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여호수아 9, 시편 140, 141, 예레미야 3, 마태복음 17
묵상구절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8:7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28: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28: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28: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28: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28: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28: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28: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28: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28: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28: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 스페셜 포인트
28장
- 1~14절: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였을 때 임할 개인적, 민족적 축복의 내용을 제시.
- 15~57절: 율법에 불순종할 때 임하게 될 개인적, 민족적 저주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
- 58~68절: 율법에 대하여 불순종할 때 임하게 될 민족적 차원의 저주의 내용을 재강조
저주의 내용이 더 많음
- 율법에 대한 순종의 결과로서 임할 축복과 불순종할 때 임하게 될 저주가 문단상으로 볼 때에도 1:2의 비율이며 단순한 분량상으로 볼 때에도 14절 vs 54절의 비율로 압도적으로 저주에 대한 내용이 많은 사실이 이채롭다. 이는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죄성에 물들어 누구나 예외없이 전적으로 타락한 현실에서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여 축복을 누릴 가능성이나 빈도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크고 흔한 현실에 대한 강력한 시사 내지 경고라 할 수 있다.
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고별 설교를 들은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의 행로 전반은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무한한 축복을 누린 영광의 역사(the History of Glory) 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 본문 등에 기록된 모든 저주와 재앙들이 그야말로 너무나 정확하게 실현되어 더욱 한탄스러운 수치의 역사(the History of Shame) 의 연속이었다. 또한 현재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현대 세계의 영적 현실도 근본적으로는 과거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동일 선상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어둡고 혼란스러운 인류 역사의 파란과 지금 이 순간에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인생을 옭아 메고 또 억누르고 있는 인간 실존의 모든 문제의 궁극적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망각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 있음을 새삼 발견하여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이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도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아니 전인류적 차원에서 이같은 문제의 해결과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만이라도 때로는 바로 나 개인만이라도 우선 인생의 모든 문제의 본질을 적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불안에서 희망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갈등에서 만족으로 비약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축복을 강렬히 희구하고 꿈꾸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순수 무구한 사랑과 열정은 커녕 그 축복을 받기 위한 가장 최소의 필요 조건인 하나님의 말씀에의 순복에는 너무나 아둔하고 냉담한 것이 현실이다. 또 그러면서도 왜 자신은 언제나 크고 작은 질고에 휩싸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기본적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가 하는 어리석은 물음 내지 불평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회의와 의문의 어둠 속을 방황하지 말고 속히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의 원점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자. 누구일까? 여호와 하나님과'그분의 말씀을 사랑하여 진정 평강과 희락과 승리의 축복을 만끽하는 자들은(시 1:1-6).
● 약속 (신명기 28:1-14)
본문에서 축복이 저주의 앞에 놓여져 있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성내기를 더디 하시어도 자비를 나타내는 데는 신속하신 분이시라는 것, 당신께서는 우리가 범죄하여 죽는 것보다도 순종하여서 사는 것을 훨씬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해 오시고 맹세해 오셨던 것이다. 복을 내리시는 일은 그의 즐거움인 것이다.
- 약속과 위협이 비록 우리로 의무에 충실케 하여 지켜 나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자식다운 소망으로 선한 일에 우리 스스로가 꾀여 들어가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노예 근성적인 두려움으로 인하여 겁이 나서 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즐거움을 느끼는 원칙으로부터 유래하는 순종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Ⅰ. 우리는 축복이 약속되는 필요 조건을 대하게 된다.
1. 그것은 저희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열심히 경청하고" (1,2절).
👀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고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여호와의 백성된 이스라엘은 당연히 그의 백성으로서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한다.
여호와의 은혜와 복은 단순히 사람의 순종 여부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약 백성의 신분을 가진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내려 주시는 것이며,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언약을 받아들이는 결단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 백성만 되면 여호와의 임의로 내려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복이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님을 본문은 가르쳐 준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하시는 말씀을 삼가 들으며 그의 뜻이 무엇인지 환히 알도록 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조건이다(13절).
