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성경읽기
신명기 4, 시편 86, 87, 이사야 32, 요한계시록 2
묵상구절
12:29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네가 들어가 쫓아낼 그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전멸하셔서, 네가 그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땅에서 살게 될 때에
12:30 그들이 네 앞에서 멸망한 뒤에 네가 그들을 따라 스스로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또한 '이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어떻게 섬겼을까? 나도 그렇게 해 보아야겠다.' 하면서 그들의 신들을 찾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2:31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께 그렇게 하지 마라.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신들에게 하는 짓은 모두가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는 역겨운 것이며, 심지어 자기들의 아들들이나 딸들마저도 자기들의 신들을 위하여 불사르기 때문이다.
12:3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고, 그것에 더하지도 말고 그것에서 빼지도 마라."
13:1 "너희 가운데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나타나 네게 표적과 기적을 보이고,
13:2 그가 네게 말한 대로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 그가 말하기를 '너희가 알지 못했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우리가 섬기자.' 하더라도,
13:3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듣지 마라. 이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너희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13:4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섬기고 그분을 가까이 하여라.
13:5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여라. 이는 그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해 내고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를 속량하신 여호와 네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말하며,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신 그 길에서 너를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네 가운데서 악을 소멸하여라.
13:6 네 어머니의 아들인 네 형제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품의 아내나 네 목숨과 같은 네 친구가 너를 은밀하게 유혹하여 말하기를 '너와 네 조상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13:7 곧 네게 가깝든지 멀든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까지 너희 주변에 있는 신들에게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하여도,
13:8 너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네 눈으로 동정하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며, 덮어주지도 말고,
13:9 너는 그를 반드시 죽여라. 그를 죽일 때에는 네가 먼저 그에게 네 손을 대고, 그 후에 모든 백성이 손을 대게 하여라.
13:10 너는 그를 돌로 쳐 죽일 것이니, 이는 그가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를 인도해 내신 여호와 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도록 너를 유혹하려 했기 때문이다.
13:11 그러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네 가운데에 악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못할 것이다.
13:12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너에게 살라고 주신 한 성읍에 대하여 소문이 들리기를
13:13 네 가운데 불량배가 나타나서 그 성읍의 주민들을 유혹하여 '우리가 가서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기자.' 한다고 하면,
13:14 너는 조사하고 살펴보고 잘 물어 보아 참으로 이런 역겨운 일이 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되면,
13:15 너는 그 성읍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칼날로 쳐서 반드시 모두 쳐 죽이고, 온 성읍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할 것이며,
13:16 또 너는 그 성읍에서 빼앗은 모든 물건들을 거리 한가운데 모아 놓고, 온 성읍과 그 빼앗은 물건을 모두 불에 태워, 여호와 네 하나님께 바쳐라. 그 성읍은 영원히 폐허가 되고, 다시는 거기에 건축되지 못할 것이다.
13:17 너는 이 진멸하여 바친 물건에 절대로 손을 대지 마라. 그래야 여호와께서 자신의 진노를 푸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며 네게 긍휼을 베푸셔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수효를 많게 하실 것이다.
13:18 네가 여호와 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여호와 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면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매튜헨리/옥스퍼드
💡 이방 민족을 도려 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의 표현이다. 이는 또한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계15:4). 따라서 이러한 도려내는 역사를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거룩함을 지켜야 했으며 (레11:45), 이는 오늘날 성도에게도 요구되는 명령인 것이다(벧전1:15).
2.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이 그들의 신을 섬길 때 사용한 어떤 의식이나 예식으로 여호와를 예배해서는 안 된다(29-32절). 그들은 우상의 형식이나 모양도 살펴서는 안 된다.
"사탄의 깊은 것을 알기 위해" (계 2:24) 그들에게 해야 할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최선의 방법은 감염될 위험이 있는 사실에 대해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의 관습을 소개해서는 안 된다.
💡 경계 시키시는 목적
- 훗날 실제로 사사 기드온은 전쟁에서 탈취한 물건 중에서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으며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히 섬기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된 사건이 있었다(삿 8:27).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본문과 같은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 이는 이방의 우상들에게 인생에 대하여 묻고 상의할 정도로 매우 적극적으로 이방 종교의 의식에 동참하고 있는 태도임을 보여 준다. 이 동사는 제 5절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계신 곳을 찾아 나서라는 명령을 내릴 때에도 사용되었다. 본문의 문맥이나 같은 장에서 나오는 단어의 용례로 볼 때 이 두번째 경고는 하나님을 찾아 나서면서 동시에 이방의 신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를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그러나 훗날 북이스라엘은 여호와와 이방의 신을 동시에 숭배함으로 약속의 땅을 더럽혔다(왕하17:33).
