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체인 성경읽기
사사기 12, 사도행전 16, 예레미야 25, 마가복음 11
묵상구절
10: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0: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0:18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0:19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0: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10:21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10:2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10:23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10: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10: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10: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10: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10:28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10:29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
10:30 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칼날로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10:31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10:32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10:33 그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10:34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10:35 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여 바쳤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10:36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10:37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10:38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10:39 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같았으며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10:40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10:41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10: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10:43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매튜 헨리 / 옥스퍼드
●동맹 5부족의 격파 (여호수아 10:15-27)
다섯 왕이 기브온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용감한 군대를 거느리고 전장에 집결했을 때는 틀림없이 용감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패배했었다. 처음에는 혼란을 당했고 그 다음에는 우박으로 파멸을 당했다고 그리고 이제 여호수아는 자기 일을 끝내고 자기 군대를 데리고 본영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일은 아마도 전쟁 협의회에서 곧 결정되었고 그들은 점령한 성읍들을 점유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을때까지 "길갈의 진"으로 돌아와 있어야 했었다(15절). 그러나 그는 곧 더 많은 일이 그에게 맡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승리는 약탈물을 나눌 때까지 추적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힘을 가지고 그 일에 뛰어든다.
Ⅰ. 패주한 군대들을 추격하고 쳐부수어야 한다.
왕들이 숨어 있는 곳에 대한 정보가 여호수아에게 들어 왔을 때 그는 잠시 동안 보초를 세워 그들을 지키도록 명령했다(18절). 악인은 "남기워서 멸망의 날을 기다리게 함이 되고 진노의 날을 맞으려 끌려 나감이" 된다(욥 21:30). 그는 자기 부하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군대가 성읍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추격하게 했다. 그들이 도망가면 다시 힘을 회복하게 되고, 따라서 그들을 함락시키는 일이 좀더 어려워질 것이다(19절). 사려있는 장군답게 그는 가장 필요한 일을 가장 먼저 하면서, 정복이 끝날 때까지 그의 개선을 연기한다. 또한 그는 사로잡은 왕들을 욕보이는 것 같은 일은 서두르지 않고 우선 패주한 적들이 다시 집결되는 것부터 막으려고 했었다. 이러한 강인한 추격의 결과로
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크게 살륙할 수 있다.
2. 그리고 그들을 전장에서 쓸어 버렸다. 그래서 성벽으로 쌓인 성으로 도망친 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살아 남지 못했다. 이들도 거기서 오래도록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며 또한 그들에게 공포가 따르는 한 그들이 은신한 성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3.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21절). 이러한 표현은
(1) 이들의 안전과 평온이 완전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이 성경을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았다" (출 11:7)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을 대적해서도 혀를 움직이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승리한 후에도 어떠한 위험의 위협도 전연 당하지 않았다. 참으로 개 짖는 것 만큼도 위협을 당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원문에는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전쟁터에서나 추격에서나 간에 상해를 입은 사람이 없었다.
(2) 이스라엘의 명예와 명성을 의미한다. 어떠한 사람도 이스라엘 향해서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격노하는 원수들의 손뿐만 아니라 입까지도 멈추게 하시었고 그 입술에 침묵을 매달아 두셨다.
(3) 갈대아 역에는 이 승리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수한 기쁨의 표현을 이렇게 풀어서 읽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는 어떤 사람도 영혼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상처나 손실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군대를 점검했을 때 거기에는 죽은 자나 부상당한 자나 혹은 유기된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 중 누구도 친구나 사지를 잃어버려 슬퍼해야 할 일이 없었다. 그만큼 이 승리는 희생이 들지 않은 손쉽고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Ⅱ. 숨어 있던 왕들은, 하나님이 약속과 선물로 주심에 따라 이 땅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요구가 있는 대로 양도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반역한 죄로 심문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서
1. 그들이 어떻게 갇혀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이 도망쳐서 피난처로 숨었던 그 동굴이 그들의 감옥이 되었고 그안에서 그들은 여호수아가 심판석에 앉을 때까지 투옥당했었다(18절). 그들 모두가 우박과 칼에서 도망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셔서가 아니라 보다 더 엄격하고 무서운 형벌을 위해서 남겨두신 것뿐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바로도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서 애굽의 재앙에서 견디어내게 하시고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었다(출 9:16). 그들은 모두 도망쳐서 같은 곳에서 만났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인도하셨다. 바로 최근에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의논하던 그들이 이제는 자기 보존을 위해서 새로운 의논을 해야 했고 그래서 같은 동료에게 피신하게 되었다.
