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5월 10일 화요일 묵상구절 신2:26-37 이스라엘이 물리친 시혼(민21:21-30)

축복둥둥 2022. 5. 10. 10:54

맥체인성경읽기

민수기 19, 시편 56, 57, 이사야 8, 9:1-7, 야고보서 2

묵상구절

2:26 내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절들을 보내어 화평의 말을 전하기를

2:27 '내가 왕의 땅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내가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벗어나지 않고 다만 큰 길만 따라 가겠습니다.

2:28 나는 왕께서 돈을 받고 파는 양식만을 먹겠으며, 왕께서 돈을 받고 주는 물만 마시겠습니다. 다만 걸어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2:29 세일에 살고 있는 에서의 자손과 아르에 살고 있는 모압 사람들이 나에게 한 것과 같이 내가 요단을 건너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까지 가게 해 주십시오.' 하였으나,

2:30 헤스본 왕 시혼은 우리들이 그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서 오늘처럼 그를 네 손에 넘겨주시려고, 그의 영을 완고하게 하고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2:31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내가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겨 주기로 했으니, 너는 이제부터 그 땅을 얻어 그것을 유산으로 삼아라.' 하셨다.

2:32 시혼이 그의 모든 백성을 이끌고 우리와 싸우려고 야하스로 나왔으나

2:33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들에게 넘겨주셨으므로, 우리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쳐 죽였다.

2:34 그때에 우리는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였고, 모든 성읍과 함께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진멸하고

2:35 오직 그 가축과 우리가 점령한 그 성읍들의 노획물만 우리의 전리품으로 삼았다.

2:36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셨으므로, 아르논 골짜기 끝에 있는 아로엘과 그 골짜기 가운데 있는 성읍에서 길르앗까지 우리보다 더 강한 성읍은 하나도 없었으며,

2:37 다만 암몬 자손의 땅과 얍복 강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명령하신 곳은 우리가 어디에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영적교훈 서론부

본문은 주로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여정을 회고하는 모세 고별 설교 제 1부 1:1-4:43의 연속 부분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암몬 침입 금지 명령을 회고하고 있는 지난 단락 (16-23절)에 이어 요단 동편 아모리 족속 시혼의 왕국을 정복한 사실을 회고. 이 사건은 민 21:21-32에 기록되어 있음.

여기서 시혼의 왕국은 요단 동편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정복하려고 했던 땅과는 무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에 자리잡은 에돔이나 모압, 그러고 암몬과 달리 시혼의 왕국을 쳐서 정복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모세가 제의한 화친을 거부하고 적대적으로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시혼의 왕국을 공격한 실제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완악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500여 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할 때 그들을 진멸하실 것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창15:16). 하나님은 그 예언을 지금 이스라엘을 통해 성취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성취와 악인의 필연적 멸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 26절, 헤스본 왕 시혼

  • 민21:27-30에는 헤스본에 대한 노래가 나오는데 어 노래에서도 시혼은 전사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혼은 정복 전쟁에 나선 이스라엘의 첫 패배자가 된다(32-34절). 이는 세상의 어떤 전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전쟁 (Holy War)' 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을 당할 수 없을 것을 시사한 것이다. </aside>

Ⅱ. 모세는 시혼에게 평화의 전갈을 보내어 그의 나라에 조금도 손상을 끼치지 않고 준비한 돈으로 상업상의 정당한 거래로 이익을 주로 약속하고 그의 땅을 통과할 통로만 제공해 달라고 청했다(26-29절).

 

 💡 모세는 단순히 평화를 전하는 말만을 위해 사자를 앞서 보낸 것이 아니라 헤스본 왕 시혼과 계약을 맺기 위해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이라는 분명힌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헤스본을 차지하는 것은 그 목적이 아니다. 그들은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는 길만을 따라 행진을 계속할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세는 사리에 맞을 뿐 아니라 극히 겸손하게 시혼 왕에게 헤스본 땅을 통과하게 헤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여기에서 시혼과 싸우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도 아니요 시혼을 무시한 것이 아니고 의심할 바 없이 그가 그렇게 행한 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즉 비록 하나님이 시혼의 마음을 완강케 할지라도 그는 변명할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복음은 주시되 그것을 믿을 은혜를 주시지 아니한 자들을 취급하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을지 모른다.