- 다시 말해서 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농경 사회 문화에 휩싸여 살아갈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농경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방인들의 ‘우상'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경고하신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할 때에는 이방이 섬기는 신들을 자기들의 엘로힘으로 찾아 나설 수 있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답을 구하지 못할 때에 혹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이방의 신들이 더 확실하게 자기들의 삶에 답을 준다고 생각될 때에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죄악이다. 하나님을 문제의 해결사 정도로 믿는 태도를 가진 성도라면, 다른 신들이 해답을 제시할 때는 언제든지 그 신들을 따라갈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절은 우상 숭배의 죄악을 혼합주의적인 태도와 연관지어 다루고 있다. 즉 이는 다른 이방 신을 섬기는 방법을 여호와 하나님의 예식에도 적용하려는 태도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자신에게 과연 이러한 태도는 없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다른 이방 종교를 따르는 자들이 자기들의 신들에게 맹목적으로 복을 빌어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도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약속과 지식이 없이 맹목적으로 복을 구하여 눈에 보이는 축복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는 잘못된 혼합주의적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1)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노예로 삼고 포로로 잡고 또 그들 앞에서 제거하고 파멸시킨 그들의 생활 풍습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가나안 족속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일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풍습을 채용할 만큼 번창하고 발전되지 못했다. 저들은 자기들의 최후를 알게 된 후 참으로 사악하게 미혹되어 있어서 죄인들이 가는 길로 달리고 있었다.
(2) 왜냐하면 그들의 어떤 관습들은 가장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특히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 드리는" 따위의 짓은(31절) 자연의 빛과 법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애정까지도 유린하는 것이었다.
💡 가나안 사람들의 습성을 말하고자한 것으로서 그들이 자기들의 신들에게 자녀를 불살라 드리는 일이 일상적으로 행하여지는 종교의식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러한 이방 종교 의식은 B.C. 2000년 경 초부터 가나안 땅에 알려졌으며 진노한 신을 달래어 자기들을 축복해 달라는 의미로 자기 아들과 딸들을 불살라 제사하는 의식이었다. 후에 이런 이방 종교 의식이 남왕국 유다에는 아하스와 므낫세 왕 때부터 만연했다(왕하 16:3; 21:6). 요시아가 그것을 없애긴 했지만(왕하 23:10) 바벨론 포로기 전에 다시 나타났다(렘7:31; 9:5 ; 32:35).
유다에서는 특별히 예루살렘 근처의 힌놈의 골짜기에서 이러한 죄악된 의식이 행해졌다. 레18:21은 성적 범죄를 다루는 가운데 이 의식을 다루고 있어서 이러한 이방의 종교 의식이 영적 간음임을 분명히 해주고 었다. 어 종교 의식은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걸정적 요인 중에 한 가지 요인으로도 작용했다(왕하17:17).
(3) 왜냐하면 그들의 우상 숭배의 관습들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요 그들이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 관습을 하나님 예배에 끌어 들이는 것은 그 자체도 가증스러운 것이요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은총을 받기를 희망했던 그분께 대한 모독이다. 제물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라면 참으로 나쁜 것이다(잠 15:8).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예배에 관하여 앞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제시하였던 동일한 주의를 주면서(32절) 끝을 맺고 있다. 즉 "너는 그 규례를 더 의미심장하게 한다거나 더 훌륭하게 한다는 구실로 너 자신의 생각을 더하지도 말고 또 그 규례를 더 편이하게 하고 더 유용하게 하며 혹은 간단하게 하기 위해 보류해 둔다는 구실을 내세워 감하지도 말라. 너희는 하나님께 명하신 그것 그대로 그리고 오직 그것만 준행하라." 우리가 신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할 때 신의 영접을 얻을 것을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 안에서 당신의 일이 완성되게 하실 것이다.
💡 인간이 아무런 기준 없이 행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그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32절, ‘행하기 위해 너희들이 잊지 말고 마음 속에 간직하여야 할’
이로 보건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두 가지 자세 즉 그 말씀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기를 힘쓰며, 또한 그 말씀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신앙의 순결을 유지하라는 명령: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그대로 보존해야 되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는 것은 하등한 인간의 권위를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동등하게 여겨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 온전하지 못하고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 그리고 그 말씀에서 무엇을 빼내는 것은 인간의 열등한 의지에 말씀을 끼워 맞추려는 행동과 같으며 하나님께서 불필요하고 부정확한 말씀을 하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여 말씀을 번개시키는 죄악을 범하였던 자들이었다.
●거짓 예언자(신명기 13:1-5)
💡 본장 전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는 우상 숭배 유혹에 대응하는 방법을 진술하고 있다. 당시 가나안 땅은 갖가지 우상이 다양한 방법으로 섬겨지던 우상 문화의 땅이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한 지역에는 그 지역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는 지역신 개념과 더불어 그들의 신을 섬기면서 동시에 다른 신들도 섬길 수 있다는 다신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의 신들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위험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는 제 13장 한 장 전체를 할애하여 당면한 문제인 우상숭배의 유혹에 대한 대응책을 자세하게 교훈하셨던 것이다.
