 원어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어 오만불손하게 미디안 여인을 이스라엘 전 안으로 데리고 왔음을 목격하고도 이스라엘 자손이 계속 울고만 있었다'는 당시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왜 염병은 물러가지 않았는가?
-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계를 당한 후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징계를 거두어 줄 것을 회막 문 앞에서 호소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함이 없는 눈물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백성의 모든 두령을 목메어 달면 진노를 거두시고 염병을 떠나게 하리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지만(4절) 모세를 중심으로 그들은 그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들의 방법대로 처리한 후(5절)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울고만 있었던 것이다.
- → 때문에 염병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는 전혀 완화됨이 없었고 그 와중에 오히려 백성의 두령 가운데 하나는(14절) 미디안 여인을 그들의 진영까지 데리고 들어와 옴행하는 죄악을 가중시켰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이다(삼상 15:22).
- 그의 행동은 민족적인 정의에 대해 모욕하는 것이며 반항하는 것이었다. 제판자들은 죄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간섭을 받지 않으며, 감히 자기에게 손을 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대한 모든 두려음을 내버렸으며,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두려움이 되라" 고 명하신 이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 ‘목전에서'
- 본절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족장은 음행하기 위해 미디안 여인을 장막 안으로 끌어들였으며, 따라서 두 남녀의 음행 사건은 은밀한 중에 진행된 것이 아니라,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진행되어졌던 것이다.
이 모습 속에서 죄의 어떠한 속성을 볼 수 있는가?
- 이는 실로 가공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이스라엘 진영 밖에서만 행해지던(3절) 음행과 우상 숭배가 이제는 대담하고도 오만불손하게 진영 안에서, 그것도 모든 백성 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진 것이다. 이는 아마도 백성의 모든 두령을 처형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지 못한(4절) 모세의 결단성 결여의 결과로 본절의 족장된 그는 오히려 자신의 족장된 지위를 이용하여(14절) 거리낌 없어 더욱 완악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때는 이스라엘 온 회중어 회막 문에 모여 그들이 행한 음행과 우상 숭배로 인해 야기된 염병으로 하나님 앞에 울며 호소하고 있던 때였다.→ 이처럼 회개하지 않는 죄악은 계속 장성하여 기본적인 신앙 양심마저도 무더지게 한다. 야고보서 기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라고 말했다.
- 회개치 않음으로 무뎌진 신앙 앙심을 지녔던 본절의 이스라엘 족장 역서 육체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음행하다가 심지어 이방 여인을 이스라엘 전까지 데려오는 하나님 앞에서 방자하기 그지없는 죄를 범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죽음으로 이어졌다.
- 이런 상황 가운데서 백성의 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음행하는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내에 죄악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 그의 행동은 민족적인 신앙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것이었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성실한 회중들은 "회막 문에서 울고 있었다." 그것은 그러한 염병이 시작되게 된 그 죄를 탄식하는 울음이었다. 그들은 근심하며 엄숙한 집회를 열고, 입구와 제단 사이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서 떠나가기를 간청하며 울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시므리가 창녀를 데리고 그들을 희롱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죄를 없애려는 데 반해 자기는 그것을 더욱 채우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 8절, 천막 : 이 용어는 상류 계층 사라믇링 지니고 있던 특별한 천막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볼 때 미디안 여인과 음행한 남자는 족장으로서(!4절) 상당한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많은 부를 누리는 것을 최대의 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족장 시므리의 범죄와 죽옴을 보면서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처 말라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하리니 여호와를 아는 것과 여호와가 인내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라고 한 예레미야(9:23, 24)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Ⅱ. 비느하스는 참으로 훌릉한 일을 하였다.
그는 시므리의 오만한 행동을 보고, 거룩한 의분을 느껴 기도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창 혹은 칼을 들고 그 음행 죄를 범하는 자들을 좇아 그들의 천막에 들어가, 그들을 함께 꿰뚫어 놓았다(7,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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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다른 사람들은 시므리의 오만불손한 죄악을 보면서도 재앙으로 인한 현실의 고통이 거두어지기만을 바라며 단지 울고만 있었는데 그 중에서 비느하스만이 하나님의 질투심을 갖고 앉은 자리에서 분연히 일어섰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비느하스의 마음은 의도적인 범죄로 하나님을 크게 모욕하였던 시므리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시므리의 죄악을 벌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죄를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 속에 만연한 죄악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이를 제거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의를 지켰던 비느하스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교훈이 된다(시 26:4,5; 롬 6:6; 8:1-14).