Ⅲ. 시혼은 싸움을 시작했다(32절). 이는 하나님이 그들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기 위하여 "그의 성품을 완강케 하셨고"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30절).

 

 💡 30절에는 하나님께서 시혼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였다는 말이 나오나 이보다 앞서 기록된 본문을 보게 되면 시혼의 의지가 먼저 하나님께 대하여 완강해져 있었옴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강케 하신 배후에는 전적으로 먼저 자신의 마음을 완강케 한 그의 책임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완강케 하셨고,’

  • 직역하면 ‘왜냐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굽히지 않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 원어 성경은 이처럼 헤스본 왕 시혼의 반응을 인간적인 성품의 차원에서 보지 않고 영적 차원에서 보았다, 즉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단단하게 만드심으로써 그가 더욱 완고해졌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지정의’의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배후에 있는 영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나며, 헤스본 왕의 모세의 요청에 대한 거절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세상의 영의 반응이 현실로 드러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 하지만 여기에서 본문이 세상의 가치로써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셨음을 보여 준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요구가 필연적으로 죄악된 인간의 완고한 반응을 일으킨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하나님의 요구가 더 커지면 커질수록 죄악된 인간의 완고함은 더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혼으로 하여금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게 하신 목적이 무었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가?

  •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시혼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하며 스스로 설정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혼의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처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각각의 행동 가운데서도 당신의 목적을 조금의 차질도 없이 성취해 나가신다. 오히려 세상은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범위를 넘어서까지 제멋대로 흘러갈 수 없다. 곧 모든 인간은 각기 자유롭게 행동하며 동시에 그 행동에 책임을 지니는 인격을 지닌 개별적 존재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행동은 역사의 영역 안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은 바로 그 역사의 주이신 것이다. 이는 또한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모든 일들이 개인의 자유 의지를 손상시킴이 없이도 결국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에 따라서 흘러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31절,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비로소 시혼과 그 땅을 네게 붙이노니...

  • 하나님께서는 본래 약속의 땅으로 주어지지 않았던 헤스본 땅에 대해서 새로운 계시를 주시며 이 명령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셨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얼굴 앞에는 헤스본 땅이 기업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헤스본 땅도 그들이 기업으로 삼아야 할 비전으로 바라보게 하셨다.

32절, 시혼이 그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하여 야하스에서 싸울 때에

  • 본문의 ‘그의 모든 백성' 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시혼 한 사람의 교만이 온 백성의 멸망을 이끌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대 ‘밖으로 나오다’란 뜻의 단어를 사용한 것은 특별히 시혼이 그들이 진을 치고 있던 요새에서 넓은 들판으로 나와 이스라엘을 대적했음을 말해 준다. 이는 요새를 중심으로 전쟁을 수행하던 일반적인 전술조차도 무시한 것으로서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을 얕잡아 보고 교만했는지를 보여 준다. </aside>

하나님의 백성과 다투는 자들은 곧 자기들 자신의 상처를 해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의 원수를 멸하시되 원수들 자신의 결단으로 멸망케 하신다(미 4:11-13; 계 16:14  참조).

Ⅳ.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1. 그들은 모든 아모리 사람을 즉 남자, 여자, 어린 아들을 모두 칼로 진멸했다(33,34절).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진노의 집행자들과 같이 이 일을 했다. 이제는 이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이 가득찼으므로(창 15:16), 죄의 관영이 오래면 오랠수록 마침내 그 심판의 혹독함도 더 한 것이다.

 

 💡 33절, 그를 ... 1)붙이시매 ... 2)그와 그 아들들과 그 모든 백성을 쳤고

  • 두 개의 동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연합을 잘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조치에 즉각 행동으로 순종했다(본문 원문 어법상). 