이 사실에 대한 정보를 여호수아에게 가지고 온 사람은 그 동굴의 굴들과 요새의 사정을 잘 아는 그 나라의 사람들이었음에 분명하다.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거기에 가두어 둔 배려는 이 행동의 열기 가운데서도 여호수아의 지모를 실증해 주며 그의 지성의 됨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왕들의 계획은 결과적으로 스스로 기만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피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멸을 보여준다. 그들의 거짓 피난처는 그들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도록 넘겨 줄 뿐이다.
💡 17절에서 ‘발견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군사가 막게다에 있는 글 어귀를 우연히 들여다보던 중 그 다섯 왕들이 그의 눈에 들어온 상황을 묘사했다. 그 다섯 왕들이 막게다의 동굴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하신 이는 이스라엘의 전쟁을 친히 수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남부 연합군의 다섯 왕들을 곧바로 죽이지 않고 일단 도망치지 못하도록 동굴 어귀를 큰 돌들을 굴려 막고 거기에 또한 파수병들을 배치하여 얼마간 지키게 하였는데, 이는 아직 진멸되지 않은 가나안 남부 연합군을 먼저 확실히 진멸하기 위해서였다. 동굴 안에 갇힌 다섯 왕들은 독 안에 든 쥐와 같이 이미 확보된 목숨으로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는 가나안의 일반 병사들을 모두 진멸하고 난 다음에도 충분히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그들을 곧바로 처단하지 않고 파수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한 것이다. 여기에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는 여호수아의 여유가 보인다.
💡 여호수아의 부하들은 가나안의 패잔병들을 추격하기보다는 다섯 왕들이 동굴 안에 갇혀 있는 것을 통쾌한 마음으로 지켜 보면서 그곳에 머무르려 했던 것 같다. 이에 군사령관인 여호수아는 참으로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도망치고 있는 가나안의 남은 군사들을 모조리 잡아 진멸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너희들은 가만히 서 있지 말라' 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여호수아 자신도 동굴 어귀에 가만히 서 있지 않고 가나안의 군사들을 적극적으로 공락하는 모범을 보였다.
여호수아는 대구법을 사용하여 마지막 남은 적의 패잔병들을 끝까지 추격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승리의 약속(8절)을 재확신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약속을 붙들고 이스라엘 군사들이 전쟁의 임무를 다하도록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신앙의 삶 역시 생사를 건 전투에 비할 만큼 대적을 끊임없이 상대해야 한다. 따라서 육적인 전투와 마찬가지로 영적 전투 때도 때때로 지치고 피곤하거나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며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모든 사망 권세와 대적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한다면(요 16:33) 그때마다 다시 분발하여 싸움의 기세를 늦추지 않고 영원한 승리를 향해 계속 전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2. 그들이 어떻게 패배당했는가를 보게 된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동굴에서 끌어내어 공개 법정에서처럼 자기 앞에 앉히도록 명령하고 그들의 이름을 점호한다(22,23절). 그들이 결박당한 채 설 수가 없어서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는지, 혹은 목숨을 살려 달라고 스스로 땅바닥에 부복하고 있었는지 그 경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이 때 여호수아는 장군들과 용사들을 불러내어 이 왕들을 짓밟고 그들의 목숨을 발로 밟으라고 명령했다. 이 일은 스포츠로나 혹은 자기들과 회중을 즐겁게 하려고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의 봉사자가 되는 엄숙과 예의를 갖추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의 자만과 용기를 만족시키지 않고 가장 높은 자보다도 더 높으사 "방백들을 진흙 밟으시는 것같이 하시며" (사 41:25), "땅의 모든 왕들을 두렵게 하시는" (시 76:12)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했었다.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에서 이러한 치욕의 상태로 불시에 떨어진 이 사람들을 이렇게도 지독하게 멸시하는 것은 야만적인 것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또한 면류관을 썼다는 머리가 직접 여호수아에 의해서가 아니라(그것 쯤은 차라리 견디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적어도 그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군대의 장관들에 의해서 짓밟혀진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분명코 이 일이 전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경우만은 특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수가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지시와 고무에 의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1)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 왕들의 가증할 만한 악들을, 그들의 죄악의 양이 이제 가득 찼기 때문에 벌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가나안 족속들의 괴수들인 이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취해진 이 정의의 공적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크게 두렵게 하사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나라들" 의 가증한 죄악을 모방하려고 하는 유혹을 받지 않게 하시었다.