2. "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고(복종을 위하여는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 길로 행하도록 하라" (9절)는 조건이다. 그의 명령들을 한 번만 행할 뿐 아니라 영원히 지키며 그의 길로 출발해 나가되 끝까지 걸어가야 할 것을 이름이다.
👀 순종의 태도를 이처럼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된 자의 삶은 당연히 여호와에 대한 순종의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에게 있어서 순종은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확실히 순종할 것을 이와 같이 강력하게 촉구한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백성의 절대적인 순종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켜 행하는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행동의 동기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으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한다.
어느 한 말씀은 지키면서 좀 어려워 보이는 다른 말씀은 지키지 않는다면 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룰 것이며(마 5:18), 하나님의 말씀 중 그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마23:23)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주신 모든 말씀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힘쓰고 있는가? 말씀 중 어떤 것은 소홀히 여겨 세상이나 자기와의 타협 속에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만의 그릇된 기준을 갖고 살아가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3. 저들이 "우편으로나 좌편으로", 또는 미신이나 신성 모독에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하는 조건이다. 또한 특히 다른 잡신들을 좇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하는 조건(14절)인데 이는 저들이 다른 모든 죄악 중에서 가장 범하기 쉬운 죄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가장 불쾌히 여기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로 하여금 저들의 가정과 나라에 종교의 형태와 권세를 변함없이 유지시키는데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저들을 축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Ⅱ. 이 축복의 세부 항목
1. 하나님의 섭리는 저들의 모든 외적인 일에도 번영하게 하신다고 약속되고 있다.
2절에서는 이 축복들이 "저들에게 미치리라" 고 말하고 있다. 때때로 선량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치 없음을 의식하게 되어 축복으로부터 회피하려고 마음먹고 자기들에게는 복이 당치도 않다는 결론을 쉽사리 지어 버린다. 그러나 복은 그런 자들을 찾아내어서 그런 생각들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이와 같이 심판의 날에는 "주여, 언제 우리가 주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주를 공궤 하였나이까?(마 25:37) 하는 의인들에게 축복이 미칠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께서 자기 섭리로 저들을 축복할 몇 가지 일들이 열거되어 있다.
[1] 저들은 안전하고 평안하리라. 저들이 어디에 있든지 "성읍에서나 들에서나" 축복이 저희 위에 머무를 것이다(3절).
그들의 주거가 도회지에 있든지 시골에 있든지 간에 또 그들이 농부든 상인이든 막론하고, 저들의 일이 저들을 성읍 안으로 불러들이든 들로 불러내든지 상관없이, 저들은 위험으로부터 보존되고 저들이 처한 형편 속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 본문에서 언급된 이러한 삶의 반경이 어떤 특정한 장소적 범위를 한정짓는 것은 아니다. 즉 성읍에 있든지 들에 있든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축복은 그 대상이 될 자의 모든 환경을 다스려 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축복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시선을 협소한 한 곳에 집중하여 살아가기 쉬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까지도 축복을 내리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축복을 가늠하려는 우리의 태도를 교정시켜 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을 한정시키려는 우리의 시선을 돌려서 우리 인생 전체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발견케 하시는 것이다. 곧 본문에 나오는 성읍과 들은 현재적인 상황이 아닌 우리 인생 전체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을 받는 대상은 ‘개별적인 개인들’
이는 복을 받는 대상이 단체가 아니라 개별적인 개인들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을 택하여 복을 주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개인 개인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고 각 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며 일일이 복을 주시는 세밀한 분이시다.
이 축복이 저들이 나오거나 들어가거나 간에 저들의 여행길을 보살핀다(6절).
👀 빌1:6에 보면 이러한 일의 시작과 끝에 관한 축복의 뿌리는 바로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것보다 모든 일에서 늘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저들 개인이 보호를 받으며, 그 종사하는 일이 잘 되어 나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삶의 계속과 편안함을 위해 얼마나 필수적으로 또 끊임없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가를 살피자, 우리는 인생의 도처에서, 모든 갖가지 움직임 속에서 늘 그분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분이 보호하심을 거두어들이신다면 우리는 안전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의 은총을 중지시키시면 우리는 편안할 수가 없으나 만약 우리를 축복한다면 우리가 어디를 가고자 하든지 아무 탈이 없는 것이다.