오늘날도 죄악이 얼마나 심각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은 이에 대해 침묵하거나 타협하여 죄악과 공존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죄를 묵인, 방관, 허용하면 결국 그 죄가 우리틀 삼킬 것이다(벧후2:1-14).
👀 비느하스의 행위는 잔인한 살인이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의로운 행위였는가?
두 가지 면에서 하나님은 바느하스의 열심을 받아 들였다는 것을 주셨다.
1. 하나님은 염병을 즉시로 그치게 하셨다(8절).
백성들의 눈물과 기도는 이런 정의의 행동이 실현되기까지는 아무런 효력을 가져오지 못했었다. 만일 행정관이 죄를 벌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공의는 아간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수 7:13).
👀 본 사건의 구성을 보면 간접적 원인은 바로 비느하스의 의분에 찬 행동이었다. 그러나 배후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비느하스를 택하고 세우셔서 당신의 역사틀 이루신 것이다.
2.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명예를 높여 주셨다.
비느하스는 제판자로서의 자기의 의무를 다한 것뿐인데도, 그가 죄에 대해서 특별히 열심을 내어서 반항하였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명예를 위해 일 했으며, 다른 사사들이 시므리의 높은 지위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을 때 그는 감히 용기를 내어 이 일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별히 그의 행위를 기쁘게 여기셨으며, "이 일을 저에게 의로 여겨주셨다" (시 106:31).
하나님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때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만일 시므리의 친척들이 그 때문에 그에게 원한을 품으며, 그의 친구들이 그가 너무 성급하게 서둘렀다고 비난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해 주시는데 그것들이 무슨 걱정이 되겠는가? 좋은 일에는 우리가 열심을 내어야 한다.
👀 비느하스의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 중에 특벌히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나의 질투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하나님께서 단순히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미워하 거나 그들에 대해 인간적인 질투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진정한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더불어 사랑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사랑의 질투심**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질투심에 담긴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가?
-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온전히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우리에게 당신을 향한 온전한 사랑을 요구하신다(출 20:3-5; 24:7, 8). 그러하기에 때로는 우리를 징계하심으로 당신의 계획하심을 이루어 가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참다운 자녀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히12:8)
(1) 이 일로 말미암아 비느하스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 나라 최고의 애국자요 또 최고의 벗으로 지칭되었다(11절).
"그가 나의 노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돌이키게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비하심을 기쁘게 나타내신 것은 그만큼 그의 진노를 돌이키게 하는데 수고한 사람을 기쁘게 여기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백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우리가 있는 곳에서의 "악인들의 악행을 종식시키는데" 공헌할 수 있다.
👀 여기서 우리는 백성의 모든 두령을 목매어 달아 여호와의 진노를 떠나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하심으로 음행하는 자를 즉각 죽임으로 대신 충족시켰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모세의 인간적인 타협안은(5절) 실패하였지만 비느하스의 의분에 찬 즉각적인 행동은 염병을 그치게 한 것이었다.
노를 ‘돌이키심(슈브)’
- 일차적: 하나님의 진노가 돌이켜진 것
- 더 나아가: 비느하스의 공의로운 분노와 죄악의 척결은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회복시키며 구원을 이루는 일이었음.
⇒ 이러한 사역이 바로 제사장의 본질적인 임무였고, 비느하스는 그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기에 하나님으로부터 그 후손이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얻게 되리라는 평화의 언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12절).
(2) 제사장 직분이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상속되도록 언약이 내려졌다. 그것은 전부터 그에게 주어지기로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더욱 확증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위로와 명예까지 곁들여졌다. 이것은 그의 경건한 열심에 대한 보상이었다(12. 13절).