본문은 우상 숭배를 도모하는 유혹자들의 유혹이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진행될 동안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와 더불어, 그때마다 이들 세력을 척결하여 완전히 진멸하는 데 힘써야 함을 매우 효과적으로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영적 투쟁에서 패배하는 자는 본장에 기록된 우상 숭배자의 최후와 같이 역사 가운데서 멸절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장에 기록된 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고 과감하게 영적 투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자에게는 본장 마지막 부분인 17b, 18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 자녀로서의 영광된 미래가 보장되었다.
Ⅰ. 대단히 이상한 가정이 나타나 있다(1,2절).
- 그들 중에서, 특히 환상과 예언을 구실로 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른 신에게 가서 예배하는" 자들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이상하다.
예언자로 사칭할 수 있을 만큼 신의 계시의 방법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다른 신들에게로 가게 하고 "이웃을 부추겨 다른 신을 쫓게" 할 만큼 신의 본성과 뜻에 대하여 그렇게나 거의 알지 못할 수가 있을까? 이스라엘 사람이 과연 이러한 불경건의 죄를 지을 수 있었는가? 지각있을 사람이 과연 이러한 불합리한 죄를 범할 수 있었을까?
💡 1절,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 선지자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10).***
- 스스로 자기 의지로 일어나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을 선포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방자히 말하는 패역한 자들이다(렘23:16). 이렇게 스스로 일어나는 자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로 규정하시면서 주의할 것을 경고하셨다(마24:11). 그리고 요일4:1에서는 이들이,단순한 자기 의지가 아니라 어떤 다른 영들에 의해 사로잡혀 말하는 자들임을 말해 준다.
- 꿈꾸는 자
- 고대 근동에는 꿈이나 환상을 신이 주는 계시로 여기고 꿈을 해석하여 신의 뜻을 알려는 시도가 많았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꿈을 통하여 계시를 주신 사례가 많았으나(13:1-6; 창20:3-6; 민12:6; 욜 2:28)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계시의 꿈이 아니라 거짓 영의 지배를 받거나 단순히 인간 심리의 투영인 꿈까지도 하나님의 뜻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려는 자를 가리킨다.
이적과 기사
- 이적(표적)이로 보건대 거짓 선지자들과 꿈꾸는 자들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표적을 보이는 내면적인 이유는 결국 그들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에게로 이스라엘을 끌어가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 표적은 그 표적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표적이 가리키는 내용에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때에 보여 주신 모든 이적은 다 오트 로 나타난다. 이는 결국 그 이적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적을 일으키시는 분이 여호와임을 나타내어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의 역할을 한 것이다.
- 기사에 대해 성도가 가져야 할 생각은 하나의 수단과 방편에 지나지 않는 이적과 기사보다는 하나님의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 이적과 기사에 집착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적이나 행하는 비인격적인 우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으나, 그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사모하는 자는 이를 통하여 오히려 그의 인격과 삶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변하는(롬8:29) 표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과 유사한 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출7:10-12).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대적할 세력들도 이러한 이적과 기사를 행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살후2:9;계16:14; 19:20).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서 그것을 본다면 그것은 별로 이상스럽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과 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학문과 종교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신상들을 통해 예배할 뿐만 아니라 신적인 영광을 성도들과 천사들에게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다른 신들을 "쫓아 섬기게"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런 것이 강한 망상들의 힘인 것이다.
💡 2절, 다른 신들을 우리가 쫓아 섬기자
- 이 말 가운데는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딴 길로 걸어가자는 제안이 내포되어 있다(9:16). 하나님의 길이란 곧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기 이방의 예식을 따르자는 제안임을 알 수 있다. 본문의 표현은 이방신의 인도를 따라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이방신에게 예속된 삶의 태도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준다.이단자들의 유혹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는 것은 결국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렇게 유혹하는 자들은 영적인 세력을 그 배후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단의 노예가 되는 길이기 패문이다. 즉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사단의 세력 안에 들이 영원한 거짓과 죽음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 거짓 선지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게 하며, 악한 영의 수하에 들어가 그 영의 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약속이 일어날지라도,
- 거짓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한 말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살후2:9,10).—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게 하며, 악한 영의 수하에 들어가 그 영의 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이단자들의 유혹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는 것은 결국 세상의 노예가 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렇게 유혹하는 자들은 영적인 세력을 그 배후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단의 노예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써리는 자는 사단의 세력 안에 들어 영원한 거짓과 죽음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 거짓 선지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 이러한 거짓 교리를 확증하기 위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리라 것은 더욱 이상하다. 하나님이 친히 이러한 타락한 방법에 어떤 후원을 해주셨으리라고 생각될 수 있는가? 거짓 선지자가 그러면 참된 기적을 행했는가? 그것은 여기서 단지 두 가지 이유로 상상된다.