[2] 저들의 가문은 수많은 자손으로 번성하리라고 했다. "네 몸의 소생이 복을 받으리라" (4절).
👀 네 몸의 소생,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태를 닫지 않고 열어 주셔서 태의 열매를 맺게 함으로써 이스라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는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과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언약이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창12:2; 22: 17).
👀 네 토지의 소산과
직역하면 ‘네 땅의 열매' → 이스라엘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면 가나안 땅에서 재배하는 작물이 병충해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고, 메뚜기 떼에게 먹히지 않으며, 수확하기 전에 떨어져 썩지 않으며, 들짐승들에게 밟히거나 먹히지 않아 풍성하게 열매 맺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소생', 과 ‘소산'에 해당하는 단어는 위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모두 ‘열매'란 뜻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이 최종적인 열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열매로 평가하기 전에 열매가 자라나고 익어가는 과정 중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가늠하려고 하기 쉽다. 그래서 열매가 자라나고 익어 가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거나 실패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 복을 얻지 못하고 말았구나!' 라고 탄식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나 식물이 열매를 맺는 것이나 또한 짐승의 새끼가 태어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는 아픔과 인내가 따르기 마련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약속의 씨인 이삭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기억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75세에 가나안 땅으로 부르셔서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서 (창 12:4,7; 15:4)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00세에야 비로소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시지 않았던가(창 21:5). 아브라함은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서도 이삭을 얻을 때까지 무려 25년 동안이나 후손을 통한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소산을 얻으며 우양이 풍성해지기까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몇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해야 했는지를 기억하라. 우리도 모두 마지막으로 얻을 약속의 열매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들이 되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복은 생명을 산출하는 복이며, 소유가 더욱더 풍성해지는 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즉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이 저희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한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너로 풍성하게 하리라" (11절)고 했으니, 저들의 몸에서 나는 소생들에게는 이보다 더 크고 더 포괄적인 축복이란 있을 수 없는 그런 축복이다(사 61:9 참조).
[3] 저들은 부유해지고 이 세상 생활 가운데서 좋은 모든 것을 풍족히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약속된 것인즉 그들이 그런 것들을 즐거이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패트릭 주교가 유대인 학자 중 하나에게서 관찰해 낸 것처럼) 그 물질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데 도움과 용기를 주어서 그분께 대한 복종을 견지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인 것이다.
축복이 약속되었는데,
첫째로는 저들이 집 밖에서 소유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축복이니 곧 들에 있는 곡식과 가축들, 소나 양이 특히 그 소유주를 위해 받을 것이었고, 이 가축들이 또한 저들 주인들에게 복이 될 것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름다운 보고로" 라고 (12절) 일컬어지는 "비를 때를 따라 적시에" 내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 강물로 땅이 윤택케 되기 때문이다(시 65:9).
우리는 우리들의 끊임없는 공급품들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보고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밝히 알아야 되고 그것들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꼭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그의 비를 거두어들이신다면 땅이나 가축의 소산은 곧 그쳐 버리고 말 것이다.
둘째 저들이 집안에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 곧 광주리와 창고(5절), 곳간이나 헛간(8절)에도 복이 내릴 것이다. 저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며, 때때로 그가 행하듯이 그렇게 그것을 불어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학 1:6, 9).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축복하심을 의지함은 밭에서 나는 일 년의 곡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창고나 광주리에서 꺼내는 매일의 양식을 위해서도 그리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매일 그것을 위해 기록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 5절,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본문은 추수에서 시작하여 음식을 장만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필요한 양식을 풍족히 먹을 수 있는 복을 내려주시겠다는 의미이다(마 6:11). 이 축복의 말씀 또한 이러한 앙식 관련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으며 풍족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보장이다.
[4] 저들은 저들이 하는 그 모든 일에서 성공을 거둘 것이었고 그것은 저들에게 늘 만족스러울 것이었다. 즉 "여호와께서 복에게 명하사(그것을 명할 수 있는 자는 그분뿐이신 것이다) 네 위에 내리게 하실 뿐만 아니라, 네가 행하는 모든 일에도 복을 내리시리니 네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다" (8절).