(2)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모세를 통한 약속을 성실하게 이루시려고 하셨다. "너는 그들의 높은 곳, 즉 그들의 큰 인물들을 밟으리로다" (신 33:29). 이 말은 우리가 기록에서 보는 대로 모세의 바로 최후의 말이기 때문에 더욱 빨리 문자적으로 성취되어져야 한다.
(3)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아직도 그들 앞에 남아 있는 전쟁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과 소망을 북돋우어 주시려고 하셨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 라고 말했다(25절).
👀 본문의 문맥적인 의미는 '두려워서 사기가 저하되지 말라' 라는 것이다.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 고 하신 것은 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적접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8절). 이것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전쟁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독려려하는 말이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는 거룩한 전쟁이기 때문에 (14절) 존재하지도 않는 이방신의 저주나 상대방의 전력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가 천지를 운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앞선 두려워 말라는 표현이 소극적 자세를 경계하는 말이라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표현은 적극적 자세를 요구하는 말이다. 이 적극적인 격려의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후 그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 명령을 직접 내리시면서 하셨던 말씀이기도 하다(수 1:9). 그 말씀을 붙들고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해 오고 있는 여호수아가 본문에서 이제 그의 군대 장관들에게 동일한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나안 거민들과의 전쟁을 수행하시므로 이스라엘은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여호수아는 확신있게 선포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사 승리를 주시는데 왜 두려워하겠는가?
[1] "지금 그들에게 이러한 모욕을 가했기 때문에, 너희 자신에게 보복이 돌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위험 때문에 이 왕들이나 이들의 상속자들을 두려워 말라. 사실 이러한 생각은 자기들의 수중에 있는 그 사람들을 향해서 무례하게 굴지 못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전쟁의 불확실한 운명이 언제 똑같은 운명을 자기들에게 불려들여 오게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 전쟁의 복수로 해서 어떤 일이 생겨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2] "어느 때에라도 너희들을 대적해서 동맹을 맺는 왕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너희들은 그토록 무섭다고 생각했던 이 왕들을 끌어내려 놓고 있지 않은가. 여호와께서 너희 모든 원수들에게 이같이 하실 것이다. 이제 그들은 망하고 있고 너무나 깊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목을 너희들이 밟을 수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절대로 이기지 못하고 너희 앞에 엎드려질 것이라고 (에 6:13) 확신할 수 있다. "
(4)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어두움의 세력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를 통한 신자들의 승리의 예표를 주시려고 했다.
구속자의 모든 원수들은 "그의 발등상" 이 되게 하실 것이다(시 110:1; 시 18:40 참조). "땅의 왕들이 그를 대적하나" (시 2:2) 조만간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복종하게 되며(히 2:8), 또한 그가 "정사와 권세들" 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을(골 2:15)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승리에서 우리는 정복자 이상이 될 것이며 "사자와 독사를 밟고" (시 91:13), "땅의 높은 곳들을 달리며 (사 58:14), 평화의 하나님이 사탄을 우리의 발아래 밟히게" 하실 것인데, 그 일은 조만간 이루실 것이며 기필코 이루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롬 16:20; 시 149:8, 9 참조).