(1) 이러한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도록 하는 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가 참된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다른 신을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면 너희는 그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율법은 확실히 영구적이고 변경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가정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있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이라고 하는 가정이다. 즉 천사가 다른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 말은 우리가 받은 복음이 확실성과 항구성을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 비록 거짓 선지자들이나 꿈꾸는 자들은 악한 영을 배후에 두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일어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할 것이지만(18:20; 왕상22:24 ; 렘23:16),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악한 의도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심으로 연단하실 것을 본문은 나타낸 것이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백성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그분의 섭리 안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방 도처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유혹이 횡행하지만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할 때 사단이 왕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
(2) 협잡군의 위험과 거짓 기사들에(살후 2:9) 대비하여 그들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거짓 선지자가 만들어낸 신임장은 너무나 교묘하게 위조되어 있어서 너희가 그 사기성을 분별해낼 수 없고 그들을 반증해 낼 수도 없음을 생각하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를 다른 신을 섬기게 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그들을 거짓 예언자로 입증해 주는 충분한 이유다. 즉 하나님이 신성의 통일성의 진리 만큼 명료한 진리를 떠나 다른 증거는 없고 오직 살아 계시고 참된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 율법 만큼 분명한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다." 우리는 진리의 하나님이 "다른 신들에게로 가자" 고 하는 그런 유혹의 엄청난 거짓말을 승인해 주기 위하여 당신의 기적을 허락하시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왜 이런 거짓 선지자에게 이러한 명백한 인장을 위조하도록 허락되었느냐고 질문 받는다면 답이 무엇일까? 그것은 여기에 해답되어져 있다(3절). 즉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너희의 지조의 견고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온전한 자들과 거짓되고 부패한 자들이 들어나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시험을 너희에게 내어 놓으신다. 그것이 너희를 시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자신이 이 시험에 무사히 통과되었는지 그리고 너희의 위치에 확고히 서 있는지 살펴보라."
Ⅱ. 여기에는 이러한 경우에 꼭 필요한 책임이 나타나 있다.
1. 이 시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
"너는 그 선지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3절). 너희는 그가 너희에게 유혹하는 그 일을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내성 있게 그 유혹에 귀를 기울여서도 안되고 극단적인 멸시와 혐오로 그것을 배격해야 한다. 이러한 암시는 토론 정도로도 있어서는 안 되고 아예 그것에 대해서 귀를 막아야 한다. 사탄아 물러가라."
어떤 유혹들은 너무나 사악하게 타락된 것이어서 토론해서는 안 되며 듣기조차 말아야 한다.
그 다음 이어 나오는 ***"너희는 여호와를 청종하라" (4절)***는 말은 다음의 두 가지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1) 유혹으로부터의 보존을 처방하는 것으로, 즉 너희의 의무를 지키고 유해한 길을 떠나라.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버리지 않는한 우리를 버리시지 않을 것이다.
(2) 혹은 그 유혹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마련해주는 것으로 즉 기록되었으되 너희는 여호와를 따르고 그에게 복종하라. 그러므로 내가 우상에 대하여 무엇을 한단 말인가? 라고 말하라.
💡 이스라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해야 한다
- 본문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이 제시한 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인생을 파멸로 인도하는 이방 우상의 뒤가 아니라, 오직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잠 16:9)의 뒤를 쫓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순히 그 뒤를 따라가는 자들로 전적인 삶의 주권이 행동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 ‘부종하고’ — ‘~에 매달리라, ~에 달라붙다’"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을 떠오르게 한다.
- 누구를 섬기며 부종해야 하는가?
-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함을 보여 준다. 즉 그분 곁에 붙어있는 데 그치지 말고 그분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함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필요할 때만 하나님 곁에 달라붙어 있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기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결국 본문을 통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진실되고 긴밀한 인격적인 교제이다.
2. 시험자를 살려두지 말라(5절).
그 거짓 선지자는 죽여야 하나니 그가 행한 그 시험에 대한 형벌로(유혹자는 비록 그에 의하여 아무도 유혹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죽여야 한다 - 그 관에 붙은 의도가 반역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행하는 그 이상의 위해를 막기 위하여이다. 이것이 "악을 제거함" 이라 일컬어진다. 죄인을 제거하는 일 외에 죄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일 이러한 범죄가 처벌되지 아니한다면 그를 처벌해야 할 자들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그 위해는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 감염은 부패한 지체를 자름으로써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위해를 가하는 자들을 제거함으로써 막아야 한다. 이와 같이 위험한 질병은 늦기 전에 제거되어야 한다.
💡 선지자나 꿈꾸는 자를 죽여야 함
- 그들을 죽이는 주체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실 때 이스라엘을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이로 보건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말하는 바 공의의 심판을 행할 책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 책임을 잘 준행했는가?
- 그러나 역사적인 기록에 보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를 죽인 것(왕상18:40)과 이스라엘 왕 예후가 바알의 선지자들 바알의 당에 가득 모아 놓고 진멸시킨 것(왕하 10:18-28) 외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엄격히 지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판단이 흐려지고 심지어 이방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의 기준을 삼은 결과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도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애착을 갖지 않는 잘못 이외에, 하나님의 공의로써 악을 척결하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잘못을 한 가지 더 범할 수도 있다. — 이는 판단하는 일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여 모든 것을 그분께 떠맡기고 악을 제거하려는 책임을 회피하며 교회 안에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무작정 감싸려 하는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 5:13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교회 공동체가 할 일을 구분하여 보여 준다.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쫓으라".