이 민족은 헌신적인 민족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로서 죽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정의의 희생 제물로 죽은 것이다. 희생 제물을 드림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로 부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차별없이 "자비를 베풀지 않고 죽인 것을 군사적인 행위를 전례로 끌여들어서는 안 된다. 자비를 보이지 아니한 자들을 자비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약 2:13).

 💡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 뿐만 아니라 성읍에 머물고 있었던 남녀와 유아들까지 멸절시켰다는 본문의 내용은 그 일이 과연 정당한 일이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성경을 인본주의라는 근거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바탕에서 유아까지 다 죽인 것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는가?

진멸하였고 (’하람’)

  • ‘하람’은 1) ‘헌신하다’, 2) ‘멸절하다’ 라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1. 첫번째로 ‘돌이킬 수 없는 헌신' 이란 의미를 가지며, 이 경우에는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는 것으로서 온전히 성소 곧 하나님께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2. 두번째로 ‘공적인 선언’ 이란 의미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에 적대적이어서 파멸되어져야 하거나(민21:2; 신7:2) 거룩한 용도로 구별되어야 하는 물건에 대하여 행하는 맹세를 가리킨다(수6:17). 이러한 것은 온전히 여호와께 바쳐져야만 했다(수6:17)
  • 본문에서는 — ‘2번째 의미가 적용됨’하나님의 이러한 심판은
    • 악이 극도로 만연한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함의 표현이었으며 (9:4),
    • 가나안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이 곧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20:18).
  • 가나안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해 적대적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들을 전적으로 파멸하기를 작정하셨으며 그것을 지금 공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다.
  • 가나안 정복에는 — ‘1번째 의미도 내포되어 있음’
  • ‘헤렘'을 수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적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져야 되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 당하는 모든 자에 대하여 인간적인 판단이 아니라 당신의 손안에서 당신의 섭리와 의도대로 다루시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인간적인 연민이나 인본주의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주춤해서는 안되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것을 자들을 다 죽여야 했던 것이다.

⇒ 위의 설명을 종합할 때, 본문의 ‘진멸하였고’ 는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여 바쳤다’ 로 번역할 수 있다.

 

2. 그들은 저들의 소유한 모든 것들 즉 그들의 성읍들(34절), 그들의 물건들(35절), 죄인들의 재산은 외인들을 위해 저축된다.

 💡 ‘진멸하여 바치는 것’에는 물건까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헤스본의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그러나 탈취물들은 이스라엘 백성돌이 소유로 취할 수 있었다. 민31:25-47처럼 탈취물들은 규례에 따라 제사장과 레위인과 회중들과 군인들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졌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제 들어간 세계는 얼마나 새로운가! 그들 대부분은 짐승들이 울부짖는 광대한 빈들에서 태어나서 일생을 살았기 때문에 밭과 성읍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거주할 집도 없었고 파종이나 추수도 알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돌연히 그들은 그렇게 잘 건설되었고 잘 경작된 나라의 주이 되었으니 이것이 그들의 오랫동안 기다리던 대망의 보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더 큰 보상의 작은 징조에 불과 했다. 거룩한 영혼들이 이 세상의 광야를 떠나 "더 아름다운 나라 즉 하늘 나라인 모든 시설을 갖춘 그 도성으로 가게 될 때 그들의 체험하는 그 변화의 기쁨은 훨씬 더 큰 것이 될 것이다.

 💡 36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붙이심으로.. 우리가 모든 높은 성읍을 취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 ‘아무리 높고 굳건한 성읍이라 할지라도 모두 취하였다’ 고 고백한다.
  • → 이러한 고백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자들 중에 10명의 불신의 무리들이 외친 말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그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1:28).
  •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채 지니고만 있는 자와 그것을 확신하는 가운데 직접 체험한 자에겐 동일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해석히 달라진다.

37절, 하나님께서 금하신 곳은 아무리 적은 땅이라 할지라도 결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혼을 칠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결코 암몬의 땅을 넘보지 않았다. 그들의 정복은 하나님의 명령에 매우 충실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