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구절

7월 21일 목요일 묵상구절 수4:1-24 길갈에 세운 열두 돌

하나지기 2022. 7. 21. 07:33

맥체인 성경읽기

사사기 4, 사도행전 8, 예레미야 17, 마가복음 3

묵상구절

4: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4: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4: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4: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4: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4: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4: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4:10 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서 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4: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4: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4:13 무장한 사만 명 가량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4: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4: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16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4: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4: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

4:19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4: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4: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                                                                           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4: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4: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4: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 요단강의 열 두 돌 (여호수아 4:1-9)

우리는 여호수아와 그리고 모든 전사들이 요단을 건널 동안에 얼마나 분주했을까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들 자신이 적국 속으로 원수의 면전에 행군해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착잡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없을 수 없었겠지만, 그것 이외에도 그들은 아내와 자식과 가족과 가축과 천막과 그리고 여러 가지 가재들, 짐짝과 고리들이 있어서 서툴고 험한 길을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길이 아주 질벅질벅하거나 돌밭이어서 연약한 자들에게는 힘겨운 길이고, 떠는 자들에게는 두려운 길이 되었을 것이며 강바닥으로 내려가고 가파른 비탈을 올라오며, 각자는 머리가 터질 정도로 긴장감과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무거운 짐들에 눌렸을 거라는 것은 생각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호수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급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일을 계속 기억되게 하기 위한 배려가 있었고 그리고 이 조치는 여유 있을 때 하도록 연기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족을 위한 일이 바쁘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게을리 하거나 지워 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최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Ⅰ. 하나님께서 이 기념물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셨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지시도 없이 이런 일을 했더라면 그것은 여호수아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유지시키려고 계획한 것처럼 보였을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 일은 하나님이 지시해서 한 것만큼 후손들에게 거룩함과 존경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며 이 일을 기억시킬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이 강구되어져야 한다.

아마도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 중 어떤 이들은 어리석어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의 이 위대한 사랑을 바로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기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이 일에 큰 감명을 받고 깊은 충격을 받아 이것을 위한 기념비를 세울 필요가 없으며 세세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의 마음과 혀가 이 일을 영원히 살아 있는 기념비로 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연약함을 아시며 이들이 얼마나 쉽사리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리는가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이에 대한 조치를 명령하심으로 후대에 거룩한 역사에서 그 사건에 관한 기록을 읽을 수 없거나 읽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이 기념물을 보고 이 일을 기억하며 알 수 있도록 하셨다.

이 나라의 기억을 위한 일반적인 전승 방법은 설명이었다. 그런데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사실의 증명을 더욱 확증해 주는 것이 될 것이며 후 세대가 이 일의 진실 여부를 질문할 때 불변의 증거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기념비는 세워져야 했었다.

1. 대장으로서 여호수아는 이 일에 대한 지시를 내려야 했다(1절).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즉 맨 끝에 쳐져 있던 노약자들까지 다 건넜을 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완전히 이루시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안전하게 도착했을 때, 그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 기념비를 세울 재료들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 12을 택하게 명령하신 이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으로 요단강을 건넌 사건이 자연 현상 혹은 우연에 의한 일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으로부터 구원받을 때 이적을 행하셔서 홍해를 가르고 건너게 하셨던 것처럼(출 14:10-31) 이제 출애굽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때에도 또한 이적을 행하셔서 요단강을 가르고 건너가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데 있어서 그 기념할 돌들을 세우는 실무자를 선발하기 위해서였다(5-7절). 

 

2. 학자인 패트릭(Patrick) 주교의 경건한 추측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즉시 조용한 곳으로 혼자 물러가 이 놀라운 자비에 대해 감사를 드렸고 거기서 하나님은 그를 만나 주셨으며 그에게 이 같은 일을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러한 혹은 또다른 명령들을 내리신 것은 제사장 엘르아살을 통해서 하셨을는지도 모른다. 비록 엘르아살의 이름이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호수아가 이 위대한 통치를 인수받았을 때 하나님은 엘르아살이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 올 것이라" 고 명하셨다(민 27:21). 그리하여 매 지파에 한 사람씩, 그리고 여호수아가 자신도 선택된 사람으로 이 기념비를 위한 재료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채용되었다. 각 지파는 이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뭔가 기여할 수 있었다(2,4절). 레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인생에게 알게 해야" 한다(시 145:12). 이미 자기들의 소유를 얻고 안정을 누리던 두 지파도 이 일을 기념하는 일에 참여해야 했다.