물론 공의로 판단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하지만 이스라엘의 공동체에게 주신 악한 자를 심판해야 하는 책임과 교회 공동체가 악한 자를 내어쫓아야 할 책임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분명히 이행해야 하는 엄중한 책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 죽여야 하는가?
- 이들이 하나님을 저버릴 것을 말로써 유혹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을 말로 유혹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게 하려는 자들의 분명한 목적은 하나님의 길에서 잘 걸어가고 있는 자들을 그 길에서 분리시켜 몰아내기 위한 것이라.
- 이처럼 거짓 선지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율법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는 자를 말로 꾀어 마음속에서 율법의 말씀을 몰아내고 대신 이방의 가치관을 그 마음에 심어 놓는 것이다.
-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깊이 심어 놓고 있지 않는다면 쉽게 거짓 선지자의 유혹을 받아 다른 것을 마옴에 심어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벧후2:18은 이렇듯 마음 중심에 말씀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를
—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하였다가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된 자'***라고 소개한다.
결국 하나님을 그 중심에 모시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삶의 가치를 정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허탄한 자랑에 이끌려 얼마든지 삶을 파멸로 이끄는 정욕에 자기를 내맡길 수 있는 자들임을 보여 준 것이다.
이스라엘은 개개인의 마음으로부터 악을 불에 태우듯 완전히 추방해야 한다.
-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개개인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그 마음 속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선을 간직하는 것임을 말해 준다. 또한 율법의 ‘죽이라’는 각종 명령도 다 거룩한 백성으로부터 악을 철저하게 제거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한다.
●유혹자(신명기 13:6-11)
우리와 가깝고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우상 숭배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지엽적인 율례가 계속 처방되어 있다.
Ⅰ. 우리가 사랑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으며 우리가 기쁘게 해주고 싶어하고 우리가 말을 잘 들어주는 그런 자들의 손을 통하여 간청하는 것이 유혹자의 정략이다.
여기에는 그 유혹이 선천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형제나 아이들로부터 그리고 선택으로 인하여 가까와진 우리의 아내나 친구들, 그리고 "우리와 생명을 함께 하는" (6절) 그런 자들을 통하여 온다고 가정되어 있다. 사탄은 아담과 이브를 통해 시험했고,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통해 시험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다가 하나님 앞에 죄짓지 않기 위하여, 그가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구실로 악한 제안을 할 때 그것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있어야 한다. 시험은 은밀하다고 가정되어 있다. 우상 숭배는 어두움의 일이다. 그래서 그것은 빛을 두려워하고 숨기를 좋아한다. 유혹자 이런 사실을 암시하면서, "은밀히 너를 유혹할" 것이다. 그리하여 죄인은 거기에서 스스로에게 비밀과 안전을 기약하며, 유혹자도 그에게 비밀과 안전을 보장해 준다.
💡 유혹자는 친분 관계를 이용하여 인간을 멸망의 올무에 걸리게 만들기도 한다. 더욱이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가족을 이용하여 그러한 일을 저지른다.
그리스도께서 가족이 원수라는 말을 하신 것(마 10:36)은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있어서 인간을 올무에 묶어 그 길을 방해하는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이 가족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임을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요1:12).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를 한 집안의 영적 가장으로 모셔야 하며 모든 혈통과 육정의 요구는 모두 하나님의 의지와 다스림 아래에 놓여야만 하는 것이다.
거짓신들이 섬김을 받기 위해 제안하는 내용에 관하여 살펴보면,
- 시험자는 이런 신들을 예배하는 것이 신앙의 보편적인 관례라고 암시한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신만을 숭배한다면, 그들은 괴상하고 또 유별난 사람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런 신들이야 말로 "사방에 둘러있는 모든 백성들의 신들이요" 참으로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의 신들이 아니냐고 암시한다(7절).
그것은 케케묵은 것이라고 하는 이 암시는 많은 사람을 종교와 경건한 심신에서 떠나게 하고 그들은 그들의 법정을 세상과 육체에 두게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이 그들 사방에 둘러있는 백성들의 신들이기 때문이다.
- 모세는 이와 반대로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의 관례와 다르다고 설명해 준다.
그것들은 "너희가 알지 못하고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한 신들이다." 경건한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경건한 훈련으로 교육받은 자들은 그들의 무익하고 무절제하며 몰지각한 길로 유혹받을때 그들은 그런 것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이요 그들의 조상들이 알지 못한"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그와 같이 타락하겠는가?