3. 그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아마도 그들이 이스라엘 장관들에게 짓밟히는 처참한 굴욕을 겪었을 때 이미 아각처럼 말할 각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여러 사람에 의해서 가해지는 이 형벌이 족하도다. "이들의 명예가 그들의 생명, 즉 그들의 박탈당한 저주받은 생명을 구할 수가 없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칼로 치고 그들의 시체를 저녁까지 매달았다가 끌어 내리고" 그들이 숨었던 동굴에 던져 넣었다(27절).”
그들이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먼저는 그들의 감옥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그들의 무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친 그 곳이 우리를 실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에게는 무덤도 "피난처" 가 된다(욥 14:13). 만일 이 다섯 왕들이 제때에 스스로 겸손하여져, 전쟁을 일으키는 대신에 평화를 간구했더라면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건졌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명령이 발한 이상 그들은 "회개할 곳", 혹은 심판을 취소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구했다" 고 해도 이것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 여호수아가 다섯 왕의 시체를 나무에 매어단 것은 다섯 왕을 대표로 하는 가나안 족속들의 비참한 죽음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신 21:23) 결과임을 알리고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후에까지라도 모욕과 수치를 당케 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이방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떠한 것인지를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나무에 매어다는 처형 방식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의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 즉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이므로(롬3:22)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해야 했으나 하나님은 인간들을 친히 나무에 달아 죄값을 치르게 하지 않으시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죄를 짊어지게 하심으로써 나무에 매어다셨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모든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이루신 것이다(롬5:10; 갈3:13).
가나안 남부 연합군의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숨은 막게다에 있는 동굴은 처음에는 이들에게 도피처가 되었으나(16절), 여호수아의 군대가 돌로 그 동굴을 막고 지키는 동안에는 감옥이 되었다(18절). 그리고 이제 본문에서는 그들의 시체가 던져짐으로써 그들이 안전한 피난처로 생각했던 곳이 자기들의 매장지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인간적인 판단 하에 선택한 도피처는 결코 인간에게 궁극적인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 여호수아의 연전연승 (여호수아 10:28-43)
우리는 여기에서 여호수아가 획득한 잇단 승리를 어떻게 전진시켰으며, 또 그가 이것을 통해서 획득한 이점이 무엇인지 보게 된다.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장군으로서 칭찬할 만한 점이다.
Ⅰ. 여기에는 여호수아가 직접 점령한 몇 몇 성읍들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1. 그가 전장에서 정복한 이 왕들의 세 성읍, 즉 라기스 (31,32절), 에글론(34,35절), 그리고 헤브론(36,37절)을 직접 가서 탈취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 예루살렘과 야르뭇은 이 때에 취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병력이 너무 피곤했든가 혹은 그들이 얻은 걸로 만족해서 나머지 두 곳은 취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성들을 손쉽게 함락할 수 있었다니 제일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리고 나서, 훗날에 이 성들을 점령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었다(사 1:8; 삼하 5:6).
2. 그는 또한 세 개의 다른 성읍과 왕도들을 점령했다고 다섯 왕들이 도망쳤던 곳 인근에 있었던 막게다와 립나와 드빌은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이 왕들을 추격해서 그곳까지 가게 되었기 때문에 급격하게 파멸을 당했다(28,29,30,38,39절).
3. 왕을 잃어버린 라기스를 도우려고 병력을 이끌고 온 한 왕은 자기 자신의 상처를 건드리는 격이 되었다. 그는 게셀과 호랍이었다고 그는 자기 이웃에 대한 우정에서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여호수아의 군대의 진행을 막으려고 하다가 자기의 모든 병력까지도 멸절당했다(33절).
이와 같이 악인들은 이따금 자기 자신의 꾀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방해하다가 그 심판을 더 빨리 자초하게 된다.
Ⅱ.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서 함락되어 그들의 수중에 들어온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40-42절).
초기에 그들이 획득한 가나안 땅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그 대부분이 후에 유다 지파의 몫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살펴보면
1. 여호수아는 이 성읍들을 점령하는데 굉장히 신속하게 했다.