3.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지는 돌들은 강 가운데서부터 취하여 내도록(아마도 거기에는 큰돌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궤를 메고" 서 있는(3,5절) 그곳에서 가까운 것을 취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흔히 기념비는 훌륭하고 아주 정교한 기술로 깍은 돌로 세워져야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돌들은 강바닥에서 끌어 낸 것으로 보다 자연적이며 보다 더 쉽사리 기적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었다. 후손들은 이 돌을 보고 요단 강물이 물러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 돌들이 그때 거기서 끄집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표적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언제나 화려하고 특이한 것보다는 적합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이 열 두 사람은 요단을 건넌 후 법궤가 섰는 곳으로 다시 소환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다음의 일을 위해서 법궤 가까이 오도록 허락을 받았다(다른 사람들은 가까이 올 수 없었다). "지금 강 가운데 서 있는 궤(5절), 즉 법궤 면전으로 들어오라. 그리고 이 돌들을 취하라. "

💡 하나님께서 특정한 장소까지 언급하면서 보관하여 두라고 명령하신 12개의 돌은 시내산 언약을 맺을 때 산 아래 쌓은 단과 함께 세워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돌기둥과 비교해볼 수 있다(출 24:4). 특히 본서에 등장하는 돌 역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한다(8절).

이 사실을 볼 때 이 돌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하신 장소에 두라고 하신 이유는 단지 요단강 도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이 요단강 도하 사건의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이적적 기사에 의해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으로써 언약의 백성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 외형적 기틀을 마련하여 주고 있음을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돌들은 지파 수대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굳이 열두 개의 돌로 기념을 표시하는 이유는 세월이 흐른 후에라도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을 깨닫고 분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한 동일한 역사적 체험을 확인시키는 산 교재로 삼기 위해서 이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지시하시는 자상한 분이시다(2,3절)다. 

 

4. 이 돌들의 용도가 지시된다. 그것은 **표적(6절) 혹은 기념비(7절)**를 위한 것이다.

후대의 자손들이 그 부모에게 이 돌들에 대해 물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왜 이 돌들이 여기에 있게 되었습니까?" (아마도 그 땅은 돌들이 많지 않은 곳일는지도 모른다) 그때 부모들은 자기들이 배운대로 이 곳에서 요단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으로 갈라지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그들에게 가르쳐 주게 될 것이다(22절 이하).

💡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널 때에 하나님께서 물이 갈라지는 이적을 베푸셔서 도우셨다는 바로 이 사실을 후대에까지 전하고 기념하게 하기 위해서 기념석을 세우게 하신 것.

기념석(7절)(직카론)
어떤 것을 마음에 떠오르게 하거나 연상시키는 역사적 ‘기록' 혹은 물질적 ‘증거'를 가리키며 이것은 과거의 사실을 ‘생각나게 하는 것'으로서의 성격을 강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하여 행하신 구속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의 행위까지 ‘기념물(직카론)'을 통해 잊지 않으려 하였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미디안에게서 약탈한 금을 회막에 드려 승리의 기념을 삼았었고(민31:54), 반역자 고라의 못 향로는 쳐서 제단을 싸서 아론의 자손만이 제사장이라는 사실과 고라와 같은 제사장에 대한 반역의 죄를 다시는 짓지 않도록 하는 기념을 삼았었다(민 16:39-40).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인 자신들 사이에 있었던 구원과 은총, 혹은 죄악과 심판에 대한 사건을 후손들이 기억하도록 하여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도움이 되도록 기념물을 만드는 역사의 교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족이었다.

 

Ⅱ. 이 일들은 모두 명령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1. 요단강 가운데서 취하여진 열 두 돌은 백성들의 면전에서 날라져 그날 밤 이들의 본부가 있는 곳에 세워 두었다(8절).