👀 8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긴밀한 언약 관계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실 때 반드시 자신과 언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염두에 두시고 복을 내리신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축복의 결과가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동반된다. 이스라엘 백성, 곧 언약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비롯한 모든 약속의 성취가 언제나 늘 함께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고 안에 복을 내리시면 창고가 곡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풍년이 들어 식량 걱정을 하지 않고 풍요롭게 살 것이다.
이스라엘이 들어가 거주하게 될 가나안 땅은 메뚜기 떼가 무리를 지어 지나가면서 곡물을 모조리 먹어치워 버리는 지역이기도 하고(욜 1:4), 주변의 무자비한 약탈자들이 기웃거리면서 농사지어 놓은 토지소산과 식물을 초토화시키거나 약탈해 가는 지역이기도 하지만(삿 6:4) 이스라엘이 만약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하던 여호와께 창고 안에 곡식이 가득 차도록 그들이 짓는 농사에 복을 내려주시며 약탈자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들이 부유할 때 일지라도 게으르지 아니하고 저희들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좋은 일거리를 찾아야 하며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의 근면을 인정하셔서 "저들의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던 것이다(12절). 왜냐하면 "부유하게 만들고" 또 그 부를 지켜주는 것은 "부지런한 자의 손"에 내리는 "여호와의 복" 이기 때문이다(잠 10:4, 22).
[5] 저들은 그 인근에서 영예를 얻을 것이다(1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모든 민족들보다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그는 저들과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저희를 그렇게 되도록 만드셨던 것이어서(신 26:19), 만약 저희가 범죄함으로 스스로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면 그는 저들의 외적인 번영에 의하여 저들을 더욱더 빼어나게 만드실 작정이셨다. 저들로 열방 중에서 큰 나라가 되게 하는 데는 두 가지가 도움이 되었으니,
👀 뛰어나게 하실 것: 이 단어는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나신 위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쓰인다. 존귀하고 뛰어나신 하나님께서만 자기 백성 또한 그렇게 높이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자는 이미 언약의 하나님을 저버린 자이며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을 품은 자이므로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를 비참하게 낮춰 버리신다(사 14:12-15).
하나님의 백성을 '세계 모든 이방 나라들 위에 높이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탁월성과 영원성을 세상 나라들 위에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출 19:6).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 개개인은 여호와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성취를 위해 살아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탁월성과 영광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밝히 드러내기 위해 존재해야 함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의 삶은 바로 과거 구약 시대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연장이며 그 언약의 성취를 이루어 가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시기에 (골 4:11), 우리는 어찌하든지 세상 나라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틀 드러내시기 원하시는 그분의 의지에 순종하는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며, 우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세계 만방에 선전해야 할 것이다(벧전 2:9).
첫째는 저들의 부였던 것이다(12절). "너는 많은 민족에게 이자를 받고(이웃 민족들에게는 이식을 취하는 것이 허용되었던고로) 꾸어 주겠으나, 너는 꾸어 올 필요가 없으리라." 이것은 저들에게 저들 주변의 모든 민족을 움직일 큰 영향력을 부여했던 것이니, 빌리는 자는 꾸어 주는 자의 노예가 됨으로써이다. 그것은 무역과 상업을 의미할 수도 있으니, 저들은 수입보다도 더 풍성한 수출을 하여 자기들 쪽의 균형을 유지할 것이었다.
둘째로는 저들의 세력이었다(13절) "여호와께서 너로 주변 모든 민족에게 권세를 부리고, 공물을 징수하여 모든 분쟁을 중재할 수 있는 머리가 되게 하시리라." 모든 곡식단마다 저들의 단에게 절을 할 것이며 이로써 저들은 너무 중요한 존재들이 되어서 "땅 위의 모든 민족들이 저들을 두려워" 할 것이다(10절). 즉 모든 민족들은 저들이 참으로 위대함을 경모하며 저들과 적이 되기를 두려워할 것이다. 저들 중에서 융성하는 종교와 저들 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서 저들은 군기를 든 군대들처럼 저희 모든 이웃 백성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었다.