혹자는 이것을 이야기하는 화법이 빠르고 간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호수아는 번개같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뛰어다녔다. 비록 이 성읍들이 전부가 마지막 극한 상황까지 버티고 또한 성문을 열어준 도성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순식간에, 여호수아는 단 하루나 이틀 동안에 이 성들을 모두 자기 수중에 넣었고 항복을 받았고 노획했다(28,32절). 이제 그들은 자기들의 군대의 패배와 왕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사려 있게 계속 강타를 가했다. 우리가 부지런하기만 하고 우리의 기회를 증진시키기만 한다면,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 낼수 있는지를 여기서 깨닫게 된다.
2. 여호수아는 자기가 정복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가혹하게 했다.
그는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사납게 공격했고 "모든 사람을 칼로 진멸했다" (28,30,32,35절 등).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모두 진멸하였고" (40절)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군사적 처형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명려하신 대로 했다(40절). 이 하나님의 명령은 그들을 잔인하다는 악명에서 충분히 건져내 주고 구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일을 거룩하게 해 주고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한 봉사의 한 부분을 감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1) 가나안 사람들이 계속 저질러 온 우상 숭배와 다른 가증한 일들을 증오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 그들에게 내리신 엄청난 파멸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분노하게 만들었는가를 우리로 하여금 판단하여 알게 한다.
👀 32절 ‘모든 사람을', 33절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
여호수아의 이러한 행동은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하라' (신 20:16,17) 는 모세의 명령 즉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하게 지킨 행동이었다. 이로써 여호수아는 가나안 남부 정복 전쟁에 있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의 올무를 놓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전멸했던 것이다.
👀 38절, 드빌에 이르러
여호수아가 승승장구하여 가나안 족속들을 손쉽게 진멸할 수 있었던 원인이 물론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해 친히 싸워 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호수아가 사전에 매우 철저하게 대적들을 공격할 준비를 했던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싸워야 할 목적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사단에 대항하여 제 일선에서 영적 전투에 임하는 오늘날의 영적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를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싸움의 방향과 대상이 분명한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며(고전 9:26), 거세게 밀어닥칠 영적인 대적들을 위해 사전에 말씀과 기도로써 철저하게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2) 하나님은 여기서 이토록 많은 사람의 생명까지 희생시키면서 즉 "백성들로 그들의 생명을 대신하게" (사 43:4)하시면서까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자기 사랑을 밝히려고 하셨다.
"이 포도 나무를 위해 열방을 쫓아내셨을" 때(시 80:8)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풍성히 나타나게 되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위해서 자기의 피조물의 생명을 이토록도 많이 희생시키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하는 영원한 신세를 지고 있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3) 이것은 주 예수의 은총의 풍성함을 업신여기는 모든 완악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원수들의 최후적이고 영원한 파멸을 예시해 주고 있다.
그들은 영원히 그의 진노의 막중함을 느껴야 하고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나라들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해서는 어떠한 욕이 돌아가서도 안 된다.
3. 이 원정에서 거둔 큰 성공.
이들 성읍들의 노략물은 이것들을 약탈한 군사들에게 분배되었다. 그리고 성읍들은 그 주변의 땅과 더불어 곧 지파들에게 분배되어졌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이다(42절). 만일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맡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승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때 이긴다. "만일 그가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으랴!"
👀 14, 10, 42 절, ‘여호와께서 .. 싸우신 고로
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남부 지역을 정복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본장의 종결 부분.
여기서는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의 최후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지난 단락(16-27절)에 이어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을 격파한 여세를 몰아 가나안 남부 지역을 완전 정복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남부 지역 정복은 매우 손쉽게 진행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본문에 나타난 지역들을 정복하는 데는 최소 수개월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이 이처럼 정복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 지역들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큰 장애가 없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해 가는 전과정 동안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친히 그들과 더불어 함께 싸워 주심으로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가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날 악의 세력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기를 소망하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친히 함께 싸워 주심으로 우리로 승리를 거두게 하십니다.