이들이 취한 돌은 그들이 잘 옮길 수 있는 정도로 크고, 크기와 모양이 서로 엇비슷한 돌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열 두 사람이 즉시 이 돌들을 자기들의 곳으로 들고 갔는지 혹은 계속 법궤 곁에 머물면서 가나안의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기 위해서 엄숙한 법궤의 행렬과 보조를 맞추어 나갔는지 확실치 않다. 하나님이 취하라고 명령한 이 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아름다운 땅에 대한 점령과 정복권을 주셨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것이다. "들어가 소유하라. "그러므로 이 열 두 사람이 행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라고 한 것이다(8절). 왜냐하면 이 열 둘은 곧 이스라엘 각 지파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유추해서 우리는 우리의 여호수아이신 주 예수님께서 죽음의 칼날을 정복하시고 요단강을 말리시며 모든 신자들에게 천국에의 문을 열어 놓으셨을 때, 그는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열 두 사도를 임명하시고 복음의 기념비를 통해서 방방곡곡에까지, 그리고 오고 오는 세대에까지 이 복음의 지식을 전달하게 하시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또 다른 열 두 돌이 (아마도 이것은 요단강에서 취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이들을 한 사람이 들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요단강 가운데" 세워졌는데(9절) 그 더미 혹은 기둥이 높이 솟아 강물이 낮아질 때면 그 꼭대기가 물위로 보이거나 혹은 물이 맑은 때면 그것이 물 속으로 보였을는지도 모르며, 적어도 이 돌들 위로 지나가는 물결의 소음과 소용돌이는 장관이었을 것이다. 또한 거룻배들은 바위를 피하듯이 이곳을 피해 갔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법궤가 섰던 곳을 알게 해 주며 언약의 확증과 전통의 보전을 위해서 길갈의 마른 땅 위에 세워지게 된 기념비와 쌍벽을 이루도록 계획된 것은 사려 있고 마땅한 일이었다. 표적이 이중으로 되고 보니 이 일은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이 되었다.

💡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요단강 도하를 기념하는 열두 기념석을 세우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의 강을 건너 천국에 들어가게 된 자들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영원히 기억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함을 도전받습니다.

 

▶ 가나안 입경 (여호수아 4:10-19)

영감에 가득찬 이 역사가는 지금 자기가 쓰고 있는 주제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도저히 그만 쓸 수가 없어 꼬치꼬치 캐어가며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데, 특별히 여호수아가 자기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얼마나 세밀하게 지키고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여호와의 명령한 대로" 모든 것을 했다고(10절) 기술하고 있다.

이 명령은 또한 "모세가 명령한 것" 이라고도 일컬어져 있다.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내린 어떤 특별한 명령에 관해서는 읽은 바가 없다. 이 일은 여호수아에게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따르며" 그가 하나님께로 받은 명령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어떠한 경우에든지 하나님께 대한 이 백성들의 임무를 기억시키어,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에 최선의 보답을 받는 백성이 되게 하라고 한 보편적인 교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금은 죽어 사라져간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한 이러한 것을 여호수아는 이때 마음속에 생각하고" 그대로 했다. "우리도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미리 주어진 선한 교훈이 있다" 고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 될 것이다.

Ⅰ. "백성들은 속히 건넜다" (10절).

💡 이들이 이렇게 신속하게 강을 건넌 이유는 이 강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그로 말미암아 생긴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서둘러 강을 건넌 이유자신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동안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바닥 가운데에 서 있어야 했으므로 그들의 힘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본절의 기록은 3:17-4:1의 내용의 반복

이 내용이 반복되어 기록된 이유는 본절의 내용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요단강을 건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3:12,13) 순종하여 건넜고 그들이 그렇게 순종할 때 요단강 물이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확인하게 하였으며, 동시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가나안 백성들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는 역할도 하였다(5:1). 만약 그들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전투 전락을 짜거나 다른 준비에 몰입했다면 여리고 성에서의 기적은 체험하지 못했을 것이다(6장).

 

Ⅱ. 두 지파와 반 지파가 전위에 섰다(12,13절).

그들은 요단 동편에서 땅을 상속받을 때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었다(민 32:27). 그리고 여호수아도 최근 이들의 약속을 환기시켜 주었다(1:12-51).

먼저 안주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도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지파들이 가진 가족이라는 장해물들도 없었고, 모두 선택된 사람들로서 일하기에 적합했고 무장되어 있었다. 이토록 강한 집단이 앞장을 선다고 하는 것은 잘된 분지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기를 북돋우어 주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두 지파는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위험의 자리는 명예의 자리이다.

Ⅲ. 모든 백성이 완전히 맞은편 쪽으로 건너갔을 때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에서 나왔다.