Ⅱ. 가장 훌륭한 우리의 세상 친구보다도 하나님과 신앙을 더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 우리는 우리 친구들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8절). "너는 그를 쫓지 말며, 그의 우상 숭배에 그와 동행하지 말며, 아니 그와 동반하거나, 호기심도 가지지 말고 그의 애호에 더 낳은 흥미도 가지지 말라."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쫓지 말라(잠 1:10)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다.
💡 우리는 유혹을 따라 행하려고 하기 전에 믿음의 의지로 그것을 영원히, 계속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길을 압해하는 친구를 동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의를 실행하는 것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비행을 유혹하는 자는 원수나 위험인물로 간주될 뿐만 아니라 그를 범죄인이나 반역자로 간주하여 여호와의 주권과 그의 왕위와 위엄에 대한 우리의 열심으로 그를 고발해야 되며 우리는 큰 범인을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그를 숨겨서는 안 된다. "너는 용서없이 그를 죽이라" (9절).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유혹을 당했던 사람들이 유혹자를 박해해야 되었고 해당 재판자들 앞에서 그를 고발해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율법을 위반한 벌을 지체없이 받아야 했다.
"용서 없이 죽이라" 는 그 말의 뜻은 히브리 원문에 있듯이 "죽음아, 네가 그를 죽이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소이든 처벌 집행이든 간에 지연되어서는 안 되었다. 증거한 자가 자신의 증거를 입증하기 위해서 고소를 먼저 한 자가 즉 그를 저주의 대상으로 낙인 찍기 위해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그 후에 모든 사람들의 손에 넘겨 그를 저주받은 자로서 처치해야 한다. 그가 죽어야 하는 죽음이 유대인들 중에서는 가장 가혹한 죽음으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관용이 넘치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토록 가차없이 죽이라고 하신 것은 우상 숭배의 혐오스러운 부정함이 하나님의 거룩과 절대 함께할 수 없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해악이 되는지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왜 가족 중에 한 사람에 그에게 먼저 돌을 던지게 하시는가?
- 그가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상 숭배자에게 가장 먼저 유혹을 당한 사람인 바 그가 그 유혹에 대한 첫번째 증인이 되었기 때문이다(17:7). 그리고 이 때 단 한 사람의 증인만 있어도 된다는 뉘앙스가 있는데(원래는 두세사람의 증인을 요구함) —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해서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 일반 법의 증언에 대한 규례조차 초월하는 너무나 크나큰 죄악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말씀이다.
그는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 그의 죄목은 일종의 폭력으로써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10절) 너를 떠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자들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라도 그는 우리의 최악의 원수요 우리를 죄짓게 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무엇이나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하는 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그 반석으로 삼아 살아가는 자를 그 반석 위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밖으로 내모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어지지 아니한다는 확실한 약속의 말씀(롬 8:35-39)이 혼탁하고 혼미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말씀인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우리를 꾀는 자가 있어도(계 12:9) 또한 우리의 죄를 송사하는 마귀가 있어도(계 12:10) 우리의 반석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세력은 이 세상만이 아니라 어디에도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없다(롬 8:31-39).
심지어 나 자신마저도 하나님의 그 강권적인 사랑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자세는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는 것과 하나님을 반석으로 하여 모든 일을 해야겠다는 단호한 결단이다
마지막으로 이 처벌의 집행은 필수적임을 알려주는 훌륭한 경고가 있다.
"모든 이스라엘아 듣고 두려워하라" (11절).
******이런 범죄의 형벌은 interrorem - 즉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요, 그것으로 인하여서 같은 범행의 반복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처벌의 가혹함을 듣고 당연히 놀랐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나 형제나 친구들이 그 무서운 처벌을 받는 경우에는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이며 그도 그 형벌이 얼마나 가공스러운 것인가를 깨달았을 것이다.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경영자들을 죽이라." 그리하면 부주의하여 죄를 짓게 될 위험에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 깨달으리라." 죄의 위험을 조심성 없이 의식하려는 바보를 돌로 쳐 죽이라.
💡 인간은 육신의 죽음에 대해 가장 큰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고 자신만만한 삶을 살다가도 막상 죽음이 닥칠 때에는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같은 두려움을 지닐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이미 영생을 얻은 성도는 다만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겨야 한다. 즉 불신자들이 지닌 위와 같은 본능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참된 두려움의 대상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마10:28)
●용서하지 말라(신명기 13:12-18)
여기의 경우는 한 성읍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 게 되는 문제에 대한 것이다.
Ⅰ. 이 범죄는 다음의 몇 가지에 의하여 범행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1. 그들의 법정 관할 구역 내에 있는 이스라엘 도성들 중의 한 성읍에 의하여, 그럴 때에 교회는 오직 "그들 안에 있는 사람들만 판단하였다" (고전 5:12, 13)
💡 잡류들
- 이들은 이방 사람들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백성 내부에서 나온 자들.
- 성읍에 나타난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은근히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앞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서 대중을 선동하여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일을 성읍 백성에게 강요하며 내모는 것을 알 수 있다.
- 살후 2:4는 말세의 날에 이러한 패역한 자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이라 할 것이라고 말한다.