여기서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제사장 직분" 이라고 일컬어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약성서가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며, "영원히 성별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까지 연결될 만큼 완전하고 영속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제사장직분은 "평화의 언약" 을 통해서 주어졌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곧 장수와 부귀를 약속하는 일반적인 언약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제사장의 언약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도 "생명과 평강의 언약" 이었다는 말씀이 있고(말 2:5),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평화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이루어진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감당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화해시키며 그들의 삶 속에서 진정한 거룩함을 드러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출 19:6)을 깨뜨렸다. 그래서 비느하스는 적접 그 죄인들의 피를 흘림으로 속죄와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능하게 하여 깨어진 언약을 희복시켰으며 그 결과 그에게 영원한 평화의 언약이 주어졌던 것이다.
- 물론 그가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또한 대제사장직을 계승한 엘르아살의(20:22-29)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아무 분쟁 없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 이 언약에 따라 엘르아살에게서 비느하스에게로 계승된 대제사장의 직분(삿 20:28)은 엘리 시대의 일시적인 중지(삼상 2:27-36; 14:3)를 제외하고는 후대 A.D. 1세기 로마의 공격으로 성전이 파괴 되며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시기까지 비느하스 가문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갔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담대히 일하는 자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신다{계 2:10). 따라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것은 어 세상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선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자손까지도 복을 받는 귀한 일어다(출 20:5,6).
그의 봉사에 대해서 어떤 보상이 주어졌는가 보자.
정의를 실천함으로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다" (13절). → 그러므로 그와 그의 후손들은 제사를 통해서 속죄를 가져오게 하는 직분을 맡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질투)하였다." → 그러므로 그는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 을 언약으로 받았다.
하나님의 종들은 다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
●미디안 사람에 대한 복수(민수기 25:16-18)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염병으로 벌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녀들의 잘못을 채찍으로 고쳐준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미디안 사람들이 염병으로 죽었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저주를 그들에게 내려주셨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채찍으로 그들을 벌하시지 않고, 원수의 칼로 그들을 벌하셨다.
1. 모세는 비록 온유한 사람이며 복수 같은 것은 모르는 사람인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미디안 사람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 는 명령을 내리셨다(17절).
우리도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렇게 하여야 한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이 비록 우리의 오른 눈이며 또 오른 손이든지 간에 그렇게 하여야 한다(마 5:29, 30). 이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작용해서 이룩되는 거룩한 분노와 보복이다(고후 2:7).
👀 하나님께서 내리신 이 명령은 단순히 몇몇 사람을 죽이 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미디안 전체 족속을 향한 것으로서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강력한 명령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음행하며 우상 숭배에 물들도록 유혹한(18절) 미디안 족속을 완전히 멸하라는 이러한 명령을 통해 죄에 대해서는 조금의 타협함도 없이 죄의 근원까지 철저히 뿌리뽑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 이러한 보복을 꾸미도록 하는 이유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였기" 때문이다(18절).
👀 유혹하다: ‘사기하다'(말1:4), ‘교활히 행하다'(시105:25), 즉 ‘악한 계획으로 남을 속이다'란 뜻을 지닌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특히 음행 사건과 관련하여 성적인 유혹으로 번역. 하지만 그 어근에서 알 수 있듯이 어 유혹은 단순한 성적인 유흑이 아니라 발람의 악한 꾀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멸로 몰고 가려는 계획적 행위였던 것이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은 육체의 가시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음행으로 꾀어 잘못을 저지르게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들과 싸운 아말렉 사람들처럼 (출 17:14), 길이 기억되고 순엄하게 징벌되어야 하는 잘못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짓게 하는 사탄의 일을 행하는 자들을 길이 기억하시며, 더우기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는 자들을 더 잘 기억하신다. 이와 관련된 명령이 더 많이 주어진 것을 다음에(31:2) 찾아볼 수 있다.
👀 영적 교훈 서론
여기서 특히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비느하스의 의로운 열심입니다. 즉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는 음행과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행악자들의 공개 처형과 염병의 심판을 받고 온 백성이 회개하고 있는 와중에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온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를 처단함으로 하나님께 그 의로운 열심을 인정받음으로써 이스라엘에 임한 염병을 그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축복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 구원의 문제는 죄의 소멸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특히 진중의 죄를 제거한 비느하스가 하나님에 의해 영원한 제사장으로 세움받은 것은 장차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을 에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사역은 죄의 문제 해결을 통한 구원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구속사의 목표와 성취방법을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징치하도록 하신 것은 그들이 모압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죄의 길로 유혹했기 때문으로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는 악한 세력의 비극적 최후를 바 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