이것은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더 이상 거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이유가 그렇게 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움직이도록 명령할 때까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고 또한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령을 내릴 때까지는 제사장들을 요단에서 나오도록 하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15-17절). 이토록 여호수아에게 순종했었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순종했었다. 이와 같이 선한 지시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기쁨이었고 찬양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장들이나 백성을 아무리 천한 곳으로 이끄신다고 해도 참음으로 기다리면 그의 뜻을 따라 제사장들을 요단에서 불러 나오게 하시듯 거기서 불러내실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떠한 깊은 역경에서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표지인 언약의 궤가 함께 있는 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거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감으로써 강을 갈라지게 하고 모든 백성들이 다 건널 때까지 강의 한가운데에 처음부터 끝까지 서 있었던 것은(10,11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거궤를 통하여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한 사건은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는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사건이기도 했다.

 

Ⅳ. 제사장들과 법궤가 요단에서 올라오자 곧 높이 서 있던 강물이 점차로 원래의 흐름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곧 다시 강을 채웠다(18절).

이 일은 강물의 멈춤이 어떤 자연적인 원인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을 더욱 더 입증해 주는 것이 된다. 이스라엘의 이동이 끝나고 하나님의 임재의 표지가 옮겨졌을 때 즉시로 물이 다시 흘러 내렸던 것이다.

만일 "무슨 번민이 있는가? 요단이여, 그렇게 물러섬은 어찜인가?" 라고 물어진다면 그것은 순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친절에서였다고 대답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여수룬의 하나님과 같은" 이가 없도다.

"오 이스라엘이여 너는 복되도다. 백성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누구인가?"

어떤 이들은 여기서 암시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법궤와 그것을 메고 있던 제사장들이 떠나가면 방어선이 없어졌으므로 수문이 열려 심판의 홍수가 조만간 있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교회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곧 망하게 될 것이다. 법궤가 없어지면 영광도 이미 떠난 것이다.

Ⅴ.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여호수아가 존귀하게 된다(14절).

"그날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시는 사귐을 통해서(여하한 경우에도 그와 이야기하고 그와 의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과 백성 위에 그를 세우시는 권위를 통해서 하셨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존귀하게 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실 때 말씀하신 것처럼(3:7) 그가 어떤 사람을 크게 하실 때는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렇게 크게 된 것은 여호수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더 큰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백성들은 모세를 두려워했듯이 여호수아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손아랫 사람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순종과 경의를 끌어내는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허풍을 치거나 위협을 하거나 강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랑과 그리고 백성들의 복리와 하나님의 뜻과 존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거기에 따른 모든 가능한 행동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심과 또 자기들이 하나님을 제일로 여김을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존경을 받는 길이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자들은 참으로 크게되며 배나 영예로운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는 마땅히 경외해야 된다.

Ⅵ. 이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 때가 기록된다(19절).

그것은 "정월십일" 이었고 애굽에서 나온 지 사십 년에서 오일이 모자라는 날이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그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을 방황하리라고 말씀하시었다. 지나간 사십 년을 계산하는 데에 애굽에서 나온 승리의 해가 첫 해가 되었다면 그 마지막 해는 요단 강 이편의 승리의 해가 되었었다. 그리고 이 사십 년의 해들이 모두 슬픔의 해들은 아니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형벌 주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자비를 빨리 보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사십 년이 끝나기 오일전에 이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어들이시었다.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고난의 날을 짧게 하신 것이다" (마 24:22). 하나님께서는 엄숙한 유월절 사일 전에 이들에게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명령하셨다. 그날은 바로 유월절이 시작되는 준비일이었다(출 12:3).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이 종교적인 절기를 축하하고 거룩하게 지내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에게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억나게 하시며 이 둘을 함께 비교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들의 축복의 "알파와 오메가" 가 되신다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 본문은 요단강 도하 사건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되어진 역사적 사실임을 명백히 하여 줌과 아울러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새로운 영도자로서의 여호수아의 권위가 확고해짐으로써 앞으로의 가나안 정복 전쟁이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진행될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한편 본문은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이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약속한 사실을 성실하게 준행하였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백성들의 순종의 토대 위에 완료될 것임을 암시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 길갈에 세워진 기념비 (여호수아 4:20-24)

"길갈에 놓여진" (8절) 열 두 돌은 하나씩 하나씩 포개져서 세어볼 수 있도록 되었거나 아니면 하나씩 줄을 지어 놓여졌거나 했을 것이다. 이들이 돌을 쌓은 후에 이것을 "돌의 무더기" 라고 부르지 않고 "이 돌들" 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 길갈: ‘굴리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였다’(5:9) 라는 의미.