- 악한 영에 대한 분별력은 개인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공동체적으로 영적인 눈이 뜨여져 있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시기까지 이런 일은 그치지 않고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불법에 대해 영적인 눈이 감기지 않도록 늘 깨어 경성하며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불과 칼을 가지고 그들의 종교를 제일 원칙으로 보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도, 그들은 신앙을 불과 칼로 전파하라고 하는 허락은 받지 않았다. 어떤 왕의 영도 내에서 태어난 자들은 만일 그들이 그 왕을 대항하여 무기를 들면 반역자로 취급받으나, 외적은 그렇게 취급되지 않는다. 여기서 보면 우상 숭배한 도성은 전에는 참 하나님을 예배하였으나 지금에 와서 다른 신을 섬기는 도성이라고 가정되어 있다. 이것은 그들의 죄가 매우 중하며 그 형벌이 그만큼 가혹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 준 것이다. 즉 "의의 도를 안 후에 그것을 저버리는" (벧후 2:21) 자들이기 때문이다.
- 이것은 그 성읍 주민들의 다수에 의하여 범행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만일 많은 다수가 그들의 순결성을 보존하고 있었다면 범죄한 자들만 파멸되고 그 도성은 그 도성의 의인들로 인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의 심판자가 옳게 심판하지 않겠는가? 틀림없이 그는 바르게 심판하실 것이다.
- 그들은 어떤 사람들 즉 베리알(Belial)의 자식들에 의하여 우상 숭배에 끌려 들었다고 생각된다.
그 사람들이란 속박되지 않고 남아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존경하지 않고 모든 율법과 양심의 제한들을 떨어내어 버리는 자들이며 모든 미덕을 완전히 상실한 자들이다. 이들은 우리들의 비도덕성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찬성하고 격려해 줄 다른 신들을 섬기러 가자고 말하는 자들이다. 벨리알은 "악마" 로 평가되는데(고후 6:15) 벨리알의 자손들이란 그의 자식들이다. 이들이 그 도성의 주민들을 철거하게 한다. 옛 누룩 덩어리가 그냥 남겨 두어지게 되자 즉시 전 덩어리를 발효시켰기 때문이다.
Ⅱ. 그 사실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명령한다.
"너희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라" (14절).
그들은 그 사실을 널리 알리거나 소문을 내지 말고 은밀히 조사하여 만일 그 증거가 명확치 못하고 책임이 충분히 나타나지 아니하면 그들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자신도 소돔을 멸망시키기 전에 그 도성의 범죄가 부르짖는 소리와 같은지 아닌지를 알아 보시기 위해 내려오셨다(창 18:21).
💡 이처럼 철저한 조사를 거듭 강조한 것은
-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쫓아 섬기자고 유흑한 자들을 성읍 사람들이 처벌하지 않는다면 이는 성읍 자체가 진멸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너무나 큰 범죄의 결과를 낳고 혹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닐 경우 그 성읍은 그러한 불명예를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성읍 전체가 연루되어 공동체적으로 사실을 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 있어서는 진실을 알기 위해 시간과 관심과 수고가 요구되며 어떤 감정이나 편견이나 부분적인 관점에 빠짐없이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유대 저술가들은 말하기를 비록 우상 숭배자들인 어떤 특수한 사람들은 하위 법정에서 재판될 수 있지만 한 도성의 철폐는 산헤드린에 의하여 재판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우상 숭배를 버렸다는 것이 나타나면 그들을 교화하여 다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의 학식있는 사람이 그들에게 파견되었다고 한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모든 것은 잘 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그때는 전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입증하고 그 지역의 감염이 확신되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대항해 싸우러 쳐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Ⅲ. 만일 그 죄가 판명되면 범죄자들은 물론이요 그 성읍은 완전히 파괴되어야 했다. 만일 그 안에 몇몇의 의인들이 있었다면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자신들과 가족들을 이러한 위험한 지역에서 옮겼을 것이고 그 다음 모든 주민들 남자, 여자, 어린 아이들은 모두 칼로 죽여야 했다(15절).
💡 이는 그들을 더 이상 이스라엘의 공동체로 여기지 않고 가나안인들과 동일하게 여기어 가나안물 정복하듯 그들을 정복할 것을 명한 것과 같다. 이처럼 하나님의 땅은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시는 땅이기 때문에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백성은 거기에 거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어 또 다른왕을 들여놓는 것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신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시길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마6:24).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의 왕 되심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수용할 것을 가르쳐 주는 명령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공동체에 비록 우상 숭배와 같은 악한 일어 일어나도 이와 같은 죽음의 심판이 직접 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더럽게 하는 죄악을 가볍게 여기거나 범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 악을 행하고 공동체가 그것을 묵과하면 그 악은 흡사 누룩처럼 퍼져 나가게될 것이며, 결국 그 교회 공동체 전체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읍의 모든 약탈품들은 상점의 물건들과 가구들이 모두 시장 바닥으로 옮겨지고 불살리워야 되었고, 그 성읍 자체도 모두 무더기가 되어 다시 세울 수 없게 되어야 했다(16절).