[6] 저들은 그 대적들에게 승리할 것이요 저들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여 번영할 것이다. 만약 저들을 억압하기 위해서나 혹은 침범하기 위해 저들에게 대적하여 궐기할 만큼 담대한 민족이 있다면 그 대적들은 생명이 위험할뿐더러 저들 앞에서 반드시 넘어질 것이다(7절). 대적들의 병력이 비록 너를 치려고 완전히 정열해서 한 길로 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완전히 궤멸하여 저들 앞에서 각자 구명 도생하여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었다.
👀 본문은 미래 전쟁 발발시 미리 막아 주시겠다는 보장의 말씀일 뿐 아니라, 이미 발발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어 주셨던 사실에 대한 확인의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셨지만 결코 세상에서 고립된 지역에 두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 두셔서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는 근본으로 삼으신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언급되는 전쟁은 단순히 국제 사회에서 야기되는 정치적, 사회적인 표면적 원인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갈등 가운데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이 바로 그러한 전쟁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드러내 것이며(요일 3:8), 예수님께서 또한 우리를 세상 가운데 보내신 것도 세상에 대한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이루시려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요 18:18).
따라서 이방 나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자체의 힘에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만 보장된다. 대적이 ‘패한, 부상한, 고통을 당한'이란 뜻의 단어는 하나님의 허락이라는 뉘앙스를 가진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쁘신 의지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리치실 것이다. 단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면 그와 같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대적을 이스라엘이 두 눈을 뜨고 보는 앞에서 패하게 하실 것이며 대적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수치가 될 것이다. 적군은 이스라엘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 진영은 적군에 의한 타격을 전혀 입지 않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비록 이스라엘을 진멸하기 위해 나아왔지만 오히려 그들 자신이 진멸되어 도망칠 것이다.
본문은 피상적으로 살펴보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 눈을 끌지만 우리는 축복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 축복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관심은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이해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순종이 결여된 맹목적인 축복의 추구는 기독교를 저급한 기복 종교로 이해하는 영적 지식의 부족에서 연유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 축복의 내용보다 더 강조하는 것이 축복을 가능케 하는 순종임을 명심하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말씀 자체와 그 율법에 대한 축복 이전의 순종으로 돌려야 한다. 그럴 때 모든 분야의 축복은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2) 우리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사람들이 축복을 믿는다면 그것대로 좋은 것이지만) 종교와 경건한 행동은 외적인 번영의 가장 좋은 벗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비록 현세적 축복이 신약 성서의 약속들 중에서는 구약 성서의 약속들 가운데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크지는 못하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우리는 확실히 그의 말씀을 취한다) 곧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무한하신 지혜자가 잘 보살피시는 한, "모든 다른 것들"을 우리에게 더하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족하다. 누가 그 이상 더 바랄 것인가?(마 6:33).
2. 그 외에 하나님의 은혜가 "저들을 세워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9절).
하나님께서 저들을 취하사 자기의 계약을 맺게 하셨으므로 당신께서는 저들을 그 언약 속에 붙잡아 두시고자 하셨다. 이것은 저들이 확고 부동함을 방편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당신께서도 저들이 자기로부터 떠나지 않도록, 확고 부동할 수 있는 은총을 저들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거룩함 속에서 거짓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워서 거룩하게 하실 것을 명심하자. 그는 "그것을 행할 권세"가 있음이다(롬 16:25). 거룩한 자는 변함없이 거룩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 때문에 자기가 세워 거룩하게 만든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세우시나니,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가까이하는 동안은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저들의 종교를 이렇게 확립시키면 그것은 저들의 명성을 확립시키는 것이 된다(10절). 즉 "세계 만민이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어짐"을 보고 인정할 것이니, 곧 네가 위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과 애호를 받는 가장 빼어나고 영화스러운 백성임을 세계 만인이 보고 인정할 것이다. 또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백성이 해 아래서 가장 복된 백성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는 저들의 대적들까지도 스스로 그 재판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은총을 입은 자들은 진실로 위대한 자들이며, 조만간 그들의 위대함을 밝히 드러내게 될 것이니 만약 이 세상에서 못 나타나게 되면, 바로 그날 곧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시인한 자들을 사람과 천사들 앞에서 자기가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는 자들로 시인하는 그날에 나타날 것이다.