여기에서 ‘수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의 노예처럼 부리고 조롱하던 애굽인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느낀 모욕감(출 32:12;민 14:13-16; 신 9:28)이라는 의미이고 더 넓게는 존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였던 모든 삶 자체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과거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통해 당한 모든 모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백성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음을 기념하여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Ⅰ. 후손들이 기념비의 뜻하는 바를 생각하여 이 돌들의 의미를 물어 올 경우를 가정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희 자손이 그 아버지에게 묻기를(이 자손들 이외에 누가 또 물을까?) 이 돌들이 무슨 뜻이냐?" 하리라.

나이가 많아서 지혜롭게 될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탐구적이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님도 충만한 지식을 소유하고 계셨지만 묻기도 하시고, 듣기도 하시며, 몸소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가르침에 대한 본을 보이시고 계신다(눅 2:46). 아마 요한이 베사바라의 (통행의 집: 사람들은 그리고 통행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 바로 이 돌들을 지적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돌들로도(열 두지파에 의해서 처음 세워졌던 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 고 말했을 것이다. 기적의 기념비로서 이 돌들은 어린이들의 질문을 일으키게 되고 이 질문은 이 돌들을 보수할 기회를 만들어 내게 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눅 10:40) "만일 아이들이 조용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라" 고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의 기사를 통해서 여러모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Ⅱ. 부모들이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가 지시된다(22절).

"너희는 너희 자손들에게 너희 스스로 문자에서 배운 것이나 너희 조상으로부터 배운 바를 알게 하라."

아이들에게 때를 맞추어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알게 하는 것은 부모의 임무다. 그래야 그들을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련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와 같은 교육은 이스라엘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에 대해 갖는 당연한 의무였다. 즉 부모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사건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율법에 대해서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야 했다. 신명기 기자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율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신 6:7). 여호와의 말씀과 행사에 대한 가르침은 레위인들의 임무인 동시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주요 임무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1. 이들은 자기의 자녀들에게 요단 강물이 이스라엘 앞에서 물러섰고 그들이 "마른 땅으로 요단 강을 통과했으며" 여기가 바로 그들이 건넌 그곳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그들은 요단강의 흐름이 얼마나 깊고 센가를 보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비록 그 물결이 강둑에 넘쳐흘렀지만 그것을 멈추게 하셨다. "그래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며 후에 올 세대를 위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들을 향한 자비였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우리 조상들을 위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모든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이렇게 표시된 이 곳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넜다고 하는 비망록이 될 것이다. 공간적인 기념이 이들에게는 필요했을 것이며 이곳을 눈으로 봄으로써 거기에서 이루어진 일이 이들에게 기억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이나 나그네들까지라도 이 돌들을 보고 교훈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돌들의 모습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이 놀라운 일에 관한 역사를 읽게 될 것이며, 아마도 또 어떤 이들은 멀리서 이 일에 관한 역사만을 읽고서 이 돌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생겨나기도 할 것이다.

2. 이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이 일과 더불어 사십 년 전에 홍해를 말리신 일을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홍해에서 하셨던 것과 같이"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나중에 받은 자비를 이전에 받은 사랑과 비교해 봄으로써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고 또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임을 알게 된다.

(2) 지금 받는 자비는 언제나 이전에 받은 자비를 기억나게 해 주어야 하며, 그 일들에 대해 감사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3. 이들은 이 놀라운 일을 선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이 지식을 조심스럽게 자손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24절).

(1)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게 되었다.

온 세계가 "여호와의 손이 전능하심" 을 깨달았으며 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면 어려운 일이 없다. 어떠한 힘도, 자연 그 자체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은 모든 백성에게 대한 교훈이요 전능자와 다투지 말라는 마땅한 경고가 된다.

(2) 하나님의 백성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격려를 받고 또 그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며 영원히 혹은 일생토록 (난외에 있는 대로:KJV) 그렇게 하라." "너희 일생 그렇게 하고 영영히 너희 후손들도 그렇게 하라."

이 놀라운 일에 대한 기억은 결과적으로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며 자기들의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을 계속하도록 해줄 것이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하는 모든 교훈과 경계 중에서도, 자녀들로 하여금 "영원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며 그 일에 집념 하도록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성실한 경건은 가장 중요한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