💡 왜 온전히 태워야 하는가?
- 이렇게 모든 것을 태워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이유는 제 15절에서도 설명했듯이 그들이 여호와께 드려지는 ‘온전히 바쳐진 것'(레27:28,29) 이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선포로 인해서 심판을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결코 어떤 것도 인간이 취할 수 없었으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했던 것이다.
본문은 무너져 무더기가 된 옛 성읍의 터에 다시 재건하여 그곳의 옛 모습을 회복하지 말라는 의미가 함측되어 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우상 숭배자와 우상 숭배를 허용한 성읍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큰 것이었다. 한편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금지 명령이 여리고성 함락 직후에도 발해졌는데(수 6:26), 아합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에 벨엘 사람 히엘이 이 명령을 무시하고 여리고를 재건하다가 아들 들을 잃는 저주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왕상16:34)
쳐들어간 군인들은 어떤 약탈품도 자기의 것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사형의 엄벌로 엄금되어 있다(17절). 우리가 아간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런 물건을 간섭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왜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하게 하시는가?
- 본문의 명령은 손으로 접촉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손안에 넣고 있는 것, 즉 자기의 소유로 삼으려 하는 것을 금하신 것이다. 진멸된 물건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이기 때문에 결코 인간이 소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죄악된 것들로부터 구별되어 정결함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우상 숭배와 관련된 자의 물건을 가질 수 없었다.
이제
1. 하나님은 당신을 예비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는 얼마나 질투하시는 분이며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된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이러한 가혹함을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다른 피조물에게 결코 허락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찬양을 다른 피조물에게 결코 허락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찬양을 새긴 우상에게 돌리게 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만인에게 알게 하라.
2. 하나님은 재판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광과 권리를 가지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 쓰고 "행악자들에게 두려움" 을 주기를 바라신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은 쓸데없이 칼을 소유한 사람들과 같은 것이다.
3. 참되신 하나님을 충실히 예배하는 자들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무신론이나 불충성이나 비종교적인 일에 보다 훨씬 더 우상 숭배에 대하여 더 크고 정당한 분노를 보여야 한다.
4. 땅을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피하게 할 수 없는 최선의 방편은 그 땅의 악한 자들에 대하여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며(17절), 그리함으로써 변절한 한 도성의 사악함 때문에 전 민족을 파멸코자 하는 "그의 진노를 그치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와 같이 그들의 땅에서 악을 근절하면 → 하나님은 그들을 번창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들은 순전히 종교에만 관계된 한 범죄 때문에 전도성이 파멸된다는 것은 불합당한 정책이요 그들이 이스라엘의 피를 더욱 소중히 간직해야 되겠다는 그들 민족의 이익에도 상충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세는 말한다. "그것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너희의 수를 더욱 많게 하실 것이며 너희 민족이란 체구는 이 부패한 피를 잃는다고 조금도 상실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 본문은 한 성읍의 죄악으로 인해 여호와의 임재가 이스라엘의 공동체 전체에서 떠날 수도 있었음을 암시한다.
본절에는 여호와의 임재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이 열조와의 맹세라는 문맥에서 언급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스라엘 공동체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의 축복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하나님 백성의 신분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공동체 내에서 의미를 가지며, 그렇기에 공동체의 삶이 바탕이 되지 않는 개인은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이 중요하고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결코 교회는 한 개인만의 신앙 성장을 위해 이용되다가 필요가 다하면 버려지고 다른 교회가 그를 위해 대체되는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과연 하나님의 약속을 잃어버리게 하는 위험은 없는지 살피면서 자기의 신앙 성장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의 거룩함의 보존을 위해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유대 교회의 전 역사에서 이 법이 시행된 것은 보지 못하지만(기브아는 우상 숭배 때문이 아니고 비도덕성 때문에 파멸되었다) 우상을 섬긴 하위 도성들에 대하여 이 법의 시행을 무시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갈대아인들의 군대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이 법을 시행하셨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변절 때문에 철저히 파괴되었고 황폐하게 되었으며 칠십년 동안 폐허로 버림받았다. 우상 숭배자들이 비록 사람들로부터 오는 벌은 피할지 모르지만(이 율법이 지금 복음 아래서는 문자대로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의로운 심판을 피하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신약 성서는 우상 숭배자들과의 교통을 어떤 다른 것보다 더 큰 죄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고전 10:21, 22)
💡 우리는 실천의 의지를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한다. 결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구별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품지 않으면 듣기가 무섭게 마음에서 그 말씀은 떠나 버리며. 사단은 그러한 자의 마음을 머흑하여 우상 숭배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앞절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행위에 비례하는 축복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의 결단에 따라 내려지는 은혜의 축복임을 알 수 있다. 우러의 행함이 비록 부족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한 바를 누리는 축복을 체험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매일 아침마다 정리해주는 찬미자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