● 경고(1) (신명기 28:15-44)
우리는 순종하는 자들에게 비친 구름의 밝은 면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는 불순종하는 자에게 비치는 구름의 어두운 측면을 대면하게 된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약속된 축복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저주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니 축복이 모든 행복을 포괄하듯이 이 저주는 모든 불행을 내포하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Ⅰ. 이 저주의 공정함.
그것은 이유가 없거나 경미한 이유로 내리는 저주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비난할 이유를 찾지 아니하시며 우리와 다투고자 하실 분도 아니시다. 여기서 저주를 불러올 것으로 언급된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하나님을 무시하여 "그 목소리를 청종하기"를 거부하는 일. 이것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을 나타내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등 주의할 가치도 없다거나, 혹은 우리가 그분에 대한 의무는 조금도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하나님의 계명들을 행하지 않거나 "그 명령들의 실행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고 반역하는 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저주 아래 들지 아니한다.
3. 하나님을 버리는 일. "그것은 네가 행한 악을 인함이니 그로써 네가 나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써 너는 나를 버렸느니라" (2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먼저 추방할 때까지 결코 우리를 내쫓지 아니하신다. 이것은 저들의 우상 숭배가 참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잡신들을 취하는 것인고로, 다른 어떤 죄악보다도 더 자신들을 멸망시킬 죄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Ⅱ. 이 저주의 범위와 효능.
1.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선포된다. "이 모든 저주가 위로부터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라. 네가 저들을 피하려고 할지라도 그 노력이 헛되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그 저주가 너를 따라서 엄습하고 네게 미치며 너를 압도하리라(15절)." 하나님의 진노가 죄인을 추적할 때는 그 죄인에 대해 일렀으되 "그가 하나님의 손에서 피하기를 열망하나 그가 피할 수 없으리니(욥 27:22) 만약 그가 철병기를 피해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철궁이 그에게 미쳐 그를 꿰뚫으리라" 하였다. 하나님께로 달려감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로부터 달려 도망칠 수는 도저히 없고, 그의 자비에로 피해 들어가는 것 외에는 그의 공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시 21:7, 8 참조).
(1) 죄인은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저주가 그를 따른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저주가 그 위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그는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들에서도" 저주를 받으리라(16절). 도성의 힘으로도 그를 저주로부터 비호할 수 없으며 시골의 상쾌한 공기로도 이들 잇단 전염병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들어와서 저주를 받으니(19절) 이는 "악인의 집에"는 저주가 있기 때문이며(잠 3:33), 나와도 저주를 받으니 이는 저가 저주를 자기 뒤에 남겨둘 수도 없으며, 없앨 수도 없은 즉, 그 저주가 물과 같이 그의 내장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처럼 그의 뼛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2) 그가 소유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저주 아래 있다. "땅은 그로 인해 저주를 받으며" 그 땅 위에 있는 것이나 그것에서 소출되는 모든 것이다 저주를 받으니, 그러므로 그는 가인처럼 땅으로부터도 저주를 받는 것이다(창 4:1). 그의 광주리와 창고도 저주를 받는다(17, 18절). 하나님께 몰수당한 그의 모든 향유물은 저주받은 것이므로 어느 의미로 보면 그에게는 금지돼 있으니 그것에 대한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자들에게는 그 외의 만물이 다 그러하다(딛 1:15).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쓴 것이 되며 그는 그것들로부터 아무런 진정한 안락을 얻을 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들 속에 섞여 있어서, 저가 그들을 계속 향유할 수 있는 보장이 도무지 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그의 눈이 열려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정죄를 받아 바야흐로 곧 몰수를 당할 것이며 그와 함께 그의 모든 기쁨과 희망이 영영 사라져 버릴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